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과 마음에 새기는 에베소서(질문, 대답, 설명) 09/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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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09-22 05:29 조회3,546회 댓글0건본문
제14과 마음에 새기는 에베소서
(9월 30일 안식일 / 일몰: 오후 18시 18분)
연구 범위: 엡 1:1~6:24
기억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8~10).
런던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명소인 런던 아이(Eye) 회전 관람차에 올라타곤 한다. 템즈강 14미터 상공에서는 빅벤, 국회의사당 그리고 수많은 유서 깊은 궁전과 대성당 등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신약학자인 톰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는 말한다. "에베소서는 런던 아이처럼 바울의 나머지 서신과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바울서신 중 가장 길거나 방대한 분량은 아니지만, 숨막히는 전체 풍경을 한눈에 보여준다. 회전차가 돌아갈 때마다 우리는 주제들을 하나씩 전망해 볼 수 있다"(톰 라이트, 모두를 위한 바울서신: 옥중 편지, 2004, 3).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지역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 이 편지는 마치 바울이 모든 곳의 신자들과 그들이 존재하는 모든 곳의 교회를 향해 편지를 보낸 것처럼 읽힌다. 시대를 초월하는 이 편지에서 바울이 제시하는 "숨막히는 전망"은 오늘날 우리의 세계와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각 장을 살펴보면서 에베소서에 담긴 진리가 신앙인으로서의 우리의 삶에 어떤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지를 염두에 두고 읽으라.
*학습 목표
- 깨닫기: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연합하여 세계의 화평을 이루는 자로 부름 받았다.
- 느끼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본받아 그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한다.
- 행하기: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소망을 주신 은혜를 힘입어 생활 속에 화평을 이루도록 힘쓴다.
TMI 위로
2. 구원의 모든 과정과 계획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엡 1:10)
*답: 예수 그시르도 안에서 통일된 하나됨의 경험을 주셨다.
3. 우리가 적용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구속에 나타난 관계적 특징은 무엇입니까?(엡 2:13~16)
*답: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다.
4. 바울이 신자들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엡 3:21)
*답: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하기 위하여.
5.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엡 4:20~21, 32)
*답: 교회가 세상의 풍조에 떠내려가지 않고 새생명으로 세상에 드러나서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말은 어떻게 하라는 의미입니까?(엡 5:1)
*답: 희생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7. 전체 주제를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싸우라고 부름 받았습니까?(엡 6:10~20)
*답: 화평을 위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하여 싸워야 한다.
결론
에베소서는 창세 전부터 예비된 구원의 계획에서 영광의 미래에 이르는 구원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의 고귀한 희생은 신자들의 모든 행동의 모본과 근거가 된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를 갈라놓던 장벽은 무너지고 교회는 하나로 연합하며 화평을 위한 쟁투에 참여해 하나님의 영광을 온 우주에 널리 알린다.
9월 24일(일) 그리스도 안에서 복 받음
혹자는 에베소서를 신약성경의 알프스라고 말했다. 에베소서 1장에서 등산 가이드인 바울은 우리를 순식간에 산등성으로 안내한다. 우리는 곧 숨이 차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에베소서 1장을 묵상해 보라. 특별히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산의 어떤 봉우리가 보이는가?
*답: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안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예정된 것과 그분 안에 있으면 그분을 머리로 삼은 교회의 지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부하는 각자가 대답할 질문이다.)
