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말씀 낭독(질문, 대답, 설명) 1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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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19-11-01 13:46 조회5,984회 댓글0건본문
제6과 말씀 낭독
11월 9일 안식일
일몰:오후 5시 27분
● 연구 범위 : 느 8:1~8, 신 31:9~13, 마 17:5, 행 8:26~38, 느 8:9~12, 레 23:39~43
● 기억절 :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느 8:8).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되었다. 성문을 놓음으로써 느헤미야의 영도하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중요한 과업을 달성했다. 성벽이 완성되었을 때 주변의 민족들은 두려워하며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느 6:16) 인정했다. 원수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엄청난 반대와 증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겠다고 시작한 사업을 결국 마쳤기 때문이다.
성벽을 완공한 뒤에 느헤미야는 그의 아우 하나니를 예루살렘 성주로 세우고, 하나냐를 영문의 관원으로 임명했다. 두 사람의 임명 기준은 혈연이 아닌 충성심과 진실성과 하나님을 경외함이었다(느 7:2). 성벽은 엘룰월(제6월) 중에 완공되었다(느 6:15).
다음 차례의 사업은 무엇이었는가? 느 8~10장은 제7월 곧 티쉬리월에 있었던 일련의 중요한 사건들을 설명한다(느 8:2).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했으며 말씀 안에서 얼마나 즐거워했는지에 대해 볼 수 있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배울 때 그분이 주시는 기쁨이 우리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말씀을 배우면서 자신의 죄 때문에 슬퍼하며 십자가를 통한 용서 때문에 기뻐한다.
행하기 : 성령을 진리의 교사로 영접하여 날마다 말씀으로 삶을 적시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을 듣고 배우기로 결심한다.
➋ 우리의 영적인 삶은 무엇을 통해 힘을 공급받아야 할까요?
※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하면서 연구하는 것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➌ 이스라엘 자손들은 성벽을 완공한 뒤에 왜 에스라를 초청해서 율법을 듣기 원했을까요?
※ 그들을 인도한 손길이 하나님의 손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하여서이다.
➍ 그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바람직한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많이 읽고 명상하고 듣고 기도하며 자세히 살피고 성령의 인도를 간구해야 한다. 주제별로 연구하면 좋을 것이다.
➎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는 말씀은 어떤 뜻일까요?
※ 여호와가 그들의 보호자요 용서하시는 분이요 능력이 되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분은 우리의 기쁨이 된다.
결론 : 에스라의 지속적인 말씀 사역은 결실을 보았습니다. 성벽 건축을 끝낸 백성들은 말씀을 듣고 배우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슬퍼하며 동시에 용서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배울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알게 되며 그분 안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11월 3일(일) 백성들이 모임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느 8:2).
1. 느 8:1~2을 읽어보라. 우리는 이를 통하여 말씀의 중요성에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느8:1,2]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2 칠월 일일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회중 앞에 이르러,
답: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벽을 완공하고 예루살렘 안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제7월에 예루살렘 광장에 모였다. 제7월 곧 티쉬리월은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달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달에 나팔절(제1일,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함)과 속죄일(제10일, 심판의 날)과 초막절(제15일, 애굽으로부터의 구원과 광야 순례 기간 동안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억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팔절로 기념하는 제1일에 모였다. 지도자들이 남녀 백성을 이 특별한 집회로 부른 목적은 율법서를 읽어줌으로써 그들이 하나님과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를 주려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에스라를 초청해 모세의 율법서를 가져와 그들 앞에서 읽게 했다. 그들은 이 행사를 위해서 강단과 단상을 만들었다. 이것은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강제로 시킨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백성들이 에스라에게 책을 가져오라고 요청했다. 에스라는 모세오경을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2. 신 31:9~13을 읽어보라. 여호와께서는 그곳에서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오늘날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신31:9~13]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10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11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12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 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13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답: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낭독하여 득헤 하고 모든 백성과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히 가르쳐서 배우게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신 31:9~13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초막절이 되면 한곳에 모여서 하나님의 율법을 읽으라고 말했다. 모여야 하는 대상으로는 남자, 여자, 어린이, 성 안에 거주하는 외국인 등 다양한 무리가 언급되었다.
