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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 결정의 순간 -(핵심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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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4-03 16:55 조회1,3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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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결정(決定)의 순간(瞬間)

                                          (4월 8일 (안) / 일몰: 오후 19시 01분)


<서언(緖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의 백성에게 경고(警告)의 말씀을 하셨다. 

즉 ⑴.홍수(洪水)에 대한 경고(警告)(창6:7)며 ⑵.예수님의 초림(初臨)(다니엘 9:24~27)과 ⑶.예수님의 재림 전 심판(再臨前審判)(다니엘7:9~10, 8:14)과 그리고 ⑷.예수님의 재림 전 사건(再臨前事件)(계시록 12~14장)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時代)마다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와 같이 “세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이며, 우리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예수님의 의(義)를 신뢰하도록 이끄시는 사랑의 부르심으로, 지금이 우리 자신의 일생에 영원한 결과가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순간임을 깨닫고, 지금 이순간이 마지막 위기(危機)에서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에서 지금순간이 바로 준비해야 할 때라는 점을 명심(銘心)하자.


(04월02일) (日)  <최종적(最終的)인 선택(選擇)>


(Q)~타락(墮落)하고 반역적(叛逆的)인 세상에 대한 예수님의 마지막 자비(慈悲)의 기별(奇別)은 무엇이며, 세천사의 기별을 남은 자손에게 주는 의미(意味)와 최종적(最終的)인 선택(選擇)은 (마태복음24:14, 계시록 14:6절)


(A)~죄로 정죄(定罪)당하고 그 영향력에 결박(結縛)된 죄인들을 구원(救援)하시는 그리스도의 의(義)에 대한 요한계시록의 세천사의 기별은 모든 민족이 복음(福音)을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남은 자손”을 통하여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때 세상의 끝이 온다고 하셨다. 즉 (마태복음 24:14절)에 주어진 “이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傳播)되리니”라는 예수의 약속(約束)은 (요한계시록 14:6절)에 복음이 “모든 나라와 족속(族屬)과 방언(方言)과 백성에게” “남은 자손(계 14:6)”이 세 천사의 외침으로 모든 민족에게 전파(傳播)될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더 이상 변경(變更)할 수 없는 선택을 선고(宣告)는 마지막 큰 날에 결정(決定)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작은 일에서 예수님을 따를지 혹은 거역(拒逆)할지에 대해 선택(選擇)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04월03일) (月)  <인자(人子)의 돌아오심>


(Q)~재림(再臨)하시는 예수님을 묘사(描寫)하는 데 사용된 칭호(稱號)는 무엇이며, 예수님이 가장 즐겨 사용하신 자신의 호칭(呼稱)은 어떤 의미(意味)를 담고 있습니까? (계시록 14:14, 막 14:62)


(A)~예수님은 복음서(福音書)에서 자신을 언급(言及)하기 위해 "인자(人子)"라는 용어(用語)를 82회 사용하셨다. 인자(人子)라는 용어는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동일시(同一視)하는 애정(哀情)을 표현하신 것으로 사람들에게 구원(救援)의 손길을 펴시는 분이 바로 사람들의 편(徧)이라는 의미(意味)로 우리를 이해(理解)하시고 우리들이 겪는 모든 유혹(誘惑)이나 시련(試鍊)들을 비롯해서 모든 인간들이 겪는 일들을 경험(經驗)하시며 그와 같은 모든 것들을 이겨내신 구세주(救世主)이시기에 우리를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해 오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 “인자(人子)”라는 칭호(稱號)를 즐겨 사용하신 것이며 이는 예수님의 사랑이 담긴 표현이자 칭호이신 것으로 이제 그분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심판(審判)의 주님이심에 감사하지 않으십니까?


○.인자(人子)사람의 아들, 

구약(舊約)에서는 일반적인 사람(시 8:4), 하나님과 대비(對備)되는 인간을 의미하는 경우(민 23:19; 욥 25:6), 또는 선지자 등에게 사용되었는데, 특별히 주목(注目)할 일은 메시야의 출현(出現)에 사용되었다는 점이다(단 7:13~14). 신약(新約)에서는 예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인자(人子)라고 하셨는데, 복음서(福音書)에만 81회 기록되었다. (사전, 인자)


(04월04일) (火)  <하늘의 심판(審判)>


(Q)~심판(審判)과 심판의 중심에 왜 인자(人子)가 나오며 인자(人子)는 어떤 상황(狀況)에서 무엇을 위해 나타납니까? (요한계시록 14:14과 사도행전 1:9~11, 다니엘 7:9,10,13,14절)참조 


(A)~심판대(審判臺) 앞에서 심판받는 자(者)들을 돕기 위하여 심판의 중심에는 인자(人子)가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 계시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恐怖)에 사로 잡혀있는 자(者)들에게 그분은 모든 인자(人子)에게 인자(人子)로서 심판(審判)하신다. 즉 그분을 믿는 인자(人子)들에게는 영생(永生)을 주신다는 위안(慰安)과 용기(勇氣)를 주시기 위(爲)함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定罪)함이 없나니”(로마서8:1) 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永生)의 보장(保障)의 말씀인 것이다. 


