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굳게 서도록 부르심 -(핵심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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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9-12 07:08 조회1,52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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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굳게 서도록 부르심
(9월 16일 (안) / 일몰: 오후 6시 39분)
<기억절(記憶節)>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0, 11).
<서언(緖言)>
성도(聖徒)들은 영적(靈的)인 삶의 전쟁(戰爭)터 한가운데에 살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선(善)과 사단의 악(惡)의 세력들에 의해 압제(壓制)당하는 영적(靈的)인 대쟁투(大爭鬪) 가운데에서 현재 활동 중이며 권세 있는 적(敵)의 공격(攻擊)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미래(未來)의 시대(時代)의 소망(所望) 격려(激勵)를 받고, 영적(靈的)인 전쟁터 가운데 있는 신자(信者)들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全身甲冑)를 입고 전투(戰鬪)에 임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전쟁의 승리(勝利)는 숫자나, 무기(武器)의 우세(優勢)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能力)을 간구(懇求)하고 그에 대한 확고한 신뢰(信賴)하는 것만이 승리(勝利)의 비결(祕訣)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르신 자리에 굳게 서서 서로 협력(協力)하며 주님의 능력 안에 강건(剛健)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지배(支配)를 받고 하늘 천사들의 감화(感化)를 받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흑암(黑暗)의 권세(權勢)들의 교묘(巧妙)한 공작(工作)들을 식별(識別)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의 대리자(代理者)들과 조화(調和)를 이루기 원(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행하여야 한다. 사단과 그의 사자(使者)들에게는 아무 틈도 주지 말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계속 깨어 경계(警戒)하지 않으면 원수(怨讐)가 우리를 정복(征服)할 것이다.
9월 10일(일) 출정 연설(出征演說) (Battle speech)
(Q)~우리가 혈과 육이 아닌 초자연적(超自然的)인 대적(對敵)과 싸운다는 바울의 경고(警告)는 우리에게 유일(唯一)한 희망(希望)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엡6:10~20절)
(A)~바울은 누구를 대항(對抗)하여 어떤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를 알게 함으로 이러한 주제(主題)를 과감하게 사용하여 신자(信者)들에게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분명(分明)하게 하며, 주안에서 강건(剛健)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全身甲冑)를 입고 마귀(魔鬼)의 간계(奸計)를 능히 대적(對敵)하기 위하여 영적무장(靈的武裝)으로 준비하여 대적하라고 권면하고 있으며 덧붙여 다음과 같이 권면(勸勉)한다.
(1) 교회의 사명(使命)을 추구(追求)하는 데 적극적(積極的)일 것,
(2) 삶과 증거(證據)에 영향(影響)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차원(次元)에 주의를 기울일 것,
(3) 승리(勝利)를 위한 하나님의 예비(豫備)하심을 인식(認識)할 것,
(4) 신자(信者)들 간의 연합과 협력의 중요성(重要性)에 항상 주의(注意)를 기울일 것.
바울은 우리의 승리(勝利)는 하나님의 임재(臨在)와 능력(能力)에 달려있다고 결론(結論)을 내리고 있다.
9월 11일(월) 그리스도 안에서 강건(康健)하라
(Q)~날마다 벌어지는 영적전투(靈的戰鬪)에서 “힘”과 “능력(能力)”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어떻게 사는 삶이 강건(剛健)한 삶이 되는지, 원수(怨讐)를 정복(征服)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A)~대쟁투(大爭鬪)의 영적전쟁(靈的戰爭)에 원수(怨讐)를 정복(征服)하는 힘과 능력은 신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바라보고 그분을 신뢰(信賴)하게 되면, 원수를 정복할 힘과 능력을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能力)으로 강건(剛健)하게 하시오며(엡3:16), ”성령의 검(劍) 곧 하나님의 말씀 (엡6:17)을 주시는 분은 성령(聖靈)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성령(聖靈) 안에서” 기도(祈禱)해야 한다. (엡6:18) 우리가 기도하며 주와 결속될 때 이길 힘을 준다.
