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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 공동체- 사랑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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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6-21 23:02 조회4,7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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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6일(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8분

제 13 과 <공동체 : 사랑의 띠>

<記憶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 “띠”의 사전적(辭典的)의미는 “허리를 둘러매는 끈”이라 한다,
“끈”이란 물건을 묶거나 꿰거나 매거나 하는데 쓰는 노. 줄을 말한다.
그러나 “띠”는 눈에 보이는 띠와, 눈에 보이지 않는 띠로 구분을 할 수 있는데, 그 역할은 똑같다.
덩치가 큰 코끼리를 훈련하는 방법은 어릴 때부터 쇠밧줄로 기둥에 다리를 붙들어 매어 놓으면 처음에는 도망하려고 의도적으로 시도를 하지만 세월이 가면 갈수록 자포자기를 하므로 점점 가는 줄로 묶어놓고 나중에는 묶어 놓지 않아도 도망을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줄이 처음에는 자유를 속박 하였지만 점점 세월이 지나가면서 기억에 줄이 나를 속박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의 줄을 제거하여 없이해도, 기억에는 물리적인 줄이 남아 있는 것처럼, 마음에 줄이 코끼리를 속박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와 같이 “줄”(끈)은 물리적인 줄보다 마음의 줄이 그의 일생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삶에는 “물리적(物理的)인 줄”보다 “마음의(영적(靈的)인)줄”이 사람들을 불행하게도 만들고 행복하게도 만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행복의 줄이 사랑으로 죄인들을 구속(救贖)하시지만, 사단은 불행의 줄로 인생들을 구속(拘束)합니다.
부모와 가족관계, 친구관계, 직장관계, 교우(敎友)관계는 물론이고,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緣)등등은 물론 이거니와 특히(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절에서는 “사랑의 줄”로 형성이 되어 있지만, 마약(痲藥), 주정음료(酒酊飮料)나 향락(享樂)이나 도박(賭博)이나 게임이나 부정(不正)한 방법의 재물축재(財物蓄財)나 사치(奢侈)와 허영(虛榮)과 다툼과, 시기(猜忌)와 갈등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육체의 일인(갈라디아서 5:19-21절: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異端)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등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사람을 구속(拘束)하는 보이지 않는 “줄”로 묶여있어 사단의 노예(奴隸)가 된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가진 독특한 특성이며, 사랑은 받는 사람에게만 축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는 자에게도 축복이 된다. 이것이 사랑의 공동체인 것이다.

<要點>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와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우리가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위대한 성취를 이루게 된다.

일요일(6월 20일)
<본래의 형상(形像)>

▣ 세상의 사물은 본래의 형상에서 시간과 세월이 지나가면 점점 후패(朽敗)하고 변형과 변질이 되어 진다.
그중에서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다른 피조물보다 생각과 품성이 가장 많이 변질이 되어있다. 그러나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 예수님은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아버지께서 어떤 분인지 친히 보여 주심으로 인간자녀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만이 영혼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의 아들에게서 나타난바 된 하나님의 사랑을 명상하면 마음은 감동될 것이요
어떤 다른 것이 할 수 없는 그런 영혼의 힘을 분기시킬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재창조하기 위하여 오셨다.” (시대의 소망, 478)

◉ “사람은 외모나 품성에 있어서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될 것이었다.
그리스도만이 아버지의 “본체의 형상”(히 1:3)이시나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의 본성은 하나님의 뜻과 조화되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애정은 순결하였고 그의 식욕과 감정은 이성(理性)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그분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가운데 거룩하고 행복하였다.” (부조, 45)

◉ “사단은 사람이 가졌던 하나님의 형상을 저하시키는 일에 성공한 것을 심히 기뻐하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조물주의 형상을 사람에게 회복시키시려고 오셨다.
죄로 말미암아 파괴된 품성을 다시 새롭게 형성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었다.
그는 사람의 의지를 지배해 온 악마들을 쫓아내시려고 오셨다.
그는 우리를 진토에서 건져내어 손상된 품성을 당신의 거룩하신 품성을 따라 재형성 하시고,
그 품성을 당신의 영광으로 아름답게 만드시기 위하여 오셨다.” (소망, 37)

