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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탐심을 주의하라(질문, 대답, 설명) 0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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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02-24 15:00 조회5,4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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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탐심을 주의하라 

(3월 4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28분)

 

연구 범위: 사 14:12~14, 엡 5:5, 수 7, 요 12:1~8, 행 5:1~11, 고전 10:13

 

기억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 12:15).

 

탐심은 자기 것이 아닌 재물과 소유에 대한 과도한 욕망이라고 정의된다. 탐심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짓말, 도둑질, 그리고 살인과 함께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목록에 포함하여 십계명에 기록해 두셨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 20:17).

탐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심각한 죄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 10).

탐심이 속여 빼앗는 일, 우상 숭배, 음행, 그리고 간음과 같은 목록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는가?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번 주 우리는 탐심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피할 수 있을 지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탐심이 모든 죄의 원인임을 깨닫는다.  

- 느끼기: 그대가 실패하고 넘어지는 문제의 근원에는 탐심이 있음을 생각해 본다.

- 행하기: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탐심을 이기기로 선택한다.

 

TMI 위로

2. 탐심이 우상 숭배, 음행, 간음과 같은 수준의 목록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 이해됩니까?(고전 6:9, 10)

※ 그와 같은 질의 죄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3. 탐심을 가지는 것은 우상숭배와 어떤 유사점이 있습니까?(롬 1:25)

※ 탐심은 하나님 외의 것을 더 경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4. 큰 일 혹은 위대한 일을 행하는 데 탐심은 어떻게 방해가 됩니까? (수 7:9)

※ 그 일을 망치는 치명적인 방해가 된다. 

5. 작은 탐심도 우리를 어디까지 인도할 수 있습니까?(요 12:6) 

※ 예수님을 팔아버리는데 까지 이끌릴 수 있다.

6. 그대는 어떤 방법으로 탐심을 극복하시겠습니까?(사 55:6, 7)

※ 하나님의 뜻을 첫째로 준행하도록 그분을 부르고 찾는 것으로.

 

결론 

탐심은 루시퍼를 반역하게 한 심각한 죄의 원인이며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탐심은 위대한 승리의 빛을 바래게 하며 우리를 은혜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드러나는 행동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를 극복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말세의 고통도 탐심과 연결되어 있으나 하나님은 이런 문제를 이기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2월 26일(일) 근본적인 원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에 어떻게 죄가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질문이 자주 일어난다. 우리는 일부분이긴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다. 그 중심에는 탐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탐심은 궁극적인 원죄이다. 

 

이사야 14:12~14을 읽어보라. 루시퍼의 타락에 관한 어떤 힌트를 발견할 수 있는가? 그의 타락에 있어 탐심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

[사14:12~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하늘 무리들 중에 최고의 영광을 누리면서도 그는 자기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감히 창조주만이 받으실 수 있는 존경을 탐냈다. 그는 모든 피조물들이 그들의 애정과 충성에 하나님을 최고로 삼도록 노력하는 대신에 그들의 봉사와 충절을 자기 자신이 받으려고 노력하였다. 이 천사장은 무한하신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부여하신 영광을 탐내고 그리스도만이 가지신 대권(大權)을 갈망하였다”(부조와 선지자, 35).

 

에베소서 5:5과 골로새서 3:5을 읽어보라. 바울은 탐심을 무엇과 동일시하고 있는가? 왜 그런가?

[엡5: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답: 탐심은 우상숭배다. 하나님보다 더 갈망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두 번이나 탐심을 우상 숭배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바울은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롬 1:25)는 것을 죄라고 말한다. 즉,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너무나 원한 나머지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것을 향한 욕망이 마음의 중심을 차지해 버리는 것이 바로 탐심이다.

루시퍼 또한 처음에는 그의 잘못된 욕망이 그를 어디로 인도할지 알지 못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생각과 연관된 유일한 계명인 탐심을 멀리하라는 계명에 순종할 때, 우리가 다른 계명들을 범하는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멈출 수 있다(참조, 삼하 11).  

 

<묵상> 루시퍼의 타락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죄는 사소한 탐심에서부터 시작 하였습니다. 우리가 탐심을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답: 그것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마음 상태이기 때문에 죄라고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정서감을 풍부히 주셨다. 창세기 2장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창2:9)라고 기록하였다. 이 말씀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주셨고, 좋은 것을 먹고 싶어하는 마음을 주신 것을 나타낸다. 이런 마음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라고 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에게 하나님의 정서감을 풍성히 주신 것을 나타낸다. 이 좋은 것을 하려는 것 자체가 죄가 아니다. 이것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는 창조주의 뜻을 버리게 된다. 루시퍼가 바로 그런 예가 되었다. 하나님은 십계명의 마지막 조문에 탐내지 말라고 명시했으며 바울은 율법이 죄를 지적한다는 것을 말할 때 이 탐내지 말라고 한 열째 계명을 예로 들어서 설명했다(롬7:7,8). 죄가 나타난 행동 전에 마음의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더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서 회개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어떤 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慾望)에 강하게 사로잡히면 이성이 마비된다. 탐심은 이렇게 강하다. 에덴동산의 순수한 상태에서도 강하게 작용했거든 하물며 지금 사망의 존재들의 마음에는 얼마나 더 강하게 작용하겠는가? 

