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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하나님의 인(印)과 짐승의 표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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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6-06 23:55 조회2,71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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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하나님의 인(印)과 짐승의 표(表) <I>

                          (06월 10일 (안) / 일몰: 오후 7시 53분)


<기억절(記憶節)>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종들의 이마에다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계시록 7:2-3)


<서언(緖言)>

○.우리는 짐승의 표(表)와 관련하여 마지막 때의 사건(事件)을 연구(硏究)합니다.

하나의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와

영혼(靈魂)의 원수 마귀(魔鬼)는 어떻게 행하는지의 차이(差異)입니다.

말씀의 핵심은 그리스도와 마귀 사탄 사이의 대 쟁투의 중심의 쟁점(爭點)은 충성(忠誠)과 권위(權威)와 예배(禮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하나님의 인(印)을 받을 사람과, 짐승의 표(表)를 받을 두 부류로 나뉘게 될 것인데 평시(平時)에는 별로 구분이 안 될 것이지만 사탄은 두 가지 무기(武器)로 즉 ①.경제적(經濟的) 제재와 ②.핍박(逼迫)이라는 방법을 동원하여 비장(祕藏)한 각오나 믿음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타협(妥協)하게 함으로 짐승의 표를 받게(따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신뢰(信賴)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어떠한 어려움이나 핍박(逼迫) 가운데에서라도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의 인도(引導)함을 따를 것이다.


(06월 04일) (일)  <확고(確固)한 인내(忍耐)>


(Q)~하나님의 계명(誡命)을 지키며 창조주 하나님께만 경배(敬拜)를 돌리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확고(確固)한 인내(忍耐)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럴까?) (요한계시록 14:7, 9~10절, 12절,)


(A)~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의 표(表)는 하나님의 인(印)과 예리(銳利)하게 대조(對照)된다. 인(印)과 표(表)의 근본적 기능은 소유권(所有權)과 정체성(正體性)(identity) 및 보호(保護) 등에 있다. 그러므로 둘은 각각 하나님께 대한 충성(忠誠)의 표(表)이거나 짐승에 대한 충성(忠誠)의 표(表)다. 


(요한계시록 12장~14장)은 ‘위기(危機)의 때에 하나님의 계명은 충성(忠誠)과 순종(順從)의 표준(標準)’으로 부상(浮上)하게 될 것을 강조한다. 마지막 때 하나님의 인(印)을 가진 성도(聖徒)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者)들로서 그 특징을 이룬다. (계 12:17; 14:12). 그러므로 짐승의 표(表)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짐승에 대한 순종으로 대체(代替)하는 것이 된다.


(06월 05일) (월)  <우주적(宇宙的) 투쟁(鬪爭)> 


(Q)~우주적(宇宙的)인 마지막 투쟁(鬪爭)에서 짐승의 표(表)를 강요(强要)받을 때 예수그리스도 편(便)인 하나님의 인(印)을 선택할 때에 오는 시험에서 승리(勝利)할 수 있는 비결(祕訣)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경험(經驗)하신 것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마태복음 27장 45~50절, 갈라디아서 3:11 절, 하박국 2:4절) 


(A)-믿음을 행사(行事)하는 자는 그의 믿음의 결과(結果)로 의(義)롭게 간주될 것이라는 점과, 이를 입증(立證)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는 기본 선행조건(先行條件)이라고 밝힌다. 즉

믿음이 자라나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예수님을 믿는 확실한 믿음으로 굳게 서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가신 믿음의 길을 따라갈 때 우리는 최후의 시험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갈 3:11, 재림교주석)


(06월 06일) (화)  <불경건(不敬虔)의 사슬>


(Q)~붉은 용(계12:3)으로 시작된 불경건(不敬虔)의 마지막 사슬의 고리와 전략(戰略)은 무엇이며, 왜 하나님을 신실(信實)하게 믿는 사람들이 박해(迫害)를 받게 되는 것입니까? (요 16:2) 


(A)~(첫째), 최후(最後)의 위기(危機)의 때에 경배(敬拜)가 쟁점(爭點)이 될 것이다. 최종적 시험은 경배를 거부(拒否)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경배(敬拜)하느냐에 달려있다. 다니엘 3장의 우상(偶像)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묘사(描寫)하고 있다. (단 3:5-6). 

하나님만이 경배(敬拜)를 받으시기에 합당(合當)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죽도록 충성(忠誠)하는 것은 필수적(必須的)이다. (계14:7, 19:10, 22:8-9).


○.(둘째), 짐승의 우상(偶像)이 상징(象徵)하는 것은 사탄이 각 시대를 통하여 사용했던 그의 이중전략(二重戰略)이 종말(終末) 때에 부활(復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중전략은 기만(欺瞞)과 강제(强制)이다.