◉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재창조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돌아서게 하는 것은,
사람을 참된 계발의 근원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다.
곧 사람들에게서 생애의 희망과 목적과 영광을 속여 빼앗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절도요 강도이다.” (소망, 478)

◉ “만일 내가 사람들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된다면 세계는 밝아질 것이다.
사람들의 심령을 붙들고 있는 사단의 속박은 깨어질 것이다.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에게 회복될 것이며 믿는 성도들의 가족은 마침내 하늘 집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이다. 구주께서는 당신 앞에 펼쳐 진 승리의 장면에 대한 명상에 잠기신다.
그분은 십자가와 그에 따른 모든 공포와 빛나는 영광과 함께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보신다.” (소망, 625)

◉ “아담의 창조에 관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하였으나 타락한 후에 인간은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창 5:1, 3)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죄 없이 창조함을 입었으나 셋은 가인처럼 그 부모의 타락한 성질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는 또한 구속주(救贖主)에 관한 지식과 의(義)에 대한 교훈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하나님을 섬기며 영화롭게 하였다.”(부조, 80)

◉ “현대인들이 선인(先人)들의 학식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계획을 세우고 연구하고 저술한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후대를 위하여 그들의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도, 그리고 인간의 지식 면에서만도 고대 사람들이 얼마나 더 유리했는가!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창조주께서 친히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선언하신 사람 곧 하나님께서 물질세계에 관한 모든 지혜를 가르쳐 주신 아담과 수백 년 동안 함께 있었다. 아담은 창조주께로부터 창조의 역사(歷史)를 배웠고, 직접 9세기 동안에 일어난 사건들을 목격하였으며, 후손들에게 그의 지식을 나누어 주었다. 홍수전의 사람들에게는 책이나 쓰인 기록이 없었다. 그러나 탁월한 육체적·지적 능력의 소유자들인 그들은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전달된 것을 이해하고 보전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손상됨 없이 차례로 그들의 후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백 년 동안 7대의 사람들이 동시대에 살며 서로 의논할 기회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으로 각자 유익을 얻었다.”(부조, 83)

◉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처음에 가졌던 인성(人性)을 회복해야 한다.

월요일(6월 21일)
<사람 : 사회적 존재>

▣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혼자서 살 수 있도록 창조하지 않으셨다. 관계(關係)속에 살게 하셨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와 사람과 사람끼리 관계를 맺고 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더불어 사는 삶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기쁠 수가 없다.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라 명령 하셨다. 기쁨은 관계 속에서 생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를수록 기쁨은 충만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없는 사회적 존재는 다음과 같은 불합리의 이론이 대두(對頭) 될 것이다.
즉 인간이 사회를 만들어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이 됐다”는 것은?
개인의 삶이 그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 원시적인 존재일 때는 생존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존재의 의미도 개인에게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사회를 형성하면서 그 구성원이 됐다는 것은 개인은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됐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한 인간이 “어떤 제도에서 사느냐”에 따라 한 개인은 건강을 비롯해 인품이나 삶의 질까지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존재는 “사회적”이면서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 개인의 삶에 대한 모든 “결과”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건강뿐만 아니다. 인품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가치(價値)가 돈으로, 학력으로 혹은 연(緣)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사회적 가치로 성장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제도는 사회적이면서 책임은 개인에게 지우는 룰(Rule)은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못하다.
이러한 사회적 존재는 하나님을 떠난 조건적 거래관계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결려된 세상의 현실이다.

