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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 바울과 로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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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6-29 13:39 조회5,8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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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7월 3일(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7분

제1과 <바울과 로마서>

<記憶節>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롬 1:8).

▣ <교과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 한마디>
신구약(新舊約)성서(聖書)중 아무 책도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로마서”처럼 그리스도교회에 그렇게 큰 감동을 끼친 책은 없다.
루터를 변화시켜서 종교개혁을 탄생시킨 것은 이 책이었다.
존 번연을 변화시킨 것은 로마서 주석을 읽은 것이었다.
그는 영국에서는 베드포드의 불후의 땜장이로 알려지고 미국에서는 “천로역정”의 저자로 알려졌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들 중의 하나는 영국에서 나온 요한 웨슬레였다.
로마서를 깊이 연구하도록 하여 “참 복음”과 “하나님의 의”, “십자가의 희생”과 “아가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체험하면서 구원(救援)의 확신과 기쁨, 은혜(恩惠)아래에서 성령님의 인도로 승리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要點>
로마에 아직 방문하지 못했을지라도 바울은 제국 전체에 복음을 진척시킬 수 있는 훌륭한 토대를 만들기 위해 교회의 협조를 구했다.

일요일(6월 27일)
<연대(年代)와 장소(場所)>

▣ 로마서는 제3차 선교 여행 동안에 바울이 석 달 동안 체류한 고린도에서 기록된 것이 확실시 된다.(사도행전 20:1-3 참조). 많은 학자들은 이 시기가 AD.57-58년의 겨울일 것으로 믿고 있으나 도 더러는 그보다 좀 이른 시기로 보는 이들도 있다. 이 편지서가 고린도에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가이오(롬 16:23; 고전 1:14).와 에라스도(롬 16:23; 딤후 4:20)에 대한 언급과 고린도의 동쪽 항구인 겐그레아의 교회에서 특별한 봉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바울이 묘사하는 뵈뵈에 대한 추천(롬 16:1)등으로 말미암아 증명되고 있다.
이 편지서를 기록할 당시에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교회들로부터 거둔 의연 금품을 가지고 팔레스타인으로 막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롬 15:25-26; 행 19:21; 20:3; 24:17; 고전 16:1-5; 고후 8:1-4; 9:1-2) 그 사명을 다한 후에 바울은 로마를 방문하여 그곳으로부터 계속해서 스페인으로 여행하고자 했다.(행 19:21; 롬 15:24, 28).
바울은 로마제국의 수도에 있는 그리스도 교회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을 여러 번 가졌으나 아직 한 번도 방문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롬 1:13; 15:22). 그러나 이제는 아시아의 헬라에서의 그의 선교 사업을 마쳤다고 생각해서 (롬 15:19, 23)그는 이탈리아의 사업을 강화하고 스페인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위해 서쪽으로 옮겨가고자 애쓰고 있었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위하여 바울은 로마에 있는 신자들의 축복과 협력을 받고자 희망하였다. 그리하여 불원간 그 도시를 방문할 것을 기대하면서 그들에게 이 서한을 써 보내게 되었다.
이 편지서를 통하여 바울은 매우 강하고 분명한 어조로써 그의 복음의 위대한 원칙들을 개괄하고 있다. (롬 1:15; 2:16) <S. D. A. 성경주석(한) 11권 552p> <복음 성경 로마서 서론 참조>

※ 바울이 로마서를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 속에서 기록했는지
아는 것은 전체 기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 바울이 없는 동안 거짓 교사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와서 신자들로 하여금 할례와 모세의 법을 따르도록 미혹했던 일이 있었다. 바울은 이런 일이 다른 곳에서 재발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이르기 전에 원수들이 로마에 먼저 도착할 까봐 염려하였다. 로마서는 갈라디아에서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갈라디아서도 3차 선교 여행기간 중 고린도에 도착하여 3개 월 안에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로마인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 가운데서 복음의 대원칙을 제시하였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 교회들을 소란스럽게 하는 문제들에 대한 그의 입장을 진술하였으며 한때는 특별히 유대인에 속하였으나 이제는 이방인에게도 제공된 소망과 약속들을 보여 주었다.”(사도행적, 373)

◉ <바울의 고민>
“바울이 이 편지를 기록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유대 주의자들과의 논쟁과 그 가운데서 야기된 여러 가지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그 문제들 중에서 기본적인 것들을 다루면서 죄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관하여 광범위한 예증들로써 대답하고 있다.”(재림교 성경주석 11권, 552)

월요일(6월 28일)
<개인적인 접촉(接觸)>
▣ 개인적인 접촉에 있어 잠시 생각해보면, 편지와 개인적 방문은 다른 차원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로 보내는 서신을 쓰면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희망한다고 로마서에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로마 방문 계획과 이유를 그들에게 알리기 원했습니다.

