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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붙잡히시고 심문받으심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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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4-09-09 03:58 조회7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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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붙잡히시고 심문(審問)받으심 

                         (09월 14일) (안) / 일몰: 오후 6시 41분)


<기억절(記憶節)>

 "이르시되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서론(緖論)&핵심(核心)>

(Q)~이번 주 (제11과)의 수업 주제(修業主題)는 어떤 것인가요?


(A)~이번 주(제11과=마가복음 14장)는 예수님이 배신(背信)당하고 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에 의해 정죄(定罪) 받는 사건을 설명하면서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날들에 있었던 세 가지 중요한 사건을 분석(分析)합니다.

1. 값비싼 향유(香油)로 예수에게 기름을 부음.

2. 베드로가 예수를 버림.

3. 예언(豫言)의 직접적인 성취(成就)로서 예수의 고난(苦難).


(B)~(마가복음 14장)에는 예수님에 대하는 태도(態度)의 세 부류의 인물(人物)들이 나옵니다.

 <첫째 인물들>=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상당한 돈을 기꺼이 지불(支拂)할 의향(意向)이 있는 사람들(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과 대제사장(大祭司長)들과 서기관(書記官)들과 장로(長老)들). 


<둘째 인물>=예수님에게 자신의 자본(資本)을 엄청나게 쓰려고 했던 알려지지 않은 여인(女人). (막 14:3) (그 향유(香油)가 300데나리온이 넘는 엄청난 돈의 가치(價値)(막 14:5).


<세 번째 등장인물>=제자(弟子)들과 ”가룟 유다“ 입니다.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여자와 달리 그들은(막 14:4) 향유(香油)가 예수님께 낭비(浪費)하기에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 수 있었고, 그 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막 14:5). 

ⓑ.유다는 예수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예수를 넘기기 위해 돈을 받을 의향(意向)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에게 은(銀) 삼십개를 내놓았습니다"(마태복음 26:15). 


(C).(교훈(敎訓)). 베드로처럼 어떤 순간에는 우리는 예수님의 대의(代議)를 위해 빛나는 성기사(聖騎士)가 될 수도 있지만, 다음 순간에는 주저(呪詛)하며 예수님을 배신(背信)하는 예상치 못한 악당(惡黨)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성격의 불안정성(不安定性)을 피(避)하기 위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조언(助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祈禱)하라"(마가복음 14:38). 


<마가복음 14장 구성(構成)>

⑴.시몬의 잔치 (마가복음 14:3~11)

⑵.유월절(踰越節) 준비 (마가복음 14:12~16)

⑶.유월절 잔치 및 배신자를 드러내심 (마가복음 14:17~21)

⑷.주님의 만찬 (마가복음 14:22~25)

⑸.겟세마네로 가심 (마가복음 14:26)

⑹.베드로와 열 제자에게 경고 (마가복음 14:27~31)

⑺.겟세마네 동산에서 (마가복음 14:32~42) 

⑻."예수님" 자신을 내어주심 (마가복음 14:43~52)

⑼.산혜드린의 밤 재판(裁判) (마가복음 14:53~65) 

⑽.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否認)함 (마가복음 14:66~72)


(09월 08일) (일) <기억(記憶)해야 할 사랑>  


(Q)~(마가복음 14:1~11) 여기에는 어떤 두 가지 이야기가 얽혀 있으며, 어떻게 상호작용(相互作用)하는가? 


(A)~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두 가지 이야기로 ①. 하나는 예수님께 드린 옥합(玉盒)의 향유를 드린 (선(善)/좋은)일이요 ”좋은 소식 복된 소식“이요 ②.예수님은 배신한 유다의 비열(卑劣)한 ”배반(背叛)할 좋은 기회(機會)“요 “잊혀지지 않은 배신(背信)의 기회”로 상반(相反)된 대조(對照)를 후세(後世)에 걸쳐 기억(記憶)할 것이다.


♡.예수님께 드린 여인의 선물(膳物)은 예수님을 배신(背信)한 유다의 비열(卑劣)함과 대조(對照)를 이룬다.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은 기억(記憶)될 것이며 유다의 잘못도 후세가 기억할 것이다.


⑴. 예루살렘 성(城)안이나 주위(周圍)에는 예수를 사랑한 얼마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친구들이 베푼 친절과 그리스도를 존경하고 존귀케 하기 위한 준비로 한 친구가 예수를 식탁에 초대하였던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도 친절히 그 초대를 받아들인 것이다. (막 14:3).

⑵.여기에 예수님의 또 하나 친구가 있다. 그는 대단히 친절하게도 매우 값비싼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이것이야말로 선량한 여인에 의해 예수께 베풀어진 특별한 존경이었다. 

