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 예수님을 위한 예물들-(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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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1-23 19:57 조회3,79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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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예수님을 위(爲)한 예물(禮物)들
(1월 28일 (안) / 일몰: 오후 5시 51분)
<기억절(記憶節)>
“내게 주신 모든 은혜(恩惠)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報答)할까 내가 구원(救援)의 잔(盞)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百姓)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誓願)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편 116:12~14).
<서언(緖言)>
○.우리가 드리는 헌금(獻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배(敬拜)와 감사(感謝)를 표(表)할 수 있는 방법(方法)중에 하나이며, 하나님과의 관계(關係)를 잘 드러낼 수 있는 행동(行動)의 하나가 헌금(獻金)으로 표현 할 수 있는 것이고, 특히 하나님에 대한 은혜(恩惠)와 감사(感謝)와 축복(祝福)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實踐)의 표현으로 신실(信實)한 헌금과 예물(禮物)을 드려진다.
(01월22일) (日) <헌금(獻金)의 동기(動機)>
(Q)~하나님께 헌금(獻金)을 드리는 이유(理由)나 동기(動機)를 간략(簡略)하게 표현(表現)한다면 어떻게 정의(定義)할 수 있을까요?
(A)~○.헌금(獻金)은 하나님의 은혜(恩惠)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禮物)(눅 21:1)을 헌금(獻金)또는 ‘연보(捐補)’라고도 한다.(롬 15:26). 또한 하나님께 봉헌(奉獻)하는 것은, 은혜로 구원(救援)받고 하나님의 백성 된 자(者)의 당연한 의무(義務)요 특권(特權)으로서 구약시대(舊約時代)부터 내려오는 관습(慣習)이었다.(민 31:50). 구약시대(舊約時代)에는 율법(律法)에 따라, 십일조(十一條)와 예물(禮物)을 하나님께 바쳤고(레 27:30; 대하 34:9), 초대교회 시대(初代敎會 時代)에는 예배(禮拜)때, 성례전(聖禮典)에 쓸 빵과 포도주(葡萄酒) 등을 가지고 와서 드리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救濟)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께 예물(禮物)을 드렸다.(고후 9:8-15).
(01월23일 (月) <얼마나 드려야 할까?>
(Q)~십일조(十一條)는 말 그대로 내가 얻은 것의 10분의 일(1/10)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십일조 외(十一條 外)에 다른 헌금(獻金)은 얼마나 드려야 할까? (신16:17; 시편116:12~14)
(A)~○.우리가 드리는 헌금(獻金)의 행위와 자세(姿勢)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生命)과 구원(救援)과 물질(物質)등을 비롯하여 그 외(外)의 많은 축복(祝福)에 대한 감사(感謝)의 표현이 헌금(獻金)의 행위(行爲)로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후9:5~15) 이는 하나님께 받은 축복에 상응(相應)하여 모든 것을 주신 분으로 인정(認定)하고 기억(記憶)하는 감사에 대한 표현이며, 특히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품성개발(稟性開發)에 도움을 줄뿐 아니라 이기적(利己的)인 존재(存在)에서 사랑의 존재로 변화(變化)시켜주는 도구가 되어 품성개발을 통하여 예수님을 닮을 수 있는 축복의 기회를 주시는 방법으로 (신24:14)에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며 주님은 당신의 고통당하는 백성에게 관심을 가지신다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돌보심에 사용 하도록 재물을 주셨다. 즉 헌금은 유익과 축복을 주시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01월24일) (火) <헌금(獻金)과 예배(禮拜)>
(Q)~우리는 예배(禮拜)를 들릴 때 헌금(獻金)을 드리는 순서(順序)가 있는데, 예배(禮拜)와 헌금에는 어떠한 관련(關聯)이 있는가? (역대상 16:29, 시편 96:8, 9, 그리고 시편 116:16~18)
(A)~○.성경에서 예배(禮拜)의 순서에 대하여 콕 집어서 구체적(具體的)으로 언급(言及)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배의 본질적(本質的)인 면에서 구분(區分)을 해 본다면 “물질적(物質的)인 요소”와 구술적(口述的)인 요소와 그리고 극적(極的)인 요소(要素)들을 포함(包含)한 예전적(禮典的)인 예배로 묘사(描寫)하고 있는바 예배(禮拜)에 대해서 4가지 요소(要素)를 알려주고 있다. 그 4가지 요소(要素)는 ⑴.말씀연구/선포 ⑵.기도(祈禱) ⑶.찬양(讚揚) ⑷.십일조(十一條)와 헌금을 드리는 일이 예배의 핵심(核心)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역대상 16:29, 시편 96:8, 9, 그리고 시편 116:16~18)
(01월25일)(水)<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린 예물(禮物)을 기억(記憶)하심>
(Q)~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行動)의 근본동기(根本動機)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드리는 십일조(十一條)와 헌금(獻金)을 얼마나 귀(貴)하게 보시고 기억(記憶) 하실까요? (마태6:21)
(A)~○.하나님께 드리는 예배(禮拜)나 기도(祈禱)나 예물(禮物)은 그 시간(時間)이나 량(量)이나 액수(額數)보다 자원(自願)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교회(敎會)와 이웃을 위해 정성(精誠)껏 드린 예물(禮物)을 기억(記憶)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행위(行爲)의 동기(動機)를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기억(記憶)하신다.