(04월05일) (水)  <승자(勝者)의 면류관(冕旒冠)>


(Q)~농부(農夫)에게는 추수(秋收)때를 위(爲)하여 열심히 농사(農事)를 짓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혼(靈魂)의 농사도 그 목적이 분명하다. 이를 예수님께서 농사(農事)의 비유(比喩)를 이용하신다. 열매가 익어 마지막에 거두게 될 승리(勝利), 그 면류관(冕旒冠)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요한계시록 14:15절, 마가복음 4:26~29절)


(A)~신약(新約)에서 예수님은 반복적(反復的)으로 농사(農事)에서 나온 예(例)를 들어 말씀하셨다. 그분은 그의 백성의 삶에서 복음(福音)의 씨가 자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무르익은 추수(秋收)의 상징(象徵)을 사용하셨다. 예수께서는 승리자(勝利者)의 면류관(冕旒冠)을 쓰시고 곡식(穀食)을 거두러, 즉 은혜(恩惠)로 변화(變化)되고 성화(聖化)의 열매를 맺은 성도(聖徒)들을 데리러 이 땅에 다시 오신다. 생명(生命)의 황금(黃金) 면류관(冕旒冠)이며 승리자(勝利者)의 면류관을 주시러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 우리는 결함(缺陷)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럼에도 “발전의 단계마다 우리의 생애가 완전하게 될 수 있다”는 (실물, 65) 엘렌 화잇의 말씀을 기억하며 매일 주님의 뜻을 준행하는 마음으로 생활한다면 주님은 그것을 예수님의 보혈(寶血)의 공로(功勞)와 이름으로 완전함으로 덮으실 것이다.  <마라나타>


(04월06일) (木)  <모든 씨앗은 열매를 맺음>


(Q)~(요한계시록 14:17~20절)의 “하나님의 진노(震怒)의 큰 포도주(葡萄酒) 틀”이라는 표현(表現)은 무엇을 의미(意味)하는가? 


(A)~(요한계시록 14:17~20, 계 14:10, 15:1, 16:1)에는 두 가지 수확(收穫)이 있다. 금(金)빛 곡식(穀食)의 추수는 의인(義人)을 상징하고 피투성이 포도(葡萄)의 추수(秋收)는 불의(不義)한 자(者)나 잃어버린 자를 상징(象徵)한다. 두 수확(收穫)모두 완전히 익었고 뿌려진 모든 씨앗은 완전히 성숙(成熟)했다.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신 후에 그들의 열매를 판단하실 것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求)하는 삶을 산 자(者)들은 그날에 무한(無限)히 값진 열매의 그 판단(判斷)이 온 우주(宇宙)앞에 공개(公開)되는 것을 온 우주가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남은 자손”의 “남은 자”가 되는 길은 늘 기도(祈禱)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맡기고 준행(遵行)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말미부록(末尾附錄)**************









제2과 결정(決定)의 순간(瞬間)

                                    (4월 8일 (안) / 일몰: 오후 19시 01분)


<기억절(記憶節)>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人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金) 면류관(冕旒冠)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銳利)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聖殿)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向)하여 큰 음성(音聲)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穀食)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 이다 하니” (계 14:14~15).


<서언(緖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의 백성에게 경고(警告)의 말씀을 하셨다. 

즉 ⑴.홍수(洪水)에 대한 경고(警告)(창6:7)며 ⑵.예수님의 초림(初臨)(다니엘 9:24~27)과 ⑶.예수님의 재림 전 심판(再臨前審判)(다니엘7:9~10, 8:14)과 그리고 ⑷.예수님의 재림 전 사건(再臨前事件)(계시록 12~14장)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時代)마다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와 같이 “세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이며, 우리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예수님의 의(義)를 신뢰하도록 이끄시는 사랑의 부르심으로, 지금이 우리 자신의 일생에 영원한 결과가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순간임을 깨닫고, 지금 이순간이 마지막 위기(危機)에서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에서 지금순간이 바로 준비해야 할 때라는 점을 명심(銘心)하자.


4월 2일(일) 최종적(最終的)인 선택(選擇) 


(Q)~타락(墮落)하고 반역적(叛逆的)인 세상에 대한 예수님의 마지막 자비(慈悲)의 기별(奇別)은 무엇이며, 세천사의 기별을 남은 자손에게 주는 의미(意味)와 최종적(最終的)인 선택(選擇)은 (마태복음24:14, 계시록 14:6절)


(A)~죄로 정죄(定罪)당하고 그 영향력에 결박(結縛)된 죄인들을 구원(救援)하시는 그리스도의 의(義)에 대한 요한계시록의 세천사의 기별은 모든 민족이 복음(福音)을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남은 자손”을 통하여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때 세상의 끝이 온다고 하셨다. 즉 (마태복음 24:14절)에 주어진 “이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傳播)되리니”라는 예수의 약속(約束)은 (요한계시록 14:6절)에 복음이 “모든 나라와 족속(族屬)과 방언(方言)과 백성에게” “남은 자손(계 14:6)”이 세 천사의 외침으로 모든 민족에게 전파(傳播)될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더 이상 변경(變更)할 수 없는 선택을 선고(宣告)는 마지막 큰 날에 결정(決定)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작은 일에서 예수님을 따를지 혹은 거역(拒逆)할지에 대해 선택(選擇)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12:6) 곧 깨닫게 될 것임(계 10:1-11; 요일 2:18)

계시록 14장은 깊은 흥미를 자아내는 장(章)이다.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의 모든 뜻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계시자 요한에게 주어진 기별들은 분명한 말로 반복될 것이다. (리뷰 1904. 10. 13).