엡 1:3~14은 바울이 구원의 계획이라는 광대한 풍경 속에서 우리를 복된 장소로 안내하면서, 산 정상에서 지평선의 각 봉우리를 알아보게 도와주는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 풍경은 영원 전의 과거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역사를 통해 영광의 미래에 이르는 구원의 역사 전체를 포괄한다.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은 "창세 전에"(엡 1:4) 시작된 신성한 계획을 따라서, 현재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엡 1:7, 8, 13, 14 참조), 마지막 때에 완전하고 영광스럽게 성취될 것이다(엡 1:9, 10).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모이고 연합될 것이며, 하나님의 "충만한 때의 경륜"(엡 1:10, 흠정역)이 성취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엡 1:9). 또 현재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 중심의 구원이 "만물"을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광범위한 계획의 중요한 부분임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 감사가 샘솟는다. 엡 1:15~19에서 바울은 신자들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모든 권세들 위에 영원토록 다스리시는(엡 1:20~23),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바울은 우리를 또 다른 가파른 오르막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오늘날 이 높은 산 정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교훈> 높은 상 정상의 봉우리들을 안내하는 지도처럼 에베소서는 신자들에게 영원 전의 과거에서부터 영광의 미래까지의 구원의 역사를 포괄하여 보여준다.
<부가설명> 깔뱅 주의 자들은 구원이 개인적으로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론을 주장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속죄는 구원받을 사람들만을 위한 제한적인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에베소서 1:4,5절이 그렇게 인용되는 구절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창세 전에 우리를 택했다고 한 말씀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택함과 예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것임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예정과 택함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개개인에 관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구원이 예정되고 택함을 받는 것이다. 대 전제가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인류가 타락한다면 말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때 구원받도록 예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라고 하신 것이다. 예정은 구원받는 방법이었고 구원받을 개인이 아니다. 지구 상의 어느 시대 어떤 사람도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구원받도록 예정되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구원 예정 안에 들어온 사람이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이 구원의 경륜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안에 포함된 사실 중에 하나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것은 곧 구원의 방법이 예정이라고 표현해도 틀린 것이 아니다.
9월 25일(월)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구속하심
에베소서 2장을 읽으면서 다음 질문에 답해 보라.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무엇인가?
*답: 예수님을 믿는 신앙공동체인데 곧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하게 형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성전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이미 하늘에 앉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엡 2:4, 새번역). 이 두 단어는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희망으로 가득 찬 단어임에 틀림없다. 엡 2:1~10에서 바울은 수신자들의 암울한 과거를 묘사한다. 다른 모든 인류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하나님을 반역하는 경향 속에 죄와 사탄이 지배하는 삶을 살았다(엡 2:1~3).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그들과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1)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한다. (2)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천에 함께한다. (3) 하나님이 우리를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앉히셨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관식에도 참여한다(엡 2:4~7). 우리는 우주를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역사의 방청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은혜(엡 2:8, 9) 때문에 이러한 놀라운 행동을 하시며, 신자들이 예수님과 연합하여 "선한 일"을 실천하기를 원하신다(엡 2:10).
엡 2:1~10이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여 살고 있음을 가르친다면, 엡 2:11~22은 우리가 그분의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연합하여 산다고 가르친다. 예수님의 죽음은 신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립하는 수직적 은혜(엡 2:1~10),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수평적 은혜(엡 2:11~22)를 모두 가져다 준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서로를 멀어지게 하는 율법의 오용을 포함하여 이방인과 유대인을 가르는 모든 벽을 허무셨다(엡 2:11~18). 예수님은 또한 신자들로 구성된 놀랍고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신다. 한때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데 배제되었던 이방인들이 이제 유대인 신자들과 함께 하나가 된다. 우리도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엡 2:19~22)인 하나님의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그 은혜가 우리를 함께하게 한다.
엡 2:8~10은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틴 루터는 이 구절에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은혜를 발견했고, 종교개혁의 핵심적인 확신도 발견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 온다는 것이다. 런던 올더스게이트에서 회심을 경험한 지 18일 후인 1738년, 존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마음 깊은 곳의 외침"과 "새로운 운동의 선언문"을 설교했다. 설교의 본문은 엡 2:8이었다(스키빙턴 우드, A. Skevington Wood, 이상하게 따듯해지다. 웨슬리와 복음주의적 각성, 1984).
<교훈>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과 높여짐에 연합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과의 장벽을 허물고 연합하여 거룩한 성전을 구성하는 일부가 된다.