(01월26일)(木) <특별계획(特別計劃):“큰 병(甁)”에서 드리기>
(Q)~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네 보물(寶物)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라고 하신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期待)하고 하신 말씀일까요? (마태6:21; 누가12:34)
(A)~○.(마가복음 14:3~9과 요한복음 12:2~8절)에서의 마리아와 가롯 유다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교훈에 말씀은 ⑴.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비(豫備)한 마리아의 수고(受苦)와 헌신(獻身)을 받으시며 가룟 유다에게 권면(勸勉)하셨다. ⑵.주님 앞에 드릴 나의 향유(香油)는 무엇인가? ⑶.내가 가진 것이 아까워서 움켜쥐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더 유익(有益)한 곳에 사용할 것"이라고 핑계 대고 있지는 않는가? ⑷. 나의 시간(時間), 나의 물질(物質), 나의 건강(健康)... 내게 허락(許諾)된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恩惠)요 축복(祝福)이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명분(名分)으로 주께 드리는 것을 주저(躊躇)하지 말자. 마리아가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주님 앞에 드렸듯이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주님을 위해 헌신(獻身)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이러한 정신(精神)이 큰 병(甁)에서 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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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부록(末尾附錄)>
제4과 예수님을 위(爲)한 예물(禮物)들
(1월 28일 (안) / 일몰: 오후 5시 51분)
<기억절(記憶節)>
“내게 주신 모든 은혜(恩惠)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報答)할까 내가 구원(救援)의 잔(盞)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百姓)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誓願)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편 116:12~14).
<서언(緖言)>
○.우리가 드리는 헌금(獻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배(敬拜)와 감사(感謝)를 표(表)할 수 있는 방법(方法)중에 하나이며, 하나님과의 관계(關係)를 잘 드러낼 수 있는 행동(行動)의 하나가 헌금(獻金)으로 표현 할 수 있는 것이고, 특히 하나님에 대한 은혜(恩惠)와 감사(感謝)와 축복(祝福)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實踐)의 표현으로 신실(信實)한 헌금과 예물(禮物)을 드려진다.
(01월22일) (日) <헌금(獻金)의 동기(動機)>
(Q)~하나님께 헌금(獻金)을 드리는 이유(理由)나 동기(動機)를 간략(簡略)하게 표현(表現)한다면 어떻게 정의(定義)할 수 있을까요?
(A)~○.헌금(獻金)은 하나님의 은혜(恩惠)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禮物)(눅 21:1)을 헌금(獻金)또는 ‘연보(捐補)’라고도 한다.(롬 15:26). 또한 하나님께 봉헌(奉獻)하는 것은, 은혜로 구원(救援)받고 하나님의 백성 된 자(者)의 당연한 의무(義務)요 특권(特權)으로서 구약시대(舊約時代)부터 내려오는 관습(慣習)이었다.(민 31:50). 구약시대(舊約時代)에는 율법(律法)에 따라, 십일조(十一條)와 예물(禮物)을 하나님께 바쳤고(레 27:30; 대하 34:9), 초대교회 시대(初代敎會 時代)에는 예배(禮拜)때, 성례전(聖禮典)에 쓸 빵과 포도주(葡萄酒) 등을 가지고 와서 드리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救濟)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께 예물(禮物)을 드렸다.(고후 9:8-15).
○.구원(救援)의 은혜를 경험(經驗)한 성도(聖徒)는, 자신이 소유(所有)의 최종권자(最終權者)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청(聽)지기로서 하나님의 것을 관리(管理)한다는 의식(意識)을 가지고, 얻은 수익(收益)을 하나님의 사업(事業)을 위해 기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헌금(예물)은 그 동기(動機)가 감사와 믿음의 충성을 드러내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을 나타내는 실질적인 표현으로 그 액수(額數)나 량(量)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저울에 계량(計量)이 되며 온전한 믿음과 신앙은 자연 무의식적(無意識的)인 삶이된다.
○.청지기란, (聽- , steward)
주인(主人)(소유권자)이 맡긴 것들을 주인의 뜻대로 관리하는 위탁관리인(委託管理人)을 말한다(창43:16). 청(聽)지기란 하인(下人)의 우두머리로서 하인을 감독(監督)하고 주인의 자산(資産)을 관리하며(창39:4; 롬16:23), 주인의 자녀 교육까지 담당했다(창15:2; 39:4-6; 눅8:3; 롬16:23).
