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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전도의 이유 (질문, 대답, 설명) 0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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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0-06-27 01:37 조회5,7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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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전도의 이유 

 

7월 4일 안식일

일몰:오후 7시 57분

 

● 연구 범위 : 약 5:19~20, 눅 15:6, 습 3:17, 요 7:37~38, 딤전 2:3~4, 고후 5:14~15

● 기억절 :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3~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그분의 사랑에 반응하여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서 그분의 나라로 속량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그분에게 우리의 구원보다 더 큰 소원은 없다. 그분의 사랑은 끝이 없고 그분의 자비는 셀 수 없으며 그분의 동정은 무한하고 그분의 용서는 마르지 않으며 그분의 능력은 무궁하다. 이방의 신들은 인간에게 제물을 요구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스스로 궁극의 제물을 마련하셨다. 구원을 바라는 우리의 소망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구원하기를 바라신다.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딤전 2:3~4)신다. 그대와 나의 구원이 그분의 바람이다.

전도란 오로지 예수님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일들과 그분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시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삶과 성품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주는 놀라운 진리에 관한 것이다. 전도의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분의 은혜와 사랑의 능력을 경험한다면 조용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분의 선교에 동참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사랑과 은혜로 속량함을 얻고 변화된 사람들을 보는 그분의 기쁨에 동참하게 된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은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자 기쁨이기 때문이며 그 동기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사랑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 잃어버린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고통과 잃은 자를 찾을 때 느끼시는 기쁨에 공감한다.

행하기 :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고 그분의 사역의 일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➋ 사람을 구원할 때 하나님이 특별히 기뻐하시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눅 15장 참고)

※ 예수님의 희생의 결실을 보는 기쁨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보는 기쁨이다. 

➌ 영혼 구원 사업이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 전도할 때 사람이 거절해도 실망하지 않는다. 

➍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할 때에 우리에게 어떤 동기가 필요할까요?(고후 5:14~15, 18~19 참고)

※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➎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에 동참할 때 얻는 유익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진리를 확신하는 기쁨과 생명을 구원의 자리로 이끌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즐거움이 있다. 

 

결론 :  선교는 하나님의 계획이며 그 속에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온 인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이 계획 속으로 부르시며 인류를 사랑하고 구원하는 일에 자신과 함께하자고 초대하십니다.

 

 

6월 28일(일) 구원의 기회를 제공함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날마다 그분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신다. 그분은 성령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천연계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다. 우주의 광활함과 질서와 균형은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에 대해 말한다. 그분은 우리를 자신에게로 이끄시기 위해서 삶 속에 여러 상황과 섭리들을 마련하신다. 하나님이 성령의 감동과 천연계의 아름다움, 섭리의 순간들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지만 그분의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이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1. 눅 19:10을 읽고 약 5:19~20과 비교해보라. 누가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우리는 잃은 자들을 구원하는 그분의 사역에 어떻게 동참하는가?

[눅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약5:19,20]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답: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려고 오셨다고 하셨고, 성도들은 이 일에 동참할 때 자기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한다고 가르쳤다. 전도하는 것이다. 

 

야고보에 따르면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약 5:20)한다. 로마서는 이런 사상을 확장한다. 로마서 1~2장을 보면 천연계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목격한 이방인들이든, 성경을 통해 계시를 받은 유대인들이든 그리스도 없이는 모두 잃어버린 자들이다. 로마서 3~5장에서 사도는 구원이 오직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온다고 가르친다. 로마서 6~8장에서 그는 믿는 자들을 의롭게 여기는 은혜가 어떻게 다시 거룩하게 하는 은혜가 되는지 설명한다. 로마서 10장에서 그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고 천명하면서 믿지 않으면 어떻게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듣지 않고서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는지 묻는다(롬 10:14~15). 우리는 구원의 계획 속에서 복음의 영광을 가지고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가는 하나님의 연결고리이다.

 

<부가설명> 한 사람이 쓰러져서 호흡이 멈춘 것을 보면 주위의 사람들은 그가 호흡할 수 있는 조치를 신속히 한다. 자기가 못하면 911에 연락한다. 어떻게 하든지 호흡하여 생명을 회복하게 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가 완전히 호흡이 정지해버리고 회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면 포기하고 가족들은 그를 장례한다. 죽은 자의 땅으로 보내는 것이다. 호흡이 정지하면 생명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호흡하는 사람들은 살아서 활동하는 사람인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에 당연히 호흡을 회복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전도는 죽은 사람에게 호흡을 되찾도록 애를 쓰는 산 사람들의 노력이다. 가장 문제는 예수 없이는 호흡이 멈춘 사람과 같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자기가 생명이 없는 죽은 자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도 그들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서 죽은 상태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심각하게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호흡을 멈추고 쓰러진 사람을 다급하게 호흡 회복하도록 도우려는 정신이 바로 전도의 정신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바르게 직시하고 다급한 마음으로 사람의 생명을 회복하도록 도우는 정신과 활동이 강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교훈 : 전도란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전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며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으시는 예수님의 일에 동참한다.

