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핵심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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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2-14 11:51 조회3,52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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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지극(至極)히 작은 자(者) 하나에게
(2월 18일 (안) / 일몰: 오후 6시 14분)
<서언(緖言)>
우리 이웃 중에 전쟁(戰爭)이나 사고(事故)나 질병(疾病)이나 환경(環境)등등 불가피(不可避)한 상황(狀況)으로 인하여 가족을 잃은 어려운 사람들이 “우리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者)”들이라 표현하는바 이들을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사명(使命)이고 그리고 이러한 사명을 하는 것이 청(聽)지기 직분(職分)인 것입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재물(財物)을 우상(偶像)으로 삼기보다는 영원(永遠)한 소망(所望)을 선택하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運命)을 결정할 문제가 될 것입니다.
(02월12일) (日) <예수님의 생애(生涯)와 사역(使役)>
(Q)~"예수님"의 생애(生涯)와 사역(使役)은 어떠하셨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경건(敬虔)과 하나님께서 판단(判斷)하시는 경건의 차이(差異)는? (이사야 61:1~2, 야고보서 1:27)
(A)~○.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救援)하시기 위(爲)함이다. 이것이 결론(結論)이요 전부(全部)이다. 아울러 예수님은 천국복음(天國福音)을 전파(傳播)하시고, 가르치시고, 모든 병(病)과 약(弱)한 것을 고쳐주시는 사역을 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가난이나 불행(不幸)은 하나님의 저주(詛呪)라는 생각으로 인(因)해 가난하거나 불행한 형편(形便)에 처(處)해있는 자들에게 거의가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와 사명은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예수님 자신의 사명(使命)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정결(淨潔)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敬虔)은 고아(孤兒)와 과부(寡婦)를 그 환란(患亂)중에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世俗)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판단(判斷)하시는 경건(敬虔)이라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02월13일)(月)<가난한 자(者)들을 위(爲)한 하나님의 대책(對策)>
(Q)~가난한 자(者)들을 위(爲)한 하나님의 대책(對策)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가난한 자(者)들을 돌보라하셨을까?
(A)~○.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비(慈悲)와 사랑에 입각한 규례(規例)까지 만들어 가난한자, 나그네, 과부(寡婦)나 고아(孤兒)들 등등을 위(爲)하여 그들을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라는 것이 가진 자들의 의무(義務)라고 성경 곳곳에 기록하고 있다. (시편82:3~4, 잠언28:27, 잠언29:14, 출애굽기 23:10~11, 레위기23:22, 례위기 19:9~10)
(02월14일) (火) <젊은 부자(富者) 관원(官員)>
(Q)~성경 (마태복음19:16~22, 마가복음10:17~22, 누가복음 18:18~23절)에서 젊은 부자(富者)관원(官員)으로부터 배울 교훈(敎訓)은 어떤 것이 있을까?
(A)~젊은 부자관원(富者官員)은
⑴.영원(永遠)대신 재물(財物)을 선택(選擇)하였다.
⑵.물질적(物質的)인 풍요(豊饒)가 평안(平安)과 행복(幸福)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⑶.재물(財物)의 헛됨을 가장 잘 설명한 책(冊)이 전도서(傳道書)이다.
⑷.영적(靈的)인 것에 관심(關心)은 있었으나 재물(財物)에 우선순위(優先順位)를 두었다.
⑸."예수님"의 초청(招請)으로 제자(弟子)가 될 수 있는 기회(機會)를 놓쳤다.
⑹.영생(永生)의 기회(機會)를 거절(拒絶)하고 잠시 후(暫時後)에 사라질 재물(財物)을 택(擇)하였다.
⑺.예수님의 말씀은 엄격(嚴格)하고 가혹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지혜와 영생의 말씀이었다.
⑻.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만이 관원에게는 유일(唯一)한 구원(救援)의 기회였다.
