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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과 갈렙: 기다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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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ulcho 작성일10-10-01 08:17 조회4,9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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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갈렙: 기다림의 삶
10월 9일 일몰:오후 6시 4분 02

도입)
기다림은 믿음과 신뢰를 동반한다. 기다리는 대상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다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신뢰한다면 끝까지 기다릴 수 있다. 지금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 믿음의 표현이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갈렙은 그저 헤브론 땅만을 생각하며 묵묵히 40년간 관야 길을 걸었으며, 5년간 가나안 전쟁을 치렀고 마침내 오랜 기다림 끝에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게 된 것이다. 갈렙의 승리는 기다림의 승리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끝까지 응답을 기다리는 믿음의 승리였다. 하나님에 대한 끊임없는 신뢰가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올바른 선택을 할 수가 있다. 또한 그 사람은 어떤 시련이 와도 두려움이 아닌 담대함으로 일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도무지 문제에 대한 정답이 없을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방법이 있고 해답이 있는 것이다. 기다림을 위해 우리가 보내야 할 고통의 시간과 그 손실이 아무리 큰 것처럼 보여도, 서두름과 두려움으로 지불해야 할 영혼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기억절: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 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시 130:6~7).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민 13~14장, 수 14장, 삿 1:12~15.

갈렙은 가장 좋은 시절과 가장 좋지 않은 시절을 모두 경험하였다. 그는 노예생활이 어떤 것인지 경험했었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셨을 때에도 거기에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바다가 갈라지고 애굽의 병거와 군대가 물에 잠기는 것을 보았으며,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내려오는 모습도 보았다. 그뿐 아니라 그는 가나안 땅을 정탐한 장본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를 방황하는 일에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야 했다. 광야에 있는 동안 그의 동료들은 모두 죽었다. 마침내 그가 가나안 땅을 밟게 된 것은 노년이 된 이후였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과 대담함은 여전하였다.

갈렙은 앞에서보다는 뒤에서 활동하는 지도자였던 것 같다. 이번 주 우리는 그의 부드러운 지도력에 대하여 배우면서 그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모본을 보이며, 너그럽게 베풀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위대한 지도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갈렙의 여러 긍정적인 성격을 뛰어넘어 마지막 시대를 살면서 하늘 가나안에 이르기를 소망하는 우리에게 그의 이야기를 접목시켜볼 필요가 있다.
일요일 10월 3일
눈에 보이는 사실들

도입)
갈렙은 나이 40세에 가데스에서 가나안 정탐꾼으로 파견되었다. 모세는 출애굽 2년이 된 시기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대표 한 사람씩을 뽑아 가나안 정탐을 보냈는데,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로 선출되어 정탐꾼이 되었다. 가나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열 명의 정탐꾼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민 13:31) 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으나, 갈렙은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말하기를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고 긍정적인 믿음의 보고를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갈렙의 보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열 명의 보고를 믿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 그 죄로 당시 20세 이상인 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 중에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믿음의 열매였다. 갈렙의 긍정적인 보고는 그의 신앙을 나타내 준다. 그는 하나님 중심 신앙을 소유하였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도 객관적인 군사력으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쳐서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과 함께 할 때 가나안의 강한 군대를 메뚜기와 같이 쓸어버릴 수 있음을 확신하였던 것이다. 갈렙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보고를 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지 약 15개월이 지났다. 가나안 접경의 바란 광야에는 장막들로 가득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이 살게 될 땅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나님의 지도하에 12정탐꾼이 선택되었다. 그들은 가나안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임무를 부여받았고, 그 가운데는 유다 지파를 대표한 갈렙이 포함되어 있었다. 40일간의 수색을 마치고 정탐꾼들이 귀환하였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보고하였을까?

1. 민 13:26~14:2을 읽으십시오. 이 기사를 통하여 우리는 보이는 사실이 아닌 믿음으로 사는 삶에 대하여 어떤 교훈을 배우게 됩니까?

