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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최고의 충성을 그리스도에게(질문, 대답, 설명) 0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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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09-02 07:24 조회2,2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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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최고의 충성을 그리스도에게

(9월 9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50분)

 

연구 범위: 엡 6:1~9, 막 10:13~16, 골 3:21, 벧전 2:18~25, 고후 5:10, 골 3:24, 25.

 

기억절: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엡 6:9).

 

2018년, 워싱턴 DC에 있는 성경 박물관에서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끈 유물이 공개되었다. 

이 성경 요약본은 당시 서인도 제도라고 불렸던 카리브해와 대서양 연안의 노예들에게 반란을 선동할 만한 구절은 삭제하면서 신앙의 핵심을 가르치기 위해 1808년에 출판되었다. 문제가 될만한 구절을 삭제한 이 성경본에는 구약성경의 90%, 신약성경의 50%가 누락되어 성경의 1,189개 장 중 232개 장만 남아 있었다.

복음의 기록은 거의 사라지고 자주 오용되는 부분들을 포함하여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엡 6:5)와 같은 노예제도의 악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이와 관련해 현시대와 문화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도전은 엡 6:1~9을 성경 전체에 계시된 구원의 큰 그림의 맥락에서 읽는 것이다. 바울이 당시의 결함이 있는 사회 구조에 복음의 참뜻을 적용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학습 목표

- 깨닫기: 최고의 충성의 대상이신 예수께서는 모두를 참되고 동등하게 대하신다. 

- 느끼기: 매일의 일과와 인간관계 속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바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 행하기: 그리스도의 마음과 관점을 본받아 매일의 관계에서 최선의 열매를 맺는다. 

 

TMI 위로

2. 불완전한 부모님이지만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겠습니까?(엡 6:1~3)

*답: 순종과 공경으로 대해야 한다.

3. 어떻게 하면 자녀를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겠습니까?(갈 4:19) 

*답: 해산하는 수고로 말씀과 기도로 성령님의 능력을 간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4. 주인과 종에 관한 권면은 그 시대의 어떤 상황을 염두에 둔 것입니까?(6:5~9) 

*답: 그 시대의 노예제도를 염두에 둔 것이다.

5. 바울이 종들에게 관점의 획기적 전환을 권면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6:7) 

*답: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다.

6. 바울은 주인들에게 참 주인인 그리스도의 어떤 면을 부각하여 호소하였습니까?(엡 6:9)

*답: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와 봉사와 희생의 면이다. 

 

결론 

강자와 약자로 정의되는 관계들 속에서 하나님은 양자에게 올바른 관계의 원칙을 제시해 주셨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평가하시는 가치로 상대를 대하고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참된 충성의 대상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 차별하지 않으시는 참 주인 앞에서 모든 인류는 함께 섬기는 동역자요, 형제, 자매이다.  

 

9월 3일(일) 자녀들을 위한 권면

 

바울은 자녀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있으며, 구약의 어떤 부분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가?(엡 6:1~3, 마 18:1~5, 10, 막 10:13~16 참조).

[엡6:1~3]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마18:1~5,10]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막10:13~16]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답: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라고 조언한다. 십계명의 제5계명을 배경으로 말했다. 

 

자녀들에 대한 바울의 권면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번성했던 대도시 에베소의 가정 교회에서 그것을 읽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자녀"(ta tekna, 헬라어)라는 단어는 다양한 연령대를 지칭할 수 있다. 그리스인의 방식으로는 아버지가 60세가 될 때까지, 로마인의 방식에서는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자녀가 아버지의 권위 아래 있었다. 이 자녀들은 부모의 영향 아래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엡 6:4),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장성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 가운데의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즉 그리스도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호소한다(엡 5:22, 엡 6:4, 5, 7~9 비교). 바울은 우리에게 이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존중하고 예배의 능동적인 동반자로 받아들이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이 구절은 부모의 자녀 양육과 그리스도인 자녀 사역의 기초가 된다.

순종하라는 바울의 명령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부모의 명령이 "그리스도의 명령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순종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재림신도의 가정, 293).

바울은 그리스도인 신자들을 인도하는 원천으로 십계명의 높은 가치를 인정하여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을 인용하면서 자녀에 대한 권면을 마무리한다(엡 4:1~6:9, 엡 4:25, 28, 엡 5:3~14). 그는 인용문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로 시작한 뒤,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 다음 다시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리라'는 십계명의 인용으로 마무리한다. 