 

 

6월 29일(월) 예수님께 기쁨을 드림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눅 15:6).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지내세요?” 또는 “안녕하시죠?”라고 인사한다. 그런데 하나님께 그렇게 인사드린다면 어떨까? 그대가 만약 “하나님, 안녕하시죠?”라고 인사드린다면 어떤 대답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이런 대답을 듣지 않을까? “오늘도 아주 힘들었단다. 수천 곳의 난민촌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울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 때문에 눈물이 마르질 않았단다. 대도시의 길을 걸으며 노숙자들과 극빈자들을 보고 흐느꼈단다. 성노예로 팔려가는 겁에 질린 아이들과 학대를 당하는 여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나는 전쟁의 참혹함과 자연 재해의 흉악한 결과와 치명적인 질병으로 인한 고뇌와 고통을 보았도다.” 그런 분께 “하나님은 오늘 즐거운 일이 있나요? 기쁨을 가져다주는 일이 있나요? 절로 노래가 나올 만한 일이 있나요?”라고 되물을 수 있겠는가?

 

1. 눅 15:6~7, 9~10, 22~24, 32을 읽어보라. 각 비유들은 어떻게 끝나며 그 결말은 하나님에 대해 어떤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

[눅15:6,7, 9,10, 22~24, 32]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9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답: 잃었다가 찾은 결과로 하나님께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잃은 자들을 찾으면 온 하늘이 기뻐한다. 질병, 재난, 죽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릴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려는 최고의 동기 중 하나는 전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린다는 인식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때마다 온 하늘은 노래한다.

 

2. 습 3:17을 읽어보라.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시는가?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답: 즐거워하고 가뻐하신다. 

 

이런 장면을 상상해보라. 그대가 전도한 결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다. 그랬더니 온 하늘에 신나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전능하신 우리의 구주도 그 사람에게 노래로 화답하신다. 이 슬픈 세상에서 그대의 증언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드리는 일보다 더 보람 있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부가설명>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리던 가정에 임신의 소식은 기쁨을 준다. 그러나 산모가 입덧으로 고통할 때는 힘 든다. 해산할 때가 되면 근심이 된다. 그러나 해산하면 그간의 모든 고통은 아이가 출생한 사실로 잊어버리고 기쁨이 가슴을 채운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요16:21). 전도하는 것이 기쁨이 되기도 하고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상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예수님께 나오면 그간의 어려움이 있었던 만큼 기쁨도 크다.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시90:15)라고 하신 말씀을 맛보게 된다. 여기에 하나님의 기쁨을 보태면 기쁨이 여러 배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7). 이런 기쁨이 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교훈 :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자들을 보시며 슬퍼하신다. 복음을 전하며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는 일은 그분께 가장 큰 기쁨을 안겨드린다.

 

 

6월 30일(화) 나눔으로 성장함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7~38).

 

사해는 해수면보다 395미터 낮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 지표면의 고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다. 갈릴리 호수에서 흘러내린 물은 요단강을 이루어서 요르단 계곡을 따라 흐르다가 사해에 이르러 멈춘다. 강렬한 햇빛과 사막에서 비롯된 뜨겁고 건조한 기후는 물이 매우 빠르게 증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사해의 염분 비율은 33.7퍼센트이기 때문에 생명체가 거의 살 수 없다. 물고기나 수초는 전혀 없고 바닥에 소량의 미생물과 박테리아만 서식한다.

신앙생활에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기만 하고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해와 같은 고인물처럼 되어서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아니다.

 

1. 요 7:37~38과 눅 6:38을 읽어보라. 신자들이 그리스도께로부터 신선한 생명수를 받을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결과는 무엇인가?

[요7:37,38]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답: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 없이도 죄인을 구원하시는 그분의 목적을 이루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품과 같은 성품을 계발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의 사업을 분담해야 한다. 그분의 기쁨, 곧 그분의 희생을 통하여 속량함을 받은 영혼들을 보는 기쁨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들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시대의 소망, 142).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속에 행하신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나눔으로써 성장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생각한다면 비열한 이기심 외에 우리로 하여금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지 못하도록 가로막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믿음을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사해처럼 침체될 것이다.