청지기가 자신에게 맡겨진 것들을 관리할 때는 항상 맡긴 주인의 뜻 즉, 주인이 제시(提示)한 관리지침(管理指針)을 따라 관리(管理)해야 한다.
○.먼저 헌금을 드리는 마음의 자세는 미리 준비(準備)하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헌금은 적고 많음이 헌금의 액수(額數)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寡婦)가 두 렙돈(오늘로 치면 오백원 동전 두 개 정도)을 헌금한 것을 칭찬(稱讚)하셨습니다.(눅21:1~4) 두 렙돈을 헌금했느냐 많이 했느냐가 아니라 자세가, 마음이 어떠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헌금(獻金)을 해야 합니까? 저는 이것이 창세기의 기록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천지만물(天地萬物)을 다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누릴 것과 관리(管理)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膳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내 삶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그러나 하나님 말씀하신대로 이 모든 것(물질, 시간, 건강 등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하나님 뜻대로 관리하며 살아야합니다. 헌금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에는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信仰告白)과 감사와 하나님 백성의 의무(義務)가 모두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십일조(十一條)할 것을 이렇게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가 중요한 이유는 모든 헌금이 다 중요하지만 십일조가 모든 헌금의 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씨앗이 된다는 말은 십일조를 하게 되면 다른 모든 헌금(구제(救濟), 선교(宣敎) 등)을 드리는 것이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말 그대로 내가 얻은 것의 10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왜 10분의 1을 드립니까? 10분의 10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告白)하면서 하나님 말씀하신대로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에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信仰告白)과 감사(感謝)가 함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01월23일 (月) <얼마나 드려야 할까?>
(Q)~십일조(十一條)는 말 그대로 내가 얻은 것의 10분의 일(1/10)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십일조 외(十一條 外)에 다른 헌금(獻金)은 얼마나 드려야 할까? (신16:17; 시편116:12~14)
(A)~○.우리가 드리는 헌금(獻金)의 행위와 자세(姿勢)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生命)과 구원(救援)과 물질(物質)등을 비롯하여 그 외(外)의 많은 축복(祝福)에 대한 감사(感謝)의 표현이 헌금(獻金)의 행위(行爲)로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후9:5~15) 이는 하나님께 받은 축복에 상응(相應)하여 모든 것을 주신 분으로 인정(認定)하고 기억(記憶)하는 감사에 대한 표현이며, 특히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품성개발(稟性開發)에 도움을 줄뿐 아니라 이기적(利己的)인 존재(存在)에서 사랑의 존재로 변화(變化)시켜주는 도구가 되어 품성개발을 통하여 예수님을 닮을 수 있는 축복의 기회를 주시는 방법으로 (신24:14)에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며 주님은 당신의 고통당하는 백성에게 관심을 가지신다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돌보심에 사용 하도록 재물을 주셨다. 즉 헌금은 유익과 축복을 주시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최대의 선교 사업(사32:20)>
각기 다른 분야의 봉사에 부름을 받음-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부르셔서 각기 다른 분야의 선교 사업을 담당하고,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라고 하신다. 우리는 이웃과 친구들 사이에서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일의 적은 한 부분만을 하고 있다. 우리는 가난한 자와 병자들 또한 사별의 슬픔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친절로써 감화를 끼침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그들의 마음에 전해지게 할 수 있다. 그러한 봉사의 기회가 하나라도 이용되지 못한 채 지나가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선교사업이다. 집집을 찾아 다니면서 사랑과 동정으로 진리를 제시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처음 선교 여행에 보내시면서 지시하신 교훈과 일치된다. ”(화잇주석, 사 32:20)
○.<(항구적(恒久的) 측정기구(測程器具)말 3:1-3 인용)>
