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과 - 돌려드림 -(핵심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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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3-05 23:13 조회3,492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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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돌려드림
(3월 11일 (안) / 일몰: 오후 6시 35분)
<서언(緖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認識)하게 될 때 노년(老年)을 준비하는 삶이 될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 되돌려드리는 것이 합당(合當)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 자체도 하나님의 방법(方法)대로 행하게 될 것이고 올바른 청(聽)지기의 삶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살아있을 때도 충성(忠誠)된 삶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죽은 후에도 하나님의 사업을 돌보는 신실한 청지기로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귀한 모본(模本)이 될 것이다.
(03월05일) (일) <어리석은 부자(富者)>
(Q)~성경(聖經)은 부자(富者)바보에 대하여 재물관(財物觀)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처신(處身)에 대하여 그의 어리석음을 어떻게 책망(責望)하며, 우리의 소유(所有)에 대한 태도(態度)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권면(勸勉)해주십니까? (누가복음12:16~21)
(A)~일을 열심히 하거나 부(富)를 축적(蓄積)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재산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중요(重要)한 것이다. 성경(누가12:16~21)의 부자는 게으르거나 부정직(不正直)하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산과 모든 것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利己的)인 삶에 집착하였고 그 재물을 맡겨주신 분과의 대면(對面)(눅12:19~20)에서 조차 현명(賢明)치 못한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물(財物)에 대한 올바른 견해(見解)를 갖는 다는 것은 재물 자체가 생명을 지키지 못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 존재와 생명을 주장하신다는 것을 권면(勸勉)하시면서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해 끊임없이 활동(活動)하고 봉사(奉仕)하는 아름다운 삶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03월06일) (월)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없음>
(Q)~만일 당신이 오늘 죽는다면 당신의 재산은 어떻게 될 것이며, 당신의 재산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될까요? 성경은 모든 생명체(生命體)는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수가 없다.(시편49: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청(聽)지기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일은 남겨진 재산이 어떻게 사용되도록 미리 준비해야 하는가? (시 49:17, 딤전 6:6, 7, 시 39:11, 약 4:14, 전 2:18~22)
(A)~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이란 것이 알고 보면 참으로 덧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사람이라면 인생을 마칠 무렵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뼈저리게 느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삶에서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을 설계(設計)한 다음 그것을 실천(實踐)에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 후에야 비로소 이런 단어(單語)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해답(解答)이 바로 하나님 안에서의 삶인 것이다. 성경에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인 사람의 대표적(代表的)인 사람이 “나발”(사무엘 상25장)과 “어리석은 부자(富者)”(누가12:16~21)에 대하여 기록(記錄)하고 있다. 이들은 마음에 하나님이 없이 자기 자신(自己自身)만을 위한 이기적(利己的)인 삶을 추구(追求)한 인물(人物)들이다. 우리에게 교훈(敎訓)으로 삼아야 할 말씀이다. 우리는 살아있을 때는 물론이며 죽은 후에도 재산(財産)이 올바르게 분배(分配)되어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해 사용되도록 미리 준비하도록 하자.
(03월07일)(화)<개인적(個人的) 필요(必要)에서부터 시작(始作)하라>
(Q)~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祝福)이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며 하나님의 사업(事業)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잠언 27:23~27)
(A)~대저 재물(財物)은 영영(永永)히 있지 못하나니. (잠27:24)
○. 현재 부유(富裕)하다고 해서 자만(自慢)할 것이 못 된다. 왜냐하면 재물(財物)이란 물거품처럼 날아가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태(懶怠)와 방종(放縱)에 빠지지 말고 재물이나 소득(所得)이 있을 때 잘 관리(管理)하라는 권면(勸勉)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에는 재물(財物)의 관리를 바르게 하고 죽을 때 남은 재물(財物)을 바르게 사용(使用)하도록 하는 재물관리(財物管理)에 관한 올바른 선택(選擇)을 통하여 미리 계획(計劃)해 두어야 할 것이다.
