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세 가지 우주적 기별 10. 사탄의 마지막 속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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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3-05-29 11:44 조회2,87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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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연구 범위 ∥ 계 12:9, 계 16:13, 14, 살전 4:16, 17, 겔 8:16, 겔 20:1~20, 계 18:4, 5
▣기억절 ∥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핵심 ∥ 바벨론의 포도주는 치명적인 속임수로 영혼을 멸망으로 이끈다. 그 속임수에서 보호받는 길은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데 있다.
*핵심어 : 속임수, 말씀
▣도입 질문 : 좋은 물건인 줄로 믿고 샀다가 아닌 걸 알고 후회한 적이 있다면?
▣토의 질문
일. 사탄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가(계 12:9)?
⇒온 세상 사람들
「마지막 때의 맥락에서 예수님은 강력한 경고를 하셨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막 13:2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잠 14:12).” 사탄은 아름다운 모습과 달콤한 말로 아담과 하와를 속여 생명을 잃게 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양심적이고 바른 길이라고 확신하는 중에 무서운 죄를 범하는 이유는 그들의 양심이 사탄에게 기만당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유대인들, 2차대전의 원흉 히틀러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마지막 시대에 사람들은 더욱 참과 거짓을 혼동하게 될 것인 바, 대혼돈의 시대에 유일의 안전한 길은 불변하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 유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한지 악한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살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따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며, 모두 부패했(렘 17:9, 롬 3:9~18)기에 우리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는 것은 조만간에 무언가 실수를 하거나, 심지어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거의 확실한 방법이라고 한다. 자신의 정당성을 완전히 확신하는 사람들에 의해 여러 시대에 걸쳐 많은 악행이 자행되었다. 그들이 “옳아 보이는 길”을 따른 결과였다.」
월. 마지막 때에 어떤 속임수가 온 세상을 미혹할 것인가(계 16:13~14, 18:2, 23)?
⇒귀신의 영의 주술과 이적
귀신이 역사하는 강신술은 여러 모양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맨손으로 배를 갈라 암덩어리를 꺼내는 것과 같은 신유의 기적, 죽은 자를 불러내는 초혼, 초자연적인 현상들,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심령술(최면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 등이 그것이다. 특히 죽은 자를 불러내는 이적은 놀라운 능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재림 때까지 무덤 속에 그대로 있다고 말한다(전 9:5, 욥 19:25~27, 살전 4:16, 계 14:13). 소위 죽은 자의 영혼이라는 것은 귀신이 그렇게 변장하여 나타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그러나 사탄은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람이 죽음으로 사탄의 거짓말이 탄로나자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기상천외한 새로운 학설로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
「바벨론의 속임수의 큰 기둥은 죽음에 대한 그릇된 이해인데, 그것은 영혼 불멸 사상에 중심을 두고서 강신술의 기만적인 영향력에 길을 열어준다... 죽은 어머니나 자식,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건다면 그런 경험에 얼마나 쉽게 속겠는가?
이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리고 그 마지막 날이 가까워질수록 분명히 다시 일어날 일이다. 유일한 보호책은 성경의 가르침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죽음은 잠과 같다는 그 가르침을 굳게 붙잡는 것이다.」
화. 사탄의 또다른 큰 속임수는(겔 8:16, 왕하 23:5,11, 롬 1:25)?
⇒피조물 숭배
태양은 놀라운 에너지원이지만 하나님의 창조물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고대 바벨론으로부터 시작된 태양 숭배가 이스라엘과 기독교 안에까지 흘러 들어왔다. 오늘날 기독교는 태양 자체를 숭배하지는 않으나 태양의 날인 일요일 예배를 통해서 바벨론의 태양신 종교를 답습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 보다 피조물들을 더 높이고 숭배하는 거짓종교에 기만당하고 있다.
「콘스탄티누스는 태양 숭배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저명한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은 “태양은 콘스탄티누스의 불굴의 인도자이자 보호자로 널리 찬양을 받았다”(Edward Gibbon, 로마 제국 쇠망사, 12)고 기록했다. 서기 321년 콘스탄티누스는 최초의 “일요일법령”을 제정하였다. 이 칙령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행정관들과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쉬게 하고 모든 작업장을 닫게 하라”고 반포했다. 이 법은 황제의 신민들에게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로마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요일 준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황제와 교황은 계속해서 국가 법령과 교회 평의회를 통해 일요일을 유일한 예배일로 제정했으며 그런 결과로 오늘날에도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고 있다. 이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믿거나 실천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엄중한 진리를 보여주는 강력한 예이다.」
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충성심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겔 20:1~20)?
⇒안식일을 준수함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신 것은 우상숭배가 아닌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충성은 우상 대신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침례교회 표준 요람의 저자인 에드워드 히스콕스(Edward T. Hiscox) 박사는 1893년에 수백 명의 침례교 목사들에게 일요일이 기독교 교회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강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목할만한 설명을 남겼다.
“[일요일이] 이교주의의 표로 낙인되고 태양신의 이름으로 지명된 후 교황의 배도에 의해 채택되어 개신교회의 신성한 유산으로 전수된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1893. 11. 13, 뉴욕 목회자 협의회)
에스겔 20장은 이스라엘이 이교의 관습을 버리고, 거짓 신들(본문에서는 “이집트의 우상들”) 대신에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간절한 호소이다. 세 천사의 기별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벨론이 무너졌”기 때문에 “창조주를 경배하라”고 비슷한 호소를 하신다. 다시 말하지만, 안식일과 그에 대한 충실함은 마지막 사건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목. 바벨론에 속해있는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계 18:4~5)?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치 말고 재앙을 면하라
죄에 참예하는 것은 거짓교리를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생각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모든 것을 말한다. 죄의 유혹은 인간의 죗된 본성을 자극함으로 그것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직 그분의 은혜를 붙잡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믿음은 반드시 순종으로 나타난다. 마지막 때의 강력한 속임수에서 보호받는 길은 바른 진리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데 있다.
「믿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그분의 은혜는 우리의 과거를 속죄하고 우리의 현재에 능력을 주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순종케 하신다(롬 1:5).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교회에 속해 있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하늘이 호소하는 것은 거기에서 믿음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안식일을 준수하는 재림교인들에게 호소하시는 것은 모든 자기중심적이고, 인간적인 시도를 버리고 죄의 정죄와 속박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믿음으로 경건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러면 계명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실함(신 4:6)이 세상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되었을 것처럼, 우리의 신실함도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으며 인류가 바벨론에서 나오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적용, 결심
☆마지막 때의 교묘한 속임수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금 어떻게 해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