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비유 (질문, 대답, 설명) 07/27/24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4과 비유 (질문, 대답, 설명) 07/27/24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7-18 21:18 조회2,537회 댓글0건

본문

제4과 비유 

(7월 27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44분)

 

연구 범위: 막 4:1~34, 약 1:21, 사 6:1~13, 시 104:12, 단 4:10~12.

 

기억절: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막 4:24, 25).

 

이번 주는 마가복음 4장의 비유를 살펴볼 것이다. 마가복음은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중에서 가장 비유가 적다.

오랜 세월 동안 학자들은 예수님의 비유의 의미와 해석에 대해 논쟁해 왔다. 각 비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예수께서 비유를 사용하셨는지, 어떤 교훈을 주시려는 것인지, 비유를 얼마만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순전히 우화인지 등을 둘러싼 여러 주장이다. 

이번 주 교과에서 이 모든 문제를 다 살펴볼 수 없겠지만 우리는 이 비유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께서 이 비유들을 통해 말씀하신 요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 4장에는 씨 뿌리는 자, 등불, 척도(막 4:24, 흠정역), 자라나는 씨, 겨자씨의 다섯 가지 비유가 있다. 이 장의 대부분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비유를 먼저 들려준 다음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이 이어진다. 일, 월, 화요일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수, 목요일은 4장의 나머지 비유를 공부할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은 씨를 뿌리고 자라게 하신다. 그러나 결과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다. 

느끼기: 하나님께서 주시는 씨가 무엇을 제공하며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낀다. 

행하기: 성장을 막는 완악한 마음을 제하고 하나님을 믿고 그 뜻을 따름으로 성장한다. 

 

TMI 위로

2.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제자도의 위험과 성공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줍니까?(막 4:8)

*답: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어떤가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해준다.

3. 모든 종류의 땅에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합니까?(막 4:14)

*답: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씨가 뿌려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4. 예수님은 정말 외인을 어두움 가운데 두기 위해 비유로 가르치셨습니까?(막 4:12)

*답: 그들의 상태를 깨달아 주님께 나오도록 자극하신 역설적 말씀이다.

5.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기겠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막 4:25)

*답: 깊이 생각하고 복음을 깨닫지 않으면 아는 것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경고다.

6. 자라는 씨의 비유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까?(막 4:26)

*답: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가르친다. 

7. 하나님 나라의 씨가 자라게 하는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막 4:32)

*답: 생명력이다. 

 

결론  마가복음 4장의 다섯 가지 비유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나님은 성장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뿌려주신 씨가 자라서 열매 맺고 큰 나무가 되기를 바라지만 사람의 완악함은 진리를 자라지 못하게 한다. 비유는 현실을 말하지만 모든 내용이 현실과 연결되지 않고 핵심을 통해 중요한 사상을 전한다. 예수님은 지혜롭게 비유를 통해서 모두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기별을 주신다.

 

7월 21일(일)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마가복음 4:1~9을 읽어 보라. 각각의 밭은 어떤 모습이며, 그 위에 떨어진 씨앗은 어떻게 되는가?

[막4:1~9]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2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답: 길 가, 돌 밭, 가시덤불 속, 옥토, 길 가는 사탄이 물어가고 돌밭은 곧 마르고 가시덤불 속은 기운이 막혀 죽고, 옥토는 많은 수확을 한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비유를 읽을 때 사람들은 자주 해석으로 돌진하고 싶어 한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영적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비유의 핵심이 아닐까. 그렇다, 하지만 어떤 비유는 "하나님 나라는 이와 같으니라" 또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와 같은 간단한 언급 말고는 예수님은 비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다양한 서사적 특징이 가리키는 방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비유를 천천히 그리고 단순하게 분석하는 것이 좋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이렇게 살펴보면 다양한 생각을 발견할 수 있다. 동일한 씨앗이 네 가지 형태의 다른 밭에 떨어진다. 토양의 상태는 파종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비유는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라기 보다는 각 상황 안에서 완결되는 네 개의 각각의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하나, 둘 펼쳐질수록 이야기를 완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길에 떨어진 씨앗은 새들이 즉시 먹어버린다.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막 4:4).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햇볕에 타버려 결실을 맺지 못한다. 실패까지 며칠 또는 몇 주가 걸린다.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은 가시에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 씨앗은 결말에 도달하는데 더 긴 시간이 걸린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작물의 일반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고 이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씨앗의 전체 성장 기간이 걸릴 것이다.