(03월08일) (수) <임종(臨終) 자리에서의 자선행위(慈善行爲)>
(Q)~우리가 가진 물질적(物質的) 축복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正當化)하는 것을 조심(操心)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믿음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準備)한다는 것은 어떠한 행동(行動)과 실천(實踐)이 따라야 할까요?
(A)~돈은 인간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심(慾心) 때문에 끔찍하고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 돈(재물(財物)으로 사단은 유혹(誘惑)의 도구로 삼아 인간들을 파멸(破滅)로 이끌고자 하지만 이를 극복(克服)하는 길은 전적(全的)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依支)할 때 사단의 유혹(誘惑)을 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돈에 소망(所望)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바라보며 영원(永遠)한 것을 위하여 재정관리(財政管理)를 바르게 하는 것이 지혜(智慧)로운 청(聽)지기 될 것이다.
(03월09일) (목) <영적유산(靈的遺産)>
(Q)~위대(偉大)한 영적유산(靈的遺産)이란? 가족과 교회, 그리고 사회 모두에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림으로 위대한 영적유산이 된다는 말씀의 의의(意義)는 무엇일까요? (시 24:1, 히 3:4, 시 50:10, 창 14:19, 골 1:15~17).
(A)~청직(廳直)이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들을 잘 관리하는 것을 의미 하는바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주인이라는 의미(意味)이다. 즉 우리의 모든 것은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 정립(正立)될 때 위대한 영적유산(靈的遺産)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말미부록(末尾附錄)>--------------------
제10과 돌려드림
(3월 11일 (안) / 일몰: 오후 6시 35분)
<기억절(記憶節)>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서언(緖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認識)하게 될 때 노년(老年)을 준비하는 삶이 될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 되돌려드리는 것이 합당(合當)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 자체도 하나님의 방법(方法)대로 행하게 될 것이고 올바른 청(聽)지기의 삶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살아있을 때도 충성(忠誠)된 삶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죽은 후에도 하나님의 사업을 돌보는 신실한 청지기로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귀한 모본(模本)이 될 것이다.
(03월05일) (일) <어리석은 부자(富者)>
(Q)~성경(聖經)은 부자(富者)바보에 대하여 재물관(財物觀)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처신(處身)에 대하여 그의 어리석음을 어떻게 책망(責望)하며, 우리의 소유(所有)에 대한 태도(態度)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권면(勸勉)해주십니까? (누가복음12:16~21)
(A)~일을 열심히 하거나 부(富)를 축적(蓄積)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재산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중요(重要)한 것이다. 성경(누가12:16~21)의 부자는 게으르거나 부정직(不正直)하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산과 모든 것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利己的)인 삶에 집착하였고 그 재물을 맡겨주신 분과의 대면(對面)(눅12:19~20)에서 조차 현명(賢明)치 못한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물(財物)에 대한 올바른 견해(見解)를 갖는 다는 것은 재물 자체가 생명을 지키지 못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 존재와 생명을 주장하신다는 것을 권면(勸勉)하시면서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해 끊임없이 활동(活動)하고 봉사(奉仕)하는 아름다운 삶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한 부자(富者)가 소출(所出)이 … 풍성(豊盛)하매.
예수께서는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는 것을 예증하기 위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여기서는 그가 부자였다는 간단한 사실만 언급될 뿐 부 자체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부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시켰다고 굳이 해석할 필요는 없다. 아마 그는 무절제나 방황에 빠지지 않고 오직 재물 모으는 일에만 전심전력(全心全力)하였는지 모른다.어쨌든 그가 재산의 노예로 보일 정도로 물질에 짐착하였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눅 12:16~21, 만나주석)
○. 영혼(靈魂)아 …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의 총체적 실존이 지향하는 삶의 자세는 물질에 의존하여 물질로 말미암아 쾌락을 즐기는 것일 뿐 진리를 추구하는 의미의 문제나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이나 그에게 풍성한 소출을 허락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피땀 흘려 부를 축적한 자에게 있어 그 부를 이용하여 안락하고 풍족한 세월을 구가해 보고자 하는 보상 심리는 본능적 욕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인생이라는 존재 자체가 흘러가는 구름처럼 덧없는 것임을 자각했어야 옳았다(사 51:6).(눅 12:16~21, 만나주석)
○. 어리석은 자여.
