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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질문, 대답, 설명) 12/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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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9-12-19 06:54 조회5,6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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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12월 28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21분

 

● 연구 범위 : 왕상 12:1~16, 행 15:7~11, 요 11:46~53, 느 4:7~23, 스 8:21~23, 31~32.

 

● 기억절 :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느 8:12).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맡은 사명을 완수하며 하나님께 헌신했던 위대한 지도자들의 표본이다.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은 그들 속에 신실한 종이 되고픈 소망을 일으켰다. 사실 그들의 신실함은 이 연구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포함하여 성경에 등장하는 지도자들의 모본을 살펴보려고 한다. 물론 논의할 수 있는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에 모두를 다룰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번 주에 선정된 사례들은 모든 지도자에게 필수적인 교훈을 준다. 그대는 현재 자신을 지도자로 간주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이번 주의 교훈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이 지도자들의 이야기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이 그들의 생각과 생애를 변화시켰고 그 결과로 부흥과 개혁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안에서 찾은 그분의 명령에서 힘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구이며 맡은 역할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으로서 우리의 삶의 방식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중심에 두어야 한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백성에게 선한 감화를 끼치는 지도자들의 특징은 말씀에 충실한 삶과 모본 그리고 하나님을 닮은 성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목적에 이끌릴 때 경험할 수 있는 열정을 느낀다.

행하기 : 각자에게 주어진 영역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모본을 따라 겸손하게 섬기는 지도력을 실천한다.

 

➋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비결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 확고부동한 신앙과 목적을 이루려는 단호한 삶이었다. 

➍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헌신을 이끌어 냈던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솔선수범하였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본이 되는 삶이었다. 

➎ 에스라나 느헤미야처럼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것이 그들의 삶이 되는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지도자들은 비록 단점이 있을지라도 백성들에게 선한 감화를 끼칩니다. 백성들의 영성은 때로 그러한 지도자의 성품과 헌신에 크게 좌우됩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목적에 이끌려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겸손히 섬기며 봉사했습니다. 우리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12월 22일(일) 지도자들의 영향력

 

성경을 보면 우리는 훌륭한 지도자와 나쁜 지도자 또는 양면적인 성격의 지도자들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나쁜 지도자가 좋은 일을 할 때도 있고, 좋은 지도자가 나쁜 일을 할 때도 있다. 지도자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선과 악을 행하며 옳고 그른 일을 행한다. 이러한 사실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대가 지도자일 때 선이든 악이든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이다. 그대의 가정이나 직장 또는 그대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에서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아주 좋지 않다. 하지만 그대가 영적이거나 행정적인 지도자의 위치라면 또는 양면을 고루 갖췄다면 그대의 영향력은 크게 증대된다. 따라서 그대가 어느 위치에 있든지, 특히 지도자라면 그대가 성경의 원칙과 교훈들을 나타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다음의 말씀을 살펴보라. 여기서 우리는 어떤 유형의 리더십을 찾을 수 있는가? 만약 그것이 훌륭하다면 어떤 면에서 훌륭한지, 나쁘다면 어떤 면에서 나쁜지에 대해 설명해보라.

· 르호보암(왕상 12:1~16)

[왕상12:1~16]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오히려 애굽에 있는 중에 3 무리가 보내어 저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고하여 가로되 4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5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6 르호보암 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7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8 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 9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0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이 백성들이 왕께 고하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11 내 부친이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소서 12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 왕이 포악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14 소년의 가르침을 좇아 저희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고한 말씀을 응하게 하심이더라 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 르호보암은 바른 충고를 따르지 않은 좋지 못한 지도자이다. 사리 분별력이 없고 자기 권위만 크게 내세우는 유형의 지도자이다. 

 

· 베드로(행 15:7~11)

[행15:7~11]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 베드로는 올바른 판단으로 바른 결정을 하도록 이끌었다. 

 

· 요시야(왕하 23:1~10)

[왕하23:1~10]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2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왕과 함께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3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 4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버금 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을 여호와의 전에서 내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5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고을과 예루살렘 사면 산당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열두 궁성과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6 또 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7 또 여호와의 전 가운데 미동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이었더라 8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부윤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편에 있었더라 9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 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사람으로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그 자녀를 불로 지나가게 하지 못하게 하고,

※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르기로 결심하고 실천한 왕이다.

