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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인간의 본질을 이해함 - (핵심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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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10-10 21:52 조회1,4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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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인간(人間)의 본질(本質)을 이해(理解)함>

                                                              (10월15일 (안)/ 日沒 : 17시56분)


<서언(序言)>

인간의 본질(本質)과 죽은 자의 상태(狀態)에 대하여 분명히 깨닫는 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러한 것을 깨달을 때 예수님의 구속(救贖)의 경륜을 분명하게 깨달게 되며 죽음을 뛰어 넘는 확실(確實)한 소망(所望)의 약속(約束)을 믿게 되며, 사단의 걸작품(傑作品)인 영혼불멸설(靈魂不滅設)과 강신술(降神術)의 오류(誤謬)와 유혹(誘惑)에 넘어가지 않고 성령(聖靈)의 진리(眞理)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은혜(恩惠)와 사랑에 믿음과 신앙으로 감사함으로 반응(反應)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10월09일 (日)  <“생령(生靈)”>


(Q)~(창세기 2:7절)은 인간(人間)의 본질(本質)에 대해 어떻게 설명(說明)하고 있습니까?


(A)~○. 짐승과 사람의 창조(創造)에 대한 유사점(類似點)으로는 흙의 재료(材料)를 사용했다는 점이고, 차이점(差異點)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形像)으로 코에 생기(生氣)를 불어 넣어 전인적(全人的)인 살아있는 존재로 창조(創造)되었다는 점이다. 즉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후에 그 속에 생기(生氣)를 불어 넣으시자 생령(生靈)이(살아있는 존재(存在)로)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전인적(全人的)인 존재로서 신묘막측(神妙莫測)할 뿐만 아니라 몸과 영혼(靈魂)이 분리(分離)되어 별도(別途)로 존재하지 않는다.  


(10월10일 (月)  <“범죄(犯罪)하는 그 영혼(靈魂)은 죽으리라”> 


(Q)~(겔 18:4, 20, 마 10:28절) 성경은 인간의 영혼(靈魂)의 본질(本質)에 대해 무엇이라고 이야기합니까?


(A)~○. 성경은 인간의 삶은 연약(軟弱)할뿐 아니라 일시적(一時的)라 말씀하고 있다.(사 40:1~8) 그 이유(理由)는 죄(罪)로 오염(汚染)된 어떤 것도 본질상(本質上) 영원(永遠)할 수가 없고, 영혼(靈魂)은 죽으며 멸(滅)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죄에 오염(汚染)된 우리의 몸과 영혼(靈魂)도 마찬 가지로 죽음을 면(免)할 수가 없으며, 죽음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생명체(生命體)에게 미치는 죄의 결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예수님의 재림(再臨)때에 순간(瞬間)부활(復活)할 것이다. 


(10월11일 (火)  <영(靈)은 하나님께로 돌아감>


(Q)~(창세기 2:7과 전도서(傳道書) 12:1~7절)을 비교(比較)해 보십시오. 죽은 자의 상태(狀態)를 더 잘 이해(理解)하는 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까? 


(A)~○. 죽음은 사람을 창조(創造)한 순서(順序)의 정반대(正反對)의 작용(作用)인 역작용(逆作用)으로 생명체(生命體)의 존재(存在)가 멈춤으로 생명의 호흡(呼吸)은 즉시(卽時)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죽음은 생명(生命)의 반대(反對)이며 생명의 원수(怨讐)인 것이다. 

○. ※ <사람의 본질(本質)=흙+생기(生氣)=산사람 이고 / 죽음=산사람-생기=흙 이다>


(10월12일 (水)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Q)~(욥기 3:11~13, 시편 115:17, 시편 146:4, 전도서 9:5, 10절)에서 깨닫게 되는 죽은 자의 상태(狀態)는 무엇입니까?


(A)~○. 성경은 사람이 죽게 되면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시146:4] “그의 호흡(呼吸)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生覺)이 소멸(消滅)하리로다.” 즉(생명상태 지속작용(生命狀態持續作用)이 끝나기 때문에 전(全)혀 의식(意識)이 없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의식상태(無意識常態)에서 예수님께서 재림(再臨)하실 때까지 잠들어 있게 된다고 분명(分明)히 가르친다. <참조 [시115:17] [전9:5,10]> 


