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함-(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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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8-07 00:44 조회2,568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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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7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聯合)함
(8월 12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54분)
<기억절(記憶節)>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 12).
<서언(緖言)>
바울은 교회를 영적(靈的)인 요점(要點)으로 사람의 몸을 인용(引用)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시고, 몸을 형성(形成)하고 있는 지체(肢體)들은 각기 다른 기능(機能)을 하고 있으며 이 기능들을 설명하기로 각기 다른 개인(個人)들의 은사(恩賜)들로 각 지체(肢體)의 기능을 온전히 발휘(發揮)할 때 건강한 몸이 되는 것처럼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각양(各樣) 받은 은사(恩賜)인 기능들이 성령(聖靈)의 은혜로 연합(聯合)할 때 바르게 성장(成長)할 수 있으며 분열(分裂)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말씀이 사도 바울이 전(傳)해주고자 하는 맥(脈)이다.
8월 6일(일) 성령(聖靈)의 하나 되게 하신 것
(Q)~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4장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가 부르신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엡 4:1)라고 권면(勸勉)한다. 그 합당한 것을 실천(實踐)하라고 한 3가지 덕목(德目)은 어떤 것들이며, 이러한 덕목(德目)들을 실천(實踐)하기 위해서 제시(提示)한 중요한 사항은 무엇입니까? (엡 4:1~16)
(A)~⑴.에베소 교인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인 (엡4장) 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것은 교회는 다양하고 각기 다른 성정(性情)을 가지고 있는바 하나로 연합(聯合)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제시하면서. 그 실천 방법은 먼저 그리스도 예수 님을 머리로 생각하고 각자는 몸의 지체로 생각하라! 그리고 몸의 지체는 성령으로 연합할 “겸손”과 “온유”와 “인내” 등 하나 되므로 이끄는 덕목으로 이것을 실천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⑵.교회의 일체성(一體性)과 다양성(多樣性) 앞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하나님과 성도들의 연합과 인간 상호 간의 연합이라고 말한 바울은 (엡4장) 에서 그 연합의 비밀이 또한 교회의 생활 원리가 되어 모든 교회가 하나 되는 놀라운 은총을 창조해 낸다고 말씀하고 있다. 바을은 엡 4장에서 교회가 하나 되는 요소로 ①.하나 되게 하는 교회의 덕목들 ②.하나 됨의 원리 ③. 유기적인 교회의 직분. ④.그리스도를 향하는 한 가지 목표 등을 내세운다.
8월 7일(월) 예수 안에서 함께 하나로
(Q)~바울은 교회의 연합이라는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어떤 일곱 가지 "하나"를 제시하고 있는가? 바울이 이 목록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엡 4:4~6)
(A)~⑴.바울은 일체성(一體性)에 대한 교훈(敎訓)으로 교회는 ①.한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감화(感化)하심으로 하나의 유기체가 되며 (롬 8:9, 11절 고전 12:13 절) ②.한 분 주님이신 예수 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고 침례(浸禮) 받으며(고전 6:13~25절 20절 7장 23절 12장 3절 5절; 빌2:11절 계19:16절 ③.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하나의 가정(家庭)이다. (신 6:24)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새 창조물(創造物)인 교회가 하나 될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存在論的) 당위성(當爲性)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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⑵.바울이 나열한 일곱 가지(몸, 성령, 소망, 주님, 믿음, 침례, 하나님)를 하나의 목적은 성령(聖靈)의 역사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교회의 연합(聯合)은 영적(靈的)인 현실이며 성부(聖父)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被造物)이 예수 님 안에서 하나의 생명과 하나의 사상(思想)으로 통일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여 교회가 이렇게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8월 8일(화) 높임 받은 그리스도, 선물(膳物)을 주시는 분
(Q)~바울이 (엡4:7~10)에서 (시편 68:18)을 인용했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이 구절(句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A)~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땅 아래 낮은 곳으로 육체를 입고 내려오신 분입니다. 그리고는 고난과 죽임을 당하실 정도로 가장 치욕스러운 자리까지 내려오신 분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시고 하늘로 오르신 분이지요. 그런 과정을 거치신 이유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만물의 머리로써 모든 것을 회복시키고 통일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은혜는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聖徒)들에게 주시는 선물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8월 9일(수) 높임 받으신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膳物)
(Q)~바울은 (시편 68:18절)을 인용하여 부활(復活)하시고 높임을 받으시고 다스리시는 예수님이 높은 곳에서 그분의 백성에게 선물(膳物)을 주신다고 묘사했다. 높여진 예수님은 어떤 "선물(膳物)"을 무엇을 위해서 주셨는가? (엡 4:11~13)
(A)~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어떤 은혜(恩惠)를 주셨는지에 대해 (엡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使徒)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先知者)로, 어떤 사람은 복음(福音) 전(傳)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牧師)와 교사(敎師)로 삼으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님은 성도(聖徒)들을 온전하게 하려고 은사(恩賜)를 주며, 재림교회는 마지막 때에도 영적은사(靈的恩賜)를 주심으로 성도(聖徒)들을 온전하게 하실 것을 믿고 신뢰한다..