정탐꾼들은 시각, 후각, 미각을 통해 얻은 정보들을 가지고 왔다. 각자의 보고 내용은 거의 동일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내린 결론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10명의 정탐꾼들에게 비옥한 땅과 큰 도시들은 절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도주한 오합지졸의 노예들이 그 땅을 차지할 방법은 없었다. 그들은 애굽에 내렸던 열 재앙, 홍해를 건넜던 기적, 반석에서 물이 솟았던 일, 그때까지 1년 이상 매일 먹었던 만나의 기적 없이는 약속의 땅 접경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건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 대신 그들이 본 것에 치우침으로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얼마나 쉽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무엇을 보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사실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매일의 결정과 정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좋아서 믿을 뿐이지 그것이 우리의 인격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배제된 채 보이는 사실에 매달리면 하나님과 그분께 대한 신실함에서 벗어난 해석으로 이끌린다. 반면 하나님과 함께 현실을 보면 그분께 대한 믿음을 강화시킬 수 있는 증거를 얻게 된다.

교훈: 사실을 눈에 보이는 대로 해석하는 것과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아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한다.

부가적용)
갈렙의 신앙적 보고는 그의 신앙 인격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신앙은 과거에 체험한 하나님의 구원을 잊지 않고 기억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하였다. 애굽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기사는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군의 하나님이심을 증거해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으로 그 바닥을 밟고 건너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권능을 만방에 증거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몸소 체험한 열 명의 정탐꾼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인들로 인하여 두려움에 싸여 하나님을 원망한 것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현실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갈렙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함으로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갈렙은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에 대한 언약을 믿었다. 비록 현실이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언약하신 일이기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시리라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신앙적 용기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가운데서도 자신의 신앙적 고백을 담대하게 말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이 반대해도 오직 여호와께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겠다는 순교의 신앙 자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갈렙의 신앙과 인격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 땅을 차지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체험하게 되는 축복을 내리셨다.

월요일 10월 4일
반대에 직면하여 굳게

도입)
가나안 그 땅에 대하여 악평을 할 때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신앙적인 안목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왕따를 당하거나 집단 구타를 당할 수 있다. 그러나 갈렙은 사물을 정확하게 보았고, 또 믿음으로 보았다. 그는 약속의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을 보았으며, 주님이 주시면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였고, 친구와 동료들의 불신앙적인 보고를 일축하였다.

변함없이 굳게 서기란 쉽지 않다. 집단 압박(group pressure)을 당하면 견디기 힘들다. 운동장에서 홈팀을 응원하는 수천 명의 함성은 상대팀을 주눅 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다고 상대팀 응원단 속에서 다른 색 티셔츠를 입고 상대팀에게 야유를 보내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축구 경기를 할 때, 양팀의 응원단들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함께 하는 것은 시비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이 아니라 미래와 생존이 달려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스라엘의 미래와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모두 통곡했다. 이렇게 함께 울고 있는 관중을 보면 누구나 휩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 보통 뒤에 서 있는 갈렙이 앞으로 나아왔다.

1. 민 13:30을 주의 깊게 살펴 보십시오. 갈렙은 뭐라고 증거했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갈렙에게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같은 정보라 할지라도 여러 방식으로 전달될 수 있다. 말하는 방식은 말의 내용만큼 중요하다. 갈렙은 누구와 논쟁하거나 다른 정탐꾼의 불신을 비난하지도, 백성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지도 않았다. 대신 희망적으로 말하며, 믿음과 행동을 촉구하였다. 그의 태도는 그의 품성이 어떠한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을 닫고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돌을 던지려하였다.

2. 민 14:1~10, 20~24을 읽으십시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결과가 무엇인지 보게 됩니다. 사실에 대한 바람직하지 않은 해석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갈렙은 크게 실망할 수 있었다. 그는 좋은 땅을 보았고, 그곳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데 다른 이들 때문에 그는 40년간 광야를 방황해야 했다. 그러나 갈렙은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모본을 보이며 백성들을 이끌고 격려하였다. 갈렙은 민족과 분리되어 다른 운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갈등이나 믿음의 부족을 탓하며 무리에게서 떠나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그런 태도는 성경의 정신이 아니다. 갈렙은 남을 비난하기보다 고난의 세월을 백성들과 함께 보내는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교훈: 하나님의 사람은 다수의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자이다.

