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구약의 선지자들(질문, 대답, 설명) 10/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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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10-09 16:23 조회66회 댓글1건본문
제3과 구약의 선지자들
(10월 17일 안식일/일몰 오후 5시 53분)
기억절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대하 20:20)
● 연구 범위 -약 5:17, 18; 왕상 19:1-16; 1; 22:1-14; 출 15:20; 왕하 22:11-14; 렘 14:1-15
여행하는 사람들은 위치 정보 시스템(GPS) 덕분에 자신의 위치와 진행 방향, 심지어 위험에 대한 경고까지 확인할 수 있다. 하늘로 향하는 영적 여행자들에게도 하늘의 위치 확인 시스템이 주는 현재와 미래의 안내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사용하신 방법 중 하나는 구약 선지자들의 사역을 통해서였다. 그들의 이야기와 권면, 예언, 시, 노래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별을 전한 선지자 수십 명에 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주에는 구약 성경에서 선지자들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살펴보겠다. 이러한 묘사는 하나님의 종들 일부에게 나타난 예언의 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앞으로도 살펴보겠지만 이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분노, 좌절을 겪는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들의 삶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녹록지 않았고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따랐다. 하나님의 종으로 특별한 부름을 받은 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말씀 속으로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0)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왕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왕상 22:8)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출 15:20)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렘 14:14)
토의 질문
1. 눈부신 승리 후에도 낙심했던 엘리야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답: 엘리야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임을 확인하고 용기를 내어 주님 사업에 봉사할 수 있다.
2.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도 진실을 전해야 할 때는 언제인가요?
*답: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해야 한다.
3. 구약 성경에는 어떤 여선지자들이 등장합니까?
*답: 미리암, 드보라, 훌다 등등
4. 시류에 영합하거나 강압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감수해야 하나요?
*답: 핍박과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
핵심 교훈
하나님은 사람들을 선지자로 부르셔서 자신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셨다. 참선지자는 세상의 시류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며 때로는 불편한 진실도 충실하게 전했다. 우리도 성경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따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10월 11일(일) 선지자의 인간적 면모
지난주에 보았듯 주님께서는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삼아 격렬한 반대 속에서도 놀라운 일을 해내게 하셨다. 그를 통해 주님께서 이루신 일은 실로 놀라웠다. 하지만 그다음은 어땠을까?
야고보서 5장 17, 18절에서 엘리야를 어떻게 묘사하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약5: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답: 엘리야나 우리나 똑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갈멜산에서 엘리야는 눈부신 승리를 거뒀다(왕상 18장). 하나님은 그를 통해 큰 능력을 나타내셨고 구약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엘리야가 말을 꺼내자 하늘에서 실제로 불이 내려온 것이다!(왕상 18:38) 뛸 듯이 기쁘지 않았을까?
열왕기상 19장 1-16절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선지자는 어떤 감정에 빠졌는가?
[왕상19:1~16]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답: 무력한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이세벨이 죽이겠다는 협박으로 공포와 절망에 빠져서 죽는 것이 낫다고 하나님께 말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 19:4). 이것은 깊은 절망에 빠진 사람의 말처럼 들린다. 왜일까? 분명 갈멜산의 기세를 계속 이어 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의 말속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0). 자신의 사역이 실패했다고 여기며 탄식하는 말처럼 들린다. 혼신의 힘을 기울였지만 배도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마치 그 거센 흐름에 맞설 사람은 오직 자기 혼자뿐인 듯 말이다. 결국 무슨 일이 생겼든지 간에 하나님의 사람에게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연약함이다. 한마디로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
나의 삶 속으로: 자신의 삶이나 노력이 실패로 끝났다고 느껴지기 쉬운 때는 언제입니까?
이러한 좌절에서 벗어나려면 성경의 어떤 약속을 굳게 붙들어야 할까요?