○.세 천사의 신분(身分)을 밝힘

그리스도는 구원(救援)에 이르게 할 능력을 가지고 재림(再臨)하신다. 이 사건에 대비(對備)해서 사람들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그분은 첫째와 둘째, 셋째 천사의 기별(奇別)을 보내셨다. 이 천사들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을 대표(代表)하며 세상에다 복음을 힘 있게 증거(證據)하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편지 79, 1900).


○.한 충성(忠誠)된 무리(계 18:1-5)

교회들은 계시록 18장에 묘사된 대로 되어 있다. 계시록 14장의 기별은 왜 주어졌는가? 이는 교회의 원칙들이 썩었기 때문이다 …(계 14:6-10 인용),(계 14:6, 화잇주석)


○.천사(天使). 

이것은 상징적(象徵的)인 이상이다. 천사는, 특별히 이 구절(句節)에서 언급(言及)된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을(7절) 때에 영원한 복음을 선포(宣布)하는 일에 종사하는 하나님의 성도(聖徒)들을 상징(象徵)한다. 물론 복음을 선포(宣布)하는 일에서 실제로 천사가 사람을 돕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은 이곳에서 주된 개념(槪念)은 아니다.


○.<천사(天使)>

1. 영원한 복음을 전(傳)하는 일은 천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본분(本分)이다. 이 사명(使命)이야말로 얼마나 권위(權威) 있는 것이며 한편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 보화(寶貨)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영원한 복음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의 관심사(關心事)이다. 이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관심사가 되기 때문에 이 영원한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것 즉 "여러 나라와 족속(族屬)과 방언(方言)과 백성에게" 알리는 일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영원이 되어야 한다.


3. 복음은 이로써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는 크나큰 수단(手段)이다. 자연 종교(宗敎)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기에는 흡족하지 못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며 세상에 그의 영광(榮光)을 드러내게 하는 것은 복음이다.


4. 우상이 하나님의 교회에 침입(侵入)해 들어올 때 사람들로 하여금 우상(偶像)에서 돌이켜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根源)을 만드신 창조자(創造者),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배케 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수반(隨伴)된 복음 전파(傳播)에 의한다(7절).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偶像崇拜)가 된다. (계 14:6, 매튜헨리)


○.영원(永遠)한 복음(福音). 

복음의 속성(屬性)은 영원한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복음과 예수께서 전(傳)하신 복음과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모두 동일하며 영속적(永續的)인 것이다. 이 복음의 의미는 하늘이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존재(存在)할 것이다. 모든 민족(民族)과 종족(宗族)과 방언(方言)과 백성에게 전(傳)한다는 것은 복음의 범위가 어떤 한 나라나 민족에 국한(局限)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임을 말하고 있다. 모든 민족에게 전해져야 할 이 복음 전파(傳播)의 사명이 완수(完遂)되었을 때 세상의 끝이 오게 된다. (마 24:14).  (계 14:6, 매튜헨리)


○.특별한 의미(意味)에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파수꾼이요 빛의 전달자(傳達者)로 세상에 세워졌다. 그들에게는 멸망(滅亡)해 가는 세상에 전할 마지막 경고(警告)가 위탁(委託)되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놀라운 빛이 비치고 있다. 가장 엄숙(嚴肅)하고 중대한 사업,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奇別)을 선포(宣布)하는 사업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업은 없다. 다른 어떤 것도 그들의 주의를 빼앗도록 허용(許容)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증언 9권, 19)


○.온 하늘은 첫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는 양상을 깊은 관심(關心)을 가지고 보았다. 그런데 예수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오심을 선포(宣布)하는 기쁜 소식을 비웃었다. 그 기별을 반갑게 받아들이는 대신(代身)에 그들은 그것을 속임수라고 주장(主張)하였다. 그들은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思慕)하는 자들을 미워했으며 교회에서 쫓아내었다. 첫째 기별(奇別)을 거절(拒絶)한 자들은 둘째 기별을 깨달을 수 없다.” (초기문집, 260)


4월 3일(월) 인자(人子)의 돌아오심 


(Q)~재림(再臨)하시는 예수님을 묘사(描寫)하는 데 사용된 칭호(稱號)는 무엇이며, 예수님이 가장 즐겨 사용하신 자신의 호칭(呼稱)은 어떤 의미(意味)를 담고 있습니까? (계시록 14:14, 막 14:62)


