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7. 제자들을 가르치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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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4-08-12 06:20 조회68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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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안교소그룹의 TMI나눔 : 1. 안으로-안교소그룹이 서로를 돌보고 연합하기 위한 나눔(인사, 환영, 출석, 공부 확인, 결석자 확인, 방문 계획)
2. 위로-교과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함)
3. 밖으로-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한 나눔(실천한 TMI, 실천할 TMI, 기도)
*시간에 제약을 받는다면, 한 주에는 이 주제를, 다른 주에는 다른 주제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해보자.
▣연구 범위 ∥ 막 8:22~38; 마 20:29~34; 요 12:25; 막 9:1~50; 말 4:5, 6; 눅 9:30, 31“
▣기억절 ∥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핵심 ∥
*핵심어 :
▣도입 질문 :
⇒
▣요일별 고찰
일. 막 8:22~30에서 맹인을 고치기 위해 두 번 만지신 이유는?
⇒영적 통찰력을 얻는 데는 시간이 거릴 수 있음을 보여줌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맹인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인도하시는 친절하고 세심한 분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를 두 번 만지신 것은 그분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의 믿음이 부족해서이거나 영적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인 것 같다. 이 이야기 이후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당할 고난과 죽음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잘 깨닫지 못하였고 주님은 그들이 분명하게 깨닫기까지 다시 가르치셔야 했다. 제자도란 점진적인 성장의 과정이다.
이 부분은 마가복음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세 가지 특징이 이것을 보여준다. 첫째, 예수님은 이 시점 이전에는 하지 않으셨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제자들에게 질문하신다. 둘째, 귀신 들린 사람이 아닌 베드로가 처음으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선언한다.
셋째, 예수님이 누구이신지가 드러난 직후에 그분은 당신이 어디를 향해 가고 계신지, 즉 십자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마음을 꺾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 ‘메시아’라는 말은 로마의 통치를 전복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런 종류의 메시아가 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침묵을 요구하셨다.」
월.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시는가?(막 8:31~38)
⇒십자가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이시라고 고백한 직후 주님은 메시아의 길이 고난과 멸시와 죽음의 길임을 공개하시자, 베드로가 주님을 붙들고 항변한다. 이에 주님은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며 꾸짖는다. 이는 베드로가 사탄이라는 말이 아니라, 베드로를 충동하여 메시아의 길을 반대하는 사탄을 꾸짖는 말씀이다. 베드로의 말은 예수님께 위로가 되기보다는 십자가를 통해 인류를 구원코자 하는 그분의 결심을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수작이었던 것이다.
십자가형은 로마 시대의 가장 잔인하고 굴욕적인 사형집행 방법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이 그러한 형을 받는 것을 받는 것을 자신들의 수치로 생각했고, 자신들도 주님과 같은 형을 받게 될까 봐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도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길임과, 그럼에도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생명을 얻는 길이라는 위대한 역설의 진리를 가르치셨다.
화. 제자들은 산 위와 산 아래에서 어떤 다른 광경을 보았는가?(막 9:1~29)
⇒영광과 비참함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가셨는데 거기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하셨다. 이 때 죽었으나 부활한 모세와 살아서 승천한 엘리야가 나타나 그분이 죽으실 것(눅 9:30~31)에 대해 얘기했다. 이러한 광경은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제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산 아래 내려왔을 때 다른 제자들은 고쳐달라는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지 못해 당황해하고, 아이의 아버지는 매우 실망하고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겨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예수님은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시며 그의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아들을 고쳐주셨다.
제자들이 왜 자기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 묻자, 예수님은 기도 외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며, 믿음과 기도는 절대적 관계임을 가르치셨다.
수. 막 9:30~41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언은 막 8:31과 무엇이 다른가? 또 제자들은 무엇에 대해 논쟁했는가?
⇒배신당할 것을 추가하심/ 누가 가장 크냐고 다툼
예수님은 자신이 배반당하여 죽으실 것이라며 전 보다 더 심각한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노중에 누가 가장 크냐는 문제로 논쟁을 했다. 메시아가 배반당하고 죽임당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에 그들의 관심은 세속적인 야망에만 빠져 예수님의 말씀을 유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첫째가 되고자 하려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며 어린 아이를 품에 안으신 채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가장 위대한 일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섬기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목. 막 9:42~50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섬김의 정신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것은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한 죄를 짓느니 차라리 죄를 짓게 하는 지체를 베어버리고 장애자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멀쩡한 몸으로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 그러므로 서로 섬김으로 화목하라.
예수님은 본문에서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지옥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영원한 고통의 지옥을 말하는가?
「지옥이 영원하다는 말은 지옥의 불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영원하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죄인은 영원히 불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멸망이 영원하다. 이것은 완전히 다르다.」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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