(02월15일) (水) <삭개오>
(Q)~예수님을 만난 부자(富者) 삭개오와 젊은 부자법관(富者法官)의 공통점(共通點)과 차이점(差異點)은 무엇이었는가? (누가복음 19:1~10절, 마태복음 19:16~22절)
(A)~<삭개오와 부자법관(富者法官)의 공통점(共通點)>
⑴.둘 다 부자(富者)였다.
⑵.둘 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다.
⑶.둘 다 영생(永生)을 얻기 원(願)했다.
<부자법관과 삭개오와 다른 점(差異點)>
⑴.삭개오는 가난한자들에게 소유(所有)절반을 주겠다고 했다.
⑵.예수님께서는 참된 회심(悔心)의 표시(表示)로 받아 주셨다.
⑶.삭개오는 자기 자신(自己自身)과 재물(財物)과의 관계(關係)를 올바르게 정립(正立)하고 있었다.
⑷.삭개오는 그가 가진 재물(財物)을 소중히 여기기는 했지만 젊은 부자법관(富者法官)과 달리 재물(財物)이 그의 우상(偶像)이 되지는 않았다.
⑸.삭개오는 영적확신(靈的確信)을 경험(經驗)하였고 자신의 삶에 변화(變化)를 이루고자 했다.
⑹.삭개오는 백성들의 미움의 대상(對象)인 로마인을 위해서 세리(稅吏)로 큰돈을 번 부유(富裕)한 유대인 이였다.
⑺.삭개오는 회심의 증거(證據)로 자기재산(自己財産)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02월16일) (木) <욥을 생각(生覺)하라>
(Q)~(욥기 1:8절)에 하나님께서 욥에 대하여 어떻게 소개(紹介)하시며, 욥의 성품(性稟)의 비밀(秘密)을 어떤 모습으로 묘사(描寫)되어 있는지요? (욥기 29:12~16)
(A)~하나님께서 친히 욥에 대하여 “순전(純全)”하고 “정직(正直)”하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최고의 찬사(讚辭)를 받았던 욥은 사단의 시험(試驗)이 있기 전(前)부터 적극적(積極的)인 선행(善行)을 실천(實踐)하여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던 의(義)로운 사람인 욥은 당시 지구상(地球上)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완벽(完璧)한 사람이었다. 욥은 재난(災難)과 아내의 비난(非難)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버리기를 거부(拒否)하였던 하나님의 실실한 의(義)로운 사람이었다.
<말미부록(末尾附錄)>
제7과 지극(至極)히 작은 자(者) 하나에게
(2월 18일 (안) / 일몰: 오후 6시 14분)
(기억절(記憶節))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福) 받을 자(者)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豫備)된 나라를 상속(相續)받으라”(마 25:34).
<서언(緖言)>
우리 이웃 중에 전쟁(戰爭)이나 사고(事故)나 질병(疾病)이나 환경(環境)등등 불가피(不可避)한 상황(狀況)으로 인하여 가족을 잃은 어려운 사람들이 “우리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者)”들이라 표현하는바 이들을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사명(使命)이고 그리고 이러한 사명을 하는 것이 청(聽)지기 직분(職分)인 것입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질 재물(財物)을 우상(偶像)으로 삼기보다는 영원(永遠)한 소망(所望)을 선택하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運命)을 결정할 문제가 될 것입니다.