⑶.이 여인은 이것 말고는 아무것으로도 예수님께 선(善)한 일이나 존경(尊敬)을 표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⑷.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소유 중 어떤 값진 것이라도 아까운 생각으로 도로 취하려는 생각을 말아야 한다.

⑸.주 예수에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취하시도록 하자. 우리의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자.

⑹.예수께서는 그 여인의 행함에 대해서 큰 믿음과 큰사랑의 행위임을 인정하신 것이다(8절).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이와 같은 장례 의식은 지금 다가오고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예조이며 예표였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에는 자기의 죽음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하였던 것을 보라. 그리고 어떻게 모든 일이 그의 죽음과 연관되었나를 보라.

⑺.합당치 못한 잘못된 편견(偏見)을 내세우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무슨 의사(意思)로 향유를 허비(虛費)하는가?"라고 비난(非難)하였다(막 14:4절). 

⑻.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들의 값진 귀한 것을 드리려는 사랑이 마음속에 없기 때문에 그 여인이 값진 향유를 허비한다고 말한 것이다.

⑼.그들은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려"는 것처럼 말하였다(막 14:5절). 그러나 "고르반"에다 바치는 "일반적 동정"이 가난한 자에게 구제해야 하는 "구체적 동정"을 면제해 줄 수 없는 것이다(막 7:11)

⑽.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보통의 자선(慈善)이 주 예수께 드리는 이 특별한 사랑을 물리칠 수 있는 구실이 못 되는 것이다. 행하시기에 합당한 선(善)한 일을 찾았으면 당신의 능력으로 그 일을 행하라!


(09월 09일) (월) <마지막 만찬(晩餐)>


(Q)~기독교 신앙(基督敎信仰)에 있어서 성만찬 예식(聖晩餐禮式)은 어떤 의미(意味)가 있습니까? (마가복음 14:22~31, 출애굽기 24:8)


(A)~<성만찬은 예수를 주와 구주로 믿는 믿음을 나타내는 의식으로, 그분의 몸과 피의 상징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만나시고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이러한 성만찬에 참여하신다. 이 예식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기쁨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성만찬 예식의 준비에는 자기 성찰, 회개, 고백이 포함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정결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와 같은 겸손으로 기꺼이 서로 섬기려는 마음을 표현하고, 사랑 가운데서 우리의 마음이 연합되도록 성만찬 예 식을 제정하셨다. 성만찬 예식에는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이 참여할 수 있다. (고전 10 : 16, 17, 11:23~30; 마 26:17~30; 계 3:20; 요6:48~63, 13:1~17) (기본교리 제16장 279P)


⑴.성만찬 예식의 의미는 이 예식(禮式)은 그리스도의 사명(使命)과 그 예식에 참여하는 자의 경험에 모두 큰 의미가 있음을 시사(示唆)한다.

⑵.그리스도는 무아적(無我的)인 봉사의 생애를 사셨다. 그분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마 20:28) 오셨다. 

⑶.그리스도의 모본(模本)을 따름으로 우리는 그분의 정신을 따르기로 천명한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여라(갈 5:13)

⑷.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출 24:8)

⑸.마지막 만찬(晩餐)을 잡수시고 예식을 제정(制定)해주시며 옛 언약(言約)의 약속을 성취(成就)하시는 것으로 새 언약을 세우셨다. 

⑹.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주의 만찬(晩餐)에는 유월절(踰越節) 식사(食事)의 어린 양(羊)이 없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羊)이시기 때문이다. (요 1:29). 주의 만찬(晩餐)의 떡은 그분의 몸을 상징(象徵)한다.

⑺.이 예식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대속적 차원을 강조한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고전 11:24:사 53:4~12)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⑻.새 언약(렘 31:31~34)은 예수님의 피로 인(印)치심을 받았고, 만찬의 잔(盞)은 이것을 상징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 14:24)하고 말씀하신다..

⑼.성만찬은 옛 언약 시대의 유월절 축제(祝祭)를 대체(代替)했다. 유월절은 유월절 양인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을 때 성취되었다. 

⑽.성만찬은 죄로부터의 구출(救出)에 대한 기념이다. 유월절 절기가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이 구출(救出) 받음을 기념했듯이 성만찬은 영적(靈的) 애굽, 즉 죄의 속박에서의 구출을 기념한다.

♡.성만찬은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던 것처럼 예식을 통해 어린 양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피로 새로 세우신 언약을 의미한다..


(09월 10일) (화) <겟세마네>  


(Q)~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기도(祈禱)하셨고, 그 기도(祈禱)는 어떻게 응답(應答)받았는가? (마가복음 14:32~42)


(A)~그리스도께서 여기에 그의 수난(受難) 가운데 들어가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영혼이 당한 모든 그의 고난 가운데서 가장 극심한 고난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여기에 그의 고민 가운데 처해 있는 것이다. 


