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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제1기 제1과-하나님의 가족의 일원-(핵심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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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1-03 00:52 조회1,3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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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하나님의 가족(家族)의 일원(一員)

                                  (1월 7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29분)


<서언(緖言)>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관계(關係)를 맺고자하시는 온전(穩全)한 뜻을 이해하기는 싶지 않는 일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의 자녀(子女)라는 관계보다 이 세상에서 더 높은 지위(地位)는 없다. 그러나 죄악세상에서 이와 같은 엄청난 신분(身分)에 대하여 온전히 감사(感謝)히 여기지 못하고 사는 인생들이 대부분(大部分)이다. 이는 세상의 온갖 유혹(誘惑)과 사물(事物)들은 우리를 예수님으로부터 떼어 놓았고 또한 떼어 놓으려는 사단의 시험(試驗)과 유혹(誘惑)에 대하여 성경(聖經)은 경고(警告)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나 재물(財物)과 청직(廳直)이 직분(職分)의 충실(忠實)함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인(主人)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그의 소유(所有)를 인정(認定)하고 그 주인님의 도우심을 구(求)할 때, 즉 세상적인 관점(觀點)에서 볼 때 현시대(現時代)는 매우 힘들고 불가능(不可能)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관점(觀點)에서 본다면 우리는 확신과 희망(希望)을 갖일 수 있고 그 청직(廳直)이 직분을 가능토록 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향(向)한 우리의 믿음과 신뢰(信賴)가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복을 세상에 나누는 복의 근원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이번 기에 확실히 배우도록 하자.


(1월01일) (日)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家族)의 일원(一員)>


(Q)~(출 3:10, 출 5:1, 그리고 갈라디아서 3:26, 29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큰 힘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A)~예수님의 (마 6:9, 눅 11:2). “주의 기도문(祈禱文)”에서나, (요 20:17)의 부활승천(復活昇天) 직후(直後)에나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라 부르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救主)로 영접(迎接)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한 형제(兄弟)요 자매(姉妹)요 하늘 한 가족(家族)이 되므로 하나님의 한 가족의 일원(一員) 이므로 우리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늘 가족(家族)으로 살 수 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며 우리에게는 소망(所望)이자 능력(能力)이시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예수님과 같은 아버지를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형제(兄弟)이시며 우리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부자관계(父子關係)이기도 하다. 


(1월02일) (月)  <모든 것의 주인(主人)이신 하나님>


(Q)~(시편 50:10~12, 시편 24:1, 역대상 29:13, 14, 그리고 학개 2:8절)에서 모든 것의 주인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A)~우리가 소유(所有)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궁극적(窮極的)으로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恩惠)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었을 것이며, 우리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우리 각 사람은 존재(存在)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瞬間) 숨 쉬며 살아가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恩惠)임을 깨닫게 될 때 내 삶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대한 주인(主人)되심을 인정(認定)하며 감사와(瓦) 기쁨으로 찬양(讚揚)과 예배(禮拜)가 신령(神靈)과 진정(眞情)으로 드려질 것이다.

능력(能力)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주시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所有)하고 있는 모든 것은 궁극적(窮極的)으로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所有)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認定)하며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1월03일) (火)  <하나님의 가족(家族)에게 허락(許諾)된 것들>


(Q)~(시편 23:1, 시편 37:25, 그리고 빌립보서 4:19절)의 이 성경절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매일(每日)의 삶의 필요를 어떻게 채우시는지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시며, (요일 5:3절)에서 하나님과 맺고 있는 사랑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합당(合當)한 반응(反應)은 어떻게 나타나야 하겠습니까?


(A)~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子女)들에게 허락(許諾)하시는 가장 좋은 선물(膳物)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容恕)의 평안(平安)과 매일(每日)의 삶과, 영적성장(靈的成長)을 위한 은혜(恩惠)와 예수님을 믿고 영접(迎接)하면 영생(永生)을 얻게 되며, 영접(迎接)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구원(救援)을 선물(膳物)로 받을 뿐 아니라 매일(每日)의 삶에 필요(必要)한 일용(日用)한 여러 가지를 허락(許諾)해 주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축복들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하며 이를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誡命)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許諾)하신 것은  구원(救援)의 선물뿐 아니라 매일의 삶에 필요한 물질적(物質的) 축복과 영적(靈的)인 선물인 성령의 은사(恩賜)를 주시어 하나님의 뜻에 맞게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도록 하셨다.  