▶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자마자 하나님은 그에게 동반자를 주셨다.
그분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다(창 2:18).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의 중요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로마서 14장7절의 말씀은 알고 보면 모든 사람들이 결국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다 죽는다.
가장 이기적인 사람에게도 이 말씀은 적용이 된다.
문제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사는가, 이타적인 마음으로 사는가이다.

◉ 처음부터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도록 지음을 받았다. 죄는 이런 인간의 존재방식을 깨뜨렸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관계적 삶을 회복할 수 있다.
좋은 관계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친절하게 관계를 주고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따라서 그대의 건강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건강을 위해 투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 <연합은 사랑의 증거임>
“그리스도와 연합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사랑이 있다. 우리들이 아무리 다른 열매들을 많이 맺는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그 열매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은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본질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없는 자는 그분의 자녀들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갖게 된다.”(가려뽑은 기별 1권, 337)

화요일(6월 22일)
<구원(救援) 속에서 연합(聯合)>

▣ 연합을 이루려면 공통분모(共通分母)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지체(肢體)도 두뇌(頭腦)의 정상적인 기능에 따라 사지(四肢)와 온 지체가 각기 기능을 발휘하여
한 몸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것처럼,
구원(救援)받은 성도(聖徒)는 구원(救援)자 예수님을 공통분모로 할 때 온전한 연합이 이루어지게 되며.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공동체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조건이다.
연합시키는 분이신 성령(聖靈). "그리스도의 영(靈)", "진리의 영(靈)"이신 성령께서 연합을 이루신다.

◉ <그리스도인이 힘써야 할 연합>
“연합되기 위하여 진지하게 힘쓰라. 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일하라. 연합은 영적 건강과 고결한 생각과 고상한 품성과 경건함을 일으켜서 그대로 하여금 이기심과 악한 억측을 이기게 하며 그대를 사랑하사 그대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승리자가 되고도 남음이 있게 한다.”(교회에 보내는 권면, 290)

▣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 곧 모든 족속이 한 조상(祖上) 아담으로부터 나왔다는 역사적 진리를 말하고 있다.
바울의 신학(神學)에는 “우성(優性)”종족(種族)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그는 창세기의 인간창조의 이야기를 믿었다.
그는 신체구조(身體構造)뿐 아니라 잠재적(潛在的) 및 실제적 발전의 동일성을 보았으며,
이는 히브리인이나 헬라인이나 라틴 인이나 튜턴인 등
어떤 종족(種族)이나 국가(國家)를 막론하고 자기가 인류의 정화(精華)라고 생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연합을 강조하는
갈라디아서 3장28절과 골로새서 3장11절을 비교하라.
그리스도인은 창조와 구원을 통해 인간이 하나임을 배나 인정해야 한다. (본교 성경주석(한)11권 396p)

◉ <성령의 연합.>
“성령은 연합의 배후에 있는 원동력이다.
그분을 통하여 신자(信者)들은 교회로 인도함을 받는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고전 12:13)이 된다.
이 침례 받은 교인들은 바울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엡 4:3)으로 기술한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연합의 모든 면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 됨 속에서 그 기초를 발견한다.” (교리, 166)

◉ <연합의 초점>
성령께서 신자(信者)들 속에 들어가실 때 그분은 그들로 하여금 문화, 인종, 성, 피부색, 국적 그리고 신분에 대한 인간의 편견을 초월시키신다(갈 3:26-28 참조). 그분은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셔 오심으로 이 일을 성취하신다. 성령께서 그 안에 거하시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그들의 연합은 그들 가운데 연합의 결속을 확립시키는데, 그것은 내재하시는 성령의 열매이다. 그 때에 그들은 그들의 의견 차이와 불화를 최소화하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함께 연합하여 사명을 수행할 것이다.

◉ <연합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영적은사들의 역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당신의 아버지 곁에서 당신의 중보사업을 시작하셨을 때,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을 연합시키려는 목적이 환상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셨다.
성령을 통하여 그분은 신자들 가운데 특별히 "믿음의 연합"을 확립시키고자 특별한 은사들을 주셨다.
이 선물들을 통하여 신자들은 사랑가운데서 진리를 말하고 사랑의 역동적 연합을 발전시키면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이르기까지 성장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고 말했다.