<부가설명> 순서가 잘 맞는다. 그들이 성벽을 중수하여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한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로 한 것이다. 사람이 분주한 중에도 말씀을 상고하면 더 좋겠지만 차분히 말씀을 배울 수 있기 위하여서는 안정이 필요하다. 이스라엘 남은 자손들은 그런 순서로 말씀을 들었다. 그들은 광장에 모여서 낭독하는 말씀을 들었다. 이 광장에는 ‘알아들을 만한’(느8:2) 사람들이 모였다. 알아듣지 못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씀을 읽는 것은 헛일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도 사람들을 모을 때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을 모아야 할 것이다. 물론 알아듣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겠지만 성경말씀을 읽는 데는 기록한 대로 읽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있게 읽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때도 히브리어로 쓴 성경을 아람어로 통역하기 위하여 여러 통역관들이 나와서 에스라가 읽는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통역했다. 히브리어를 아람어로 통역한 것을 기록한 책을 탈굼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말씀을 통역해서라도 알게 해야 한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신약시대도 최초의 통역관이 성령이시라는 것을 사도행전 2장은 분명히 가르친다. 바르게 통역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통역관이라는 것을 기어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을 보고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니산/아빕, 이야르/시브, 시완, 담무스, 아브, 엘룰, 티쉬리/예다님, 마르헤쉬완/불, 기슬르(기슬래), 데벳, 스완, 아달 순입니다.”] 먼저 나온 이름이 바벨론 식 이름이다.
교훈 : 예루살렘 성문과 성벽을 완공한 뒤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은 곧 율법이 명령한 대로 나팔절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웠다.
11월 4일(월) 율법을 읽고 들음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느 8:3).
에스라는 율법서를 가지고 와서 회중 앞에서 읽었다. 그는 그들에게 어느 부분을 읽어주었을까? 십계명만 반나절 동안 반복해서 읽었을까? 율법서라고 언급한 책은 ‘토라’라고 알려진 모세오경 즉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다섯 권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율법”이라는 용어는 낭독에 포함된 일부분을 가리키며, ‘명령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 그것들은 우리가 목표를 벗어나지 않고 걸어야 할 길을 알게 해 주는 하나님의 명령들이다. 에스라가 율법서를 읽을 때 백성들은 창조로부터 여호수아 전까지의 역사를 들었다. 기사, 노래, 시, 축복, 율법들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을 따르려는 그들의 노력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회상했다. 토라는 율법을 포함하지만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지나온 역사를 포함하며 특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여준다. 결국 모세오경은 그 공동체에 그들의 뿌리와 정체성을 제공했다.
1. 느 8:3, 신 4:1, 6:3~4, 수 1:9, 시 1:2, 잠 19:20, 겔 37:4, 마 17:5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들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그것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느8: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신4: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수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잠19: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겔37: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마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답: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준행해야 한다.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했다는 사실은 에스라가 13년 전에 예루살렘에 온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가르쳤던 노력의 결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나님의 사업에 헌신했고 변화를 일으키기로 결심했다. 백성들이 에스라로부터 계속 말씀을 들었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현실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그들의 관심사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말씀을 듣고 경청하겠다는 결정에 이르렀다.
그들은 경외심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토라를 대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적시면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동경하게 된다.
<부가설명> 에스라 느헤미야 당시에 모든 사람이 다 율법책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예수님 시대도 그랬고 적어도 인쇄술이 발명되어 책이 양산(量産)될 때까지 그랬다. 그때는 글을 아는 사람도 아주 드물었다. 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외에 속할 수도 있다. 그들은 12세 성인식을 할 때 반드시 토라를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글을 읽고 쓰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족들에게 글도 제대로 없었고 책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글을 아는 사람들이 읽는 것을 들어야만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때에 성전 앞에 와서 율법 읽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듣는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기 위하여 협력했다. 이때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70년 포로 생활에 히브리말은 거의 잊어버리고 바벨론 어인 아람어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에스라가 히브리어로 읽으면 돕는 사람들이 아람어로 설명해서 알아듣게 했다. 우리는 듣는 사람들이 말씀을 알아듣도록 말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오늘날은 대부분 글을 읽고 쓸 줄 알고 책도 흔하기 때문에 설명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세 천사의 기별을 분명히 깨달아지도록 전파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에 관심을 기울였고 하나님께로부터 듣고 배우기를 더욱 갈망하게 되었다.