(02월12일) (日) <예수님의 생애(生涯)와 사역(使役)>
(Q)~"예수님"의 생애(生涯)와 사역(使役)은 어떠하셨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경건(敬虔)과 하나님께서 판단(判斷)하시는 경건의 차이(差異)는? (이사야 61:1~2, 야고보서 1:27)
(A)~○.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救援)하시기 위(爲)함이다. 이것이 결론(結論)이요 전부(全部)이다. 아울러 예수님은 천국복음(天國福音)을 전파(傳播)하시고, 가르치시고, 모든 병(病)과 약(弱)한 것을 고쳐주시는 사역을 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가난이나 불행(不幸)은 하나님의 저주(詛呪)라는 생각으로 인(因)해 가난하거나 불행한 형편(形便)에 처(處)해있는 자들에게 거의가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와 사명은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예수님 자신의 사명(使命)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정결(淨潔)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敬虔)은 고아(孤兒)와 과부(寡婦)를 그 환란(患亂)중에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世俗)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판단(判斷)하시는 경건(敬虔)이라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초점(焦點)이시다. 구약(舊約)은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의 구속주(救贖主) 메시야로 제시(提示)한다. 신약(新約)은 그분을 구주(救主) 예수 그리스도로 계시(啓示)한다. 각 장(章)마다 상징이나 혹은 실제 상황을 통해서 그분의 사역과 품성의 어떤 면을 계시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궁극적(窮極的) 계시이다.”(교리, 14)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구원(救援)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로 무거운 책임을 지고 계셨다. 그분께서는 인류의 원칙과 목적에 결정적인 변화가 있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잃어버린바 될 것을 아셨다. 그것이 그분의 심령을 누르는 부담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 위에 지워져 있는 무거운 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분께서는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장년 시절을 통하여 고독하게 걸어 가셨다. 그러나 그분 앞에는 언제나 하늘이 열려 있었다. 날마다 그분께서는 시련과 유혹을 당하셨다. 날마다 그분께서는 죄악을 목격하셨고, 당신께서 축복하시고, 구원(救援)하기 위하여 온 사람들에게 작용(作用)하는 죄악의 세력을 보셨다. 그럴지라도 그분께서는 실망하거나 낙담(落膽)하지 않으셨다.”(치료, 18)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시는 한편 부유(富裕)한 사람들에게 접근(接近)하는 방법을 발견하고자 연구하셨다. 그분께서는 부유(富裕)하고 교양(敎養) 있는 바리새인들, 유대의 귀족(貴族)들, 로마의 집권자들로 더불어 교제(交際)하고자 노력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초청을 받아들이시고 그들의 잔치에 참석하시고 당신 자신이 그들의 취미와 직업에 친숙하시므로 그들의 마음을 얻어 그들에게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한 부(富)를 보여주고자 하셨다.”(치료, 24)
○.“때때로 그분께서는 사단의 지배(支配) 아래 들어가 그 올무에서 벗어날 힘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셨다. 낙심(落心)되고, 병(病)들고, 유혹(誘惑)받고 타락(墮落)한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가장 부드러운 자비(慈悲)의 말씀, 곧 그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그분께서는 영혼(靈魂)의 원수들과 백병전(白兵戰)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셨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분께서는 인내(忍耐)하도록 격려하고 그들이 승리할 수 있다는 보증(保證)을 해 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 곁에 있으며 그들에게 승리를 줄 것이었기 때문이다.”(치료, 26)
(02월13일)(月)<가난한 자(者)들을 위(爲)한 하나님의 대책(對策)>
(Q)~가난한 자(者)들을 위(爲)한 하나님의 대책(對策)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가난한 자(者)들을 돌보라하셨을까?
(A)~○.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비(慈悲)와 사랑에 입각한 규례(規例)까지 만들어 가난한자, 나그네, 과부(寡婦)나 고아(孤兒)들 등등을 위(爲)하여 그들을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라는 것이 가진 자들의 의무(義務)라고 성경 곳곳에 기록하고 있다. (시편82:3~4, 잠언28:27, 잠언29:14, 출애굽기 23:10~11, 레위기23:22, 례위기 19:9~10)
<가난한 자와 고아(孤兒)를 … 판단(判斷)하며.>
가난한 자’(달)란 육체적인 힘이나 재산(財産), 물질(物質) 등의 면에서 결핍(缺乏)된 자, 부족한 자들에게 적용(適用)되는 말이다(Alexander). 율법에서는 이런 가난한 자(者)의 고아를 위하여 공정(公正)하게 편벽(偏僻)됨이 없이 재판(裁判)할 것을 엄정(嚴正)히 명시(明示)하고 있다(출 23:3,6, 신 24:17, 27:19). 이것은 연약(軟弱)한 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준다.