 

<교훈>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탐하는 마음이 루시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했다는 점에서 탐심은 근본적인 원죄이며 우리가 피해야 할 매우 심각한 죄이다.

 

2월 27일(월) 진영 내의 저주받은 물건

 

그때는 분명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기 중 하나였다. 광야에서의 40년간의 방황을 마치고 그들은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서고 있었다. 우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극적인 기적을 통해 마른 땅을 밟고 요단강을 건넜다. 이 사건이 얼마나 인상 깊었던지, 가나안 땅에 있던 이방 왕들의 가슴이 녹아내렸으며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다(수 5:1).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만난 첫 번째 큰 장애물은 높은 성벽으로 굳건히 방어된 여리고였다. 여리고를 함락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여호수아조차 말이다. 여호수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무너뜨릴 계획을 보여주셨고 그들은 그 계획을 따랐다. 그러나 그 놀라운 승리 직후에 상황은 정말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여호수아 7장을 읽어보라. 여리고에서의 엄청난 승리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답: (각각 7장을 읽어보기 바란다.) 아간이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탐내어 몰래 가져가서 숨겨두었다가 아이성 공격에 패전하고 온 국민을 실망과 공포에 빠뜨리고 아간의 가정은 멸망하였다.

 

아간은 자신이 범인임이 밝혀졌을 때 그 물건들을 “탐내어 가졌나이다”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탐내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하마드(chmd)는 성경 다른 곳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다니엘 9:23에서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단어가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간의 경우 하마드(chmd)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함락시킨 성에서 아무것도 취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이 있었음에도(수 6:18, 19) 아간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바로 그 일을 함으로 온 나라에 불명예를 끼쳤다. 아이에서의 패배 후에 여호수아는 이렇게 말했다.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수 7:9). 하나님께서는 이 승리들을 통해 주변 나라들에게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서 행하시는 당신의 능력과 역사를 나타내기 원하셨다. 그들의 승리는 다른 나라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서의 굴욕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증거의 효력을 약화시켰다.

 

<묵상> 탐심은 우리의 마음에 여러 가지 이유를 찾게 합니다. 아간이 자신의 행동을 얼마나 쉽게 정당화할 수 있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답: 온갖 이유를 생각할 것이다. 가난하니까, 정복한 지역의 물건이니까, 이것 조금 취하는데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등등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부가설명> 탐심은 합리화하기 위하여 묘한 이론을 꾸미는데 힘을 다 기울인다. 그래도 하나님은 근본적 사실을 다 아신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법이다. 아간이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셨다. 여호수아 7:13을 보면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라고 하셨다. ‘성결케하여 내일을 기다리라’라고 하신 것은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아간은 회개하지 않았다. 제비가 자기에게 딱 떨어졌을 때야 비로소 고백했지만 은혜 기간이 지나간 후이다. 만일 아간이 내일이 오기 전에 회개했으면 용서받았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으로 지나가는 세상 물건을 탐하다가 하늘을 잃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호흡 한 번 끊어지면 모든 것을 놓고 죽는다. 그런 것을 탐해서 영원한 하늘을 잃는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겠는가?

 

<교훈> 아간은 탐심에 이끌려 하나님께서 절대 하지 말라고 한 일을 행함으로 온 나라에 불명예를 가져왔다. 우리도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2월 28일(화) 유다의 마음

 

성경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바로 가룟 유다에 관한 것이다. 그는 세상 역사에서 자신 외에 오직 열한 명만이 누렸던 특권을 누린 사람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항상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분으로부터 직접 영원한 진리를 배운 자들이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유다와 같은 기회를 전혀 가지지 못한 사람들도 구원을 받게 될 것인데, 유다는 영원한 멸망을 당할 운명이라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어떤 일이 있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그의 마음에 있던 탐심이다.

 

요한복음 12:1~8을 읽어보라. 잔치가 진행되는 동안 마리아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어떤 행동을 했는가? 유다는 어떻게 반응했으며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는가?    

[요12:1~8]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답: 나드향 옥합을 깨고 그 향을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았다. 유다는 그것을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 주지 않느냐고 비난했고 예수님은 가만 두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다고 하셨다.