세 편은 실패한 이야기이고, 마지막 이야기만이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성공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하나씩 이어지면서 점점 시간은 더 길어지는 것과 성공한 것은 하나뿐이라는 사실은 실패의 위험, 그리고 그 뒤에 오는 풍성한 성공을 가리킨다. 

이 비유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로서 지불해야 할 대가와 그에 따르는 위험이 두드러지지만 그와 함께 예수님을 따를 때 받게 되는 풍성한 보상도 강조되고 있다.

 

<교훈> 수확을 위한 시간은 더 길어지고 성공한 경우는 하나라는 사실은 두드러지는 실패의 위험과 함께 이를 넘어서 성공할 때 풍성한 보상이 있음을 강조한다. 

 

<부가설명> 씨 뿌리는 비유는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다. 저자가 지적한 상황은 참신하다. 네 종류의 밭은 다 특색이 있다. 그리고 저자의 지적대로 씨의 작용이 점점 길어진다. 길 가에 떨어진 씨는 사탄이 물어갔는데, 흙에 묻히지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씨가 싹이 나려면 흙에 묻혀야 하는데 길 가에 떨어지니 묻힐 여유가 없다. 이 길은 주로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릴 때 걸어가는 길을 말한다. 그런 길에도 사람이 다니는 것이 팔레스틴 밭의 현상이라고 한다. 밟혔으니까 굳어있다. 씨가 묻힐 수 없다. 세상의 사상이나 그릇된 상식이나 지식이 가득찬 사람들은 말씀의 씨가 묻힐 흙이 없는 사람이다. 돌 밭은 자갈 밭은 뜻하는 말이 아니다. 흙 아래 암반(바위)이 있는 곳을 뜻한다. 그래서 누가는 바위 위에 떨어졌다고 썼다(눅8:6). 팔레스틴에는 암반 위에 흙이 덮여 있는 밭이 꽤나 있는 모양이다. 마음에 암반이 있는 사람도 있다. 가시덤불이 있는 따은 대체로 비옥하다. 그러나 가시덤불이 욱여싸서 싹이 나도 마침내 자라지 못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옥토 마음이다. 마음을 갈아엎어서 흙을 부드럽게 하고 물주고 햇빛 받고 바람 받아서 하늘까지 잘 자라도록 날마다 굴복해야 한다. 주님 도와주소서. 

 

7월 22일(월) 예수님의 해설

 

예수님은 비유를 마치시고 이를 바로 설명해 주지 않으셨다. 마가복음 4:1에 따르면 예수님은 "큰 무리" 앞에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지만, 그에 대한 설명은 이후에 소수의 무리(막 4:10)에게 주셨다.

 

마가복음 4:13~20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어떻게 설명하셨는가?

[막4:13~20]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답: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셨다. 각 땅은 말씀을 듣는 사람의 유형이 같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지적하셨다(롬10:18,19).

 

예수님은 이야기의 세부 사항들이 의미하는 외적 요소들을 밝히시면서 이 비유를 설명하신다. 그분의 설명에 비추어 보면 이 이야기는 현실 세계를 말해 주지만 세부 사항 하나하나가 모두 현실과 연결된 것은 아닌 엄밀하지 않은 풍유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씨를 "말씀"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특별히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가리킨다. 야고보서 1:21은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말한다.

땅이 다르다는 것은 듣는 사람의 유형이 다르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해석에서는 모든 사람이 말씀을 듣는다. 그것이 모든 종류의 땅에 씨앗이 뿌려졌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르다. 길 가로 표현된 토양은 딱딱하고 새들이 씨앗을 빼앗아 간다. 예수님은 이것을 사탄이 진리를 빼앗는 것으로 말씀하신다. 돌밭은 토양이 매우 얕다. 예수님은 이것을 제자도의 대가를 받아들이지 않는 얕은 헌신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시키신다. 가시떨기 밭은 거기 뿌려진 씨앗의 성장을 막아버린다. 이것은 말씀을 막는 생활과 재물에 대한 염려를 의미한다. 한편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자라서 풍성한 작물을 생산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돌밭과 가시로 막힌 땅에 대한 설명이 가장 길다. 예수님은 돌밭 같은 땅의 청중을 설명할 때, 그들이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핍박이 오면 떨어져 나가는 일시적인 제자일 뿐이라는 대조적인 요소를 말씀하신다. 가시떨기 밭으로 비유된 사람들은 이와 반대이다. 그들은 시련 때문이 아니라 순조로운 때에 떠나간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보다는 세상의 것이 더 소중하다. 그들은 세상이 주는 것에 관심과 사랑을 집중하고 있다. 