(1월04일)(水)<하나님의 가족(家族) 구성원(構成員)들의 책임(責任)>


(Q)~(신명기 6:5과 마태복음 22:37절)의 이 구절(句節)들이 의미(意味)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A)~하나님의 가족(家族)의 구성원(構成員)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靈的) 물질적(物質的)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대한 반응(反應)을 나타내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그분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향(向)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도록 부름 받았다.

우리는 하나님 가족이 구성원(構成員)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계명(誡命)을 지킴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경험(經驗)하는 것이며, 그래서 더욱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명령(命令)과 규례(規例)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1월05일) (木)  <하늘에 쌓아 둔 보물(寶物)>


(Q)~(창 12:2-3)의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개념(槪念)에 하나님께 복(福)을 받는다는 것은 그 속에 어떤 의미를 포함(包含)하고 있으며, (마태 6:19~21)의 보물(寶物)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A)~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복(福)”의 개념(槪念)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는 영적축복(靈的祝福)이란 단순히 아브라함 개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窮極的)으로는 그의 가계(家系)에서 약속된 ‘여자의 후손(後孫)’(3:15)인 메시아가 나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後孫)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救援)과 영생(永生)은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미칠 수 있는 것이니(살후 2:13, 14) 그 같은 메시아의 조상(祖上)인 아브라함을 가리켜 ‘복(福)’이라 칭(稱)함이며, 

(마태6:19~21)의 “보물(寶物)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것”은, 돈이 하나님의 자녀의 수중(手中)에 있을 때는 그것이 주린 자의 양식(糧食)이 되고, 목마른 자의 마실 물이 되고, 헐벗은 자의 옷이 된다. 그것은 또 압제(壓制)받는 자에게 방어물(防禦物)이 되고, 병(病)든 자에게 도움의 방편(方便)이 되고 다른 사람을 축복(祝福)하고, 그리스도의 사업(事業)을 전진(前進)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곳 하늘에 쌓아 두는 보물(寶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허락(許諾)하신 물질의 축복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그분 나라의 확장(擴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그들에게 축복이 되는 일을 위해 사용할 때 하늘에 보물(寶物)을 쌓아두는 지혜(智慧)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이 땅에서 아브라함과 같이 축복의 통로(通路)가 되어야할 사명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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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부록(末尾附錄)>

       제1과 하나님의 가족(家族)의 일원(一員)

                                          (1월 7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29분)


<기억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요일 3:1). 


<서언(緖言)>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관계(關係)를 맺고자하시는 온전(穩全)한 뜻을 이해하기는 싶지 않는 일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의 자녀(子女)라는 관계보다 이 세상에서 더 높은 지위(地位)는 없다. 그러나 죄악세상에서 이와 같은 엄청난 신분(身分)에 대하여 온전히 감사(感謝)히 여기지 못하고 사는 인생들이 대부분(大部分)이다. 이는 세상의 온갖 유혹(誘惑)과 사물(事物)들은 우리를 예수님으로부터 떼어 놓았고 또한 떼어 놓으려는 사단의 시험(試驗)과 유혹(誘惑)에 대하여 성경(聖經)은 경고(警告)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이나 재물(財物)과 청직(廳直)이 직분(職分)의 충실(忠實)함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인(主人)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그의 소유(所有)를 인정(認定)하고 그 주인님의 도우심을 구(求)할 때, 즉 세상적인 관점(觀點)에서 볼 때 현시대(現時代)는 매우 힘들고 불가능(不可能)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관점(觀點)에서 본다면 우리는 확신과 희망(希望)을 갖일 수 있고 그 청직(廳直)이 직분을 가능토록 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향(向)한 우리의 믿음과 신뢰(信賴)가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복을 세상에 나누는 복의 근원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이번 기에 확실히 배우도록 하자.


