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탐심을 주의하라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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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2-28 02:00 조회3,49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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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탐심(貪心)을 주의(注意)하라
(3월 4일 (안) / 일몰: 오후 6시 28분)
<서언(緖言)>
○. 십계명(十誡命)중에 3가지 계명은 반드시 준행하여야 할 것이지만, 또한 7가지 계명은 반드시 하지 말아야 되는 계명가운데 탐심(貪心)이 포함(包含)되어 있다. 이러한 탐심(貪心)은 사단과 직접(直接)관련이 되어 하늘에 가지 못하는 요인(要因)이 된다는 것이다. 즉 탐심(貪心)이란 자기 것이 아닌 재물(財物)과 소유(所有)에 대한 과도(過度)한 욕망(慾望)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죄의 원인(原因)이 되어 인생이 실패(失敗)하거나 망(亡)하게 되는 문제의 근원(根源)이 되기 때문에 탐심은 참으로 주의(注意)하여야 할 중요한 공과(工課)이다. 이러한 중요한 탐심을 극복(克服)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祈禱)로써 하나님의 뜻에 순종(順從)할 때 예방(豫防)도 되며 또한 해결(解決)이 된다.
(02월26일) (日) <근본적(根本的)인 원죄(原罪)?>
(Q)~새벽의 명성(明星)으로 빛을 가진 자(者)이며 천사 장(天使長)이었던 루시퍼가 죄를 지어 타락(墮落)하게 된 근본적(根本的)인 원죄(原罪)는 무엇이었습니까? (이사야 14장 12절~21절)
(A)~○. 원죄(原罪)는 탐심(貪心)에서 기원(起源)하고 있다. “루시퍼”는 피조물(被造物)이기 때문에, 빌려오지 않고 파생(派生)되지 않은 본래의 생명을 가진 성부(聖父)와 성자(聖子)보다는 분명히 열등(劣等)했다. 그러나 루시퍼는 성자(聖子)(예수님)와의 동등을 요구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게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했을 때 사단은 예수를 질투(嫉妬)했다.(참조 초기문집, 145). 그는 인간을 만드는 일에 의논(議論)의 대상이 되기를 원(願)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특권으로 사용하는 그 능력을 가지려고 열망(熱望)함 즉 탐심(貪心)으로써 그는 높은 지위(地位)에서 떨어져 마귀(魔鬼)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마귀(魔鬼)를 창조(創造)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흠(欠)이 없는 아름다운 천사(天使)를 창조하였으나 이 천사(天使)는 스스로 마귀(魔鬼)가 되었다. (겔 28:15, 재림교주석)
(02월27일) (月) <진영내(陣營內)의 저주(詛呪)받은 물건(物件)>
(Q)~큰 “여리고 성(城)”은 어떻게 함락(陷落)할 수 있어으며, 작은 성(城) “아이 성(城)”에서의 참패(慘敗)한 원인은 무엇 이였습니까?
(A)~○. ‘큰 성(城)여리고 성(城)’을 취(取)한 것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여호와의 군대장관(軍隊將官)이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구원(救援)의 주(主)를 믿는 믿음을 보이기 위해서 행동해야 할 그들의 맡은 분량(分量)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믿기 때문에 약(弱)하게 된다. 의심(疑心)하지 않고, 이의(異議)를 제기(提起)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신실한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힘 있게 일하신다. 이러한 원칙(原則)을 저버리고 아간은 탐심(貪心)에 이끌려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誡命)에 절대하지 말라하신 탐심(貪心)으로 작은 성(城) ‘아이 성(城)’에서의 참패(慘敗)를 당하였고, 아간과 그의 가족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犯)하였다. 우리도 이 교훈(敎訓)을 깊이 적용(適用)하자.
○. <아간의 사건(事件)에서 배울 교훈(敎訓)>
⑴. 죄는 밝혀내어야 하고 책망(責望) 받아야 함 (수7:16)
⑵.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죄를 축소하게 하지 않는다.
⑶. 회개(悔改)없는 고백(告白)은 무가치(無價値)한 것임 (수7:20)
⑷. 아간은 아무 부담도 느끼지 않았음
⑸. 정당함이 입증된 하나님의 방법(方法)
⑹. 아간의 탐심(貪心)의 성장(成長) (수7:21)
⑺. 영혼(靈魂)을 주고 교환(交換)함
⑻. 하나님은 깨끗한 생애(生涯)를 요구하심 .
