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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그분의 신비로운 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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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8-04-04 23:06 조회5,3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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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4월12일 오후7시5분 (李奉周)

제 2과 그분의 神秘로운 神性
<擴大鏡>
◎ 일반적인 동물들과 달라서 인간들은 상대를 잘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아서 오해(誤解)를 낳게 되고 갈등이 조성되고 결국에 가서는 분(憤)을 마음에 품고 이를 행동에 옳기는 것이 싸움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패가망신(敗家亡身)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멸망(滅亡)의 길로 가기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매사(每事)에 정확히 잘 알아야 되지만, 특히 종교(宗敎)의 선택도 귀중하므로 선택하기 전에 먼저 잘 알고 그 다음에 잘 믿어야 되는 것이다.

◎ 2001년 통계청 조사 자료에 의하면 한국에 있는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등등 을 제외하고, 장로교의 한 교파만을 살펴보면 장로교 교단의 숫자가 49개 장로교 교단으로 조사가 되어있는데 아마도 2008년도 현재는 훨씬 더 많이 늘어났을 것이다. 이처럼 쪼개진 이유가 무엇일까 ?
이러한 종파에 소속한 이들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을 보고 이단(異端)운운하는 것을 볼 때 사실에 근거(根據)하지 않고, 유전(遺傳)과 성경(聖經)의 경전이 아닌 어느 개인이나 단체의 생각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들로 전해 내려오는 막연한 이야기 등으로 마구잡이 이단(異端)이라고 몰아붙인다. 누가 이단(異端)인지 참으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 같은 성경을 경전(經典)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여 이처럼 많은 분파가 생겨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성경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선재성(先在性)과 예수님의 신성(神性)에 대해서 이번기회에 다시금 잘 점검하고 알아야 되겠습니다.

<토의>
1.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대로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증거(證據) 해보자.
2. 예수님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설명해보자.
3. 왜 기독교(基督敎)내에 그 많은 종파(宗派)가 왜 많이 생겨날까? 그 이유는

日 (4월 6일)
<그분의 先在性과 그 意味>
◎ 어려운 이야기를 가장 쉽게 예를 들어 이야기 해봅시다.
☞ 성경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비(非)그리스도인들로써 생각할 때
(질문) : 왜 예수님은 인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면서 “하나님”이라고들 하는가?
(설명) : 1) 서울에 63빌딩이나, 삼성동 코엑스에 가면 대형 수족관에 다양한 바닷물고기들이 있다. 이 물고기들이 오래 살게 되는 비결이 있는데, 큰 수족관에 바닷물만 채워놓고 물고기를 넣어 놓는다고 하면 이 물고기들이 얼마 못가서 모두 죽게 된다고 한다. 즉 수족관(水族館)에 바닷물을 넣고 실제의 바다와 같은 조건으로 산소공급을 비롯해서 수족관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자연의 바다환경과 여건이 똑같이 조성하여 관리를 해 줄때에 수족관 안에 있는 물고기가 실제의 자연 바다 속의 환경과 똑같이 될 때에야 수족관 안에 물고기들이 오래 산다고 한다. 2) 그런데 수족관 관리인이 수족관 유리 밖에서 물고기들에게 아무리 너희물고기들아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건강하게 잘살 수 있도록 수족관 환경을 잘 관리해주고 있고, 똑 너희들 먹고 사는 것 음식을 내가 매일 너희들에게 주고 있는데 너희 물고기들아 나에게 대하여 고맙게 생각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 생명이 내 손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들이 모르겠느냐고 매일 수족관 밖에서 물고기에게 아무리 이야기 한들 물고기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3) 물고기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물고기가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사람이 물고기가 되어서 물고기와 같은 모양과 언어(言語)로 이야기를 하면 그 뜻을 알아들을 수가 있다.