부가적용)
스코틀랜드 중산층 자녀들의 성공비법은 ‘모유법’에 있다. 그들은 젖먹이는 방법부터 달랐다. 이들은 정확히 4시간 단위로 하루에 6번씩 젖을 주었다. 아무리 울어도 젖지 나오지 않는 것을 어려서부터 체험적으로 습득하게 하고 자연적으로 인내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또한 무엇을 사달라고 하면 절대 즉석에서 사주지 않고 대신 아이들에게 약속을 한 후 나중에 원하는 것을 준다.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계약의식을 배우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가운데 살게 된다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본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성숙한 사람들의 진정한 믿음의 요소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어려운 난관 앞에서도 결코 그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지 않았음을 선언하고 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확신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일컬어 진정한 신앙의 사람 크리스천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은 그렇게 여기고 행동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통해 모든 것을 바라 보는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이렇게 힘든 현실이지만 가능하다고 외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가슴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화요일 10월 5일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함

도입)
갈렙은 지난 45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하심에 대한 기대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야말로 그 기대함을 현실로 만들 때라고 확신하였다. 비록 그가 85세의 고령이지만, 청년정신으로, 청년의 그 열심과 열정으로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자손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1, 2년도 아닌 장장 45년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날을 기다리면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언젠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필경 그가 밟는 땅을 취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함 때문이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갈렙의 기대함은 오늘 본문 중 ‘혹시’라는 단어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혹시’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강력한 ‘소망’, ‘기대’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갈렙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강렬한 기대를 안고 있는 사람임을 볼 수 있다. 단순한 기다림은 오래가지 못한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매몰된 사람들이 단순한 기다림 속에 있으면 그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기대함이 있는 기다림만이 오래간다. 자신을 구하러 올 구조대에 대한 기대함, 언젠가 이루어질 약속의 성취에 대한 기대함만이 우리를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게 만든다.

40년이 흘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발을 디뎠다. 아름다운 음식들로 가득 찬 식탁을 바라보고 있는 굶주린 자들처럼 그들은 약속의 땅을 응시하였다. 대화는 지역 분배에 집중되었다. 약속의 땅에 이르기 오래 전, 모세는 갈등이 있을 것을 내다보고, 분배 방식을 지시해 놓았다(수 14장).

1. 수 14장을 읽으십시오. 갈렙은 무엇을 구했습니까? 그는 왜 그 땅을 구했을까요? 이를 통해서 우리는 그와 그의 믿음에 대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땅을 분배하고 있을 때에 갈렙이 나타나 자신의 몫을 요구하였다. 그는 지파의 땅이 아닌, 자기 개인의 땅을 구했다. 언뜻 보기에 여호수아와 갈렙 두 원로의 만남은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갈렙은 여전히 강하며, 싸울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께 받은 약속을 주장하기를 원했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데 결코 주저함이 없었다. 그의 동기는 이기적이지 않았다. “주기 위해 얻음”이란 원칙이 노장의 마음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갈렙은 가장 훌륭하고 인기 있는 땅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낙(거인)의 자손들이 거주하고 있는 땅을 선택하였다. 그가 구했던 땅은 아직 정복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 지역에 사는 거인들은 바로 4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렵게 만드는 장본인들이었다(민 13:33).

아마도 갈렙은 현재의 세대가 이전 세대의 실수를 재현하지 않기를 열망했을지도 모른다. 갈렙은 정복하기 가장 쉬운 지역 대신, 가장 어려운 곳을 선택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다시 한 번 갈렙은 모본을 통해 백성들을 지도하였다. 정복 과정 내내 그는 살아있는 실물교훈이 되었다. 그는 행동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런 늙은이를 사용하여 거인들을 내쫓으실 수 있다면, 젊은 너희들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 수 15:13~14은 갈렙이 아낙 자손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 민족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대상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 한 노인에 의해 정복되었다.