<곤란(困難)한 자(者)와 … 공의(公義)를 베풀지 며.>
‘곤란한 자’(아니)란 ‘억압(抑壓)받는 자’, ‘고통(苦痛)받는 자’(the afflicted, KJV, RSV)란 뜻이 있으나, 이를 ‘가난한 자’(출 22:25, 레 19:10, 23:22)로 변역(變域)하기도 했다. 이는 연약(軟弱)한 자들을 돌보시고 보호(保護)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준다.
<가난한 자와 … 건질지니라.>
‘구원(救援)하여’의 히브리어 ‘팔라트’은 ‘몰래 나오게 하다’, ‘탈출(脫出)하게 하다’의 뜻이다. 그리고 ‘악인(惡人)들의 손’이란 ‘손’이 힘, 능력 등을 상징(象徵)하는 바(겔 1:3), 연약(軟弱)한 자들을 억압(抑壓)하는 악인(惡人)들의 힘이나 권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건질지니라.(나찰)는 ‘움켜 빼앗다’, ‘(어려운 상황에서) 구출(救出)하다’의 뜻이 있다.” (시 82:3~4, 만나주석)
<궁핍(窮乏)하지 아니하려니와.>
하나님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행하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간주하시기 때문에 궁핍한 중에 있는 자들에게 현명(賢明)하게 주는 것은 주는 자를 가난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참조 11:24~26; 19:17). 이기심(利己心)은 하나님이 그의 불쾌(不快)하심을 보여 주기 위하여 행할 수 있는 어떤 것과 상관(相關) 없이, 그것이 가진 바로 그 본질(本質)로 말미암아 저주(詛呪)를 가져온다(학 1:9~11). 따라서 간접적(間接的)으로 등한(等閒)히 여김을 받은 가난한 자들은 그들의 곤경을 묵살(黙殺)하는 사람의 머리 위에 많은 저주를 쌓게 된다. (잠 28:27, 재림교주석)
<자비(慈悲)로운 자에게 대한 약속(約束).>
"가난한 자를 구제(救濟)하는 자"는 그 구제행위(救濟行爲)로 인해 더 가난해지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그는 궁핍(窮乏)하지 않을 것이다. 가진 게 너무 적고 궁핍해질 위험이 있거든 그 적은 소유(所有)로 구제(救濟)하라. 그러면 무일푼이 되는 것을 예방(豫防)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야에게 베푼 사렙다 과부(寡婦)의 온정(溫情)은(그녀는 맨 먼저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가져왔다) 한 움큼의 양식(糧食)밖에 남지 않았을 때 자기가 가진 것을 전부 다 털어 버릴 정도였으나 그가 받은 보상(報償)은 어떠했던가! 많이 가진 자는 그것으로 많이 구제(救濟)할 것이다. 그러면 그 소유가 적어지게 되는 일을 방지(防止)할 수 있을 것이다. 경건(敬虔)한 자비심(慈悲心)으로 구제(救濟)한 것 때문에 그와 그의 소유가 부족하게 되는 일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구제(救濟)한 것을 받게 된다.