 

<교훈> 비유는 현실을 말해 주지만 세부 사항 모두가 현실과 연결되지 않은 풍유이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의 더러운 것과 악을 버리고 생명의 말씀을 받으라 하신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는 교훈을 많이 하셨다. 비유는 듣는 사람이 스스로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무리들에게 비유를 설명하지 않으셨다. 제자들과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는 사람에게만 설명해주셨다. 무리들은 이 비유를 스스로 풀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듣고 그냥 잊어버리거나 그 뜻을 조금 생각하다가 생각을 포기하거나 그 뜻을 어렴풋이 알았으나 세상 일에 몰두하느라 잊어버린다. 그러나 한 유형의 사람들은 그 뜻을 오바르게 깨달으려고 깊이 생각하고 묻고 말씀을 찾아보며 마침내 진리를 깨닫는 사람이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며 설교를 듣고 교과를 공부하면서 길가 같은 교인이 있을 것이다. 똘 돌 밭 같은 교인, 가시덤불 속 같은 교인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대부분 길가 교인이 아닐까 심히 두렵다. 말씀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당 문을 열고 나가면서 말씀은 이미 새가 먹어버렸고 엉뚱한 대화를 하고 파트락 상에 앉아서도 대화는 설교와 상관없다. 이런 태도는 그들이 길가 교인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어쩌면 대부분 길가 교인이 아닌지 두렵다. 아무쪼록 재림 성도들이 옥토 교인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성령님 도와주소서.

 

7월 23일(화)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마가복음 4:10~12을 읽어 보라.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신 이유는 무엇인가?

[막:10~12]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답: 비유는 옥토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바르게 깨닫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이 말씀은 바르게 깨닫도록 자극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만 읽으면 비유로 가르치신 것은 외인을 어둠 가운데에 두려 하신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런 관점은 다른 장에서 예수님이 하신 행동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마가복음 3:5, 6에서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의 완악한 마음을 탄식하고 슬퍼하셨다. 마가복음 3:22~30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 마가복음 12:1~12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포도원 농부에 관한 비유가 자신을 가리켜 말한 것을 이해한다. 이는 실제로 예수님을 반대하는 그들의 음모가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어떤 끔찍한 결과가 이어질 것인지에 대한 경고이다. 만약 예수께서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면 경고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에 기록된 말씀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이사야 6:9, 10을 재구성해 말씀하셨다. 

 

이사야 6:1~13을 읽어 보라. 이사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며, 이스라엘에게 전하라고 그에게 주신 기별은 무엇인가?

[사6:1~13]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답: 이사야는 하나님 보좌의 환상을 본 후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예수께서 인용하신 그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않으려는 정신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 앞에 부족한 자신의 부정함에 압도된다. 하나님은 그를 정결하게 하시고 그에게 충격적인 기별을 맡기신다. 마가복음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는 이사야의 전체 기별과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다.

이사야 6장의 이 기별은 백성들을 놀라게 하고 일깨워서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마가복음 4:1~12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마가복음 3:35에 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막 3:35). 그러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가족이 된다. 이미 그분이 마귀에 사로잡혔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그분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사야 6장에서 인용하신 말씀의 요점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막으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입견과 마음의 완악함이 구원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이다. 

이 진리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어떤 종류의 밭이 될지는 각자가 선택한다. 예수님께 자신을 드릴지 아닐지도 모두 스스로 결정한다. 결국, 선택은 각 사람에게 달려있다. 

 

<교훈> 말씀이 숨겨진 것은 그분이 비유로 가르치신 것 때문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밭이 되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며 사람 마음의 완악함이 진리를 받지 않게 한다. 

 

<부가설명> 사람은 세상적 사고방식이 익숙하고 대부분의 경우 자기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상식과 지식과 사상에 맞지 않으면 흥미가 없어서 멀리하게 된다. 그것은 필자도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네 종류의 밭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상태다.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서 말씀을 바르게 깨닫든지 버리든지 한다. 비유는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시되는 교육방법이다. 10~!2에 하신 말씀은 이것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재림성도들도 마찬가지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은 성경 말씀은 사람의 지혜로 쓴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마음을 낮추고 땅에서 하늘같이 높으신 하나님의 생각과 길에서(사55:8,9) 나온 말씀을 성령님의 지도로만 깨달으려고 굴복해야 한다. 성경은 세상 사람의 지혜로 풀 수 없는 말씀이다(고전2:9~14). 그래서 성령을 보내셨고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학식과 경험과 상식을 다 버리고 말씀이 말씀을 해석해주는 그것을 찾을 때 바르게 깨닫는다. 그런 과정이 옥토가 되도록 마음을 갈아엎는 과정일 것이다.