○.<청직(廳直)이(청(廳)지기) 직분(職分)>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간과 기회(機會)와 재능(才能)과 재산(財産)과 세상의 축복(祝福)들과 그 자원(資源)들을 위탁(委託)받은 그분의 청(廳)지기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정당(正當)하게 사용해야 할 책임을 그분께 지고 있다. 우리는 그분과 우리의 동료 인간들을 위하여 성실(誠實)하게 봉사하며 그분의 복음을 선포(宣布)하고 그분의 교회를 유지(維持)하며 발전시키기 위하여 십일조(十一條)를 드리고 헌금(獻金)을 바침으로써 하나님의 소유권(所有權)을 인정(認定)한다. 청(廳)지기 직분(職分)은 자애(慈愛)로운 품성(稟性)을 계발(啓發)하고 이기심(利己心)과 탐욕(貪慾)을 극복(克服)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권이다. 청지기는 자신의 충성됨의 결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르러오는 축복(祝福)들을 즐거워한다." -기본 신조, 20.”(교리, 251)


○.<“청직(廳直)이(청(廳)지기) 직분(職分)이란 무엇인가?”(교리, 251)>

“하나님께서는 창조시(創造時)에 당신의 소유(所有)를 인간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계속(繼續)해서 세계와 그 거민(居民)과 그 가운데 있는 것들(시 24:1)의 참된 소유주(所有主)가 되신다. 십자가에서 그분께서는 인간이 타락시(墮落時)에 사단에게 넘겨주었던 것을 당신의 소유(所有)로 되찾으셨다(고전 6:19, 20).

청지기는 "타인(他人)의 집이나 재산(財産)의 관리(管理)를 위탁(委託)받은" 사람이다. 청지기 직분은 "청지기의 지위(地位)나 의무(義務), 또는 봉사(奉仕)"를 말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청지기 직분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위탁하신 모든 것-(생명, 육체, 시간, 재능 및 능력, 물질적인 소유, 타인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 진리에 대한 지식(知識))-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사용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소유물에 대한 관리자(管理者)로서 봉사하며 생애(生涯)를,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세(來世)에서의 영원한 사물(事物)에 대해 보다 더 높은 청지기 직분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게 하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는 법을 배우는" 거룩한 기회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보다 더 넓은 차원(次元)에서, 청지기 직분은 "생애를 현명하고 이타적(利他的)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포함한다."(교리, 251-252)


(1월01일) (日)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家族)의 일원(一員)>


(Q)~(출 3:10, 출 5:1, 그리고 갈라디아서 3:26, 29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큰 힘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A)~예수님의 (마 6:9, 눅 11:2). “주의 기도문(祈禱文)”에서나, (요 20:17)의 부활승천(復活昇天) 직후(直後)에나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라 부르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救主)로 영접(迎接)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한 형제(兄弟)요 자매(姉妹)요 하늘 한 가족(家族)이 되므로 하나님의 한 가족의 일원(一員) 이므로 우리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늘 가족(家族)으로 살 수 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며 우리에게는 소망(所望)이자 능력(能力)이시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예수님과 같은 아버지를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형제(兄弟)이시며 우리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부자관계(父子關係)이기도 하다. 


○.<갈3:26 너희가 다>

  즉 유대인과 이방인(異邦人) 모두(참조 28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참조 롬 1:5, 17; 갈 3:11)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율법의 행위(行爲)”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救援)받는다(참조 2:16 ).


○.<하나님의 아들>

  (제임스왕역(KJV)에는 “하나님의 자녀(子女)”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文字的)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 가족(家族)의 일원(一員)으로 “거듭난” 자(者)들임(참조 마 5:9; 요 1:12, 13; 3:3, 5; 롬 8:15, 16; 9:8, 26; 엡 3:15; 요일 3:1, 2). (갈 3:26, 재림교주석)


○.(갈3:26)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子孫)이 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곧 ‘양자(養子)’(휘오데시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1) 죄 아래 놓여 있던 자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과 바른 관계(關係)로 회복(回復)되었음을 의미한다. (2)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성령에 대한 약속(約束)이 성취(成就)되었음을 보여준다(14절). 왜냐하면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證據)하시기 때문이다(롬 8:14-16).