<부가설명> 아담의 모든 자손은 아담이 언약을 어기자(호2:7) 아담 안에서 다 사망이되었다(고전15:22). 그래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 되었다. 그런데 말씀 하나님께서 마지막 아담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아담의 사망을 십자가에서 처리하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아담의 자손들은 마지막 아담 예수님을 믿음으로 부활의 생명 곧 영생을 얻고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은 이 부활의 생명으로 다 무너지고 한 분 예수님 안에서 의인이 되었다(롬5:19). 이제 그리스도 안이라는 공동체로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 새로운 인종이 되는게 곧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사망의 세상에 생명을 가진 유일한 인종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상태를 잘 지키고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열심히 전파해서 많은 아담의 자손들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연합과 사랑과 화평을 누려야 한다.
9월 26일(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왜 기쁘고 중요한 일인가?(엡 3:).
*답: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지혜를 우주에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도 이 구원의 생명에 동참하도록 하는 은혜를 누린다.
교인들이 교회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할 때에 듣는 우리는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우리 중 가장 열정적인 사람도 에베소서 3장에 기록된 바울의 교회에 대한 열정적인 증거에는 미치지 못한다. 바울은 에베소의 신자들을 위한 그의 기도에 대한 보고 중에(엡 3:1, 엡 1:15~23)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만드셨는지(엡 3:2~13) 논하기 위해 잠시 중단하였다가 기도 보고로 돌아가 마무리한다(엡 3:14~21).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또는 "신비"에 관한 중요한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
• 영원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대한 "비밀" 또는 "계획"을 생각하신다(엡 3:3~5, 9, 11).
•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통해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그 계획이 "성취"되었다(엡 3:11, 엡 2:11~22 비교).
• 바울은 계시를 통해 교회의 "신비"와 이방인이 그 계획의 완전한 동역자가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배운다(엡 3:3~6).
• 바울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엡 3:8, 9)을 전파하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 참여한다.
•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로 구성된 교회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엡 3:10)를 보여주며 다가올 심판을 선포한다(엡 6:10~20 비교).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려는 계획(엡 1:10)은 현재 진행 중이며,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교회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바울로 하여금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바울이 교과를 읽고 있는 당신을 위해 엡 3:14~21에 기록된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바로 당신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엡 3:19)으로 충만해지기를, 그리고 하나된 교회 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비밀에 온전히 참여하기를 기도하는 바울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교훈>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각종 지혜가 드러나고 이 계획의 동역자인 신자들의 삶을 통해서도 나타나게 된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그 이름이 여호와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로 계신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는 한 이름을 가지신다. 그 이름이 ‘여호와’이시다. 마28:19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라고 했을 때 주어가 아버지 아들 성령 삼위 복수(複數)이다. 그러나 이름은 단수(單數)이다. 그래서 아버지 아들 성령 삼위가 같은 한 이름 여호와이신 것을 계시하셨다. 이것을 스가랴 14:9에는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라고 계시하여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은 우주에 삼위가 유일하다고 계시하고 그 유일한 것이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여호와라는 이름 안에는 창조주의 모든 경륜과 섭리가 다 들어있다. 3장은 이것을 설명했다. ‘경륜’(經綸)이란 “오이코노미아 οἰκονομία”인데,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의중(意中)에 가지고 계신 ‘목적’과 그 목적을 이루시는 ‘방법’을 의미한다. 섭리(攝理providence)라는 말은 라틴어 ‘프로비데오’(provideo)를 번역한 말인데 성경에는 없는 말이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하나는 ‘미리 본다’는 예지(豫知)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미리 알고 대책을 세운다.’라는 의미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섭리(攝理)를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이라고 정의했고, 종교학에서는 “섭리란 신 또는 신적 존재의 피조물에 대한 계획과 의도를 말한다.”고 정의했다. 그리고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섭리를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한다. 교회에서 잘 사용하는 두 말을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했다.