9월 12일(화) 바울 서신(書信)에 나타난 대쟁투(大爭鬪)
(Q)~2. 바울 서신(書信)에 나타난 대쟁투(大爭鬪) 즉 (전투(戰鬪))의 은유(隱喩)는 그대가 처한 현실(現實)에 대해 무엇을 말해줍니까? (엡 6:11)
(A)~마귀(魔鬼)의 궤계(詭計)를 능(能)히 대적(對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全身甲冑)를 입으라. 에베소 교인(敎人)들이 강건(剛健)해져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영적(靈的)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신 갑주’는 싸움에 나가는 군인(軍人)이 방어(防禦)와 공격(攻擊)을 할 수 있는 모든 장비(裝備)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울은 그 앞에 ‘하나님의’라는 속격(俗格)을 사용함으로써 전신 갑주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나타낸다(Lincoln). 한편 에베소 교인들의 영적 싸움의 대상(對象)은 ‘마귀(魔鬼)의 궤계(詭計)’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가오는 큰 사열(査閱)을 대비(對比)하여 완전 무장(完全武裝)을 하고 서 있기를 바라신다. (원고 63, 1908).
우리의 싸움이 단지 사람과만 하는 것이라면 전신 갑주(全身甲冑)가 그다지 필요치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마귀(魔鬼)의 궤계(詭計)와 교활(狡猾)함에 맞서야 한다. 그리스도의 시험(試驗)을 통해 마귀가 쓰는 방법이 교묘(巧妙)하여 언제나 사람의 최대약점(最大弱點)에 집중(集中)된다는 것이 드러났다(마 4:1~11; 참조 고후 2:11; 엡 2:2; 4:27; 벧전 2:11; 5:8). 속임수보다 공개적(公開的)인 적의(敵意)를 다루기가 훨씬 더 쉽다. 여느 방법으로 무장(武裝)해도 그리스도인 용사(勇士)를 쓰러뜨릴 교묘(巧妙)한 공격(攻擊)에 대항(對抗)하기 위해 하나님의 갑주(甲冑)가 고안(考案)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영적(靈的)인 전신 갑주(全身甲冑)를 입고 선과 악의 대쟁투(大爭鬪)에 동참(同參)하는 그리스도의 군대(軍隊)로서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승리(勝利) 날을 향해 나아간다는 확신해야 한다.
9월 13일(수) 그러므로 굳게 서서
(Q)~바울이 동사(動詞) ‘대적(對敵)하다, 서다’(stand)를 사용한 것 굳게 서라고 말한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 단어(單語)는 왜 그렇게 중요(重要)한가? (엡 6:13~14절)을 주목(注目)하라
(A)~우리는 굳게 서야 한다. "이는 모든 일을 행(行)한 후에 서기 위(爲)함이라"라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恩惠)를 힘입어 사탄에게 굴복(屈伏)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사탄을 대적(對敵)하라. 그러면 그는 도망(逃亡)가리라. 그러나 우리가 등을 돌리면 그는 버티어 설 것이다. 바울 서신(書信)의 군사적(軍事的) 비유는 고대(古代) 전장(戰場)의 맥락(脈絡)에서 이해해야 한다. 신자(信者)들에게 ‘서라’고 한 바울의 말씀은 근접전(近接戰)에서 모든 무장(武裝)을 사용하여 굳게 서서 격렬(激烈)하게 방어(防禦)하고 공격(攻擊)하는 그 시대(時代)의 군사적배경(軍事的背景)에서 유래(由來)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萬若) 우리의 입장과 우리의 지도자(指導者)와 갑옷을 불신(不信)한다면 사탄에게 이점(利點)을 안겨 주는 결과가 된다. 우리의 현재의 사명(使命)은 악마(惡魔)의 공격에 대적(對敵)하고 그것을 저지(沮止)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돌아선다면 우리는 적에게 자신을 노출(露出)시키게 될 것이다.