8월 10일(목)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남
(Q)~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야 된다고 하신 말씀은 무슨 의미(意味)입니까? (엡 4:13~14)
(A)~바울은 교회의 직분자(職分者)에 대한 유형(類型)을 나열한 후 그들의 섬김을 통하여 성도(聖徒)들이 잘 구비(具備)되게 함으로써 봉사(奉仕)의 일과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를 잘 세워가는 일을 잘 감당하도록 권면한 바 있다. 그는 이처럼 교회의 중심 구성원(構成員)이라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봉사와 교회를 잘 세워가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 아니라 자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바울에 따르면 자라지 못한 상태(狀態)를 상징(象徵)하는 것으로 어린아이를 들고, 그 어린아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로 어린아이는 쉽게 말을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거짓 가르침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리(眞理)라고 말하면 거저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본 것이다. (둘째)로 어린아이는 자기를 통제(統制)할 수 있는 능력이 어른보다는 약(弱)해서 간사(奸詐)한 유혹(誘惑)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있을 때는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奸詐)한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되고, 결국은 온갖 세상의 어리석은 교훈(敎訓)에 바람처럼 밀려 요동(搖動)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는 성도(聖徒)로 이루어진 공동체(共同體)이지만, 이 공동체는 죽은 것과 같은 무생물(無生物)이 아니라 자라가고 성장해 가는 성령(聖靈)공동체인 유기체(有機體)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膳物)의 은혜(恩惠)(은사(恩賜))를 받은 성도들의 다양성(多樣性)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장성(長成)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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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부록(末尾附錄)>
⑴.
(에베소 4장)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매우 분명하고 단순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진리를 붙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교회 내의 통일을 유지함으로써 신자들이 세상에 건전한 신앙 경험을 나타내게 하려고 그가 지정하신 방법들이 명백하게 선포되었다 (원고 67, 1907).
⑵.
지조 있는 신앙(에베소서 4:1)
위의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합당하게 되기 위하여 행해야 하는 일반성을 띤 교훈이다. 바울은 그때 로마에서 죄수로 갇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주를 위하여" 또는 주 안에서 갇힌 자가 되었다. 이 말씀은 할 수 있는 한 주를 위한 자라는 뜻을 의미한다. 이에 대하여서는 3장 1절을 참조하라. 바울은 자기가 갇힌 바 된 것을 반복하여 언급한다. 이는 그가 자기의 갇힌 바 된 것을 부끄러워 아니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은 자기가 행악자로서 고난을 겪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가 갇힌 것을 반복하여 말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그들에게 쓴 내용을 부드럽게 또 설득력 있는 상태에서 추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복음의 교훈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도 복음을 가치 있게 여기고 진지한 경의 표하고 충성스럽게 지킬 것을 확신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된 한 가련한 죄수의 간구를 읽을 수 있다. 그는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나 나(1절)라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것과 또 어떤 자리로 너희를 부르셨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열심히 구하노니(내게 가련한 조수들이 흔히 그들의 친구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같은 무슨 위문품으로 보낸다거나 또 나를 석방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말고) 선한 그리스도인임을 증거하고 너희 신앙과 부르심에 합당하도록 살라. 하나님의 은혜가 너희에게 가져다준 복된 삶에 부끄럽지 않게 거기에 일치하고 적절하게 행하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이교도의 자리에서 기독교도로 부리신 그 부름에 합당하게 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에 의하여 자기들이 불림을 받은 복음과 그것을 위하여 자기들이 불림을 받은 영광에 합당하도록 살아야 함을 명심하자. 이 둘이 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나라와 영광을 마음에 두고 그 나라와 영광의 상속자답게 행해야만 한다..(엡 4:1~16, 재림교주석)
⑶.겸손.