4)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직접만나고 하였다, 그러나 불순종으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쫒겨나온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친히 신정정치(神政政治)를 하셨다. 그런데 패역(悖逆)한 인간들이 눈에 보이는 이방인(異邦人)의 사람이 통치하는 왕(王)을 달라고 하여 사무엘 시대에 사울 왕을 시작으로 인간 왕정(王政)정치를 하게 되었다.
성경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이 백성들이 패역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제사장을 통하여 용서해주시고 이러한 일이 계속 반복하였고 오히려 선지자(先知者)나 제사장(祭司長)들을 죽이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였다. 이젠 죄의 온전한 회개도 없이 불쌍한 동물들의 희생제물(犧牲祭物)들만 죽게 되는 일이 계속 반복하였다........
도무지 세월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송두리째 망가트려 놓는 이 백성들에게 좋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과 똑같은 삶을 통하여 인간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오셔서 우리인간들과 똑같이 지정의(知情意)를 갖고 우리와 같은 언어로 말씀하시고 인도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5)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모양(형체)이시지만 사람과 다르면 이 있다면 곧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갖이신 분이시다.
가) 사람은 엄마의 난자(卵子)와 아빠의 정자(精子)가 만나야 세상에 태어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빌려(마리아)태어 나셨지만 마리아의 난자(卵子)와 목수 요셉의 정자(精子)로 태어나신 분이 아니시다.(전능(全能)하신분이시다)
나) 사람은 죄를 사(赦)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죄를 사(赦)하실 수가 있으시다.
다) 사람은 죽으면 부활(復活)ㄹ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 그리고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
“하나님의 말씀은 이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증거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선재성에 관하여서도 결정적인 증언을 하고 있다.
말씀은 거룩하신 존재자이시며 하늘 아버지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신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존재하셨다.
주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언약의 중보자이셨으며 유대인들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이 지상의 모든 민족이 그분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한 분이셨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섰다(요 1:1).
인류와 천사들이 창조되기 이전에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247).

◎ 교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는 것의 의미는 그분이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月 (4월 7일)
<新約의 證言 >
◎ "예수님"의 선재(先在)에 대한 구약(舊約)의 이해는 신약(新約)에서 크게 확대 대었다.
"예수님"께서는 창세전에도 존재 하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하고 참되신 "하나님"으로 계셨다.
(요 1:1참조)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는 사람인체 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육신(肉身)이 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하나님이셨다.(요 1:14)
“저는 만물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롬 9:5)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기초(基礎)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 16:17)

◎ 신약에서는 종종 구원자(救援者)이신 "예수님"의 참된 신성이 예수님자신에 의하여 엄숙하게 선언되어졌다.
또한 베드로가 고백하기를 예수님께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다. (마 16:16, 참조, 막 8:29, 눅 9:20)
바울은 예수님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언급한다. (빌 2:6)
요한은 예수님을 찬양 하면서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요일 5:20)고 고백하고 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네가 말하였느니라.”라고 대답하셨다. (마 26:63-64참조, 막 15:2)
또 다른 때에는 하나님아버지와 자신이 하나라고 말씀하셨으며.(요 10:30), 그가 아브라함보다 먼저 존재하였다고 선언하셨다.(요 8:58)
예수님께서는 그의 대제사장 기도에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언급하신다. (요 17:5)
그 외에도 죄를 용서하셨 다든지 병을 낫게 하실 때(막 2:5-11; 마 9:2-7; 눅 5:20-25에서 또한 그의 제자들이 자신을 믿도록 권고하실 때 자신의 신성에 대한 인식과 결부시키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요 3:13 =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하심
요 8:23 = 예수께서는 자신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위에서 났다고 말씀하심
요 8:58-59 =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신다고 말씀하심
요 17:8, 24 =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함께 계시던 아버지께서 보내셨다고 하심

◎ 교훈: 신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그분이 당신의 선재성을 인식하고 계셨다는 직접 혹은 간접적인 여러 증거들을 발견할 수 있다.

火 (4월 8일)
<明白한 모순처럼 보이는 句節들>
◎ 요한복음 3:16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문제는 만약 예수께서 영원하신 분이시라면 어떻게 그분을 독생자(獨生子)로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처럼 그분도 누군가가 낳았다는 말인가?
‘독생자’라는 말은 헬라어로 모노게네스(monogenes)라는 하나의 단어인데, 신약에 아홉 번 나오며, 그 중에서 다섯 번은 예수님을 지칭한 것으로 모두 요한의 글에 나온다(요 1:14, 18, 3:16, 18, 요일 4:9). 그런데 이 다섯 번의 언급이 그 복음서의 시작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증하려고 애쓴 동일한 기자(記者)인 요한의 글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의 서두에 분명한 핵심을 말하였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유대인인 그가 자신이 피조물이라고 간주하는 누군가에게 이 하나님의 칭호를 사용하였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교과책 28쪽)

◎. 다음 구절들에서 모노게네스(monogenes)가 예수님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사용된 사례들 눅 7:11-15 여기서 모노게네스는 죽은 청년이 과부의 독자임을 강조한 말임
눅 8:41-42 죽어가던 야이로의 딸도 어린 ‘외딸’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음
눅 9:38 예수님께 도움을 청한 사람도 자기의 ‘외아들’을 돌아보아 달라고 함

◎ 죽은 나인 성의 청년을 ‘독자’(그 어머니의 외아들)라고 묘사했다.
여기에 ‘낳았다’라는 개념은 강조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하나뿐인,’ ‘유일한’의 의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야이로의 딸도 ‘외딸’ 즉 모노게네스로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자녀였다. 누가복음 9:38에서도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 교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로 묘사한 것은 그분의 유일성을 강조한 것이다.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확증하려는 요한이 그분을 피조물(被造物)로 간주했을 리가 없다.