우리들의 품성(稟性) 중에 하나님의 도성(都城)에 들어갈 수 없는 것들은 모두 다 책망(責望)을 받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깨끗케 하시는 주님께 복종(服從)하면 모든 찌끼와 쓰레기들을 그분께서 다 태워 없애실 것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고 명(命)하신 그 율법으로 시험을 받을 것이다. 하늘 보화(寶貨)를 얻는 사람들은 그들의 보물(寶物)을 하늘에 쌓아둔 사람들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에게서 배울 수 있도록 빛과 기회(機會)를 주신다. 이는 우리의 인격(人格)과 정신이 그리스도와 같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어떤 인간의 표준에 맞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마음 속에 받아들여서 그것이 우리의 삶을 규제(規制)하고 품성(稟性)을 꼴짓도록 해야 한다. (화잇주석, 말 3:1-3)
○.“물질(物質)에 대한 사용은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준다. 돈은 선(善)을 위한 능력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수중(手中)에 있을 때, 가난한 자에게는 먹을 것을, 목마른 자에게는 마실 것을, 벗은 자에게는 의복(衣服)을 제공(提供)할 수 있다(마 25:34-40).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돈은 그것이 생애의 필요를 제공(提供)하고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며 당신의 사업을 지원(支援)하는 일에 사용될 때 크게 가치가 있다.”(교리, 255)
○.“이 법규들은 가난한 자들뿐 아니라 부자(富者)들에게도 축복이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이것들은 허욕(虛慾)과 자고(自高)하는 성벽을 제어(制御)하고 고상(高尙)한 박애정신(博愛精神)을 함양(涵養)할 수 있으며 각 계급(階級) 사이에 호의와 신뢰심(信賴心)을 육성(育成)함으로 사회적 질서와 정치적 안정을 이룰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라는 거대한 피륙에 함께 짜여져 있으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익(利益)과 향상(向上)을 위하여 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올 것이다. 상호의존(相互依存)의 법칙은 사회의 모든 계층(階層)에 다 적용(適用)된다. 가난한 자가 부자(富者)를 의지(依支)하는 것 못지않게 부자(富者)도 가난한 자를 의지(依支)하고 있다. 한 계층이 하나님께서 부요(富饒)한 이웃에게 하사하신 축복의 일부를 요청하는 한편 다른 계층(階層)은 가난한 자의 자본(資本)인 뇌(腦)와 뼈와 근육(筋肉)의 힘으로 하는 노역(勞役)을 필요로 한다. (부조, 534)
○.“진리를 고백(告白)하는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의해 성화(聖化)되지 않았으며, 가난한 형제들에 대하여 장사할 때 세상의 부요(富饒)한 자들을 대할 때나 마찬가지로 조금도 물건 값을 깎아 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지 않는다. 이기심(利己心)이 보다 적고 이익(利益)을 돌보지 않는 자선심(慈善心)이 보다 많다면,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실 것이다. (1868, vol. 2, p. 51.”(1보감, 94)
○.“진리를 공언(公言)하는 모든 자들의 이름이 열거(列擧)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불신(不信)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게으른 종이었으므로 책망(責望)을 받았다.
○.각 사람은 가난한 자들에게 친절을 보이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동정(同情)하고, 선교사업(宣敎事業)에 종사(從事)하고 재물(財物)로 하나님의 사업을 도움으로써 산 믿음을 가정에서, 또한 이웃에게 나타낼 것이었다. 그러나 메로스처럼, 그들이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에게 임하였다. 그들은 이생에서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사업을 사랑하였다. 원부(原簿)에 있는 그들의 이름 맞은편에, 선한 행위를 위해 할애(割愛)된 칸은 슬프게도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1보감, 520)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많은 재물의 축복을 받고도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遂行)하지 않고, 가난한 자와 압제(壓制)받는 사람들을 구제(救濟)하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틀림없이 그들을 벌(罰)하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힘으로 할 수 있게 해주신 도움을 이웃에게 베풀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수치(羞恥)를 당하게 하시고, 그분의 성품(性稟)이 사단에 의하여 잘못 해석(解釋)되게 하고, 그분을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被造物)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엄(嚴)한 법관(法官)처럼 나타낸 데 대하여 변명(辨明)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이처럼 그릇되게 제시(提示)된 것이 마치 사실처럼 보이게 된다. 그리하여 원수(怨讐)의 시험(試驗)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대하여 강퍅해 진다. 사단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모든 재물을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주지 않게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범(犯)하게 한 모든 죄를 하나님께로 돌린다. 사단은 그의 모든 성격들을 하나님께 돌린다. (리뷰 앤 헤럴드 1894. 6. 26”(구호, 16)
