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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하나님 행세를 함 -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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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1-02-03 02:46 조회1,7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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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 하나님 행세(行世)를 함. (Playing God)

 <2021.02.06. (안) 일몰 18:01>

 

<서언(序言)>

○. 안교 제6과의 맥(脈)은 전(全)우주(宇宙)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이사야서 13장(章)을 경계(境界)로 23장(章)까지는 예언(豫言) 및 심판(審判)대상이 크게 달라진다. 즉 앞서 12장(章)까지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었으나 이제는 그 대상이 주위(周圍)의 여러나라 이방국가(異邦國家)에 대한 심판의 계시로 전환(轉換)되고 있다. 이사야의 이러한 예언(豫言)의 선포(宣布)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만 영향력(影響力)을 행사(行事)하시는 신(神)이 아니라 전 우주(全宇宙)와 세상역사(世上歷史)의 주인(主人)이시라는 것을 강(强)하게 암시(暗示)하는 것이었다.

 

○.이는 고대(古代)에는 각 나라마다 신(神)이 있고 그 신(神)은 그 나라와 흥망(興亡)을 같이하는데 어느 신(神)이 다른 나라 신(神)보다 강(强)하면 그 나라를 이기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一般的)인 통념(通念)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열국(列國)들을 향(向)하여 예언(豫言)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벌(罰)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공의(公義)이시며 각 이방(異邦)열국들을 그 죄에 따라 벌(罰)하는 것도 바로 하나님의 공의(公義)임을 분명(分明)히 보여주신 것이다.

 

○.이후 훗날 일어날 역사(歷史)의 사건(事件)을 예언(豫言)하시고 그 모든 역사를 이루시는 것은 완악한 자들에게 훌륭한 경종(警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사야는 본문(本文) 곳곳에서 자기가 행하는 예언의 주체(主體)가 하나님자신임을 강조(强調)하여 하나님께서 편협(偏狹)한 국수주의(國粹主義)에서 예언을 하고 있지 않음을 거듭 상기(想起)시키셨다.

 

(01월 31일(일)  <열국에 임(臨)한 심판(審判) (이사야 13장)>

(Q)~(이사야13장~23장(章)을 통하여 여러 나라에 대한 예언이 바벨론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이사야가 사역(使役)했던 시대는 대부분(大部分) 앗수르가 바벨론을 지배(支配)하던 시기(時期)에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앗수르 보다 못한 바벨론은 문화(文化)나 종교(宗敎)나 정치적 유산(政治的遺産)을 부여(附與)받아 후(後)에 유다를 정복(征服)하고 포로로 잡아가는 초강대국(超强大國)으로 부상(浮上)하게 되는 것을 예언(豫言)하고 있기 때문에 악(惡)의 세력(勢力)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震怒)와 심판(審判)은 죄의 심각성(深刻性)을 증명(證明)하는 것이며 공의(公義)와 자비(慈悲)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本性)임을 잘 알 수가 있다.

 

(02월 01일(월)  <큰 성(城) 바벨론 (사 13:2~22) >

(Q)~큰 도성(都城) 바벨론은 결국 어떻게 멸망(滅亡)했는가?

 

(A)~①.바벨론의 왕 벨사살이 조롱(嘲弄)한 동일한 하나님께서 (다니엘서5장)에 즉 여호와 하나님의 손가락이 벽(壁)에 기록(記錄)하였음에는 의문(疑問)의 여지가 없다. 수세기 전, 이 동일한 거룩한 손가락이 우상숭배(偶像崇拜)를 금지(禁止)하는 계명(誡命)을 돌에 기록(記錄)하였다. (요 8:6)에는 예수께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 예수께서 땅에 쓰신 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은 자신(自身)들의 죄(罪)와 운명(運命)을 보고 놀라 도망(逃亡)갔다. 벨사살도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선지자와 왕, 524)

 

②.바벨론의 왕 “벨사살은 그의 우상숭배(偶像崇拜)의 주연(酒宴)을 바라보는 하늘의 목격자(目擊者)가 있다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순찰자(巡察者)가 그 신성모독(神聖冒瀆)의 광경(光景)을 지켜보고 있으며 모독적(冒瀆的)인 환락(歡樂)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우상숭배를 목격(目擊)하신다는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에 한 불청객(不請客)이 자신의 임재(臨在)를 알렸다. (선지자와 왕, 524)

 

③. “벨사살의 하나님을 모독(冒瀆)하는 잔치를 지켜보신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기관(機關)들과 상인(商人)의 계산실(計算室)과 개인(個人)의 작업실(作業室)에도 임재(臨在)하신다. 그리고 그 핏기 없는 손은 그 불경(不敬)스런 왕의 무서운 심판(審判)을 기록한 것처럼 확실(確實)하게 우리의 나태(懶怠)를 기록(記錄)하고 있다.” (RH 1891. 9. 22)

 

(02월 02일(화)  <산(山) 왕의 몰락(沒落) (이사야 14장)>

(Q)~(이사야14:12~14)의 아침의 아들 계명성(啓明星)과 (에스겔 28:13~17)의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은 왜 몰락(沒落)하게 되었는가?

