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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길을 보여주는 표적들(질문, 대답, 설명) 1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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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9-27 09:46 조회2,1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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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길을 보여주는 표적들

(10월 5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9분)

 

연구 범위: 요 2:1-11; 4:46-54; 5:1-16; 막 3:22, 23; 마 12:9-14; 요 5:16-47

 

기억절: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 31).

 

요한은 왜 복음서를 기록했는가? 예수의 이적이나 특정한 가르침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가? 그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인가?

성령의 인도하심과 감동을 통해 요한은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 기록할 내용이 더 많지만(요 21:25), 이것을 기록한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요 20:31)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이번 주는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일부터 시작해 몹시 위급했던 어떤 이의 아들을 건강하게 회복하신 일 그리고 베데스다 못가에서 병자를 고치신 일까지 예수님의 초기 기적 중 몇 가지에 대한 요한의 기록을 살펴볼 것이다.

요한은 이러한 기적을 “표적”이라고 부른다. 표적은 예수께서 메시아시라는 더 깊은 실체를 가리키는 기적적인 사건을 말한다. 이 모든 기록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모범은 우리도 같은 선택을 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학습 목표

깨닫기: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은 그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이심을 말해준다. 

느끼기: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게하는 것은 표적이 아니라 믿음이다. 

행하기: 믿음을 가지고 표적을 보면서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신뢰한다. 

 

TMI 위로

2. 예수님은 어떤 방식으로 모세가 예언한 선지자가 당신인 것을 보여 주셨습니까?(신 18:15)

*답: 표적을 행하시고 그것을 설명하셔서 보여주셨다.

3. 예수께서 왕의 신하의 간청을 거절하신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요 4:48) 

*답: 그의 믿음을 스스로 확인하도록 하신 것이다.

4. 낫기를 원하는지 물을 때에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반응할 수도 있습니까?(요 5:6)

*답: 워낙 병이 오래되어서요. 

5. 유대인들은 어떤 생각으로 병자를 낫게 하신 예수님을 핍박하였습니까?(요 5:16)

*답: 안식일에 일한다는 이유와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신 말씀으로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6. 예수님은 안식일을 주신 분인데, 왜 자신은 안식일에 일한다고 말씀하십니까?(요 5:17)

*답: 그분은 안식일에 당신이 하실 일을 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었다.

7.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가 나을 수 있었던 중요한 비결은 무엇에 있었습니까? 

*답: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곧 순종했다.

 

결론: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 이름을 힙입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했다. 이를 위해 요한은 예수님은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이시며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라는 표적을 보여준다. 기적은 우리의 믿음을 돕는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게 하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다. 증거가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그것을 받지 않는다. 

 

9월 29일(일) 가나의 혼인잔치

 

요한복음 2:1-11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가나에서 어떤 표적을 행하셨는가?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가?

[요2:1~1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답: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즙을 만들었다. 제자들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신 분이심을 믿었다.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기적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증거가 되었다. 그 일은 분명 그분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강력한 표적이었다. 하지만 아마도 제자들은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였고, 많은 “표적과 기사”(신 6:22, 26:8)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그는 그들의 “구원자”였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와 같은 선지자가 올 것이라고 예언하시며 이스라엘에게 오시는 이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다(신 18:15, 마 17:5, 행 7:37).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 예수님은 요한복음 2장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구원받았던 일을 생각하게 하는 첫째 표적을 행하셨다.

애굽인들에게 나일강은 생명의 젖줄이며 신으로 여겨졌다. 애굽에 내린 첫째 재앙은 나일강을 향하였고, 그 물을 피로 바꾸었다. 예수님은 가나에서 비슷한 기적을 행하셨지만, 물을 피로 바꾸는 대신 포도주로 바꾸셨다.

그 물은 유대교 의식에서 정결 예식을 위해 사용되는 여섯 개의 물항아리에 담겨 있던 것으로, 이 기적을 성경의 구원 주제와 더욱 밀접하게 연결시킨다. 요한은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에 출애굽 사건을 연상시키는 세부사항을 함께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자로 가리키고 있다.