(10월13일 (木)  <조상(祖上)들과 함께 누움>


(Q)~(왕하 24:6, 대하 32:33) 조상(祖上)들과 함께 누워”라는 표현(表現)은 죽음의 본질(本質)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A)~○. 사람이 죽어 조상(祖上)들에게 돌아간다고 표현(表現)하고 또 누워 잔다고 표현한 것들의 의미(意味)는 즉(卽) 죽음의 본질은 흙으로 돌아가서 사람으로서의 그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악인(惡人)이나 선인(善人)이나 다 같다. 죽음이란 흙으로 돌아가서 다 그와 같이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意味)이며 죄로 오염(汚染)된 이 세속(世俗)에 사는 우리 인간들은 머지않아 우리보다 앞서 잠든 조상(祖上)들의 뒤를 따라가게 될 것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의 소망(所望)을 확실한 믿고 붙잡을 때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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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부록(末尾附錄)>



<제3과 인간(人間)의 본질(本質)을 이해(理解)함>

                                                             (10월15일 (안)/ 日沒 : 17시56분)


<서언(序言)>

인간의 본질(本質)과 죽은 자의 상태(狀態)에 대하여 분명히 깨닫는 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러한 것을 깨달을 때 예수님의 구속(救贖)의 경륜을 분명하게 깨달게 되며 죽음을 뛰어 넘는 확실(確實)한 소망(所望)의 약속(約束)을 믿게 되며, 사단의 걸작품(傑作品)인 영혼불멸설(靈魂不滅設)과 강신술(降神術)의 오류(誤謬)와 유혹(誘惑)에 넘어가지 않고 성령(聖靈)의 진리(眞理)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은혜(恩惠)와 사랑에 믿음과 신앙으로 감사함으로 반응(反應)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10월09일 (日)  <“생령(生靈)”>


(Q)~(창세기 2:7절)은 인간(人間)의 본질(本質)에 대해 어떻게 설명(說明)하고 있습니까?


(A)~○. 짐승과 사람의 창조(創造)에 대한 유사점(類似點)으로는 흙의 재료(材料)를 사용했다는 점이고, 차이점(差異點)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形像)으로 코에 생기(生氣)를 불어 넣어 전인적(全人的)인 살아있는 존재로 창조(創造)되었다는 점이다. 즉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후에 그 속에 생기(生氣)를 불어 넣으시자 생령(生靈)이(살아있는 존재(存在)로)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전인적(全人的)인 존재로서 신묘막측(神妙莫測)할 뿐만 아니라 몸과 영혼(靈魂)이 분리(分離)되어 별도(別途)로 존재하지 않는다.  


○. “사람의 창조에 있어서 개성(個性)을 가지신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創造)하실 때, 인간의 형체(形體)는 그 모든 구조(構造)에 있어 완전(完全)하였으나 거기에 생명은 없었다. 그 때에 개성(個性)을 가지시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형체(形體) 속에 생기(生氣)를 불어넣으셨다. 그러자 사람은 생명(生命)을 가진 지성적 존재(知性的存在)가 되었다. 동시에 인체(人體)의 모든 기관(器官)이 움직이게 되었다. 심장(心臟), 동맥(動脈), 정맥(靜脈), 혀, 손, 발, 감각(感覺), 정신작용(精神作用), 그 모든 것들이 활동(活動)을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법칙(法則)의 지배(支配)를 받게 되었다. 사람은 생령(生靈)이 되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개성(個性)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지성(知性)과 능력(能力)이 풍부(豊富)하게 하셨다.”(가건, 277) (치료봉사 415)


○. 사람은 만물(萬物) 중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최고(最高)의 걸작품(傑作品)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形像)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창2:22)라고 말씀하셨다.


○. 천지창조(天地創造) 다음으로 하신 기적(奇蹟)은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 불리는 사람의 창조이다. 흙을 주물러서 남자인 아담을 만들고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 하와를 만드셨다. 남녀를 만든 재료가 근본적(根本的)으로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체(肉體)를 참으로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창조하셨다. 전자냉방(電子冷房), 온방(溫房) 조절장치(調節裝置)로 하루 평균 2500칼로리의 열을 발(發)하는데 25잔의 커피를 끓일 수 있는 열량(熱量)이 사용된다고 한다. 신체(身體)의 각 부분(部分)과 연결(連結)되어 있는 뇌(腦)는 자율신경(自律神經) 온도조절장치(溫度調節裝置)요, 몸이 덥거나 추우면 대뇌(大腦)에서 혈액순환(血液循環)과 땀으로 열이 발산량(發散量)을 조절(調節)한다. 약(約) 천만 개(千萬個)의 신경세포(神經細胞)로 된 뇌(腦)는 0.07볼트의 전기(電氣)를 내며, 눈을 30만개의 회로(回路)로 대뇌(大腦)와 연결되어 있어서 꽃을 보면 수천개(數千個)의 회로(回路)가 작동(作動)해서 꽃의 크기, 모양, 색깔을 구별한다.


