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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 은혜의 선택 (요점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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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9-07 13:35 조회4,6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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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09월11일(안식일)

제11과 <은혜의 선택>

▣ <교과 토의>
교사 : ① 환영인사 ② 한 주간 영혼 구원활동(교과 책 5쪽) 확인.
③ 오늘 일몰시간 확인.= (일몰: 오후 6시47분)
④ 기억절암기자 확인
⑤ 지난주 제10과 요점 복습

▣ <로마서 10장(章)>
<요약(要約)―1>
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에는 열심이었으나, 그리스도의 믿음에는 무지(無知)하였다.
유사(類似)믿음과 가짜 의(義)에 빠져있는 그들에게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라고 호소(呼訴)한다. (1절-15절)
Ⅱ.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예언을 인용하면서,
그래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소개한다. (16절-21절)

<요약(要約)―2>
⑴. 성경은 율법의 의(義)와 믿음의 의(義)의 차이를 보여 준다.
⑵.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⑶. 이방인(異邦人)들도 말씀을 받고 믿을 것임.
⑷. 이스라엘도 이런 일들에 대하여 모르지 않음.

▣ <로마서 11장(章)>
<요약(要約)―1>
Ⅰ. 이스라엘이 모두 행위(行爲)의 의(義)를 좇아간 것은 아니다.
그 속에 제대로 된 남은자도 있다. (1절-10절)
Ⅱ. 이스라엘의 실족이 이방인(異邦人)의 부요(富饒)함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스라엘이 더 유리(有利)하다. (11절-21절)
Ⅲ. 그러니 이방인으로서 믿음에 들어온 자들은 이스라엘을 무시하지 말고
오직 자기가 받은 은혜에 더욱 충실(忠實)하라,
오직 주의 지혜가 오묘(奧妙)할 뿐이다. (22절-36절)

<요약(要約)―2>
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모두 버린 것이 아님
⑵. 더러는 택하심을 입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해짐
⑶. 이스라엘에게 돌이킬 희망이 있음.
⑷. 이방인도 이스라엘을 모욕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⑸. 이스라엘에게도 구원의 약속이 있다.
⑹. 하나님의 판단은 측량(測量)할 수가 없다.
▣ <요일별 핵심 주제 정리>
(日) : <율법의 마침> → <예수님은 율법의 목표이며 완성(마침)이다.>
(月) : <은혜로 선택됨> →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예정(은혜)으로 선택됨>
(火) : <접붙인 가지> →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은 가지일 뿐 원 나무에 붙어있어야 한다.>
(水) : <신비가 드러남>→ <혈통적 유대인들의 실패자들도 마지막 때에 대거 구원의 대열에 참여케 될 것의 예언>
(木) : <죄인들의 구원> → <하나님의 자비가 유대인들에게 계시되었고, 그 자비가 이방인들에게 나타내야한다>

▣ <요일별 주제별 요약>
[Ⅰ]. (日) : (9월5일)
(日) : <율법의 마침> → <예수님은 율법의 목표이며 완성(마침)이다.>
○ (로마서 10:4절).에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義)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여기 “율법의 마침(τὲλς ϒὰρ νόμου)”을 율법을 폐지한다는 뜻으로 오해(誤解)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수님이 구약(舊約)의 표상은 성취시켰으나 율법을 폐지(廢止)하신 것은 아니다.
율법의 마침이 된다는 말은, 율법의 성취(成就)(마태 5:17)와 율법의 목표(갈라디아 3:24)가 된다는 말이다.
율법은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성취되는 것이다.
율법이 폐지되면 죄도 성립이 안 되고, 죄가 없으면 믿음은 필요가 없어진다.

○ 율법은 죄인인 인간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는 구원(救援)의 수단으로서 율법의 끝(로마서 6:14)이라는 해석(解釋)이다.
○ 그리스도는 율법의 목적 또는 목표가 된다는 해석과,
○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 이제 우리는 자신의 의(義)를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의 의(義)와 은혜에 시선(視線)을 고정시켜야 한다.
○ 예수님은 율법이 우리를 인도해주려고 했던 종착점이기 때문이다.
○ 예수님은 율법이 우리를 인도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이다.

[Ⅱ]. (月) : (9월6일)
(月) : <은혜로 선택됨> →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예정(은혜)으로 선택됨>
○ 인간의 축복을 위한 남은 씨를 가지고 계심은 하나님의 은혜(恩惠)의 섭리(攝理)인데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恩惠)되지 못하느니라.” (로마서 11:6)
은혜는 값없는 선물이고 행위는 그 자체가 값을 지불하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와 행위는 여기서 상반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된 것이 아닌 것이다. (로마서 4:5 참조)
인간의 구원(救援) 문제는 근본행위로 될 수 없는 과업이다.
사람의 노력이 아니니 하나님의 예정(豫定)(은혜=선택)으로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즉 어떠하냐."(로마서 11:7)
행함으로 의(義)를 얻겠다고 노력했던 “이스라엘이 구(求)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다.”
(로마서 11:7). 이렇게 인간은 노력하여 구할지라도 안 되고, 하나님의 택하시는 의지(예정)로 되는데,
그 택하시는 기준이 바로 믿으면 구원을 하시겠다는 것이었다.