연회장은 예수님이 주신 발효되지 않은 포도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는 실제로 음료의 품질에 놀랐고,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몰랐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좋은 것을 마지막을 위해 남겨 두었다고 생각했다.

헬라어 오이노스(oinos)는 신선한 포도즙과 발효된 포도주 모두를 일컫는데 사용할 수 있다(SDA 성경 사전, 1177). 엘렌 화잇은 예수님의 기적에 의해 만들어진 음료는 술이 아니었다고 말한다(시대의 소망, 149). 의심할 여지 없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들은 그가 행하신 기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교훈> 예수님은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이시며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라는 사실을 볼 수 있게 하셨다. 

 

<부가설명> 저자는 물로 포도즙을 만든 표적을 나일강물이 피가 되게 한 모세의 이적에 연결하여 예수께서 물로 포도즙을 만드신 것처럼 자신의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피로 사람들이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을 암시하셨다고 설명한다. 아주 복음적 설명이라는 그 자체가 생명의 은혜가 된다.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 직전에 유월절 잔치에서 만찬을 잡수실 때 포도즙을 들고 이것은 예수님의 피로 맺는 새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포도즙을 마실 때까지 이 세상에서는 더는 포도에서 난 것을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포도즙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도록 하는 믿는자들과 맺는 언약의 선언인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 이런 행사로 예수님은 포도즙과 예수님의 피와 새언약을 연결시켜 복을 깨닫게 하셨다. 혼인집에 이 표적을 행하신 것은 예수님의 새언약의 피로 그분을 믿는 사람들이 다 예수님의 신부가 된다는 것을 암시하신 것이다. 그래서 애굽같은 죄의 세상에서 새 생명을 얻어 하늘로 시집가는 교회를 나타내셨다. 그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늘 포도즙을 마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9월 30일(월) 갈릴리에서의 두 번째 표적

 

예수님은 모든 지상 사역 동안 사람들이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돕는 표적을 행하셨고, 다른 이와 우리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그것을 기록했다. 

 

요한복음 4:46-54을 읽어 보라. 여기서 왜 혼인 잔치의 기적을 다시 언급하고 있는가?

[요4:46~54]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답: 이 왕의 신하도 표적과 관련하여 예수님을 믿었다. 요한이 혼인잔치 사건을 다시 말한 것도 표적이 예수님이 어떤분이심을 믿게 하는 표가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요한은 갈릴리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을 설명하면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행하신 첫 번째 표적을 다시 언급한다.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말하고 있다고 증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다음 요한은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요 4:54)라고 덧붙인다.

언뜻 보면 왕의 신하의 간청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가혹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관리는 아들의 치료를 예수님을 믿는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읽으시고 아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병보다 더 심각한 영적 질병을 정확히 찾아내셨다. 마른하늘에 번개가 치는 것처럼 갑자기 이 남자는 자신의 영적 결핍이 아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다고 해서 그분이 메시아인 것은 아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기적을 행하는 사람 중 일부는 참 선지자였지만 거짓 선지자들도 있었다. 기적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음을 보여주지만 모든 기적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사탄도 기적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관리는 고뇌 가운데 자신을 예수님의 자비에 맡기며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청한다. 예수님은 그를 안심시키시며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요 4:50)고 하셨다. 

본문의 헬라어 “살았다”(개역)의 동사는 사실 현재 시제로 쓰여 있다. 이 용법은 '미래적 현재형(futuristic present)'으로서 미래의 사건을 마치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그 남자는 예수님을 믿고서 서두르는 대신 여유있게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바로 그 순간에 아들에게서 열병이 사라졌음을 확인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얼마나 강력한 이유인가!

