제6과 선교를 위한 동기와 준비(질문, 대답, 설명) 11/11/23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6과 선교를 위한 동기와 준비(질문, 대답, 설명) 11/11/23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11-05 20:15 조회1,953회 댓글0건

본문

제6과 선교를 위한 동기와 준비

(11월 11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25분)

 

연구 범위: 눅 24:1~12, 눅 24:36~49, 행 1:12~26, 히 10:24, 25, 행 2:1~41, 고전 11:1

 

기억절: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5~18).

놀라운 말씀이다. 거짓된 마음이든 진실한 마음이든 그리스도는 전파된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동기는 이기적인 야망이나 시기, 다툼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에서 비롯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동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선교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겠는가? 이번 과에서 우리는 초대 교회에 일어났던 몇 가지 사건들을 통해 주어진 선교의 핵심적인 요소에 대한 지침을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을 말씀의 토대 위에 굳게 세우셨다. 

느끼기: 말씀은 제자의 실제 삶 가운데 적용되고 실천될 때에 능력있게 전해진다. 

행하기: 말씀 가운데 거하고 말씀에 조화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선교에 동참한다. 

 

TMI 위로

2.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돌아와 소식을 전한 동기는 무엇입니까?(눅 24:7~9)

*답: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확인한 기쁨이다. 

3.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어떤 이유에서입니까?(눅 24:44) 

*답: 예언의 말씀을 확인 확신할 때 증거의 능력이 강하게 드러나게 때문이다.

4. 제자들이 성령의 부어주심을 기다리는 기간은 어떤 의미가 있었습니까?(행 1:4)

*답: 아버지의 약속한 것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위한 기간이다. 

5. 성령의 부어주심이 선교에 있어서 요긴한 이유는 무엇입니까?(행 2:37) 

*답: 선교는 성령께서 주장하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마음에 감동해야 한다.

6. 초대교회의 제자훈련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까?(행 2:42~47)

*답: 말씀을 가르치고 함께 있어 본받게 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7. 초대교회의 모본에서 발견하는 성공적인 선교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답: 모이고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고 유무상통하여 본을 보인 것이다.

 

결론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일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제자들을 말씀의 토대 위에 세우시고 성령의 부어주심을 통해서 전하는 이와 듣는 이의 마음을 준비시키셨다. 신앙과 가르침은 교제를 통해서 실제적으로 보여지고 새로운 신자들은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말씀 가운데 거하고 그것이 삶 가운데 적용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선교의 비결이다. 

 

11월 5일(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누가복음 24:1~12을 읽어 보라.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눅24:1~12]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답: 두려워하고 의심했으나 천사의 기별을 들은 다음 기쁘고 흥분했고 곧 제자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전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이른 일요일 아침, 많은 여인들이 무덤으로 갔다고 누가는 말한다. 향유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들은 안식일이 끝난 다음 예수님의 시신을 살피러 갔을 것이다. 여전히 봉인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할지 몰랐던 그들에게 빛나는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자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그들에게 줄 소식이 있었다. 그들은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실제로 부활하셨다고 말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했다. 감격한 여인들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재빨리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로 가서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알게 된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다. 

여인들의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분명 경외감으로 가득 찬 놀라운 경험을 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경험을 "허탄한 이야기"라고 부르며 믿지 않았다. 베드로는 여인들의 말을 믿을 수 없어서 무덤으로 달려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베드로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다 믿지는 않는다. 베드로는 여인들의 말을 경청했지만, 그들의 경험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나중의 일이다. 처음에 베드로가 경험한 것은 빈 무덤뿐이었고, 그저 "그 된 일을 놀랍게 여"(눅 24:12)겼다고 누가는 기록했다. 베드로가 무덤에서 경험한 것은 여인들의 경험과는 달랐다.

베드로의 반응과 상관없이 이 여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자마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다.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행하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보다 더 큰 선교 동기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 모두의 유일한 희망인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보다 더 큰 동기가 있을까?

물론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야말로 선교 동기의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나눌 수는 없지 않겠는가? 

 

<교훈> 선교는 그분께서 나에게 행하신 일, 내가 발견한 예수님 안에 있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부가설명> 전도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확신하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그 확신은 주관적인 의식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어야 하고 경험해서 주관적인 것이 된 것이어야 한다. 부활의 아침에 여자들은 무덤에서 천사를 만났고 또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을 제자들에게 먼저 전하여 그들도 확인하게 했다. 그러나 반응은 서로 달랐다. 여자들은 그들 앞에 전개된 사실을 믿었다. 그 믿음을 제자들에게 전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가서 빈 무덤을 확인하고도 의심했다. 그들은 아마도 그 의심을 전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가보니 여자들이 말한 것처럼 예수님의 시체가 없는 것은 확인했어. 그런데 그 시체가 어디로 갔을까? 여자들의 말대로 부활하셨을까? 글세?’이런 반응이 아니었을까? 믿지 않으면 사실도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확실한 지식은 그의 믿음과 함께 한다. 사실이 아니라도 믿으면 그에게는 사실이 된다. 성경 말씀은 예언과 성취로 확실성을 증명해주었다. 누구든지 그 증명된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에게 확실한 지식이 된다. 그것을 확신을 가지고 전할 때 복음이 힘있게 전파된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11월 6일(월) 예언적 기초

 

누가복음 24:36~49을 읽어 보라.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이것이 사도들에게 왜 그토록 전환기의 경험이었는가?