(A)~예수님은 복음서(福音書)에서 자신을 언급(言及)하기 위해 "인자(人子)"라는 용어(用語)를 82회 사용하셨다. 인자(人子)라는 용어는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동일시(同一視)하는 애정(哀情)을 표현하신 것으로 사람들에게 구원(救援)의 손길을 펴시는 분이 바로 사람들의 편(徧)이라는 의미(意味)로 우리를 이해(理解)하시고 우리들이 겪는 모든 유혹(誘惑)이나 시련(試鍊)들을 비롯해서 모든 인간들이 겪는 일들을 경험(經驗)하시며 그와 같은 모든 것들을 이겨내신 구세주(救世主)이시기에 우리를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해 오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 “인자(人子)”라는 칭호(稱號)를 즐겨 사용하신 것이며 이는 예수님의 사랑이 담긴 표현이자 칭호이신 것으로 이제 그분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심판(審判)의 주님이심에 감사하지 않으십니까?


○.인자(人子)사람의 아들, 

구약(舊約)에서는 일반적인 사람(시 8:4), 하나님과 대비(對備)되는 인간을 의미하는 경우(민 23:19; 욥 25:6), 또는 선지자 등에게 사용되었는데, 특별히 주목(注目)할 일은 메시야의 출현(出現)에 사용되었다는 점이다(단 7:13~14). 신약(新約)에서는 예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인자(人子)라고 하셨는데, 복음서(福音書)에만 81회 기록되었다. (사전, 인자)


○.메시아 예언 메시아에 대한 최초의 예언(豫言)은 (창 3:15)의 여자(女子)의 후손(後孫)에 대한 말씀이다. 다음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後孫)(메시야)에 모든 백성이 축복을 얻으리라는 예언이다. 또한 (신 18:15)에서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리라는 말과, 말라기가 엘리야의 재현을 말한 것도 메시아 예언에 속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준 것은 다윗의 자손에 대한 예언이다(삼하 7:12, 13). 즉 다윗의 자손이 나타나 다윗 왕조를 일으켜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이라는 예언은 이스라엘의 메시야 대망(大望)에 결정적(決定的) 영향을 끼쳤다. 구약(舊約)에서 독특(獨特)한 메시아 예언은 이사야의 고난(苦難)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야 예언이다(사 53장). 즉 메시아는 주로 영광과 권능의 통치자(統治者)로 언급(言及)되나 (이사야 53장)에서는 인간을 대신하여 죄짐을 짊어진 대리적 고난자(苦難者)로 묘사(描寫)된다. 한편 다니엘서는 인자(人子)로서의 메시야를 말한다(단 7:13). 예수는 이 인자(人子)라는 말을 자기 계시(啓示)의 원용(援用)으로 사용했다. (사전, 메시야)


○.예수님은 "인자(人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마 16:27), "인자(人子)가 권능(權能)(아버지)의 우편(右便)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고 말씀하셨다. 갈망(渴望)하는 심정(心情)으로 아버지는 재림을 고대하신다. 그때 구속(救贖)받은 자들은 마침내 그들의 영원한 본향(本鄕)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獨生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 4:9)는 말씀이 헛되지 않았음이 입증(立證)될 것이다. 비록 우리가 원수(怨讐)였지만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和睦)"(롬 5:10)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측량(測量)할 수 없는 이타적 사랑만이 설명해 준다. 감히 어떻게 그러한 사랑을 우리가 떨쳐버리고 그분을 우리 아버지로 시인(是認)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교리, 38)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인성(人性)으로는 인성(人性)과 접촉(接觸)하시고 당신의 신성(神性)으로는 하나님의 보좌(寶座)를 굳게 붙드셨다. 그는 인자(人子)로서 우리에게 순종(順從)의 모본(模本)을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순종할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다. 호렙산 가시덤불에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 …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I AM)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고 말씀하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셨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救援)의 보증(保證)이었다. 이와 같이 그가 “사람의 형상(形象)”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도 그는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선언(宣言)하셨다. 온유(溫柔)하고 겸손(謙遜)한 베들레헴의 아기는 “육신(肉身)으로 나타난바 되”(딤전 3:16)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나는(I AM) 선한 목자라”, “나는(I AM) … 산 떡이”다, “내가(I AM)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權勢)를 내게 주셨으니”(요 10:11, 6:51, 14:6; 마 28:18)라고 하셨다. 나는(I AM) 모든 허락(許諾)의 보증이다. 내니(I AM)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救援)하는 보증이 되시고 하늘의 법칙(法則)을 순종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의 보증(保證)이 되신다.”(소망, 24)