 다섯 번째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인간이 번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증거한다. 비록 불완전한 부모라 할지라도 그들을 공경하는 것은 건강과 안녕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교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인류가 번성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명령과 상충되지 않는다면 부모 공경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부가설명> 삼국지에서 유비는 형제는 수족과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을 확대하면 자녀는 부모의 수족이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바울은 부부는 일체라고 표현하면서 아무도 자기 몸을 해롭게 하지 않고 보양한다고 말한다. 이 말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면 자녀는 부모의 수족이니까 부모의 말을 순종하는 것은 당연하다. 팔다리는 뇌의 지시대로 움직인다.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머리되신 예수님과 그분의 몸인 교회와 교인들은 몸된 교회의 수족이라는 원리로 설명한다. 순종은 몸의 지체가 머리의 지시를 수행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한 것을 자기가 잘한 행위라고 자랑할 것이 없다. 지체기 때문에 머리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불편하고 불안하다. 그런 지체는 고장난 지체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이 머리라면 가정은 몸이요 자녀들은 몸의 지체들이다. 바울은 교회를 설명한 같은 원리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창조주의 뜻이었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자녀들이 이 원리를 깨달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9월 4일(월) 부모를 위한 권면

 

엡 6:4과 골 3:21을 비교해 보라. 골 3:21은 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는가?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골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답: 자녀들을 노엽게 하면 낙심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교훈과 운계로 양육해야 한다.

 

바울 시대의 유대 문서 시라크(Sirach)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조언한다. "아들을 사랑하는 자는 자주 채찍질할 것이다... 아이를 애지중지하면 장차 화근이 될 것이고, 함께 놀아 주면 당신을 슬프게 만들 것이다... 아들을 징계하고 그의 멍에를 무겁게 하여 그의 뻔뻔함으로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라"(시라크 30:1, 9, 13, NRSV).

바울의 권면의 어조는 상당히 다르다. 그는 먼저 아버지들에게 금해야 할 것을 말한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부정의 명령에 이어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긍정 명령이 이어진다(엡 6:4). 바울 시대에 아버지는 자녀에 대한 완전한 법적 권한을 가졌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소유물로 여겨졌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폭력적인 처벌을 가할 수 있었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어떤 면에서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권한은 노예에 대한 주인의 권리를 넘어섰다. 바울은 그러한 권력남용을 용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울은 가족 관계를 대담하게 밝히고 재구성하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 대한 최고의 충성이라는 맥락에서, 부모가 노를 발하면 자녀는 "주님의 교훈과 훈계"(엡 6:4)를 잘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기에 그리스도인 아버지들에게 힘의 사용에 대해 재고해 볼 것을 권유한다.

"아버지, 어머니여, 그대들은 가정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야 한다. 그대들은 순종을 요구하되 사나운 말로 하지 말고 친절하고 온유한 태도로 하라...“ 

"가정에서 명랑하라. 거룩하지 못한 노기를 일으킬 말은 모두 억제하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엡 6:4)는 말씀이 하늘의 분부이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부모의 가혹함이나 억압 혹은 자식의 불순종을 인정하시는 말씀은 하나도 없다. 가정 생활과 나라의 정부에 있어서 하나님의 법도는 무한한 사랑의 가슴에서 흘러나온다"(새자녀 지도법, 259).

 

<교훈> 자녀를 노엽게 말라는 권면은 자녀들이 주님의 교훈과 훈계를 받을 수 있도록 부모들이 하나님의 속성으로 자녀들을 대하라는 사랑의 권면이다. 

 

<부가설명> 자녀교육은 부모교육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자녀를 바르게 교육하여 올곧게 성장하게 하려는 부모는 자기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교육되고 올곧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말보다 삶이 본이 되어야 한다. 이번 미주 서부 야영회에서 건강강의 한 의사가 TTC라는 말을 했다. Tone Trump Contents라는 말의 첫 글자이다. 즉 말하는 억양이나 어조는 그 말의 내용을 묻어 버린다는 뜻이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표현하는 어조나 억양이 강경하고 불쾌하면 그 내용은 묻혀버리고 기억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진리처럼 여겨진다. 부모가 자녀에게 말할 때 온유와 겸손과 예의로 대하고 지시보다는 의논하고 명령보다는 협력을 구하는 모습으로 대한다면 자녀들이 부모의 교훈과 모본을 잘 익히게 될 것이다. 나도 자녀들이 자랄 때 이렇게 하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자녀를 양육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장성한 자녀들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올바르게 교육하지 못한 것 같은데 너희들이 잘 자라줘서 대단히 고맙다.’ 이 표현을 여러 번 한 것 같다. 자녀들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양육하는 방법과 태도가 그들을 그르칠 수 있을 것이다. 기도하며 성령님 지혜를 구하고 부모가 주님께 굴복하면서 기도와 말씀으로 양육하도록 간구하자.