(02월28일) (火) <유다의 마음>
(Q)~예수님의 열둘 제자(弟子)중 한 사람이었고 병자(病者)를 고치고 귀신(鬼神)을 쫓아내는 능력의 사도(使徒)였던 가롯 유다가 무엇 때문에 넘어졌고 실패(失敗)하였는가? (요한복음 12:1~8; 마태26:14~16)
(A)~○. ‘유다’는 본래 돈에 대하여 강(强)한 애착(愛着)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런 말을 할 만큼 늘 부패(腐敗)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악(惡)한 탐욕(貪慾)의 정신(精神)을 길러서 마침내 그것이 그의 생애(生涯)의 동기(動機)를 지배(支配)하도록 했다. 유다는 자신의 연약(軟弱)함을 예수님께 온전히 내려놓지 않고 마음의 욕심(慾心)에 따라 행동(行動)한 유다는 돈에 대한 애착(愛着)이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사랑을 능가(凌駕)했다. 한 가지 죄(罪)의 노예(奴隸)가 됨으로 인(因)해 그는 자기 자신을 사단에게 맡기게 되어 그같이 깊은 죄(罪)에까지 빠지게 되었다”(소망, 716)
그러므로 우리는 유다의 교훈(敎訓)을 통해 지혜(智慧)로운 선택(選擇)을 해야 한다.
○. <유다의 교훈(敎訓)>= (유다는) <소망716~717 참조>
⑴.세속적인 야망(野望)=탐심(貪心)과 돈에 대한 사랑을 포기(抛棄)하지 않았다.
⑵."예수님"께서 하시는 인격형성(人格形成)에 자신을 복종(服從)시키지 않았다.
⑶.자신의 판단(判斷)과 의견(意見)을 유지(維持)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⑷.비판(批判)하고 비난(非難)하는 성질을 길렀다.
⑸.스스로 자신의 자격을 높이 평가(評價)하였으며
⑹.판단력(判斷力)능력(能力)에 있어서 그의 형제들을 매우 열등(劣等)한 것으로 바라보았다.
⑺.저들은 기회(機會)를 보지 못하며 환경을 이용(利用)하지 못한다고 생각 하였다.
⑻.모든 제자를 헤아려 보고는 자신의 능력이 없었다면 은 교회는 때때로 당황하고
난처(難處)한일을 당할 것이라고 자기 자신을 칭찬 하였다.
⑼.자신은 실패(失敗)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⑽.스스로 평가하기를 자기는 사업에 영예(榮譽)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나타내었다.
(03월01일) (水) <아나니아와 삽비라>
(Q)~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헌금(獻金)을 드렸지만 그 결과는 비극(悲劇)으로 끝났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하여 주시는 교훈(敎訓)은 무엇인가? (사도행전 5:1~11)
(A)~○.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올바른 동기(動機)를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약(誓約)했지만 “탐욕(貪慾)과 기만(欺瞞)과 위선(僞善)에 대한 하나님의 가중(加重)히 여기심에 대한 이 실례는 초대 교회뿐만 아니라 장래(將來)모든 세대에게 하나의 위험신호(危險信號)로 주신 바 되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처음에 마음에 품은 것은 탐심(貪心)이었다. 저희가 주님께 약속한 것의 일부분을 자신들을 위하여 보류(保留)하여 두고자 한 욕망(慾望)때문에 그들은 마음에 가득한 탐심(貪心)을 제어(制御)하지 못함으로 죄를 짓게 되었으며 기만(欺瞞)과 위선(僞善)을 행(幸)하게 되었다.”(행적, 74)
○. <아나니아와 사비라를 통하여 주는 교훈(敎訓)>
(1)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경외심(敬畏心)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게 하였으며
(2) 하나님이 임재(臨在)해 계시는 교회에서는 모든 거짓과 위선적(僞善的)인 행동이 숨겨지거나 묵인(黙認)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3) 동시(同時)에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순결(純潔)하고 거룩해야 하는 것을 돌아오는 후대(後代)의 교회들에게 알려주는 교훈(敎訓)과 경계(警戒)가 되었다.
(03월02일) (木) <탐심(貪心) 극복(克服)하기>
(Q)~거짓말, 간음(姦淫), 도둑질, 우상숭배(偶像崇拜), 안식일(安息日)성수(聖守)등등은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적어도 외적(外的)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탐심(貪心)을 내적(內的)이므로 이를 어떻게 하여야 극복(克服)할 수 있을까? (이사야57:17, 누가복음12:15, 로마서7:7~8, 골로새서3:5, 데살로니가전서2:5, 베드로전서2:3, 고린도전서 10:13)
(A)~○. 외적(外的)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행동의 죄악(罪惡)도 극복(克服)하기가 무척 힘든데, 하물며 내적(內的)인 마음속에 깊이 뿌리 내린 탐심(貪心)과 탐욕(貪慾)을 제어(制御)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자(救援者)되시는 예수님의 본(本)을 따라 말씀과 기도(祈禱)를 통해 그분께 의지(依支)하며,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 “충성된 청지기 직분은 또한 우리로 탐욕과 이기심을 극복하고 승리를 얻도록 도와준다. 인간의 가장 큰 원수 가운데 하나인 탐욕은 십계명에서 정죄되고 있다. 예수께서도 그것에 대해 경고하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규칙적으로 드리는 헌금은 우리의 생애에서 탐욕과 이기심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교리, 256)
------------------<말미부록(末尾附錄)>------------------------
제9과 탐심(貪心)을 주의(注意)하라
(3월 4일 (안) / 일몰: 오후 6시 28분)
<기억절(記憶節)>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貪心)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所有)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 12:15).