 

<교훈>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기적을 행하시지만, 기적이 믿음의 조건이 될 수 없다. 관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그분께서 아들을 고쳐주신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부가설명> 요즘은 그런 사건이 종종 있는 것 같으나, 보편적으로는 자녀가 부모에게 자기의 친부모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보이라고 요구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믿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모양이다. 이것을 쉽게 찾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성경에 족보를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6,27). 사람을 한 혈통으로 만드신 것은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배려다. 자녀가 부모를 당연히 부모로 믿는 것처럼 그렇게 믿을 수 있는 합리적 문헌으로 제시한 것이 족보다. 더듬어보면 조상이 바로 자기 안에 있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인류는 그것을 모른다. 세상은 창조주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본질적인 죄다. 결국 창조주는 없다는 사상이 무의식 중에 보편화되어버린 것이다. 사탄은 참으로 교묘하게 공작하고 대단히 성공한 것 같다. 그러나 창조가 확실한 것이 드러날 때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는 모든 존재는 그 존재를 창조주께 반납해야 할 것이다.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창조되지 않은 상태로 돌릴 것이다. 

 

10월 1일(화) 베데스다 연못의 표적

 

요한이 기록한 다음 표적은 베데스다 못에서 일어났다(요 5:1-9). 사람들은 천사가 물을 움직이게 한 후 가장 먼저 물에 들어가면 어떤 병자든지 나음을 얻는다고 믿었다. 그 결과, 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들어가서 병을 치료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로 연못 입구는 늘 북적였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연못을 지나실 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군중을 보셨다.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었겠는가! 병으로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치료를 기대하며, 결코 오지 않을 기회를 잡기 위해 못가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5:1-9을 읽어 보라. 그곳 사람들은 분명히 낫기를 원하기 때문에 물가에 모여 있었는데, 예수님은 왜 마비된 사람에게 낫기를 원하는지 물으셨는가?(요 5:6) 

[요5:1~9]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답: 그의 진정한 소원을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너무 많지 않은가?

 

질병에 오랫동안 시달리다 보면 아픈 것이 일상이 된다.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질병의 고통에 익숙해지다 보면 그런 상황에서 회복될 수 있으리라고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의 대답은 그가 치유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자신의 다리를 만드신 분이 바로 눈앞에 서 있는데도 그가 엉뚱한 곳에서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치유를 받은 후에야 예수님이 참으로 놀라운 분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겠지만 그 순간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분이 어떤 분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이 고통받는 사람에게 당신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는 단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만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사람의 믿음은 그 말씀을 굳게 붙잡는다. 모든 신경과 근육이 새로운 생명으로 전율하고, 무력하던 팔다리가 힘있게 움직인다. 

그가 의심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자기의 뜻을 정하자 그의 모든 근육이 그의 의지에 반응한다. 두 발을 힘차게 내딛으며 그는 자신에게 활력이 돌아왔음을 느낀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도움에 대한 아무런 보증도 그에게 주지 않으셨다. 그 사람은 멈추어 의심하여 나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었으며 그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함으로 힘을 얻었다"(시대의 소망, 202).

 

<교훈> 사람에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모두가 그것을 기대하고 믿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나음을 바라고 예수를 믿음으로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다.  

 

<부가설명> 묵상의 내용은 요한복음 9장에 나면서 소경된 사람을 두고 제자들이 질문한 것과 같은 성질이다. 죄와 고통과 사망은 죄가 몰고온 죄와 사망의 하수인들이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은 질병과 고통이 사망 자체의 성질이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질병을 앓는 모든 사람이 그의 어떤 죄의 결과는 아니다. 각자가 건강관리를 바르게 하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고 불가항력적으로 감염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모든 것에서 해방될 수 있는 세상을 회복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환자들을 치료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이적들은 사망과 질병과 고통이 없는 세상을 만드실 것을 맛보여주신 사실들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을 때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으로 회복하실 것이다. 그날이 이를 때까지 세상은 고통과 질병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병이 들어도 예수님을 믿고 치료해주셔도 예수님을 믿고 생활할 줄 알아야 한다. 살든지 죽든지 우리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롬14:8).

 

10월 2일(수) 굳은 마음

 

표적, 기사, 이적은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도 거부하는 것은 분명 위험한 선택이다.