 

 9월 5일(화) 바울 시대의 노예제도

 

다음 구절에서 종과 그 주인에게 주는 권면을 읽어 보라(엡 6:5–9, 골 3:22–4:1, 고전 7:20–24, 딤전 6:1, 2, 벧전 2:18~25). 이 권면을 어떻게 요약하겠는가?

[엡6:5~9]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골3:22~4:1]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고전7:20~24]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딤전6:1,2]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벧전2:18~25]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답: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께 순복하는 것과 같이 상전들에게 순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상전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돌보시는 것과 같이 자비와 공평으로 종들을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리스도인 노예와 그리스도인 주인이 에베소의 가정 교회에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리스도인 노예의 주인에 대한 바울의 권면을 듣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노예 제도는 후대의 신대륙의 노예 제도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 권면은 한 집단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도시에 사는 가정 노예들은 때로 교육의 기회가 있었고 건축가, 의사, 철학자 등으로 일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노예들은 자유를 얻지 못했지만 어떤 이에게는 특정 기간의 노역 후 자유가 주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차이를 반영하기 위해 최근 성경 번역본에서는 엡 6:5~8의 헬라어 둘로스(doulos)를 노예(slave)보다는 종신 종(Bondservant)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와 문화권 그리고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노예제도는 용납할 수 없는 악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무한하신 공의를 따라 노예 소유자를 심판하고 정죄하실 것이며, 이에 대해 우리는 감사할 수 있다.

이전에 노예였던 퍼브릴리우스 사이러스(Publilius Syrus)가 말한 "노예로 전락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아름답다"는 외침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모든 현실을 고려할 때, 특히 노예들이 주인의 위협 아래 살고 있기 때문에(엡 6:9) 둘로스를 "노예"(slave)로 번역하는 것이 선호된다(NIV, NRSV, 한국어본은 종으로 번역).

노예제도는 바울이 살던 시대에 항상 존재하던 악이었다. 바울은 사회 개혁가로서가 아니라 신자들에게 현실에 대처하는 방법을 권면하고, 신자 개인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이상을 제시하는 목회자로서 이 문제를 다루었으며, 이는 나중에 사회 전체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그의 비전은 로마 제국의 노예 해방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견해는 법적인 노예 해방보다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됨으로 새롭게 창조된 형제애에 기초한 성도들의 교제에 관한 것이었다... 바울에게 사회 혁명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지역 차원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인 가정 교회와 가정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스콧 맥나이트, Scot McKnight,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 2017, 10, 11).

 

<교훈> 교회 안에 공존하는 주인과 노예 사이의 현실에 대한 목회자 바울의 권면은 신자 개인의 변화를 넘어서고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부가설명> 성경은 기록할 당시 사회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오늘날 사람들의 시각으로 예수님을 사회혁명가나 그런 사상가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예수님은 전혀 그런 의도를 나타내지 않았다. 성경 기록도 그렇다. 바울은 당시 노예제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복음을 중심으로 노예제도에 관한 성경적 신앙원리를 설파하였다. 사회적 신분은 그대로 종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얻은 신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상전이나 종이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동등하다는 복음의 선언을 교회 안에서 실천하라고 권고한다. 사회적 신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신분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원리다. 사회적 신분상 종이 된 그리스도인은 사회적 신분상 상전이 된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으로 더욱 충실히 봉사하라고 권한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생명의 능력이며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상전과 종의 신분을 넘어서 형제가 된다. 이것은 복음이 세상에 던지는 혁명적 기별이다. 

 

9월 6일(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 자세한 지침을 주면서 그리스도인 종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엡 6:5~8)

[엡6:5~8]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답: 예수님께 순종하듯 마음을 다해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 알고 섬기라고 하였다. 그들의 순종의 초점이 예수님이라고 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종들에게 주인에게 순종하고 마음에서 나오는 최고의 봉사를 하라고 요청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종들에게 충성의 대상을 대체하라고 반복해서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노예 주인을 그리스도의 자리에 두거나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속한 충성을 주인에게 바쳐서는 안된다. 오히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훌륭한 봉사를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헌신과 충성의 대상을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신 그리스도로 대체해야 한다. 이 본질적인 대체를 장려하면서 바울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대한 변화된 관점, 즉 기독교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이 이 대체를 강조하는 몇 가지 방법을 주목해 보라. 

* 바울은 그들의 주인을 "육체의 상전"으로 제한하며 참되고 하늘에 계신 주님이 계심을 가리킨다(엡 6:5).

* 종들에게 "두려워하고 떨며 단일한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엡 6:5, 흠정역) 봉사하라고 한다. 