○.짐승의 우상(偶像)은 제도(制度)와 조직(組織)과 그 과정(過程)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것들은 그 형태와 행위에 있어 짐승의 권세(權勢)를 꼭 빼닮을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정치(政治)와 종교(宗敎)가 연합(聯合)하게 될 것이다. “이 기별(奇別)은 하나님의 인(印)은 아버지와 어린 양의 이름으로 구성(構成)되어 그 이마에 기록된다(계14:1). 

짐승의 표(表)는 짐승의 이름 또는 그 이름의 수로 구성되어 이마나 손에 기록된다. (계 13:17).


○.짐승의 표(表)인데 첫째 속임수를 사용하다 안 되면 매매금지령(買賣禁止令)을, 그래도 안 되면 사형령(死刑令)으로 위협(威脅)하나 창조주(創造主)는 보호(保護)하신다고 언약(言約)하셨으니 걱정 끝. 

위에서 말한 짐승, 곧 두 뿔 가진 짐승이 경배(敬拜)하라고 강요(强要)하는 그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첫째 짐승, 곧 표범 같은 짐승인 법왕권(法王權)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우상’은 자기의 교리(敎理)를 강요하기 위하여 국권(國權)의 도움을 구(求)함으로 생겨나게 될 배교(背敎)한 개신교(改新敎)도들의 단체(團體)를 나타낸다. (각 시대의 대쟁투, 445)

 

(06월 07일) (수)  <어린 양(羊)을 따르는 자(者)>


(Q)~(요한계시록 13:1~2절)의 복합(複合) 짐승은 어디에서 왔고, 어떤 역할(役割)을 하며, 어린양이 인도(引導)하는 대로 따라갈 자(者)들은 누구 안가?


(A)~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은 정치세력(政治勢力)에 대한 상징(象徵)이다. 이처럼 사탄은 세상 정부의 권세를 이용하여 정부의 통치(統治) 받는 국민들을 세상법적(世上法的)으로 압박(壓迫)할 것이다. 사탄은 이 세력(勢力)을 통해 일반적(一般的)으로는 전 역사(歷史)에 걸쳐서, 특별하게는 마지막 때에 활동적(活動的)으로 일하고 있다. 짐승으로 상징(象徵)된 로마 교황권(敎皇權)에게 권세(權勢)를 주어 온 세상이 짐승을 따를 것이지만, “남은 자손” “남은 백성”인 하나님의 백성은 어린양의 인도(引導)하심을 따르는 백성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굳게 서서 순종(順從)할 때 끝까지 견디게 될 것이다. 


(06월 08일) (목)  <예수: 우리의 유일(唯一)한 중보자(仲保者)>


(Q)~(요한계시록 13장)에서 짐승에 대한 행위가 곧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神聖冒瀆)을 범(犯)하는 그 이유는 무엇이면, 짐승의 권세와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 예수그리스도를 식별할 수 있는 표는 무엇입니까? (계시록 13:1~10절, 딤전 2:5, 요한복음 14:9절)


(A)~피조물(被造物)이며 죄인(罪人)인 사제(司祭)가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를 중보(仲保) 한다는 주장은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참람(僭濫)된 것일 뿐 아니라 신성모독(神聖冒瀆)을 범(犯)하는 것이다. 죄인은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다. 우리 인간들의 참된 중보자(仲保者)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참조: 요한복음 14:5~6절; 로마서 5:1~2절; 디모데전서 2:5절 )


-----<말미부록(末尾附錄)---


○.짐승의 표(表)는 무엇을 상징(象徵)하는가? 

  의심(疑心)의 여지 없이 로마제국에서 격렬한 핍박을 받고 있던 일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황제 숭배를 했던 사람들에게 발급된 증명서에서 ‘짐승의 표’가 적용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전 역사를 통하여 짐승의 표는 시대마다 다른 의미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3장은 짐승의 표가 궁극적으로 적용될 시기는 재림 직전의 종말 때임을 분명히 밝힌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에게 순종하고 경배하는 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짐승의 표가 사단적 삼위를 경배하는 자들에게 충성의 표가 되는 것은 최후 위기의 때다.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의 표는 하나님의 인과 예리(銳利)하게 대조된다. 인(印)과 표(表)의 근본적 기능은 소유권(所有權)과 정체성(正體性) 및 보호(保護) 등에 있다. 그러므로 둘은 각각 하나님께 대한 충성(忠誠)의 표(表)이거나 짐승에 대한 충성의 표(表)다. (요한계시록 12장~14장)은 ‘위기(危機)의 때에 하나님의 계명(誡命)은 충성(忠誠)과 순종(順從)의 표준(標準)’으로 부상(浮上)하게 될 것을 강조(强調)한다) 마지막 때 하나님의 인(印)을 가진 성도(聖徒)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로서 그 특징을 이룬다(계 12:17; 14:12). 그러므로 짐승의 표(表)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짐승에 대한 순종으로 대체(代替)하는 것이 된다.