교훈: 갈렙은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믿고 직접 아낙의 땅을 정복함으로써 출애굽 2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만들었다.

부가적용)
가나안 정탐 때의 믿음에 대한 상급으로 하나님은 갈렙이 밟는 땅을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신 1:36) 라는 말씀을 갈렙은 이러한 약속에 근거하여 헤브론 떵을 요구하였다. 유다 지파에 속한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자신의 분깃을 당당히 요구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갈렙의 행동은 자신의 자격이나 실력을 드러내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받은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신뢰함에 따른 것이다. 헤브론 땅에는 가나안에서 가장 강한 아낙 자손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갈렙은 얻기 좋은 다른 땅을 구한 것이 아니라 아직 싸워야 할 대상, 거대한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헤브론 땅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헤브론을 갈렙이 요구한 것은 자기의 특권을 이용하여 자기 유익을 위해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전체의 평화와 가나안 정복의 목표를 위해서였던 것이다. 갈렙의 이러한 헌신의 결과 거대한 아낙 자손이 정복되었고 가나안 땅에 전쟁이 그치게 되었다. 전쟁 후 갈렙은 기업으로 받은 헤브론 큰 성읍과 주변 땅을 레위 자손에게 주고(수 21:11) 자신은 헤브론 주변 산지와 작은 마을을 기업으로 삼았다(수 21:12).

수요일 10월 6일
믿음의 유산을 물려 줌

도입)
갈렙은 45년의 긴 세월을 인고하면서 마침내 때가 다달았을때, 여호수아 지도자에게 이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유다 지파에 속한 이 땅을 갈렙의 몫으로 제외하고 그들은 제비를 뽑아야 했지만 누구 하나 이것을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이것은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믿음과 말씀에 대한 신뢰로만 얻을 수 있는 결과였다. 지금 85세의 갈렙은 여전히 현실적으로는 가장 큰 거인족이 살고 있는 곳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연령이 황혼에 들어선 시점에서도 4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만 함께하시면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여호수아와 그 백성에게 보이고 있다. 천국도 현실적인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만 보이는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광야 1세대는 이러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지만, 광야 2세대는 철저히 믿음과 신앙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로 갈렙은 한 때는 동료였으나 지금은 민족의 지도자로 있는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2인자로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산앙을 독려하는 인물이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입성할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공로는 어쩌면 갈렙의 몫이었다. 가장 어려운 성을 (이미 정복된 땅을 달라고 할 수도 있었겠으나) 그것도 노년의 나이에 정복하겠다는 것은 아직 남아 있는 땅을 정복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는 이스라엘에게 큰 도전과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갈렙은 현실적인 인물이 아니라 한 마디로 믿음의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크게 축복하셨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노인들이 크게 존경을 받고 있다. 그들은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지혜와 조언을 베푸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노인들이 비생산적인 인구 취급을 당하며, 소외 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는 곳도 많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갈렙은 노인 인구의 긍정적인 역할에 대한 좋은 예를 보여주었다. 갈렙은 흔히 노인들에게 나타나는 것들을 피했다. 그는 나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공동체의 의무에서 면제되기 위해 나이를 핑계 삼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리에 연연하거나 젊은이들의 시도를 도전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1. 시 92:12~15은 노인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갈렙은 모든 세대가 하나님에 대하여 그들만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출애굽 2세대들은 그들의 부모들처럼 출애굽이나 광야의 경험을 겪을 수 없었다. 갈렙은 젊은 세대가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2. 삿 1:12~13에서 갈렙은 어떤 종류의 경험을 의도하고 있습니까?
유다 족속들은 그들의 땅을 정복해 나아가고 있었다. 유다와 시므온 족속은 믿음으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고자 했다. 그런데 요새화 되어 있는 기럇세벨에 이르러 그들은 큰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나 갈렙은 그 벽에 집중하기보다, 그런 난관을 또 다른 성장의 기회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자가 승리를 얻을 것이었다. 조금 어색하게 들리지만, 갈렙은 일종의 성과급(incentive)를 제안했다. 도성을 정복하는 자가 자기의 사위가 될 것이라고 약속한 것이다. 갈렙의 조카 옷니엘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하나님은 그에게 승리를 주셨다. 갈렙의 양육방식이 새로운 영웅을 만들었다. 그의 투자는 훗날 큰 이익이 되어서 돌아왔다. 하나님은 이 젊은이를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요 구원자로 세우셨다(삿 3:7 ~11).