▶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福音)을 전(傳)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바 주(主)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者)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願)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同情)하였음이라 ,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神靈)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肉身)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롬 15:20~27).

▶ 바울이 이전에 로마를 방문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로 하여금 로마 방문을 결심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의 글에서 우리는 선교(宣敎)와 증거에 관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로마서 15장27절에서 바울이 밝히고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에 관한 흥미롭고 중요한 사실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이미 교회가 세워져 있는 로마에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스페인 복음화의 목적이 그로 하여금 로마행을 결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 <복음의 정신>
“신자들이 참으로 복음의 정신을 가질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에 저희 모든 정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들은 새 개척 분야로 들어갈 것이다. 안수 받지 못한 어떤 목사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신자들을 방문하며 아직 돌보지 못하여 거의 사멸해 가는 일들을 튼튼하게 만들 것이다. 또 평신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빛을 비추기 위해 도회지와 촌락과 벽지로 이주할 것이다.”(그리스도인 선교봉사, 180)

◉ <복음의 정신>
“신자들이 참으로 복음의 정신을 가질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에 저희 모든 정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들은 새 개척 분야로 들어갈 것이다. 안수 받지 못한 어떤 목사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신자들을 방문하며 아직 돌보지 못하여 거의 사멸해가는 일들을 튼튼하게 만들 것이다. 또 평신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빛을 비추기 위해 도회지와 촌락과 벽지로 이주할 것이다.”(그리스도인 선교봉사, 180)

◉ 복음의 혜택을 이미 누리고 있는 우리는 미개척지 선교를 위해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후원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화요일(6월 29일)
<바울이 로마에 가다>

▣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끊임없이 로마로 가려고 했습니다.
우리의 격언 중에 “말(馬)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는데, 바울이 로마로 가려했던 것이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가 지금 우리나라의 서울과 같았고, 전 세계의 금융인에게는 뉴욕과 같은 의미를 가진 로마 였기 때문에 로마로 가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로마는 흔히들 “복음의 노란자라고 합니다.” 그만큼 복음에 관하여 아주 함축적이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관하 여라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바울은 그냥 이방인(異邦人)을 위하여 세워진 전도자이기 때문에 로마로 간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도 많아서 그를 죽이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한 결사대(決死隊)가 조직될 정도로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기도 했는데, 가려고 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또 유대인들은 왜 로마로 가려는 바울을 죽이려 했을까요?
예루살렘 성전(聖殿)에 가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싫어하는 로마로 간다는데 왜 그랬을까요?

◎ 바울이 로마로 가려고 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이유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복음(福音)의 보편성(普遍性)”을 나타내기 위(爲)험이였습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모든 문화가 집결되어 있었던 곳이고, 또한 그 당시에 세계라고 일컫는 모든 인종과 민족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모든 상업(商業)과 경제(經濟)의 중심이기에 그에 관한 모든 이데올로기와 삶의 방식이 공존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그 로마로 갈려고 했던 겁입니다.
바울을 생각할 때 사람들은 흔히들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로 생각 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이라고 여겼던 헬라인과 기타 족속들에게 복음을 전했었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반면(反面)에 그 바울의 전도가 마게도냐로 넘어 갔기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 기독교 문화의 중심철학이 되었다는 것 또한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로, 베드로는 유대인을 위한 전도자로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로마로 간 것은 지역적으로 로마가 중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 때문이 였습니다. “복음의 보편성”이라는 것은 누구나 복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복음이 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보편적이라는 것은 신선하게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신앙이 보편적인 사람은 대단히 작다는 것을 우리는 생활가운데에서 너무나 쉽게 알수가 잇습니다. 당시 로마라는 곳은 모든 문명과 모든 인종과 모든 철학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고 바울이 생각한 것은 단지 로마라는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와 같이 모든 것이 공존하는 곳, 그 다양함이 복잡하여도 사람의 어떠함에 관계없이 전해져야 하는 것이 복음이기 때문 이였습니다.