자신의 삶에 대해용의 주도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부자에게(18,19절)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하신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아프론)는 ‘정신없는 자’,’무분별한 자’라는 뜻이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이 생명의 근본이심을 거부한 사람을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했다(시 14:1) 이러한 물질주의적 가치관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뿌리가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를 부인하다시피 하는 유물론(唯物論)에 박혀 있음은 물론이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중시되는 소위 개인의 자유 역시 오직 자본 곧 물질을 확보하는 일에 집착되어가는 경향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물질이냐 영혼이냐 세속주의냐 하나님 중심주의냐 하는 이 근본적인 가치 선택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논제임에 분명하다.(눅 12:16~21, 만나주석)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부자는 ‘여러 해’를 계획했으나 하나님은 ‘오늘 밤’에 그의 영혼을 가져갈 것이다. ‘오늘 밤’은 그의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감을 강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재물은 그의 생명을 단 하룻밤도 지속시키는 힘을 갖지 못한다. 여기서 ‘영혼’은 생명을 뜻하고 ‘도로 찾으리니’는 인간의 생명이란 하나님께 대여 받은 것으로 언젠가는 되돌려져야함을 말해주며 생명에 관한한 하나님이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눅 12:16~21, 만나주석)
○. 자기를 위하여 … 부요(富饒)치 못한 자.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부유함과 하나님께 대한 빈곤을 대비시킴으로써 부자의 삶의 목표가 어디에 두어져야 하는가를 강조한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고(33절, 마6:20),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이다(마25:31-46).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생명과 재물이 하나님께 근거한 것임을 알고 겸손히 봉사해야 한다는 청지기 의식을 가질 때에만 가능하다(벧전 4:10). (눅 12:16~21, 만나주석)
○.하나님께 대하여.
즉 하나님이 보기에. “어리석은 자”에게는 하늘에 쌓아둔 보물이 없다. (참조 마 6:19~23 주석).” (눅 12:16~21, 재림교주석)
(03월06일) (월)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없음>
(Q)~만일 당신이 오늘 죽는다면 당신의 재산은 어떻게 될 것이며, 당신의 재산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될까요? 성경은 모든 생명체(生命體)는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수가 없다.(시편49: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청(聽)지기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일은 남겨진 재산이 어떻게 사용되도록 미리 준비해야 하는가? (시 49:17, 딤전 6:6, 7, 시 39:11, 약 4:14, 전 2:18~22)
(A)~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이란 것이 알고 보면 참으로 덧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사람이라면 인생을 마칠 무렵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뼈저리게 느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삶에서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을 설계(設計)한 다음 그것을 실천(實踐)에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 후에야 비로소 이런 단어(單語)를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해답(解答)이 바로 하나님 안에서의 삶인 것이다. 성경에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인 사람의 대표적(代表的)인 사람이 “나발”(사무엘 상25장)과 “어리석은 부자(富者)”(누가12:16~21)에 대하여 기록(記錄)하고 있다. 이들은 마음에 하나님이 없이 자기 자신(自己自身)만을 위한 이기적(利己的)인 삶을 추구(追求)한 인물(人物)들이다. 우리에게 교훈(敎訓)으로 삼아야 할 말씀이다. 우리는 살아있을 때는 물론이며 죽은 후에도 재산(財産)이 올바르게 분배(分配)되어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해 사용되도록 미리 준비하도록 하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여기서 바울은 물질적 소유의 일시적인 성격을 예시한다. 영적인 것 그리고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만이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다(참조 마 6:20 주석; 욥 1:21).” (딤전 6:6~7, 재림교주석)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아 헤 조에 휘문’은 문자적으로 ‘너희 생명이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라는 의미이다. ‘무엇’으로 번역된 헬라어 ‘포이아’은 ‘어떤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인간의 생명이 지니고 있는 한계성(限界性)을 시사한다(Tasker, Robertson). 한편 ‘안개’의 헬라어 ‘아트미스’은 ‘증기’ 혹은 ‘호흡’을 의미하지만 본 절에서의 의미는 ‘생의 무가치성과 유한성’이다(Adamson). 본문은 짙게 깔린 안개가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는 것과 같이 인간의 생명이 덧없고 짧다는 점을 들어 헛된 인간의 욕망에 집착하여 확신하는 자들의 모든 생각과 행위가 헛된 것임을 암시한다(욥 7:7, 13:25, 14:2, 사 40:6,7).” (약 4:14, 만나주석)
○.어떤 사람은 … 해로다.