헬라어 타페이노프로쉬네(tapeino-phrosune-), “마음의 겸손”(참조 행 20:19 주석). “겸손”이라는 개념은 비그리스도인들에게 크게 존중받지 못했다. 성경 외 기록에서 타페이노프로쉬네 및 관련 단어들은 정신적 굴욕이라는 뜻이었지만, 기독교는 이를 이타적인 겸손이라는 뜻으로 높였다. 주님은 자기의 추종자들이 메어야 할 멍에와 관련하여 자신을 “마음이 겸손”하다고 묘사하셨다(마 11:29). 모든 겸손으로 행하라는 명령은 회심하지 않은 심령에게는 힘든 일인데, 이는 그것이 인간 정신의 모든 본성적 욕구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⑷.온유.
헬라어 프라오테스(praote-s, 참조 갈 5:23; 동족 형용사 프라우스[prau..s]에 대해서는 마 5:5 주석을 참조하라).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입힌 상처를 수용하며 생애의 시련을 감수한다. 이 특성은 교회가 연합하는 데 필수이며, 그것 없이는 곧 분열이 생긴다. 온유, 곧 도발을 받았으면서도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 것은 겸손이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⑸.오래 참음.
헬라어 마크로쒸미아(makro-thumia, 참조 롬 2:4; 갈 5:22 주석).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유를 불문하고 인내하는 것은 오래 참음의 본질이다. 그것은 천사와 사람들이 악한 반역을 자행한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이 드러내 보이신 신령한 특성이며, 성령의 열매로서 사람에게 주어진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인내를 묘사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롬 2:4; 딤전 1:16; 벧후 3:15). (엡 4:1~16, 재림교주석)
⑹.성령이 하나이니.
이는 (엡4:3절)에 언급된 성령, 니고데모에게 권해진 거듭남의 능력인 성령(요 3:5)과 동일한 성령이다. 그리스도인 생애의 모든 은사와 열매와 은혜는 신자들의 생애와 그들의 모임인 교회에 성령의 내재를 통해 주어진다. 성령은 사람의 삶 속에 있는 분열, 곧 너무 많은 영혼을 전장(戰場)이나 진배없는 상태로 전락시키는 내면의 불화를 쫓아내신다. 불화는 성령이 부재하신다는 분명한 징표이다.
⑺.부르심의.
즉 밀접히 연관된 듯이 부르심에 속한다는 뜻임. 그들에게는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소망이 있다.
⑻.한 소망.
소망은 하나님이 사람들의 심령에 호소하여 생겼는데, 이는 구원과 주의 나타남에 대한 소망이다(딛 2:13). 이것은 평안과 기쁨, 용기와 환희의 본질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왕국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것에 대한 소망이다. 성령은 이 소망을 유효하게 하시며(참조 엡 1:13, 14), 이 소망은 신자들을 연합시킴으로 진실로 “산 소망”(벧전 1:3)이 된다. 그런 소망은 필연적으로 변화된 생애로 인도하는데, 이는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자기를 깨끗하게 하”(요일 3:3)기 때문이다.
⑼.(엡4:5) 주도 하나이요.