○. 특히, 십계명의 첫 네 계명(“내 앞에 다른 신(神)을 두지 말지니라”, “너는 너를 위하여 우상(偶像)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에 혹은 땅 아래의 물에 있는 어떤 형상이든지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그리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은 최후의 위기(危機)의 때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시금석(試金石)이 될 것 같다. 이 네 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 및 예배와 관련이 있다. (요한계시록 12장~14장)에 따르면, 최후의 위기의 때 하나님과의 관계 및 합당한 예배가 쟁점이 될 것이다. 마지막 때의 두 무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과 용과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이다(계14:7, 9; 13:8, 12-15 참조). 이는 종말의 때에 바다짐승이 네 계명에 대하여 왜 그처럼 집요하게 공격을 하는지를 설명한다.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경배를 짐승이 요구하는 것은(계13:4, 8)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는 첫 계명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다. 우상(偶像)을 세워 경배(敬拜)하게 하는 것은(계13:14~15) 둘째 계명을 직접적으로 위반(違反)하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神聖冒瀆)은 셋째 계명을 공격(攻擊)하는 것이다(계13:5~6). 


○.짐승의 표를 받으라는 요구는 넷째, 즉 안식일 계명에 대한 직접적(直接的)인 공격(攻擊)을 의미(意味)한다. 이 시점(時點)에서, (요한계시록 7장)에서 언급(言及)된 이마에 친 하나님의 인(印)을 안식일 준수에만 국한(局限)하려는 여하(如何)함의 시도(試圖)와 관련하여 주의가 요망된다. 어느 곳에서도 안식일 준수가 하나님의 인(印)이 된다고 분명히 진술되어 있지 않다. 신약에서 안(印)침은 분명히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는 성령의 임재를 의미한다(고후 1:21~22절, 엡 1:13~14절, 4:30 절) 이것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계7:3)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인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로 하나님께 속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된다(딤후 2:19 참조).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들 인(印)으로서의 안식일의 유효성을 절대 망가뜨리지 않는다. 메러디쓰 클라인(Meredith Kline)은,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은 고대 언약 문서의 체제를 따르고 있는데, 그 문서의 중앙에는 소유권과 권위의 표로 인이 쳐져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넷째 계명은 십계명의 중앙에 찍힌 인의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체결된 시내 산 언약을 비준한 인이었다. 

이 어둠의 때에 성경을 고수(固守)하는 자들은 참 안식일 준수(安息日遵守)의 포기(抛棄)를 거절(拒絶)할 것이다. 언급(言及)될 수도 있었을, 충성스러운 자들을 판정(判定)해 내는 특징(特徵) 중, 예언은 두 가지 현저한 특징을 지적(指摘)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 히브리 성경은 제칠일 안식일이 이스라엘을 다른 백성과 구분하는 뚜렷한 표라고 분명히 정의한다. 안식일은 참 하나님께 소속됨과 하나님과 당신의 언약의 백성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외적 표였다(출 31:12-17; 겔 20:12, 20).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주어진 십계명에 관한 두 번의 설명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창조주시요(출 20:11) 구세주(救世主) 이심을 (신 5:15)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 안식일의 목적임을 나타낸다. 안식일의 이러한 측면이 (요한계시록 12~14장)에서 강조된 것 같다. 비록 최후의 위기에서 쟁점이 안식일에만 국한되지 않을지라도, 안식일은 분명히 최후의 위기의 때 충성과 순종의 ‘리트머스 시험’이 될 것이다) 요한이 (요한계시록 14장 6-12절)에서 땅의 거민(居民)들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최후 호소를 묘사할 때, 그는 넷째 계명으로 창조주이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촉구한다(계14:7; 출 20:11 참조; 연합성서 공회의 헬라어 신약 성경 4판의 편집자들은 (요한계시록 14:7절)의 진술이 (출애굽기 20:11 절)의 인유(引)라는 것을 난 외주에서 인정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이 호소에 뒤이어, 바벨론의 무너짐을 선포하며 짐승을 경배하고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는 것 등을 경고하는 다른 두 천사의 선포가 뒤따른다(계14:6~11), 안식일 계명과 관련 하여 참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백성에게 촉구하며, 짐승을 경배하지 말고 그의 표를 받지 말라고 그들에게 경고하는 것은 짐승의 표가 안식일 계명에 대한 모조품 역할을 하는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결론적 본문이 더욱 뚜렷이 보여 준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14:12) 자들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본문은 최후의 위기에 그분의 계명들을 지킴에 안식일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현저한 표가 되는 것처럼, (제칠일 안식일과 대조적으로) 거짓 안식일인 짐승의 표가 짐승에 대한 순종의 표가 될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순종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는 것이다. “현재는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는 것, 혹은 일요일 준 수가 그 자체로서 ‘표’가 아닐 수 있으나, 이 두 가지는 마지막 때의 강제 시행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고대에 하나님 백성의 표가 되었던 안식일 준수(출 31:13; 겔 20:20)는 다시 하나님을 첫째로 삼는 사람들을 세계 앞에 드러내기 위하여 전방에 설 것”이라는 존슨(William G. Johnsson)의 말에 확실히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믿음>(faith of Jesus). 