<자비심(慈悲心)이 없는 자(者)에게 대한 경고(警告)>
그는 "못 본 체하는 자" ("자기 눈을 숨기는 자":원뜻)이다. 그는 불쌍한 자의 참상(慘狀)을 보지 않고 그들의 호소(呼訴)를 살피지 않으려고 자기 눈을 기리는데, 이는 자기 눈이 자기 심금(心琴)을 울려 얼마의 구제품(救濟品)이라도 내놓게 될까봐 겁이 나서이다. 이런 자에게는 "저주(詛呪)가 많으리라." 그에게 주어지는 저주는 하나님과 사람 양쪽으로부터 오는 저주이며 그것은 까닭 없는 저주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저주는 반드시 임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가난한 자의 기도를 대적(對敵)하는 자의 형편은 비참(悲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잠 28:27, 매튜헨리)
<못 본 체 하는 자(者)>
문자적인 뜻은 ‘그 눈을 숨기는 자’이다. 행여 동정심(同情心)이라도 느낄까봐 혹은 구걸(求乞)할까봐 가난한 자로부터 그 시선(視線)을 돌리는 자 혹은 가난한 자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자를 가리킨다(시 27:9, 69:17). 이 같은 사람은 결국 예수님께 대해 무관심한 자이다(마 25:31-46). (잠 28:27, 만나주석)
<궁핍(窮乏)하지 아니하려니와.>
하나님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행하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간주(看做)하시기 때문에 궁핍한 중에 있는 자들에게 현명(賢明)하게 주는 것은 주는 자를 가난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참조 11:24~26; 19:17). 이기심(利己心)은 하나님이 그의 불쾌(不快)하심을 보여 주기 위하여 행할 수 있는 어떤 것과 상관(相關)없이, 그것이 가진 바로 그 본질로 말미암아 저주를 가져온다(학 1:9~11). 따라서 간접적으로 등한히 여김을 받은 가난한 자들은 그들의 곤경을 묵살(黙殺)하는 사람의 머리 위에 많은 저주를 쌓게 된다. (잠 28:27, 재림교주석)
(02월14일) (火) <젊은 부자(富者) 관원(官員)>
(Q)~성경 (마태복음19:16~22, 마가복음10:17~22, 누가복음 18:18~23절)에서 젊은 부자(富者)관원(官員)으로부터 배울 교훈(敎訓)은 어떤 것이 있을까?
(A)~젊은 부자관원(富者官員)은
⑴.영원(永遠)대신 재물(財物)을 선택(選擇)하였다.
⑵.물질적(物質的)인 풍요(豊饒)가 평안(平安)과 행복(幸福)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⑶.재물(財物)의 헛됨을 가장 잘 설명한 책(冊)이 전도서(傳道書)이다.
⑷.영적(靈的)인 것에 관심(關心)은 있었으나 재물(財物)에 우선순위(優先順位)를 두었다.
⑸."예수님"의 초청(招請)으로 제자(弟子)가 될 수 있는 기회(機會)를 놓쳤다.
⑹.영생(永生)의 기회(機會)를 거절(拒絶)하고 잠시 후(暫時後)에 사라질 재물(財物)을 택(擇)하였다.
⑺.예수님의 말씀은 엄격(嚴格)하고 가혹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지혜와 영생의 말씀이었다.
⑻.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만이 관원에게는 유일(唯一)한 구원(救援)의 기회였다.
젊은 부자법관(富者法官)의 재산은 그가 충실한 청(聽)지기임을 입증(立證)할 수 있도록 그에게 위탁(委託)되었던 바 그는 이 소유물(所有物)을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축복이 되도록 분배(分配)해야 할 것이었다(소망 521).
<선택(選擇)은 우리에게 있음>
그리스도의 말씀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수 24:15)는 바로 그 초청(招請)을 젊은 법관에게 주신 것이었다. 선택은 그에게 달려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가 회개(悔改)하기를 열망하셨다. 예수께서는 그의 품성의 병(病)든 곳을 그에게 보이셨으며, 청년이 그 문제를 고찰(考察)함으로써 생길 결과를 얼마나 깊은 관심으로 주목하셨던가! 만일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정하였다면 모든 일에 그의 말씀을 순종(順從)하였을 것이다. 그는 그의 야망적(野望的)인 계획에서 돌아서야 하였다. …
그는 하늘의 보화(寶貨)를 원하였지만 그의 재산이 가져 올 속세(俗世)의 유익(有益)도 또한 원(願)하였다. 그는 이런 상태에 놓여 있음을 슬퍼하였다. 그는 영생(永生)을 원(願)하였으나 자원(自願)해서 희생(犧牲)하기를 원(願)하지 않았다. 영생(永生)의 값이 너무 큰 것처럼 생각되고 “재물(財物)이 많으므로” 그는 슬픔으로 떠나갔다.(소망 519).