◉ <연합의 기초>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역사하시는 것은 "진리의 영"(요 15:26)으로서 이다.
그분의 임무는 신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이다(요 16:13).
그러므로 그리스도 중심적 진리가 연합의 기초인 것이 분명하다.
성령의 사명은 신자들을 "예수 안에 있는 진리"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학문은 하나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학문만으로는 참 연합을 이루어 내는 데 충분치 못하다.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믿고 실천하고 전도하는 것만이 참 연합을 이루어낸다.
교제와 영적 은사들과 사랑은 모두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들의 진가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라고 말씀하신 분을 통해서만 발휘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 이다"(요 17:17)라고 기도하셨다. 그러므로 연합을 경험하려면 신자들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비춰 나오는 빛을 받아야 한다.
예수 안에 있는 이 진리가 마음에 거할 때 그것은 생애를 품위 있게 만들고, 고양시키고 정결케 한다.
그리고 모든 편견과 알력을 제거한다.” (교리, 169-170)

▣ <연합에 이르는 단계들>
연합은 자동적으로 오지 않는다. 연합을 이룩하려면 신자들이 몇 계단을 밟아야 한다.

1. <가정에서의 연합>
교회에서의 연합을 이룩하기 위한 이상적인 훈련장은 가정이다(본서 22장 참조).
가정에서 우리가 지혜로운 경영, 친절, 온유, 인내, 그리고 십자가(十字架)를 중심으로 한 사랑을 배울 때,
우리는 이런 원칙들을 교회에서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2. <연합을 목표로 삼으라.
우리가 성실하게, 의식적으로 연합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코 연합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이미 달성했다고 자부할 수 없다.
우리는 날마다 연합을 위하여 기도(祈禱)하고 세심하게 그것을 배양(培養)해야 한다.
우리는 의견의 차이를 최소화시키고 중요치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논쟁을 삼가야 한다.
우리는 분열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우리가 피차 동의하는 많은 고귀한 진리에 관해 말해야 한다.
연합에 대하여 말하고, 그리스도의 기도가 성취되도록 기도하라.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연합과 조화를 실천할 수 있다.

3.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하라>
교회는 한 단위로서 함께 일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데 관여하기 전까지는,
연합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사명의 수행은 조화를 배우는 이상적인 훈련이 된다.
그것은 신자들에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거대한 권속의 일원이며 전체의 복리는 신자들 개개인의
안녕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봉사 사업을 통하여 영혼의 회복과 신체의 회복을 함께 결부시키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시고 그들을 파송하실 때 그분은 같은 내용을 강조하셨다.
말씀의 전파와 치료가 그것이다(눅 9:2, 10:9).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교회는 전도(말씀의 선포)와 의료 선교 사업을 병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업의 국면들 중 그 어느 것도 독립적으로 수행되거나 어느 하나에만 완전히 치우쳐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균형, 즉 조화를 이루어 함께 일하는 것이 영혼을 위해 일하는 우리의 사업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교회 사업의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강력하게 복음의 초청을 세상에 보내기를 소망한다면
서로 밀접하게 협력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연합이란 효율성을 위한 통합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몸의 은유는 크든 작든 각 기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해 준다.
경쟁이 아닌 협동이 당신의 전 세계적인 사업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연합은 십자가에서 그토록 장엄하게 나타난
그리스도의 무아적(無我的) 사랑에 대한 증거이다.

