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3. 배경 이야기 :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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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4-10-13 20:19 조회409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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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안교소그룹의 TMI나눔 : 1. 안으로-안교소그룹이 서로를 돌보고 연합하기 위한 나눔(인사, 환영, 출석, 공부 확인, 결석자 확인, 방문 계획)
2. 위로-교과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함)
3. 밖으로-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한 나눔(실천한 TMI, 실천할 TMI, 기도)
*시간에 제약을 받는다면, 한 주에는 이 주제를, 다른 주에는 다른 주제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해보자.
▣연구 범위 ∥ 요 1:1-5, 창 1:1, 요 1:9-13, 3:16-21, 9:35-41, 마 7:21-23, 요 17:1-5
▣기억절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도입 질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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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별 고찰
일. 요 1:1~5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는가?
⇒말씀이 곧 하나님
예수님을 믿기는 하나 예수님은 맨 처음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등 그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성부, 성자, 성령을 동격의 하나님으로 소개한다. 기독교는 이를 삼위일체라고 한다.
요 1:1과 18에 따르면 예수님은 말씀이시며 이 말씀은 태초부터 계셨다. 요 1:3에서는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고 하심으로 창세기 1:1의 태초보다 앞선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맨 처음부터 존재하셨다는 것이다.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음을 알 수 있다. 18절에서 그분은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분으로 소개되는데, 이는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과 일체(요 10:30)가 되실 정도로 동등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월. 요 1:14에서 어떤 중요한 진리를 말하고 있는가?
⇒성육신
요 1장에서 ‘말씀’의 원어는 로고스인데, 이는 헬라 철학에서 이성이나 원리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요한은 로고스라는 단어를 실체적인, 인격이며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했다. 요한에게 로고스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소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요한복음에서 로고스는 우리의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오셔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며 사람에게 오셔서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유한한 존재)이 된 것이다.
... ‘거하시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천막을 치다’라는 뜻이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실 수 있도록 그 백성에게 성소, 즉 천막을 만들라고 말씀하신 출애굽기 25:8을 생각하게 한다. 그와 같이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도 성육신하셔서 사람이 당신과 만날 수 있도록 자신의 영광을 가리고 인간의 육신을 입으셨다.」
화. 요 1:9-13에서 말씀이신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영접하거나 영접하지 않음
「요한복음 1:9은 그분을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라고 부른다. 그 빛은 세상을 비추어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C. S. 루이스의 말처럼, “내가 태양이 뜬 것을 믿는 것처럼 그리스도교를 믿는 것은, 빛을 볼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빛에 의해 내가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이다”(영광의 무게, 홍성사, 2019)」
참 빛이 비취는데도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거나 알지 못하고 거부한다. 그들은 심판에 이른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서론과 결론을 연결한다. 사도는 글을 쓴 이유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요 20:31)이라고 기록한다. 따라서 서론과 결론은 통일성을 보여준다. 서론과 결론은 그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주제들을 포괄하는 일관된 주제이다. 그것은 요한복음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가리킨다.」
수. 요 3:16-21, 9:35-41, 12:36-46은 서두에서 나타난 신뢰/불신의 주제를 어떻게 반복하고 있는가?
⇒
요한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거나 믿을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신하고 거절한 두 개의 큰 집단으로 나뉘어진다.
요한복음에는 ‘믿음’을 뜻하는 명사 pistis(피스티스, 헬라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대신, ‘믿다’로 쓰인 동사 pisteuō(피스투오, 헬라어)는 신약 전체에서 사용된 241회 중 98회나 사용되었다!
「이 동사는 실제로 요한복음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믿음이라는 주제가 명사가 아닌 동사로 반복하여 사용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매우 능동적인(active)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신념이 누적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매일의 삶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다.」 믿음이 이론이거나 지식에 불과하다면 마귀도 믿는다고 할 수 있다(약 2:19).
「요한복음에서 두 집단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들이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달려있다. 믿는 사람 또는 믿게 된 사람은 예수께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보이거나 꾸짖으실 때도 그분을 향해 열려 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나오며 피하지 않는다...
반면에 불신자들은 대체로 논쟁하려는 목적으로 예수님께 온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여기거나 그분이 오래된 전통을 깨고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린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분의 빛이 그들을 살피고 판단하도록 맡기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이 예수를 판단하려 한다. 이러한 태도는 국가의 영적 지도자로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받아들였어야 할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목. 요 17:1-5에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죽음으로 영광을 받으심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개념은 그분의 때, 즉 그분의 죽음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요 2:4, 7:30, 8:20, 12:23-27, 13:1, 16:32, 17:1 비교). 십자가가 바로 그분의 영광의 때이다.
십자가는 고대 로마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사형 집행 방식이었기 때문에 이 개념은 실로 역설적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이 놀라운 부조화는 그 속에 인간의 이야기와 하나님의 계획이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인성의 측면에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는 나약하고 멸시받는 범죄자로서 고통스럽게 죽으셨다.
... (그러나) 십자가는 구원과 자비의 장소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아버지께 드린 곳이다.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영광이 예수님이 겪으신 가장 깊은 수치, 즉 세상 죄를 짊어지심으로 빛나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이고 신비한 일인가!」
▣적용 : 나를 위해 성육신하신 예수님께 무엇으로 보답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