<서언(緖言)>
○. 십계명(十誡命)중에 3가지 계명은 반드시 준행하여야 할 것이지만, 또한 7가지 계명은 반드시 하지 말아야 되는 계명가운데 탐심(貪心)이 포함(包含)되어 있다.
이러한 탐심(貪心)은 사단과 직접(直接)관련이 되어 하늘에 가지 못하는 요인(要因)이 된다는 것이다.
즉 탐심(貪心)이란 자기 것이 아닌 재물(財物)과 소유(所有)에 대한 과도(過度)한 욕망(慾望)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죄의 원인(原因)이 되어 인생이 실패(失敗)하거나 망(亡)하게 되는 문제의 근원(根源)이 되기 때문에 탐심은 참으로 주의(注意)하여야 할 중요한 공과(工課)이다. 이러한 중요한 탐심을 극복(克服)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祈禱)로써 하나님의 뜻에 순종(順從)할 때 예방(豫防)도 되며 또한 해결(解決)이 된다.
(02월26일) (日) <근본적(根本的)인 원죄(原罪)?>
(Q)~새벽의 명성(明星)으로 빛을 가진 자(者)이며 천사 장(天使長)이었던 루시퍼가 죄를 지어 타락(墮落)하게 된 근본적(根本的)인 원죄(原罪)는 무엇이었습니까? (이사야 14장 12절~21절)
(A)~○. 원죄(原罪)는 탐심(貪心)에서 기원(起源)하고 있다. “루시퍼”는 피조물(被造物)이기 때문에, 빌려오지 않고 파생(派生)되지 않은 본래의 생명을 가진 성부(聖父)와 성자(聖子)보다는 분명히 열등(劣等)했다. 그러나 루시퍼는 성자(聖子)(예수님)와의 동등을 요구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게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했을 때 사단은 예수를 질투(嫉妬)했다.(참조 초기문집, 145). 그는 인간을 만드는 일에 의논(議論)의 대상이 되기를 원(願)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특권으로 사용하는 그 능력을 가지려고 열망(熱望)함 즉 탐심(貪心)으로써 그는 높은 지위(地位)에서 떨어져 마귀(魔鬼)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마귀(魔鬼)를 창조(創造)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흠(欠)이 없는 아름다운 천사(天使)를 창조하였으나 이 천사(天使)는 스스로 마귀(魔鬼)가 되었다. (겔 28:15, 재림교주석)
○. <사탄의 악(惡)한 충동(衝動)에 동조(同調)하여 아담은 하나님께 반역(叛逆)하였다.>
그 원죄(原罪)의 결과, 그의 허리에 있던 모든 아담의 후손(後孫)은 원죄(原罪)를 전가(轉嫁) 받아 태어납니다. 죄(罪)는 우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는 탐욕(貪慾), 금지(禁止)된 것과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애끓는 욕심(慾心-탐심)은 다양(多樣)한 결과를 내놓습니다.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숨어서 죄를 짓습니다. 부모님이나 윗사람이 무엇이 옳지 않아 하지 말라고 하면 기(氣)를 쓰고 더 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을 율법의 의(義)로는 흠(欠)이 없는 자(者)라 여기던 사도 바울은 거듭난 자의 죄로 인한 곤고(困苦)함을 적시(摘示)하였습니다. <창3:1-8 >
○. <(사14:14) 지극(至極)히 높은 자(者)와 비기리라.>
‘지극히 높은 자’는 히브리어로 ‘엘리욘’인데, ‘위로 오르다’, ‘높다’는 뜻의 ‘알라’동사에서 유래하였다. 델리취(Delitzsch)에 의하면, 바사 왕들은 그들의 비문에 자신들을 ‘신의 후손’ 심지어는 ‘신들’(데오이)이라고까지 명명하였다고 한다.
○. 모든 탐심(貪心)은 우상(偶像)을 숭배(崇拜)한 죄로 선고(宣告)를 받는다. 모든 이기적(利己的) 방종(放縱)은 하나님 앞에 죄(罪)가 된다.”(화잇주석, 눅 16:19-31)
○. 바울은 ‘죄가 기회를 타서…….내 속에서 각양 탐심(貪心)을 이루었나니’라고 했다. 죄가 어떻게 기회를 타는가? 이는 죄가 사단의 교활성을 가지고 틈만 보이면 달려든다는 뜻이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誘惑)해 최초의 법(法)인 선악과(善惡果)를 먹게 하므로 죄를 짓게 했다. 사람은 ‘하지 말라 하면’고 하면 더 하고 싶어 한다. (롬 7:8, 창 3:1~4)
○. 바울은 ‘계명(誡命)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 각양 탐심(貪心)을 이루었나니’라고 했다. 사람은 법(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다. 죄는 아담의 범죄(犯罪)후 항상(恒常) 활동(活動)하지만, 사람은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제 인간은 율법(律法)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만, 죄를 없애지 못했다. 죄, 사(赦)함의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뿐이다. (롬4:15, 5:12~13, 7:8)
(02월27일) (月) <진영내(陣營內)의 저주(詛呪)받은 물건(物件)>
(Q)~큰 “여리고 성(城)”은 어떻게 함락(陷落)할 수 있어으며, 작은 성(城) “아이 성(城)”에서의 참패(慘敗)한 원인은 무엇 이였습니까?