4. <전 세계적인 안목(眼目)을 계발(啓發)하라>
교회가 세계 각 곳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증진시키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참된 연합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국가적, 문화적, 혹은 지역적 고립주의를 피하기 위해 가능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판단과 목적과 행동의 연합을 성취하기 위해 국적이 다른 신자들이 함께 섞이고 함께 봉사해야 한다.
교회는 교회의 연합된, 전 세계적인 전도 사업에 저해 요인이 될 별도의 국수주의적 관심사를
조장시켜서는 안 된다.
교회의 지도자는 세계 다른 지역 사업의 발전을 희생시켜 가면서 어느 한 지역에 재정이 공급될 수밖에
없도록 프로그램이나 시설을 발전시키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평등과 연합을 유지하는 그런 방법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5. <분열(分裂)시키는 태도(態度)를 피하라>
이기심, 교만, 자기 과신, 자만, 우월감, 편견, 비평, 비난 그리고 신자들 사이에서의 흠 찾기는 교회를 분열시킨다. 그리스도인 경험에서의 첫사랑의 상실이 흔히 이런 태도를 유발시킨다. 갈바리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恩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새롭게 될 수 있다(요일 4:9-11).
성령을 통하여 전달된 하나님의 은혜는 육신적인 마음 가운데 있는 이러한 분열의 근원을 정복할 수 있다.
신약 시대에 한 교회에서 분열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바울은 "성령을 좇아 행하라"(갈 5:16)고 그 교회에 권면하였다. 계속적인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를 연합으로 이끄실 성령의 지도를 구해야 한다. 성령 안에서의 행위는 분열에 대한 효과적인 해독제인 성령의 열매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맺는다(갈 5:22, 23).
야고보는 분열의 또 다른 뿌리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는 강력한 어조로 부나 신분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을 책망하였다.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약 2:9).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므로(행 10:34), 우리 는 지위나 부나 재능 때문에 어떤 교인을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을 존경할 수 있지만 그들이 가장 비천한 하나님의 자녀보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 더 귀중한 인물인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의 시각을 교정해 준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그분은 가장 유복한 신자들뿐 아니라 낮은 자로도 대표되셨다. 모두가 당신의 자녀인 까닭에 그분께 똑같이 중요한 사람들이다.
인자이신 우리의 주님께서 아담의 모든 아들과 딸에게 형제가 되신 것처럼 그분을 따르는 우리들도 정신과 사명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계 14:7)에서 나온 우리의 형제자매들에게 구속적(救贖的)인 방법으로 대하도록 부름을 받았다.”(교리, 171-172)

▶ 모든 인류는 한 조상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행 17:26). 인간은 우리 모두를 사랑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단 한 사람도 잃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벧후 3:9).
성경은 예수님 안에서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인간들 사이의 모든 장벽이 허물어 졌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 앞에 동등하며, 다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 구원(救援)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연합(聯合)한다.
우리가 완전하게 되는 길은 혼자만으로는 불가능(不可能)하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할 때, 비로소 ‘온전한’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다.
구원(救援)받고 성화된 사람들의 삶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

수요일(6월 23일)
<서로 후원(後援)함>

▣ 감사함이나 고마움이나 사랑을 받은 사람이 답례로 하는 행위는 세상 사람들도 한다.
그러나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구원(救援)받음에 감사해서 봉사를 한다는 것은 오히려 봉사를 통해서 부메랑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더 큰 사랑을 우리는 성경과 우리주위에서 보고 있지만, 막상 내 자신이 후원하고 봉사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 이유는 자아가 살아 있으며 무아적(無我的)인 예수님의 사랑이 내안에 온전히 자리를 잡지 못해서 이다. 그러므로 서로에게 봉사함으로 얻는 최고의 유익을 깨닫는다면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게 내어 놓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최고의 미덕은 사람들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모본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부족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했어도 그들을 돌보고 포용하셨다. 우리는 그분처럼 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실 때만이 가능하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께 굴복하고 그분께서 일하시도록 허용하는 것만큼 일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와 자비를 베푸셨는지 깨닫는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그와 같이 할 수 있게 된다.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친절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부분 그 정도는 한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함께 어울리기 어려운 사람들, 우리를 거칠고 부당하게 취급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부르심이 있을 때는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 (요 13:35, 롬 15:7, 엡 4:32, 골 3:13, 살전 4:18, 약 5:16, 벧전 3:8~9, 요일 1:7.절들은,
흔히 “서로” 성경절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서로 사랑, 서로 받음, 서로 용서, 피차용서, 서로 위로, 서로 기도, 서로 대접, 서로 사귐” 등의 말씀이다.