○. 인체분석학자(人體分析學者)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의 창조하신 인체의 기능(機能)은 신비적(神秘的)이라 했다. 사람의 몸, 곧 인체는 약 60조(兆)나 되는 세포(細胞) 덩어리로, 60조(兆)는 현재 세계인구 70억(億)의 약(約) 만 배(萬倍)에 이른다. 그런데 인체의 세포는 하나하나 떼어놓아도 환경에 적절(適切)하게 적응(適應)하고 호흡(呼吸)과 영양섭취(營養攝取), 배설(排泄)과 생식(生殖)이 가능(可能)하다는 것이다. 하루에 약 수백억개(數百億個)의 세포(細胞)가 죽어가고 또 생성(生成)된다는 말이다.


○. 죽어간 세포를 모두 모아 담으면 거의 한 접시가 된다고 한다. 이 수백억 개(數百億個)의 세포는 60조(兆) 세포로 된 인체의 1/1000에 해당되는 세포가 하루에 죽고 생성(生成)된다. 지구상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70억 인구의 약 만 배(萬倍)가 되는 60조의 세포를 통솔(統率)하는 거대(巨大)한 소우주(小宇宙), 곧 사람의 주인공(主人公)은 무엇인가?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대우주(大宇宙)에 비하여 소우주를 운행하고 살려가는 본체(本體)는 누구인가? 그것은 사람의 생령(生靈)인 영혼(靈魂)이며, 영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성경(聖經)은 말하고 있다.


○. “모든 영혼(靈魂)이 다 내게 속(屬)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屬)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犯罪)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18:4)

“사람이 만일 온 천하(天下)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有益)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 사람의 존재(存在)는 흙에서 지음을 받아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存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른 피조물(被造物)과 다르게 흙으로 지은 사람에게 생기(生氣)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셨습니다. 생기(生氣)는 ‘생명(生命)의 호흡(呼吸)'(breath of life)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기(生氣)는 하나님의 영(靈)을 사람에게 넣어 주셔서 사람의 생명(生命)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창조(創造)는 모든 피조물(被造物)의 으뜸으로서 구별(區別)된 이유(理由)는 하나님의 영(靈)이 사람의 존재(存在)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영(靈)으로 하나님과 영적(靈的)인 관계(關係)를 맺으며 교제(交際)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 태초(太初)에 하나님께서는 인간(人間)을 하나님의 형상(形像)을 따라 창조(創造)하신 다음, 그들이 거처(居處)하기 위한 장소(場所)로 동방(東邦)의 에덴에 동산(東山)을 창설(創設)하시고, 그 곳에서 행복(幸福)하게 살아가도록 축복(祝福)해 주셨다.(창세기2:8)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東山)에서 인간(人間)을 만나시고 인격적(人格的) 교제(交際)를 나누시며 인간(人間)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性稟)을 닮아가게 하셨다. 그리고 창조주(創造主) 하나님과 동행(同行)하면서 하나님을 찬양(讚揚)하고 이 땅위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를 원(願)하셨던 것이다.


○. (이사야 43:21) “이 백성(百姓)은 내가 나를 위(爲)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讚頌)하게 하려함 이니라.”


○. 그래서 육체(肉體)를 가진 인간으로 하여금 같은 차원(次元)의 세상만물(世上萬物)을 지키며 다스리게 하시되 “생육(生育)하고 번성(蕃盛)하여 땅에 충만(充滿)하라. 땅을 정복(征服)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空中)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生物)을 다스리라.”(창세기1:28)고 말씀하시면서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權勢)를 주셨다.


○.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創造)하신 목적(目的)은 인간(人間)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人格的交際)를 나누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만물(世上萬物)을 다스리게 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恩寵)을 생각(生覺)하며 하나님을 영화(榮華)롭게 하고, 그를 영원(永遠)토록 즐거워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추론(追論)해 볼 수가 있다.


○.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창조목적(創造目的)은 다만 생명의 근원(根源)이신 하나님과 정상적(正常的)인 관계(關係)를 유지(維持)할 수 있을 때에만 이룰 수 있는 은혜(恩惠)의 선물(膳物)이었던 것이다.