(A)~○. ‘큰 성(城)여리고 성(城)’을 취(取)한 것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여호와의 군대장관(軍隊將官)이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구원(救援)의 주(主)를 믿는 믿음을 보이기 위해서 행동해야 할 그들의 맡은 분량(分量)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믿기 때문에 약(弱)하게 된다. 의심(疑心)하지 않고, 이의(異議)를 제기(提起)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신실한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힘 있게 일하신다. 이러한 원칙(原則)을 저버리고 아간은 탐심(貪心)에 이끌려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誡命)에 절대하지 말라하신 탐심(貪心)으로 작은 성(城) ‘아이 성(城)’에서의 참패(慘敗)를 당하였고, 아간과 그의 가족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犯)하였다. 우리도 이 교훈(敎訓)을 깊이 적용(適用)하자.
○. <아간의 사건(事件)에서 배울 교훈(敎訓)>
⑴. 죄는 밝혀내어야 하고 책망(責望) 받아야 함 (수7:16)
⑵.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죄를 축소하게 하지 않는다.
⑶. 회개(悔改)없는 고백(告白)은 무가치(無價値)한 것임 (수7:20)
⑷. 아간은 아무 부담도 느끼지 않았음
⑸. 정당함이 입증된 하나님의 방법(方法)
⑹. 아간의 탐심(貪心)의 성장(成長) (수7:21)
⑺. 영혼(靈魂)을 주고 교환(交換)함
⑻. 하나님은 깨끗한 생애(生涯)를 요구하심 .
○. 아간의 탐심(貪心)의 성장(成長) (수7:21)
아간은 죄에 대한 식별력이 무디어지고 쉽게 유혹의 밥이 될 때까지 그의 마음속에 탐심과 기만성을 길러 왔었다. 알고 있는 어떤 죄에 빠져드는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은 두 번째는 더욱 쉽게 정복될 것이다. 첫 번째의 범죄가 유혹자에게 문을 열어 주어서 유혹자는 점차로 모든 저항하는 세력을 쳐부수고 그 영혼의 최후의 거점을 완전히 정복한다. 아간은 탐심의 죄에 대해서 자주 반복되는 경고를 들어 왔었다. 하나님의 율법은, 확실하게 또 적극적으로 도둑질과 모든 사기 수단을 금해왔지만 그는 계속 죄를 품고 있었다. 그가 조사를 받고 공개적으로 책망을 받지 않았다면 그는 더욱 더 담대해졌을 것이고 경고하는 말들은 점차로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어서 끝내는 그의 영혼이 암흑의 사슬에 묶이고 말았을 것이다(사인즈 1881. 4. 21).”(화잇주석, 수 7:21)
○. <정직(正直)한 것을 높이시고 부정(否定)을 저주(詛呪)하신 하나님>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 하시느니라. 속이는 저울은 공정과 공평의 외양으로 포장된 모든 불공정 거래, 이기심과 부정을 숨기려는 모든 계략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행습을 손톱만큼도 찬성하지 않으신다. 그는 모든 거짓을 미워하시고 모든 이기심과 탐심을 몹시 싫어하신다. 그는 인정머리 없는 거래를 참지 않으시고 보복하시되 그와 같이 보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해서 정직하게 재물을 얻는 사람들에게 번영함을 주실 수 있다. 그러나 이기적인 행동으로 취득한 모든 것 위에는 저주를 내리신다.”(화잇주석, 잠 11:1)
○. <보고 탐(貪)내어 가졌나이다.>
‘보다’, ‘탐내다’, ‘가지다’란 말에 각각 ‘라아’, ‘하마드’, ‘라카’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창 3:6에 나오는 ‘인간의 타락’ 기사와 흡사하다. 즉 하와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에 ‘먹음직도 하고 보임직도 하고 … 탐스럽기도’ 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열매를 따먹었다. 이러한 사실은, 모든 죄는 먼저 보는 것에서 시작되어 보이지 않는 탐심이 생기게 되고, 결국은 사망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약 1:15, 요일 2:16).(수 7:26, 만나주석)
○. <괴롭게 하였느냐 … 괴롭게 하시리라. (수7:25)>
여호수아가 절망에 빠진 아간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은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잔인한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를 타락시키고 어지럽히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보여주려고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해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시작될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그 전쟁의 언약적 의(義)의보다는 전쟁의 노획물에 더 마음을 쓰고, 급기야는 아간처럼 탐욕으로 기울어질 우려가 나머지 군사들에게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수 7:26, 만나주석)
○. <이스라엘의 죄는 오늘날의 죄임 (사 58:1-4 인용)>
이 경고가 이사야에게 주어졌던 시대의 야곱의 집은 매우 열심이 있는 백성들이었고, 매일 하나님을 찾으며 그분의 뜻을 알기 원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진리 가운데서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지도 않았으며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죄에 대한 슬픔의 표시를 한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교만과 탐심을 품고 있었다. 그들이 외식적인 겸손을 나타내는 바로 그 시간에 그들 수하에 있는 사람들이나 혹은 고용인들에게 힘든 일을 무리하게 강요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행해 온 모든 선(善)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봉사는 매우 낮게 평가하였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고 압제하였다. 그러고서도 그들의 금식만은 그들의 선행이나 되는 것으로 아주 높이 평가하였다.”(화잇주석, 사 58:1-4)
○. 그(아간)는 자기가 그 물건(物件)들을 훔칠 때의 양상(樣相)을 고백(告白)한다.