 

유다의 탐심 가득한 말에 대한 예수님의 자상한 훈계가 그로 하여금 잔치를 떠나 곧장 예수님의 원수들이 모여 있는 대제사장의 궁전으로 향하게 했다. 그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드렸던 선물보다 훨씬 더 적은 금액에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로 했다.(참조, 마 26:14~16)

도대체 유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그렇게 좋은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흔치 않은 특권을 누렸음에도, 그렇게 악한 일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유다는 “크신 선생님을 사랑하였으며 그분과 함께 있기를 간절히 사모했다. 그는 자기의 품성과 생애가 변화되기를 바랐고 자기 자신을 예수님과 연합함으로 그 같은 경험을 하고 싶어했다. 구주께서는 유다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열둘 중의 한 자리를 유다에게 주셨다.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전도 사업을 하도록 위탁하셨다.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낼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유다는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께 완전히 복종시키는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시대의 소망, 716).

누구나 품성의 결함이 있다. 하지만 예수께 온전히 내어 드리기만 하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그분의 능력이 그 어떤 결함이라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유다는 그리스도께 온전히 자신을 내어 드리지 않았으며, 그렇게 하기만 했다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극복 될 수 있었던 탐심의 죄가 그를 집어삼켜 버렸다.

우리 가운데 이런저런 것에 대한 탐심으로 인해 투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유다가 탐냈던 것은 돈이었고, 마음의 문제였던 그 탐심이 그로 하여금 훔치게 했고(요 12:6), 마침내 예수님을 배반하게 했다. 

탐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관한 얼마나 두려운 교훈인가! 너무 작아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마음의 욕망이, 우리를 재앙과 영원한 멸망으로 이끌 수 있다. 

 

<묵상>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의 사도였던 유다가 탐심으로 넘어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답: 누구나 그런 탐심에 빠질 수 있다는 교훈을 주며 경계한다.

 

<부가설명> 유다가 예수님을 따른 가장 핵심적인 목적은 그를 유대 왕으로 즉위시키고 로마 제국을 몰아내고 유대를 세계적 강국으로 세우는 것이었을 것이다. 보리떡 5개와 생선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그때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는 일에 군중과 연합했다. 아마도 가룟 유다가 앞장 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소망 76장 참고). 그는 은 30보다가 독립된 유다 왕국의 재상(宰相)이 되는 욕망을 가졌을 것이다. 이것은 유대 독립을 위한 애국심이요 예수님을 유대의 능력있는 왕으로 추대함으로 그 일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은밀히 그런 일을 추진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가 선생을 은 30이라는 헐값에 팔아넘긴 것은 그런 위기를 통하여 예수께서 자기의 생존을 위해 능력을 행하여 로마 군인들을 쓰러뜨리고 그 기세로 유대의 독립과 로마의 멸망을 실현시킬 것으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감히 선생을 팔고 겟세마네로 로마 군인들을 데리고 온 것은(요18:3) 그들이 예수님의 능력에 희생이 되도록 한 계책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의 능력에 죽게 되면 로마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예수님은 그 큰 능력으로 로마를 무찌를 것이며 유대는 세계에 가장 강한 나라로 건국되고 세계에서 가장 강한 왕으로 예수님이 즉위하면 그렇게 되도록 사건을 구상한 유다 자신은 그 나라의 일등공신으로 높은 지위를 얻게 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의 탐심의 발로였다. 돈을 탐하였고 그보다는 권력을 탐하였다. 이런 탐심은 하나님의 아들을 팔았고 죽게 하였다. 탐심에 빠지는 것으 ㄴ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결코 이런 탐심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훈>

자신의 연약함을 예수님께 온전히 내려놓지 않고 마음의 욕심에 따라 행동한 유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우리는 유다와 다른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3월 1일(수)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때는 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매우 신나고 흥분되는 시기였다. 오순절에 있었던 뜨거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후에 사도들은 힘 있게 복음을 전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교회에 입교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1, 32).

초기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교회의 성장과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직접 목격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큰 특권을 누린 자들이었다.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 4:34, 35).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일들로 인해 감동한 아나니아와 삽리라는 그러한 역사에 일조하고자 자신들의 소유 중 일부를 팔아 그 돈을 교회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여기까지는 잘된 일이었다.

 

사도행전 5:1~11을 읽어보라. 돈의 일부를 감춘 것과 거짓말한 것 중 무엇이 더 큰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가혹한 형벌이 내려진 이유는 무엇인가?

[행5:1~1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답: 거짓말 한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한다. 거짓은 거짓말 하는 영의 지배하에 들어갔다는 표가 된다. 교회에 이런 일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 징계이다. 