<부가설명> 참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도 큰 능력의 역사를 경험한 바로 다음에 공포와 낙담에 빠졌다. 엘리야의 능력과 심령으로 온 침례 요한도 감옥에 들어갔을 때 잠시 실족할뻔한 일이 있었다. 예수님은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옥에 갇힌 요한을 방문하지 않고 유대를 떠나셨다. 엘리야와 같은 성정,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요한이 엘리야가 낙담한 것처럼 실족할 뻔했다. 그래서 제자들을 보내어 자기의 증거가 옳았는지 확인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11:6)라고 하셔서 요한이 실족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셨다. 마치 엘리야가 낙담 중에 도망갈 때 그를 찾은 천사의 역할과 같은 상태로 보인다. 우리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중에 이와 같은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예수께서 요한을 떠나신 것처럼 우리를 떠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요한을 실족하지 않도록 보듬은 주님이 우리도 붙드시고 보듬으신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가장 선한 상태로 인도하실 것을 믿음으로 맡기고 걸어가면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행13:25)라고 성경이 부증했듯이 우리의 길에서도 사명을 마친 자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아멘.
10월 12일(월) 참선지자를 알아보는 법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도 거짓 선지자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있다(신 18:20).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참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해 주셨다. 하나님께 계시와 영감을 받은 참선지자들은 심지어 이스라엘 권력자들에게 미움을 살 때조차 하나님의 메시지를 충실하고 정확하고 정직하게 전했다.
열왕기상 22장 1-14절을 읽어 보라. 충성스런 선지자들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왕상22:1~14]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2 셋째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내려가매 3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의 왕의 손에서 도로 찾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4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냐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5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6 이스라엘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쯤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7 여호사밧이 이르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8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9 이스라엘의 왕이 한 내시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속히 오게 하라 하니라 10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에서 각기 왕좌에 앉아 있고 모든 선지자가 그들의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는데 11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12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13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이 일러 이르되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 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14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답: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만 말했다.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왕상 22:8)라고 선지자를 평가하는 왕의 말에서 그 왕에 관한 많은 것, 나아가 그 선지자에 관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그는 임금 앞에서도 담대하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왕에게 환영받기를 기대하기는 힘든 행동이었다. 선지자 미가야는 거짓 선지자 400명에 홀로 맞서 자신이 계시받은 진리를 전했다. 여호와께 받은 부정적인 기별을 고쳐서 악한 아합왕과 왕비 이세벨을 달래 주라는 강압에도 아랑곳없이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했다.
사무엘상 9장 3-14절을 읽어 보라. 다른 이들은 하나님의 충성스런 선지자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삼상9:3~14]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4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 5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6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7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8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10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 11 그들이 성읍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하니 1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서 갔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읍에 들어오셨나이다 13 당신들이 성읍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곧 그를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14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답: 하나님의 사람이라 부르며 존경했다.
성경에는 선지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 주는 사례가 많다. 이 구절에서 사울은 아버지 기스의 심부름으로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갔다. 사울과 동행한 종은 나귀 찾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제안했다. 그 이유는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존경을 받는 사람”(삼상 9:6)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지자 사무엘에 대한 이런 묘사에서는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기대되는 삶이 무엇인지가 드러난다. 성경에서 참된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통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본보기가 되도록 선택된 자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해서 결함 없는 인간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의 삶 속으로: 아무리 존경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도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인간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들은 어떤 점에서 존경받아야 하나요?
<부가설명> 참 선지자는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미가야의 말대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왕상22:14)라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신 말씀만 말하는 자다. 물론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근거해서 말씀의 사상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베레아 사람들처럼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살펴서 확인하는 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ㅣ19,20)라고 담대히 말했다. 문제는 오늘날 말씀의 대언자들도 베드로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보고 들은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은 철저히 오직 기록된 말씀에 근거한 기별만을 전해야 할 것이다.
10월 13일(화) 선지자의 역할
사무엘상 8장 4-22절, 레위기 8장 10-13절을 읽어 보라. 왕과 제사장을 상대하며 선지자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삼상8:4~22]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10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3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4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19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21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2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레8:10~13] 모세가 관유를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11 또 제단에 일곱 번 뿌리고 또 그 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12 또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발라 거룩하게 하고 13 모세가 또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웠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답: 선지자 사무엘은 왕을 세우고 백성을 책망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명을 수행했다. 또 모세는 제사장을 세우고 그 사명을 지시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했다. 이 두 경우는 모든 선지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명령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전했다.