⑴.죄는 눈에서 시작(始作)했다.
그는 마치 이브가 금단의 과실을 보듯 이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았고 이상스럽게도 그 모양에 매혹 당했었다. 눈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겪어야 할 마음의 고통을 살펴보라. 또한 만일 우리가 방황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그것 때문에 반드시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라고 하는 이 계약을 우리의 눈과 채결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살펴보라. "붉은 포도주를 쳐다보지 말며", 아름다운 여자를 눈여겨보지 말라. 너를 실족케 하는 이런 것에 대해 오른쪽 눈을 감아라. 그러면 그 눈을 뽑아 던져야 하는 일을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이다(마 5:28, 29).
⑵. 그것은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왔다.
"내가 그것들을 탐내었습니다." 라고 그는 고백한다. 이와 같이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낳게 되었다. 죄짓는 행동에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자들은 죄의 욕망에서 스스로를 억제하고 재갈 먹어야 한다. 특별히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욕망을 억제해야 되는데 우리는 이것을 특별히 "탐욕" 이라고 부른다. 오,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되느니라. 아간이 이 물건들을 신앙의 눈으로 보았더라면 그것들은 저주받은 것들임을 알았을 것이며 그리고 그것들을 두려워했었을 텐데 육욕의 눈으로만 바라보니 그것들이 아름다운 것들로 보이고 탐심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그를 파멸시킨 것은 보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육욕이었다.
⑶. 그가 이 물건들을 범(犯)했을 때 그는 부지런히 그것들을 감추려고 했다.
금지된 물건들을 취하게 되자 그것들이 발각되지나 않을까 겁이 나서 자기가 얻은 물건을 감추어 두고 절대로 내놓지 않겠다는 결심의 하나로 그것들을 "땅속에 감추었다." 이처럼 아간은 사건의 전모를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시는 선고를 정당화시켰다. "죄의 속임수" 를 살펴보라. 일을 저지를 때는 즐겁던 것이 되돌아보면 쓰라린 것이 되고, 마침내 그것은 뱀처럼 사람을 물어뜯고야 만다. 특별히 부정으로 얻은 재물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라.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자들이 어떻게 기만당하는가! "그가 재물을 삼켰을지라도 다시 토할 것이다" (욥 20:15).(수 7:16~26, 매튜헨리)
○. 아간과 함께 처형(處刑)된 자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 죄악으로 망(亡)한 자가 그 사람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수 22:20).
(1) 도적(盜賊)질한 물건들이 함께 멸망(滅亡)되었다.
옷은 원래 여리고성 안에 있던 가소성(可塑性) 물질과 함께 불태워져야 했고 은(銀)과 금(金)은 때려 부수어 녹이고 파손(破損)하여 절대로 다른 곳에 사용되어지지 못하도록 아간의 다른 재물(財物)과 함께 "돌무더기" 아래 있는 한 잿더미 속에 묻혀야 했다.
(2) 그의 다른 모든 소유(所有)도 멸절(滅絶)되어졌다.
장막과 가구뿐만 아니라 "소와 나귀와 양들" 까지도 멸절되었다. 이것은 부당하게 얻은 재물들, 특히 신성모독으로 얻어진 재물들은 다른 곳에 이용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물건들이 덧붙여져 있던 여타의 소유물까지도 망하게 되고 황폐케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우화에 나오는 독수리가 제단에 놓여 있는 고기를 훔쳐 달아났는데 그 고기에 석탄불이 붙어 있어서 자기의 둥우리를 모두 태워 버렸다는 것과 같다(합 2:9, 10; 슥 5:3, 4). 자기 몫보다 더 많이 긁어모으려 하는 자는 자기 것까지 잃는다.
(3) 그의 자녀(子女)들도 그와 함께 처형(處刑)되었다.