“예수의 믿음” 또는 “예수를 믿는 믿음”(faith in Jesus). 일반적으로 후자의 의미가 선호되지만, 헬라어는 어느 쪽으로든 다 이해된다. 예수 믿음과 계명을 지킴은 그리스도인 삶의 두 중요한 면모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품성 사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달성하도록 하였으나, 거듭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가 달성하지 못하는 의의 거룩한 표준을 제시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屈伏)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최선의 시도에도 인간은 계속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참조 롬 3:23 주석).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도록 예수가 왔다. 그는 성부가 어떠한지 인간에게 보여 주기 위해 왔으며, 이런 의미에서 도덕률을 확대하였다. 그의 능력을 통해 인간은 거룩한 요구를 지킬 수 있게 되었으며(참조 롬 8:3, 4 주석),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한다. 

 이렇게 남은 교회는 율법주의적인 의미가 아니라 참된 신자의 마음속에 거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갈 2:20)의 품성 계시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영예롭게 하며 그것들을 지킨다.


○.(요한계시록 12장~14장)에 의하면, 참 하나님의 인을 받은 경배자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로서 그 특징을 더한다(계 14:12; 12:17 참조),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은 짐승의 표를 가지고 있는 자들과 대조된다. (계14:9~12), 


○.짐승의 표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과’ 관련이 있는 반면,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 이것은 분명 “최후의 위기 때 하나님의 계명들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기준으로 부상할 것임”을 시사한다. ) 그러나 문맥은 단지 하나님의 계명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십계명의 첫 네 계명, 곧 하나님과의 관계 및 경배와 관련이 있는 계명들이 최후의 위기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을 가리킨다. 바다짐승의 활동들은 이 네 계명을 대적하기 위하여 잘 계획된 전략의 일부로 묘사된다.


○.존슨이 지적하듯이, (요한계시록 14장 6~12절)은 안식일이 “특별한 리트머스 시험이 될 것이며, 개인과 안식일의 관계는 그와 하나님, 또한 그와 그분의 율법과의 근본적인 관계를 드러낼 것” )임을 분명히 제시한다. 사단적 삼위를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으라는 짐승의 요구에 순종하기보다 참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최후의 호소가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발해질 때(계14:7), 그것은 분명히 ‘넷째 계명의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안식일이 최후의 위기에서 합당한 경배와 하나님과의 관계와 관련하여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이해하였다. 안식일이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에 의하여 뚜렷한 순종의 표가 되듯이(출 31:12-17; 겔 20:12, 20 참조), 거짓 안식일인 짐승의 표도 짐승에 대한 순종의 표가 된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인간의 계명들(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그분의 소유됨의 현저한 표인 제칠일 안식일 대신 인간이 세운 거짓 안식일을 포함하여)로 대체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탄은 맹렬한 유혹(誘惑)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구주(救主)께서는 무덤의 문을 통해 볼 수 없었습니다. 희망은 그분에게 정복(征服)자로서 무덤에서 나오신 그분을 제시(提示)하거나 아버지께서 희생(犧牲)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그분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가 하나님께 너무나 모욕적(侮辱的)이어서 그들의 분리(分離)가 영원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비(慈悲)가 더 이상 범죄(犯罪)한 인류를 위해 탄원(歎願)하지 않을 때 죄인이 느끼게 될 고뇌(苦惱)를 느끼셨습니다. 그분이 마신 잔(盞)을 그처럼 쓰게 만들고 하나님 아들의 마음을 상(傷)하게 한 것은 죄인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진노(震怒)를 그에게 가져온 죄에 대한 감각(感覺)이었다. (시대의 소망, 753) ( CTr 277) (승리하시는 그리스도>

○.사단은 나사렛의 아기 예수를 정복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게 노력하였다. 예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늘 천사들의 보호를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는 흑암의 권세에 대항하여 싸운 긴 투쟁의 생애였다. 이 지상에 악의 더럽힘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은 흑암의 왕에게 불쾌하고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예수를 시험에 빠뜨리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다 썼다. 인간의 어떤 자녀도 우리 구주가 당하셨던 것처럼 그렇듯 치열한 시험과의 투쟁 속에서 거룩한 생애를 살도록 부르심을 받을 자는 없을 것이다. (소망, 71)


○.사탄은 맹렬한 유혹(誘惑)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구주(救主)께서는 무덤의 문을 통해 볼 수 없었습니다. 희망은 그분에게 정복(征服)자로서 무덤에서 나오신 그분을 제시(提示)하거나 아버지께서 희생(犧牲)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그분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罪)가 하나님께 너무나 모욕적(侮辱的)이어서 그들의 분리(分離)가 영원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비(慈悲)가 더 이상 범죄(犯罪)한 인류를 위해 탄원(歎願)하지 않을 때 죄(罪)인이 느끼게 될 고뇌(苦惱)를 느끼셨습니다. 그분이 마신 잔(盞)을 그처럼 쓰게 만들고 하나님 아들의 마음을 상(傷)하게 한 것은 죄(罪)인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진노(震怒)를 그에게 가져온 죄(罪)에 대한 감각(感覺)이었다. (시대의 소망 753). ( CTr 277) (승리하시는 그리스도>