11월 5일(화) 말씀을 읽고 해석함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느 8:5).
1. 느 8:4~8을 읽어보라. 율법 낭독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가?
[느8:4~8]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매 그 우편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 좌편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5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답: 에스라와 그를 보조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읽고 백성 중에 서서 읽는 것을 깨닫게 하는 사람들이 도와서 다 알아듣고 깨닫게 했다.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하는 동안 함께 선 26인이 있었다. 그중 13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데 도움을 주었고(느 8:4) 다른 13인은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느 8:7). 이런 절차가 광장에서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낭독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은 토라를 들고 있었을 것이며(구약 성경 두루마리는 무거워서 펴줄 사람이 필요했음) 낭독자들이 순차적으로 읽었을 것이다. 아침부터 정오까지 말씀을 읽었기 때문에 그들은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느 8:8)라는 구절은 율법의 내용을 해석 또는 통역했음을 가리키는데 두 경우 다 가능하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백성들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탓에 주로 아람어를 사용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 특히 젊은 세대는 히브리어 낭독을 듣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해설 또는 주석으로 도움을 얻는다. 설교와 해설은 말씀의 내용을 실감나게 하고 청취자들로 하여금 그 정보를 개인적으로 적용하도록 감동을 준다.
2. 행 8:26~38을 읽어보라. 앞서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상황과 비슷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행8:26~38]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아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31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주고,
답: 빌립이 구스 내시에게 이사야서를 풀어 설명하여 그가 깨닫게 하고 침례를 주었다. 깨닫게 한 것이 느헤미야 시대와 같아.
우리는 개신교도로서 신자 개인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고, 성경 진리에 대한 사람의 말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성경 말씀의 의미를 설명해주면서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각자는 믿는 것을 스스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통해 말씀을 깨달아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부가설명> 느헤미야 당시에는 히브리어를 아람어로 알아듣도록 설명했다. 백성들이 그들이 일상 쓰는 말로 설명했을 때 알아들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빌립이 구스 내시에게 설명한 것은 예수님을 바르게 알도록 해 준 설명이다. 오늘날도 성경을 가르칠 때 듣는 사람이 올바르게 알아듣고 깨닫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길가에 떨어진 씨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사탄이 와서 그 말씀을 즉시 뺐어간다고 하셨다. 성경의 진리는 깨닫지 못하면 즉시 사탄이 뺐어간다. 가르친 수고가 헛되는 것이다. 말씀의 교사들은 최대한으로 뜻을 깨닫도록 설명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먼저 자기가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듣는 사람이 깨닫도록 할 수 있다. 귀환한 사람들이 실수도 하고 허물도 있지만 느헤미야 8장의 기록을 보면 말씀을 깨닫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재림교인도 바벨론에서 나온 자들이다. 말씀이 기록한 그것을 말씀이 해석하는 것을 찾아 깨달아야 한다. 성경 이야기도 비성경적으로 할 수 있다.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께 시험한 것이 바로 말씀을 성경적이 아니게 사용한 것이다. 이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진리를 옳게 분변(分辨)하라고 한 것이다. 재림성도들은 이렇게 가르치는데 익숙하도록 기도하면 말씀을 부지런히 상고하는 신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 : 군중들에게 말씀을 읽고 해석해주기 위해서 에스라 외에 돕는 자들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각자가 성경을 연구해야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때도 있다.
11월 6일(수) 백성들의 반응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를 펴자 백성들이 일어섰다. 그는 성경을 읽기 전에 먼저 여호와를 송축했다. 송축이 끝난 뒤에 백성은 일제히 그들의 팔을 하늘을 향하여 들고 “아멘 아멘”(느 8:5~6) 하며 화답했다. 그다음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했다.