9월 14일(목) 악(惡)한 권세(權勢)와의 씨름
(Q)~바울이 (엡 1:21, 3:10, 6:10~20절)에 묘사(描寫)된 악(惡)한 영적권세(靈的權勢)에 대해 다양(多樣)한 명칭(名稱)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대가 맞서는 적(敵)들의 칭호(稱號)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 (엡 6:12)
(A)~(엡 1:21, 3:10, 6:10~20절)에 묘사(描寫)된 악(惡)한 영적권세(靈的權勢)에 대해 다양(多樣)한 명칭(名稱) 즉 이 세상의 통치자, 권세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등을 사용한 이유는 권세를 뜻하지만, 그리스도는 천상(天上)과 지상(地上)의 모든 권세보다 뛰어나시다. 그분은 전 우주(宇宙)에서 최상(最上)의 권위(權威)를 가진 만군(萬軍)의 주인(主人)이시다. 그리스도가 실제 혹은 가상(假像)의 누구든지 다른 모든 존재(存在)보다 우월(優越)하시다는 진리(眞理)를 밝힌다. 그러므로 적(敵)의 세력(勢力)은 강(强)하지만 하나님이 앞서가시며 우리의 필요(必要)를 돌보시기에 신자(信者)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말미부록(末尾附錄)>***********************
⑴
우리는 사탄의 유혹과 공격에 굽히지 말고 대적해야 한다. 사탄이 "우리를 대적하여 섰다"라고 말씀 되었다(대상 21:1). 만약 사탄이 우리를 대적하여 섰다면 우리도 그를 대적해서 서야만 한다. 우리는 사탄에 대적하기 위하여 방책을 세우고 주의를 게을리 말아야 한다. 사탄은 사악한 자이며 그의 나라는 죄의 왕국이다. 사탄에 대적하는 것은 곧 죄에 대적하여 싸우는 것이다. 이는 "악한 날" 곧 유혹의 날과 심한 고통의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인 것이다.“
<만나주석 엡6:11절>
⑵
하나님의 갑주 이외에는 우리를 지켜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갑주는 우리를 위하여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입어야 한다. 즉 우리는 은혜를 간구해야만 하며 또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를 사용하여야 하며 때가 오면 그 은혜로 역사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완전히 무장하여야 하는 까닭은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인 것이다." 즉 ·····무력 또는 거짓을 통한 모든 공격과 우리에게 씌우는 협잡과. 우리를 위해 파놓은 모든 함정과 우리를 대적하려는 모든 음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이기고 쳐부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나주석 엡6:11절>
⑶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라. 에베소 교인들이 강건해져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영적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신 갑주’는 싸움에 나가는 군인이 방어와 공격을 할 수 있는 모든 장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울은 그 앞에 ‘하나님의’라는 속격을 사용함으로써 전신 갑주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나타낸다(Lincoln). 한편 에베소 교인들의 영적 싸움의 대상은 ‘마귀의 궤계’이다. ‘마귀’의 헬라어 ‘디아볼루’은 단수로서 적대 세력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며(Wood), ‘궤계’는 4:14에서 ‘간사한 유혹’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적대 세력은 인간의 배후에서 유혹하여 그리스도인들 개인은 물론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한다(4:27).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마귀의 유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적하라고 권면한다. ‘대적하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나이’은 군사 용어로서 적대자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의 수많은 유혹과 공격에 대해서 담대히 맞서서 대항해야 한다. 사실상 그리스도께서 마귀에 대해 이미 승리를 거두셨으나 아직 궁극적인 승리는 성취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궁극적인 승리가 이루어질 때까지 대적자들과 어려운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Lindemann, Mitton, Lincoln).
⑷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씨름’으로 번역된 헬라어 ‘팔레’은 ‘싸움’이나 ‘전투’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이 행해야 하는 전투의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니다. 본 절에서 ‘혈과 육’은 유한하고 연약한 인간의 본성을 가리킨다(Lincoln, Mitton).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 할 적들은 이런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 본성이 아니라 악한 영적 세력들이다. 악한 영적 세력들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은 자들에게는 위협이나 해가 될 수 없으나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계속해서 위험한 존재가 된다(Bruce, Lincoln).