○.그대의 기회(機會)와 나의 기회(機會)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저희 이웃을 사랑하는지의 여부(與否)를 보여 줄 기회(機會)를 주신다. 하나님과 그의 동료(同僚) 인간을 진정(眞情)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가난한 자와, 고통(苦痛)당하는 자와, 상처(傷處)입는 자와, 죽어가는 자들에게 자비(慈悲)를 보여 주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소홀(疏忽)히 한 일을 착수(着手)하여 인간에게 창조주의 도덕적 형상(形像)을 회복시켜주기 위하여 노력하라고 호소(呼訴)하신다. (서신 113, 1901) (구호, 49)
○.(각기 다른 분야의 봉사에 부름을 받음)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부르셔서 각기 다른 분야(分野)의 선교사업(宣敎事業)을 담당(擔當)하고,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라고 하신다. 우리는 이웃과 친구들 사이에서 주님께서 기대(期待)하시는 일의 적은 한 부분만을 하고 있다. 우리는 가난한 자와 병자(病者)들 또한 사별(死別)의 슬픔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친절로써 감화(感化)를 끼침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그들의 마음에 전(傳)해지게 할 수 있다. 그러한 봉사(奉仕)의 기회(機會)가 하나라도 이용(利用)되지 못한 채 놓쳐져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선교사업(宣敎事業)이다. 집집을 찾아다니면서 사랑과 동정(同情)으로 진리를 제시(提示)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제자(弟子)들을 처음 선교여행(宣敎旅行)에 보내시면서 지시(指示)하신 교훈(敎訓)과 일치(一致)된다. (리뷰 앤 헤랄드 1912. 6. 6) (구호, 73)
○.(먼저 현실적(現實的) 필요(必要)를 채워 주라)
각 계층(階層)에 있는 고통(苦痛)하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은 우리의 이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필요를 깨닫게 될 때 가능한 한 그들을 구제(救濟)해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義務)이다. 이 비유(譬喩)(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譬喩))에 원칙(原則)이 밝혀져 있으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그것을 실천(實踐)하면 좋을 것이다. 먼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자의 현실적(現實的) 필요성(必要性)을 채워 주고, 그들의 신체적(身體的) 결핍(缺乏)과 고통(苦痛)을 구(求)해 주라. 그리하면 그대는 마음에 이르는 길이 열려 있음을 발견할 것이며, 그곳에 덕성(德性)과 믿음의 좋은 씨를 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교회증언 4권 226, 227) (구호, 118)
○.“이 법규(法規)들은 가난한 자뿐 아니라 부자(富者)도 축복(祝福)하기 위하여 제정(制定)되었다. 그것은 허욕(虛慾)과 자고(自高)하는 성벽(性癖)을 제어(制御)하고 고상한 박애심(博愛心)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회계급간(社會階級間)에 선의(善意)와 신뢰(信賴)를 육성(育成)함으로 그들을 사회적 질서(秩序), 곧 정부(政府)의 안정도(安定度)를 촉진(促進)시킬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란 거대한 피륙에 함께 짜여져 있으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익과 향상(向上)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 올 것이다. 상호 의존법칙(依存法則)은 사회 모든 계급에 다 미친다. 가난한 자가 부자(富者)를 의지(依支)한다 해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더 하지는 않는다. 한 계급(階級)이 부요(富饒)한 이웃에게 하나님께서 하사(下賜)하신 축복에서 한 몫을 나눠 갖기를 간청(懇請)하는 한편 다른 계급은 가난한 자의 자본(資本)인 뇌(腦)와 뼈와 근육(筋肉)의 힘으로 하는 충실(忠實)한 노역(勞役)을 요구한다. …(구호, 174)
○.돌봐 줄 두 부류(部類)의 사람들
우리의 주변(周邊)에는 우리가 항상 염두(念頭)에 두어야 할 두 부류의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그 두 부류(部類)는 자신의 독자적(獨自的) 행동 노선(路線)을 취하며 계속적으로 범죄(犯罪)함으로 스스로를 파괴(破壞)하는 자들과, 진리를 위하여 고생스런 환경으로 들어가게 된 자들이다. 우리는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두 부류(部類)의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들은 건전(健全)한 지혜(智慧)의 인도와 권면(勸勉) 아래 올바르게 일해야 할 것이다.”(구호, 178)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하여 기도(祈禱)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糧食)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자신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는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라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겨 주신다. 그분은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당신의 은혜(恩惠)를 준비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말씀하신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親戚)이나 부(富)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 잔치를 배설(排設)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장애인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義人)들의 부활시(復活時)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눅 14:12-14). (산상보훈 161~162) (구호, 269)