1. 느 8:9~12을 읽어보라. 지도자들은 왜 백성들에게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말했는가?
[느8:9~12]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케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종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매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답: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울었고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인하여 백성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을 기뻐하여 힘을 얻으라고 했다.
“그러므로 훗날에 바벨론에서 돌아온 포로들에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읽어 주었을 때, 백성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울게 되었다. 그때 은혜로운 말씀이 다음과 같이 전달되었다.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9~10)”(치료봉사, 281).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의 죄로 인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 우리는 그분이 사랑과 선함과 자비와 신실함이 충만한 반면 우리는 부족하며, 세상을 선도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분의 거룩함을 볼 때, 우리는 우리의 참혹함을 새로운 빛에 비추어보게 된다. 이런 인식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슬퍼하며 울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그들의 힘이기 때문에 그들은 울지 말아야 했다(느 8:10). 즉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했다.
그날은 특히 나팔절(Rosh Hashanah: 로스 하샤나)이라고 불리는 성일이었다. 그날의 짧은 나팔소리는 여호와의 심판(속죄일, 티시리월 10일)에 대비하여 마음을 준비하라는 신호였다.
긴 나팔소리는 하나님 앞에 서서 회개하라는 소환의 신호였다. 그날은 백성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제정되었기 때문에 울며 애곡할 만하였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그들이 이미 회개했고, 하나님이 그들의 회개를 들어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용서를 누릴 시간이라고 알려주었다.
<부가설명> 말씀을 깨달으면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리고 용서의 사랑을 깨달으면 즐거움의 웃음을 맛보게 된다. 느헤미야 때의 유대인들은 이것을 체험했다. 그들은 울었고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시키며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고 격려했다. 그들은 말씀을 깨닫고 즐거워했다. 말씀을 깨닫는 곳에는 눈물과 즐거움이 함께 있게 되어 있다. 회개의 눈물인 동시에 용서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기도 하다. 성경은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느8:12)고 기록하였다. 크게 즐거워한 이유를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알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와 복음을 밝히 아는 일이 필수적인 필요이다. 재림교회는 진리를 바르게 깨달은 남은 자손들이다. 느헤미야 때의 이 백성들은 역사의 종말에 남은 자손들을 표상한다. 그들이 말씀을 밝히 알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했던 그 경험이 오늘날 재림교회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재림교회의 실상이 어떤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말씀을 따라 생활하는지 확인하고 그렇지 못하면 참된 회개의 눈물과 용서의 기쁨과 즐거움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교회 다니는 것과 말씀을 읽고 깨닫는 것이 짐이 되고 고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정말 어떤가?
교훈 :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의 죄가 떠올라 슬픔을 금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구원의 기쁨을 누려야 했다.
11월 7일(목) 여호와께서 주시는 기쁨
“…여호와께서 주시는 기쁨이 여러분의 힘이 될 것입니다”(느 8:10,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뻐하며 삶을 누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아무 종류의 기쁨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오는 기쁨이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분의 선하심에 감사하며 그분이 우리를 위해 공급하시는 모든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가 매일 느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중요한 의무이다. 무엇보다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루를 살아가며 다가오는 일들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1. 느 8:13~18을 읽어보라. 어떤 일이 있었는가? 이는 그 당시의 백성과 지도자들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느8:13~18]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14 율법책을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칠월 절기에 초막에 거할지니라 하였고 15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뭇가지를 취하여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하였는지라 16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취하여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17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 18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 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 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답: 지도자들은 성경을 더 확실히 알고 깨닫기를 열망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나타냈고 성경이 지시한대로 곧 실천에 옮겼다.