◉ 복음은 사람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전해지고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려고 했던 이유와 이후에 나오는 율법에 대한 그의 주장은 로마서 서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려고한 것은

⑴ 복음은 인종이나, 문화나, 사람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 그러한 모든 것이 집결되어 있는 로마로 가서, 사람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복음을 전하려 했던 것이고,

⑵ 또한 바울의 신앙자체가 사람의 어떠함에 상관이 없는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망 했었고, 그러한 날이 다가왔기 때문에 이제 자신의 신앙자체가 로마의 다양성과 같이 다양하고 보편적인,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생명이 되었고

⑶ 바울이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므로 어떤 문화나 어떠한 신분이나 어떠한 인종이나 어떠한 나라의, 사람이라는 구분이 없이 복음이 누려지는 세계를 열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바울이 로마로 가고자했던 이유로는

(첫째)로 :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보고자한 사도바울(롬1:11절)
(롬 1: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잠언 16:1)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이것이 하나님 제일주의이다.

1>. 바울이 로마교회에 가고 싶었던 것은 신령한 말씀의 은사를 전해 주기 위함이었다. 그의 믿음 따라 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고 싶었던 것도 진리를 잘 모르는 자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비롯하여 모든 교리나 그리스도인들로서 생활의 원리를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다.

2>. 신령한 말씀의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그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해서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주고자 했던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믿음에 견고케 하려함이라고 했다.
“견고케하려함이라”는[헬, 스테ㅤㄹㅣㅋ 데나이 sthricqh'nai]인데 이는“고정시키다.
견고케 하다, 확립시키다”라는 말씀에 의해서 믿음을 확립시켜 준다. 는 말이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로마 교회를 방문하기를 원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행동기준은 내가 이 사람을 만나면 영적으로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둘째) :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고자 했던 것은 서로 안위함을 얻고자 함이었다.(롬1:12절)
(롬 1: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본 절에 “안위함을 얻으려함이라”의 [헬, 쉼파라클레데나이 sumparaklhqh'nai]인데 이는“함께”라는[헬, 쉰 suvn]과 "부르다, 요구하다, 격려하다, 권면하다“라는 [헬, 파라칼레오parakalevw]와의 합성어에서 유래한”함께 격려하다“의 동사[헬, 쉼파라칼레오 sumparaklevw]의 대격, 과거 수동태 부정사로서 이는 ”함께 요구하거나 격려하다, 함께 권면하다“라는 뜻으로 상호간에 더불어 격려 받고 안위를 받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로마에 갈려는 목적은 ‘가서 로마 교회에 믿음이 있는 행실을 보고 안위를 받고, 또한 자신의 믿음의 행실로 로마교회에 안위해 주기 위함이라. 믿음을 통하여 서로 위로 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바울이 로마에 가려는 것은 영적인 일-신실한 일을 위함이지 자기 육신의 어떤 일을 위함이 아니다.

(셋째) : 가고 싶었지만 억지로 가지 않은 사도 바울(롬1:13절)
(롬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은 억지로 가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1>. 하나님께서 길을 막고 허락지 않으실 때가 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아시아로 갈려고 했을 때도 하나님이 그 길을 막았다.
사탄이 길을 막은 것이 아니다.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구원 얻은 자들을 얻고자 하였으되 여러 번 그 길이 막혀 가지 못했다는 말이다. 만일 사탄이 그 길을 막았다면 바울은 어떻게든지 이기고 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생명을 내놓고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탄이 막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하나님이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2>. 사탄이 가는 길을 막을 때도 있다.
(살전 2: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밝히기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한 두 번 가보고 싶었지만 사탄이 그 갈 길을 막아 가지 못한 적이 있었다.

3>. 때로는 성령께서도 길을 막으실 때도 있다.
(행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로 갈 좋은 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 그렇다면 좋은 길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 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행 27:1-2)
죄수 아닌 죄수의 몸이 되어 로마 군인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가장 안전하게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울을 죽이고자 뭉친 유대인의 40명의 결사대로 인하여 바울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 외로 그의 뜻을 이루어 주신 것이다.