선지자는 원만하든 불편하든 왕들과 관계를 맺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 8:5)라며 왕을 요구했다(삼상 8:4-22).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시대마다 마주했던 위험의 슬프면서도 분명한 본보기였다. 바로 주변의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위험이다. 이 요구로 이르게 될 결과가 무엇인지를 그들은 헤아리지 못했다.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 미리 경고를 받았으면서도 말이다(삼상 8:11-18). 사무엘은 그 자신이 경고했지만 백성이 바라는 대로 곧 이스라엘의 초대 왕에게 기름을 부었다. 성경 역사에서 사울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구약 성경 열왕기상·하, 역대상·하에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통치가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이 선을 행한 왕보다 훨씬 많다. 선지자의 핵심 역할 중 하나는 불충실한 왕을 돌이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킨 왕들에게 협박당하거나 해를 입었고 살해되기도 했다(왕상 18:4-19; 대하 24:20-22).
선지자는 제사장도 상대했다. 하나님의 선지자 모세는 이스라엘 최초의 제사장들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부었다(레 8:10-13). 제사장이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 책망받을 때도 있었다(호 6:9; 말 2:1-3).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부패한 행실로 책망받은 엘리의 온 집안이다(삼상 2:27-36). 이것은 특권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 만연했던 부패에 대한 매우 강력한 질책이었다.
선지자는 백성의 교사이기도 했다(대하 34장). 그들은 왕, 제사장, 백성을 상대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다(렘 5:31; 겔 22:26). 선지자는 주변 나라에도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렸다. 이것은 구약 선지자들의 메시지에서 거듭 반복되는 주제이다(사 60:1-3; 62:1, 2).
선지자는 하나님께 받은 기별을 충실히 전해야 할 뿐 아니라 그 기별을 기록하여 보관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대하 13:22).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인간적인 약점을 지녔다 해도 선지자들은 기도와 말씀의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섬기는 남녀였다(렘 42:4; 왕하 22:15-17).
나의 삶 속으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주변의 문화를 따르고 싶은 유혹은 어떤 식으로 다가오나요? 왕과 제사장을 비롯한 모든 백성에게 선지자의 메시지가 필요했다는 사실에서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부가설명> 위의 성경 본문에 나타난 선지자로서의 역할은 모든 선지자에게 항상 해당된 것은 아니다. 사무엘은 선지자이면서 제사장이었다. 모세도 선지자이면서 제사장이었다. 일반적으로 모세가 제사장인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나 시편 99:6에 모세가 제사장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선지자들 중에 제사장 출신이 여럿이다. 예레미야가 그렇고 에스겔이 그렇다. 예레미야가 제사장으로 성전에 봉사한 기록은 없다. 에스겔도 그렇다. 그러나 그들은 다 레위 지파 아론의 후손이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직접 지시하신 사실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선지자를 통하여 제사장에게 지시하셨다. 평민이나, 제사장이나, 왕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 권력자에게 불리한 기별을 전할 때는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그래도 그들은 그 일을 수행했다. 요나 같은 선지자는 도망하다가 잡혀서 다시 선지자의 직무를 수행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전달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그에게도 말씀을 주시셨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백성들은 선지자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했다. 오늘날은 어떤가? 목회자는 선지자 역할인가? 제사장 역할인가? 어떤 역할이든지 진정으로 주신 말씀만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목회는 성공하는 직업이 아니고, 주님께 충성하는 사명이다.
10월 14일(수) 여선지자
다음 성경절에서 여선지자의 역할에 관하여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출 15:20; 삿 4:4; 왕하 22:14; 느 6:14
[출15:20]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삿4: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왕하22:14]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그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로서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하였더라 그들이 그와 더불어 말하매,
[느6: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답: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풀어서서 지도자들의 자문관 역할을 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여성을 선지자로 부르셨다는 증거가 풍부하다(히브리어 ‘네비아’[출 15:20], 그리스어 ‘프로페티스’[눅 2:36]는 여선지자를 뜻한다.). 미가 6장 4절에서는 백성에게 파송된 인물로 모세, 아론과 함께 미리암을 언급한다. 또 미리암은 홍해를 건넌 뒤 승리의 노래를 부른 여선지자로 소개되고 있다(출 15:20, 21). 민수기 12장 1-10절에서는 미리암이 구스 여자와 결혼한 모세를 비방하다가 나병에 걸렸다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의 잘못된 태도에서 비롯한 행동 때문에 징벌을 받았다.