○. “바울은 주인(主人)의 아들이 미성년자(未成年者)일 때까지 초등교사(初等敎師) 아래 있었지만 그리스도를 믿게 된 자들은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장성(長成)한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과 율법 사이의 관계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서 ‘아들’은 남자(男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남자(男子)와 여자(女子)를 모두 포함(包含)한다(갈 3:28). 바울이 ‘자녀(子女)’라는 말 대신 아들이란 말을 사용한 이유는 남자 자손(子孫)들이 유산(遺産)을 물려받을 뿐 아니라, 구약(舊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이스라엘의 특별한 명칭(名稱)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신 14:1, 호 11:1). 어쨌든 이제 이방인(異邦人)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국한(局限)되었던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關係)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Carl P. Cosaert, 안교장년교과, 2017. 8. 13). (갈 3:26, 만나주석)


○.<(갈3:29) 그리스도의 것이면 … 약속(約束)대로 유업(遺業)을 이을 자(者)>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통해서만 유업(遺業)을 이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유대인이 되려면 먼저 할례(割禮)를 받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할례를 받는 자들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으며 아브라함에게 약속(約束)된 유업(遺業)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바울은 이러한 상태(狀態)에 있는 갈라디아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을 염두(念頭)에 두고 율법의 역할(役割)과 의미를 아브라함의 약속과 비교 설명하고 나서 지금까지의 논쟁(論爭)을 결론(結論)짓는다. 곧 진정(眞情)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자손(子孫)으로 약속(約束)대로 유업(遺業)을 이을 자(者)는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결론(結論)을 내린다. ‘그리스도의 것’은 신분(身分)이나 사회적 지위(社會的地位)나 인종(人種)에 관계없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主)로 영접(迎接)한 자를 가리키는 관용구(慣用句)이다. (갈 3:29, 만나주석)


(1월02일) (月)  <모든 것의 주인(主人)이신 하나님>


(Q)~(시편 50:10~12, 시편 24:1, 역대상 29:13, 14, 그리고 학개 2:8절)에서 모든 것의 주인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A)~우리가 소유(所有)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궁극적(窮極的)으로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恩惠)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었을 것이며, 우리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우리 각 사람은 존재(存在)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瞬間) 숨 쉬며 살아가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恩惠)임을 깨닫게 될 때 내 삶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대한 주인(主人)되심을 인정(認定)하며 감사와(瓦) 기쁨으로 찬양(讚揚)과 예배(禮拜)가 신령(神靈)과 진정(眞情)으로 드려질 것이다.

능력(能力)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주시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所有)하고 있는 모든 것은 궁극적(窮極的)으로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였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所有)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認定)하며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대상29:13~)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최고의 의미의 예배(禮拜)는 하나님의 위대(偉大)함과 선(善)함을 인정(認定)하고,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반응(反應)하는 일을 포함(包含)한다. 다윗은 자신의 무가치(無價値)함을 깨달았고,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드리고자 하는 심령(心靈)을 주시고 손에 드릴 수 있는 물질(物質)을 주시지 않았다면 자기와 백성이 전혀 드릴 수 없었을 것임을 인정(認定)했다.


○.<(주의 손에서 받은 것)>

 다윗은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며, 그날 자기와 자기 백성이 드린 헌물(獻物)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들의 일부(一部)만을 돌려 드린 것임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대상 29:13~14, 재림교주석)


○.<(대상29:14) 다윗과 하나님은 파트너였음>

   우리들에게 위탁(委託)된 재산(財産)의 사용에 관한 문제를 우리는 신중(愼重)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는 주께서 그분 자신의 것을 이자(利子)와 함께 요구(要求)하실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할 때에는 조직적(組織的)인 헌금(獻金)을 성경의 요구(要求)로 생각하지만, 그들이 돈과 재산을 갖게 되면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요구(要求)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재산을 그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재산을 그런 식으로 생각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만물(萬物)의 위대(偉大)한 소유주(所有主)시요, 그가 하나님과 협력(協力)해서 일하게 된 것은 그에게 큰 영광(榮光)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총(恩寵)과 자비(慈悲)에 대한 기쁨으로 충만(充滿)하였고, 대 성전건축헌금(大聖殿建築獻金)을 봉헌(奉獻)할 때 그는 기도(祈禱)로 “당신의 것을 우리들이 당신께 드렸을 뿐”이라고 하였다(리뷰 1896. 12. 8).  (대상 29:13~14, 화잇주석)


(1월03일) (火)  <하나님의 가족(家族)에게 허락(許諾)된 것들>


(Q)~(시편 23:1, 시편 37:25, 그리고 빌립보서 4:19절)의 이 성경절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매일(每日)의 삶의 필요를 어떻게 채우시는지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시며, (요일 5:3절)에서 하나님과 맺고 있는 사랑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합당(合當)한 반응(反應)은 어떻게 나타나야 하겠습니까?