○.다는 제한적이고 편협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없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치명적인 속임수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마음에 드는 생각으로 흥정하는 것을 멈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속죄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문제는 너무나 어렴풋이 이해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사람이 악(惡)한 자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선(善)한 일을 요구하셨고 율법은 그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선(善)한 일이 무가치(無價値)한 죄(罪)에 자신을 두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의(義)만이 유효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에 온전히 구원(救援)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구원(救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라는 초대(招待)를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사람은 갈바리에서 만족하지 못한 죄(罪)를 범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십자가(十字架)는 간절한 호소(呼訴)로 죄인에게 계속해서 철저(徹底)한 속죄(贖罪)를 제안(提案)합니다. (원고 50, 1900).


○.말세(末世)에 있을 격심한 투쟁(鬪爭)

지나간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똑같은 시련을 경험하였다. 위클리프, 후스, 루터, 틴덜, 박스터, 웨슬리 같은 사람들은 모든 교리를 성경으로 시험해야 할 것을 주장하고 성경이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나 버려야 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에 대하여 가혹한 분노로써 박해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전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교회 역사의 각 시대는 그 시대의 하나님 백성들의 필요에 적합한 어떤 특별한 진리의 발전으로 각각 구분되어 왔다. 모든 새로운 진리는 증오와 박해를 대항하여 싸우면서 그 길을 개척해 왔다. 진리의 빛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유혹당하고 시련을 받았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비상시에 특별한 진리를 주신다. 그렇다면 누가 감히 그 진리를 전하기를 거부할 수 있을까?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마지막 은혜의 초청을 세상에 전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들은 잠잠할 수 없다. 만일 그들이 잠잠하면 그들의 영혼은 위험에 빠진다. 그리스도의 사신들은 결과를 전혀 괘념치 않아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의무를 다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쟁투, 609~610)


○.그리고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앙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칭찬과 약속의 말을 하였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갖추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을 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신도들은 다음과 같은 권고를 받았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3:8, 10, 2, 11). (행적, 587)


○.하나님의 백성은 적은 무리(계13:1, 2, 11)

큰 붉은 용(龍)과 표범 같은 짐승, 새끼 양(羊) 같은 뿔을 가진 짐승 등의 상징(象徵)으로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짓밟고, 그의 백성을 핍박(逼迫)하는 데에 특별히 힘쓰고 있는 지상정부(地上政府)들이 요한에게 제시(提示)되었다. 시간의 끝이 될 때까지 전쟁(戰爭)은 계속된다. 거룩한 여인(女人)과 그 자손(子孫)들로 상징(象徵)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극소수(極少數)라고 한다. 마지막 때에 남은 자손이 여전히 있을 것인데, 이 사람들에 대해서 요한은 말하기를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誡命)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證據)를 가진 자들”이라고 하였다. (사인즈 1899.11.1).


○.(다니엘서 7장1~8절) 네 짐승 : (계시록 13장1~18절)의 첫째 짐승 : 의미(意味)

 ⑴. 사자(머리 1) : 사자 입 : 바벨론

 ⑵. 곰(머리 1) : 곰의 발 : 메대 바사

 ⑶. 표범(머리 4) : 표범과 비슷 : 헬라

 ⑷. 열 뿔 괴물(머리 1) : 뿔이 열 : 로마 → 열국

 ⑸. 머리 합계 7 : 머리가 일곱 : 복합적 특성


○.특히 신성모독(神聖冒瀆)의 형태(形態)는 다음의 두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1)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함. (요 10:33).

 (2) 죄를 사(赦)하는 권세(權勢)가 있다고 함. (눅 5:21).


○.이 두 가지 형태의 신성모독(神聖冒瀆)은 용(龍)이 로마교회를 통하여 실현하고 있다.

 구분(區分) : 작은 뿔(단 7장) : 바다짐승(계 13장)

 ◎ 회생(回生) : (12) 그 생명은 보존됨 : (3)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음

 ◎ 입(말) : (20) 큰 말을 하는 입 : (5)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

 ◎ 힘(능력) : (20) 모양이 동류보다 큼 : (4)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 공격대상 : (21) 성도들과 싸워 이김 : (7) 성도들과 싸워 이김

 ◎ 하나님 대적(對敵) : (25) 지극히 높은 이를 대적함 : (6) 하나님을 비방함

 ◎ 박해기간(迫害期間) : (26) 한 때 두 때 반 때 : (5) 마흔두 달


○.(계13:11) 독특(獨特)한 상징(象徵)

여기에 미국의 출현(出現)과 성장에 관한 아주 인상적(印象的)인 표상(表象)이 있다. 

