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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기-제4과-하나님이 우리를 구원 하시는 방법-(핵심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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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7-16 21:23 조회1,2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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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救援)하시는 방법(方法)

                                (7월 22일 (안) / 일몰: 오후 7시 49분)


<기억절(記憶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因)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엡 2:4, 5).


<서언(緖言)>

사탄에게 속고 기만(欺瞞)당하고 육신(肉身)의 욕망(欲望)과 세속(世俗)에 미혹(迷惑)되어 어둠 속에 있던 본질상(本質上) 진노(震怒)의 자녀로서 멸망(滅亡) 당할 수밖에 없는 죄인을 하나님의 은혜(恩惠)로 이제는 미래(未來)의 빛나는 영광(榮光)까지 인도(引導)하기 위하여 구원자(救援者) 예수 님께서 십자가(十字架)의 죽음과 부활(復活)과 높이 들리심을 겪으셨다. 이에 하나님의 은혜로 신자(信者)들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과정(過程)에 동참(同參)하게 되는 것은 어떠한 행위(行爲)나 자격(資格)이나 돈으로 지불하여 그 공로로 구원(救援)받는 것이 전혀 아니고 100%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에 감사함으로 반응하여 그분에게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자녀가 되자.


7월 16일 (日) 죽었던 자요. 사탄에게 속은 자 


(Q)~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사단에게 속고 또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는” 에베소 교인들의 이전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구원(救援)에 관한 복(福)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恩惠)와 창조(創造)에 대하여 온전히 이해(理解)하게 된다면 하나님께 찬양(讚揚)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바울의 기별을 요약(要約)해보세요. (엡 2:1~10절)


(A)~바울의 편지(便紙)를 받는 수신인(受信人)들의 과거(過去)의 삶은 죽음으로 특징(特徵)지어진다. 즉 “죽었던”은 신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靈的)이며 도덕적(道德的)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을 수여(受與)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斷切)을 시사(示唆)하는 말씀이며, “허물”은 문자적으로 “정로(正路)에서 떨어지다”라는 의미로 부주의(不注意)하여 진리에서 떠나는 것이나 잘못된 경향성(傾向性)을 가리키며, 죄(罪)는 문자적으로는 “과녁에서 벗어난다.”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제시(提示)하신 생(生)의 목표를 정확히 맞추지 못한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이러한 일들은 “사탄에게 속은 자”들의 결과(結果)이며, 이 둘은(죄(罪)와 허물) 동의어(同義語)로 “너희의 허물과 죄를 통해서”라는 의미로 과거의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에 있던 에베소 교인들의 이전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救援)의 복을 베푸심에 하나님의 은혜(恩惠)와 창조를 찬양한다는 의미(意味)이다.


요약해본다면 (1) 우리는 허물로 죽었고 (2)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으로 (3)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救援)을 얻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믿음과 순종으로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한다.


7월 17일 (月) 육신(肉身)의 욕망(欲望)에 미혹(迷惑)되어  


(Q)~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便紙)에서 그의 수신자(受信者)들이 한때 육신(肉身)의 욕망(欲望)에 미혹(迷惑)되어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本質上) 진노(震怒)의 자녀(子女)"(엡 2:3)였다고 말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엡 2:1~3) 


(A)~바울은 이제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과거(過去)에 하나님께 불순종(不順從)하고 ‘육체(肉體)의 욕심(慾心)을 따라 지냈음’을 상기(想起)시키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分離)되어 인간의 이기적(利己的)인 욕구(慾求)에 따라 사는 삶을 가리킨다. 이는 성령 안에서의 삶과 대조적(對照的)으로 육체의 열매를 내는 삶이요(갈 5:19, 20),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삶이다. (롬 8:8). 즉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본질상(本質上)’ 진노의 대상(對象)이었다. ‘본질상’은 태어나면서부터 있던 천성적(天性的)인 것을 나타낸다. 본 절(節)의 ‘진노(震怒)’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며(God’s anger, JB), ‘하나님의 진노’는 모든 죄악(罪惡)에 대해 심판(審判)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絶對的)인 거룩 성을 증거(證據)가 된다(롬 1:18, 2:5, 8). 즉 육체(肉體)와 마음의 원(願)하는 것을 따라 죄 된 본성(本性)으로 기울어진 옛사람의 삶을 벗고 새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은 속사람을 변화(變化)시키시는 하나님의 개입(介入)하심을 말씀하고 있다.