(A)~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子女)들에게 허락(許諾)하시는 가장 좋은 선물(膳物)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容恕)의 평안(平安)과 매일(每日)의 삶과, 영적성장(靈的成長)을 위한 은혜(恩惠)와 예수님을 믿고 영접(迎接)하면 영생(永生)을 얻게 되며, 영접(迎接)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구원(救援)을 선물(膳物)로 받을 뿐 아니라 매일(每日)의 삶에 필요(必要)한 일용(日用)한 여러 가지를 허락(許諾)해 주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축복들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하며 이를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誡命)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許諾)하신 것은  구원(救援)의 선물뿐 아니라 매일의 삶에 필요한 물질적(物質的) 축복과 영적(靈的)인 선물인 성령의 은사(恩賜)를 주시어 하나님의 뜻에 맞게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도록 하셨다.  


○.<(요일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誡命)들을 지키는 것이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즉 순종(順從)과 불가분리(不告分理)의 관계(關係)를 맺는다. 모든 계명(誡命) 중 가장 우월(優越)한 계명이 사랑 계명인 바 그 안에 하나님의 계명이 내포(內包)되어 있으며(Smalley) 그 계명에 대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表現)하게 된다. 그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表現)하는 것은 이미 예수께서 모범(模範)을 보이신 것이다(요14:31, 15:10).


○.<그의 계명(誡命)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거운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바레이아이’은 바리새인과 랍비들이 주장(主張)하는 무거운 또는 가벼운 율법이라는 사상(思想)을 반영(反映)한 것이다(마23:23, Smalley, Schnackenburg).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주장한 율법과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었던 반면에(마23:4, 눅11:46) 그리스도께서 주신 멍에는 쉽고 가벼운 것이다(마11:30). 하나님께서 먼저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셨고(4:19)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허락(許諾)해주셨으며(Dodd) 설사 그 계명을 만족(滿足)시키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은혜(恩惠)로 용서(容恕)해주시기 때문에(Calvin) 하나님의 계명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발적(自發的)인 순종(順從)을 통해 계명을 지키는 것이므로 그것은 가벼운 것이다. (요일 5:3, 만나주석)


(1월04일)(水)<하나님의 가족(家族) 구성원(構成員)들의 책임(責任)>


(Q)~(신명기 6:5과 마태복음 22:37절)의 이 구절(句節)들이 의미(意味)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A)~하나님의 가족(家族)의 구성원(構成員)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靈的) 물질적(物質的)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대한 반응(反應)을 나타내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그분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향(向)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도록 부름 받았다.

우리는 하나님 가족이 구성원(構成員)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계명(誡命)을 지킴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경험(經驗)하는 것이며, 그래서 더욱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명령(命令)과 규례(規例)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요일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사랑”(the love of God)이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는지 아니면 우리를 향(向)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는지에 관하여 때때로 의문(疑問)이 생기지만(참조 2:5, 15; 3:16, 17; 4:9), 이번에는 사도(使徒)가 하나님을 향(向)한 우리의 사랑(5:2)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分明)하다.


○.<이것이니>

이 말은 앞의 진술(2절)에 대한 이유(理由)를 소개(紹介)한다. 요한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분께 순종하는 것 사이의 긴밀(緊密)한 관계를 명백(明白)하게 하지 않았다고 느꼈을 것이며, 그래서 그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수반(隨伴)하며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 하나님을 향(向)한 사랑과 그분의 계명들에 대한 순종(順從)을 재차(再次) 강하게 연결시킨다. 사랑과 계명(誡命)을 지키는 것의 관계(關係)에 대한 더 깊은 논의(論議)는 (마 22:37~39; 롬 13:8~9)참조하라. 그는 이 주제(主題)에 대한 그리스도 자신의 가르침을 기록함으로 그의 복음서(福音書)에서 이것을 매우 분명(分明)하게 진술(陳述)한다(참조 요 14:15, 21, 23; 15:10).


