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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창세기 4.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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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2-04-19 09:19 조회1,3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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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범위 6:13~7:10, 벧후 2:5~9, 7, 6:1~6, 106:4, 8, 9:1~17 

 

기억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24:37).

 

핵심 죄로 가득한 세상을 심판하는 중에도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셔서 방주를 통해서 살 길을 주시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무지개 언약으로 구원을 약속하셨다.

*핵심어 : 자비, 순종, 언약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망가져있는 모습을 본다면?

 

.1. 악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6:5~7)?

2. 홍수를 대비해서 노아가 한 일은?(6:13~7:5)

3. 노아의 믿음은 오늘날에도 얼마나 필요한가?

 

.1. 홍수는 창조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7)?

2. 하나님이 내 안에 새 마음을 창조하도록 부서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1. 홍수의 끝과 관련해서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다는 것은(8:1)?

2. 하나님이 여전히 날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면?

 

.1. 홍수가 있기 전 하나님은 노아와 어떤 언약을 세우셨는가(6:18)?

2. 홍수 후 인간의 식습관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9:2~4)

 

.1. 하나님은 홍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 어떤 언약을 세우셨는가(9:8~17)?

2. 앞으로 무지개를 보면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겠는가?

 

적용, 결심

 

이번 주 교과를 통해서 결심한 것이 있다면?

 

답을 위한 도움

 

.1. 한탄하심

 

한탄하다는 단어는 원어상 후회하다는 뜻이다. 이는 신인동형동성적 표현이다. 자신이 창조한 세상이 죄악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심히 슬퍼하셨다. 그것은 죄를 근절하기 위하여 자신의 피조물들을 심판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픔이었다. 하나님은 악인이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돌이켜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치 않을 때 멸망받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홍수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이었다고 한다.

 

2. 하나님의 명대로 행함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 하셨고 노아는 방주를 만들고 생명들을 보존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준행하였다. 여기서 만들라는 단어와 준행하였다는 단어의 원어가 아사라는 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했음을 의미한다.

노아 시대에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짓는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불가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당시의 천연계는 너무나 아름답고 세상은 자연재난없이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비가 오거나 물이 넘쳐 생명을 위협하는 현상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방주를 만들며 세상을 경고하는 노아의 삶은 조롱거리일 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수를 경고하셨고, 노아는 보이지 않는 그 일을 믿음으로 보고 방주를 지었다.

 

3. 행함으로 나타나는 믿음이 절실함

 

오늘날 말로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많으나 그분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이들은 적다. 노아처럼 행하고 순종하는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다.

 

.1. 창조 사건에 등장한 유사한 표현들이 홍수 사건에도 등장함

 

홍수에 관해 기록해 놓은 성경 말씀을 유심히 살펴보면, 창조 이야기 때 사용된 것과 공통된 단어들과 표현들이 많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곱”(7:2, 3, 4, 10, 비교, 2:1~3), “남자와 여자/암수”(7:2, 3, 9, 16, 비교, 1:27), “그 종류대로”(7:14, 비교, 1:11, 12, 21, 24, 25), “들짐승,” “,” “기는 것들,”(7:8, 14, 21, 23, 비교, 1:24, 25), 그리고 생명의 기운”(7:15, 22, 비교, 2:7).

... 홍수 이야기 속에 나타난 창조의 흔적은 창조하시는 하나님과 멸망시키시는 하나님이 같은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32:39). 하지만 이와 같은 유사성은 희망의 기별을 전달하기도 한다. 홍수는 새로운 창조가 되도록 계획되었으며, 이를 통해 세상은 새롭게 존재하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1. 구원하심

 

기억하다는 단어가 개역성경에는 권념하다로 나와있다.

노아의 가족들, 짐승들은 폭우와 땅속에서 솟아나는 물로 점점 불어나는 맹렬한 소용돌이와 파도 위에서 홀로 외롭게 떠있는 방주에 탄 채로. 150일간이나 어둠 속에서 싸워야 했다. 그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처음부터 기억하시고 그들이 안전한 항해를 마칠 수 있도록 방주의 키를 잡고 계셨다. 그리고 마침내 홍수를 끝내심으로 그들을 홍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셨다.

홍수로부터 물이 감하여 땅이 마르기까지 1년이 걸렸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긴 했으나 노아는 하나님의 지시기가 있을 때까지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방주 밖으로 나가도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노아는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했으며 밖으로 나가라는 하나님의 신호를 기다린다. 그는 방주 안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에 들어간 것같이 떠나라는 특별한 지시가 내리기를 기다렸다....마침내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육중한 문을 열고... 땅으로 내려가라고 명하였다”(부조와 선지자, 105).

 

.1. 방주를 통한 구원

 

세상은 물로 멸망하겠지만 방주에 들어가는 자는 노아 가족 뿐 아니라 누구라도 구원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심판에도 피할 길을 주신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맞는 구원의 방주가 있다. 이 시대는 세천사의 기별, 건강 기별 등이다. 궁극적인 구원의 방주는 재림하실 예수님이시다.

코로나와 전쟁과 끊임없는 자연 재해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참된 소망 되시는 예수님의 재림을 알려주는 게 우리의 사명이다.

 

2. 육식 허용

 

육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홍수로 식물성 식품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은 생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육식을 허용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였다. 홍수 전의 인류는 900년의 수명을 유지했으나 홍수 후에는 300년대로 줄어들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100세를 넘기기가 힘들게 되었다. 이는 갈수록 악해지는 인간의 죄성과 반비례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수명을 단축시킴으로 죄의 고통 덜 당하게 하신 것이다.

 

.1. 무지개 언약

 

홍수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후손들도 세대가 지나면서 점점 타락하여 노아의 때 이상으로 악해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의미로 무지개를 가리키신다.

지금도 홍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인명을 잃는 것은 사실이나, 전 세계적인 멸망은 아니다. 무지개가 뜨면 이젠 비가 그쳤구나 하고 안심을 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여전히 죄인들을 사랑하사 세상을 보존하고 계신다는 증거다.

무지개 자체에는 구원의 능력이 없다. 그것은 죄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을 통해 타나난 하나님의 자비의 상징이다. 방주 안에 하나님의 자비 안에 있는 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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