* 바울은 그리스도인 종들은 주인의 종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엡 6:6)으로서 진정한 봉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자신이 말하는 “대체”의 의미를 분명하게 밝힌다.

* 봉사를 수행할 때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우러난 봉사를 드려야 한다(엡 6:6).

* 바울은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7)는 말로 긍정적인 동기에서 우러난 봉사를 권한다. 

그리스도인 종은 진심 어린 봉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완전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 

 그들은 그분을 위해 일했고 그분으로부터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은 이 끔찍한 제도에 얽매인 사람들에게는 특히 매력적인 생각이다. 노예는 육체의 상전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거나 고난을 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벧전 2:19, 20). 그러나 믿는 종에게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엡 6:8) 그것을 아시고 확실한 보상을 주시는 주인이 있다.

 

<교훈> 바울은 육체의 상전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종들에게 진정한 충성의 대상인 그리스도와 그가 주실 상급을 바라보며 마음에서 우러난 봉사를 하도록 요구한다. 

 

<부가설명> 이 세상 사람들의 영원한 주인은 창조주이시며 구속 주이신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은 신분제도가 있다. 인도와 같은 제도는 아니지만, 사회생활에서 상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 관계가 바르게 서야 질서가 선다. 거기에는 장유관계도 있다. 장유에는 유서가 있다. 오륜에도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있다. 이런 것은 계급제도의 신분관계는 아니지만 생육하고 번성하는 인류에게는 주님이 재림하셔서 영원한 나라에서 진정한 형제 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이 세상에서는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평안히 살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천국 윤리를 생활하려니 대쟁투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세상에서도 하나님께 죄가 되지 않는 것을 지켜야 한다. 에녹은 이중 충성했다고 한다. 세상일에도 신앙적 원칙을 따라 충성했고 하나님 나라에도 충성했다. 에녹의 이런 삶은 그리스도인의 본이 된다. 신분이 상관이면 바울의 권고대로 더 놓은 하늘 상관이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예수님같은 모습으로 부하를 대하고 부하된 사람들은 예수님께 대하듯이 믿음으로 섬기면 피차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주님 참 감사합니다.

 

9월 7일(목) 종이 된 주인

 

바울이 종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 "종이나 자유인이나"(엡 6:8)에서 "자유인"이라는 단어는 주인을 가리키며, 바울은 심판대에서 종과 주인이 그리스도 앞에서 동등한 입장에 서있는 것을 상상하면서 주인들에 대한 권면으로 전환한다(고후 5:10, 골 3:24, 25 비교). 

 

만약 당신이 가정 교회에서 에베소서가 낭독되는 것을 듣고 있는 그리스도인 종의 주인이라면, 당신의 종들이 듣는 자리에서 당신 앞에 제시된 이 권면에 어떻게 반응하겠는가?(엡 6:9)

[엡6: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답: 이 질문은 각각 대답할 질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권면을 받아들여야 한다. 빌레몬이 그랬을 것이다.

 

바울은 노예를 "위협"하는 습관이 있는 “주인들”과 "차별하지 않으시"는(엡 6:9, 쉬운성경) "주인" 그리스도를 극명하게 대조하면서 종의 주인들을 지명해 권고하고 있다. 

바울이 "똑같이 종들에게 잘해주"(엡 6:9, 쉬운성경)라고 주인들에게 요청한 것은, 1세기 당시의 주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요구였을 것이다. 주인은 바울이 종들에게 요구한 것과 마찬가지로(엡 6:5-8)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심에 근거하여 선의의 행동으로 종을 대해야 한다. 바울은 구타(벧전 2:20), 성적 학대, 팔려가게 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극심한 노동, 굶주림, 족쇄, 낙인찍기, 심지어 죽음까지 다양한 형벌을 가하던 당시의 일반적인 관행인 “위협”을 중단하라고 주인에게 말한다. 이런 행위는 그들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할 것이다.

바울은 당시 그리스-로마 시대의 사회 구조를 넘어서는 두 가지 동기로 종의 주인들을 향한 자신의 명령을 뒷받침한다. (1) 주인과 그들이 종으로 간주하는 이들 모두가 같은 주인을 섬기는 종이다.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골 4:1).

 (2) 하늘의 주인은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심판한다. 하늘의 주인께서 당신의 종들을 모두 동등하게 대하시는 것처럼 이 땅의 종들의 주인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몬 1:15, 16 비교).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사용한 많은 표현은 그리스도인 종들에게 특별히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아들로 입양됨(엡 1:5), 구속(엡 1:7), 상속(엡 1:11, 14, 엡 3:6),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음(엡 2:6), "동일한 시민," "하나님의 권속"(엡 2:19, 엡 3:14, 15 비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엡 3:6, 엡 4:1~16)가 되는 것 등이다. 엡 6:5~9은 말하기(엡 4:25~32)와 성 윤리(엡 5:1~14)에 대한 권면을 포함하여 이 서신의 모든 가르침을 종과 주인 사이의 관계에 적용한다.