○.<그의 계명(誡命)들>

  하나님의 계명(誡命)들은 여러 가지 방법(方法)-(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이웃을 그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눅 10:27) 또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 형제를 사랑하는 것(요일 3:23) 또는 십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결국 십계명은 두 계율(戒律), 즉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확장(擴張)일 뿐이다(마 19:17~19; 22:36~40; 롬 13:8~10).


○.<무거운>

  헬라어 바레이스(bareis), “무거운”, “고된”, “하기 힘든.” 마 23:4, 23; 행 20:29; 25:7에서의 이 단어의 사용을 참조하라.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계명(誡命)들이 고된 것이 아닌 이유는 순종(順從)이 사랑의 결과(結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분의 요구(要求)를 지키고 그분의 권고(勸告)를 따르는 것에서 기쁨을 찾으며, 하나님 자신이 법(法)을 준수(遵守)할 힘을 제공(提供)한다(고전 10:13; 빌 2:13). (요일 5:3, 재림교주석)


○.<(신5:5) 마음 … 뜻 … 힘을 다하여>

  여기서 ‘마음’에 해당하는 원어 ‘레밥’은 지정의(知情意)를 포함하는 인간의 내적(內的), 정신적(精神的) 본질(本質)을 가리킨다. 그리고 ‘뜻’에 해당하는 ‘네페쉬’는 ‘영혼(靈魂)’, ‘생명(生命)’, ‘호흡(呼吸)’ 등으로 번역(飜譯)되는데(창 1:30, 욥 41:21). 여기서는 육체(肉體)와 정신전체(精神全體)를 포괄(包括)한 전인격(全人格)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힘’에 해당하는 ‘메오드’는 육체적(肉體的), 정신적(精神的) 활동력(活動力) 및 모든 능력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상(以上)과 같은 구분(區分)은 순전히 여자적인 것일 뿐, 사실이 세 단어(單語)는 인간의 전인격과 모든 노력을 강조하는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전적(全的)인 헌신(獻身)과 사랑을 의미한다(마 22:37, 눅 10:27, 롬 12:1).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인간은 그 마음에 두 주인(主人)을 겸(兼)하여 섬길 수 없다. 왜냐하면 한편을 사랑하면 자연히 다른 편은 소홀(疏忽)히 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 능력의 한계(限界)이기 때문이다(마 6:24). 마음을 분산(分散)시키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마음 중심에 모셔 그분만을 경외(敬畏)하라는 의미이다(마 10:37). (신 6:5, 만나주석)


○.<(신5:5) 너는 마음을 다하고>

   그리스도교는 사람의 존재(存在) 자체(自體)와 마음, 애정(愛情), 능력(能力) 등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요구(要求)한다. (살전 5:23). 여기서 “마음”으로 번역(飜譯)된 단어는 일반적(一般的)으로 동기(動機), 애정(愛情), 감정(感情), 욕구(欲求), 의지(意志) 등을 일컫는 용어(用語)이다. 마음은 행동(行動)의 원천(源泉)이며 생각과 감정(感情)의 중심이다(출 31:6; 36:2; 대하 9:23; 전 2:23). “성품(性稟)”(soul)으로 번역(飜譯)된 단어(單語)는 근본적(根本的)으로 사람 안에 있는, 생명을 불어넣는 원리(原理)를 나타내지만, 신체적(身體的) 욕구(欲求)와 갈망(渴望)까지도 포함(包含)한다(참조 민 21:5). 잠 23:2과 전 6:7에서는 이 단어를 “탐식(貪食)”으로 번역하였다. 

“힘”으로 번역된 단어는 “증가(增加)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動詞)에서 파생(派生)되었다. 그 명사형(名詞形)은 “풍부(豊富)”를 뜻하며, 사람이 이생에서 축적(蓄積)한 것들을 지칭(指稱)할 수도 있다. (신 6:5, 재림교주석)


○.<사랑하라>

  여기서 “사랑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갈망(渴望)”, “애정(愛情)”, “경향(傾向)” 등, 영혼(靈魂)과 영혼(靈魂) 사이의 더욱 친밀(親密)한 결합(結合)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用語)이다. 하나님과 믿는 자들과의 관계는 사랑에 기초(基礎)되어 있다(요일 4:19). 또한 사랑은 그분의 율법의 근본적(根本的)인 원칙이다(막 12:9, 30). 온전히 사랑하는 것은 곧 전심(全心)으로 순종(順從)하는 것을 의미한다(요 14:15; 15:10). (신 6:5, 재림교주석)