○.“타인(他人)에게 비춘 모든 빛은 다시 우리 마음에 반사(反射)될 것이다. 슬퍼하는 자에게 말한 모든 친절한 동정(同情)의 말, 억눌린 자를 도와준 모든 행동, 가난한 이웃에게 준 모든 선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거나 행할 때에 그것은 그에게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는 자들은 하늘의 법칙(法則)을 따르는 자들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을 것이다. (4T, 56) (선교, 270)
○. 가난한 자를 돌보심(신24:14)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며 당신은 당신의 고통(苦痛)당하는 백성에게 관심(關心)을 가지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구세주(救世主)의 마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낮은 당신의 자녀들을 동정(同情)하신다. 구세주(救世主)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저들은 세상에서 당신을 대표하는 자들이라 하신다. 구세주(救世主)께서는 당신이 고통과 압박(壓迫)당하는 자들에 대하여 느끼시는 사랑을 우리 마음에 각성(覺性)시키려고 우리들 가운데 그들을 두셨다. 그들에게 배푼 동정(同情)과 자비(慈悲)심은 마치 당신 자신에게 베푼 것처럼 그리스도에게서 받으시는바 된다. 그들에게 잔인(殘忍)하게 한 행위(行爲)나 등한히 한 행동은 마치 그리스도께 행한 것처럼 간주(看做)된다. (화잇주석, 신 24:14)
○. 주님의 소유(所有)된 가난한 자들이 등한히 취급(取扱)될 때 (욥29:16)
주님께 속한 가난한 자들이 등한시되고, 잊혀지고, 냉랭한 표정과 잔혹(殘酷)한 말로 인사를 하게 되면, 그런 실수(失手)를 범(犯)한 자는 주님의 성도(聖徒)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등한히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銘心)해야 한다. 우리의 구주(救主)께서는 고통당하는 인간의 관심사(關心事)를 당신의 관심사(關心事)와 동일시(同一視)하신다. 마치 부모의 마음이 그 어린 것들 중 고통당하는 하나에게 쏠리고 긍휼(矜恤)히 여기는 친절로 애타는 것처럼, 우리 구주(救主)의 마음은 당신의 지상(地上) 자녀 중 가장 가난하고 미천(微賤)한 자를 동정(同情)하신다. 그분은 고통당하는 자와 압제(壓制)받는 자들에 대하여 당신께서 느끼시는 그 사랑을 우리 마음에 깨우쳐 주시고자 그들을 우리 가운데 두셨다(구호 183). (화잇주석, 욥 29:16)
(01월24일) (火) <헌금(獻金)과 예배(禮拜)>
(Q)~우리는 예배(禮拜)를 들릴 때 헌금(獻金)을 드리는 순서(順序)가 있는데, 예배(禮拜)와 헌금에는 어떠한 관련(關聯)이 있는가? (역대상 16:29, 시편 96:8, 9, 그리고 시편 116:16~18)
(A)~○.성경에서 예배(禮拜)의 순서에 대하여 콕 집어서 구체적(具體的)으로 언급(言及)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배의 본질적(本質的)인 면에서 구분(區分)을 해 본다면 “물질적(物質的)인 요소”와 구술적(口述的)인 요소와 그리고 극적(極的)인 요소(要素)들을 포함(包含)한 예전적(禮典的)인 예배로 묘사(描寫)하고 있는바 예배(禮拜)에 대해서 4가지 요소(要素)를 알려주고 있다. 그 4가지 요소(要素)는 ⑴.말씀연구/선포 ⑵.기도(祈禱) ⑶.찬양(讚揚) ⑷.십일조(十一條)와 헌금을 드리는 일이 예배의 핵심(核心)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역대상 16:29, 시편 96:8, 9, 그리고 시편 116:16~18)
○.“첫 성전(聖殿)의 장엄(莊嚴)함과 그 예배의 당당한 의식(儀式)들은 포로(捕虜)가 되기 이전(以前)에 이스라엘 백성의 자랑거리였으나 그들의 예배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그러한 요소(要素)들이 결여(缺如)되어 있었다. 첫 성전(聖殿)의 영광(榮光)과 휘황찬란(輝煌燦爛)한 예배가 그들을 하나님께 가납(嘉納)되도록 할 수 없었으니 이는 성전(聖殿)의 영광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더 귀중(貴重)한 것을 드리지 아니한 까닭이었다. 그 때에 그들은 겸손(謙遜)하고 참회(懺悔)하는 정신의 제물(祭物)을 하나님께 가져오지 아니하였다.”(선지, 565)
○.효과적(效果的)인 음악(音樂)의 요소(要素)
음악(音樂)은 훌륭한 능력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배의 이 분야를 적절(適切)히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래가 즉흥적(卽興的)으로 또는 특별한 경우에만 행하여지고 있으며 어떤 때에는 노래하는 사람이 실수(失手)를 하여서 참석한 자들의 마음에 적절한 은혜를 끼치지 못하기도 한다. 음악은 아름다움과 정감(情感)과 호소력(呼訴力)을 지녀야 한다. 음성(音聲)을 찬양과 헌신(獻身)의 노래에 사용하라. 악기(樂器)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영화(榮華)로운 음악의 조화(調和)를 하나님께 드려서 가납(嘉納)하시는 제사(祭祀)가 되게 하라.”(전도, 505)
○.찬송(讚頌)하며 감사하는데. 음악(音樂)은 예배(禮拜)의 한 형태(形態)이며, 찬송과 감사는 기도의 중요한 요소(要素)이다. 백성들이 저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慈悲)를 감사함으로 기념하는 가운데 기쁨으로 찬양하며 그들의 음성(音聲)을 높일 때,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셨으며 구름이 성전(聖殿)에 가득했다. (성경주석, 대하 5:13)
○.<예배(禮拜)의 요소(要素)>
(요 4 : 22~24)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禮拜)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救援)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靈)과 진리(眞理)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靈)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靈)과 진리(眞理)로 예배할지니라.