◉ “궁정의 관심이 그리스도교로 이끌린 것은 바울의 설교가 아닌, 그의 속박이었다. 그가 매우 많은 영혼들에게서 죄악의 노예 생활 가운데 붙들어 매여 있는 속박을 끊어준 것은 그가 포로 되어 있을 때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빌 1:14).”(사도행적, 464)

◉ <결단과 기민성(機敏性)>
“하나님의 사업은 기회를 재빠르게 포착하여 때를 놓치지 않고 온 힘을 다하여 즉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을 요구한다. 무릇 모든 고난과 장애를 염려하여 주저하는 자는 일을 별로 하지 못한다. 그대들은 각처에서 여러 가지 고난과 장애를 만날 때에 마음을 굳게 하여 그것들을 정복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난이 그대들을 정복할 것이다.”(복음교역자, 133)

◉ 바울의 로마 방문은 그가 기대했던 방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인생의 어떤 변수도 그의 사명감을 꺾지 못했다.

수요일(6월 30일)
<성도(聖徒)로 부르심을 입음>

▣ 로마서1장1절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희랍어로 노예) 바울은” 이라고 했다. 바울의 부모는 이 작은 아기에게 큰 기대를 품었었다.
그들은 바울이 베냐민 지파에서 났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의 이름인 사울이라고 불렀다.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발견했을 때 자기 이름을 바울 이라고 고쳤다.
바울은 라틴어로 작다는 뜻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구별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주목적은 복음(福音)을 설명하거나 가르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주로 복음(福音)이 되시려고 오셨으나 하나님께서 복음(福音)을 해설(解說)하시기 위하여 구별하신 사람은 바울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의 증거를 바울의 회심을 다룬 사도행전 9장에서 발견한다.

▣ 바울은 “종”으로서(롬 1:1) 로마에 있는 ‘성도(聖徒) “(롬 1:7)들에게 구주(救主)에 대해 편지를 써 보냈다.
(롬 1:3-4) “종”인 바울은
①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음 (롬 1:1)
② 복음 안에서 섬김 (롬 1:9)
③ 복음에 의해 구원(救援)받음 (롬 1:16)
☞ 그리스도의 복음은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작용을 하고 있는가?
바울은 교회에 문안한 다음에 그들의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롬 1:8)
☞ 바울이 교회에 대한 의무감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나 주의해 보라 (롬 1:14-15).
① 나는 “빚진 자라” (롬 1:14)
②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롬 1:15)
③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라” (롬 1:16)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앉았다.
왜냐하면 복음은 죄인이 필요로 하는 것이며 또한 믿음만 있으면 가질 수 있고 “하나님께로 부터의 의(義)” 즉 예수그리스도의 의(義)를 주기 때문이다. 복음은 구원(救援)으로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힘이다.
바울은 꾸밈과 오만(傲慢)과 불의(不意)로 가득찬 로마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롬 1:18-32)에 묘사되어 있는 것과 같이 로마사람들의 무서운 죄는 그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바울은 그의 경험을 통해서 나온 확신을 가지고 그들에게 외쳤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는 인종문제, 인격문제 그리고 모든 것을 발밑에 내어버리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모습을 포착하였다. 그때로부터 바울에게는 한 가지 메시지 즉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오직 의인(義人)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7)고 선포하였던 것이다. 사람은 다만 믿음으로서 구원(救援)을 얻는다. 온전치 못한 행위로써가 아니요 죽음의 저주아래 있는 혈통으로써도 아니며 더러운 걸래와도 같은 성격으로써도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거기에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때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거기에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의(義)를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던 그 의(義)를 하나님 스스로가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왜 하나님의 의(義)가 필요한가? (롬 3:12) 왜냐하면 우리자신의 의(義)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음.>
하나님께서 진실로 세상을 사랑하시지만, 그분을 선택하고 그분에게 반응하는 자들에게 대한 그분의 사랑은 특별하다. 이런 모습은 인간 사이에서도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상호 애정이 오가는 자들을 특별한 방식으로 사랑한다. 사랑에는 반응이 필요하다.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사랑은 충분히 표현될 수 없다.

◉ <성도(聖徒)로 부르심을 받음.>
어떤 번역 성경은 ‘성도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읽고 있지만 그것은 번역자의 첨언에 의한 것임으로 원문의 뜻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 원문에 따르면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즉 성도로 임명되었다.
‘성도(聖徒)’로 번역된 헬라어 하기오이의 문자적 의미는 ‘거룩한 자들’이다. 여기서 ‘거룩한’의 의미는 ‘바쳐진’이라는 뜻이다. 성도란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이다. 그가 걸어야 할 성화의 길은 많이 남아있지만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택했다는 사실 때문에 성경이 의미하는 바, 성도로 임명된 것이다.

◉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다 성도이다.