水 (4월 9일)
<그리스도의 神性>
◎ 예수그리스도의 신분(身分)
⑴ 태초(太初)부터 존재(存在)하신 분이시다. (요 1:1. 미 5:2) 유 1:24-25) 계 3:14
⑵ 성부(聖父)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시다. (요 1:1)
⑶ 하나님 이신 분이시다. (요 1:1. 빌 2:6) 골 1:14.―17.(관주 참조) 고후 4:4
⑷ 창조주(創造主) 이신 분이시다 (요 1:3) 골 1:14-17

◎ 마 3:3 = 예수님에 관하여 주(야훼)의 길을 예비하라는 예언이 주어졌음
요 1:1 = 예수님을 태초에 계신 말씀 즉 하나님으로 묘사하였음
요 1:18 =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께서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셨음
요 20:28 = 제자 도마가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함

◎ 교훈: 예수님의 제자들과 신약의 기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묘사한 것은
인간적(人間的)인 지혜나 느낌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성령의 영감으로 된 것이었다.

木 (4월 10일)
<더 많은 證據들 >
◎ 전능자(全能者)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들의 몇 가지 기적(奇蹟)들을 예를 들면,
물이 포도주(葡萄酒)로 질(質)이 → 변(變)하고 (요한복음 2:7),
물 위를 걷고 (마태복음 14:25),→ 인간은 자연의 법칙(法則)을 주관할 수 없음
보이는 물체(物體)들을 배가시키고 (요한복음 6:11) →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奇蹟).
눈먼 자를 고치고 (요한복음 9:7),
저는 자를 고치고 (마가복음 2:3),
아픈 자를 치유(治癒)하시고 (마태복음 9:35; 마가복음 1:40-42), 그리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1:43-44; 누가복음 7:11-15; 마가복음 5:35).
게다가 그리스도 자신이 죽음에서 일어나(부활) 섰습니다.

◎ 교훈: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완전히 동등(同等)하신 분이시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그분을 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과 같다.

<초점(焦點)>
1.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세상이 있기 전(前)부터 계신 분으로
하나님이시다.
2.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사람의 모양(模樣)으로 인간을 구원(救援)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과 같은 생애(生涯)살으신 주님을
감사함으로 온전히 경외(敬畏)하고 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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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부록(末尾附錄)>

◎ 예수님의 선재성(先在性)과 그 의미(意味)―→ (추가(追加) 이야기)

◎ “예수 그리스도(Jesus)”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 사 여자에게 나게 하셨다)

[1] 예수님의 신성(神性)은 성경적(聖經的)인가?
☞ ◎ 예수그리스도의 신분(身分)
⑴ 태초(太初)부터 존재(存在)하신 분이시다. (요 1:1. 미 5:2) 유 1:24-25) 계 3:14
⑵ 성부(聖父)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시다. (요 1:1)
⑶ 하나님 이신 분이시다. (요 1:1. 빌 2:6) 골 1:14.―17.(관주 참조) 고후 4:4
⑷ 창조주(創造主) 이신 분이시다 (요 1:3) 골 1:14-17

[2] 예수님 자신이 직접(直接) 언급하기도 했지만 그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지 직접 언급하기도 했지만,
그의 제자(弟子)들도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인정(認定)했습니다.
그들은 죄를 용서할 수 있는 하나님만이 소유한 권한을 예수님에게서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홀로 죄로 인하여 마음 상(傷)해하시고 분노(忿怒)하십니다.
(사도행전 5:31; 골로새서 3:13; cf) 시편 130:4; 예레미야 31:34).
그런데 이 죄에 대하여 예수님 또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審判)하는” 자라고 합니다.
(디모데후서 4:1)
그 밖에 도마는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요한복음 20:28).

바울은 예수님을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디도서 2:13) 라 했고,
성육신 이전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하셨다고 강조합니다. (빌립보서 2:5-8).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히브리서 1:8) 합니다.

