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지혜롭게 살라 -(핵심Q&A)+(예언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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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8-22 00:57 조회2,213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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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지혜(知慧)롭게 살라
(8월 2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11분)
<기억절(記憶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5~17).
<서언(緖言)>
이교도(異敎徒)들을 포함한 비(非)그리스도인들은 인생 삶의 가치(價値)를 ①.저속한 농담(弄談)이나, ②.술 취함이나, ③.연회(宴會)나 음행(淫行)을 인생의 큰 보물(寶物)로 여기는 삶이지만 이러한 삶은 무가치(無價値)한 삶이며 곧 죄 된 삶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숨겨진 진짜 보물(寶物)을 찾으라 권면하면서, 진노(震怒)한 자녀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善)함과 의(義)와 진리(眞理)”를 소중히 여기는 보물(寶物)을 붙잡으라고 말씀하면서, 성령은 우리가 인간의 뜻이 아닌 영적(靈的) 잠에서 깨어 변화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붙잡는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번 주 안교교과 제9과를 통하여 지혜롭게 사는 보물을 쟁취하시기 바랍니다.
(8월 20일 (日) <오히려 감사(感謝)가 있게 하라>
(Q)~바울은 어떤 의미(意味)에서 신자(信者)들이 "하나님을 본(本)받는 자"가 되라는 의도(意圖)나, 의미(意味)를 담고 있습니까? (엡 5:1~ 2)
(A)~이렇게 하시는 의도(意圖)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그분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計畫)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와 같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하려 하심이다. 그리스도와 같이 된다는 것은 순결하고, 더러움이 없고, 하나님이 온전히 받으실 만한 점도 없고, 주름도 없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한다. (원고 159, 1903).
(8월 21일 (月) <빛의 자녀(子女)들처럼 행(行)하라>
(Q)~바울은 왜 신자(信者)들에게 죄인(罪人)들의 "동반자(同伴者)" 또는 "동참자(同參者)"가 되지 말라고 권고(勸告)하는가? (엡 5:7~10)
(A)~어떤 행동(行動)을 할 때 짝이 되어 함께하는 사람을 동반자(同伴者)라 하고, 어떤 모임이나 일에 같이 참가(參加)하는 사람을 동참자(同參者)라 한다. 이러한 맥락(脈絡)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不順從)하며 추악(醜惡)한 죄에 빠져 하나님 나라를 상속(相續)할 수 없는 자들과 연합(聯合)하여 행동(行動)해서는 안 된다. 빛과 어두움은 양립(兩立)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이 함께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심판(審判) 때에 불순종의 아들들은 영원한 형벌(刑罰)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성도(聖徒)들이 불순종의 아들들의 헛된 말에 속한 그 죄악에 참여하게 되면 마땅히 그들과 함께 벌(罰)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어떠한 식(式)으로든지 그들과 함께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勸勉)하고 있다. (엡 5:7, 재림교주석)
요약(要約)하자면 세상의 교묘(巧妙)한 말에 속지 말고 빛의 자녀로 행하며 나 자신을 기쁘거나 즐겁게 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수님의 모본을 배우고 또한 따르기를 권면(勸勉)해주고 있다.