◉ <지극히 작은 자>
“하나님의 천사들은 구원의 후사가 될 자들을 섬기라고 보내신바 되었다. 우리는 지금 누가 구원의 후사들인지 알지 못하며, 누가 승리하여 빛 가운데서 성도들의 기업을 나누어 가질는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의 천사들은 온 세상 구석구석으로 다니면서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위험에 빠진 자들을 보호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스도께 바치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소홀히 취급되거나 지나쳐 버린바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편애하지 않으시고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영혼을 똑같이 돌보신다.”(시대의 소망, 638)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이 부르심은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목요일(7월 1일)
<세상에 전파(傳播)된 명성(名聲)>

▣ <로마서의 개요> (롬 1:16-17)
⑴ 복음의 사람 → “그리스도”
⑵ 복음의 능력 → “하나님의 능력”
⑶ 복음의 목적 → “구원(救援)”
⑷ 전파의 대상 → “모든 사람”
⑸ 영접의 계획 → “믿는 모든 사람”
⑹ 특수한 결과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로마서의 구성>
⑴ 인간의 본성 → (롬 1:1-3:20)
⑵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 → (롬 3:21-5:21)
⑶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법 → (롬 6-8장)
이스라엘이 제쳐 놓여진 이유 → (롬 9장-11장)
⑷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 → (롬 12-16장)

◉ 바울은 로마 교인들의 경험가운데 주목할 만한 3가지 요소로 세상에 전파된 명성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선(善)함이 가득하고, 지식에 넘치며, 서로 권하고 사랑함으로 그 명성이 널리 퍼진다. 라고 언급했다.

1. <“선(善)함이 가득하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가?
우리의 선량함은 우리와 관련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가?

2. <“모든 지식(知識)이 차서”>
성경은 반복적으로 깨우침과 지식과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연구하며 그 교훈을 익혀야 한다.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겠다는 말씀은 ‘새로운 정신’을 주신다는 의미이다.
마음의 변화는 언제나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진리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이해를 통해 일어난다.” (엘렌 G. 화잇, 마이 라이프 투데이, 24)

3. <“능히 서로 권(勸)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동료 신자들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 격려함과 동시에 격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교회에 필요한 것>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는 형제의 사랑이 매우 부족하다. 구주를 사랑하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사귐으로 저들과 연합한 자들을 사랑하기를 등한히 한다. 우리는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고 한 가족이며 모두가 같은 하늘 아버지의 자녀들이고 똑같이 영원한 복된 소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를 서로 묶고 있는 유대가 얼마나 밀접하고 친절하여야 되겠는가.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마음에 성결 하게 하는 감화를 끼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교회에 보내 는 권면, 44)

◉ “이리하여 표면상으로는 활동적인 사업에서 차단된 것처럼 보였으나 바울은 이전처럼 교회 사이를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었던 때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더욱 지속적 인 감화를 끼쳤다. 주님의 죄수로서 그는 형제들의 애정을 더욱 굳게 붙잡을 수 있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속박되어 있는 동안 기록한 그의 말은 그가 직접 그들과 함께 있었을 때보다 그들로부터 더욱 큰 주의와 경의를 받았다.”(사도행적, 454)

◉ “알려진 세계의 대 중심지에 그리스도교가 확고하게 세워지는 것을 보는 일이 그의 최대의 소망이요 가장 소중히 여겨온 계획 중의 하나였다. 한 교회가 이미 로마에 세워졌으므로 사도는 이탈리아와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야 할 사업에 그곳 신자들의 협력을 얻고자 갈망하였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에게는 생소한 이들 형제들 가운데서 일할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는 편지를 그들에게 보내어 로마를 방문하는 목적과 스페인에 십자가의 깃발을 세우고자 하는 소망을 알렸다.”(사도 행적, 373)

◉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도와 죄인, 회개한 자와 회개하지 아니한 자를 구별하는 선을 그으신다. 이 두 계급은 무지개의 빛과 같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 섞이지 않고 한낮[正午]과 한밤이 확연히 다른 것처럼 서로 구분된다.”(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390)

<焦點>

로마서에 계시된 구원(救援)을 통해서 바울이 경험하고, 목숨까지 아끼지 않을 만큼 생명보다 더 귀중한 구원의 복음서 로마서를 통하여 시대(時代)와 집단(集團)과 소속(所屬)과 인종(人種)을 초월한 복음의 혜택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예수님 안에서 사도 바울이 누렸던 자유와 행복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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