또 다른 여선지자의 활약을 이스라엘의 사사였던 드보라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삿 4:1-4).
사실 드보라는 하나님께 계시를 받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4:4-9, 14-22). 그녀가 부른 승리의 노래(5:2-31)는 하나님의 개입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깊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열왕기하 22장 11-14절을 읽어 보라. 요시야왕의 사람들은 왜 훌다를 찾아갔는가? 이스라엘에서 그녀가 맡은 중요한 역할은 무엇인가?
[왕하22:11~14]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12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3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14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그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로서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하였더라 그들이 그와 더불어 말하매,
*답: 성전에서 발견하여 읽은 하나님의 율법책의 해석을 위하여 여선지자 훌다에게 보냈다.
요시야 왕실의 고위 관료들이 왕에게 “율법책”(아마도 신명기)을 읽어 주었을 때 왕은 그에 대한 반응으로 자기의 옷을 찢었고(왕하 22:8, 11) 이후 관료들은 “여선지자” 훌다에게 자문을 구하러 갔다(왕하 22:14; 대하 34:22). 분명 문제가 심각했고 왕도 그렇게 받아들였기에 그의 관료들이 곧장 훌다를 찾아간 것이다. 훌다는 유다에 임박한 심판에 관하여 하나님께 메시지를 받았다.
요시야의 개혁은 훌다의 예언 메시지를 계기로 시작됐고 그 결과로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했다.
나의 삶 속으로: 남녀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지만,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어떤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문제를 발견하고 여선지자 훌다에게 자문을 구했던 요시야의 행동에서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사람을 부르실 때는 남녀를 가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사람을 찾아 일을 맡기시는 것이다. 선지자들도 때로는 자기 생각을 말했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쳐 말한 경우도 있다. 성경에 기록된 대표적 예는 다윗이 성전 건축에 관해서 말했을 때 선지자 나단이 찬성하는 말을 했다가 하나님께서 다윗을 성전 지을 수 없다고 말씀을 주시자 자기 말을 취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 사실을 볼 수 있다(삼하7:1~12). 성경에는 나단이 자기 말한 것까지 기록했다. 정직한 것이다. 그런 일로 선지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나단은 훌륭한 선지자다. 그러나 느헤미야 시대에 여선지자 노아댜는 선지자였는데, 성을 중건하는 것을 방해하는 무리에 가담한 것도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완성된 성경을 가지고 진리를 따라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성경 말씀하고 일치하지 않는 주장은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우리는 그 어떤 사람의 견해일지라도 성경과 비교해보지 않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성경은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최고의 신적 권위이다.” (EGW to Brethren, Aug. 5. 1888,”
10월 15일(목) 거짓 선지자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든 사탄은 짝퉁을 만들어낸다. 선지자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에는 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가 있었다. 문제는 그 차이를 분별하는 것이었다.
예레미야 14장 1-15절을 읽어 보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주님은 자기 이름으로 거짓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어떻게 보시는가?
[렘14:1~15]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피곤하여 땅 위에서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로 오르도다 3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얻으려 하였으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들의 머리를 가리며 4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 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의 머리를 가리는도다 5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버리며 6 들 나귀들은 벗은 산 위에 서서 승냥이 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흐려지는도다 7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8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 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 9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10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 11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 13 이에 내가 말하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리라 하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답: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은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라고 하면서 거짓 예언을 하는 거짓 선지자에 관하여 경고했다.
예레미야 14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유대를 향한 심판의 메시지를 보내셨다. 칼(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의 모습으로 내리는 심판이다. 그 당시 거짓 선지자들은 예레미야의 기별을 부인했다. 예레미야는 그들을 이렇게 묘사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렘 14:14).
거짓 선지자들이 부패한 이유는 그 예언이 자신들의 거짓 “신들”에게서 비롯하기 때문이다(렘 23:13, 14). 하나님은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경고하신다(렘 14:14).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는 자들이다(렘 23:26). 에스겔은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선지자들에게 경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겔 13:2).