1. 찬양(讚揚).
(사 43 :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讚頌)하게 하려 함이니라.
(시 22 : 3) 이스라엘의 찬송(讚頌)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 이다.
2. 기도(祈禱).
(대하 7 : 12~16)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祈禱)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祭祀)하는 성전(聖殿)을 삼았으니,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土産)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傳染病)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流行)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惡)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赦)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擇)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恒常) 여기에 있으리라.
(마 7 : 7~8) 구(求)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求)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3. 말씀.
(행 2 : 42) 그들이 사도(使徒)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交際)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스니라. (롬 10 : 8~10)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傳播)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是認)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是認)하여 구원(救援)에 이르느니라.
(롬 10:8~10)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傳播)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義)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是認)하여 구원(救援)에 이르느니라.
(롬 10 :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4. 예물(禮物).
(출 23 : 15) 너는 무교병(無酵餠)의 절기(節氣)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命令)한 대로 아빕월의 정(定)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신 16:16) 너의 중 모든 남자(男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無酵節)과 칠칠절(七七節)과 초막절(草幕節)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擇)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空手)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고후 8 : 1~5)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敎會)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患難)의 많은 시련(試鍊)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極甚)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豊盛)한 연보(捐補)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證言)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自願)하여, 이 은혜와 성도(聖徒) 섬기는 일에 참여(參與)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懇切)히 구(求)하니,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5. 교제(交際).
(행 2 : 44~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物件)을 서로 통용(通用)하고, 또 재산(財産)과 소유(所有)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聖殿)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純全)한 마음으로 음식(飮食)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讚美)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稱頌)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救援)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시 133 : 1~3) 보라 형제(兄弟)가 연합(聯合)하여 동거(同居)함이 어찌 그리 선(善)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鬚髥) 곧 아론의 수염(鬚髥)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福)을 명령(命令)하셨나니 곧 영생(永生)이로다.
(고후 13 :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恩惠)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聖靈)의 교통(交通)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예배의 성공자(成功者)가 인생이 성공(成功)합니다.
예배를 바로 알고 바로 드려서 은혜(恩惠)와 복(福)을 누리는 복된 성도(聖徒)의 삶이되시기를 소망(所望)하며 기도드립니다. 샬롬.
○.“레위기는 주로 제사장 직분과 성소 봉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교훈을 모두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많은 중요한 사항들이 민수기에 기록되기 위하여 보류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배의 기본 원칙들의 대부분이 레위기에 개괄되어 있다. 이런 까닭에 이 책은 중요성을 띠게 되고, 특별한 연구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01월25일)(水)<하나님께서 우리가드린 예물(禮物)을 기억(記憶)하심>
(Q)~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行動)의 근본동기(根本動機)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드리는 십일조(十一條)와 헌금(獻金)을 얼마나 귀(貴)하게 보시고 기억(記憶) 하실까요? (마태6:21)
(A)~○.하나님께 드리는 예배(禮拜)나 기도(祈禱)나 예물(禮物)은 그 시간(時間)이나 량(量)이나 액수(額數)보다 자원(自願)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교회(敎會)와 이웃을 위해 정성(精誠)껏 드린 예물(禮物)을 기억(記憶)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행위(行爲)의 동기(動機)를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기억(記憶)하신다.