이때처럼 그를 슬프게 한 적은 없다. 아무도 그리스도께서 이때 하나님의 영원하신 은총 중에 당한 이러한 체험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런 경험을 갖지 않았을 것이며 가질 수도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그의 정신의 동요 가운데서도 그는 조금도 혼란에 빠지거나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의 사랑은 소란스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제자들에게 주의를 시킨 것처럼 하나님의 지시하에 행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가진 것처럼 부패한 본성을 가지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⑴.그분께서는 당신의 발걸음이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아셨으나 그분의 눈물은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분의 앞에는 겟세마네 곧 다가오는 고뇌의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쟁투18)

⑵.예루살렘 성(城)을 떠나 기드론 계곡을 건너 감람산 기슭에 있는 동산으로 향(向)하시는 예수님 겟세마네라는 이름은 기름 짜는 틀이라는 뜻으로 근처에 올리브유를 가공하는 압착기(壓搾機)가 있었으리라 짐작하게 한다. 

⑶.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저주(詛呪)의 잔은 그분의 손에서 떨고 있었다. 그때에라도 그분께서는 당신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땀을 씻어 버리고 타락한 인류를 그들의 죄 가운데서 멸망하도록 버려둘 수도 있었다. 그분께서 만일 그렇게 하셨더라면, 타락한 인류를 구속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쟁투 347)

⑷.겟세마네 동산에서 겪은 예수님의 고통(苦痛), 그 동산에서 큰 핏방울처럼 흘린 그분의 땀, 그분의 거룩한 이마를 찌른 가시관도 그들을 감동하게 하지 못한다. 그들은 감각이 마비되었다. (1T 155)

⑸.그리스도를 섬김에 있어서 우리 약(弱)함과 지속성(持續性)을 더 악화(惡化)시키지 않으려고 그는 우리를 수고롭게 아니하고 괴롭게 아니하시는 것이다. (사 43:23). 

⑹.하나님의 아들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엎드려 기도하실 때에, 그분의 영의 고뇌는 땀구멍을 통해 땀이 핏방울처럼 빠져나가도록 밀어내었다. 여기에서 그분은 엄청난 흑암의 두려움에 둘려 있었다. 세상의 죄가 그분의 위에 있었다. 그분은 아버지의 율법의 범죄자로서 인간 대신 고통을 당하고 계셨다. 여기가 바로 시험의 현장이었다. (2T 203)

⑺.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구주(救主)께서 고민하시던 밤에 잠이 든 제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그들은 천사의 임재를 희미하게 느꼈지만, 졸음과 혼수상태(昏睡狀態)로 그 장면의 능력과 영광을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들 앞에 있는 무서운 장면을 위하여 그들의 심령을 강화시킬 수 있었던 증거를 받지 못했다. (4T 542)

⑻.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올 때까지 우리가 가진 것을 굳게 지키는 것 외에 다른 짐을 지어 주시지 않으려 하신다. (계 2:24~25). 

⑼.중보자(仲保者)로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말없이 따르셨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절).

⑽.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은 예정(豫定)된 것이고 변개(變改)될 수 없음을 다 아시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대로 고난(苦難)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고난을 환영(歡迎)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고난의 잔(盞)을 거두어 주기를 기도(祈禱)했으나 하나님의 뜻에 복종(服從)시키셨다. 겟세마네의 여정(旅程)이 분리(分離)를 상징하듯 제자들은 그분과 함께 기도하지 못했다. 


(09월 11일) (수) <다 버리고 예수에게서 도망하니>


(Q)~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동료 중 한 명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대적에게 넘겨주며, 나머지 제자들 모두가 주님을 버리고 도망친 충격적(衝擊的)인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마가복음 14:43~52)


(A)~유다는 예수에게 입맞춤으로 그를 넘겨주려고 한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어느 때라도 어디를 다녀왔을 때 자기의 뺨에 입을 맞추는 것을 허용하였는데 그는 이 자유를 악용(惡用)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랍비여" 하고 부르면서 입을 맞춘 것이다. 그는 마치 예수를 전보다 더 존경하는 것처럼 "랍비여"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춘 것이다. 사람들은 랍비라고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였다(마 23:7).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넘겨주면서 유다는 예수께 그런 경어(敬語)를 부르면서 입을 맞춘 것이다. 


⑴.우리 주 예수를 결박(結縛)하여 투옥(投獄)시키려고 유대교 지도자들은 악당(惡黨)들을 고용한 것이다. "대제사장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뭉치를 가지고"(43절) 왔다. 

⑵.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사람들을 보내어 악한 일을 하게 하였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처럼 꾸미었고 그를 환영할 준비를 하는 것처럼 꾸미었다.