[눅24:36~49]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답: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부활을 확인시켜주셨다. 사도들이 확인하고 확신하는 경험에 이르렀다.

 

흥미롭게도 제자들도 처음에는 두려움 때문에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예수님을 보고 난 후 그분이 참으로 살아계신다는 확신을 얻은 후에도 “너무 기뻐서”(눅 24:41, 새번역)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좋은 것이 아닌가 하고 느낀 적이 있는가? 그것이 바로 제자들을 포함한 다락방에 있던 사람들의 경험이었다.

만약 예수님이 이 경험만 남기고 떠나셨다면 그들의 믿음은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경험의 기억이 약해지고 잊혀지거나 심지어는 의문이 들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시고 직접 생선을 드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셨다. 대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보여주며 그리스도의 봉사와 사역에 대한 예언을 깨닫게 해주셨다. 즉 제자들이 그분과 함께한 경험이 아무리 대단했더라도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기를 원하셨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

여기서도 우리는 전도와 선교에 대한 강력한 동기를 발견한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경험을 확고히 하려면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제자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제자들의 세계관이 정치적인 지상 왕국이 아닌 죄에 대한 위대한 해결책과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로 전환되어야 했다. 복음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주권을 회복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복음은 사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보여주고 언젠가 세상의 모든 악이 멸망하고 땅이 새롭게 창조되며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러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눅 24:45) 하셨고, 제자들은 이 진리를 세상에 나누어야 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이르는 역사와 사건을 가리키는 예언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이런 진리를 확고하게 이해할 때 우리는 충만한 동기를 가지고 선교를 위해 준비될 것이다. 

 

<교훈>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견고한 말씀의 토대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진리를 밝히 이해할 때에 우리는 선교를 위해 더 잘 준비될 것이다. 

 

<부가설명> 바울은 에베소 교회 지도자들에에 고별의 말을 할 때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라고 하였다. 말씀이 그들을 든든히 세운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같은 기능을 행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믿게 하는 방도로 예언과 성취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요13:1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14:29). 그래서 성경의 예언과 그 성취에 관한 확실한 지식을 갖추는 것은 전도를 위항 대단한 무장을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예언을 따라 선한 싸움을 승리로 장식할 수있다(딤전1:18).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모세와 시편과 선지자를 말씀하시면서 모든 성경에 쓴 내용을 지적하여 그 성취가 예수님의 구원사업인 것을 깨닫게 하셨다. 우리도 기록된 말씀에서 성경말씀이 확실한 진리의 사실인 것을 예언을 연구하고 깨달아서 더욱 확실히 하고 증거하는 증인이 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마지막 때에 특별히 예언을 포함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하는 이유이며, 선교를 위해서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까닭이다.

 

11월 7일(화) 기다림과 선교

 

누가복음 24장은 예수님의 승천으로 끝나지만(눅 24:50~53) 그것이 끝이 아니다. 누가가 계속해서 기록한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사명과 약속을 주셨고, 예루살렘에서 "위로부터의 능력"(눅 24:49, 행 1:4~8 참조)을 기다리라는 분명한 지시를 내리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실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이 오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능력을 주실 것이었다.

 

사도행전 1:12~26을 읽어 보라. 120여 명의 남녀 제자들은 약속을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행1:12~26]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침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답: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며 전도 전열을 보완했다. 가룟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제자의 수에 포함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한 사명을 주셨다. 그들은 세상을 향해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이었다. 제자들은 기다리는 동안 두 가지 방법으로 사명을 준비했다. 첫째, 누가는 그들이 합심하여 기도와 간구를 계속했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각자가 그 사명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제자들이 기도로 연합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기도했는지 누가가 기록하지 않았지만 함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우리를 위한 얼마나 귀한 모본인가? 

제자들이 기다리는 동안 두 번째로 한 일은 선교를 위한 조직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유다는 예수님을 제사장들에게 넘겨준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열두 제자의 자리에 공석이 생겼고 제자들은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후임자를 선택했다. 사실상 제자들은 스스로를 정비하고 선교의 시작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베드로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아무도 그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모두가 그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를 보았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행동하시고 일하시며 움직이신다는 이해와 신뢰가 있었다. 