하나님의 계명(誡命)을 지켰다는 젊은 부자법관(富者法官)의 주장은 기만(欺瞞)이었다. 그는 재산이 자기의 우상(偶像)임을 보여 주었다. 세상을 첫째로 사랑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계명(誡命)을 지킬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선물(膳物)을 그 주신 분보다 더욱 사랑하였다. 그리스도는 청년에게 당신과 친교(親交)를 맺도록 제의(提議)하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구세주(救世主)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그의 이름이나 재물(財物)만큼 귀중(貴重)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하늘 보화(寶貨)를 위하여 보이는 그의 세상 재물을 포기한다는 것은 너무 큰 모험(冒險)이었다. 법관은 영생의 초청을 거절(拒絶)하고 떠나갔는데, 그 후(後)로 그는 세상을 자기의 경배(敬拜)를 받을 것으로 삼았다. 무수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시련(試鍊)을 통과할 때에 그리스도와 세상을 저울질해 보고 세상을 택(擇)하는 자들이 많다. 저들은 젊은 법관처럼 나는 이 분을 나의 지도자(指導者)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말하면서 구세주(救世主)에게서 떠나간다. (소망 520).
(02월15일) (水) <삭개오>
(Q)~예수님을 만난 부자(富者) 삭개오와 젊은 부자법관(富者法官)의 공통점(共通點)과 차이점(差異點)은 무엇이었는가? (누가복음 19:1~10절, 마태복음 19:16~22절)
(A)~<삭개오와 부자법관(富者法官)의 공통점(共通點)>
⑴.둘 다 부자(富者)였다.
⑵.둘 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다.
⑶.둘 다 영생(永生)을 얻기 원(願)했다.
<부자법관과 삭개오와 다른 점(差異點)>
⑴.삭개오는 가난한자들에게 소유(所有)절반을 주겠다고 했다.
⑵.예수님께서는 참된 회심(悔心)의 표시(表示)로 받아 주셨다.
⑶.삭개오는 자기 자신(自己自身)과 재물(財物)과의 관계(關係)를 올바르게 정립(正立)하고 있었다.
⑷.삭개오는 그가 가진 재물(財物)을 소중히 여기기는 했지만 젊은 부자법관(富者法官)과 달리 재물(財物)이 그의 우상(偶像)이 되지는 않았다.
⑸.삭개오는 영적확신(靈的確信)을 경험(經驗)하였고 자신의 삶에 변화(變化)를 이루고자 했다.
⑹.삭개오는 백성들의 미움의 대상(對象)인 로마인을 위해서 세리(稅吏)로 큰돈을 번 부유(富裕)한 유대인 이였다.
⑺.삭개오는 회심의 증거(證據)로 자기재산(自己財産)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세리장(稅吏長)인 삭개오는 유대인이었는데 그는 그의 동포(同胞)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 그의 계급(階級)과 재산은 그들이 미워한 직업(職業)을 통하여 얻은 보수(報酬)였으며 그것은 부정(不正)과 강탈(强奪)이란 다른 이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부자(富者)인 세무관리(稅務管理)는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전적(全的)으로 마음이 굳은 사람은 아니었다. 세속적(世俗的)이고 교만(驕慢)한 외모(外貌) 속에는 거룩한 감화를 받기 쉬운 마음이 있었다. (2소망 370)(투쟁, 301)
“진정(眞情)한 회개(悔改)의 결과는 하늘에는 기쁨이 있다(눅 15:7, 10).