(본교성경주석 엡 6장 12절)
⑸
정사와 권세.
이것은 영지주의자들이 섬기던 악한 영의 세력을 의미한다(골 2:15).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영적 세력들을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완전히 정복하시고 무릎을 꿇게 하셨다(빌 2:10).
⑹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세상 주관자들’은 본래 인간의 운명과 세상의 문제를 결정짓는 유성(流星)과 연결된 것으로 이방 신이나 로마 황제 혹은 영적 세력에게 적용되기도 하였다(Lincoln, Kent, Bruce). 이런 ‘세상 주관자들’의 특징은 ‘어두움’이다. ‘어두움’은 에베소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에 악이 지배하던 삶을 가리키며(2:2, 5:8, 11) 현세대나 이 세상을 가리키기도 한다(골 1:13).
⑺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허리띠를 띠고’는 당시의 의복으로 인해 생겨난 은유이다. 당시 의복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옷이었다(Mitton). 그래서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옷을 붙들어 매야 했다. 이렇게 의복을 잡아매는 띠는 ‘진리’이다. 여기서 ‘진리’는 복음이라기보다는 ‘진실함과 충실함’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본 절의 은유가 사 11:5에서는 ‘공의로 그 허리띠로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삶으리라’라고 기술하여 메시아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엡6:14 SDA성경주석)
⑻
의의 흉배를 붙이고.
‘흉배’는 목에서 허벅다리까지 가리는 것으로 가슴과 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은유는 사 59:17에서 하나님께 적용되고 있다. 여기서 ‘의’는 그리스도로 인한 창의(롬 3:21-26)가 아니라 올바르고 선한 도덕적 완전함을 의미한다..
⑼
(엡6: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본 절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예비한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토이마시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1) 혹자는 ‘헤토이마시아’가 사 52:7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본 절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Gnilka, Schlier,Ernst). (2) 혹자는 ‘헤토이마시아’가 시 8:1-9:14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본 절은 악의 세력과의 전투에 대항하기 위하여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eyer, Hendriksen, Foulkes, Kent, Abbott, NEB, NIV).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 절은 마귀의 궤계에 대항하여 올바로 서기 위해서 전신 갑주를 입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평안의 복음’은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현된 것으로 수직적, 수평적 화해를 초래하였다. 이 복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원수 관계에 있던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을 허물어 우주적 통일성을 이루었다(1:10, 2:14).
⑽
(엡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방패’의 헬라어 ‘뒤레온’은 온몸을 가릴 수 있는 긴 방패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이 마귀와 영적 전투하면서 방패는 ‘믿음’이다. 본 절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는 온전한 신뢰를 의미한다(Foulkes, Bruce, Moule). 한편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은 11절에서 언급된 ‘마귀의 궤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마귀에 의한 모든 공격 즉 핍박, 의심, 절망 등을 의미한다. 믿음은 이런 공격을 저지하고 승리할 힘이다(Lincoln).
⑾
(엡6:17 구원의 투구.
‘투구’는 다른 곳에서 ‘구원의 소망’으로 나타나나(살전 5:8) 본 절에서의 ‘투구’는 이미 실현된 구원을 가리킨다(Bruce, Lincoln, Mitton). 왜냐하면, 에베소 교인들이 이미 구원을 얻은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2:5).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구원은 악한 세력과의 전투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는 전신 갑주 중 하나이다(Foulkes, Lincoln).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전신 갑주 중에서 유일한 무기는 ‘성령의 검’이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는 성령에 의해서 주어진다(3:5, 딤후 3:16, 히 3:7, 9:8, 10:15, 벧전 1:11, 벧후 1:21, Mitton, Foulkes, Meyer). 본 절의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마’는 ‘복음’을 가리킨다(1:13, 5:26, 6:15, 롬 10:18, 벧전 1:25).