교훈: 갈렙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는 후세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부가적용)
갈렙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받은지 45년이 지났다. 그 사이 출애굽 1세대가 광야에서 모두 죽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만 살아남아 출애굽 2세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입성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사라지거나 죽은 말씀이 된 것이 아니다. 갈렙의 마음속에서 언약의 말씀이 45년 동안 꿈틀거리며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45년 전에 정탐하며 미리 보았던(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였던) 그 땅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언약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왔다.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어 오셨음을 고백한다. 광야 생활과 수많은 전쟁에서도 살아남았고, 85세가 되었으나 여전히 전쟁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건장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질 때까지 말씀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말씀을 향해 달려 나아가는 것이다. 그 기다림의 시기가 아무리 길다 하더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내 안에서 그 말씀이 살아서 움직인다면 그 말씀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다만 내 눈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85세의 갈렙이 여호수아 앞에 나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요청한다. 헤브론에는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아낙자손이었는데, 아낙자손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람들이었다. 갈렙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차지할 수 있는 편안하고 좋은 땅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땅을 청하였다. 그 땅에 누가 살고 있든지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만 하면 승리하는 것이다. 갈렙은 지금까지의 전쟁을 치러오면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목도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갈렙은 알고 있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즉 내가 하나님편에 서 있다는 것이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며 "그들은 우리의 밥" 이라고 외쳤던 갈렙이 그 선포를 행동으로 증명하였다.

목요일 10월 7일
거져 줌

도입)
갈렙이 특별히 싸움을 잘했던 것은 아니다. 갈렙에게 남이 없는 특별한 무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지파에 비해 더 많은 군사를 데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갈렙에게는 남에게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모든 절망을 디디고 서는 굳건한 믿음이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된다! 아낙 자손이 아무리 거대해도, 그들의 도성이 아무리 견고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길 수 있다! 갈렙이 의지했던 것, 갈렙이 붙잡았던 것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 믿음 하나로 갈렙은 헤브론을 향해 나아갔고, 끝내 그곳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전쟁으로 얼룩진 그곳에, 피로 얼룩진 그곳에 평화를 심었다. 갈렙은 누군가에 기대어 살거나 평안한 삶만 살기를 원하지 않은 개척 정신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헤브론의 산지를 요구했는 이 산지는 산악지대를 말한다. 좋은 땅, 옥토를 취하지 않고 갈렙은 보잘것없는 변방을 취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불모의 땅, 산악지대의 지도자로 우뚝 서길 원했다. 개척 정신을 가지고 황무지를 개간하는 마음으로 그는 그 땅을 취했던 것이다. 지도자는 따르는 무리보다 먼저 변방에 서야 한다. 눈을 비비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신발창이 닳도록 먼저 복음을 사수해야 한다. 코카콜라 사장처럼 “내 혈관 속에는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코카콜라가 흐르고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개척 정신을 가지고 전진할 때 비로소 산지를 점령할 수 있다.

1. 삿 1:14~15을 읽으십시오. 이 본문은 갈렙의 품성에 대하여 무엇을 더 말해주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유업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소유하고 있는 땅을 상속자에게 물려주는 것은 자신의 유업이 사라지지 않음을 보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율법까지 주어졌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녀 없이 죽을 경우, 그의 이름으로 유업을 이어갈 사람이 필요했다(신 25:5~ 10 참조).