(1월05일) (木)  <하늘에 쌓아 둔 보물(寶物)>


(Q)~(창 12:2-3)의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개념(槪念)에 하나님께 복(福)을 받는다는 것은 그 속에 어떤 의미를 포함(包含)하고 있으며, (마태 6:19~21)의 보물(寶物)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A)~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복(福)”의 개념(槪念)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는 영적축복(靈的祝福)이란 단순히 아브라함 개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窮極的)으로는 그의 가계(家系)에서 약속된 ‘여자의 후손(後孫)’(3:15)인 메시아가 나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後孫)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救援)과 영생(永生)은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미칠 수 있는 것이니(살후 2:13, 14) 그 같은 메시아의 조상(祖上)인 아브라함을 가리켜 ‘복(福)’이라 칭(稱)함이며, 

(마태6:19~21)의 “보물(寶物)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것”은, 돈이 하나님의 자녀의 수중(手中)에 있을 때는 그것이 주린 자의 양식(糧食)이 되고, 목마른 자의 마실 물이 되고, 헐벗은 자의 옷이 된다. 그것은 또 압제(壓制)받는 자에게 방어물(防禦物)이 되고, 병(病)든 자에게 도움의 방편(方便)이 되고 다른 사람을 축복(祝福)하고, 그리스도의 사업(事業)을 전진(前進)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곳 하늘에 쌓아 두는 보물(寶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허락(許諾)하신 물질의 축복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그분 나라의 확장(擴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그들에게 축복이 되는 일을 위해 사용할 때 하늘에 보물(寶物)을 쌓아두는 지혜(智慧)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이 땅에서 아브라함과 같이 축복의 통로(通路)가 되어야할 사명(使命)을 가졌다.


○.<(마6:19) 보물(寶物). (마태복음6:19-21)>

   헬라어 쎄사우루스(the-saurous, 참조 2:11 주석). 

그리스도가 여기서 가리키는 것은 넓은 의미의 부(富), 곧 모든 물질적(物質的) 소유(所有)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주된 열망(熱望)인 것처럼, 그리스도 당시(當時)에도 그것은 수많은 사람의 지배적(支配的)인 열망(熱望)이었다. 헬라어에는 흥미(興味)로운 말놀이(word play)가 나타나 있다. 


○.<쌓아 두지 말라>

   문자적(文字的)으로 “쌓아 두는 습관(習慣)을 갖지 말라” 또는 “쌓아 두는 것을 그만 두라.” 세상 재물(財物)을 축적(蓄積)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안전(安全)에 대한 욕구(欲求) 때문에 유발(誘發)되며, 따라서 미래(未來)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실(不確實)함을 반영(反映)한다. 예수는 천국시민(天國市民)이 될 사람들에게 물질적(物質的) 부(富)의 소유(所有)는 근심에서 벗어나는 수단(手段)이기보다는 근심의 원천(源泉)임을 지적(指摘)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필요를 아시고 그것들을 공급(供給)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생활의 필수품(必需品)들에 대해 염려(念慮)하지 않을 것이다(31~34절). 후(後)에 바울이 지적(指摘)한 것처럼,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자신과 가족의 필요를 공급(供給)하는 일에 나태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살전 4:11; 살후 3:10; 딤전 5:8). 6:19~21은 시적(詩的)인 형태(形態) 같기도 하고 일종(一種)의 잠언(箴言) 같기도 하다. 참조 잠 10:22 주석.


○.<좀과 동록(銅綠)>

   각종 손상(損傷)을 일컫는 상징(象徵). 동록(銅綠)에 해당(該當)하는 헬라어 브로시스(bro-sis)는 “먹다”를 뜻하는 비브로스코(bibro-sko-)에서 파생(派生)했으며 문자적(文字的)으로는 먹어 버리거나 갉아먹거나 침식(侵蝕)하는 어떤 것을 말한다. 모든 물질적(物質的)인 소유물(所有物)은 손실(損失)이나 부식(腐蝕) 또는 가치하락(價値下落) 등에 의해 어쨌든 영향(影響)을 받는다. 