 상반절(上半節)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聯合)으로 새 생명을 소유(所有)하였음을 언급(言及)한 바울은 본문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부언(附言)한다. 즉 죄로 인해 진노를 받아 마땅한 죄인에 대한 구원(救援)은 하나님의 주도적(主導的)인 행위인 은혜(恩惠)로 된 것임을 밝히시며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慈悲)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구원(救援)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榮光)으로 풍성한 은혜를 드러내기 위함이다(엡1:3-14) 결론(結論)은 그리스도인들을 구원(救援)하신 하나님의 은혜(恩惠) 목적(目的)은 다가오는 미래(未來)에 자신의 은혜(恩惠)의 광대(廣大)함을 드러내기 위(爲)함이다.


7월 18일 (火)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復活), 승천(昇天), 하늘에 앉음  


(Q)~하나님의 은혜(恩惠)를 인지(認知)하지 못하고 사탄에게 속아 살아왔던 이전(以前)의 삶을 지배(支配)했던 것들이 “이제”는 그리스도에 의해 어떤 것으로 바뀌었습니까?. (엡 2:4~6)


(A)~하나님께서 복음(福音)을 전(傳)함으로 비추는 빛에다 생명과 불멸(不滅)을 가져오시고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罪)에서 구원(救援)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그리스도도 타락(墮落)한 사람들을 영적(靈的)인 죽음에서 일으키사 그분의 생명으로 그들에게 활기(活氣)를 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소망(所望)과 기쁨으로 채우신다. (원고 89, 1903). 

즉 그리스도의 삶에 일어난 부활(復活)과 승천(昇天)과 높여짐은 우주(宇宙)를 변하게 했고 “이제는” 우리가 구주(救主) 예수 님으로 인(因)하여 ”새로운 존재가 되어 예수 님과 함께 신자(信者)들의 현실을 바꾸어 그들을 지배(支配)하던 사탄의 권세(權勢)를 이기게 했다. 



7월 19일 (水) 이제는, 은혜(恩惠)로 영원(永遠)히 복(福) 받음 


(Q)~우리의 삶을 바꾸어 주는 은혜(恩惠)란 무엇이며, 하나님의 은혜(恩惠)는 어디까지 미칩니까?. (엡 1:7, 엡3:8)


(A)~은혜(恩惠)란 사랑을 받을 가치(價値)가 없고 잃어버린 바 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의미(意味)한다. 우리가 죄인(罪人)들이라는 그 사실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慈悲)에서 우리를 제외(除外)시키는 대신에 우리에게 그의 사랑을 적극적(積極的)으로 활동(活動)하게 하여서 구원(救援)받게 하신다. (사인즈 1893.6.5). (엡 4:7, 화잇주석)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창세전(創世前)부터 영원까지 이르는 데 큰 목적(目的)을 위한 것으로 우리를 향(向)한 하나님의 위대(偉大)한 관대(寬待)하심은 한량(限量)없고 영원(永遠)하며 우주적(宇宙的)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증거(證據)이다.