죽어가는 강도(强盜)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悔改)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그에게 구원(救援)의 보증(保證)을 주셨다(눅 23:43). 삭개오가 그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였을 때, 예수는 “오늘 구원(救援)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셨다(눅 19:9).”(핵심, 구원>3. 회개와 고백)
“삭개오는 “만일 뉘 것을 토색(討索)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 19:8)라고 말했다. 그대는 동료 인간들에 대하여 한 불의(不義)한 행동을 고치기 위하여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대는 모든 상황을 원상회복(原狀回復)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가 손해(損害)를 입힌 어떤 사람들은 무덤 속으로 내려갔고, 그 결과는 그대에게 불리(不利)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번 상황(狀況)에서 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주님의 제단(祭壇)에 속건 제물(贖愆祭物)을 드리는 일이다. 그리하면 그분께서는 그대를 받아 주시고 용서(容恕)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할 수 있는 곳에서는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5증언, 339)
“삭개오는 매우 가치(價値) 없는 그에게 몸을 낮추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양(謙讓)을 보자 감동되고 놀라서 침묵(沈黙)하였다. 이제 새로 발견한 그의 주님에게 사랑과 충성을 나타내려고 그는 입술을 열었다. 삭개오는 그의 자복(自服)과 회개(悔改)를 공포(公布)할 것이다…….”
“삭개오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기 전에 그로 하여금 참된 회개(悔改)를 나타내게 한 사업(事業)을 시작했다. 사람에게 고소(告訴) 당하기 전에 그는 그의 죄를 자복(自服)하였다. 삭개오는 성령의 깨우치심에 복종(服從)하였으며 우리들과 또 고대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록하신 말씀의 가르침을 지키기 시작하였다. 주께서 오래 전에…….“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 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구름기둥에 싸여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삭개오의 첫 응답(應答)은 가난하고 고통(苦痛)당하는 자들을 동정(同情)하는 데서 나타났다...”
“삭개오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기 전에 그를 참된 참회자(懺悔者)로 분명히 보여준 사업을 시작했다.… 인간이 성령으로 깨우침을 받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그의 잘못을 인정(認定)하고 그가 사취(詐取)한 자들에게 원금(元金)과 이자 모두를 진심으로 되돌려 주도록 해야 한다. (영문시조, 1896.6.11.) (적은무리, 104)
“삭개오는 예수에 대하여 듣고 있었다. … 이 세리장(稅吏長)의 마음속에도 보다 나은 생애(生涯)를 살고자 하는 욕망(慾望)이 일어났다. … 이제 그는 크신 선생의 말씀을 듣자 하나님 앞에 죄인(罪人)임을 느꼈다. 또한 예수에 대하여 들은 말로 그의 마음속은 희망(希望)으로 불타올랐다. 회개(悔改) 즉 생애의 개혁(改革)은 그에게도 가능한 것이었다. … 삭개오는 그가 깨달은 확신을 따라서 즉시 그가 약탈(掠奪)한 것을 피해자(被害者)에게 반환(返還)하기 시작하였다.”(투쟁, 301)
(02월16일) (木) <욥을 생각(生覺)하라>
(Q)~(욥기 1:8절)에 하나님께서 욥에 대하여 어떻게 소개(紹介)하시며, 욥의 성품(性稟)의 비밀(秘密)을 어떤 모습으로 묘사(描寫)되어 있는지요? (욥기 29:12~16)
(A)~하나님께서 친히 욥에 대하여 “순전(純全)”하고 “정직(正直)”하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최고의 찬사(讚辭)를 받았던 욥은 사단의 시험(試驗)이 있기 전(前)부터 적극적(積極的)인 선행(善行)을 실천(實踐)하여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던 의(義)로운 사람인 욥은 당시 지구상(地球上)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완벽(完璧)한 사람이었다. 욥은 재난(災難)과 아내의 비난(非難)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버리기를 거부(拒否)하였던 하나님의 실실한 의(義)로운 사람이었다.
욥이 모든 것들을 잃었으므로 그들의 위로(慰勞)가 욥에게 가장 필요했을 때 그들은 죽임을 당했다. 이처럼 모든 피조물(被造物)은 하잘 것 없는 안위자(安慰者)들이다. 하나님 안에서만 우리는 항상 어려운 때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욥 1:13, 매튜헨리)
<욥기 주석(註釋)>
단 한 줄로 욥기의 복잡(複雜)한 가르침을 충분히 제시(提示)할 수는 전혀 없다.