○.<해(害)하며>

   헬라어 아파니조(aphanizo). 아파니조는 여기서 “먹어 버리다”(consume)로 번역하는 편이 낫다.


○.<구멍을 뚫고>

  진흙 벽이나 마른 벽돌로 된 벽을 “뚫는 것”을 말함.


○.<보물(寶物)을 하늘에>

   하늘에 두는 보물(寶物)은 영원(永遠)하며, 지상(地上)의 보물(寶物)을 해(害)치는 원수(怨讐)들과 시간의 약탈(掠奪)에도 아무런 영향(影響)을 받지 않는다. 지상 보물에 대한 투자(投資)는 필연적(必然的)으로 그 가치(價値)가 하락(下落)하는 반면, 하늘 보물에 대한 투자(投資)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가치(價値)가 상승(上昇)한다.


○.<쌓아 두라>

   산상설교(山上說敎)에는 보물(寶物)을 바른 장소에 쌓기만 한다면 그것을 쌓는 것을 금지(禁止)하는 명령(命令)은 없다. 그리스도는 하늘 아버지께서 이 땅에서 그들에게 적절하게 할당(割當)한 시간과 힘을 안전(安全)한 곳에 투자(投資)하기를 바란다. 현세(現世)에서 어떤 사람이 소유한 모든 것은 단지 하나님께 빌려 받은 것이다. 성공적으로 하늘에 쌓아 둔 “보물(寶物)”만이 자신의 진정(眞情)한 소유(所有)라고 부를 수 있다. 


○.<네 마음도 있느니라> 

  보물(寶物)이란 그것의 고유(固有)가치(價値)와 상관없이 사람이 마음을 두고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 어린아이의 “보물”은 본질적(本質的)으로 거의 가치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 아이에게는 왕의 몸값처럼 큰돈을 의미할 수 있다. 사람의 진정한 관심은 자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있다.” (마 6:19~21, 재림교주석)


○.<땅의 보물(寶物)과 하늘의 보물 (마태복음 6:19-24)>

   세속적(世俗的)인 마음은 다른 징후(徵候)만큼 일반적이고도 치명적(致命的)인 위선(僞善)의 한 징후(徵候)이다. 사탄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그럴 듯한 신앙고백(信仰告白)의 미명(美名) 아래, 그 어떤 죄(罪)보다도 바로 이러한 죄를 통해서 영혼(靈魂)을 더 확실하고 굳게 붙잡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사람의 칭찬(稱讚)"을 열망(熱望)하는 것에 대해 경고(警告)하고 나서 그 다음으로 세상의 부귀(富貴)에 대해 경고(警告)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위선(僞善)하는 자들처럼 되지 않기 위하여, 그들이 행하는 것처럼 행하지 않기 위하여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이 범(犯)하는 근본적(根本的)인 잘못은 "자기 상(賞)"을 위해 세상을 택(擇)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재물(財物)과 목표(目標), 주인을 선택(選擇)함에 있어서 위선(僞善)과 세속적인 것에 유의(有意)해야 한다. (마 6:19~21, 매튜헨리)


○.우리는 "우리가 쌓아둔 재물(財物)"을 선택(選擇)함에 있어서 유의(有意)해야 한다. 누구든지 사람은 "재물(財物)"과 몫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이것에 마음을 두고 미래(未來)를 위해 의지한다. 그것은 "좋은 것"이라 솔로몬은 강조(强調)하고 있다(전 2:3). 사람은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 다른 일들에 무엇보다도 만족(滿足)과 신뢰(信賴)를 두는 것을 가지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재산(財産)을 탈취(奪取)하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는,

○."현세적(現世的)으로 보이는 것"을 우리의 최선의 것으로 삼는 것과 우리의 행복을 이것에 두는 것에 대해 "좋은 경고(警告)"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후손(後孫)"을 위해서 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세상에서 "우리의 자신(自身)들"을 위해 쌓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선택(選擇)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 스스로가 결정(決定)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 쌓아 두는 것"은 우리의 것이다. 현명(賢明)하게 선택하는 것은 당신에게 중요(重要)하다. 왜냐하면 네가 스스로 선택(選擇)하며, 선택한대로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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