(8월 22일 (火) <잠자는 자(者)여, 깨어라>
(Q)~바울의 강력(强力)한 권고(勸告)로 “잠자는 자여 깨어라”는 권면(勸勉)은 신자(信者)들의 어떤 역할(役割)을 요구(要求)하는 것입니까? (엡 5:11~14)
(A)~바울은 (엡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參與)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責望)하라. 빛의 자녀들은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할 뿐만 아니라(엡5:9절)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두움에 참여(參與)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바울의 경고(警告)는 매우 적절한 것이다. 왜냐하면, 빛의 자녀들은 어두움의 세상 속에 살고 있어서 죄악(罪惡)된 생활에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단순히 ‘참예하지 말라’는 경고(警告)에서 그치지 않고 ‘책망(責望)하라’라는 강(强)한 경고(警告)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자녀로서 어두움에 속한 자들과 그들의 죄악을 책망(責望)하고 드러내야 하는 이유는 어둠에 속한 자들을 빛으로 인도(引導)하며 자신들을 죄악으로부터 지키기 위(爲)함이다. (고전 13:6).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빛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보여줌으로 열매 없는 어둠의 일을 드러내고 세상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8월 23일 (水) <기회(機會)를 잡아라>
(Q)~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行)할지를 자세(仔細)히 주의하여 “지혜(智慧) 없는 자(者)”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智慧) 있는 자(者)” 같이 하여 기도(祈禱)하고 분별(分別)하는 지혜(智慧)를 가지)라는 바울의 권고(勸告)를 생각해 보라는 의미(意味)는 무엇이며, 어리석게 행(行)하는 것과 "지혜(智慧)롭게" 행(行)하는 것의 차이점(差異點)은 무엇이고, 또한 시간을“아끼라”, 것은 무엇을 의미(意味)하는가? (엡 5:15~17
(A)~바울의 권고(勸告)와 훈계(訓戒)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사도(使徒)의 소망(所望)은 그들이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모든 교훈(敎訓)의 풍조(風潮)에 밀려 요동(搖動)치 않”고 모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長成)한 분량이 충만(充滿)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또한 세월(歲月)을 아끼라는 말씀은 문자적(文字的)으로 “자기를 위(爲)하여 시간의 기회(機會)를 사라.” 즉 기회를 활용(活用)하라는 뜻이며 위대(偉大)하고 고상(高尙)한 목적을 위해 매 순간을 활용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義務)요 특권(特權)이다. 세월을 아낀다는 것은 게으름이나 사소한 활동을 삼가는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단순히 악(惡)하지 않다고 해서 선(善)하다고 할 수 없다. 예수처럼, 사람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고(눅 2:49), 원수(怨讐)에게까지도(마 5:44) 선(善)한 일을 할 기회(機會)를 적극적(積極的)으로 찾아야 한다. (갈 6:10 참고).
<8월 24일 (木) <성령충만(聖靈充滿)한 예배(禮拜)>
(Q)~그리스도인의 생활(生活)은 예배(禮拜)와 찬양(讚揚)이 함께 하는 생활이다, 바울은 예배와 찬양(禮拜讚揚)에 대하여 어떤 권면(勸勉)을 하고 있습니까? (엡5:18~20절)
(A)~사도 바울은 예배(禮拜)와 찬미(讚美)에 대하여 권면(勸勉)하면서 술 취하지 말라는 경고(警告)를 한 다음에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한 성령충만(聖靈充滿)한 예배(禮拜)에 대하여 권면하는 이유는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인 이교도(異敎徒)들의 행위(行爲)를 보고 술 사용을 금지(禁止)하는 지혜서(智慧書)인 잠언(箴言)(잠 20:1절, 잠 23:29~35절)의 명령(命令)을 염두에 두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즉 술에 취(醉)하면 무례(無禮)함, 성적(性的)으로 노골적(露骨的)인 말, 무분별(無分別)함, 부도덕(不道德), 우상 숭배(偶像崇拜) 같은 악(惡)한 것들이 따라온다. (엡 5:3~14). 는 것이다. 즉 시(詩)와 찬송(讚頌)과 노래들은 성령충만의 결과로서 성도들의 기쁨을 나타낸다. 성도(聖徒)들의 기쁨은 모든 환경을 초월(超越)하며 지속적(持續的)이다. (요 4:14). 우리는 여기서 지혜로운 삶이란 아무리 어려운 환란(患亂) 속에서도 찬송(讚頌)이 끊이지 않는 기쁨의 생활로써 성령의 임재가 가득한 예배와 찬양에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한 권면이다.
*****<말미부록(末尾附錄)***********
⑴ <받은 심 직한 헌물(獻物)>
하나님은 존경하는 마음과 기쁨이 없는 정신으로 바쳐진 헌물을 받지 않으신다. 제물을 하나님이 받은 심 직한 향기 나는 제물이 되게 하는 것은 겸손과 감사와 공경하는 마음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물질을 다 바칠 수도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 마치 그들이 베푸는 호의 때문에 빚을 지신분같이 되도록 자만심이나 바리새인의 정신을 가지고 바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헌물을 받지 않으실 것이요, 완전히 멸시하실 것이다. (엡 5:1~2, 화잇주석)
⑵
우리 주의 상품을 가지고 부지런히 장사함으로써 우리의 곡간을 넉넉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이는 우리로 고통 중에 빠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게 하려 하심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주의 자비하신 뜻을 성취하는 주의 오른손이 된다 (원고 67, 1907).