 

요한복음 5:10-16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눈앞에서 행하신 기적과 그분에 대한 종교 지도자들의 놀랍도록 굳은 마음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요5:10~16]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답: 유대인들은 율법 조문 주의에 빠져있었다. 그 본질적 정신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은 그것을 깨뜨려 복음을 바르게 깨닫게 하려고 애 쓰셨다. 

 

예수께서 병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자, 그는 즉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자신을 낫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말했다.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겠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요 5:16).

그들은 ‘안식일에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긴급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38년간 병을 앓고 있던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결코 응급 사항이 아니었다. 게다가 굳이 자리를 들고 가라고 할 필요까지 있었는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면 안식일에 자리를 집으로 들고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도 알고 있지 않겠는가’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분명 예수께서는 참된 신앙을 억누르고 말살하기까지 하는 인위적인 규칙과 규정을 넘어 제자들을 더 깊은 성경적 진리로 인도하기 위해 때로는 의도적으로 그런 일을 명하셨을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들의 부패한 마음, 메시아가 로마로부터 그들이 지금 당하고 일에서 구해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권력에 대한 사랑, 또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들로 눈앞에 있는 진리를 거부하도록 만들었다.

 

명백하게 주어진 증거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감각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이 구절들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요 9:1-16, 막 3:22, 23, 마 12:9-14). 이 종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눈이 멀 수 있었는가? 

[요9:1~16]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막3:22,23]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마12:9~14]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답: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구약성경 율법의 문자에 매여서 실제적인 경건과 생명의 고귀성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교훈> 종교 지도자들은 영적인 무감각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증거가 눈앞에 주어졌음에도 자기 생각을 따라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묘하게도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또 믿고 싶은대로 믿는 경향에 빠져있다. 진리이기 때문에 믿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환경과 문화의식도 이런 경향에 한몫을 단단히 한다. 한 번 중독되면 빠져나오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나 사회적 입지가 굳건한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기득권을 잃고 싶지 않다. 구약성경을 그들 나름으로 연구하고 해석해놓고 탈무드라는 해설집까지 갖추어놓았는데, 예수라는 엉뚱한 청년이 나타나 그들이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이적으로 백성들의 인기를 한몸에 끌고 그 인기에 힘입어 교훈을 하니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지도력과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견디지 못해서 예수를 없애려는데 생각이 모아졌지 그분의 교훈을 성경과 대조하면서 연구하는데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적을 행하면 할수록 거의 무의식적으로 예수를 없애려는데 생각이 집중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명백한 증거도 예수를 제거할 이유가 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말씀 앞에서 살펴 헛걸음 걷지 않도록 깊이 굴복해야 할 것이다. 

 

10월 3일(목) 예수님의 주장

 

베데스다 연못의 기적이 요한에게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음이 분명하다. 그는 사건에 대해서는 단 9절을 기록하지만 기적을 행하신 분에 대한 설명은 약 40절을 사용한다.

 

요한복음 5:16-18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안식일에 행하신 일로 박해를 받은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요5:16~18]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답: 예수께서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고 하여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으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5:18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어기셨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 5:16-18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안식일에 일하시는 것은 아버지께서도 일하시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세계를 주관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 따라서 예수께서 안식일에 일하시는 것은 당신의 신성을 주장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여긴 것과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하셨다는 이유로 그분을 박해했다.

 

요한복음 5:19-47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방금 행하신 기적을 통해 강력하게 증거된 당신의 주장, 즉 당신이 누구인지를 지도자들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요5:19~47] 각자 읽어보자. 너무 길어서 여기 옮기지 않는다.

  아래 저자의 설명이 이 질문의 답이다. 

 

예수님은 세 단계로 자신의 행동을 주장하신다. 첫째, 당신과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를 설명하신다(요 5:19-30). 예수님은 당신과 아버지가 함께 일하며, 자신에게 죽은 자를 심판하고 살리는 권능이 있다고 말씀하신다(요 5:25-30).