본 절 역시 솔로몬 자신이 수고하고 애쓴 결과를 그 자신이 누리지 못하고 그 후예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한탄을 나타낸 18,19절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것이다. 여기서 ‘업’의 히브리어 ‘헬르코’은 10절의 ‘분복’이란 말과 같다. (전 2:18~22, 만나주석)
○.향유할 만한 영구적인 결과나 보상이 무엇인가?
예상되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얻은 것은 쏟은 수고에 상응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전 2:18~22, 재림교주석)
(03월07일)(화)<개인적(個人的) 필요(必要)에서부터 시작(始作)하라>
(Q)~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祝福)이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며 하나님의 사업(事業)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잠언 27:23~27)
(A)~대저 재물(財物)은 영영(永永)히 있지 못하나니. (잠27:24)
○. 현재 부유(富裕)하다고 해서 자만(自慢)할 것이 못 된다. 왜냐하면 재물(財物)이란 물거품처럼 날아가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태(懶怠)와 방종(放縱)에 빠지지 말고 재물이나 소득(所得)이 있을 때 잘 관리(管理)하라는 권면(勸勉)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에는 재물(財物)의 관리를 바르게 하고 죽을 때 남은 재물(財物)을 바르게 사용(使用)하도록 하는 재물관리(財物管理)에 관한 올바른 선택(選擇)을 통하여 미리 계획(計劃)해 두어야 할 것이다.
○. 풀을 벤 후에는 새로 움이 돋나니 (잠27:25).
땅이 규칙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소산물을 내놓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여기 ‘풀’은 ‘데쉐’으로서 사라져 버리거나 곧 떠나버릴 물질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본 절에서 우리는 재물이나 지위를 누리는 자의 일시적 기쁨과 대비되는, 농부가 누릴 지속적인 기쁨을 연상케 된다. 계절이 바뀜에 따라 산야(山野)의 형편이 달라지는 것을 관심 깊게 주시하고 그 대책을 세우기만 한다면 농부는 지속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잠 27:25, 만나주석)
○. 부지런함에 대한 권고(勸告) (잠언 27:23-27)
[Ⅰ] 우리 직업에 게을리 하지 말도록 하라는 권고(勸告)
이 말씀은 농부(農夫)와 목자(牧者)가 가축(家畜)을 돌보는 자들을 가리키고 있으나, 딴 모든 정당한 직업(職業)에도 확대하고 적용할 수 있다. 집 안이나 집 밖에서의 일이나, 우리의 생업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거기 전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권고가 암시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할 일을 가져야 하며 게을리 살아서는 안 된다.
⑵. 우리의 일을 올바로 그리고 완전히 이해해야 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어야 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에는 손대지 말아야 한다.