⑿
결심은 우리의 발의 신발과 같다.
그러므로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의 신고"(15절) 라고 말씀하였다. 구두 또는 동제(銅製) 신발은 군인이 갖출 장비 중에 중요한 부분이다(삼상 17:6).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적의 진군을 저지하기 위해 길에 몰래 뿌려 놓곤 해서 걸리게 하는 덫이나 날카로운 송곳으로부터 발이 보호된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란 말씀은 복음에 집착하고 복음을 준수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마음의 자세를 이르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길 가운데서 만날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길을 감에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길을 감에 있어서 착실히 나아가도록 하게 해 줄 것이다. 그것은 "평안의 복음"이라고 규정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모든 종류의 평안 곧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 타인들과 더불어 평안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또한, 본문은 복음을 받아들이려는 준비 단계로써 즉 회개를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신을 신어야 한다. 왜냐하면, 회개 생활의 삶으로써만 우리는 죄의 유혹과 우리의 대적의 계획에 대적하여 무장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휘트비(Whitby) 박사는 이 말씀의 뜻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너희가 싸움을 예비하고자 하면 평화의 복음으로 신을 신고 복음이 요청하는 평화롭고 조용한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라. 쉽게 노하지 말며 논쟁하고자 하지 말아라.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음과 상냥함을 나타내라. 이것은 마치 동제(銅製) 신은 병사가 덫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과 같이 너희를 많은 유혹과 박해로부터 보호하여 줄 것이다."
⒀
믿음이 우리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
본문에 "이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16절) 고 하였다. 믿음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더 필요한 것이다. 믿음은 유혹의 때를 당했을 때 모든 것 가운데서 전부가 된다. 흉배는 심장만을 보호한다. 그러나 방패로는 사방을 다 방어할 수 있다. "믿음이야말로 우리로 세상을 이기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진노에 대한 진리의 말씀에 정통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이야말로 유혹을 물리치는데 크나큰 도움이 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임"을 생각하자. 이 말씀은 우리의 목적을 위하여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구원의 유익을 받아들이며 그로부터 은혜를 입는 것은 어디나 방어할 수 있는 방패와 같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본문에서 "악한 자"라고 불린다. 마귀는 그 자신이 악하므로 우리로 하여금 악하게 만들고자 애쓴다. 그의 유혹을 "화전"이라고 불렀는데 그 까닭은 날쌔고 예측할 수 없는 신속함과 그것들이 인간의 영혼 깊은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화전"이라 함은 독 묻은 화살을 말하는 것으로 그것으로 상처를 입으면 그 부분에 불이 붙는 것처럼 독이 퍼지는 것과 마찬가지 뜻이다. 영혼을 지옥의 불에 잡아넣는 격렬한 유혹은 사탄이 우리에게 쏘는 화전이다. 믿음은 이러한 화전을 막는 방패이다. 이 방패로 화전을 받아내면 그것들은 효력을 잃어버린다. 그 화전이 우리를 맞히지 못할 것이며, 우리를 성케 하지도 못할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행하고, 그 말씀대로 살며 그 은혜를 활용할 때 유혹의 화전은 맥을 못 추고 말 것이다.
⒁
구원이 우리의 투구가 되어야 한다((엡6:17절).
즉 이 말은 "소망"의 대상이 구원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8절을 보라. 투구는 머리를 보호한다. 기초가 잘 닦여지고 잘 설립된 구원에 대한 좋은 희망은 우리의 영혼을 성결케 하며, 사탄에 의해 그것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영혼을 지켜 줄 것이다. 사탄은 우리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도록 지켜 준다.
⒂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다….