그들의 기다림의 시간은 한가로운 시간이 아니었다. 그 시간은 목적과 선교 중심적인 행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의 대사명을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될 성령의 부으심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연합하여 서로 격려하고(히 10:24, 25) 하나님의 성령을 구하며 기도해야 한다. 또한 우리 자신과 교회가 하나님의 우선순위인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 일에 연합해야 한다. 

 

<교훈> 예루살렘에서 약속한 성령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동안 제자들은 한 마음으로 기도했고, 사명을 이루려는 한 목표 아래 연합하고 준비하였다. 

 

<부가설명>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다리는 법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기다리는 동안에도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의 약속을 따르면 될 것이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제자들의 모범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주는 사건이다. 말씀을 읽고 연구하여 그 뜻을 성경적으로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성령께서 친히 삶을 주장해주시도록 진실한 기도가 필수적이다. 말씀을 연구할 때 선입견을 다 버리고 오직 성경으로 성경을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며 성령님의 지혜로 말씀을 깨닫로고 자기를 비워야 할 것이다. 성경연구하는 집회를 여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한 것처럼 함께 전도 대열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도 뺄 수 없는 일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자기를 준비하는 시간이고 전도 전열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렇게 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수 없고 심심할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 지혜와 방법을 더하여 주소서.

 

11월 8일(수)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불의 혀 같은 것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임했다. 그들은 약속된 성령의 능력이 주어졌음을 깨달았다.

 

사도행전 2:1~41을 읽어 보라.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제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답: 본문은 사도행전 2장 끝 6절 놔두고 전체이니 읽어보기 바란다. 능력을 받아 전도의 큰 역사가 일어나서 그날 3,000명의 제자가 더했다.

 

제자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행 2:4)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각 사람에게 능력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 축복은 사도들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천국에 잘 맞는 이가 되기 위한 축복도 아니었고, 외국어로 사업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를 향한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믿지 않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각자의 은사를 사용하라고 부르신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주어진 은사를 사용하는 것보다 선교를 위한 더 요긴한 부르심이 무엇이겠는가?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에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메시아를 거부한 것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다. 성령께서 능력 있게 역사하시는 장면을 보라. 베드로는 너희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직고했다. 그들은 자신이 한 일을 깨닫고 찔림을 받아 사도들에게 고백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그러나 그들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한 마음으로 성령과 조화를 이루며 협력할 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데 직접적으로 관여했었던 사람들에게까지 회개와 죄 사함이 전해졌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다. 이 기별이야 말로 우리를 선교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죄 많고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에 살고 있는 죄 가운데 무너진 타락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받았다. 우리의 임무는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을 증거 하는 것이다.

 

<교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회개하여 그를 전하게 된 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다. 그것은 우리가 성령의 역사에 협력할 때 갖게 될 놀라운 경험이다. 

 

<부가설명>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준 사람들만이 예수님을 죽게한 장본인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구원이 허락되었다는 것은 그들과 다름없이 우리도 날마다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주고 있지만 구원을 받게 하시고 이 복된 구원의 기별을 전할 수 있는 권세까지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계된 사람들에게도 구원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격려가 된다.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구원하려고 오셨다(눅19:9,10). 자신이 죄인임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예수님께 나와서 그것을 고백할 때 예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가 그에게 임한다. 성령께서는 이런 사람을 예수님의 형상을 닮도록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증거하는 전도자를 삼으신다. 성령 충만은 진정으로 거듭나는 경험이고 또 성령충만은 말씀 충만이다. 거듭나는 것은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것이고(벧전1:23), 성령으로 나는 것은 말씀으로 나는 것과 같다(요6:63). 그러므로 전도자는 말씀이 충만한 자, 곧 말씀의 사람이 된다. 그의 언어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의 삶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이 된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으로 나는 사람을 영이라고 가르친다(요3:5,6, 롬8:9). 전도자는 말씀의 사람이며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11월 9일(목) 초대 교회의 모습

 

사도행전 2:41~47을 읽어 보라. 여기에는 초대 교회의 어떤 모습이 담겨 있는가?