○.세상을 위한 중대한 문제들이 빛의 임금과 흑암(黑暗)의 나라의 지도자와의 투쟁(鬪爭)에 걸려 있었다. 사단은 사람을 유혹(誘惑)하여 범죄하게 한 후에 이 지구(地球)를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자신을 이 세상의 임금으로 자칭(自稱)하였다. 그는 우리 인류의 시조(始祖)에게 자기의 성질을 본받게 한 후에 이 곳 지상에 그의 나라를 세우려고 생각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그들의 군주(君主)로 선택하였다고 선언했다. 그는 사람을 지배(支配)함으로 세상의 통치권을 쥐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주장을 반증(反證)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는 인자(人子)로서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할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 사단이 인류에 대한 완전한 지배권(支配權)을 가지지 못하였다는 것과 세상이 자기의 것이라는 사단의 주장이 허위(虛僞)였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救援)받기를 원하는 자는 모두 해방(解放)될 것이다. 아담이 죄로 말미암아 잃었던 통치권은 회복(回復)될 것이다.”(소망, 114)


○.하나님께서는 “또 인자(人子)됨을 인하여 심판(審判)하는 권세(權勢)를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고통과 시험의 모든 찌끼를 맛보셨으며 사람의 연약(軟弱)함과 죄를 이해하시기 때문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사단의 유혹을 당당하게 대항(對抗)하셨고, 자신의 피를 쏟으사 구원(救援)하시려 한 영혼들을 공정(公正)하고 친절하게 대하실 것이기 때문에 인자(人子)가 심판(審判)하도록 지명(地名)되었다.”(소망, 210)


○.모세가 광야(廣野)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人子)도 들려야 하리”(요 3:14)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이 그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세워진 상징물(象徵物)인, 높이 들린 뱀을 쳐다보아야 되었던 것처럼 모든 사람의 눈은 잃어버린 세계에 구원(救援)을 가져다 준 희생제물(犧牲祭物)인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려야 한다.”(소망, 485)


○.이 말씀을 하실 때에 그리스도의 주위(周圍)에는 많은 백성들이 둘러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고 하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이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소망, 626)


○.인자(人子)(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직역하면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로서 그리스도께서 즐겨 사용하신 자기 자신에 대한 메시아적 명칭이자 타인으로부터 쉽게 공격을 받지 않는 당신의 인성(人性)을 강조한 표현이다(눅 5:24 주제 강해 ‘인자’참조). 즉 ‘인자’란 인간으로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겸손한 예수의 모습(identity)은 물론,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거룩한 권위(authority)와도 관련되어 있다. 한편 이 용어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과 함께 마가가 즐겨 사용한 메시아 칭호이다. 그런데 이 호칭은 구약성경과 경외전(經外典)인 유대인들의 묵시 문학(?示文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용어로서, 특히 구약에서는 주로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시 8:4, 겔 2:1, 3, 6, 8, 단7:13, 14). 그리고 묵시 문학에서는 주로 여호와의 날 곧 종말에 천군 천사들을 대동하고 이 땅에 심판주로 임하실 메시아라는 뜻으로 전달되고 있다(Taylor, Grant). 그런데 마가복음에서 제시하는 바 이 ‘인자’ 개념은 주로 심판주로서의 메시아란 의미와 더불어 이 세상의 죄인을 지금 용납하시고 그 죄를 지금 사유(赦宥)하시는 하나님과 동등한 신분으로서의 메시아로 이해하고 있다(2:28, 14:62). 즉 그분은 심판의 시점까지 기다리시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당신의 직권(職權)으로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다(Robertson). (막 2:10, 만나주석)


○.<인자(人子)>

‘다윗의 아들’이란 칭호가 유대적 정통성(正統性)을 강조(强調)한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의 신성(神性)을 밝힌 칭호(稱號)라면, ‘인자(人子)’란 칭호는 구약(舊約) 선지자들에 따르면 종말(終末)에 이르러 (단 7:13, 14)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류의 구원(救援)을 위해 이 땅에 오실 자로 인식되었고, 바로 이 용어(用語)를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하셨다. 자칭(自稱)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모두 세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다(행 7:56, 계 1:13, 14:14). 이 인자라는 칭호(稱號)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稱號)가 하나님과의 특수(特殊)한 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과 대칭(對稱)을 이루어, 사람과의 특수한 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칭호인 것이다(눅 22:69, 70). 특히 본문에 언급된 ‘인자(人子)’는 단순히 거처(居處)할 곳조차 없는 바로 ‘나’라는 말로도 대치시킬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인자’는 예수께서 당신의 인성(人性)을 강조 하고 앞으로 당신의 당하실 고난을 묵시적(?示的)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다. 여하튼 본문에서의 인자(人子)란 칭호를 살펴볼 때 예수께서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愛情)과 관심을 가지고 이상과 같이 거처도 없는 가난한 삶을 기꺼이 감당하고 있는 초월적(超越的) 사랑을 지니신 분임을 알 수 있다.  (막 2:10, 만나주석)


4월 4일(화) 하늘의 심판(審判) 


(Q)~심판(審判)과 심판의 중심에 왜 인자(人子)가 나오며 인자(人子)는 어떤 상황(狀況)에서 무엇을 위해 나타납니까? (요한계시록 14:14과 사도행전 1:9~11, 다니엘 7:9,10,13,14절)참조 