검은 병사에게 대단히 필요하고 유용한 도구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또 그 싸움에서 승리를 이룩하는 데 대단히 필요하고 유용하다. 그것은 "성령의 검"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이 검은 성령이 만드신 것으로 양쪽에 날이 날카로운 검보다 더 힘이 있고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골리앗의 검이 당대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것이었듯이 성령의 검도 그러하다. 이 검을 가지고 우리는 대적자들을 공격해야 한다. 성서를 잘 아는 것은 유혹을 격퇴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리스도께서도 "기록된바"로 시작된 말씀 인용으로 사탄의 유혹이 물리치셨다. 마태복음 4장 4, 6, 7, 10절을 보라. 이 검은 마음속에 숨어 있으면서 죄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여(시 119:11)주고 마음속에 숨어 있는 여러 가지 정욕과 더러움을 정화하고 근절하여 준다.
(16)
기도는 우리의 기독교적인 무장 가운데서 혁대 장식 구실을 한다(엡6:18절).
이 모든 은혜를 기도로 한데 묶어야 한다. 왜냐하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협조를 간구함으로 이들 영적인 원수들을 막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때와 장소를 따라 이루어져야 할 신앙의 다른 의무들이 있고 각자의 정황에 따라 행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는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형편에 따라 기도해야 하며 우리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필요에 따라 자주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에 항상 마음을 두어야 하며 다른 여러 가지 의무를 행하며 동시에 절규하는 간구해야 할 것이다. 비록 정해지고 엄격한 기도가 때때로 수행하기에 곤란한 경우가 있을지라도(다른 의무들을 그 시간에 수행해야 하므로) 경건한 절규는 절대 무용하지는 않다. 우리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 즉 온갖 일을 당할 때마다 기도해야만 한다. 공적 기도, 개인적인 기도, 은밀한 기도, 통성 기도, 단독 기도, 규칙적인 기도, 돌발적인 기도, 참회 기도, 자비에 대한 간구 기도, 은총에 대한 감사 기도 등 온갖 종류의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은 기도의 의무에 충실해야 하며, 이 의무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령의 은혜에 의해서만 수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깨어서 있어야!" 한다. 즉 기도하는 일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며 또 우리의 기도의 의무를, 감당하기 위하여 모든 기회를 이용하고 모든 사건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의 의무를 행하기 위하여 우리 마음의 모든 동작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 얼굴을 찾으라"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의 마음이 그 말씀을 따라야 한다(시 27:8). 우리는 간구하되 "항상"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한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특별한 기도의 기회도 마련해야 한다. 특별히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기도할 시간이 있을 때, 또 우리의 입장에 기도가 필요하고 있을 때, 그렇게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재의 실망이나 패배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간구를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를 위하여" 구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각각 지체되는 까닭이다. 이 세상에서 성도란 흔치 아니하고 또 만족할 만한 생활을 누리는 사람도 흔치 않다. 그들은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
(17)
(가려뽑은 기별 2 395)
교리들을 밝히 깨달아야 한다. 진리를 증거가 되도록 받아들인 사람들은 저희의 닻을 내려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닻이 저들을 견고하게 붙잡으므로 태풍과 폭풍우를 견딜 수 있게 될 것이다. 속임수들은 증가할 것이다. 우리는 반역을 명칭 그대로 서슴지 않고 반역이라고 불러야 한다. 우리는 전신 갑주를 입고 굳게 서야 한다. 이 투쟁에 있어서 우리는 사람들만을 대적하게 될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 (엡 6:12)까지도 대적해야 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그것뿐이 아니다. 우리 교인들은 에베소서 6장 10~18절의 말씀을 신중하고 감명 깊게 읽어야 한다. (2 SM 395)
(18)
배도하는 자들은 용의 말로써 음성을 발하고 있다. 우리는 성도들과 싸우기 위하여 내려온 사단의 세력들을 대적해야 한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모래 위에 섰더라” (계12:17). 배도한 자들은 하나님의 참되고 충성된 백성들을 떠날 것이며 바라 바를 상징하는 자들과 더불어 친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0). (2 SM 395)
(19)
내가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은 계시 가운데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이 넋을 잃고 있는 사람들처럼 나에게 나타나 보였기 때문이다. 저들은 저들을 그물에 걸려들게 하려고 기만자가 놓은 많은 함정을 식별할 수 있기 이전에 또 하나의 다른 깊은 경험을 가져야 한다. 이제 중간 정도에서 일을 끝내는 불완전한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는 무너진 데를 수 보 하기 위하여 충실하고 단호하며 전심을 기울이는 남녀들을 요구하신다. (2 SM 395)
(20)