⑶. 우리는 직접 그 일에 주목하고 있어야 하며 그 일에 대한 온갖 보살핌을 남에게 미루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눈으로 "우리 양떼의 형편"을 관찰해야 한다. 양떼를 살찌게 하는 것은 바로 주인의 눈인 것이다.
⑷. 우리는 일 처리에 신중하고 분별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일의 "형편을 살피며" 거기 "마음을 두어서," 아무런 손실이 없도록 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며 만사를 제때에 질서 정연히 처리하여 최상의 이익을 얻도록 활용해야 한다.
⑸. 우리는 "부지런해야"하며 수고를 해야 한다. 앉아서 궁리도 해야 하지만 서서 행동하기도 해야 한다. "보살피는 자답게 마음을 네 소떼에 두라. 네 손을 네 사업에 두고 분골쇄신(粉骨碎身)하라."
[Ⅱ]. 이 권고를 보다 강하게 뒷받침하는 이유.
1. 세상 재물의 불확실성. "대저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느니라."(24절).
(1) 딴 재물은 이들 가축만큼 지속성이 없다. "네 양ㄸ와 소떼에 마음을 두며 농촌에 있는 재산과 가축에 정성을 들여라. 이들은 농경 사회의 주요한 제화로서 상속을 통해 영구적으로 소유된다." 이에 반해 상업으로 얻는 재산이나 상품은 그렇지 못하다. "면류관" 조차도 양떼나 소떼보다 더 확실성이 없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2) 이런 재물조차 잘 돌보지 않는다면 없어질 것이다. 사람이 소위 큰 "승원"을 소유하면서도 게으르고 사치하면 그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잠 27:23~27, 매튜헨리)
○.(1) 양식과 의복이 있고 누구에게든 줄 돈이 있으면 우리의 소유는 족한 셈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만족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감사해야 한다.
(2) 가장은 자기뿐만 아니라 가족한테도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야 하며, 자기 밑에 있는 사용자들도 적당한 생계를 영위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어야 한다.
(3) 간소한 음식과 수수한 의복일망정 먹고 입는 데 무리가 없기만 하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 "네가 네 양 새끼의 털로 집에서 짠 옷을 입고 네 염소의 젖을 먹는다면 다행으로 여겨라. 네 집 사람의 식물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는 그것으로 네 음식을 삼아라. 멀리 가서 비싸게 주고 산 별미를 원하지 말라."
(4) 우리의 일이 가족의 부양에 충분한 것을 제공하리라는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일에 마음을 기울이고 부지런히 종사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즉 우리는 "우리 손이 수고한 것을 먹게" 될 것이다. (잠 27:23~27, 매튜헨리)
(03월08일) (수) <임종(臨終) 자리에서의 자선행위(慈善行爲)>
(Q)~우리가 가진 물질적(物質的) 축복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正當化)하는 것을 조심(操心)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믿음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準備)한다는 것은 어떠한 행동(行動)과 실천(實踐)이 따라야 할까요?
(A)~돈은 인간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심(慾心) 때문에 끔찍하고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 돈(재물(財物)으로 사단은 유혹(誘惑)의 도구로 삼아 인간들을 파멸(破滅)로 이끌고자 하지만 이를 극복(克服)하는 길은 전적(全的)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依支)할 때 사단의 유혹(誘惑)을 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돈에 소망(所望)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바라보며 영원(永遠)한 것을 위하여 재정관리(財政管理)를 바르게 하는 것이 지혜(智慧)로운 청(聽)지기 될 것이다.
○.<자선행위(慈善行爲)는 죽음도 막아낸다.>
▷.이 말은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가 가진 걸 이웃과 나눌 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실 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신앙심(信仰心)이 깊은 한 남자가 아내의 임종(臨終)을 지켜보는 자리에서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내일은 안식일(安息日)이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을 초대(招待)하여 우리와 함께 안식일 저녁 식사를 들도록 해라” 아들은 아버지가 말한 대로 했지만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인데 아버지는 어떻게 이런 시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할 생각을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시키는 그대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에 어머니가 돌아 가셨습니다.