○. 진리(眞理)를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充分)하지 않다. 진리(眞理)대로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생활은 그가 공언(公言)하는바와 일치(一致)해야만 한다.”(성연1-3, 제1편>31. 승리의 생활)
○.“안식일을 우리의 창조주께 바치도록 교훈(敎訓)받은바와 같이 또한 우리는 우리의 수입(收入)의 10분의 1(십일조)을 교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자원(自願)해서 바쳐야 한다는 교훈을 받게 된다. 아무도 하나님께 순종(順從)함으로 배를 굶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성연1-3, 제1편>31. 승리의 생활)
○.“목사(牧師)와 전도자(傳導者)들은 진리를 믿고 회개(悔改)한 자들과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많이 가지도록 하라. 그리스도께서 항상 그대들과 함께 계심을 기억하라. 주님께서는 신실하고 겸손한 일꾼에게 힘과 용기(勇氣)를 북돋우어 주기 위하여, 가장 귀한 은혜(恩惠)를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대들 위에 비추신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사(反射)하라. 이와 같이 하는 자들은 주님께 가장 귀한 예물(禮物)을 드리는 것이다. 구원(救援)의 복음을 전(傳)하는 자들은 그 가슴 속에 항상 찬양(讚揚)의 마음이 불붙어 있다.”(복음, 65)
○.“이제, 나는 원수(怨讐)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았다. 그는 여기 있는 백성들이 그냥 가기를 원(願)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 아무 영혼(靈魂)도 여기에서 흑암(黑暗)과 함께 가지 않도록 하자. 왜냐하면 그는 어디로 가든지 흑암의 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곳에 흑암의 씨를 뿌린다. 그는 이 씨를 가지고 뿌리기 시작하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이 오기를 원하는 바로 그 진리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를 흔들어 놓는다. 나는 여기에서 우리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진리를 가지고 갈 사람들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내게 보여 주셨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했으며, 이것이 진리(眞理)라는 것을 말했다. 자, 이것이 그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었는가? 그들은 거의 똑같았다. 그래서 이것은 아무 결과도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형제들이여, 내가 다시 말하노니 반석 위에 떨어져서 깨어져라! 변명(辨明)을 시작하려고 하지 말라. 여기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예물(禮物)을 가져오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告白)할 때, 그들이 앞으로 다른 것들을 기억하게 되면, 비록 한 가지 만이라도, 그들은 그것을 위해 와야 하고 예물(禮物)을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신다.”(1설교, 147)
○.“생일(生日)에만 부모와 자녀들이 특별한 방법으로 주님의 자비(慈悲)를 기억해야 할 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와 신정(新正) 등 경축일(慶祝日)도 역시 모든 가족들은 저희의 창조주(創造主)와 구속주(救贖主)를 기억(記憶)하는 기회(機會)가 되어야 한다. 인간에게 그렇게 선물(膳物)과 예물(禮物)을 풍성하게 주는 대신 존귀(尊貴)와 영광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리고 선물과 예물(禮物)이 거룩한 통로(通路)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이렇게 주님을 기억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겠는가? 오! 이러한 기회(機會)에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잊어 왔는지! (청지기, 296)
○.“그러나 교회 안에서 겸손(謙遜)과 헌신(獻身)의 정신이 교만(驕慢)과 형식주의(形式主義)로 바뀌어지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재림에 대한 믿음은 점점 식어져 버렸다.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自負)하는 자들이 세속적(世俗的) 욕심(慾心)과 향락(享樂)을 구(求)하는 일에 몰두(沒頭)되어 구주(救主)의 재림의 징조(徵兆)들에 대한 교훈에는 소경이 되어 버렸다. 재림의 교리는 등한히 여겨졌고, 재림에 관한 성경절들은 곡해(曲解)로 가려져서 마침내 그것은 거의 대부분 무시되고 잊어버린 바 되었다. 특별히 그와 같은 현실(現實)은 미국의 각 교회들에 있어서 그러하였다. 사회의 각 계급(階級)에서 누리는 자유와 안락(安樂), 부(富)와 사치(奢侈)에 대한 욕망(慾望)은 사람들로 돈 버는 일에 몰두(沒頭)하게 하고, 모든 사람이 다 자기의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명예(名譽)와 권력에 대한 열렬한 욕망(慾望)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흥미(興味)의 중심을 이 세상의 사물(事物)에 두게 하고, 현세(現世)의 모든 사물(事物)을 파괴(破壞)해 버릴 그 엄숙(嚴肅)한 날이 아주 먼 장래(將來)의 일로 제쳐 놓게 하였다.”(쟁투, 309)
(01월26일)(木)<특별계획(特別計劃):큰 병(甁)”에서 드리기>
(Q)~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네 보물(寶物)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라고 하신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期待)하고 하신 말씀일까요? (마태6:21; 누가12:34)
(A)~○.(마가복음 14:3~9과 요한복음 12:2~8절)에서의 마리아와 가롯 유다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교훈에 말씀은 ⑴.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비(豫備)한 마리아의 수고(受苦)와 헌신(獻身)을 받으시며 가룟 유다에게 권면(勸勉)하셨다. ⑵.주님 앞에 드릴 나의 향유(香油)는 무엇인가? ⑶.내가 가진 것이 아까워서 움켜쥐고 있으면서 입으로는 "더 유익(有益)한 곳에 사용할 것"이라고 핑계 대고 있지는 않는가? ⑷. 나의 시간(時間), 나의 물질(物質), 나의 건강(健康)... 내게 허락(許諾)된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恩惠)요 축복(祝福)이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명분(名分)으로 주께 드리는 것을 주저(躊躇)하지 말자. 마리아가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주님 앞에 드렸듯이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주님을 위해 헌신(獻身)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이러한 정신(精神)이 큰 병(甁)에서 드리는 것이다.
○.(마가복음 14:3~9과 요한복음 12:2~8절) 마리아와 유다 두 사람을 대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마리아는 희생자(犧牲者)임.
그는, 주님을 위하여 무엇이나 아낄 줄 모르는 인물이었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최선(最先)을 다 하였으니, 주님의 말씀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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