◉ <사랑의 기술>
“우리들은 바라봄으로 변하게 된다. 거룩한 모본이신 주님의 완전하심을 명상할 때에 우리들은 완전한 변화를 입으려는 욕망을 품게 될 것이며 주님의 순결하신 형상을 따라 새로 지음을 입게 될 것이다. 품성의 변화가 이루어지며 진노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때문인 것이다.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가게 되며 신령하게 되어 신령한 사물들을 분별한다.”(가려뽑은 기별 1권, 338)

◉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셨던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목요일(6월 24일)
<서로 섬기라>

▣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 새마을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전방 모(某) 군부대(軍部隊)의 사단장과 사모가 이혼직전까지 이르렀을 무렵 군부대의 간부들의 부인(夫人)들이 가나안 농군학교에 입소하여 새마을 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 교육 과정 중에 겸손예식을 하게 되었으며, 향후 귀가하여 남편들에게 이러한 섬김의 실천을 하라는 가나안 농군학교의 책임자였던 김영기 장로님의 가르침을 받고 새마을 교육을 받고 모두가 귀가하였고, 그중 이혼 직전의 마음을 먹었던 사단장의 부인이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배운 대로 남편인 사단장이 퇴근할 무렵이 되면 얼굴 화장도 예쁘게 하고 옷도 가장 좋은 외출복을 입고 남편의 퇴근 귀가시간에 문밖에서부터 환영을 하고 집 안방으로 모시고 와서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로 방안까지 가지고 와서 오늘 부대에서 얼마나 수고를 했느냐 하며 의자에 앉으라고 공손히 안내하여 발을 씻겨드린다고 하니까 사단장이 깜짝 놀라면서 이 마누라가 이젠 마지막으로 물벼락을 씌우고 집을 나갈려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방어 자세를 계속 취하니까 그 부인이 당신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가나안 농군 학교에서 배운 대로 실천하려고 한다기에 엉거주춤 의자에 앉아 있으니 부인은 무릎을 꿇고 남편의 발을 닦아주며 그동안 내가 잘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해달라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애원하니까, 그 사단장은 오히려 자신이 그동안 잘못했다며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서로 용서를 빌며 첫 결혼 때의 사랑을 회복하게 되었으며,
이후 부대의 모든 장교와 하사관들의 부인들이 강원도 원주에 소재한 가나안 농군학교에 입소하여 발 씻는 교육을 받았으며, 그전에는 안전사고가 가장 많았던 부대(部隊)가 새마을 교육(겸손예식)을 받은 이후부터는 가장 화기애애한 멋진 부대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섬김 ! 그것이 곧 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에서 나이 많으신 분들에게 인사 잘 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나이 많이 드신 분들이나 장로님들이 먼저 일찍 교회에 출석하시여 젊은이들에게 문밖에서서 환영을 하며 섬김의 자세로 돌아갈 때 교회의 분위기가 달라 질것이라 믿습니다.