순결(純潔)과 온화(穩和)함의 상징(象徵)인 양(羊) 같은 뿔들은 미국정부(美國政府)가 가진 두 개의 기본적(基本的)인 원칙(原則)들, 곧 공화정체(共和政體)와 개신교주의(改新敎主義)에 표현된 바와 같은 미국정부(美國政府)의 성질(性質)을 잘 나타내고 있다. (4 예언 277). 


○.우리 앞에 있는 전망

예언에는 개신교주의(改新敎主義)를 새끼 양 같은 두 뿔을 가졌으나 용(龍)처럼 말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용(龍)의 소리를 듣기 시작하였다. 일요일운동(日曜日運動)을 추진(推進)시키는 사단적인 세력(勢力)이 있지만 숨겨져 있다. 그 일에 종사(從事)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그 운동의 결과(結果)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명(誡命)을 지키고 있는 자들이여! 우리가 마치 그런 상황을 은혜(恩惠)로 받아들이기나 하는 것처럼 잠잠하고 있지 말라.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擁護)하기 위하여 우리는 투옥(投獄)과 재산(財産)의 상실(喪失), 그리고 생명의 위험(危險)을 무릅쓰고 계속해서 전쟁을 수행(遂行)해야 할 전망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인간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무효화(無效化)되고 있다. (리뷰 1889.1.1).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첫째 짐승은 용에게서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받는다. 요한계시록 12:9과 20:2은 용의 정체가 사탄인 것을 확인해 준다. 사탄은 교활한 적이며, 이 땅의 권세를 통해 활동한다. 요한계시록 12장 3-5은 이 "용", 즉 마귀가 "남자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그를 죽이려고 시도했다고 기록한다. "남자아이"는 후에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게 되었다. 물론 이 아이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아기 그리스도를 멸망시키기를 바라는 사탄은 헤롯과 제국 로마를 통해 일했다. 예수의 생애 말기에 로마 총독 빌라도는 그리스도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로마 사형집행인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받았으며, 로마 군인은 그를 창으로 찔렀고, 그의 무덤을 지켰다. 요한계시록 13:2에 따르면, 이교 로마를 통해 활동하고 있는 용인 사탄은 여기 새롭게 등장하는 짐승에게 그 정부의 권세를 내줄 것이다.


○.“용(龍)은 일차적으로 사탄을 상징하지만, 이차적인 의미에서는 로마제국을 상징한다. 용에게서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받은, 로마제국 다음에 일어나는 세력은 명백하게 교황 로마이다…. 역사가 플릭(A. C. Flick)은 정치적 로마의 잔해에서 로마교회라는 '거대한 형태'로 큰 도덕적 왕국이 일어났다"라고 설명한다. (SDA 성경주석, 14권, 555).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깊은 일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영감받은 페이지들에 주어진 “계시록”이란 바로 그 이름이 이것이 인봉된 책이라는 진술과 모순된다. 계시란 나타내는 것이다. 주께서 친히 당신의 종에게 이 책에 포함된 비밀들을 나타내셨고, 그것들이 모든 사람에게 연구되도록 공개되기를 주께서는 계획하셨다. 계시록의 진리는 요한의 시대에 살던 사람들과 같이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 예언 중에 묘사된 광경 중 더러는 과거의 것이며 어떤 것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하늘의 왕과 어두움의 권세 잡은 자들 사이의 대쟁투의 종말을 보여 준 것이며 어떤 것들은 재창조된 세상에서의 구원 얻은 사람들의 승리와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행적, 584)


○.구속(救贖)받은 자들이 일제히 다음과 같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는 하늘 공간에 메아리치고 또 메아리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 7:10). 천사들과 스랍들도 소리를 합하여 찬송한다. 구속받은 자들은 사단의 세력과 악의를 보아왔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권세 외에는 어떤 능력도 그들을 승리자가 되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깨닫는다. 그 빛나는 무리들 가운데는 마치 자기 자신의 능력과 선행으로 승리한 것처럼 구원을 자기 공로에 돌리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이 어떠한 일을 하고 어떤 고난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오직 모든 찬미의 내용과 모든 찬양의 주제는 구원하심이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다는 것이다. (쟁투, 665)


○.사단은 진리와 너무나 흡사한 모조물을 제시하므로 진리가 요구하는 극기와 희생을 좋아하지 않고 속임수에 빠지기를 좋아하는 자들을 속인다. 그러나 비록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진리를 알고자 정직하게 바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사단이 자신의 권세 아래 붙들어 둘 수 없다. 그리스도는 진리이며,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요 1:9)이시다. 진리의 영은 사람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하여 보내신 바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 아들의 권위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 7: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는 선언이 내려 있다. (쟁투, 528)


○.이제 사단의 죄는 아무런 핑계할 여지 없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는 거짓말쟁이요 살인자로서의 올바른 본성을 드러냈다. 만일 그가 하늘 거민을 지배할 권세를 얻었을 것 같으면 자기의 권세 아래 있는 인류를 지배한 것과 똑같은 정신으로 하늘 거민들을 지배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나타났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함으로 자유와 높임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그 일이 속박과 타락을 초래한다는 것이 드러났다.”(쟁투, 502)