어떤 이들은 자녀들을 그들의 아버지의 처형에 참관자가 되도록 "이끌려져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24절).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도 그런 아버지와 함께 처형된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25절이 의하는 바에 의지한 것이다. 거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돌로 치고 그 후에 그들을 불태웠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통치자들이 아버지의 죄 때문에 자녀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분명히 말씀하시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그 율법에 구속당하지 않으신다. 이 경우에도 하나님은 범죄자와 그리고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을 불태우라고 분명히 명령하셨다(15절). 아마도 자녀들이 이 악행의 보조자와 교사자들이 되어 그 저주받은 물건을 훔치는 일을 도왔을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물건을 숨기는 일을 도왔을 것이라는 생각은 상당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사후(事後) 종범이 된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 범죄에 지극히 적은 가담자였다고 해도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리하여 벌의 공유자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일로도 영광을 받으셨고 집행된 심판은 더욱 더 두려운 것으로 되었다. (수 7:16~26, 매튜헨리)
○. 오늘날 아간의 죄를 가리켜 별로 심각한 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자신의 죄를 변명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는 죄의 성격과 그 결과를 깨닫지 못한 연고요, 하나님의 거룩성과 그분의 요구를 인식하지 못한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명심하든 않든, 우리가 그 거룩한 율법의 계명들을 모두 다 순종하든 안하든 간에 하나님은 그런 문제에 대하여 별로 까다로운 분이 아니시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간을 취급하신 성경의 기록은 우리들에게 하나의 경고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죄있는 사람을 결코 결백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
(02월28일) (火) <유다의 마음>
(Q)~예수님의 열둘 제자(弟子)중 한 사람이었고 병자(病者)를 고치고 귀신(鬼神)을 쫓아내는 능력의 사도(使徒)였던 가롯 유다가 무엇 때문에 넘어졌고 실패(失敗)하였는가? (요한복음 12:1~8; 마태26:14~16)
(A)~○. ‘유다’는 본래 돈에 대하여 강(强)한 애착(愛着)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런 말을 할 만큼 늘 부패(腐敗)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악(惡)한 탐욕(貪慾)의 정신(精神)을 길러서 마침내 그것이 그의 생애(生涯)의 동기(動機)를 지배(支配)하도록 했다. 유다는 자신의 연약(軟弱)함을 예수님께 온전히 내려놓지 않고 마음의 욕심(慾心)에 따라 행동(行動)한 유다는 돈에 대한 애착(愛着)이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사랑을 능가(凌駕)했다. 한 가지 죄(罪)의 노예(奴隸)가 됨으로 인(因)해 그는 자기 자신을 사단에게 맡기게 되어 그같이 깊은 죄(罪)에까지 빠지게 되었다”(소망, 716)
그러므로 우리는 유다의 교훈(敎訓)을 통해 지혜(智慧)로운 선택(選擇)을 해야 한다.
○. <유다의 교훈(敎訓)>= (유다는) <소망716~717 참조>
⑴.세속적인 야망(野望)=탐심(貪心)과 돈에 대한 사랑을 포기(抛棄)하지 않았다.
⑵."예수님"께서 하시는 인격형성(人格形成)에 자신을 복종(服從)시키지 않았다.
⑶.자신의 판단(判斷)과 의견(意見)을 유지(維持)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⑷.비판(批判)하고 비난(非難)하는 성질을 길렀다.
⑸.스스로 자신의 자격을 높이 평가(評價)하였으며
⑹.판단력(判斷力)능력(能力)에 있어서 그의 형제들을 매우 열등(劣等)한 것으로 바라보았다.
⑺.저들은 기회(機會)를 보지 못하며 환경을 이용(利用)하지 못한다고 생각 하였다.
⑻.모든 제자를 헤아려 보고는 자신의 능력이 없었다면 은 교회는 때때로 당황하고
난처(難處)한일을 당할 것이라고 자기 자신을 칭찬 하였다.
⑼.자신은 실패(失敗)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⑽.스스로 평가하기를 자기는 사업에 영예(榮譽)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나타내었다.