 

<교훈> 종과 주인이 동일한 심판대 앞에 선다는 사실은 차별이 없으신 진정한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고 종들에 대한 일반적인 악한 관행을 중단하게 한다. 

 

<부가설명>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여러 측면으로 나타낸다. 가장 많은 경우가 부자 관계다. 다음은 주종관계다. 또 주객 관계로 나타낸다. 예복 비유에서는 주객 관계, 포도원 농부 비유에서는 주종관계, 두 아들 비유에서는 부자 관계로 나타낸다. 또 왕과 백성의 관계로도 나타낸다. 이런 관계에서 항상 중심 사상은 충성이다. 세상에서도 주종관계는 충성이 요구된다. 그리스도인 종들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같은 마음으로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종으로 믿음을 행사해야 하고 그리스도인은 하늘 나라 백성으로서 우주의 통치자이신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하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다 같이 그리스도인이지만 사회적 신분으로 주종관계에 있는 사람이 종은 주인에게 충성하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되는 믿음의 삶이 되어야 하고 주인도 더 높은 상전이신 하나님께 종과 함께 충성하는 종으로 살아야 한다. 사도들은 다 자기를 주의 종이라고 표현했다. 이 종이라는 말이 ‘둘로스’인데 ‘노예’라는 말이다. 노예는 자기 의지와 의사(意思)가 없다. 주인의 의사가 곧 노예의 의사이며 주인의 의지가 곧 노예의 의지이다. 나는 강정 예배에서 기도할 때에 주님의 의식이 내게 무의식이 되어 생활되도록 해주시기를 기도한다. 주님의 의식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 말씀이 우리의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9월 8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바울이 전한, 같은 신자로서 자녀들을 존중하는 태도(엡 6:1~3)는 오늘날 세상에서 어린이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높인다. 아버지를 향한 바울의 권면(엡 6:4)은 부모의 책임을 생각하도록 한다. 종에 대한 바울의 권면(엡 6:5~8), 특히 주인에 대한 바울의 권면(엡 6:9)을 오늘날 적용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사회적 상황이 다르며 어떤 형태로든 노예제도는 심각한 악이기에 더 도전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영감을 받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오늘날에 어떻게 적용할지 생각해야 한다. 1세기 에베소의 신자들처럼, 우리에게는 복음의 가치를 우리의 관계 가운데 적용할 수 있는 특권과 책임이 있다. 그런 맥락 아래에서 아래의 질문들을 살펴보라.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자녀에 대한 사랑이 재림교인들에게 "주의 오심을 위해 준비된 백성"의 증거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눅 1:17, 말 4:6)

*답: 자녀를 주님의 자녀가 되도록 잘 양육하라는 권고다. 함께 하늘에 가야한다.

 

2. 바울의 자녀에 대한 명백한 존중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어린 시절에 폭력, 성적 학대, 고통을 경험한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돌봄을 베풀어야 할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아동기 부정적 경험” (https://ocfs.ny.gov/publications/Pub5222/OCFS-Pub5222-KO.pdf)이 미치는 심각한 영향에 대한 연구를 살펴볼 때, 이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답: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고 양육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성령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다.

 

3. 어린이에 대한 바울의 존중과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돌보심의 연장선상에서, 어린이들의 양육과 보호에 대한 교회의 책임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 어떤 제도와 절차가 마련되어야 하는가?

*답: 교회와 학교와 가정은 같은 사상 같은 사랑으로 어린이들을 양육하고 보호해야 한다. 제도와 절차보다 지도자의 마음과 태도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4. 노예와 주인에 대한 바울의 권고(엡 6:5~9)는 종종 직원과 고용주 사이의 관계에 적용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적절한가? 동시에 어떤 위험이 따르는가?

*답: 상하 관계라는 점에서는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주종관계로 착각하면 안 된다. 

 

5. “세계 노예지수”에 따르면 오늘날에도 4천만 명 이상이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노예제 폐지를 위해 헌신했던 영적 선조들의 후예요 자유인으로서, "그가 사슬을 끊으리니 종은 우리의 형제로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모든 억압이 그치네"([오 거룩한 밤]의 영문 가사: 편집자 주)라며 그리스도를 노래할 때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답: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진정한 복음을 깨닫게 하고 실천하게 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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