요한은 기록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그 밖에도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르치는 성경구절들이 많습니다.
(요한계시록 1:17; 2:8; 22:13; 고린도전서 10:4; 베드로전서 2:6-8; cf) 시편 18:2; 95:1; 베드로전서 5:4; 히브리서 13:20)
그러나 사실 이들 중 단 한 구절만으로도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입증(立證)하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에게는 또한 구약(舊約)의 여호와 (하나님의 예전명칭)에게만 쓰여졌던 칭호가 주어집니다.
구약(舊約)의 “구원자(救援者)” (시편 130:7; 호세아 13:14) 는 신약(新約)의 예수님께도 쓰입니다. (디도서 2:13; 요한계시록 5:9). 또한 예수님은 임마누엘(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마태복음 1장에 있음)로 불립니다.

스가랴 12:10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에 그는 여호와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도 인용됩니다. (요한복음 19:37; 요한계시록 1:7).
여호와가 찔림을 당해 사람들이 바라볼 것이라 했고, 예수님이 찔림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졌다면, 예수님은 여호와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사야 45:22-23을 빌립보서의 2:10-11에 인용하여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또 기도문에 예수님의 이름은 여호와의 이름과 같이 사용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갈라디아서 1:3; 에베소서 1:2).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이 기도는 신성모독(神性冒瀆)이 될 것입니다.
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단수형으로 쓰임)으로 침례(浸禮)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서도 예수의 이름이 여호와의 이름과 함께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28:19; 고린도후서13:14도 보세요.
요한계시록의 요한은 모든 창조된 것들은 그리스도 (어린 양)를 찬양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창조된 것들 중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5:13).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을 예수님이 하십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5:21; 11:38-44),
죄를 용서하시고 (사도행전 5:31; 13:38),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탱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2; 골로새서 1:16-17)
이는 여호와가 홀로 창조하셨다는 사실 (이사야 44:24)을 생각할 때 훨씬 강력해집니다. 게다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고유한 자질을 지닙니다.
예를 들어
영원성(永遠性) (요한복음 8:58),
무소부재(無所不在) (마태복음 18:20, 28:20),
전지(全知)하심 (마태복음 16:21), 전능(全能)하심 (요한복음 11:38-44).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주장의 근거(根據)를 입증(立證)해 보이는 것과
사람들이 그저 믿게 하려고 속이는 것은 완전히 틀립니다.
그리스도는 많은 신성(神性)한 기적(奇蹟)들로 그 증거를 삼으셨고 심지어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그의 몇 가지 기적(奇蹟)들을 예를 들면,
물이 포도주(葡萄酒)로 변(變)하고 (요한복음 2:7),
물 위를 걷고 (마태복음 14:25),
보이는 물체(物體)들을 배가시키고 (요한복음 6:11),
눈먼 자를 고치고 (요한복음 9:7),
저는 자를 고치고 (마가복음 2:3),
아픈 자를 치유하시고 (마태복음 9:35; 마가복음 1:40-42), 그리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1:43-44; 누가복음 7:11-15; 마가복음 5:35).
게다가 그리스도 자신이 죽음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소위 말하는 신화(神話)의 신(神)들이 살고 죽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부활(復活)을 그렇게 비중(比重) 있게 다루지도 않습니다.
또 특별히 문서(文書)로 기록(記錄)해 입증(立證)하려는 노력도 없습니다.

◎ 아래의 최소한 12가지의 역사적 사실(査實)은
비기독교인(非 基督敎人) 비판학자(批判學者)들도 인정(認定)할 것이다.