 

7월 24일(수) 등불과 계량 그릇

 

마가복음 4:21~23을 읽어 보라. 예수님께서 등불의 비유에서 특히 강조하신 것은 무엇인가?

[막4:21~23]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22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답: 등불을 숨겨두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에 관한 진리가 마침내 공개적으로 드러날 것을 암시하셨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살던 집은 지역과 재산에 따라 크기와 구조가 다양했다. 집들은 공동 마당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그리스 양식을 따랐지만 정교함의 수준은 다양했다. 어쩌면 예수님이 농부의 작은 집을 두고 이야기하셨을 수 있지만 집이 크든지 작든지 중요한 것은 머지않아 예수에 대한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마가복음 4:21에서 예수님은 질문하신다.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라는 질문은 아니라는 부정적 대답을,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라는 질문은 예라는 긍정적 대답을 기대한다. 예수님은 요점을 말하기 위해 터무니없고 거의 우습기까지 한 장면을 제시한다. 등잔은 빛을 비추기 위한 것이기에, 빛을 비추지 않으면 그 목적을 상실한다. 마가복음 4:22은 비밀이 드러날 것이라는 맥락으로 이 비유를 설명한다. 숨겨둔 메시지나 사진이 공개되어서 큰 화제가 되는 것을 보면 비밀이 공개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다. 물론 예수님은 복음의 비밀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마가복음 4:24, 25을 읽어 보라. 예수님은 계량 그릇의 비유를 통해 어떤 교훈을 말씀하고 있는가?

[막4:24,25]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답: 헤아린다는 말은 저울에 달아본다는 말이다. 23절 말씀과 연결하여 생각하면 말씀을 깊이 새겨들어서 풍성히 깨달으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신선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전 세계 많은 지역의 시장에서 상인은 일반적으로 계량기로 농산물의 양을 측정하여 판매한다. 

상인은 손님이 안심하도록 판매량에 더해 계량 그릇의 무게보다 더 많은 농산물을 얹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선한 상인이 손님을 대하는 선의를 말씀하시며 우리도 진리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도록 강조하신다. 마음을 열고 빛을 따르는 자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빛을 거부한다면 이전에 가졌던 것마저 빼앗기게 될 것이다.

 

<교훈> 높은 곳에 둔 등불이 널리 비추는 것처럼 그분의 진리는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진리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자는 더욱 풍성한 빛을 받게 될 것이다. 

 

<부가설명> 이와 비슷한 문구가 마 7:2과 눅 6:38등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 두 구절들에서는 주로 타인을 비방하는 일을 삼가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반해, 이 곳 21절부터 이어지는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복음을 수용하는 마음 자세(그릇)에 대한 교훈으로 이해된다. 즉 복음을 들을 때 깊고 넓은 영적 통찰력으로써 받아들인다면 그 마음 그릇에 풍족히 채워질 정도로 이해될 것이고계속해서 더 크게 이해될 것이라는 교훈이다. 한편 본 구절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이렇다. ‘너희가 남을 재는 그 그릇의 크기로 너희의 크기가 측정될 것이다.’ 그래서 마태나 누가의 내용과도 일치할 수 있다. 그러나 21절부터 주신 교훈에 연결해서 생각할 때 말씀을 깊이 깨닫도록 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고 전제하셨다. 주의 깊이 듣고 그 들은 말씀을 잘 재어보라는 뜻이다. 성령님의 지혜로 재어보면 더욱 풍성하게 진리를 찾고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아무쪼록 재림성도들은 옥토 같은 마음 밭이 되어서 30배 60배 100배의 수확, 곧 진리르 그렇게 더 풍성히 깨달아 남은 자손으로서의 직무를 다하도록 성령께서 이끌어주시기 바란다.

 

7월 25일(목) 자라는 씨의 비유 

 

마가복음 4:26~29를 읽어 보라. 이 비유의 주요 초점은 무엇인가?

[막4:26~29]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답:  성장 과정이 초점이다. 땅이 스스러 열매를 맺는다. 자라고 열매맺으면 추수한다는 것이다.

 

마가복음의 비유는 대부분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 또는 두 복음서 모두에 유사한 기록이 있다. 그와 달리 이 비유는 마가복음에만 있다.