7월 20일 (木)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救援)을 받음  


(Q)~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편지(便紙)쓰기를 시작할 때의 이들은 영적(靈的)으로 죽어있는 상태였다. 그들 안에는 생명이나 가치(價値)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엡2:1) 그들은 죄에 완전히 정복(征服)당했고((엡2:1) 사탄의 권세(權勢)와 자신의 정욕(情欲)과 정신적 미혹(迷惑)에 이끌려 그들은 인생의 주도권(主導權)을 상실(喪失)했다. (엡2:2~3). 이와 같은 죄인이 구속(救贖)받는 본질적(本質的)인 변화(變化)는 어떤 것에 기초(基礎)해 이루어집니까? (엡 2:8~9) 


(A)~사탄의 권세(權勢)와 미혹하(迷惑下)에서와 자신의 정욕(情欲)과 세속(世俗)에 이끌려 멸망(滅亡) 받을 수밖에 없던 죄인들을 하나님의 은혜(恩惠)로 신(神)의 성품(性稟)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따라서 정욕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극복할 수가 있도록 우리에게 이길 힘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계명(誡命)들을 순종(順從)하는 자들은 의(義)로운 품성을 이룰 수가 있다. 그러나 그분의 명령(命令)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갖고있는 성질(性質)과 같은 모습으로 품성(稟性)이 형성(形成)될 것이다. (편지 44, 1903).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救贖)함을 받은 자들은 이 놀라운 여정(旅程)에 참여하여 하늘까지 올라가는 길을 걷게 된 것은 나의 자질(資質)과 관계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자비(慈悲)와 사랑의 선물(膳物)이다. 이에 감사와 찬양을 그분에게 돌립시다.



*********<말미부록(末尾附錄)>***********

(1).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함으로 비추는 빛에다 생명과 불멸을 가져오시고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그리스도도 타락한 사람들을 영적인 죽음에서 일으키사 그분의 생명으로 그들에게 활기를 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소망과 기쁨으로 채우신다. (원고 89, 1903).

(2).

인간이 구속의 경륜을 깨닫는 데는 무궁한 세월이 소요될 것이다. 구속의 경륜이 한줄 한줄 공개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드러날 것이다. (원고 21, 1895).

(3).

죄인이 회심한 후에 생활에 나타나는 커다란 변화는 어떤 인간적 선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적인 자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원고 36, 1904).

(4).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엡2:8)

하나님 편에서는 은혜를 베푸시고, 인간 편에서는 믿음을 행사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 자신을 그분에게 위탁하는 행위를 통해서이며, 믿음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통로일 뿐이다. (엡 2:8, 재림교주석)

(5).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그분과 함께 살고, 함께 다스리며 함께 후사가 되고,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 그분의 영광에 참여한다(참조 롬 6:3~8; 8:17; 갈 2:20). 구원은 교훈이나 권고가 아니라, 신자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는 활기찬 생명에 다가가므로 이뤄진다. (엡 2:5, 재림교주석)

(6).

하나님의 사랑은 동정심에 그치지 않고 자비로운 행동으로 옮겨지며 절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으며(참조 롬 5:8 주석), 우리에 대한 사랑을 절대 그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에게 구원의 사역을 하도록 동기를 유발하게 시킨 것은 바로 이 사랑이었다(요 3:16). 사랑은 그분의 품성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이며(요일 4:8),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그 사랑의 최고 표현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가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사랑하신다. 인류를 위한 그분의 위대한 사역은 단순히 자비로운 행동이나 관대한 선심이 아니라 애정과 사랑의 행위였다. (엡 2:4, 재림교주석)

(7).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바울은 본 절에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과거의 삶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들의 과거의 삶은 죽음으로 특징지어진다. ‘죽었던’은 신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며 도덕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을 수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을 시사한다. (Foulkes, Bruce, Wood). 

이런 사상은 초대 그리스도인들만 갖고 있던 독특한 것은 아니다. 구약 특히 시편에서도 질병, 죄, 소외, 포로 상태에 있는 삶이나 적들이 지배하고 있는 삶은 죽음의 영역에 있는 삶으로 표현되었다. (시 13:1-3, 30:3, 31:12, 88:3-6, 143:3, 호 13:14, 욘 2:6).