여기에 충성해야 할 최고의 대상이 있다. 같은 주님에게 완전히 복종하고 충성하는 자들은 서로 적의를 품지 않는다. 그분은 창조와 재창조를 통해 주가 되셨기에 모든 권위가 그분에게 달려 있다. 그분에게 전적으로 굴복하라고 요구받지만 그런 굴복이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큰 기쁨일 수 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일 2:3).
⑽.(믿음도 하나이요.
바울은 여기서 교의 체계로서의 신앙보다는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사적인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참조 롬 1:15 주석). 구원의 유일한 수단은 곧 믿음이다(참조 갈 2:16 주석). 유대인과 이방인은 모두 같은 경로를 통해(롬 3:29, 30) “몸”(엡 4:4)에 참여한다.
⑾.침례도 하나이요.
물에 잠그는 침례는 죽음과 부활을 적절하게 상징한다. 또한, 정결과 분리도 의미하며,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했다는 공표이기도 하다. 이처럼 가시적인 교회에 입문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본받아 함께 자라게 된다(롬 6:3~5)..
⑿.(엡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공통으로 모시는 아버지는 모든 연합의 근원이다. 인간의 심령으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실은 하나님이 신뢰할 수 있는 아버지요, 사람의 친구라는 사실이다. 각 시대마다 사람들은 세상이 무정하게 보이기에 거기서 돌아설 수 있는 누군가를 열망했다.
⒀.(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이는 “포로를 포로들의 무리에게로 이끌어”라는 뜻임이 분명하다. 시편에서 이것은 이스라엘 왕에게 사로잡힌 적군을 가리킬 것이다. 여기서는 죽음에 사로잡혔던 자들 중에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을 때 함께 살아난 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마 27:51~53; 참조 초기문집, 184, 189, 190; 시대의 소망, 786). 죽음의 사슬은 깨졌고, 사단의 포로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었다.
⒁.땅 아랫곳.
이 구절은 땅 자체, 즉 “아랫곳”과 동격인 “땅”을 가리키거나, 혹은 그리스도의 영이 죽었을 때 갔던 곳으로 묘사된 “음부”(hade-s[하데스], 참조 마 11:23 주석)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행 2:31; 참조 제10권, 512). 후자의 해석에 따르면 이 구절은 특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葬事)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으시는 것은 바로 이런 수치 때문이었다(빌 2:5~11). 그런 경험을 맛봄으로 인해 그분은 인생의 온갖 부침(浮沈)과 심지어 죽음까지도 잘 아는 이해심 있고 유능한 대제사장이 되셨다(히 2:14~18; 7:25~27).
⒂.모든 하늘 위에.
아마 높임 받음의 정도를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칠층천”이라는 말을 썼고, 바울도 셋째 하늘을 언급했다(고후 12:2).
(16).만물(萬物)을 충만(充滿)케.
사도가 여기서 그리스도의 편재성을 이야기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사람이었을 때 그리스도는 인간성의 한계를 감수하셨지만, 지금은 무한한 능력과 영광 가운데서 자신의 은사를 부여하고 자신의 은혜를 부어 주는 위치에 계시며, 세상의 빛과 의의 태양으로서 생명력 있는 자신의 빛을 모든 어두운 곳에 비취고 계신다는 뜻이다. 반면에 사도가 여기서 몸의 머리, 즉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1:23)이라는 의미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그리스도에 관해 말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사람이 아는 모든 복은 그분에게서 나온다.
(17).사도(使徒).
참조 행 1:2; 고전 12:28 주석. 바울은 사도가 되도록 사람들에게 특정 은사가 주어졌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교회에 바친다고 말한 것이다. 교회는 사역에 있어서 자신의 역할에 잘 준비된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롬 12:6~8과 비교하라.
(18).선지자(先知者).
참조 창 20:7; 마 11:9; 고전 12:10 주석. 선지자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을 상술하고 설명하는 자였다. 선지자는 엡 2:20; 3:5에서도 사도와 나란히 언급된다. 앞날을 예고(forefelling)한다는 개념은 이 단어의 의미에 핵심적인 것이 아니고, 선지자의 모든 말에서 예고적(predic-tive) 요소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행 15:32; 고전 14:3). 예언의 은사는 신약 시대의 교회를 세우는 데 긴요했으며, 남은 교회에 약속된 길잡이이다(계 19:10).