(A)~심판대(審判臺) 앞에서 심판받는 자(者)들을 돕기 위하여 심판의 중심에는 인자(人子)가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 계시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恐怖)에 사로 잡혀있는 자(者)들에게 그분은 모든 인자(人子)에게 인자(人子)로서 심판(審判)하신다. 즉 그분을 믿는 인자(人子)들에게는 영생(永生)을 주신다는 위안(慰安)과 용기(勇氣)를 주시기 위(爲)함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定罪)함이 없나니”(로마서8:1) 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永生)의 보장(保障)의 말씀인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의 재림 사실에 대해서 그 방법까지도 강조하여 묘사하고 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사실은 당신의 재림을 확신시키는 보증(保證)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재림의 약속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증거하는 사역에 매진할 수 있게 하는 동력과 근거의 역할을 한다.  (행 1:9~11, 만나주석)


○.세천사의 기별의 성격과 곧바로 그들의 뒤를 이어 그리스도의 재림이 논의된 사실은, 세 기별이 세상에 보내는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임을 보여 준다(참조 18:1~4).(계 14:14, 재림교주석)

세천사의 기별의 성격과 곧바로 그들의 뒤를 이어 그리스도의 재림이 논의된 사실은, 세 기별이 세상에 보내는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임을 보여 준다(참조 18:1~4).(계 14:14, 재림교주석)


○.예리(銳利)한 낫. 

예수는 수확물을 거둬들이는 추수자로 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15, 16절). (계 14:14, 재림교주석)


○.(다니엘7:10) 착오(錯誤)가 없는 기록자(계 20:12)

우리가 범한 모든 죄의 기록을 간수하고 있는, 착오가 조금도 없으신 한 기록자가 계신다. 인간의 모든 불경(不敬)과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불순종은 아주 정확하게 하늘의 책들에 기록되어 있다. 죄악의 잔은 빠르게 채워져 가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죄악(罪惡)이 하나님의 정하신 한계(限界)점에 이를 때까지 자비로 지체(遲滯)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오래 참으시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이를 때까지 하나님의 대리자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들의 죄를 하나님의 인내를 가지고 참으시지만 그는 막대기로 그들의 죄를 징치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마침 내에는 하나님께서는 멸망시키는 사단의 대리자들을 파멸시키도록 허락하실 것이다. (원고 17, 1906).


○.하늘의 책들에는 죄인들의 입으로 발한 조롱과 하찮은 말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에도 그 자비의 초청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은 자들이다. 화가가 잘 닦여진 유리판 위에다 실물 크기의 인물화를 그리듯, 하나님은 매일 하늘의 책에다 각 사람의 품성적 특질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계신다. (원고 105, 1901).(단 7:9~14, 화잇주석)


○.하늘의 책들에는 죄인들의 입으로 발한 조롱과 하찮은 말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에도 그 자비의 초청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은 자들이다. 화가가 잘 닦여진 유리판 위에다 실물 크기의 인물화를 그리듯, 하나님은 매일 하늘의 책에다 각 사람의 품성적 특질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계신다.” (원고 105, 1901)


○.심판 때에 기록한 책들을 펼치면 예수님을 믿은 모든 사람들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 우리의 대언 자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처음 생존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사건을 제시하신다. 각 사람의 이름이 불리고, 모든 사건이 세밀히 검토된다. 어떤 이름들은 가납되고, 어떤 이름들은 거절된다.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고 용서받지 못한 채 기록책에 죄를 남겨두고 있으면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그들의 선행의 기록도 하나님의 기념 책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그들의 속죄제물로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 아래 용서받았다는 말이 기록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들의 품성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된다는 것이 나타날 때, 그들의 죄는 도말되고 그들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482-483)


○.심판(審判)의 대상(對象)은 큰 말하는 작은 뿔이다. 

그런데 죽임을 당하는 것은 왜 짐승인가? 그것은 뿔이 짐승을 의지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상징되었기 때문이다. 짐승이 완전히 죽으면 짐승의 머리에 있는 작은 뿔도 완전히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작은 뿔과 동일한 세력을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 “불법한 자”라고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멸망할 것을 말한다(살후 2:3-8). (단 7:9~14, 만나주석)


○.(마니엘 7:13) 인자(人子) 같은 이. 

아람어를 더 적절하게 표현한 것은 “한 존재, 인간의 형태를 한”이다. 그는 누구인가? 첫째, 인자는 하늘의 존재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칭호가 암시하듯이 그는 인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심판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오는 신인(神人)이다. 둘째,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의 모습은 신약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림의 장면이다. 그러나 단 7:13은 인자가 하늘에서 땅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옛적부터 계신 이 앞에 나타나기 위해서 하늘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수평적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셋째,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에 대한 묘사는 여호와의 가시적인 현현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또한 속죄일에 성소 정결을 수행하기 위해 분향단의 연기로 자욱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대제사장을 연상하게 한다. (단 7:9~14, 만나주석)


○.인자(人子)는 또한 왕의 모습(模襲)을 하고 있다. 