 ‘허물’은 문자적으로 ‘정로’(正路)에서 떨어지다’라는 의미로 부주의하여 진리에서 떠나는 것이나 잘못된 경향성을 가리키며, ‘죄’는 문자적으로 ‘과녁에서 벗어난다.’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생의 목표를 정확히 맞추지 못한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결국, 이 둘은 동의어이다(Barth, Lincoln, Foulkes). 또한 ‘허물과 죄로’라고 번역된 헬라어 ‘토이스 파라프토마신 카이타이스 하마르티아이스’은 여격으로 ‘너희의 허물과 죄를 통해서’라는 의미이다. 이 여격은 죽음의 원인, 도구, 영역 그리고 결과를 나타낸다(Barth, Lincoln).

(8).

죽었던. (엡2:1)

사람에게는 사회적 부적응이나 괴로운 강박관념보다 더 심각한 고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는 육신의 죽음과 매우 유사하다. 육신의 죽음에는 성장과 활력에 필수적인 생명의 본질이 없는데, 이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의 상태와 똑같다. (엡 5:14; 요 6:53; 요일 3:14; 5:12; 계3:1). (엡 2:1, 재림교주석)

(9).

회개한 죄인들로 선한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본분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 받은 자니"(10절) 라고 하였다. 본문의 말씀은 모든 것이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영적인 유익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고 말한 것은 그가 여기서 죄인들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뜻으로 말한 것 같다. 즉 새 인간으로뿐만 아니라 성도로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새로운 인간은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피조물의 창조자이시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시고 고난받은 것을 힘입어서라는 말이다. 그의 복된 성령의 영향력과 역사하심에 의한 것임을 의미한다. 이 목적은 "선한 일을 위하여서이다"(10절). 앞에서 신적인 은혜에로의 변화에 대하여 말하면서 행위를 배제하게 시켰던 사도는 이 말 때문에 선한 행위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 위하여 비록 이런 변화가 행위의 공로에 힘입은 것은 없다고 하지만(우리는 하나님의 지으신 바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를 통하여 선한 일을 하도록 계획하시고 예비하여 두셨음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는 말씀은 우리로 선한 일에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때문에 우리를 지으셨다는 말씀이다. 은혜로 하나님께서 선한 뜻을 세우신 것은 그들로 선한 일에 힘쓰게 하려는 뜻에서이셨다. 또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라는 말은 이미 그가 전에 이 일에 대해 선포하고 약속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미리 우리를 준비해 두셨다"라는 말로도 번역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아는 축복과 성령의 도움을 얻는 축복을 우리에게 내리심에 의하여, 또 우리 안에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심으로 이 일은 준비하셨다는 뜻이 되겠다. 이는 "우리도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며"(10절) 또는 하나님께서 본보기를 보이심으로 또한 우리를 거룩한 가운데 보존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이다. (엡 2:1~10, 매튜헨리)

(10).

이로써 죽었던 우리가 살아났다. (엡2:1)

우리는 죄의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고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영적 생활의 원리가 심어지게 되었다. 영혼 안에 거하는 은혜는 영혼 안에서는 하나의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죽음이 지각력을 없애고 인간의 모든 능력과 재능을 봉인해 버리는 것처럼 죄인 상태는 선한 것은 무엇이고 막아 버린다. 반면에 은혜는 모든 것을 열고 영혼을 넓혀 준다. 중생한 죄인이 살아있는 영혼이 됨을 명심하자.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서 거룩한 삶을 살아간다. 그는 율법을 깨닫고 살며 용서와 의롭다 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죄의 문책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생긴 결과이다. 우리가 살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그러므로 "내가 살았으므로 너희도 살리라"라고 하였다. (엡 2:1~10, 매튜헨리)

(11).

회개하지 않은 영혼은 죄와 허물로 죽는다는 사실이다. 