우리의 모든 교회에서 모든 목사는 결정적인 증언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의존할 가치가 도무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배도가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셨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고, “예” 하고 “아멘” 하는 것이다. (2 SM 395)
(21)
(그분을 알기 위하여 346)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엡 6:13). 이 말씀을 그대의 안내자로 삼아라. 그것을 취하라. 성경 가운데서 그대에게 제공된 전신 갑주를 그대가 취하도록 모두 준비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엡 6:13, 14). (TMK 346)
(22)
(초기문집 60)
그런 때가 곧 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의 강하신 팔을 굳게 붙들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귀가 행하는 이 큰 기사와 이적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속이고 그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고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머물러 있어야 하고, 우리는 악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즉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무서워하거나 그들이 숭상하는 것을 숭상해서는 안 된다. 오직 우리는 진리를 위하여 담대하고 굳게 서야 한다. 우리의 눈이 열린다면 우리를 괴롭히고 멸망시킬 새로운 방법을 구상하고 있는 악한 천사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또한 그들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살피시는 눈이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하여 항상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에 만일 그들이 그분을 신뢰하기만 하면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실 것이다. 원수가 홍수처럼 몰려올 때, 주님의 영은 그들을 대항해서 깃발을 높이 쳐들 것이다. (EW 60)
(23)
(하늘에 179)
참되지 않은 말을 하는 모든 사람은 태초로부터 거짓말쟁이였던 그를 섬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경계태세를 취하자. 불성실함은 그것을 실천하는 자에게 더욱 자라나게 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말하노니 진리가 그대의 허리띠가 되게 하라. 그대는 믿음에 진실 돼라. 모든 핑계와 과장된 말을 버리라. 결코, 거짓말을 하지 말라. 그대 자신의 영혼과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그대의 말이 참되어지도록 하라. 하나의 거짓말이라도 말하거나 행동으로 나타내지 말라. 진리만이 반복되어야 할 것이다. 진리를 확고하게 고수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품성을 위해 긴요한 것이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 패를 붙이고”(엡 6:14). (HP 179
(24)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이것은 전투를 준비할 목적으로 모든 일을 다 행한 것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그리스도인이 전투하는 동안 자신의 최선을 다한 것에 적용하는 이들도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에게 받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특권을 절대 빼앗기지 않는다. 하나님의 갑주와 능력 없이는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지만, 인간과 하나님의 협력 없이도 승리할 수 없다(참조 산상보훈, 142).
(25)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고 영향을 미치기 위하여 서로 싸우고 있는 두 세력이 있다.
이 양편은 계속해서 모든 사람에게 역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하늘 천사들의 감화를 받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흑암의 권세들의 교묘한 공작들을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의 대리자들과 조화를 이루기 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행하여야 한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에게는 아무 틈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계속 깨어 경계하지 않으면 원수가 우리를 정복할 것이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게시되었다 할지라도 그분의 뜻을 안다고 해서 그분에게 도움을 청하는 열렬한 기도의 필요가 없어진 것이 아니며, 기도가 응답하도록 부지런히 그분과 협력할 필요가 없어진 것도 아니다. 그는 인간이라고 하는 그의 도구를 통하여 그의 뜻을 이루신다. (원고 95, 1903).
(26)
계속 교전 상태에 있는 천사들
만약 휘장이 걷히고 각 사람이, 사단의 매혹적인 관계로부터 땅의 거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들의 부주의한 태도로 인해서 사단의 전략에 말려들어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늘의 가족들이 계속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면 그들은 자만심이나 자기 과시의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군대가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과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승리를 쟁취하려고 사단의 대리자들과 계속 교전 중임을 볼 것이다(원고 32, 1900).<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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