○ 구원은 유대인이든 이방인(異邦人)인이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구원의 은혜는 모든 민족에게 미칠 수 있게 되었고 열려있다.
○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인류를 대표하였다.
그들은 욕망과 이기심과 사단의 속임수에 눈이 멀어 그들은 참된 것을 식별하지 못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유대인뿐만 안이라 모든 인간에게 구원의 길이 열려있다.

[Ⅲ]. (火) : (9월7일)
(火) : <접붙인 가지> →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은 가지일 뿐 원 나무에 붙어있어야 한다.>
○ 접(椄)붙인 가지의 비유(로마서 11:15-24)는 이방인에게 유대인의 나음을 인정하라는 내용이다.
○ 근원에 붙어있었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떨어져 나갔고, 근원과 거리가 먼 많은 이방인들이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누가 다시 떨어져 나가고 누가 다시 접붙여질 것인지의 여지는 항상 남아있으며
그것은 더 이상 민족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 한번 구원받으면 그 구원은 영원하다는 교리나 가르침은 비성서적(非聖書的)이다
○ 구원받는 일에 있어서 인간이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선민사상을 자랑했던 이스라엘은 자리를 잃었고, 예수님을 믿은 이방인은 그 자리를 대신했다.
○ 구원은 받을 자유도 있지만 거절할 자유도 있다.
실수할 때마다 구원을 잃어버린다거나, 완전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생각도 조심해야 되며,
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구원의 특권에서 멀어질 수 있는 선택은 불가능 하다는 생각도 피해야 한다.
단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있는 자들만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 구원은 선(善)함이나 우수함의 댓가가 아니다. 구원은 오직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선함이나 우월감에서 사로 잡혀선 안 된다.
○ 우리에게 자랑 할 것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에게 삶에 모본을 보여주시고,
도울 힘을 약속하신 예수님밖에 없다.

[Ⅳ]. (水) : (9월8일)
(水) : <신비가 드러남>→ <혈통적 유대인들의 실패자들도 마지막 때에 대거 구원의 대열에 참여케 될 것의 예언>
○ 사도 바울은 좀 더 깊은 진리, 좀 더 민감한 진리를 소개 할 때는 신비(神秘)(비밀)라는 말을 흔히 쓴다.
(엡 3:3-4; 골로새서 1:26-27; 딤전 3:16)
그런데 피상적인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 지혜 있는 줄로 착각하고는 이리저리 주장하는 교인들의 어리석음을
명하기 위하여 알려준다는 비밀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愚鈍)하게 된 것이라” (로마서 11:25절).
이 말이 무슨 뜻일까?
하나님께서 구원(救援)하실 이방인을 미리 정해 놓으시고 그 수를 채우신다는 말인가?
아니면 떠나간 완악한 유대인의 수만큼만 이방인으로 채우신다는 말인가?

◯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로마서 11장 서두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고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의 대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오직
(1) “부분적으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단지
(2) “한시적으로” 우둔(愚鈍)하게 되었다(그리스어 프로시스는 “단단함”을 의미함)고 설명한다.
그러면 “이방인의 충만함”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다수는 이 구절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대사명의 성취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복음이 모든 곳에 전파될 때, “이방인의 충만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믿음이 보편화되고,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진다. 바로 이러한 때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께로 돌아올 것이다.

○ “복음의 마지막 선포”의 때에 “많은 이(유대인들)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속주로 영접할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사도행적, 381)

[Ⅴ]. (木) : (9월9일)
(木) : <죄인들의 구원> → <하나님의 자비가 유대인들에게 계시되었고, 그 자비가 이방인들에게 나타내야한다>
○ 이스라엘이 “복음으로 하면(구세주(救世主)를 죽인 것으로 하면)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怨讐)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구약(舊約) 말씀을 받은 것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믿음 안에서 영적(靈的)으로 다 성취됨으로써,
“하나님의 은사(恩賜)와 부르심에는 후회(後悔)하심이 없느니라.” (로마서 11:29절).
하나님의 사랑은 참으로 놀랍다.

○ 한번은 순종치 않던 이스라엘 때문에 이방인(異邦人)이 긍휼(矜恤)을 얻었고,
다시 한 번은 이방인 때문에 이스라엘이 긍휼을 얻어,
결국은 양편의 순종치 아니함이 양편의 긍휼 얻음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로마서 11:32절).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奧妙)하다.

○ 믿음의 원가지인 유대인들이 복음의 원수가 되었지만, 불순종했던 이방인 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얻은 것처럼
유대인들도 동일한 조건에서 긍휼을 얻게 되었다.
이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자비(慈悲)가 유대인들에게 계시(啓示)되었고,
그들은 그 자비를 이방인들에게 나타내야 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차례이다.

○ 전도란?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은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전하는 것이다.


<결어(結語)>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시며, 우리를 인도하는 율법의 최종 목표이다.
구원(救援)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 우리의 노력이나 우수함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차별이 없이 모든 백성 모든 인간에게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는 그분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전도(傳道)인 것이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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