죄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다. 죄와 허물이란 모든 종류의 죄를 나타내는 말로 마음과 생활 속에서 짓는 습관적이고 실제적인 죄들을 나타내는 말로 마음과 생활 속에서 짓는 습관적이고 실제적인 죄를 의미하는 말이다. 생활의 죄가 되는 영혼의 죽음을 나타낸다. 죄가 성행하는 곳에는 모든 영적인 생활이 잠들고 만다. 죄인들은 죽은 상태에 있는 자들이다. 즉 영적 생활의 원칙이 빠져 있고 영적 생활의 능력이 결핍된 상태에 처해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그들은 사형 선고를 받은 죄인이 죽은 자라고 불리는 것과 같이 율법 안에서 죽은 것이다.

(12).

죄의 상태는 곧 이 세상에 순종하는 상태를 말한다는 사실이다(2절). 

바울은 첫 절에서 죄인들의 내면적인 상태를 설명하고 본 절에서는 그들의 외적인 상태를 설명하였다. 그 가운데서라는 말은 죄와 허물 가운데서라는 말이며 그때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라는 말은 너희가 세상에 속한 인간들이 보통 행하는 것과 같이 그런 방법으로 행동하며 살아왔다는 말씀이다.

(13).

우리는 본래 죄와 사탄의 노예라는 사실이다. 

죄와 허물 가운데서 살며 이 세상의 길을 좇는 자들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행하는 자들이다. 사탄과 사탄의 권세 잡은 자들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태복음 12장 24, 26절을 보라. 변절한 천사들의 군단은 하나의 우두머리 아래 한 세력으로 단결하여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다른 곳에서 "흑암의 권세들"이라고 복수로 부른 것을 여기서는 단수로 취급하였다. 공중 사탄의 왕국이 위치한 곳이라고 해석된다. 공중에는 영들이 가득 차 있고 거기서 그들이 세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사탄은 공중의 낮은 지역에서(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서) 권세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탄은 그곳에서 쉽게 인간들을 유혹하며 그가 할 수 있는 한 세상에 대하여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자 한다. 그러나 "만물 위에 계시며 교회의 머리가 되신" 분께서 사탄을 정복하시고 사슬에 매어 놓은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와 기쁨이 된다. 그러나 사악한 인간들은 사탄의 노예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탄을 따라 행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대단한 약탈자의 뜻과 즐거워하는 바를 따라서 살며 행동한다. 그들의 삶의 길은 사탄의 암시대로 따르는 것이요, 사탄의 유혹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탄에게 예속되어 있고 그의 뜻을 따라 노예처럼 이끌려 산다. 그런 까닭에 사탄을 이 세상의 신이요 "불순종의 아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불린다. "불순종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길을 택하고 악마를 섬기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 가운데서 사탄은 권세와 영향력을 갖고 역사한다. 성령께서 순종하는 영혼 가운데서 신으로 역사하는 것과 같이 사탄의 영은 사악한 인간들에게 악한 일로 역사하고 있다. 또 앞으로도 역사할 것이다. 또한, 그는 이 세상이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으로 축복을 받았을 때부터 역사하여 왔다. 바울은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다"라고 추가하여 말한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그들도 마찬가지로 본래 비참하고 슬픈 상태 안에서 살아왔으며 회개하지 않은 이방인들 만큼 악하고 죄 된 상태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그들은 죄 된 상태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 준다.

(14).

우리는 본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부패한 욕정을 따라서 살아왔다는 사실이다(3절).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라고 했는데 이는 인간들이 육체와 마음의 욕망을 따라서 살아왔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이 하라고 권고한다(고후 7:1). 육체와 마음의 요구를 따라 행하는 것은 더 높고 숭고한 영혼의 권세 안에서 또는 그 권세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죄와 악덕도 포함된다. 우리는 자신을 타락하게 하는 모든 죄를 지으면서 살아왔다. 육적인 마음은 인간을 사악한 욕망의 완전한 노예가 되게 한다. "육체의 욕심을 이루는 것"이란(3절) 말씀은 이러한 욕망의 효력과 이러한 욕망에 스스로 굴종하는 사람들에게 이 욕망이 지닌 능력을 의미한다.