 

(A)~①.반역(叛逆)의 괴수(魁首) 사단은 한때 하늘에서 높은 지위(地位)에 있었던 자(者)이다. 그는 그리스도 다음 가는 영예(榮譽)로운 자리에 있었고, 그는 물론 그와 함께 타락(墮落)한 천사(天使)들도 하나님의 품성(稟性)에 관한 지식(知識), 곧 그의 선(善)하심과 지혜(智慧)와 그 탁월(卓越)한 영광(榮光), 그리고 그분의 자비(慈悲)하심에 관한 지식(知識)을 갖고 있었다. 이 지식(知識)은 그들의 죄를 용서(容恕)받을 수 없는 죄가 되게 하였다.(EG주석, 겔 28:12-15) 

 

②.루스벨은 덮는 그룹으로서 영광(榮光)으로 둘리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창조(創造)하사 능력(能力)을 주신 이 천사(天使)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망(慾望)을 갖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정부(政府)에 관해서 비판적(批判的)인 생각을 암시(暗示)함으로써 동료(同僚)들 중 몇 명의 동정심(同情心)을 사게 되었다. 이 악(惡)의 씨앗은 대단히 매혹적(魅惑的)인 방법(方法)으로 뿌려졌고, 그것이 싹이 트고 많은 천사(天使)들의 마음에 뿌리를 내린 후에, 그는 맨 처음 그가 다른 천사들의 마음에 심었던 생각들을 거두어 들여서, 그것들을 하늘 정부(政府)를 대항(對抗)하는 다른 천사들의 생각이라고 하면서 천사장(天使長) 앞에 제시(提示)하였다. 이렇게 해서 루스벨은 자신이 고안(考案)해 낸 아주 영리(榮利)한 방법으로 하늘에 반역(叛逆)을 들여왔다. (EG주석, 사 14:12-14)

※. 세상을 미혹(迷惑)하여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했던 망(亡)하게 할 죄(罪) 때문이다.

 

(02월 03일(수)  <하늘의 문(門) (이사야 13~14장)>

(Q)~1. 어떻게 고대(古代) ‘바벨론’이 나중에 로마(벧전 5:13) 또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악(惡)한 세력을 가리키는“신(神)들의 문(門)”과, (창세기 28:17).에서 야곱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를 꿈에서 보고 외쳤던.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殿)이요 이는 하늘의 문(門)이로다” 와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A)~①.바벨론이라는 말은 ‘하늘 문(門)’이라는 바벨론어로의 뜻으로‘ 하나님을 대적(對敵)하여 스스로의 노력(努力)으로 하나님을 대적(對敵)하여 하늘을 차지하려는 루시퍼 즉 사단의 정신(精神)과 같기 때문이고. 

②.야곱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를 꿈에서 본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門)이로다.(창 28:17). 벧엘에 있던 ‘하늘의 문(門)’과 바벨론의 ‘신(들)의 문’은 거룩한 영역(領域)에 이르는 정반대(正反對)의 길이다. 야곱의 사다리는 하늘에서 비롯되었으며, 위에 계신 하나님에 의해 나타났다. 그러나 바벨론의 탑들과 ‘지구라트’ 신전(神殿)들은 인간(人間)에 의해 땅으로부터 지어져 올라갔다.

③.이는 하나님의 은혜(恩惠)와 인간의 행위(行爲)로 대표(代表)되는 대조적(對照的)인 구원(救援)의 경로(經路)를 상징(象徵)한다. 모든 참된 종교(宗敎)는 겸손(謙遜)한 벧엘의 모델에 기초(基礎)한다. 율법주의(律法主義)와 세속적(世俗的)인 인본주의(人本主義)를 포함(包含)한 모든 거짓 종교(宗敎)는 교만(驕慢)한 바벨론의 모델에 기초(基礎)한다. 

 

※.자신(自身)의 행위(行爲)로 구원(救援)을 얻고자 하는 신앙(信仰)은 결국(結局) 자신을 높여 하나님과 같은 지위(地位)에 이르고자 했던 바벨론의 정신(精神) 곧 사탄 정신(精神)과 같기 때문이다.

 

(02월 04일(목)  <시온의 최후(最後)의 승리(勝利) (이사야 24~27장)>

(Q)~(이사야 24장)의 황폐(荒廢)한 세상(世上)을 묘사(描寫)하는 것과, (계시록 20장)의 재림(再臨) 후(後)에 있을 천년기의 사건을 묘사(描寫)하는 것의  비슷한 이유(理由)는 무엇인가? 

 

(A)~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은 같은 의미(意味)의 바벨론을 상징(象徵)하는 사탄과 악(惡)의 세력(勢力)의 최후(最後)로 멸망(滅亡)될 것이며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이 승리(勝利)하는 것을 예언(豫言)하고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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