⑶ <그리스도의 생애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獻物)이었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라고 바울은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선물로 주신 헌물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곧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 그분의 대표자가 된다는 것은 그의 품성의 향기를 풍기는 것, 곧 그분이 품고 있었던 순결한 생각들, 그분의 성화된 인간 생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들을 나타내는 것이다. (엡 5:1~2, 화잇주석)
⑷
이렇게 하시는 의도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그분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와 같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하려 하심이다. 그리스도와 같이 된다는 것은 순결하고, 더러움이 없고, 하나님이 온전히 받으실 만한 점도 없고, 주름도 없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한다. (원고 159, 1903).
⑸ 자신을 버리사.
그리스도가 자신을 버림으로써 사랑을 보여주셨고, 따라서 우리가 그보다 더 적은 사랑을 보여줄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이 매우 컸기에 그분은 자원해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다. 그분이 성육신하신 목적 중 하나는 자신과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것이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이다(고후 5:19).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엡 5:1~2, 재림교주석)
⑹ <향기(香氣)로운 제물(祭物)과 생축(牲畜)>
문자적으로 “달콤한 향기.” 아버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제물과 그 제물이 바쳐진 정신으로 인해 모두 기뻐하셨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유화시켜 화해시켜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참조 롬 5:10 주석). “향기로운”이라는 비유적 표현에 관해서는 고후 2:15 주석을 참조하라(참조 빌 4:18). (엡 5:1~2, 재림교주석)
⑺ <제물(祭物)과 생축(牲畜).>
그리스도의 사역과 희생은 성소 제도에 예시됐다. 그리스도가 자원해서 자신을 내주신 것도 고대 이스라엘의 의식에 예시됐다. “제물”이라는 단어는 피 흘림 없는 제물을, “생축”이라는 단어는 죽임당하는 제물을 나타낸다고 제안하며 구분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번역된 헬라어 단어에는 반드시 그런 구분이 함축돼 있지 않다. 바울은 그 구절을 시 40:6에서 차용했을 것이다. (엡 5:1~2, SDA 주석)
⑻
에베소 교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추악한 죄에 빠져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수 없는 자들과 연합하여 행동해서는 안 된다. 빛과 어두움은 양립(兩立)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이 함께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심판 때에 불순종의 아들들은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성도들이 불순종의 아들들의 헛된 말에 속한 그 죄악에 참여하게 되면 마땅히 그들과 함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어떠한 식으로든지 그들과 함께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하고 있다(Blaikie). (엡 5:7~10, 만나주석)
⑼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들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 상태인 어두움을 상기시키고 있다(2:1-3). 그들은 과거에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불신앙 상태에 있었으며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추종자였다(2:1, 2). 그러나 이제는 챰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1:9)로 말미암아 어두움의 권세로부터 건져냄을 받았으며 빛의 자녀가 되었다(골1:12, 13). 그러기에 에베소 교인들은 이제 ‘세상의 빛’(마 5:14)으로서 참빛이신 그리스도를 그들의 삶 가운데 드러내야만 한다(Hendriksen). 바울은 과거 이방인이었던 에베소 교인들의 생활과 현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함으로 그들이 생활이나 행위 면에서 불신자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함을 밝히고 있다. (엡 5:7~10, 만나주석)
⑽ <부끄러움>
그리스도인은 우아하고 고상하여 어떤 부끄러운 일들을 행하는 것은 고사하고 거론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개 악한 일과 그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고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솔직함이 특정한 때 권장되기는 해도, 정교한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무감각으로 죄를 자주 논의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다. 바울은 수치스러운 죄악들을 열거하고 질책했지만(3~5절), 독자가 저속하고 관능적인 욕구에 호소하는 짙은 색조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엡 5:11~14, 재림교주석)
⑾
(엡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參預))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빛의 자녀들은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할 뿐만 아니라(엡5:9절)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두움에 참여(參與)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바울의 경고(警告)는 매우 적절한 것이다. 왜냐하면, 빛의 자녀들은 어두움의 세상 속에 살고 있어서 죄악된 생활에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단순히 ‘참여하지 말라’는 경고(警告)에서 그치지 않고 ‘책망(責望)하라’라는 강(强)한 경고(警告)를 한다. ‘책망(責望)하라’의 헬라어 ‘엘렝케테’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혹자는 책망(責望)의 대상(對象)을 사람으로 생각하여 ‘납득시키다’ 또는 ‘꾸짖다’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Gnilka, Halter).