◉ 우리나라의 전통(傳統)중에 고부(姑夫)간의 갈등과 직장(職場)의 상하(上下)간의 갈등과, 군대(軍隊)의 계급간의 갈등 등은 서로가 권위(權威)와 자존심(自尊心)으로 인하여 즉 섬김의 기회를 갖지 않음으로 인하여 골 깊은 불편한 관계의 상징들로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이웃에게 섬기는 자로 삽시다.
남을 돕는 것은 나를 돕는 것이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사이에서 민족, 문화, 학문, 국적 등의 구별이나 높은 자와 낮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간의 차별이 분열의 요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 상호간을 하나의 친교에로 결속시키는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하다. 우리는 편견이 없이 솔직하게 서로 섬기고 또 섬김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같은 신앙과 소망을 나누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별을 가지고 나아간다. 이러한 연합은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으신 삼위 하나님이 일체가 되신 것에 근원을 두고 있다” (기본 신조, 13) (교리, 165)

◉ “우리 청년들 중에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봉사 사업에 종사할 자가 얼마나 되는가? 옛날에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내 주여 나로 이 영혼을 구원하도록 도우소서. 하고 애원하면서 저들의 모든 마음을 한 영혼 한 영혼에게 다 기울이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죄인의 위험함을 깨닫고 일하는 자가 몇 사람이나 되는가? 위험에 빠져 있는 줄을 알고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애원하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되는가?” (복음, 65)

◉ <완전한 모본>
“매우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그리스도께서는 겸손과 근면과 순종의 완전한 모본이 되는 생애를 하셨다. 주님께서는 항상 사려 깊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당신 자신을 부인하셨다. 그분께서는 하늘의 인을 지니시고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전도, 636)

◉ <서로 사랑하라>
“이기심과 교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들의 정신을 한데 묶는 순수한 사랑을 방해한다. 만약 이 사랑을 충실하게 계발하면 유한한 자들은 유한한 자들과 섞인 것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은 무한하신 분을 중심으로 삼을 것이다. 인간 사이에 연합이 있을 것이며, 결국 모든 사람이 무한하신 사랑의 마음으로 한데 뭉쳐질 것이다. 서로를 위하는 성화된 사랑은 성스러운 것이다. 이 큰 사업을 할 때 서로를 위하는 그리스도인 사랑(여태껏 보여준 것보다 훨씬 더 고상하고, 더욱 항구적이며, 더욱 예모 바르고, 더욱 희생적인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자비와 온유를 잃지 않게 보존해 주고 인간의 권리를 부여하신 하나님의 위엄을 인정할 때, 그 사랑은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형제 사이를 감싸 준다. 이 위엄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항상 길러 나가야 한다.… ”(화잇주석, 요 13:34)

◉ “구주의 모본은 시험당하는 자와 실수한 자들을 위하여 나타내는 우리의 봉사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과 꼭 같은 흥미와 친절과 인내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야 한다. 그분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요 13:34).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우리와 관련되는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이기심 없는 사랑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동정과 도움이 필요 되는 남녀들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도움을 받을 가치가 있는가. 고 묻지 않고, “내가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가”고 자문해야 할 것이다.”(치료, 162)

◉ “이와 같은 진리를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배워야 할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라는 자기희생의 교훈과 연결시키셨다. 그리스도의 동역자로서 열매를 가져올 자들은 누구나 먼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생명은 세계의 필요로 하는 밭고랑에 던져져야 한다. 자애(自愛)와 사욕은 죽어야 한다. 자기희생의 법칙은 자기 보존의 법칙이다. 농부는 곡식을 흩어버림으로 그의 곡식을 보존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주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보존될 수 있는 생명은 하나님과 사람을 봉사하기 위하여 아낌없이 주어진 생명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저희 생명을 희생하는 자들은 저희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보존할 것이다. 사욕을 좇아 허비한 삶은 먹어버린 곡식과 같다. 이것은 없어지고 다시 증가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을 수 있으며 자신을 위하여 살고 생각하고 계획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생명이 지나가 버리면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된다. 자기 섬김의 법칙은 자멸의 법칙이다.” (소망 623, 624).