둘째, 예수님은 주장을 더 분명하게 증명하기 위해 침례 요한(요 5:31-35), 당신이 행한 기적(요 5:36), 아버지(요한복음 5:37, 38), 성경(요한복음 5:39)의 네 “증인”을 세우신다. 이 증인들은 모두 예수님을 옹호하며 증언한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5:40-47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하시는 일과 그들이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을 대조하시며 당신을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내려진 자기 정죄를 보여주신다. 예수님은 그들이 바라는 자 모세(요 5:45-47)가 그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교훈>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정죄하지만 당신은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 증인들, 당신이 하시는 일을 통해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신다. 

 

<부가설명>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손을 놓는 날이 있다면 그날은 그분의 모든 피조물이 망하는 날이 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3). 창조주께서 일순간이라도 만물을 붙드시는 일을 놓는다면 만물을 와해될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은 항상 일하시는데 그것은 모든 피조물이 최선의 상태로 유지되도록 하시는 일이다. 또 안식일이나 평일이나 예수님은 그분께 나오는 자들의 회개를 들으시고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쉬지 않으신다. 이 일과 관련해서는 안식일에 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마12:5). 생명을 유지하고 생명을 고쳐주시며 생명의 하나님과 항상 연결하도록 하는 그 일은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날인 안식일에 생명의 전파하는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일의 규정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을 범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의 주인이신 분이 제칠일 안식일을 잘 지키셨고 당신이 세우신 법도대로 생활하셨다. 우리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면 거룩하게 잘 지키는 것이다. 아멘.

 

10월 4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도움에 대한 아무런 보증도 그에게 주지 않으셨다. 그 사람은 멈추어 의심하여 나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었으며 그 말씀에 입각하여 행동하자 힘을 얻었다.

우리도 같은 믿음을 통하여 영적인 치유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단절되었다. 우리의 영혼은 마비되었다. 그 쇠잔한 사람이 걸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이 우리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없다. …이러한 낙심하고 몸부림치는 자들은 위를 쳐다보라. 구주께서는 자기의 피로 사신 자들을 굽어보시고 말할 수 없는 연민과 긍휼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대에게 건강과 평안 가운데서 일어서라고 명하신다. 그대가 완쾌됐다고 느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그분의 말씀을 믿으라. 그리하면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대의 의지를 그리스도의 편에 두라. 그를 섬기고자 뜻을 세우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할 때에 그대는 힘을 얻을 것이다. 오랜 방종을 통하여 영육을 속박한 악한 행습과 강력한 정욕일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능히 거기에서 구출하실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죄로 죽었던’(엡 2:1) 영혼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실 것이다. 그분은 연약함과 불행과 죄의 사슬에 매인 포로들을 해방시켜 주실 것이다"(시대의 소망, 203).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모독하였다는 비난을 반박하셨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비난하고 있는 그 사업을 내가 행할 수 있는 권위는 곧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본질과 의지와 목적에 있어서 하나님과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시대의 소망, 208).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믿음은 치유를 가능하게 한 열쇠였다. 반면에 지도자들은 의심과 불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었다. 우리 모두 경험하는 일이지만, 질문하는 것과 의심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둘은 어떻게 다르며, 그 차이를 아는 것은 왜 중요한가?

*답: 질문은 알고자 하는 것을 묻는 것이고 의심하는 것은 대답을 들어도 받아들이 못하는 정신이다.

2. 바른 교리와 지식을 가지고도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하지 않을 수 있다. 재림교인은 왜 이러한 위험에 대해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가? 안식일을 지키고 죽음 이후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더라도 이런 진리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답: 진리를 올바르게 하는 지식이 구원이 아니다. 구원은 거듭날 때 이루어진다. 거듭나는 것은 아담 안에서 얻은 생명에서 죽고 예수님의 부활한 생명으로 출생하는 것이다(요1:12.13).

3. 요한복음 5:47을 살펴보라. 예를 들어, 세계적인 홍수와 6일간의 창조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을 통해 경고한 것을 어떻게 그대로 이행하고 있는가?

*답: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모세의 글에 기록한 6일간의 창조와 노아의 홍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도 믿지 않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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