(2) 혹자(或者)는 책망의 대상을 어두움의 죄악으로 생각하여 ‘드러내어 폭로하다’, ‘고발하다’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incoln, Foulkes).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다(Wood).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자녀로서 어두움에 속한 자들과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고 드러내야 하는 이유는 어둠에 속한 자들을 빛으로 인도하며 자신들을 죄악으로부터 지키기 위함이다. (고전 13:6). (엡 5:11~14, 만나주석)
⑿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바울은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행위에 대해 3~5절에서 이미 서술하였다. 그들은 성적으로 방탕하며 탐욕이 가득 차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였다. ‘은밀히 행하는’은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행위가 심히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운 것임을 암시한다. (엡 5:11~14, 만나주석)
⒀
빛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이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죄악을 책망하며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드러낼 때, 빛의 열매들은 어두움에 속한 자들을 조명하여 어두움의 행위의 실체를 폭로하게 된다. 즉 빛의 자녀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맺는 열매를 통해서 어두움에 속한 자의 죄악을 드러냄으로 어두움에 속한 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행위의 실체를 보게 하고 빛에 대해 응답하게 한다. (Wood, Schlier).(엡 5:11~14, 만나주석)
⒁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비취시리라’의 헬라어 ‘에피파우세이’은 천체 즉 해와 달을 떠서 빛을 발하는 것을 표현하는데 사용된 것으로(LXX, 욥 25:5)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어두움 속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심을 뜻한다(요 1:9). 이것은 비그리스도인이 어두운 잠에서 깨어나 생명의 빛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탄생을 체험함을 보여준다(사 60:1, 행 12:6-11). 한편 본문은 어두움에서 빛으로의 변화가 인간 자신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짐을 시사한다(Hendriksen). (엡 5:11~14, 만나주석)
⒂
바울의 권고와 훈계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사도(使徒)의 소망(所望)은 그들이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고 모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교사회(異敎社會)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된 이들에게 “이방인(異邦人)이 그 마음의 허망(虛妄)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聰明)이 어두워지고….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엡 4:14, 13, 17, 18, 5:15, 16)고 탄원(歎願)하였다. (사도행적 470)
(16)
바울은 신도들에게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실 때를 바라보도록 격려하였다(엡 5:25, 27). (AA 470)
(17)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록된 이 기별들은 모든 사람이 연구해야 하고 때때로 반복함으로써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담겨 있다. 그 기별들 가운데는 실제적 경건이 요약되어 있고 모든 교회에서 따라야 할 원칙들이 놓여 있으며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이 설명되어 있다. (AA 470)
(18) (각 시대의 대쟁투 602)
시련의 날이 이를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생애의 법칙으로 삼은 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여름에는 상록수와 다른 나무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다. 그러나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상록수는 변함없이 남아 있지만 다른 나무들은 잎이 떨어져 그 가지가 벌거숭이가 된다. 이처럼 지금은 마음이 거짓된 신앙 고백 저들을 진정한 그리스도인과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구별이 분명히 지어질 때가 이미 절박해 있다. 반대가 일어나게 되면, 완고와 억압이 다시 기세를 떨치게 되면, 박해의 불길이 일어나게 되면, 반신반의의 위선적인 자들은 흔들리고 믿음을 버릴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반석과 같이 굳게 설 것이며, 그들의 믿음과 소망은 번영의 때보다 더욱 강하고 더욱 밝아질 것이다. (GC 602)