9월 27일(수) 하나된 믿음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어떤 일은 그치고 다른 어떤 일은 반드시 하라고 요청한다. 그 일들은 무엇인가?
*답: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몸인 교회 공동체의 하나된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고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성장하고 교회에 주신 은사들을 바르게 활용하며 언어생활을 비롯하여 신자로서 삶이 예수님의 영광이 되고 삼위가 하나 되듯이 성도들이 교회의 모든 면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권한다.
에베소서 4장은 교회 구성원들에게 서로를 돌보라는 말로 시작하고 마친다. 그 중간 부분에서 바울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바울은 우선 일곱 가지 “하나”를 제시한다.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예수 그리스도),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다(엡 4:4~6). 우리는 이러한 영적 실체들에 의해 함께 연합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이다.
연합은 신학적으로 확실한 것이지만, 그것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엡 4:3)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은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의 활동적인 "지체"가 되는 것이다(엡 4:7~16). 모든 지체는 은사를 받은 몸의 일부로서 몸의 건강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엡 4:7, 16).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의 각 사역을 통해 모두가 유익을 얻는 활동적인 지체가 되어야 한다(엡 4:11, 12). 인대와 힘줄처럼 서로를 연합하게 기능하여 몸의 머리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자라도록 돕는 것이다(엡 4:13, 15).
한편 바울은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4)고 말했는데, 이는 초대 교회가 "사람의 속임수"로 인해 내적인 어려움을 겪었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엡 4:32)라는 마지막 호소로 나가기 위해, 신자들에게 이전의 강퍅한 마음을 버리며(엡 4:17~24), 분노와 거친 말을 피하고, 그 대신 덕을 세우고 은혜를 주는 말로 대체하라고 요청한다(엡 4:25~31).
연합에 관한 이 장은 상황이 평화로울 때는 매우 읽기 쉽다. 하지만 갈등에 휘말렸을 때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에베소서 4장은 더욱 중요한 장이다.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바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을 바로 지금 실현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교훈> 바울은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우리는 하나이지만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데에는 우리의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다.
<부가설명>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이름으로 삼위일명(三位一名)이시다. 각각 독립적인 개체이시지만 존재가 동일하고 뜻과 행함이 동일하시다. 그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사랑은 대상이 있어야 드러난다. 대상이 없으면 사랑이 증명될 수 없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동등한 사랑의 대상으로 동등한 삼위가 계신다. 삼위는 각각 개체를 가진 인격체이지만 각자 다 여호와이시다. 즉 스스로 계시는 세 개체라는 말이다. 셋이 사랑하면 한쪽은 기울어지는 것이 인간의 실상이다. 그러면 그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니다. 삼위가 기울어지지 않는 동등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때 그 사랑이 온전하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로 자존하신다. 그것이 자존하신 생명의 본질이다. 성경의 사랑은 하나님의 생명의 본질을 뜻한다. 그래서 성도들이 예수께서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3:14). 사랑하는 여부가 생명에 있는지 사망에 있는지를 알게 하는 척도가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것은 하나님은 생명이시다라는 말고 다를 것이 없다. 그리스도인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들이다(요5:24). 그러면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그러시기 때문이다.
9월 28일(목) 받은 은혜를 따라 은혜를 나누는 자
에베소서 5장을 읽으면서 바울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복음을 실천하라고 요청하는지 생각해 보라. 바울의 권면 중 당신에게 특별히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답:
에베소서 5장을 엡 4:32부터 읽기 시작하지 않는다면 중요한 주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말씀의 능력을 놓치기 쉽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는 신자로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그들로 우리를 행동의 모본으로 삼도록 부름받았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마 5:43~48 비교).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는 이 삶의 방식을 일반적인 이교도의 방식과 대조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가족의 형제나 자매로 소중히 여기기보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그것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엡 5:3, 4). 바울은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새로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런 삶의 방식에는 미래가 없다고 경고한다(엡 5:5~7).