(10월10일 (月)  <“범죄(犯罪)하는 그 영혼(靈魂)은 죽으리라”> 


(Q)~(겔 18:4, 20, 마 10:28절) 성경은 인간의 영혼(靈魂)의 본질(本質)에 대해 무엇이라고 이야기합니까?


(A)~○. 성경은 인간의 삶은 연약(軟弱)할뿐 아니라 일시적(一時的)라 말씀하고 있다.(사 40:1~8) 그 이유(理由)는 죄(罪)로 오염(汚染)된 어떤 것도 본질상(本質上) 영원(永遠)할 수가 없고, 영혼(靈魂)은 죽으며 멸(滅)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죄에 오염(汚染)된 우리의 몸과 영혼(靈魂)도 마찬 가지로 죽음을 면(免)할 수가 없으며, 죽음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생명체(生命體)에게 미치는 죄의 결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예수님의 재림(再臨)때에 순간(瞬間)부활(復活)할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18:4, 20절)에서 이 경고를 반복해 강조하신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전도서 3:19, 20).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했다.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 그러나 사망이 들어온 것은 오로지 죄 때문이다. 죄가 들어오지 않았던들 사망이 들어왔을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사망의 고난을 받기 위하여 예수는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셨다. 그러므로 예수는 인간이 범죄한 후의 인성을 쓰셨으며 결코 전의 인성을 쓰지 않으셨다. 이렇게 하신 목적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었다. 인간을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이러한 인간이 되시고 인간이 있는 곳까지 찾아 오셔야만 했다. 인간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과 똑같은 인간이 되시지 않으면 안되었다. (완전, 4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10월11일 (火)  <영(靈)은 하나님께로 돌아감>


(Q)~(창세기 2:7과 전도서(傳道書) 12:1~7절)을 비교(比較)해 보십시오. 죽은 자의 상태(狀態)를 더 잘 이해(理解)하는 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까? 


(A)~○. 죽음은 사람을 창조(創造)한 순서(順序)의 정반대(正反對)의 작용(作用)인 역작용(逆作用)으로 생명체(生命體)의 존재(存在)가 멈춤으로 생명의 호흡(呼吸)은 즉시(卽時)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죽음은 생명(生命)의 반대(反對)이며 생명의 원수(怨讐)인 것이다. 


○. ※ <사람의 본질(本質)=흙+생기(生氣)=산사람 이고 / 죽음=산사람-생기=흙 이다>


○. <생기(生氣)>

“숨”[氣]은 느샤마(nes∨amah)의 번역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생명을 주는 원리가 아담의 생명 없는 몸에 들어갔다. 생명의 불꽃이 그의 육체로 전가되도록 해준 매개체를 하나님의 “(생)기”라고 말한다. 동일한 사상이 (욥 33:4)에도 나타난다. “전능자의 기운(nes∨amah)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사람에게 나누어진 그 “(생)기”는 그의 생명과 같다. 그것은 생명 자체이다(사 2:22). 사망 시에는 “숨(nes∨amah, 생명)이 끊어진”다(왕상 17:17). 사람에게 있는 이 “생명의 호흡”은 동물들에게 있는 “생물의 기식”과 결코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만물은 그들의 생명을 하나님에게서 받기 때문이다(창 7:21, 22; 전 3:19). 그러므로 그것은 정신이나 지능이 될 수 없다. (창 2:7, 재림교주석)


○. <생령(生靈)>

사람의 생명 없는 형체에 이 하나님의 “(생)기”(nes∨amah)가 불어넣어졌을 때, 사람은 살아 있는 “영”, 네페쉬(nepes∨)가 되었다. 네페쉬라는 말은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다. 

(1) 숨(욥 41:21), (2) 생명(왕상 17:21; 삼하 18:13 등), (3) 애정의 자리로서의 마음(창 34:3; 아 1:7 등), (4) 살아 있는 존재(창 12:5; 36:6; 레 4:2 등), (5) 인칭 대명사를 강조하기 위해(시 3:2; 삼상 18:1 등). 네페쉬는 하나님에 의해 조성되며(렘 38:16), 죽을 수 있으며(삿 16:30), 죽임을 당하며(민 31:19), 먹히며(은유적으로, 겔 22:25), 구속(救贖)되며(시 34:22), 소성케 된다(시 19:7).는 것을 주목하라. 이 중 아무것도 혼, 즉 루아흐(ruah.)에 적용되지 않으며, 이것은 두 용어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가리킨다. 