○.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낼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유다는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시키는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 그는 세속적인 야망과 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그리스도의 사신의 지위를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거룩하신 분께서 하시는 인격 형성에 자기 자신을 복종시키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의 판단과 의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비평하고 비난하는 성질을 길렀다.”(소망, 717)
“예수께서는 유다의 탐심을 날카로운 책망으로 대하시지 아니하시고 거룩하신 인내로 이 과실을 범하는 사람을 참으시는 동시에 예수께서는 유다의 마음을 펼쳐 놓은 책을 읽듯이 감찰하신다는 증거를 그에게 보이셨다(소망 293-295).”(화잇주석, 막 3:13-19)
○. “유다의 생애의 기록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의 생애가 슬픈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을 보여 준다. 만일 유다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마지막 여행 전에 죽었더라면 그는 열두 제자 중에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한 사람으로 여겨졌을 것이며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수세기를 통하여 그를 따라다니고 있는 증오심은 없었을 것이지만, 그렇게 된 것은 그의 역사의 종말에 나타난 특질들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성격이 세상에 공개되도록 하신 데는 한 가지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유다처럼 신성한 직분을 배반할 모든 자들에게 일종의 경고가 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소망, 716)
○. “유다는 본래 돈에 대하여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런 말을 할 만큼 늘 부패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악한 탐욕(貪慾)의 정신을 길러서 마침내 그것이 그의 생애의 동기를 지배하도록 했다. 돈에 대한 애착이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사랑을 능가했다. 한 가지 죄의 노예가 됨으로 인해 그는 자기 자신을 사단에게 맡기게 되어 그같이 깊은 죄에까지 빠지게 되었다”(소망, 716)
○.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낼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유다는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시키는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 그는 세속적인 야망과 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그리스도의 사신의 지위를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거룩하신 분께서 하시는 인격 형성에 자기 자신을 복종시키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의 판단과 의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비평하고 비난하는 성질을 길렀다.”(소망, 717)
○. 유다는 모든 제자들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고 살림꾼으로서 자신의 수완이 아니면 교회는 때때로 혼란과 낭패를 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우쭐했다. 유다는 자기는 실패를 모르는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유다는 자신을 이 사업에 영예를 더해 주는 사람이라고 평가했으며, 항상 그와 같이 자신을 나타냈다. 유다는 자신의 품성의 연약함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그것을 알고 고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처지에 놓이게 하셨다. 제자들을 위한 회계로서 그는 그 적은 집단의 필수품을 준비하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할 책임을 지고 있었다.”(소망, 717)
(03월01일) (水) <아나니아와 삽비라>
(Q)~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헌금(獻金)을 드렸지만 그 결과는 비극(悲劇)으로 끝났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하여 주시는 교훈(敎訓)은 무엇인가? (사도행전 5:1~11)
(A)~○.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올바른 동기(動機)를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약(誓約)했지만 “탐욕(貪慾)과 기만(欺瞞)과 위선(僞善)에 대한 하나님의 가중(加重)히 여기심에 대한 이 실례는 초대 교회뿐만 아니라 장래(將來)모든 세대에게 하나의 위험신호(危險信號)로 주신 바 되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처음에 마음에 품은 것은 탐심(貪心)이었다. 저희가 주님께 약속한 것의 일부분을 자신들을 위하여 보류(保留)하여 두고자 한 욕망(慾望)때문에 그들은 마음에 가득한 탐심(貪心)을 제어(制御)하지 못함으로 죄를 짓게 되었으며 기만(欺瞞)과 위선(僞善)을 행(幸)하게 되었다.”(행적, 74)
○. <아나니아와 사비라를 통하여 주는 교훈(敎訓)>
(1)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경외심(敬畏心)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게 하였으며
(2) 하나님이 임재(臨在)해 계시는 교회에서는 모든 거짓과 위선적(僞善的)인 행동이 숨겨지거나 묵인(黙認)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3) 동시(同時)에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순결(純潔)하고 거룩해야 하는 것을 돌아오는 후대(後代)의 교회들에게 알려주는 교훈(敎訓)과 경계(警戒)가 되었다.
○. “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탐욕(貪慾)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성령을 슬프시게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약속을 후회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큰일을 하려는 소망으로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던 그 아름다운 축복의 감화를 잃었다. 그들은 저희가 너무 조급하게 결정하였으므로 그들의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 문제를 여러 번 이야기하였고, 그들의 서약을 이행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한 형제들을 돕기 위하여 그들의 소유를 나누어 준 사람들이 신자들 중에 크게 존경을 받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께 엄숙히 헌납하였던 것을 바치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형제들이 아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고의적으로 재산을 팔아 그 모든 수입을 공공 기금으로 바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큰 몫을 따로 떼어 두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공공 자금으로 그들의 생계도 유지하고 동시에 형제들의 존경을 크게 얻고자 하였다.”(행적, 72)
○. “사도들은 교회 안에서 입으로는 경건하다고 공언하면서도 불의한 것을 마음에 몰래 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기만적인 일을 하였다. 그들은 겉으로 볼 때 하나님께 완전히 희생한 것처럼 보였지마는 실상은 탐심(貪心)을 품고 재산의 일부를 그들 자신들을 위하여 감추어 두었다. 진리의 성령께서는 그 거짓된 자들의 본성을 사도들에게 드러내 주셨고, 하나님의 징벌은 그 더러운 오점을 제거하고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게 해주셨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낱낱이 가려내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교회에 나타난 현저한 증거는 모든 위선자와 악인들에게 두려움이 되었다. 그들은 습관과 품성에 있어서 항상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사람들과 언제까지나 같이 지낼 수는 없었다. 핍박과 시련이 이를 때에 진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기를 꺼리지 아니하는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같이 하여 핍박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교회는 비교적 순결을 유지했다. 그러나 박해가 그치자 철저하지도 못하고, 헌신하지도 아니한 신자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사단의 발판 노릇을 하게 되었다.”(쟁투, 44)
○. 이 일로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하고 순결해야 할 것과, 어떠한 불의도 함께 할 수 없다는 진리를 드러내었다.