다음날에 백성의 지도자들이 율법책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에스라에게 왔다. 지도자들이 보여준 이러한 솔선수범은 그 공동체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를 바라는 그들의 소망을 나타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고 그분에게서 비롯된 지식을 구하지 않고서는 백성들을 옳은 길로 인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 레 23:39~43을 읽어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레23:39~43]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 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 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 너희는 매년에 칠 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지니라 42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답: 7일 동안 초막에 거하며 출애굽 당시 초막에 거한 사실을 기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느 8:15에서 그들이 하는 일이 말씀에 근거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그들은 이제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진지하게 순종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수십 년간의 포로생활 후에 불순종의 결과가 어떠한지에 대해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레위기에 따르면 그들은 그 절기를 기념하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레 23:40)해야 했다. 다시 말해서 그 백성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구원을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뻐해야 했다.
<부가설명> 느헤미야 8장의 초막절을 지킨 사실을 기록하면서 여호수아 이후로 이와 같이 초막절을 지킨 일이 없었다는 기록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했다는 것을 한 마디로 지적한 표현이다. 히스기야 왕 때에 유월절을 지킨 사실과 요시야 왕 때에 유월절을 지킨 사실을 기록하면서도 비슷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히스기야 때 유월절 지킨 사실과 관련하여 솔로몬 이후에 이런 기쁨이 없었다고 했다.(대하30:26) 또 요시야 때에는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렇게 유월절을 지키지 못했다고 기록하였다.(대하35:18) 이런 기록들은 이스라엘이 국가를 건설하고 하나님의 지시를 항상 잘 수행하지 못한 것을 드러낸다. 귀환한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회복하는 일을 하였다. 교회가 역사적으로 기록된 말씀대로 교인들을 가르치지 못했고 지도자들은 정치적 권세를 탐하여서 진리를 따라 희생과 봉사하는 정신을 버리고 지배하고 착취하는 짓들을 했다. 그것이 루터의 개혁으로 조금 회복되었으나 역시 기록된 말씀대로 가르치지 못했고 수행하지도 않았다. 때가 되었을 때 바벨론에서 나온 남은 자손들을 일으키시고 에스라 느헤미야의 개혁을 하도록 사명을 주었다. 그런데 지금 느헤미야 때의 백성의 지도자들처럼 언약을 어기고 옛 습관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는가? 느헤미야와 에스라처럼 온전히 말씀을 따라 행하는 지도자와 교인들이 되어 참된 개혁을 이루고 전해야 할 것이다.
교훈 :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의 사랑을 경험할 때 오는 기쁨은 우리의 삶에 중요한 힘의 원천이 된다.
11월 8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선지자와 왕>, 661~668 ‘율법을 배움’을 읽어보라.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나타내야 했다. 하나님이 그들의 회개를 받으셨으므로 이제 그들은 죄사함에 대한 보증과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한 것에 기뻐해야 하였다. …진실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모든 사람의 생애에는 영원한 기쁨이 생긴다. 죄인이 성령의 감화를 받을 때에 그는 마음을 살피는 크신 하나님의 거룩함에 비해 자신의 죄가 얼마나 더러운지 깨닫게 된다. 그는 자신이 저주받은 죄인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자포자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그가 이미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용서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죄사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있다. 죄가 많지만 회개한 인간들을 자신의 사랑의 팔로 안으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고 그들을 죄에서 정결케 하시고 구원의 옷을 입히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다”(선지자와 왕, 66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그대는 어떤 상황 속에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그대의 힘이라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사유하심을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은 십자가로 인하여 사유의 은혜를 대기처럼 우리 주위에 둘러놓았다. 우리는 순간마다 그 사유의 은혜를 호흡하며 생활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신 것처럼 상쾌한 삶을 누려야 할 것이다.
➋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죄를 슬퍼하는 동시에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감정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서로 상충되지 않습니까? 율법과 복음이 이에 대해서 어떻게 해답을 줄 수 있을까요?(롬 3:19~24 참고)
※ 죄를 깨달으면 뉘우치고 슬퍼하지만 하나님의 용서를 깨달으면 감사하고 기뻐하게 된다.
[롬3:19~24]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➌ 느헤미야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느헤미야는 그날이 여호와께 거룩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까? 이 문맥에서 그날이 거룩하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 하나님이 정하시고 임재하신 날이기 때문에 거룩한 날이고(성일) 백성들이 그것을 깨닫고 회개했으니 거룩하고 용서받았으니 기쁘고 힘을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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