위의 조사에서(창 2:7)의 네페쉬를 제임스왕역(KJV)이 “영혼”(soul)으로 번역한 것은, 만일 그것이 흔히 사용되는 표현인 “불멸의 영”이라는 의미라면, 적절치 않다는 것이 위의 검토를 통해 명백해진다. 이 개념은 널리 퍼져 있지만, 성경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바르게 번역될 수 있다: “사람이 산 존재가 되었다”(개정표준역(RSV)). “영”을 “존재”와 동의어로 간주할 때, 우리는 이 본문에서 네페쉬의 성경적인 의미를 얻게 된다.  (창 2:7, 재림교주석)


○. <죽음은 우리를 우리의 제일(第一) 원리(原理)로 환원(還元)시킬 것이다. (전도서 12:7절)>

인간은 신비(神秘)한 종류의 피조물(被造物)이어서 그 안에는 하늘의 한 줄기 광선(光線)이 땅의 한 덩이 흙과 결합(結合)되어 있다. 그러다가 죽으면 이 둘은 분리(分離)되어 각각 그것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 <첫째>

   진흙 덩어리인 몸은 그것이 원래(原來) 속했던 "땅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흙으로" 지어졌으니 아담의 몸도 흙에서 나왔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몸은 진흙으로 된 집이다. 

그것은 죽으면 "흙"(땅) 속에 눕혀지며 순식간(瞬息間)에 흙으로 환원(還元)되어 보통 흙과 조금도 다룰 바가 없이 될 것이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고(宣告)하신 대로이다(창 3:19). "너는 티끌(흙)이니 티끌(흙)로 돌아가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肉身)의 욕심(慾心)에 빠지거나 몸이 요구(要求)하는 것을 포식(捕食)하지 말며(몸은 곧 구더기의 양식(糧食)이 될 것이기 때문에), "죄로" 하여금 "우리의 죽을 몸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자"(롬 6:12). 왜냐하면 우리 몸은 죽을 운명(運命)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둘째>

   한줄기 빛인 영혼(靈魂)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 하나님이 "지면(地面)의 흙으로 인간을 지으셨을" 때, 그는 "사람에게 생기(生氣)를 불어 넣으셔서" 그가 "산 영혼(靈魂)"이 되게 하셨다(창 2:7).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 안에 각 사람의 영(靈)을 만들어 주신다. 불이 장작(長斫)을 태우면 불길은 올라가고, 재는 그 나무가 자라났던 "땅으로 돌아간다." 이와 같이 영혼(靈魂)도 신체(身體)와 함께 죽지 않는다. 영혼은 "음부(陰府)의 권세(權勢)에서 구제(救濟)된다"(시 49:15). 그것은 신체(身體)없이도 존재(存在)할 수 있으며, 육체에서 분리(分離)되면 어두운 등피를 벗겨 냈을 때 촛불이 더욱 밝게 타는 것과 마찬가지로 더욱 빛나게 된다. 그것은 영(靈)들의 세계로 이주(移住)하여 그 세계에 합류(合流)된다. 영혼은 대재판장(大裁判長)인의 "하나님께" 가서 자신에 대한 진술(陳述)을 하고 그 몸이 행(行)한 것을 따라 "감옥(監獄)에 있는 영(靈)들과 함께 기거(起居)하게 되거나"(벧전 3:19), 아니면 "낙원(樂園)에 있는 영(靈)들"과 기거(起居)하게(눅 23:43)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악인(惡人)들에게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 된다. 그들의 영혼(靈魂)은 복수자(復讐者)로서의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경건(敬虔)한 자들에게는 죽음이 편안(便安)한 것이 된다. 그들의 영혼은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그들 자신을 그 손에 즐겨 맡길 수 있는 것은 중보자(仲保者)가 계시기 때문이다. 반대(反對)로 죄인(罪人)들은 이 중보자(仲保者)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가는 일을 당연(當然)히 두렵게 여기는 것이다.  (전 12:1~7, 매튜헨리)


(10월12일 (水)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Q)~(욥기 3:11~13, 시편 115:17, 시편 146:4, 전도서 9:5, 10절)에서 깨닫게 되는 죽은 자의 상태(狀態)는 무엇입니까?