○.로마교의 권세 아래 있는 세계의 상태는 선지자 호세아의 말이 분명히 성취된 사실을 실증하였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仁愛)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호 4:6, 1, 2).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결과는 이러하였다.”(쟁투, 60)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의 육성으로 말씀하신 율법에 결함이 있어서 어떤 특정 부분이 제거되었다고 사단은 이제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주장은 그가 세상에 가져올 마지막 대기만이 될 것이다. 그는 율법 전체를 공격할 필요가 없다. 만일 그가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의 한 조항에 대해 부주의하게 할 수 있다면 그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그 까닭은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약 2:10)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율법의 한 조항을 깨뜨리는 데 동의함으로 사단의 권세 아래 들어가게 된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을 인간의 법으로 대치시킴으로써 세계를 지배하고자 할 것이다. 그런 일이 예언되어 있다. 사단을 대표하는 큰 배교자의 권세에 대하여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경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되“(단 7:25) 리라고 발표되어 있다.”(소망, 763)


○.이리하여 온 세계는 나의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지상의 통치자, 세상의 왕이 될 것이다. 나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의 마음을 조종해서 하나님의 안식일을 특별한 멸시의 대상이 되게 하겠다. 

표징? 나는 일곱째 날의 준수를 지상의 권위에 대한 불충 성의 표징으로 삼겠다. 인간의 율법을 매우 엄하게 만들어 남녀들로 하여금 감히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겠다. 음식과 의복의 부족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세상과 연합할 것이다. 세상은 전부 나의 통치 아래 있게 될 것이다.””(선지, 184)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헬라어 카라그마(charagma)는 날인(徐印)된 표 또는 새겨진 표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새겨진 우상도 뜻한다(행 17:29 참조).

 카라그마는 상용 문서들에서 사용된 로마제국의 도장과 로마 동전에 사용된 제왕의 압인(押印)을 일컫는 전문 용어였다. 이 단어는 동물을 낙인(格印)찍는데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어떤 고대의 관습에도 사람에게 카라그마를 낙인찍었다는 증거는 없다(예를 들면, 노예에게 표를 하기 위하여 사용된 단어는 스티그마타(stigmata)였다. 갈 6:17 참조), 이것은 사단적 삼위에 속하는 신분의 표로서 이마에 짐승의 표를 찍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암시한다. 하나님 백성의 이마에 쳐진 하나님의 인과(계7:1-4) 사단적 삼위의 경배자들에게 쳐진 표는 종말 때에 있을 두 무리를 구분 짓는다. 


○.개신교(改新敎)가 세속(世俗) 세력(勢力)과 연합하여 그들의 조상(祖上)들이 가장 심한 박해(迫害)를 받은 거짓 종교를 지지(支持)하게 될 때; 국가가 법령을 시행하고 교회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그 권한을 사용할 때, 개신교 미국은 교황권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할 것이며 국가적 파멸로 끝날 뿐인 국가적 종교 배반이 있을 것입니다. 타임스, 1910년 3월 22일).


○.오른손…이마. 손이나 이마에 받는 이 표는 사람의 노동(손)뿐 아니라 사람의 신조(信條)도 영향을 받는 것을 지적한다. 이 구절은 두 계층, 즉 단지 편의주의로 이 짐승의 법령에 복종하는 자들과 개인적인 확신으로 그렇게 하는 자들을 지적할 수도 있다.


○.본문은 최후의 위기에 그분의 계명들을 지킴에 안식일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현저한 표가 되는 것처럼, (제칠일 안식일과 대조적으로) 거짓 안식일인 짐승의 표가 짐승에 대한 순종의 표가 될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순종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는 것이다. “현재는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는 것, 혹은 일요일 준 수가 그 자체로서 ‘표’가 아닐 수 있으나, 이 두 가지는 마지막 때의 강제 시행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고대에 하나님 백성의 표가 되었던 안식일 준수(출 31:13; 겔 20:20)는 다시 하나님을 첫째로 삼는 사람들을 세계 앞에 드러내기 위하여 전방에 설 것”이라는 존슨(William G. Johnsson)의 말에 확실히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짐승의 수(數). 