○. 초대 교회의 일원인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夫婦)의 위선적(僞善的)인 믿음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심으로써 교회란 단순히 사람들이 모인 인간단체가 아니라 성령(聖靈)께서 임재(臨在)하여 다스리시는 신성(神聖)한 하나님의 전(殿)임을 후대(後代)에 오는 교회에 상징적(象徵的)으로 교훈(敎訓)하고 있다.
○. 이것은 사도들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교회에 임재 하셔서 친히 다스리시며 죄악을 벌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며 또한 교회가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들을 과시하는 사사로운 종교 단체가 아닌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신성한 기관이라는 것을 다시 새롭게 각성한 데서 우러나오는 경건한 두려움을 의미한다.
○. 바나바의 자기희생의 이야기를 말하면서 누가가 칭찬한 사실은 그런 행위가 교회의 칭찬을 받았음을 드러내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나니아는 더 적은 희생을 하고도 동일한 칭찬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보인다. 남의 호감을 사려는 갈망은 탐욕에 대해 부분적 승리를 거둘 정도밖에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탐욕은 정직에 대해 승리를 거둘 만큼 강했다. 팔고자 하는 충동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왔다. 그러나 판매 대금의 일부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으려는 충동은 악했다. 그런 행위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는 시도였다. 그 죄는 어떤 면에서 게하시의 죄와 흡사했지만(참조 왕하 5:20~27 주석), 오순절 기적과 성령의 인도 아래 이루어진 교회의 특출한 발전 배경에 비추어 볼 때 훨씬 더 흉악했으며, 더욱 엄한 형벌을 받았다. (행 5:1~11, 재림교주석)
○.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기독교신앙(基督敎信仰)을 고백(告白)하였고 "겉으로는 훌륭히 이를 입증(立證)하였으나,"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조롱(嘲弄)하고 다른 사람들을 속였던 것이다. 그래 가지고는 기독교신앙(基督敎信仰)에 철저(徹底)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게 된다. 그리스도를 따라는 척하지만 말라는 것이 부자청년(富者靑年)에게 주어진 충고(忠告)였다. 이 사실을 지적(指摘)받자 그는 그의 말대로 할 수 없음을 알고 "슬픈 표정(表情)으로 떠나갔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제자(弟子)의 조건(條件)을 따를 수 있는 척하였고 그러므로 제자(弟子)됨의 명예(名譽)를 얻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참으로 그들은 제자이지 못하였고 그러기에 제자로서의 자격을 잃고 말았다. 마음 속으로는 믿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는 정중하게 신앙을 고백(告白)하는 것은 흔히 그 사람에게 치명적(致命的)인 것임을 기억하자. (행 5:1~11, 매튜헨리)
(03월02일) (木) <탐심(貪心) 극복(克服)하기>
(Q)~거짓말, 간음(姦淫), 도둑질, 우상숭배(偶像崇拜), 안식일(安息日)성수(聖守)등등은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적어도 외적(外的)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탐심(貪心)을 내적(內的)이므로 이를 어떻게 하여야 극복(克服)할 수 있을까? (이사야57:17, 누가복음12:15, 로마서7:7~8, 골로새서3:5, 데살로니가전서2:5, 베드로전서2:3, 고린도전서 10:13)
(A)~○. 외적(外的)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행동의 죄악(罪惡)도 극복(克服)하기가 무척 힘든데, 하물며 내적(內的)인 마음속에 깊이 뿌리 내린 탐심(貪心)과 탐욕(貪慾)을 제어(制御)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자(救援者)되시는 예수님의 본(本)을 따라 말씀과 기도(祈禱)를 통해 그분께 의지(依支)하며,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 “충성된 청지기 직분은 또한 우리로 탐욕과 이기심을 극복하고 승리를 얻도록 도와준다. 인간의 가장 큰 원수 가운데 하나인 탐욕은 십계명에서 정죄되고 있다. 예수께서도 그것에 대해 경고하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규칙적으로 드리는 헌금은 우리의 생애에서 탐욕과 이기심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교리, 256)
○. “충성(忠誠)된 청(聽)지기 직분(職分)은 또한 우리로 탐욕(貪慾)과 이기심(利己心)을 극복(克服)하고 승리를 얻도록 도와준다. 인간의 가장 큰 원수(怨讐) 가운데 하나인 탐욕은 십계명에서 정죄(定罪)되고 있다. 예수께서도 그것에 대해 경고(警告)하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규칙적(規則的)으로 드리는 헌금(獻金)은 우리의 생애에서 탐욕(貪慾)과 이기심(利己心)을 제거(除去)하는 데 도움이 된다.”(교리, 256)
○. “충성된 청지기 직분은 또한 우리로 탐욕과 이기심을 극복하고 승리를 얻도록 도와준다. 인간의 가장 큰 원수 가운데 하나인 탐욕은 십계명에서 정죄되고 있다. 예수께서도 그것에 대해 경고하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규칙적으로 드리는 헌금은 우리의 생애에서 탐욕과 이기심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교리,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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