[행2:41~47]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답: 말씀과 기도로 연합하여 유무상통(有無相通)하고 마음을 같이 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니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

 

사도행전 2장은 초대교회의 모습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로 마무리된다. 사도행전 2:41은 침례를 받은 사람이 "삼천이나 더하"였다고 말한다. 이 구절을 누군가가 계산을 해서 기존 신자 수에 새 신자 수를 더하여 전체 신자 수를 계산했다는 의미로 읽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이해일 뿐이다. 이 표현에는 새로 침례를 받은 신자들이 교회 공동체의 동등한 일원이 되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초기 기독교 교회의 핵심 기능은 제자훈련이었다. 새 신자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그들은 세 가지 방식으로 제자 훈련을 받았다. 첫째, 그들은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를 계속해서 배웠다. "교리"와 "교제"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가르침"과 "동역"을 의미한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잘못된 믿음을 고쳐주고 사람들이 보고 경험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제공했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진리를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못한다. 오히려 진리를 삶에 적용하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교제 속에서 일어났다. 새 신자들은 영적으로 성숙하고 신앙의 기초가 든든한 사도들의 감독과 지도를 통한 직접적인 가르침은 물론 다른 신자들과의 일상생활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신중하고 계획적으로 제자 훈련을 받았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을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책을 보거나 설교를 듣는 것보다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하는 것을 직접 보고 그것을 따라 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방법일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수님을 본받은 것처럼 그들도 자신을 본받으라고 가르쳤다(고전 11:1). 사람들이 당신과 당신이 경험하는 그리스도의 실재를 볼 수 있다면 이는 그들에게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교훈> 초대교회 제자훈련의 핵심은 “가르침”과 “동역”이었다. 가르침은 유익을 주지만 그보다 제자들을 직접 보고 따르는 동역을 통해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부가설명>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고 배우게 하는 것이다. 말로는 가르치고 생활과 행위로는 말로 가르친 것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이면 그의 가르침이 힘이 없고 나아가서는 거짓으로 여겨질 수 있다. 재림성도들은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자기가 가르친 진리대로 생활한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여러번 자기를 본받으라고 감히 말한다. 우리는 전도하면서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정도로 알고 있는 기별이 생활되고 있는가? 때때로 우리는 전한 기별과 다르게 사는 모습을 보여서 스스로 부끄러워한 적이 없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이 있다. 반성하고 뉘우쳐도 어느 순간에 비슷한 허물을 나타내는 삶의 모습이 하나님께 얼마나 황송한지 얼굴을 들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면 우리의 전도가 허지로 돌아갈 수 있다. 바울이 정말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았으나 자기에세 전도받은 사람들이 자기의 삶을 보고 실망할까 염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지체 가운데 있는 죄의 법이 사로잡에 죄 아래로 끌고 가는 경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롬7:18~24). 바울은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고후12:20)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아직도 죄의 세상에서 악한자의 불화살에 노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죄를 이긴 자로 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말로 전한 복음을 모본으로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들 - “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이며 그들은 그분이 가지신 바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관심을 가진 사심 없는 자선심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께서 영혼들을 귀하게 여기시는 것처럼 그들을 귀히 여겨야 한다. 그들의 동정심은 그들의 사랑하는 구주의 사업에 두어야 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그분의 피로 사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교회증언 2권, 663-664).

 

11월 10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우리의 선교 사업은 예수님께서 우리 삶에서 행하셨고 이루고 계신 일에 대한 깊은 사랑과 감사에 기초해야 한다. 다른 동기는 그 무엇이건 다 잘못된 것이다. 말씀 가운데 거하며 말씀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성공적인 선교와 전도의 열쇠이다. 

“우리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결합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늘에서 오신 생명의 떡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를 먹어야 하며, 언제나 신선하고 풍성한 생수가 용솟음치는 샘에서 마셔야 한다. 우리가 항상 주님을 우리 앞에 모시고, 마음으로부터 그분에게 감사와 찬송을 돌린다면 우리의 신앙 생애는 늘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형식이 될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당신의 오묘한 뜻을 개인적으로 말씀해 주실 것이며 우리는 자주 예수의 임재로 평안과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가 에녹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가까이 임하실 때에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질 것이다. 이것이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생애에 나타날 때에 그의 생애 가운데는 검소(儉素)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자기를 낮추는 정신이 나타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일들이 그가 교제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가 예수와 함께 있다는 사실과 또 그분을 배워왔다는 사실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129).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생애에는 자라나는 일도 없고 열매 맺는 일도 있을 수 없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였다면 그대는 자신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그대가 그리스도의 정신 곧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기심 없는 사랑의 정신과 그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정신을 받아들일 때 그대는 자라나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67). 

 

토의를 위한 질문

1. 시기, 다툼, 이기적인 욕망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빌립보서의 바울의 말을 어떤 의미로 이해하는가? 우리 자신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답: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한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할 때 발생하는 상태이고 또는 다른 사람을 애먹이려는 정신으로 전도할 때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다음 질문을 각각 대답해보자.

2.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을 개인의 삶에서 경험하고 있는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에 대해 진실하고 정직하게 전할 수 있는가? 그대의 솔직한 답은 무엇인가?

*답: 오직 말씀과 기도로 그런 경지에 이르도록 간구하고 굴복하자. 각각 대답해보기 바란다.

3. 그대가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것은 어떤 경험이었는가? 그런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전반적인 신앙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가? 

*답: 날마다 그날 하루만 사는 것처럼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