대신 신자들은 과거의 어둠에서 돌이켜 "빛의 자녀처럼"(엡 5:8~10) 행하며 아버지의 사랑을 본받아야 한다. 다시 한번 바울은 "은밀히" 행하는 "어둠의 일"을 멀리하라고 경고한다(엡 5:11, 12). 대신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살아야 한다(엡 5:13, 14). 술취함으로 삶을 낭비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리며 "시간을 아"껴야 할 것이다(엡 5:15~21).
바울은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에게 조언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으라는 주제를 이어간다.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은 그리스도인 남편의 모본이 되고(엡 5:25~33), 그리스도를 향한 교회의 신실함은 그리스도인 아내의 본보기가 된다(엡 5:22~24).
인간의 성이라는 선물을 방탕하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남용하는 대신,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한 몸"이 된다(엡 5:28~33).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엡 5:1). 하나님의 은혜로 당신은 오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 권고를 실천하도록 부름받았다.
<교훈>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는 삶의 방식은 일반적인 삶의 양식과 대조된다. 빛의 자녀는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살며 세상에는 없는 새로운 양식으로 산다.
<부가설명> 5장은 예수께서 생축-희생 제물이 된 짐승-이 되셔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것을 생각하고 성도들이 참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존재라면 생명의 빛을 비추라고 권고한다. 요한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라고 계시하였다. 빛의 생활을 한다는 것은 빛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 빛은 물리적으로 어두운 밤을 밝히는 빛이 아니라 사망의 세상에서 생명을 얻도록하는 삶을 뜻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라고 하셨다. 빛은 도덕적 신앙적 선행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말이 거칠고 더럽고 도덕적으로 바른 삶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는 어두움의 사람이고 빛이 아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의 생명이 없는 사망의 존재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 사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5장 후반에 잘 설명했다. 우리는 빛인가? 생명의 존재인가?
9월 2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에베소서 6장을 묵상하며 우리는 교회가 평화를 이루는 하나님의 군대인 것을 발견하며 결론에 도달한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엡 1:22, 23, 엡 4:11~16), 하나님의 성전(엡 2:19~22), 그리스도의 신부/아내(엡 5:21~33)로 묘사했다. 엡 6:10~20에서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군대로 묘사하며 무장을 갖추도록 강력하게 촉구한다. 이 구절은 많은 유익을 제공하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기도 하다.
바울의 말을 군사 병기를 들라거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전투적인 태도를 취하라는 것으로 오해하기보다, 그가 연합, 덕을 세우는 말, 온유한 마음을 강조해 왔(엡 4:25~5:2)음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평화의 복음"(엡 6:15)이라고 말한다. 군대 용어를 생생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바울의 권고는 일반적인 의미의 전쟁을 수행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악과의 영적 전쟁에서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 바울은 대쟁투의 전장에 뛰어들며 우리를 하나님의 군대에 참여하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군대의 일원으로 참전할 때, 우리는 적의 세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땅의 적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교활한 장군 마귀(엡 6:11)가 이끄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 6:12)과 맞서 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적들에게 주눅들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전투에 임하시며(엡 6:10), 우리에게 가장 훌륭한 병기인 그분의 갑옷, 즉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이미 공급해 주셨다(엡 6:11, 사 59:15~17 비교). 그분의 진리, 의, 평화, 믿음, 구원,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졌다(엡 6:13~17).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앞서가시고 그분이 공급하신 갑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하고 있기에 우리는 실패할 수 없다.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가 우리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바울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엡 2:10)라 말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답: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 존재가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고후5:21, 롬5:19). 그러므로 선한 일이 자연스럽게 생활되는 것이다. 양이 양으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과 같다.
2. 바울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 3:20)라고 기록했다. 우리 안에 역사하는 능력은 무엇이며, 이 능력은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
*답: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데(요일5:11~13) 그것은 곧 생명의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이다(롬8:2). 생명의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은 생명의 말씀인 성경이 사상과 삶을 주장하는 것이다(요5:39, 행5:20, 요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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