(15).

우리도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라는 사실이다.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도 그러하였다. 어떤 인간이나 본성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 습관이나 모방 때문에뿐만 아니라 그가 존재하기 시작할 때부터 본디 성향과 욕망이 같으므로 같은 것이다. 모든 인간은 본래 불순종의 자녀들이므로 또한 본래 진노의 자녀들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사악한 자들에게 진노하신다. 우리의 처한 상태와 삶의 과정은 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은 영원한 진노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죄인들이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와 그의 영광의 상속자가 되도록 하는 은혜를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무슨 까닭인가? 바울은 죄인들의 비참한 상태를 본문에서 설명하고 우리가 영광을 바랄 수 있는 이유를 다음 절에서 추구해 나간다. (엡 2:1~5, 매튜헨리)

(16)

모든 약속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히 10:23)

약속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느냐 하는 것은 그 약속을 한 사람의 진실성 여부에 따라 평가된다. 많은 사람이 약속하고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 약속을 믿는 사람의 마음을 우롱한다. 그런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상한 갈대를 의지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이 하신 약속의 배후에 계신다. 그는 항상 그의 언약을 마음에 갖고 계시며 그의 진리는 각 세대에 미친다(원고 23, 1899).

(17).

구속(救贖)의 사업은 완성될 것이다. 죄가 많던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하여진다. 사단이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한 바로 이 땅, 지구 자체가 속량함을 받을 뿐 아니라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 죄의 저주 아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창조물 가운데 오점(汚點)이 되었던 이 작은 세계는 하나님의 우주 안에 있는 다른 모든 세계보다 더욱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이곳,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으로 거하셨고 영광의 왕께서 사셨고 고생하시고 돌아가신 이 땅에서 그가 만물을 새롭게 하실 때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저희 하나님이 돼”(계21:3)실 것이다. 그리하여 무궁한 세대를 통하여 구속받은 자들이 주의 빛 가운데 다닐 때 그들은 그분의 말할 수 없는 선물(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마 1:23)을 주신 것에 대하여 그분을 찬송할 것이다. (DA 26)

(18).

그대의 영혼이 하나님을 사모(思慕)할 때에 그대는 그분의 은혜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를 더욱더 발견할 것이다. 그대가 이 부를 깊이 생각할 때에 그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며, 구주의 희생 공로, 그분의 의의 보호, 그분 지혜의 충만, 아버지 앞에 그대를 “점도 없고 흠도 없이” 나타내실 그분의 능력을 나타낼 것이다(벧후 3:14). (AA 사도행적 567)

(19).

각 시대를 통하여 대쟁투가 계속되도록 용납된 것은 무슨 연고였을까? 반역의 시초에 사단의 존재를 없애 버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악을 취급하시는 데 있어서 공의로우심을 온 우주로 확신케 하여 죄가 영원한 정죄를 받게 하려 하심이었다. 구속의 경륜에는 영원토록 연구할지라도 다 알 수 없는 높이와 깊이가 있고, 천사들도 살펴보고자 원하는 경이로움이 있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도 오직 구속(救贖)을 당한 자만이 자기의 경험을 통하여 죄와의 실질적인 투쟁을 아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여 천사들도 경험하지 못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이니, 어찌 그들에게 구속의 과학에 대한 증언이 없을 것인가? 그들은 과연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에게 있어서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이겠는가? (Ed 308)

(20).

무궁토록 공부할 주제(엡 1:6 엡2:7 고전 13:12 참조)

인간이 구속(救贖)의 경륜을 깨닫는 데는 무궁한 세월이 소요될 것이다. 구속(救贖)의 경륜이 한줄 한줄 공개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드러날 것이다(원고 21, 189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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