(19)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잠 3:13),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렘 17:8). (GC 602)
(20) (주님을 첫째로 높이자 35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4~16) (LHU 354)
(21) 사도 바울은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고후 6:14~18)이라며 우리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Con(대결) 69)
(22)
하나님의 아들이 사탄과의 격렬한 투쟁을 하는 동안 그 시험을 대항하여 승리한 것을 우리가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시험을 극복하는 일에서 행위의 중요성에 대해 더 정확한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 사탄은 만일 자신이 이 일에 실패할 때 모든 희망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탄이 성공한다면 그는 인류 전체에 대하여 승리를 얻게 되고 자신의 생명이 보존되며 자신의 왕국이 건설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Con 69)
(23) (가려뽑은 기별 3, 258)
그리스도께서 이적을 통하여 일하신 모든 것은 필수적이었으며 고통을 당하는 인류를 위하여 안식일에 해야 할 큰일이 있음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그러나 일상적인 일은 하지 말아야 하였다. 오락 추구, 공놀이, 수영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며 여호와께서 거룩하게 하신 거룩한 날에 대한 죄 된 무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그분의 능력을 드러내시고자 이적을 행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항상 고난을 겪고 고통을 당하는 인성 가운데 사단을 대항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 서신 252, 1906. (3 SM 258)
(24) (그분을 알기 위하여 240)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이러한 원수와 더불어 단독적으로 싸워 사단의 손아귀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 세상에 오셨다. 이 목적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그는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지금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을 갖추고 인간은 교활하게 속이는 원수에 대항하여 충성된 파수꾼으로서 자기 자신을 위하여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위대한 사도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엡 5:15)라고 권면했던 것처럼 영혼의 모든 통로를 지키고 예수 님을 참된 완전한 모범으로서 바라보라. 그리고 주님의 모범을 다만 그 가운데서 하나나 두 가지가 아니고 모든 점에 있어서 본받는 자가 돼라. 그때 우리는 어느 때나 또한 어떤 위급한 때에도 준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거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강력한 망대를 가지게 된다. 그는 영적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을 신속히 파악하고 또한 위험을 느끼는 그 감각은 하나님께 도움과 보호를 구하도록 그를 인도할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1.10.11). (TMK 240.4)
(25)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문자적으로 “자기를 위하여 시간의 기회를 사라.” 즉 기회를 활용하라는 뜻임(참조 골 4:5). 위대하고 고상한 목적을 위해 매 순간을 활용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요 특권이다. 세월을 아낀다는 것은 게으름이나 사소한 활동을 삼가는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단순히 악하지 않다고 해서 선하다고 할 수 없다. 예수처럼, 사람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고(눅 2:49), 원수에게까지도(마 5:44) 선한 일을 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갈 6:10).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예수는 세속의 상인이 업무를 처리할 때 보여 준 근면과 지혜를 빛의 자녀에게 모본으로 지적하셨다. (성경주석).
(26) <때가 악(惡)하니라.>
기회가 생기는 대로 모두 잡아야 할 필요성은, 편만한 도덕적인 악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서 봉사의 기회를 많이 빼앗아가는 병약함과 핍박과 정신 고통도 포함된 온갖 종류의 악에 인생이 어떻게 끊임없이 노출되는지 숙고한다면 분명해진다. (참조 전 12:1; 암 5:13).