 

<부가설명> 어떤 사람의 글 읽는 것을 들었다. 부부 성격이 너무 다르다. 남편은 깔끔이고 아내는 털털이다. 집안을 어질러놓고도 아무런 감각이 없다. 남편은 그것을 견디지 못해 잔소리를 한다. 그러니 두 사이에 편할 날이 없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들려주는 소리를 마음으로 들었다. 성령께서 내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가? 갑자기 은사에 대한 것을 확연히 깨달았단다. 자기에게 준 은사는 정리정돈하는 것이구나. 그러나 아내에게는 그런 은사가 없구나. 어질러진 것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밟고 다니면서도 전혀 감각이 없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무관심이라고 표현한다. 또 성질이 그렇다고 말한다. 성질이 그런 것이 은사에 속한다고 이 남편은 깨달은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좋은 것을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받은 성질이 믿음으로 개선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성질대로 주님의 사업을 돕는 길도 있을 것이다. 전도 잘하는 것도 은사다. 바울은 자기는 씨를 뿌리고 아볼로는 물을 준다고 했다(고전3:5~8). 물주는 은사를 가진 사람에게 씨를 뿌리라고 강요하면 잘 안 된다. 씨 뿌리는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물주라고 강요하면 잘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자기 은사를 깊이 생각해서 주님의 일을 하도록 하자.

 

교훈 : 우리가 영적인 생명력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성장하는 유일한 비결은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나누는 것이다.

 

 

7월 1일(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충실함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행 13:47).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은 그분의 뜻을 행하겠다는 헌신을 요구한다. 그것은 그분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충성심은 잃은 자들을 구원하려는 그분의 심장과 더불어 박동하며, 그분이 우선으로 삼으시는 것을 우선순위에 둔다.

 

1. 딤전 2:3~4과 벧후 3:9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그분의 우선사항은 무엇인가?

[딤전2:3,4]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을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답: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열정적이시다. 그분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게 되는 것이 그분의 간절한 소망이다(딤전 2:4). 그분은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벧후 3:9)신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성경주석은 ‘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그리스어 ‘뷸로마이’가 무엇인가를 원하고 바라는 ‘생각의 경향’을 표현한다고 지적하면서 ‘그러나’를 의미하는 접속사 ‘알라’에 주목한다. 여기서 그 말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오해, 곧 그분께서 어떤 이들을 기꺼이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것과 그분께서 모든 이가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진리 사이의 대조를 강조하기 위해여 사용되었다”(제칠일안식일재림교회성경주석, 14권, 278). 그분의 사랑과 은혜와 진리에 대한 증인으로서 그분의 선교에 참여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모든 인류가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그분의 소망의 소산이다.

 

2. 행 13:47을 읽고 사 49:6과 비교해보라. 이 말씀은 누구에게 먼저 적용되었는가? 사도 바울은 그것을 어떻게 이용했는가?

[행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49: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답: 이스라엘에게 적용되었다. 이스라엘이 이방에 전도하는 사실에 적용했다. 다음에는 교회가 세상에 전도하는 것에 적용되었다.

 

구약에는 한 차례 이상 적용된 예언들이 많다. 여기서도 사도 바울은 첫 번째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다음으로는 메시아와 신약 교회를 가리켰던 구약의 예언을 제시했다(사 41:8, 49:6; 눅 2:32 참고). 그리스도의 명령을 게을리하거나 축소시키는 것은 교회의 존재 목적과 세상을 향한 예언적인 부르심에 어긋나는 것이다.

 

<부가설명> 교회는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탁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어받은 조직이고 영적 이스라엘이다. 교회가 이 사명을 수행하는 역사적 과정에서 사탄은 교회를 바벨론화하는데 성공했다. 하나님은 때가 되었을 때 개혁하게 하시고 개혁된 진리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게 해였다. 그러나 반개혁세력이 강하고 개혁자들은 각각 깨달은 진리를 중요하게 여기면 연합하는데 실패했다. 교회가 분열되어 서로 다투게 한 것이다. 사탄은 이 일에 또 성공하였다. 그런 세월이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만큼 긴 세월이 이어졌다. 그러나 때가 되었을 때 그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손을 일으키시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영원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그것이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이다. 이 교회는 역사의 종말에 참 이스라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연합한 힘으로 같은 목소리로 영원한 복음 세 천사의 기별을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 교회의 서명이다. 교회 안에는 여러 은사들이 있다. 바울의 은사, 아볼로의 은사, 아굴라 브리스가의 은사, 성도들은 자기의 은사를 최대한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이 일에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란다.