  짐승은 이미 결론적으로 그 신원이 파악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숫자는 이것에 대한 확정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666의 의미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 주제에 대해 가장 초기에 쓴 사람 중 하나는 이레니우스(AD 130년경~202년경)였다. 그는 짐승을 적그리스도로 파악했으며 그의 이름의 철자를 숫자로 나타낸 값을 더하면 666이 된다고 믿었다. 그는 간혹 거룩하다고 간주하는 이름 테이탄(Teitan)을 가장 가능성이 큰 이름으로 제시했다. 그는 또한 가능성이 훨씬 적은 이름으로 라테이노스(Lateinos)를 제시했는데, 이는 다니엘이 본 넷 중 마지막 왕국의 이름이다. 동시에 그는 “그러므로 많은 이름이 언급된 숫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고 해서, 추측하고 등장하는 모든 이름을 궁리하는 것보다는 예언이 성취되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욱 확실하고 덜 위험하다”(Against Heresies v. 30.3; ANF, 1:559)라고 경고하였다. 이레내우스 당시부터 666은 많은 이름에 적용되어 왔다. 많은 이름의 숫자의 합이 666이므로 숫자만으로는 그 짐승의 신분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짐승의 신원이 이미 파악되어 있으므로 666이라는 숫자는 이 세력과 관계가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사가 18절에 담긴 정보를 예언적 진술의 이 시점에서 요한에게 줄 타당한 이유가 없을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 널리 퍼진 해석은 666이 로마 교황의 명칭 중 하나인 “하나님의 아들 대리자”를 의미하는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Vicarius Filii Dei)를 나타낸다는 것이었다. 이 명칭을 구성하고 있는 글자의 숫자적 값을 합하면 다음과 같이 666이다.


V 5

I 1

C 100

A

R

I 1

V 5

S


F

I 1

L 50

I 1

I 1


D 500

E

I 1


○.666

이 해석은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파악한 것, 즉 역사적인 종교개혁의 개념에 기초하였다. 이 해석의 주된 옹호자는 안드리아스 헬위그(Andreas Helwig, 1572~1643년경; 참조 L. E. Froom,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2:605~608)였다. 그의 시대 이후로 많은 사람이 이 해석을 채택하였다. 본 주석은 이 짐승을 교황권으로 파악하므로, 비록 이 해석이 제공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이 암호문 가운데 암시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짐승을 이렇게 제시한 견해를 지금껏 제시된 최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Vicarius Filii Dei)라는 칭호에 대해 1915년 4월 18일 자 가톨릭 잡지 Our Sunday Visitor는 “교황의 면류관에 있다고 생각되는 글자들은 무엇이며, 만약 있다면 그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교황의 주교관(主敎冠)에 새겨진 글자들은 이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를 의미하는 라틴어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이다. 가톨릭 교인들은 가시적 조직인 교회는 가시적인 수장을 가져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라고 보도하였다(3쪽). 1914년 11월 15일 자 판은 라틴어 숫자를 합해서 총 666임을 인정하면서도, 많은 다른 이름도 이러한 합에 도달한다고 선언하기를 계속하였다. 1941년 8월 3일 자 7쪽에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라는 주제가 다시 논의되었는데, 이 칭호가 교황의 삼중관에 새겨져 있지 않다고 진술되었다. 삼중 관에는 어떤 글자도 새겨져 있지 않다고 그 잡지는 확언하였다(7쪽). 가톨릭 백과사전(Catholic Encyclopedia)은 주교관과 삼중 관을 구분하여, 삼중 관은 비 집 전용 장신구이고 주교관은 집전용으로 기술한다.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가 삼중 관에 새겨져 있는가 주교관에 새겨져 있는가 하는 문제는 진실로 요점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 명칭이 교황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은 공인된 것이므로, 예언의 목적을 위해서는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계 13:15~18, 재림교주석)


○.(첫째), 최후(最後)의 위기(危機)의 때에 경배(敬拜)가 쟁점(爭點)이 될 것이다. 최종적 시험은 경배를 거부(拒否)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경배(敬拜)하느냐에 달려있다. 다니엘 3장의 우상(偶像)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묘사(描寫)하고 있다. (단 3:5-6). 

하나님만이 경배(敬拜)를 받으시기에 합당(合當)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죽도록 충성(忠誠)하는 것은 필수적(必須的)이다. (계14:7, 19:10, 22:8-9).


○.(둘째), 짐승의 우상(偶像)이 상징(象徵)하는 것은 사탄이 각 시대를 통하여 사용했던 그의 이중전략(二重戰略)이 종말(終末) 때에 부활(復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중전략은 기만(欺瞞)과 강제(强制)이다. 짐승의 우상(偶像)은 제도(制度)와 조직(組織)과 그 과정(過程)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것들은 그 형태와 행위에 있어 짐승의 권세(權勢)를 꼭 빼닮을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정치(政治)와 종교(宗敎)가 연합(聯合)하게 될 것이다.


○.짐승의 우상(偶像). 

  그렇다면 짐승의 우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기별(奇別)에서 말한 짐승, 곧 두 뿔 가진 짐승이 경배하라고 강요하는 그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첫째 짐승, 곧 표범 같은 짐승인 법왕권(法王權)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우상’은 자기의 교리(敎理)를 강요하기 위하여 국권(國權)의 도움을 구(求)함으로 생겨나게 될 배교(背敎)한 개신교(改新敎)도들의 단체(團體)를 나타낸다.” (각 시대의 대쟁투, 445)

오른손에나 이마. 이마는 마음을 대표하고, 오른손은 행위나 활동을 대표한다.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

댓글목록

이봉주님의 댓글

이봉주 작성일

문장이 길다 보니 내용이 짤렸군요
첨부파일로 보시면 잘리지 않는 전체 문장을 볼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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