(19).복음(福音) 전(傳)하는 자.
헬라어 유앙겔리스타이(eu-aggelistai). 동사 유앙겔리조(euaggelizo-)와 동계어이며 “복음 전파자”라는 뜻임(참조 행 8:4 주석). 유앙겔리스타이는 특정 지역에 예속되지 않고, 이곳저곳에 증거가 됐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사도의 권위 전부를 행사하지 않았던 것 같다(행 21:8; 딤후 4:5). “복음 전하는 자는” 주로 이방인에게 초점을 맞춰 사역했던 반면 목사와 교사는 지역 교회를 섬겼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여기서 감독과 집사와 그 외 다른 직분을 왜 언급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는 여기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행정보다는 가르침을 위해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는 특징이 있는 자들에 관해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직분들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았다.
(20).목사(牧師)와 교사(敎師).
헬라어 본문에서 이 구절의 구조에는 바울이 한 직분의 두 측면을 말하려는 의도가 나타나 있다. 효과적인 사역은 교육 목회이다. 사역의 목양하는 기능은 (요 21:16; 행 20:28, 29; 벧전 5:2, 3) 등에, 가르치는 측면은 (행 13:1; 롬 12:7; 딤전 3:2절)'과 기타 여러 구절에 제시돼 있다. 주님이야말로 양 떼를 치고 가르치는 위대한 목사 겸 교사셨다.
(21).(엡4:12) 온전케 하며.
헬라어 카타르티스모스(katartismos), “준비시킴”, “온전케 함.” 동사 카타르티조(katartizo-)가 (마 4:21)에는 그물을 깁는다는 뜻으로, (갈 6:1)에는 잘못한 자를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은사는 성도를 “기워서” 연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문맥에 나타나듯이, “온전케 하는 것”에는 조직적인 봉사와 교회의 치리가 포함된다.
(22).봉사(奉仕)의 일.
혹은 “봉사의 업무”, “섬김의 업무”라는 뜻으로 교회 안의 모든 봉사와 섬김을 포함함. 교회 직원들은 양 떼에게 상전 행세를 하지 말고 자신을 스스로 종으로 여겨야만 한다. 이것이 은사가 주어지는 직접적인 목적이다.
(23).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시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하늘 왕을 묘사하기 위하여 수많은 포로를 데리고 개선하는 정복 군주의 모습을 비유로 들고 있다. 여기서는 언약궤를 지고 올라가는 것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될 수도 있다(삼하 6:17). 바울은 시인의 이 비유를 그리스도의 승천에 적용했다(앱 4:8). (본교성경주석)
(24).
선물을 인간에게서…받으시니
하나님 편에서는 받는 것이 곧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은 받기 위하여 주신다. “사랑하시는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생명이 만물에게로 흘러나간다. 또한, 아들을 통하여 그것이 찬양과 기쁨의 봉사로 사랑의 조수처럼 만물의 대 근원이신 분께로 다시 돌아온다.”(시대의 소망, 21).
(25)
(엡4:9) 그리스도는 왕으로 승천하심(시 24:7-10; 47:5, 6; 68:17, 18; 엡 4:8)—(시 47:5, 6; 68:17, 18인용)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습을 한 하나님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는 성도들의 왕으로서 승천하셨다. 그의 승천은 그의 고상한 품성에 합당한 것이었다. 그는 전쟁하고 있는 강력한 정복자로서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가신 것이다. 천군들이 호위하고, 하늘의 노래와 환호 소리와 찬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승천하셨다. (6BC 1053)
(26).