◉ “그의 백성들이 그 본성적으로 타고 나는 이기심과, 자기를 섬김으로 강화되는 이기심으로 말미암아 잘못 인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들에게 겸손의 본을 보이셨다. 주님은 이 큰 주제를 인간의 입술로 설명하도록 맡겨 두지 않았다. 중요한 일이 아주 많았지만 하나님과 동등이신 그분이 몸소 그의 제자들의 발을 씻으리라고 결심하셨다.” (화잇 주석, 요 13:13-17)

◉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셔서 우리가 서로를 섬기게 하셨다.
위에 열거된 것들은;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로, 권위 하는 일, 구제하는 것, 다스리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 등등. 이 모든 것은
성령으로 각 사람에게 가장 합당하게 나누어 주신다.
이것은 서로 보완하며 서로 섬기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창조되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만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대가 다른 사람을 돕고 구제하기 위해 나아갈 때, 아무 조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심 없이 자기를 내어줄 때, 기분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 보라. 우리 안에 깊은 감동이 있을 것이다. 우리 안에는 좋은 것을 느끼는 감각이 있다. 우리는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만족감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주는 것은 우리가 찾아야 할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 때 행복하도록 창조되었다.
우리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이 우리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았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긍정적이고,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때 더 잘 반응 한다. 놀랍게도 다른 이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의학적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우리의 기분이 좋아지고, 우리의 기분이 좋아지니까 우리의 건강도 향상된다. 이 얼마나 완벽한 조화인가!

◉ <봉사는 자신을 행복하게 함>
“그대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에 공헌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포착하라. 진정한 기쁨은 오직 이기심 없는 봉사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인내와 이타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애를 사는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의 특징이 된다.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고자 애쓰고, 자아와 이기심을 정복하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봉사하고자 노력할 때 그대들은 승리에서 승리를 거듭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의 감화력은 세상을 복되게 할 것이다.”(치료봉사, 362)

◉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생애 하시던 장소들을 방문하여 그분께서 걸어가 곳을 걸어 보고 그분께서 가르치기 좋아하시던 호숫가를 바라보고 그분의 눈이 그처럼 자주 머물렀던 들과 골짜기들을 바라보는 것이 큰 특권이 될 것이라고 생각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하여 나사렛이나 가버나움이나 베다니로 갈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병자의 침상 곁에서, 가난한 오두막에서, 사람이 많은 대도시의 뒷골목에서 그리고 인간의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어느 곳에서든지 예수님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주린 자들을 먹이고, 벗은 자들을 입히고, 고난과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해야 한다. 우리는 낙심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고취시켜야 한다.
이타적 봉사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은 악을 행하는 자를 개혁시키는 일에 있어서 칼이나 공의의 법정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일을 할 것이다. 칼이나 공의의 법정은 범법자에게 공포감을 안겨 주기 위하여 필요하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으로 봉사하는 선교사는 그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때때로 견책 때문에 굳어지는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아질 것이다.”(치료봉사, 105~106)

<초점(焦點)>
그리스도인이 입어야 할 옷 사랑의 띠 <골로새서 3장 12-14절>
(12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
①긍휼(矜恤)과, ② 자비(慈悲)와, ③ 겸손(謙遜)과, ④ 온유(溫柔)와, ⑤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긍휼 - 어려움을 겪는 자들에게 나타내는 사랑 동정어린 마음 자비로운 마음
자비 - 하나님의 인자하심. 친절
겸손 - 그리스도를 이웃을 섬기는 겸손
온유 - 형제들아 사람이 무슨 죄를 범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갈 6;1)
오래 참음 - 보복을 행하지 않고 견디며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
(13절) “누가 뉘게 혐의(嫌疑)가 있거든”
① 서로 용납(容納)하여, ② 피차용서(容恕)하되, ③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절)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① 이는 온전(穩全)하게 매는 띠니라
새 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입어야 할 옷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이며, 그리고 사랑을 더하여서 온전하게 되시기를…….<아멘>


<P.S>
2010년제2기(4-6월)동안 변함없이 부족한 글 찾아 주시고 격려와 사랑의 글로, 기도로 함께 하여주심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행복의 주님, 평안의 주님 예수님안에서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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