이 짧은 비유의 초점은 성장 과정이다. 예수님은 이것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신다. 인간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지만 진정한 성장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것은 끝없는 과정이 아니다. 이야기는 알곡이 익으면서 갑작스럽게 끝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은 이 세상의 역사에 갑작스런 종말을 가져올 것이다. 

 

마가복음 4:30~32을 읽어 보라. 겨자씨 비유의 중요한 강조점은 무엇인가?

[막4:30~32]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답: 작은 씨앗이 크게 자란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아주 작은 것이 어떻게 놀랍도록 크게 성장하는지를 강조한다. 겨자씨의 지름은 일반적으로 1~2mm이다. 이 비유에서 등장하는 식물은 아마도 아주 작은 씨앗으로 700개 이상의 씨가 겨우 1g에 불과한 흑겨자(Brassica nigra)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은 아니지만, 3m 높이까지 자라는 겨자 나무와 비교하면 아주 작은 씨앗이다. 예수님은 겨자나무 가지에 새들이 둥지를 틀기까지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시편 104:12 그리고 다니엘 4:10~12을 생각하게 한다. 시편 104편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며, 다니엘 4장은 온 세상이 그늘과 양식을 얻는 큰 나무인 느부갓네살을 묘사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요점은 아주 작게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크고 위대한 나라가 되리라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몇 명 안되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에서 온 먼지투성이의 순회 설교자를 멸시했을지 모르지만, 시간은 그분의 은혜의 왕국이 전 세계로 계속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교훈> 자라는 씨의 비유의 초점은 성장 과정이다. 진정한 성장은 하나님의 일이며 끝없는 과정이 아니다. 진리는 자라며 겨자 나무처럼 거대하게 성장할 것이다. 

 

<부가설명> 자라는 씨의 비유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출발과 성장을 가르쳐주는 비유다. 출발은 씨가 땅에 뿌려져야 한다. 씨는 예수께서 뿌린다. 교과에서 말한 대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씨 뿌림을 받았다(롬10:18,19). 이 씨는 받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결과를 만든다. 이 비유는 옥토를 전제로 한 비유라고 봐도 괜찮을 것 같다. 씨가 뿌려지면 싹이 나고 자란다. 예수님은 사람이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자란다고 하셨다. 자라는 데 사람의 공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땅이 스스로 열매을 맺는다고 하셨다.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라고 하셨다. 우리가 씨를 받아 옥토가 되었으면 성령님의 자라게 하심을 따라 잘 자랄 것이다. 성령께서 자라게 하시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겨자씨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작게 시작하지만 대단히 크게 자란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오늘날 세계에 있는 소위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실감나는 예언적 비유다. 

 

7월 26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실물교훈 2장 "씨 뿌리는 자"를 읽어 보라.

"참된 성결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 삶의 조건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전적인 헌신과 오직 주님만을 향한 봉사를 요구하신다. 그분은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기를 요구하신다. 자아를 소중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사랑이 모든 행동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 정부의 기초를 이루는 원칙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오직 이것만이 그리스도인들을 견실하게 하고 보호해 줄 수 있다. 사랑만이 시련과 시험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사랑은 희생을 통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구속의 경륜은 너무도 넓고, 깊고, 높아서 아무도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셨으므로 그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저희의 구주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저 없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구주의 영예와 영광을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다"(실물 교훈, 48).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사랑이 모든 행동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를 이루는 원칙이다." 십자가는 이 놀라운 진리를 우리에게 어떻게 말해주는가? 어떻게 하면 이런 사랑을 우리 삶에서 나타낼 수 있는가? 왜 그래야 하는가?

*답: 예수께서 우리가 죄인 되고 원수 되었을 때(롬5:8,10) 대신 죽어주셔서 사랑을 확증하셨다. 진정한 사랑은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을 드러내셨다.

2. 외인을 어둠 속에 두기 위해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모든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요일 2:2)께서 그들을 일부러 어둠 속에 두셨겠는가?

*답: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깨닫고 나와서 진리를 알도록 하는 역설이다. 

3. 등불은 침상 밑이 아니라 등경 위에 있어야 한다(막 4:21). 이 원리를 당신의 교회와 지역사회의 관계에 적용해 보라. 어떻게 하면 빛을 더 높이 들어 올릴 수 있겠는가?

*답: 예수님의 이름으로 필요를 도와주는 손길이 될 때 성취될 것이다. 

4.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를 생각해 보라(막 4:26~29). 복음의 씨앗이 자라도록 돕는 데 사람의 역할은 무엇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역할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존하는 태도가 사람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겠는가? 

*답: 사람은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고 실천할 때 이루어진다(눅17:5~10 참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