▷.아들이 이튼 날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제 아버지께서 안식일 저녁 식사를 가난한 사람과 함께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정말 화가 났어요, 그런데 자선행위(慈善行爲)는 죽음도 막아낸다는 성경구절(聖經句節)이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살려내려고 그러신다는 걸 깨달았어요. 슬퍼하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아들아, 자선행위(慈善行爲)로 살려내는 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이나 우리 자신의 목숨이 아니란다.
▷.나는 네 엄마의 죽음을 막으려고 그런 게 아니었다. 하나님의 죽음을 막으려고 그런 거야, 관대(寬待)하고 친절(親切)한 행위(行爲)가 아니고선 하나님의 죽음을 막아낼 수가 없거든” (누가복음 12:33) “너희 가진 것을 팔아 자선(慈善)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寶物)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니지도 못하고 좀이 쓸지도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재물(財物)을 쓰는 걸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좀 더 정의(定義)롭고 공평(公平)하고 평등(平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진 재물(財物)을 쓰는 걸 바라고 계십니다.
○.현세적(現世的)인 일들이 우리의 모든 주의력(注意力)을 사로잡지 못하게 해야 하며, 우리의 사상(思想)들이 아주 땅에 속한 것들과 땅의 것이 될 때까지 우리의 마음을 빼앗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늘의 통로(通路) 안에서 생각하고, 영적(靈的)인 시력(視力)으로만 보이는 보이지 않는 것들, 영원한 것들을 묵상(黙想)하도록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훈련하고, 연단(鍊鍛)하고, 교육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그분을 봄으로써 우리는 마음에 힘을 얻고 영의 활력을 얻게 된다. (사인즈 1893. 1. 9). (고후 4:18, 화잇주석)
○.(롬6:17) 체질하는 도구(사 8:12 참조)
세상은 교회를 체질하고 교인들의 순수성(純粹性)을 시험(試驗)하는 도구(道具)이다. 세상은 유혹물(誘惑物)들을 내밀고 서 있다. 신자(信者)들이 그것들을 받아들이면 그것들은 신자들의 생애가 그들의 신앙고백(信仰告白)과 조화(調和)되지 않는 곳에 처하게 한다. …
○.만약 우리가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면 세상은 우리와 심한 마찰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매 계단마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대항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모든 세력들을 대항하면서 우리의 길을 강행해야 할 것이다. 땅의 권세가 개입할 것이다. 우리는 고초를 겪을 것이며, 마음에 상처를 입을 것이며, 거친 말과 조롱과 박해를 당할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해야 따를 수 있는 관습과 법률을 따르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생명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십자가를 보게 될 것이다(원고 3, 1885).
○.세상을 잡아당기는 모든 넝쿨손들을 잘라 버리라. (골 3:2)(잠 1:10; 롬 6:1-4 참조)
믿노라고 고백하는 신자들 중에는 땅바닥에 길게 늘어뜨려져서 길에 있는 나무뿌리들과 잡다한 쓰레기들을 그 넝쿨 손으로 감싸쥐고 있는 포도나무로 잘 대표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기별이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영광을 얻으려면 충족시켜야 되는 조건들이 있다. 세상과의 관계를 끊어야 하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애정을 빼앗아가는 것들에다 손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최선의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의 애정을 하나님께 두고 하늘 사물에다 두자. 땅에 있는 것을 붙잡고 있는 우리의 넝쿨손들을 모두 다 잘라 버려야 한다. (리뷰 1900. 1. 2). (고후 6:17~18, 화잇주석)
○.(잠언30:8) “허탄(虛誕)”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두 가지 요구(要求)의 서술(敍述)순서가 의미심장(意味深長)하다. 지혜자(智慧者)인 저자(著者)는 인간의 물질적(物質的)인 면보다 정신적(精神的)인 면을 중시(重視)하고 있는 것이다. ‘허탄(虛誕)’은 모든 거짓된 모습, 거짓된 행복의 외양(外樣)들, 헛된 기대(期待)들을 가리키며 ‘거짓말’은 모든 속임수, 겉치레, 지키지 못할 약속(約束)등을 가리킨다. (잠 30:8, 만나주석)
○.(고후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永遠)함이니라.