그는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단 7:14)의 섬김을 받는다. ‘섬기다’라는 동사는 또한 ‘경배하다’라는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단어는 단 1~7장에서 9번 등장하며(단 3:12, 14, 17, 18, 28, 6:16, 20, 7:14, 27) 신께 경의를 표한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법을 고치려는 시도의 결과로서 작은 뿔로 대표되는 그 종교 체계는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변질시킨다. 하지만 여기서 묘사하고 있는 심판은 진정한 예배가 마침내 회복되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교황권이 마련한 예배 제도는 무엇보다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로 세운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대표하여 설 자격이 있는 유일한 중재자는 인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경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고 증언한다. (단 7:9~14, 만나주석)


○.나는 천사들이 하늘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한 천사가 잉크 통(뿔로 만든)을 가지고 지구에서 돌아와 예수님께 자기의 일이 끝났음을 보고하고 성도들의 수가 차서 인치는 사업이 마쳤음을 보고했다. 그러자 나는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 앞에서 봉사하시던 예수께서 향로를 내던지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의 손을 치켜들고 ‘다 이루었다’하고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고 엄숙하게 선포하실 때 모든 천사들은 그들의 면류관을 벗어던졌다.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생사 간에 결정되었다. 예수께서 성소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동안 죽은 의인들과 살아있는 의인들에 대하여 심판이 행하여졌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위하여 대속하시고 그들의 죄를 도말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왕국을 받으셨다. 그리고 왕국에 살 거민들이 결정되었다. 어린 양의 혼인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왕국과 온 하늘의 왕권이 예수님과 구원을 상속받은 자들에게 주어진바 되었으며, 예수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다스리시게 되었다. (초기문집, 279-280)


4월 5일(수) 승자(勝者)의 면류관(冕旒冠) 


(Q)~농부(農夫)에게는 추수(秋收)때를 위(爲)하여 열심히 농사(農事)를 짓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혼(靈魂)의 농사도 그 목적이 분명하다. 이를 예수님께서 농사(農事)의 비유(比喩)를 이용하신다. 열매가 익어 마지막에 거두게 될 승리(勝利), 그 면류관(冕旒冠)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요한계시록 14:15절, 마가복음 4:26~29절)


(A)~신약(新約)에서 예수님은 반복적(反復的)으로 농사(農事)에서 나온 예(例)를 들어 말씀하셨다. 그분은 그의 백성의 삶에서 복음(福音)의 씨가 자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무르익은 추수(秋收)의 상징(象徵)을 사용하셨다. 예수께서는 승리자(勝利者)의 면류관(冕旒冠)을 쓰시고 곡식(穀食)을 거두러, 즉 은혜(恩惠)로 변화(變化)되고 성화(聖化)의 열매를 맺은 성도(聖徒)들을 데리러 이 땅에 다시 오신다. 생명(生命)의 황금(黃金) 면류관(冕旒冠)이며 승리자(勝利者)의 면류관을 주시러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 우리는 결함(缺陷)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럼에도 “발전의 단계마다 우리의 생애가 완전하게 될 수 있다”는 (실물, 65) 엘렌 화잇의 말씀을 기억하며 매일 주님의 뜻을 준행하는 마음으로 생활한다면 주님은 그것을 예수님의 보혈(寶血)의 공로(功勞)와 이름으로 완전함으로 덮으실 것이다.  <마라나타>


○.인자(人子) 같은 이. (단7:13)

아람어 크바르 에나쉬(kebar ’enas∨), 문자적으로 “사람의 한 아들과 같은.” 아람어 용법에 따르면 이 구절은 “사람과 같은”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Hans Bauer and Pontus Leander, Grammatik des Biblisch-Arama..ischen [Halle, 1927], 315d). 70인 역에는 호스 휘오스 안쓰로푸(ho-s huios anthro-pou)로 되어 있는데, 그것도 역시 문자적으로 “사람의 한 아들과 같은”이다.

개정된 번역판들의 다수는(참조 개정역(RV), 개정표준역(RSV) 등) 그러한 문자적인 번역을 따른다. 어떤 이들은 그런 번역이 우리 구속주의 위엄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다. 영어의 “사람의 한 아들”은 그 논조가 일반적으로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아람어에서 해당되는 구절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다른 고대의 언어와 마찬가지로 아람어는 주로 질(質)을 강조할 때에는 관사를 생략하고, 정체성을 강조할 때에는 관사를 사용한다. 예언적인 진술에서는 선지자가 먼저 자기가 본 것을 묘사한 다음, 정체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통상적인 순서이다. 예언적인 항목들은 보통 관사가 없이 소개된다. 그 다음에 언급할 때에는 관사를 사용한다(참조 9절 주석). 그러므로 “큰 짐승 넷”(3절)이지 “그 큰 짐승 넷”이 아니었으나, 나중에는 “그 모든 짐승”(7절)으로 되어 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는 “한 존재, 날들이 오래된”으로 소개되었으나(참조 9절 주석), 나중에는 “날들이 오래된 그 존재”(13절, 22절; 참조 9절 주석)로 언급되었다. “한 양”, “그 양”, “두 뿔”, “그 두 뿔”, “한 숫염소”, “그 숫염소”(8:3~8) 등과 비교하라. 이런 법칙에 맞게 하나님의 아들은 문자적으로 “한 존재, 인간의 형태를 한”으로 소개되었다. 이 예언에서 그분은 또다시 이런 표현으로는 언급되지 않는다. 만약 그분을 언급했다면 정관사가 쓰였을 것이다. 대개의 주석자들이 7:13에 기초했다고 동의하는 표현, 즉 신약에 나오는 “인자”라는 표현은 거의 예외 없이 관사와 함께 나온다.  (단 7:9~14, 재림교주석)