노년의 갈렙은 유산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후대의 족보를 보면 갈렙에게는 아들들이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가능한 많은 유업을 주기를 원했다. 악사는 딸이었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땅은 갈렙의 직계 가족의 손에서 떠나, 그녀의 남편의 재산 소유가 되었다. 우리는 악사가 무슨 이유로 땅을 요구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녀의 요구를 거절한다고 해도 그것은 유업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법이 정하고 있는 정당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갈렙은 딸에게 땅뿐 아니라, 샘까지 주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윗샘, 아랫샘 모두를 주었다.

관대함은 한꺼번에 두 가지의 일을 한다. 잠 11:25을 보면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고 하였다. 만약 우리가 거저 줄 준비가 돼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거저 주는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2.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용서에 대하여 어떤 영적인 교훈을 얻게 됩니까? 마 6:15, 18:21~35을 읽어보십시오.

우리는 오직 가지고 있는 것을 줄 수 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용서를 아직 구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갈렙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복을 받았기 때문에 나누기를 기뻐하였다. 그는 당시 사회적 규범을 초월하여 관대함을 나타내었다.

교훈: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해진 것 이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셀 수 없는 복을 받기 때문이다.

부가적용)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땅을 주셨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지역인 헤브론을 달라고 한 갈렙이 있는 것이 유다의 축복이다. 그 한 사람이 우리 가정에 있으면 살아나는 것이다. 갈렙은 헤브론을 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올라가서 드빌까지 쳤다. 예수를 믿었다면 난공불락의 성 드빌, 힘든 남편, 시부모, 자녀를 믿음으로 취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갈렙이 사위를 구하는 조건은 ‘쳐서 취하는 자’였다. 결혼은 영적 전쟁을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선택이다. 우리는 쳐서 취하는 자보다는 모든 것을 갖춘 자를 취하고 싶어 하지만 갈렙은 믿음의 증거가 있는 사위를 구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자녀가 아니라 갈렙의 사위가 초대 사사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 또 갈렙의 딸 악사는 결혼에 있어서 육적인 복이 아닌 영적인 복, 샘물을 구했다. 갈렙에게 삶이 있었기 때문에 영적 후계자도 잘 길러놓은 것이다.

금요일10월 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갈렙의 신앙은 여전히 그가 다른 정탐꾼들의 악한 보고를 반박하는 증언을 하던 그때의 신앙과 똑같았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을 점령하게 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광야에서 오랜 방랑 생활을 견디었으며 범죄한 형제들로 인하여 실망과 고통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것에 대하여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오히려 광야에서 그의 형제들이 죽임을 당했을 때에 자기를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였다. 광야에서 방황하던 때의 모든 난관과 위험과 재앙 중에서는 물론이고 가나안에 들어와 전쟁하는 여러 해 동안에도 여호와께서 그를 보호하셨으며 이제 그는 80세가 지났으나 그의 기력은 쇠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이미 정복된 땅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정탐꾼들이 정복하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던 그곳을 요청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신앙심을 동요시켰던 큰 세력을 가진 바로 그 거인들에게서 그들의 요새를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탈취하고자 하였다. 갈렙의 요 구는 그가 명예나 세력을 얻으려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용감한 노전사(老戰士)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모본을 보이고 각 지파를 격려하여 저희 조상들이 정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던 땅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자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512~513)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는 믿음과 배치(背馳)되는 해석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해석’이란 말이 중요합니다. 이런 도전에 직면하여 우매하게 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2. ‘사실들 ’을 해석하는 방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예를 들면 우리는 땅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땅은 매우 빠른 속도로 우주 공간을 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닫힌 방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방안은 온갖 소리를 전하고 있는 라디오 전파로 가득합니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3. 어떻게 새 신자를 양육하고, 젊은이와 어린이들에게 교회의 책임과 지도자의 지위를 맡길 수 있습니까? 우리는 갈렙의 생애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4. 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많은 죄와 실수가 있었을지라도 갈렙의 마음은 자기 백성에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재림 신도인 우리에게 오늘날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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