(엡4:1) 합당하게 행하여
(참조 엡 2:2 주석; 엡 2:10; 5:8, 15; 골 1:10). 부르심에 완전히 합당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지도를 계속 받을 수는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합당하기 때문에 부르시지 않았는데, 이는 합당함은 부름을 받은 다음에 생기기 때문이다. 자기의 가치에 의존한다면 그 누구도 지금껏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탕자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감당치 못하겠다고 부르짖으므로 모든 회개한 죄인들의 죄의 자각을 표현한 것이다(눅 15:19). 한때 외국인이요 외인이었으나, 이제는 먼저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과 한 몸으로 연합하여 약속을 받아들인 에베소 교인들은 그런 은혜로운 변화에 걸맞은 가시적인 증거들을 드러내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길로 행한다는 것은 외면의 행위만 드러내는 데 관심을 쏟는 것을 넘어서서, 행위의 배후에서 동기를 부여하는 내면의 상태와 태도에 관련된 것이다
(본교성경주석)
(27).
배우고 실천해야 할 교훈
에베소서 4장 전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배우고 실천하기를 바라시는 교훈이다(원고 55, 1903). (6BC 1117)
(28).
통일의 방법들이 설명됨
에베소서 4장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매우 분명하고 단순하게 나타나 있으므로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진리를 붙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교회 내의 통일을 유지함으로써 신자들이 세상에 건전한 신앙 경험을 나타내게 하려고 그가 지정하신 방법들이 명백하게 선포되었다 (원고 67, 1907). (6BC 1117)
(29).
TDG 154.2
주님께서는 우리 중에 어떤 사람도 사업에 대한 부담을 혼자 짊어지도록 하시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각기 다른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을 한데 연합시키셔서 함께 의논하며 서로를 돕도록 하셨다. 그와 같이함으로 경험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경험과 능력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肢OS)들로서 피차의 관계에 대하여 고린도와 에베소 인들에게 주신 교훈을 매우 주의 깊이 연구해야 한다. 엣슨아, 너는 네가 하는 일에 있어서 각 일꾼을 하나님의 사업과 관계하고 있는 다른 일꾼들을 지원해야 하는 관계에 있음을 기억하도록 하라. 너는 너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로 그 사업에 참여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너는 남의 의견에 반대된다고 하여 너의 생각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봉사사업에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커다란 전체 중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혜를 구해야 하며, 섬기는 것이 무엇이며 영혼을 지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지치고 낙담 될 때 구주께 나아가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간의 판단에 의존하지 말라. 나는 네 뜻과 네 길을 포기하는 법과 하나님께서 당신의 조력자로 삼으사 그들을 통하여 네가 도움을 받도록 계획하신 사람들로부터 이르러 오는 빛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위로를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나아가며 그분을 굳게 붙들어라. 그리고 너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시킬 수 있도록 그분께 오래 머물러라. 너무나 바빠서 기도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는 사랑의 그늘을 지나쳐 버린다. 혹 멈추더라도 거룩한 경내(境內)에는 잠깐 동안 머물 뿐이요 그분의 권면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거룩하신 교사와 더불어 앉아 머무를 시간이 없다. 무거운 짐을 진 채 그들은 일터로 돌아가 버린다(서신 80.1902). (TDG 154)(오늘도 하나님과 같이 154)
(30).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엡 4:1). (TMK 128)
(31).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부과된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어야 할 의무가 있다. 십자가는 그것을 높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서신, 406, 1906). (TMK 174) (그분을 알기 위하여)
(32).
배우고 실천해야 할 교훈
에베소서 4장 전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배우고 실천하기를 바라시는 교훈이다(원고 55, 1903).
(33).
통일의 방법들이 설명됨
에베소 4장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매우 분명하고 단순하게 나타나 있으므로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진리를 붙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교회 내의 통일을 유지함으로써 신자들이 세상에 건전한 신앙 경험을 나타내게 하려고 그가 지정하신 방법들이 명백하게 선포되었다 (원고 67, 1907).
(35)
은혜란 무엇인가? (엡 1:7; 2:7, 8; 롬 3:24; 딛 2:11)
주님은 우리의 타락한 상태를 보신다. 우리에게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그분이 우리 영혼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은혜와 평화를 주셨다. 은혜란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고 잃어버린 바 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죄인들이라는 그 사실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서 우리를 제외하는 대신에 우리에게 그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하여서 구원받게 하신다(사인즈 1893.6.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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