” (엡 5:16, 재림교주석)
(27) <술 취(醉)하지 말라>
바울은 어둠과 지혜 없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했는데, 술 취함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거의 없다. 이 죄악은 성경에서 자주 정죄당한다(잠 20:1; 눅 21:34; 고전 5:11; 갈 5:21; 딤전 3:3). 바울은 술 취함을 식욕의 방종일 뿐 아니라 낭비와 선한 분별력을 희생하는 감정적인 흥분과 무모한 쾌락 추구를 칭송하는 사회악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의 이성을 빼앗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영혼의 타락과 하나님의 나라에 부적합함을 의미한다. (SDA성경주석 엡5:18)
(28)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충만해진 순결한 마음에서 나오는 찬양의 노래로 영광을 받으신다. 헌신적인 신자들이 모일 때에는, 그들의 대화가 다른 사람들의 불완전함에 대한 것이나, 불평과 원망의 냄새를 풍기는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온전하게 매는 띠인 사랑이 그들을 두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이, 형제들을 위한 애정과 동정과 존경의 말을 통하여 저절로 흘러나오게 된다. 하나님의 평안함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의 말은 헛되고 무용하고 경박한 것이 아니고, 피차 위로가 되고 덕을 세우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영감받은 사도들을 통하여 주어진 교훈에 순종할 것 같으면, 그들은 성경상 신앙을 빛나게 하고, 그들이 인기 없는 진리를 믿는 결과로 당하는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혹독한 시련과 많은 난관에서 스스로를 구원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슬픈 잘못이다. 그들의 시련 가운데 매우 많은 부분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므로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 항복하고, 그들 스스로를 원수의 싸움터에 두어서 마귀가 그들을 유혹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 권면과 교훈을 엄격하게 고수하고, 그분의 의로운 뜻을 알고 실천하기 위하여 경건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생기는 사소한 불평의 씨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느끼는 감사와, 마음속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평안은 그들의 마음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게 하고, 그들을 살리기 위하여 돌아가시기까지 그들을 사랑해 주신 귀하신 구주께 갚아야 할 사랑과 감사의 빚을 말로써 나타내게 해 준다. 구주께서 마음속에 거하는 자는 아무도, 마음을 하나님과 하늘로부터 떠나 경솔하고 경박한 사물로 향하게 하는 악기의 곡을 제시함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분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1T 509)
(29) <치료봉사(治療奉仕) (MH)246>
건강을 회복하거나 보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 말씀에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부자연스럽고 불건전한 자극제로 말미암아 생기는 흥분과 망각, 저급한 식욕과 정욕의 방종 등을 통하여는 참된 치료와 육체나 심령의 회복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환자들 가운데는 하나님도 소망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충족되지 못한 욕망, 병든 정욕, 그들 스스로 양심의 가책 등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장차 얻을 생명에 대한 희망도 없다. 환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그 환자들에게 천박하고 흥분적인 방종을 허용함으로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절대 생각하지 말라. 그러한 것들이 그들의 생애에 저주가 되어 왔다. 굶주리고 목마른 영혼들이 그런 것에서 만족을 얻고자 노력하는 동안 주림과 갈증은 계속될 것이다. 이기적 쾌락의 샘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속임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유쾌한 기분을 힘으로 오해한다. 그리하여 흥분이 끝나면 고무되었던 그들의 마음도 사라지고 그들은 불만과 낙담에 사로잡히게 된다. (MH 246.2)
(30) <시(詩)와 찬미(讚美)와 신령(神靈)한 노래들(엡5:19)>
이 세 가지 찬양 유형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는 악기 반주에 맞춰 부른 구약의 시편이고, 찬미는 신자가 작곡하여 전 회중이 부르는 하나님을 향한 찬미인 반면, 신령한 노래 혹은 송시(頌詩)는 좀 더 보편적이고 명상적인 특성을 지닌 것으로 반주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참조 골 3:16 주석; 마 26:30; 행 4:24~30; 고전 14:26; 약 5:13). 찬양은 예배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엡5:19) SDA 성경주석)
(31) <감사(感謝)하며>
“감사와 찬양의 정신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더욱 잘 증진시켜 주는 것은 없다.”(치료봉사, 251). 찬양의 정신은 죄악과 낙담을 극복하는 해독제이다. 모든 일이 최악의 상태에 있을 때라도 그리스도인은 최선의 상태에 있으며, 따라서 기뻐할 수 있다. 감사의 정신은 기쁨이나 슬픔, 승리(勝利)나 패배(敗北)를 능가(凌駕)하는데, 이는 감사가 그리스도인 품성(稟性)에서 영원히 지속(持續)되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참조 골 3:17; 살전 5:18).(엡5:20 SDA 성경주석) <아멘>
<끝까지 정독(精讀)하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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