 

· 드보라(삿 4:1~16)

[삿4:1~16]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2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 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3 야빈 왕은 철병거 구백 승이 있어서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6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9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일만 인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11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 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15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16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 드보라는 협혁을 요청하고 또 협력할 줄 아는 지도자이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서 실행한 지도자이다. 

 

· 아합(왕상 21:1~16)

[왕상21:1~16]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 왕 아합의 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일러 가로되 네 포도원이 내 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나물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합의하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업을 왕께 줄 수 없다 함을 인하여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 5 그 아내 이세벨이 저에게 나아와 가로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 왕이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저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않겠노라 함을 인함이로라 7 그 아내 이세벨이 저에게 이르되 왕이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8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쳐서 그 성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인들에게 보내니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후에 10 비류 두 사람을 그 앞에 마주 앉히고 저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저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11 그 성 사람 곧 그 성에 사는 장로와 귀인들이 이세벨의 분부 곧 저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12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13 때에 비류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거를 지어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저를 성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14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포도원을 취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 아합이 나봇의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 아합은 성경에서 가장 악한 지도자로 기록된 지도자이다. 그는 자기 욕심을 위하여 무고한 백성을 죽이기를 주저하지 않은 왕이다. 

 

<부가설명>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3:1) 이 구절은 지도자의 책임이 무겁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선생은 가르치는 사람인데 그것은 배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지도자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의 지도자 교회의 지도자들은 먼저 하나님께 전적으로 굴복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바울처럼 자아가 날마다 죽어야 한다.(고전15:31)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죽지 않으면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도 많은 지도자들이 이런 상태에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오늘날도 르호보암의 유형이 있을 것이고 요시야의 유형, 드보라의 유형이 있을 것이다. 역사의 종말에 남은 자손의 지도자 된 사람들은 에스라 느헤미야의 본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솔선수범하고 스스로 말씀에 즐겨 굴복하고 말씀과 증언을 따라 생활하는 본을 보이며 죽도록 충성하는 지도자로 주님 앞에 서야 할 것이다. 

 

교훈 : 지도자들은 보통의 사람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충실한 지도자들은 백성에게 선한 감화를 끼친다.

 

 

12월 23일(월) 하나님의 눈에 악함

 

아래의 성경절들을 읽어보라. 이 지도자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이 다스리는 백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 왕상 15:26, 34 이스라엘 왕 나답과 바아사

[왕상15:26,34]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아비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 34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 왕하 13:1~3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

[왕하13:1~3] 유다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이십삼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을 치리하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더니,

 

답: 이들은 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들이다. 

 

· 요 11:46~53 대제사장 가야바

[요11:46~53]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답: 가야바는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 선 지도자였다. 

 

지도자는 백성을 영적으로 향상시키기도 하고 쇠퇴시키기도 한다. 이는 어느 영역에서든지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우리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생각이다. 위에서 살펴본 예는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성품과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헌신도는 우리가 만나는 자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다. 영적인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찾을 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죄악을 바라보도록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오늘 본 것과 대조적으로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하나님과 굳건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기록은 성경의 어떤 위대한 지도자들의 금식 기록보다 훨씬 많다. 비록 상황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지도하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그들의 삶은 하나님을 향했다. 반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감화에 영향을 받지도 않고 변화되지도 않은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결국 변화는 다른 사람의 믿음이 아닌 우리 자신의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분의 설교를 직접 듣고, 그분이 일으키신 기적을 목격했지만 끝내 그분을 거부한 자들을 보라. 맞다. 우리의 지위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는 맡은 역할이 있다. 그리고 선하거나 악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끝에는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 대해 변명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사람들이 사회생활 하는 데는 변수(變數)들이 아주 많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어디엔가 소속이 되어 있다. 이것은 운명적이다. 소속 되지 않으려면 사회를 떠나야 한다. 그렇더라도 그가 처한 환경에 소속되게 되어 있다. 그랬을 때 그는 소속된 환경을 무시하는 사상을 가지게 되는 것은 극히 어렵다. 오늘날 한국 정가에는 ‘진영논리’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린다. 그가 속한 진영의 논리에 무조건 찬성하는 사상이다. 그가 어느 진영에 속했든지 그 소속된 진영의 논리를 판단 없이 찬성하거나 또는 합리화하는 이론을 계발해서 영악하게 찬성한다. 지도자가 어느 진영에 속했는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했다.(요일3:12) 위에 예를 든 지도자들은 다 악한 자에게 속한 지도자들이다. 그러니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지도력이 나올 수 없다. 교회의 지도자도 이런 상태를 피할 수 없다. 영적으로 어느 진영에 속했는지 지도하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보기에 정당해 보여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 있을 수 있다. 가인이 곡식으로 제사한 것은 사람의 눈에는 정당하고 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시기에 악이었다. 재림성도로서 우리는 자기가 하는 것이 어느 진영논리인지 스스로 시험하고 확인해야 한다.