여기서 ‘돌아보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코페오’은 ‘주목(注目)하다’, ‘소망(所望)하다’의 뜻이다.
바울과 성도들이 소망하는 것은 이 세대의 물질적(物質的)인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영적(靈的)인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보이는 것을 일시적(一時的)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묘사(描寫)하고 자신이 후자를 바란다고 했을 때, 그것은 물질과 영, 현실과 이상에 대한 이원론적(二元論的) 구별을 말하는 것으로서 육체적(肉體的)이고 감각적(感覺的)인 것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만약 육체적인 것이 무의미(無意味)하다면 그가 당한 육체적(肉體的) 고통(苦痛)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무런 유익(有益)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자기가 당하는 고난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이 된다고 하였다(1:6). 다만 바울이 말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며 결국 없어질 것에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종말론적(終末論的) 구원(救援)의 날에 도래(到來)할 그 영원한 세계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미 보며, 미래의 종말론적(終末論的)인 것을 이미 현재적(現在的)인 것으로 누리고 있다. 그것은 그가 믿음을 가지고 보기 때문이다(히 11:1). 이런 바울의 모습은 유한한 육체를 입고 환난(患難)이 현존(現存)하는 이 세대에 살고 있지만 이미 주의 영(靈)으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누리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영적(靈的) 실존의 한 모범이며, 마찬가지로 어떤 성도(聖徒)라도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바울과 동일한 영적 실존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후 4:18, 만나주석)
○.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
바울은 이제 이생의 고통(苦痛)을 바른 관점(觀點)에서 보는 법과 그것들이 일시적인 결과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법을 설명한다. 그의 시선(視線)은 영원한 왕국의 영광(榮光)에 고정(固定)돼 있었다(참조 히 12:2). 마음을 어떤 것에 고정시켜 주목하는지에 따라 시련(試鍊)을 소망(所望)과 인내(忍耐)로 감내(堪耐)할지 혹은 불만과 괴로움으로 맞이할지가 결정된다. 영원한 세계의 보이지 않는 사물(빌 4:8), 즉 그리스도의 영적(靈的) 실재(實在)를 숙고(熟考)할 때 전자(前者)처럼 반응(反應)하게 되는 반면에, 부(富)와 쾌락(快樂)과 명성(名聲)같이 볼 수 있는 일시적인 것을 바라볼 때 후자(後者)처럼 반응하게 된다. 마음을 그리스도의 품성(稟性)과 생애(生涯)에 고정(固定)하면 우리도 그분과 같이 된다(참조 히 11:10, 26, 27, 39, 40; 벧전 1:11). (고후 4:18, 재림교주석)
(03월09일) (목) <영적유산(靈的遺産)>
(Q)~위대(偉大)한 영적유산(靈的遺産)이란? 가족과 교회, 그리고 사회 모두에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림으로 위대한 영적유산이 된다는 말씀의 의의(意義)는 무엇일까요? (시 24:1, 히 3:4, 시 50:10, 창 14:19, 골 1:15~17).
(A)~청직(廳直)이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들을 잘 관리하는 것을 의미 하는바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주인이라는 의미(意味)이다. 즉 우리의 모든 것은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 정립(正立)될 때 위대한 영적유산(靈的遺産)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는 많은 유익(有益)이 있다. (교과 참조 144~145p)
그중 몇 가지를 소개(紹介)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기부(寄附)하는 사람이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것의 결과를 살아 있는 동안 볼 수 있다.
2. 기부(寄附)를 받는 사역 단체나 사람이 가장 필요한 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3. 죽은 후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남은 재산(財産) 때문에 다툴 일이 없다.