거짓 선지자들은 시류에 영합할 때가 많다. 열왕기상 22장에서 아합의 명령으로 모인 “선지자” 400명도 그런 경우다(왕상 22:6). 그들은 한목소리로 길르앗 라못과 싸우라고 왕에게 조언했다. 아세라 선지자들의 예언 권고를 들은 뒤 아합은 유다 왕 여호사밧과 상의했다.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미가야를 불러 자신들이 전쟁터에 나가도 되겠는지 물어보라.’고 조언했다.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람이 그를 만나 말하였다. ‘모든 예언자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만사가 왕의 뜻대로 되리라고 예언하였소. 그러니 당신도 그들과 같은 말로 일이 순조롭게 되리라고 예언하시오’”(왕상 22:13, 공동).
미가야와 마찬가지로 아세라의 선지자들도 거짓을 예언하라는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가야는 시류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실 말씀을 기다렸다(왕상 22:14).
나의 삶 속으로: 선지자든 아니든 우리는 언제나 다수를 따르기가 쉽습니다.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부패할 수 있는지를 감안할 때 왜 이것은 절대로 좋은 생각이 아닐까요?
여호사밧왕은 왜 아세라 선지자들의 제안을 듣고 나서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았을까요? 여기서 배울 점은 무엇인가요?
<부가설명> 예수님은 말세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24:4)라는 말씀이다. 사탄은 사람을 통하여 미혹하는데 그 미혹하는 방법을 예수께서 분명히 지적하셨다. 예수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심지어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라고 경고하셨다. 옳게 분별하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 표준으로 제시한 말씀이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8:20)라고 계시하셨다. 율법과 증거의 말씀으로 진리를 옳게 분별할 수 있다. 우리 시대에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통하여 옳게 분별할 수 있다(계12:17). 그래서 성도는 말씀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멘.
10월 16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완전하지 않아도 순종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하나님의 기별꾼이 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구약 선지자들의 삶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엘렌 G. 화잇 역시 성경의 선지자들과 같은 불안을 경험했다. 지난주 금요일에 배운 대로 그는 어리고 수줍음 많고 건강이 좋지 않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두 번째 계시로 소명이 확실해졌는데도 하먼(화잇)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다.
“일주일쯤 뒤에 주님께서는 또 다른 계시를 보내어 내가 견뎌야 할 시련을 보여 주셨다. 그분께서 계시해 주신 것을 내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며,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심한 번민을 겪을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 …이 계시로 나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건강이 좋지 않은 데다가 내 나이 겨우 17살이었다. …나는 이 짐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내가 계시해 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빛을 받았을 뿐이다. 나는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천성적으로 자신감이 없었다. …차라리 무덤에 들어가고 싶었다. 지고 가야 할 책임보다 죽음이 더 나아 보였다”(영적 선물 2권, 35, 36).
부르심을 따르느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는 엘렌 하먼(화잇)의 마음이 느껴지는가? 오랜 기도와 신자들의 격려 끝에 그는 마침내 부르심을 받아들였고 “그분의 지시”를 따르는 데 남은 삶을 다 바쳤다(영적 선물 2권, 38).
그는 훗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목소리이자 교회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되었다. 그러나 엘렌 하먼 역시 결함 있는 인간이었고 신체적 시련, 가족 문제, 대인 관계의 갈등을 겪었다. 그런데 그 인간적인 모습에서 중요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자기를 기꺼이 섬기고자 하는 불완전한 사람을 택하신다는 점이다.
성령의 인도 아래서 엘렌 G. 화잇의 예언 사역은&n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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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님의 댓글
김명호 작성일성령의 인도 아래서 엘렌 G. 화잇의 예언 사역은 신자들을 격려하며 성경의 진리와 이어 주었다. 1860년까지 화잇은 초창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틀을 갖추고 세 천사 기별 선포라는 사명을 수행하도록 이끄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하나님은 이 신자 무리를 이끌어 1863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조직하게 하셨다. 이후 수십 년간 엘렌 G. 화잇의 예언 메시지는 전 세계적인 재림교회 의료·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유산은 약 10만 쪽에 이르는 저술이다. 엘렌 G. 화잇의 영감적인 글은 오늘날도 전 세계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사이트를 참고하라. https://whiteestate.org/absg/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