1. 예수는 십자가(十字架)의 형(刑)으로 죽었다.
2. 그는 무덤에 (바위굴에)묻혔다.
3. 그의 죽음은 제자들을 절망(絶望)시켰고, 모든 소망(所望)을 잃게 했다.
4. 예수의 무덤은 며칠 뒤에 빈 채로 발견되었다.
5. 제자들은 부활(復活)하신 예수님의 실제모습을 경험(經驗)했음을 믿었다.
6. 이 경험 후에 제자들은 의심 많은 자들에서 담대한 증인(證人)으로 변모(變貌)하였다.
7. 부활(復活)의 소식은 초기 교회 설교의 중심이었다.
8. 부활의 소식은 예루살렘에서 선포(宣布)되었다.
9. 이 말씀의 결과로 교회는 새로 태어났고 자라갔다.
10. 회심주의자 야고보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서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다.
11. 기독교도의 대적(對敵)이었던 바울은 특별한 경험(다메섹)을 한 후에,
즉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삶이 완전히 변화했다.
▶ 누구든지 위의 11가지 사항에 이의(異議)를
역사적(歷史的) 근거(根據)로 제시(提示)하지 못할 것이다.
☞ 즉 예수님의 죽음, 장사, 부활 그리고 다시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 15:1-5).
결론적으로 그리스도는 자신이 여호와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하나님 이셨습니다.
(단지 어떤 하나의 신(神)이 아닌 진실로 유일(唯一)하신 하나님).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예수를 믿었고 실제로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리스도는 또한 기적(奇蹟)들을 통해 특히 전 세계를 뒤흔든 부활(復活)을 통해 이 사실을 입증(立證)하셨습니다.
다른 어떤 가설(假說)로도 이 부활을 제대로 설명해 낼 수 없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른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나 예수님이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子女)라면
우리 인간들과 예수님 사이에 어떤 차이(差異)가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은 양자(養子) 된 하나님의 자녀(子女)이고, 예수님은 독생(獨生)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근본(根本)이 다르다는 말이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은 그 이름이 「예수」이다. 이「예수」라는 말은 "여호와는 구원(救援)이시다" 또는 "구원자(救援者)"라는 뜻이다.
자라나신 곳이 나사렛이기에 흔히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는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시다.
근본(根本) 하나님의 본체(本體)이신 그리스도는 자기를 비우고 종(從)의 형체(形體)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빌 2:6-7).
사람이 되셨지만 예수님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는 성품(性稟)을 가지고 계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성품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 예수님의 영원성(永遠性)은 그가 하나님이심을 나타낸다.
사람은 시간(時間)의 제한(制限)을 받으며 시간(時間)속에서 살아간다.
즉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존재(存在)하지 않았을 때가 있고,
태어나서 잠시 살아가지만 또 죽어 없어지는(흙으로 돌아가는) 때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하시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그리스도의 근본(根本)은 "상고(上古)에 태초(太初)에"라고 “미가서”에 예언(豫言)되어 있다(미 5:2).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계셨는데 영원전(永源前), 즉 시간(時間)이 있기도 전부터 계시던 분이다.
즉 예수님은 안 계셨던 때가 없으신 분으로 언제나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 하셨다.
모든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예수님의 족보(族譜)에도
아브라함의 자손(子孫) 예수 그리스도라고 기록되어 있으나(마 1:1) 사실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그리스도께서 존재(存在)하셨다.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계셨을 뿐 아니라 영원전(永源前)부터 계시는 분이다.
예수님보다 여섯 달 먼저 태어난 침례(浸禮) 요한이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요 1:15)고 말하며 예수님의 영원성(永遠性)을 말하고 있다.
언제나 계시지 않은 때가 없으신 분 즉 영원하신 예수님은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신다.
"오직 주는 영존(永存)할 것이요…….
주는 여전하여 연대(年代)가 다함이 없으리라"고 기록되어 있다(히 1:11-12).
알파와 오메가, 즉 처음과 끝이 되시는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계셨고 영원까지 하나님이시다.
어디나 계시는 편재성(偏在性)이 그의 신성(神性)을 증명(證明)한다.
사람은 장소(場所)의 제한(制限)을 받는다.
어느 한 곳에 있으면 다른 장소에는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즉 집에 있으며 동시에 직장에 나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집에 있으며 동시에 직장에 나가 있을 수 없기에 출근(出勤)해야 하고 또 퇴근(退勤)해야 한다.
아주 바쁠 때는 몸을 나누어 동시에 여러 일을 해내고 싶을 때가 있으나
사람으로서는 불가능(不可能)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시지 않는 데가 없다.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右便)에 앉아 계시지만 세상에 사는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승천하시며 하신 말씀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생을 선교사로 지낸 리빙스턴에게 위로와 힘을 공급하였다.
그가 선교사역 중 일시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승리의 비결을 물었다.
리빙스턴은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서 그 약속을 따라 나를 보호해 주셨고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었다고 대답하였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는 곳에 있든지 거기에 늘 함께 계시는 분으로 시간과 공간(空間)을 초월(超越)하여 존재(存在)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 중 제2위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지금 하나님의 보좌우편(寶座右便)에서 성도(聖徒)들을 위해 중보하고 계시지만 성도들이 있는 곳에 늘 함께 계셔서 보호하시며 이끌어 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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