4. 남은 가족들에게 너그러운 마음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좋은 모본을 남길 수 있다.
5. 상속세(相續稅)를 최소화(最小化)할 수 있다.
6. 누구의 방해(妨害)도 받지 않고 기부(寄附)하고자 하는 곳을 지정해서 기부할 수 있다.
7. 하늘에 보화(寶貨)를 쌓아 두게 된다.
○.<땅과…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하나님은 온 땅의 창조주(創造主)이며 주인(主人)이기 때문에 땅과 거기에 속한 모든 것과 거기에 거하는 모든 거민(居民)에 대한 소유권(所有權)을 갖고 있다. 이 같은 개념(槪念)은 유대인이나 이방인(異邦人)에 대한 배타성(排他性)을 완전히 부정(否定)한다. 이 절은 후반부(後半部)가 전반부(前半部)의 사상을 비교하고 반복하고 확대하는 동의대구법의 완벽한 실례이다. (시 24:1, 재림교주석)
○.<하나님의 왕국(王國) (시편 24:1,2)>
우리의 운명(運命)이 결정(決定)된 이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絶對的)인 소유권(所有權)(1절). 우리는 오직 하늘만이, 그리고 저 윗 세상에 있는 무수하고 찬란(燦爛)한 거주자(居住者)들이 여호와의 것이고, 이 세상은 창조의 매우 작고 보잘 것 없는 부분이며 위에 있는 고귀한 보좌(寶座)와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소홀히 여기시고 그것에 대한 권리(權利)를 주장하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땅조차도, 이 아래 세상도 그의 것인 것이다. 비록 하늘에 그의 영광의 보좌를 마련해 놓으셨을지라도, 그의 나라는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그리고 이 땅에 있는 벌레들까지도 그의 인자(仁慈)하심이나 다스림에서 제외(除外)되지 않는다. (시 24:1, 매튜헨리)
○. “온 세상의 소유자(所有者)이며 통치자(統治者)이신 여호와를 노래함으로 본시가 시작되고 있다.
땅과 거기 충만(充滿)한 것. ‘거기 충만한 것’이란 땅을 구성(構成)하고 있는 내용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물질세계(物質世界)를 지시(指示)하는 말이다(Kraus). 여기에는 무생물(無生物) 뿐 아니라 모든 생물이 포함될 것이다.
세계와 그중에 거하는 자. ‘세계(世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벧’은 생존가능(生存可能)한 땅, 곧 생산력(生産力) 있는 토지(土地)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이는 창조시 혼란한 바다에서부터 육지를 분리시킨 하나님의 전능하신 사역으로 말미암아 형성되었다(창 1:9). 그리고 ‘그 중에 거하는 자’는 모든 생물체들을 의미하며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기초(基礎)한다. (시 24:1, 만나주석)
○.모든 피조물(被造物)이 다 하나님의 소유인데 그가 지음 받은 사람으로부터 예물(禮物)을 받으실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시 50:10, 재림교주석)
○.만물(萬物)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이는 다소 철학적(哲學的)인 표현일 수 있으나 그리스도는 만물의 통일(統一)의 원리(原理)이며 모든 창조물을 유지(維持)하는 분임을 말해준다. 그리스도는 온 우주(宇宙)에 혼돈(混沌) 대신 조화(調和)를 가져다주는 응집(凝集)의 원리(原理)이신 것이다(Lightfoot). 이것은 단지그리스도가 피조(被造)된 세계의 외적질서(外的秩序)의 중심(中心)이 되심을 언급(言及)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모든 만물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할 때 본질적(本質的) ‘의미(意味)’를 갖는다는 뜻이 함축(含蓄)되어 있다.” (골 1:15~17, 만나주석)
○. “본래(本來)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形像)”인 예수가 하나님을 사람에게 드러내기 위해 왔다. (참조 요 1:18 주석).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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