⑶.세상에는 이렇게 심한 사악(邪惡)도 없고 이렇게 무서운 일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자녀 중에 서슴지 않고 그런 일을 할 자들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⑷.대단히 비참(悲慘)하게 부패(腐敗)하고 타락(墮落)한 것이 인류이다. 이 반역(叛逆)의 무리들의 머리가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인 것이다

⑸.“유다는 본래 돈에 대하여 강한 애착을 두고 있었으나 이런 일을 할 만큼 항상 부패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악한 탐욕의 정신을 길러서 마침내 그것이 그의 생애의 동기를 지배하게 했다.

⑹.돈에 대한 애착(愛着)이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사랑을 능가(凌駕)했다. 그는 한 가지 죄의 노예(奴隸)가 되므로 인해 자신을 사탄에게 넘겨주어 그같이 깊은 죄에까지 빠지게 되었다"(소망, 716).

⑺.여러 해 동안에 예수님과 가까이 지냈고, 가까운 대화(對話)를 나누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豫言)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병(病)을 고쳤다. 그러던 그가 예수를 판 것이다.

⑻.아름답고 훌륭한 고백을 한 자가 결국에는 부끄럽고 치명적(致命的)인 애교자로 끝나는 일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너 계명성(啟明星)이여 어찌 그리 떨어졌느냐 !"(사 14:12)

⑼.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은 모두 도망(逃亡)친다. 하지만 베드로는 다시 나타나 멀리서 예수를 따르다가 결국 곤경에 빠지게 된다. 

⑽.(한 청년이) 언뜻 보기에 대단치 않은 이 사건은 그날 밤의 사건들과는 아무 특별한 관련이 없어 보이나, “영감”(inspiration)이 이것을 이야기 속에 포함시킨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 복음서의 저자인 마가 요한(참조 행 12:12)이 예수의 체포와 연관하여 자기 자신을 은밀하게 지적한 것이라고 추론되어 왔다. 


♡.메시아를 없애려는 인간의 뜻을 통해서 수난(受難)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이를 통해 하나님 뜻이 성취되고 있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모두 떠나갔다. 즉 유다의 경험은 죄를 미워하고 은혜로 죄를 극복할 수 있다. 


(09월 12일) (목) <너는 누구냐>


(Q)~예수께서 산헤드린으로 끌려가 심문받으시는 첫 장면을 묘사(描寫)하고 있는바 베드로의 반응(反應)은 예수님과 너무나 대조적(對照的)이다.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마가복음 14:60~72)


(A)~<이 사실은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멀리한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갔다 하였다(막 14:54). 그리고 그는 지금 "아래 뜰에 있었다."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은 멀찍이 따르다 그를 부인(否認)하게 된다. 즉 거룩한 의식(儀式)에 참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진실한 성도(聖徒)들과의 교제(交際)를 부끄러워하며 멸시(蔑視)를 당하는 경건한 무리의 편에 서기를 싫어한다.>


⑴.심문(審問) 앞에 그분은 진실하게 증언(證言)하셨다. 이에 군중이 예언해 보라고 조롱(嘲弄)할 때, 베드로는 밖에서 거짓으로 증언(證言)하지만, 그조차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보여준다. 

⑵.이 사실은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멀리한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갔다 하였다. (마가 14:54 절).

⑶.그리고 그는 지금 "아래 뜰에 있었다."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은 멀찍이 따르다 그를 부인하게 된다. 

⑷.베드로는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告白)하고 소유(所有)하고 있어야 하고 법정(法廷)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증인(證人)으로 나서야 할 그 시간에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부인(否認)하였다.

⑸.그리스도께서는 자주 자기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고난(苦難)에 대해서 예고(豫告)를 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고난(苦難)이 임(臨)하자 그것은 베드로에게 전에 아예 들어보지도 못한 것처럼 큰 놀람과 두려움으로 임(臨)한 것이다.

⑹.전(前)에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자기를 위해 자주 고난을 겪어야 하며 십자가를 지고 그를 좇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러하였음에도 베드로는 그 첫 번째 경보에서 그 고난을 몹시 두려워하여 그것을 피하려고 거짓말도 맹세도 어떠한 일도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⑺.그리스도께서 존경(尊敬)을 받고 많은 사람이 따를 때는 그는 쉽게 그리스도를 모실 수 있었던 것이다.

⑻.그러나 지금 그리스도께서 버림을 당하고 멸시를 당하고 고난이 닥치자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고 그와 아무 관련을 갖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⑼.베드로는 자신이 부인(否認)했지만, 예수는 그를 내쫓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구원(救援)의 희망을(希望) 가질 수 있습니다.

⑽.베드로의 회개(悔改)는 대단히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否認)하였는데 그중에서 세 번째의 부인(否認)은 대단히 심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그는 자기의 부인(否認)을 더욱 굳히기 위해서 저주하고 맹세하였기 때문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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