 

교훈 : 백성의 영적인 향상 또는 퇴보는 지도자의 성품과 하나님께 대한 헌신에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결국 삶에 변화를 불러오는 것은 각자의 믿음이다.

 

 

12월 24일(화) 격려와 권한 부여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느 4:20).

 

1. 느 4:7~23을 읽어보라. 느헤미야는 어떤 방식으로 용기를 나타냈는가? 무엇이 그에게 이런 용기를 부여했는가?

[느4:7~23]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희를 인하여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11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12 그 대적의 근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고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13 내가 성 뒤 낮고 넓은 곳에 백성으로 그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게 하고 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인들과 민장과 남은 백성에게 고하기를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느니라 15 우리의 대적이 자기의 뜻을 우리가 알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역사하였는데 16 그 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8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19 내가 귀인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역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나뉘어 상거가 먼즉 20 너희가 무론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21 우리가 이같이 역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었으며 22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고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역사하리라 하고 23 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답: 대적들이 방해를 강화하면 싸울 준비를 했다. 그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이런 용기를 발휘하며 솔선수범했다.

 

느헤미야는 유대인들을 길들이려고 하는 원수들에 맞섰다.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전투태세를 갖추게 하는 계획으로 대응했다. 느헤미야는 ‘아무 문제없어. 하나님이 다 해주실 테니까’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각자의 역할을 하게 했다. 그들은 검과 다른 무기를 든 채 성벽을 건축했다.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유대인들은 두려워서 웅크리기보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담대하게 무기를 집어 들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그들을 신뢰했으며, 그들과 함께 일했고, 그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했다. 그는 권한을 위임하고 책임을 할당함으로써 그들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는 백성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만 말하고 자신은 골방에 숨지 않았다. 그는 그들 곁에 서서 완수해야 할 어려운 작업을 수행했다.

성경에는 백성들에게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싸우시는 것을 보라고 할 때도 있지만, 행동할 준비를 하면 승리를 주겠다고 약속할 때가 많다.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을 보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해야 한다.

“느헤미야의 원수들이 그를 그들의 권세하에 끌어넣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느헤미야의 굳은 헌신과 하나님께 대한 똑같은 굳은 신뢰심 때문이었다. 게으른 영혼은 유혹에 쉽게 굴복하지만 고상한 목표와 목적에 열중하는 사람의 생애에는 악이 발붙일 곳을 거의 찾지 못한다”(선지자와 왕, 660).

결국 느헤미야의 용기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능력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었다. 앞서 보았듯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그로 하여금 믿음에 따라 행동하게 했다.

 

<부가설명>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자기가 감당해야 할 일들은 분담해주었다. 그들에게 믿음으로 격려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대적들과 친히 싸우실 것을 확신시켰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확신은 응답을 받는다. 단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자기의 영달을 위한 것이 될 때에는 응답하실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의 기도는 성령께서 들으시고 작성해서 하나님께 올린다.(소만189)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기 때문이다.(롬8:6,27) 느헤미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용기를 가지고 일했다. 그 기도와 용기는 응답되었다.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은 또한 오늘날 영적 남은 자손들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 속한 일인지 자기 사상으로 하는 일인지 엄격히 물어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광야생활동안 행한 일들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행5:42,43) 오늘날 우리의 예배와 교회 사업이 이런 상태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훈 : 느헤미야는 가만히 앉아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백성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했다.

 

 

12월 25일(수) 목적과 열정

 

1. 다음의 성경절에 따르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삶을 이끈 원동력은 무엇인가? 