수많은 소주제(小主題)들이 더욱 큰 주제(主題)들 속으로 짜 넣어져 있으므로 이 책 전체를 사상(思想)들의 교향곡(交響曲)과 유사(類似)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貢獻)들 중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본서의 묘사(描寫)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오묘(奧妙)함이 이보다 웅변적으로 표현된 곳을 찾아볼 수 없다. 단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인격 가운데 드러난 것을 제외하고는 사단은 하나님을 비난(非難)하며, 환경은 욥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회의심(懷疑心)을 갖도록 한다. 그리고 친구들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는 매우 영광스럽게 자신을 드러내신다. 따라서 욥은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라고 외치기에 이른다. 그토록 깊은 절망 속에서도 욥은 자기가 하나님을 잃은 것같다는 사실을 재산(財産)과 가족의 손실(損失)보다도 더욱 애통하고 있는데, 이것은 중요한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책의 중앙에 자리잡고 계신다. 어떤 때는 의혹(疑惑)의 구름에 의하여 숨겨진 것 같지만 결국에 가서는 의(義)로우시고 자애(慈愛)로우신 창조주로서 옹호(擁護)를 받으신다.”
“긍휼(矜恤)히 여기는 자는 불쌍한 자들, 고난 중에 있는 자들, 압박(壓迫)당하는 자들에게 동정(同情)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내가 부르짖는 빈민(貧民)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孤兒)를 건졌음이라 망(亡)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寡婦)의 마음이 나로 인하여 기뻐 노래하였었느니라. 내가 의(義)로 옷을 삼아 입었으며 나의 공의(公義)는 도포(道袍)와 면류관(冕旒冠) 같았었느니라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빈궁(貧窮)한 자의 아비도 되며 생소한 자의 일을 사실하여 주었으며”(욥기 29장 12-16절).”(보훈, 22)
<인생이 어찌…의(義)로우랴.>
욥은 하나님의 공의(公義)로우심을 인정했으나 그것은 그에게 문제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 인간인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義)로울 수 있는가를 알기 원한다. 그의 환경은 그의 죄 됨을 입증하려 하지만, 그의 양심은 자기의 무죄함을 증거한다. 욥의 질문은 오직 구원(救援)의 계획의 계시 안에서만 완전히 해명(海鳴)되었다. 그 계획을 제공함으로써 하나님은 “예수 믿는 자를 의(義)롭다” 하시고, 자기도 의(義)로우실 수 있다(롬 3:26). (성경주석, 욥 9:2)
“욥은 “나그네로 거리에서 자게 하지 아니하고 내가 행인(行人)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었노라”고 말했다. 사람으로 변장(變裝)한 두 천사가 소돔에 왔을 때에 롯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면서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욥 31:32; 창 19:2)라고 말했다. 제사장(祭司長)과 레위인은 이 모든 교훈(敎訓)을 잘 알고 있었으나 이 교훈을 실생활에 실천(實踐)하지 않았다. 민족적(民族的) 편견(偏見)이 강(强)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이기적(利己的)이고 편협(偏狹)하고 배타적(排他的)이 되었다. 그들은 상처(傷處) 입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가 자국민(自國民)인지 아닌지 식별(識別)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가 아마도 사마리아인일거라고 생각하고 돌아가 버렸다.”(소망, 500)
욥은 이 세상 소유를 다 빼앗기고 육체에 매우 큰 고통을 받아 그의 친척들과 친구들이 몹시 싫어하였으나 성실을 유지하였다. (행적, 575)
“의인(義人) 욥은 그의 고난(苦難) 때문에 신음하면서 그의 위로자(慰勞者)들 중 한 사람에 의해 부당(不當)하게 정죄(定罪)를 당하였을 때 자기 사정에 대하여 간청(懇請)하였다. 그는 말한다.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빈궁(貧窮)한 자(者)의 아비도 되며 생소한 자의 일을 사실하여 주었으며 불의(不義)한 자(者)의 어금니를 꺾고 그 이 사이에서 겁탈(劫奪)한 물건을 빼어내었었느니라”(욥 29:15-17).”(3증언, 5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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