○.사람의 한 아들”이라는 번역보다 “한 존재, 인간의 형태를 한”이 더 적절하게 아람어 문구를 표현해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적인 이상에서 당신의 아들을 제시하시되, 특히 그분의 인성(人性)을 강조하시기로 선택하셨다(참조 산상보훈, 14).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성육신(聖肉身) 때에 친히 인간의 형상을 취하셨으며(요 1:1~4, 12, 14; 빌 2:7; 히 2:14 등) 사람의 아들이 되셨으므로(참조 막 2:10 주석), 결코 끊어지지 않을 줄로 신성을 인성과 결합하셨다(시대의 소망, 25). 그러므로 회개(悔改)하는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대표하는 분으로 그들과 “같은 이”, 곧 모든 면에서 그들과 같이 시험을 받으시고 그들의 연약(軟弱)함을 체휼하시는 분을 모신다(히 4:15). 얼마나 큰 위로(慰勞)를 주는 생각인가!  (단 7:9~14, 재림교주석)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으로 재림하시는 것을 나타낼 수 없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께로 오시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성소 정결을 위해 지성소(至聖所)로 오시는 것을 나타낸다(각 시대의 대쟁투 426, 480,).


○.(단7:14) 그에게 권세(權勢)…를 주고. 

(눅 19:12~15)에서 그리스도는 손수 나라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귀인으로 묘사된다. 아직 하늘에 있는 동안 성소에서 제사장 봉사를 마치실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나라를 받으시고 자신의 성도들을 위해 이 땅으로 돌아오신다(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428; 초기문집, 55, 초기문집, 280). (단 7:9~14, 재림교주석)


4월 6일(목) 모든 씨앗은 열매를 맺음


(Q)~(요한계시록 14:17~20절)의 “하나님의 진노(震怒)의 큰 포도주(葡萄酒) 틀”이라는 표현(表現)은 무엇을 의미(意味)하는가? 


(A)~(요한계시록 14:17~20, 계 14:10, 15:1, 16:1)에는 두 가지 수확(收穫)이 있다. 금(金)빛 곡식(穀食)의 추수는 의인(義人)을 상징하고 피투성이 포도(葡萄)의 추수(秋收)는 불의(不義)한 자(者)나 잃어버린 자를 상징(象徵)한다. 두 수확(收穫)모두 완전히 익었고 뿌려진 모든 씨앗은 완전히 성숙(成熟)했다.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신 후에 그들의 열매를 판단하실 것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求)하는 삶을 산 자(者)들은 그날에 무한(無限)히 값진 열매의 그 판단(判斷)이 온 우주(宇宙)앞에 공개(公開)되는 것을 온 우주가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남은 자손”의 “남은 자”가 되는 길은 늘 기도(祈禱)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맡기고 준행(遵行)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알곡으로 추수된 후, 이어서 포도주 틀에서 포도를 밟는 것으로 묘사된 하나님의 진노가 악인(惡人)들에게 쏟아진다. 여기의 제단은 번제단인 것으로 보인다. 번제단에서 나온 천사는 (계 8:3~5절)의 천사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 말씀은 (계 6:9~10)의 말씀과 연결된다.


○.순교자(殉敎者)들은 저들의 압제(壓制)자들과 복음의 원수들에게 심판을 내리고 그들을 구원해 달라고 탄원하였다. 이제 그 응답의 시간이 이르렀고, 하나님의 진노가 악인들에게 내리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 포도를 밟는다는 표현은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구약에서 이 표현은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의 원수(怨讐)들에게 내려질 때 사용되었다(사 63:1-6, 애 1:15). 요한계시록에도 유사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계 19:13-15).


○.포도송이. 

이 두 추수의 비유(譬喩)는 곡식 추수와 포도 추수(秋收)의 두 주요 추수로 구성(構成)된 고대(古代) 팔레스타인의 매년 농사에서 채용한 것이다. 이곳에서 포도추수는 멸망을 위해 수확되는 악인들을 상징(象徵)한다.


○.포도주(葡萄酒) 틀. 

이 비유(譬喩)는 포도주(葡萄酒)의 색깔이 피와 닮았다는 측면(側面)에서 적절하다. 이 비유는 (사 63:1~6)에서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그곳의 주석을 참조하라).

20 성 밖에서. 이 광경은 하나님의 원수(怨讐)들이 예루살렘 밖에서 멸망(滅亡)하는 것으로 묘사(描寫)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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