[느2:1~10]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 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5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6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9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스7:8~10]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칠년 오월이라 9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답: 이스라엘을 흥왕케 하려는 간절한 마음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려는 열망이 그런 결심을 하게 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이 그분의 백성들의 삶을 통해 이뤄지는 것을 보기 원했다. 그러나 백성들의 삶은 타락했고 그로 인해 응분의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회복의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복귀하여 그들을 위해 세워두신 목적들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그리고 이전에 특별한 과업을 위해 모세를 사용하셨던 것처럼 이러한 회복 사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할 두 명의 헌신적인 인물을 선택하셨다.

이 두 사람같이 훌륭한 지도자들에게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그들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되는 목적이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에게는 일생의 목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 거주하기를 바라는 곳에 대한 비전이 있었고 그들은 그 목적을 성취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에스라는 성경을 연구하고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침으로써 이 목적을 이루고자 했다. 느헤미야는 옳은 일을 행하며 하나님 편에 담대하게 서라고 백성들을 독려했다. 두 사람은 모두 회복된 예루살렘을 보기 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바란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회복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거주자들의 영적인 삶에 부흥과 개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들은 잘못을 시정하고 책망하며 때로는 일련의 행동을 요구하기도 했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평범한 것과 하찮은 것 이상의 훌륭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분과 깊은 관계를 맺기를 바랐다.

느헤미야 1장을 읽으면 독자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느헤미야의 헌신과 동족의 곤경을 보고 느끼는 그의 근심에 감명을 받게 될 것이다.

느 1장에서 그는 유다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겪는 역경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이 어떤 일에 부르시든지 따르겠다고 서약한다. 느헤미야는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사상에 이끌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하나님을 위한 행동의 사람이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느헤미야가 선택한 것은 높은 연봉을 받는 일도 아니었고, 대단히 높은 지위에 오르는 일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발걸음마다 역경이 도사릴 길을 따라 번영하지 못하는 민족에게로 가는 일이었다. 그럴지라도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장애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전진했다.

 

<부가설명>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생활하도록 하려는 목적을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백성이 되도록 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노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과 열정으로 했다. 주의의 이방민족들의 방해와 모함이 있었으나 그들의 목적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그들의 목적하는 바를 성취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목적을 이룬 것은 확실하다. 귀환하여 남은 자손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이 이 두 지도자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각각 자기의 삶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정신이 강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어려운 길을 즐겨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지도자의 정신은 흐트러지지 않았고 목적을 이루려는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끝까지 그 일을 이끌었다. 역사의 종말의 남은 자손들의 지도자들도 이 두 지도자의 정신을 가지고 일해야 할 것이다. 섬기는 지도력을 발휘하여 믿음으로 결속하고 성경과 증언의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밝힌 진리를 굳게 잡고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에스라와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위대한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선택하고 그것이 제시하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한다.

 

 

12월 26일(목) 겸손과 견인불발

 

“그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스 8:21).

 

1. 스 8:21~23, 31~32을 읽어보라. 그대는 왕에게 말하지 않기로 한 에스라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리석었나? 아니면 대범하였나? 에스라와 백성들은 어떻게 겸손함을 나타냈는가?

[스8:21~23, 31,32]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22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23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31 정월 십이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32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기서 삼 일을 유하고,

 

답: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믿음으로 이런 결정을 했고 지도자와 모든 백성이 겸손히 하나님께 자신들을 맡겼다. 그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행돋으로 증명하였다. 

 

느헤미야는 왕이 보호 차원에서 제공하는 경비대를 수용했다. 그러나 에스라는 자신이 왕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주시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이 아무 어려움 없이 유다에 도착했을 때 그것을 하나님 덕분으로 여겼다. 우리는 하나님께 일하실 기회를 드리기보다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할 때가 많다. 에스라는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일하실 기회를 드리기로 결정했고 하나님이 참으로 전능한 신이시라는 사실을 왕에게 증명해 보였다. 

그러나 에스라는 어림짐작만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백성들을 소집했고, 그들은 그 상황에 대해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들은 하나님과 진지한 시간을 보내기 전까지 여정에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겸손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와 그분의 보호하심이 그분의 능력을 보여주는 표적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

 

2. 느 5:14~19을 읽어보라. 느헤미야는 어떻게 겸손을 나타내 보였는가?

[느514~19]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부터 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15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 토색하여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취하였고 그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16 도리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 17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일백오십 인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사면 이방인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18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하나와 살진 양 여섯을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 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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