 

교훈 :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교회는 이방을 향한 빛으로서 그분의 뜻을 이행하라는 부르심과 명령을 받았다.

 

 

7월 2일(목) 사랑의 동기로

 

우리는 한 주 동안 전도해야 하는 이유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는 믿음을 나눌 때에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에 그분과 협력하는 기쁨을 누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할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더 뚜렷이 알게 된다.

또한 전도는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하나님의 수단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거나 그들을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숨을 쉬지 못한다.

전도는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인류가 구원을 받기 바라시는 분의 마음에 닿게 한다. 그것은 그분의 명령에 대한 순종의 반응이다. 그래서 오늘은 전도의 가장 큰 동기에 대해 고찰하려고 한다.

 

1. 고후 5:14~15, 18~20을 읽어보라.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복음을 위해 시련과 환난을 겪도록 동기를 부여했는가? 이 같은 동기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 섬김의 사역을 실천하도록 어떻게 자극하는가?

[고후5:14,15, 18~20]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답: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이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기까지 하신 사랑의 강권으로 이 일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도 바울의 동기는 사랑이었다. 세상에는 사랑 때문에 하지 사랑이 아니면 하지 않을 일들이 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선언함으로써 영원한 진리를 고백했다. ‘강권하다’라는 말은 ‘촉구하다’, ‘재촉하다’, ‘조종하다’, ‘적극적으로 동기를 부여하다’라는 뜻이다. 즉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의 행동을 조종하며 그의 전도 활동에 동기를 부여했다. 그는 의연한 목적의식과 일편단심으로 지중해 지역에 구원의 계획을 전했다.

“마음속에 사랑이 머물러야 한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주님께 대한 충심 어린 사랑에서 그 동기를 찾는다. 그리스도에 대한 애정의 뿌리로부터 형제에 대한 이타적인 관심이 싹튼다”(재림신도의 가정, 425).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희생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사랑에 압도되어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부가설명> 모든 교인이 다 선교사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일선 선교사와 후원 선교사라고 나눌 수 있다. 선교 현장에 가서 선교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재정적 후원을 하는 사람도 선교사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동네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은 누구든지 가능한 일이다. 가능하면 이웃을 사귀자. 그리고 친절과 사랑으로 복음을 전해보자. 성령께서 그 마음을 열어주시면 가능할 것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전도자의 일이 아니다. 다만 씨를 심고, 물을 줄 뿐이고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고전3:6,7).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하는 것은 성령의 몫이다. 우리에게 맡긴 부분만 열심히 감당하면 된다. 우선 가정에서 가족들에게 말씀을 이야기하고 확실하게 하는 훈련을 하면 좋을 것이다.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형제와 자매 사이에, 서로 깨달은 진리의 복음을 조리있게 하는 훈련을 하자. 익숙해지면 다른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익숙하게 말씀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변의 은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고전1:5~7).

 

교훈 :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와 동기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실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바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다.

 

 

7월 3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도행적>, 9~16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시대의 소망>, 822~828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치라’를 읽어보라.

신약 교회는 그 존재 목적을 이해하지 못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 위험성에 대해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밀어닥친 핍박은 복음 사업을 크게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곳에서의 말씀 사역에는 성공이 따랐으므로 제자들은 온 세상에 나가라는 구주의 사명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무를 위험이 있었다. 그들은 악에 저항하는 능력을 얻는 최고의 비결이 적극적인 봉사 활동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예루살렘 교회를 지키는 일만큼 중요한 사업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하여 새로 개심한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대신, 이미 성취한 일에 만족하도록 모든 사람들을 이끄는 위험에 빠져 있었다”(사도행적, 10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왜 우리도 위의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위험성을 조심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 앞에 놓인 선교적인 과제를 생각한다면 왜 그와 같은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 모든 사람을 구언하여 진리를 아는데 이르게 하라는 말씀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➋ 복음서들이 비슷한 명령으로 끝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마 28:18~20, 마 16:15~16, 눅 24:46~49, 요 20:21을 읽어보십시오. 이 명령은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였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 모두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알게 하는 종결이다.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16:15,16]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눅24:46~49]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요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➌ 전도와 봉사가 어떻게 우리의 영적인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묵상해 보십시오. 그대는 어떤 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습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피하게 했던 실수는 무엇이었습니까?

※ 전도는 자신이 말씀을 확신하는 기회가 되고 영혼을 얻게 되면 주님의 능력을 확인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➍ 하나님이 우리 각자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묵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 진리는 그대의 삶의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 이것은 나도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실현하려는 의지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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