(A)~○. 성경은 사람이 죽게 되면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시146:4] “그의 호흡(呼吸)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生覺)이 소멸(消滅)하리로다.” 즉(생명상태 지속작용(生命狀態持續作用)이 끝나기 때문에 전(全)혀 의식(意識)이 없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의식상태(無意識常態)에서 예수님께서 재림(再臨)하실 때까지 잠들어 있게 된다고 분명(分明)히 가르친다. <참조 [시115:17] [전9:5,10]> 


○. <죽은 자의 무의식상태(無意識常態)> 

우리는 사람이 죽을 때에 적막(寂寞)하고 활동(活動)이 없으며 완전(完全)한 무의식상태(無意識常態)에 들어가며 그래서 그가 의인(義人)이면 첫째 부활(復活)때까지 만일(萬一) 악인(惡人)이면 둘째 부활(復活)때까지는 시간(時間)의 흐름이나 외부사건(外部事件)에 대하여 완전(完全)히 알지 못하는 잠자는 상태(狀態)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 (성연1-3, 제1편>30.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인들은 무엇을 믿는가?)


(10월13일 (木)  <조상(祖上)들과 함께 누움>


(Q)~(왕하 24:6, 대하 32:33) 조상(祖上)들과 함께 누워”라는 표현(表現)은 죽음의 본질(本質)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A)~○. 사람이 죽어 조상(祖上)들에게 돌아간다고 표현(表現)하고 또 누워 잔다고 표현한 것들의 의미(意味)는 즉(卽) 죽음의 본질은 흙으로 돌아가서 사람으로서의 그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악인(惡人)이나 선인(善人)이나 다 같다. 죽음이란 흙으로 돌아가서 다 그와 같이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意味)이며 죄로 오염(汚染)된 이 세속(世俗)에 사는 우리 인간들은 머지않아 우리보다 앞서 잠든 조상(祖上)들의 뒤를 따라가게 될 것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의 소망(所望)을 확실한 믿고 붙잡을 때엔 죽음 앞에서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될 영광(榮光)의 날이 이를 때까지 의식(意識) 없이 머물러 있을 것이다. 


○. 구약성경(舊約聖經)은, 다윗과 솔로몬과 이스라엘과 유다의 다른 왕들의 죽음에 관하여 말하면서 그들이 조상(祖上)들과 함께 자는 것으로 묘사(描寫)한다(왕상 2:10, 11:43, 14:20, 31, 15:8; 대하 21:1, 26:23). 욥은, 다윗(시 13:3)과 예레미야(렘 51:39, 57)와 다니엘(단 12:2)과 똑같이 죽음을 잠이라고 불렀다(욥 14:17-12).”(교리, 325)


○. “사도(使徒)는 계속하여 “우리도 조상(祖上)들에게 주신 약속(約束)을 너희에게 전파(傳播)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子女)들에게 이 약속(約束)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詩篇) 둘째 편(篇)에 기록(記錄)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恩賜)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當時)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祖上)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형제(兄弟)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罪赦)함을 너희에게 전(傳)하는 이것이”라고 말하였다.”(행적, 172)


○.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히브리인들은 비유적(比喩的)으로, 죽은 자들이 스올(s∨e’ol)이라는 영역에서 함께 잠자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이 말은 「제임스왕역」에서 “무덤”(grave)과 “지옥(地獄)”(hell)으로 번역(飜譯)되었다. 지옥(地獄)(hell)이란 번역(飜譯)은 부적당(不適當)하다. 왜냐하면 스올은 고통(苦痛)이나 의식(意識)이 있는 상태(狀態)와는 무관(無關)하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때때로 그의 조상(祖上)들과 함께 자는 것으로(삼하 7:12; 왕상 1:21; 2:10) 혹은 그의 열조(烈祖)에게 돌아가는 것으로(왕하 22:20) 나타난다. 다윗은 자신이 죽으면 아들과 같은 처지로 가겠지만, 그의 아들은 산 사람의 땅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성경주석, 삼하 12:23)


○. <창세기 25:8, 신 32:50, 사무엘하 7:12, 열왕기상 2:10, 그리고 열왕기상 22:40절 왕하 24:6, 대하 32:33절 참조>


○. 조상(祖上)들과 함께 누웠다는 표현(表現)을 통해 적어도 세 가지의 의미(意味) 있는 사실을 확인(確認)할 수 있다. 

  (첫째),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우리의 힘든 일들과 고통(苦痛)으로부터 쉬게 될 때가 온다는 사실이다. 

  (둘째), 조상(祖上)들이 이미 앞서 갔기에, 우리는 우리가 원치 않는 길을 가게 되는 첫 번째 그리고 유일(唯一)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셋째), 그들 가까이에 매장(埋葬)됨으로 우리는 죽음의 무의식(無意識) 상태(狀態) 속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이 현대의 개인주의적(個人主義的) 문화(文化)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고대(古代)에는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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