 

그들이 처음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바치기로 결심했을 때, 그들의 마음은 진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탐욕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성령을 슬프게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약속을 후회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큰일을 하려는 소망으로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던 그 아름다운 축복의 감화를 잃었다”(사도행적, 72). 다시 말해 그들이 그런 마음을 갖게 된 동기는 좋았으나, 그들의 탐심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척하게 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행 5:11). 이 사건이 있은 후, 사람들은 십일조를 포함하여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일에 더욱더 조심하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잘 드리도록 경고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탐심이 사람의 마음을 어디로 이끌어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묵상>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마음을 드렸지만 그 결과는 비극적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어떤 이유들이 있을까요?

 

답: 성도들이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게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탐심을 버리도록 하고 정직한 믿음 생활하도록 지표(指標)를 놓게 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없었어야 할 초대교회의 불행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이 생겼을 때 주님은 그것을 교회와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게 이제 막 출발하는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분명하게 지시한 기별이 되도록 사용하셨다. 이 사건을 들은 교회와 들은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했다. 세상이 하나님의 교회를 만만히 볼 수 없도록 했고 교회는 하나님 앞에 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성도로 세상을 살아갈 때 탐심이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교훈을 받았다.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5:4)라고 말했을 때,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라고 말할 때 아나니아가 탐심의 지배에 자기를 팔아버린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는 선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아까운 생각이 스멀스멀 머릿속에 기어들어와서 선하고 순수한 마음을 야금야금 먹으면서 그 아까운 생각을 점점 크게 키우고 마침내 선하고 순수한 마음을 삼킨다. 약속은 했으니 이행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업으니 수단을 써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얕은 꾀로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는데, 사실은 자기를 속이고 처음부터 거짓말 하는 자의 수하에 자시을 소속시키고 망하게 된다. 두렵다. 성령께서 이것을 확실히 이기도록 주장해주시기를 기도하자.

 

<교훈>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약했지만 마음에 가득한 탐심을 제어하지 못함으로 죄를 짓게 되었다.

 

3월 2일(목) 탐심 극복하기

 

탐심은 마음의 문제이며 교만과 이기심과 마찬가지로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매우 치명적이고 기만적일 수 있다. 거짓말, 간음, 도둑질, 우상 숭배,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과 같은 분명한 죄를 극복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적어도 잘못을 저지르기에 앞서 그런 행동을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하는 외적인 행동들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를 극복하기란 훨씬 더 어렵다.

 

고린도전서 10:13을 읽어보라. 어떤 약속이 기록되어 있는가? 탐심이라는 맥락에서 이 약속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과 심험 당할 즈음에는 피할 길을 주셔서 능히 시험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겠는다는 약속을 주셨다. 확실한 이 약속을 따라 탐심을 물리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이처럼 위험하고 기만적인 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1.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께 의지하며 그분의 가족으로 살기로 결심하라.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2. 매일 기도하라. 그리고 그 기도 속에 마태복음 6:13을 포함시키라.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그대가 가져야 할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탐심이 생긴다면 고린도전서 10:13에 기록된 말씀과 같은 성경의 약속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라.

3. 정규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라.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겪는 죄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셨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받는 모든 시험을 경험하셨다. 그리고 그 시험을 이기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밤새도록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삶의 모본으로 길을 보여 주시고 모든 사람이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는 힘, 곧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계발할 수 있도록 하시기 전까지는 이 땅을 떠나지 않으셨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6, 7).

 

<묵상> 마음의 문제는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혹시 나에게도 보이지 않는 탐심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답: 이 질문에 자유로울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5)라고 하신 말씀대로 생각을 주님께 복종하도록 쉬지말고 기도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다.

 

<부가설명>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다. 우리는 자율(自律)하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세력에 언제나 노출 되어 있고 휘둘리는 존재다. 생각은 자신이 하는 것 같으나 자기가 소속된 진영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거기서 벗어나면 그 소속을 떠나야 한다. 그러므로 소속을 떠나서 다른 데 소속해야 하는가? 이것이 그리 쉽지 않다. 사람은 이미 있는 데 안주하려는 강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가룟유다에게 예수 팔 생각을 넣은 것은 마귀다(요13:2). 마귀는 유다의 생각을 지배한 것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그 생각이 영적으로 바뀐다. 소속이 바뀌는 것이다. 전에는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인 마귀에게 소속되어 있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예수님께 소속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예수님께 소속되면 마귀 진영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생각이 예수님적으로 바뀌게 된다(롬8:5,6). 우리는 자주 내가 어디 속해있는지 시험하고 확정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고후13:5). 그러면 탐심으로 자기를 속이는 데서 해방되는 희열이 온몸을 휩쓸 것이다. 

 

<교훈>

겉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탐심을 제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말씀과 기도의 삶을 통해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3월 3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여리고 정복에서 이스라엘 진영으로 은과 금을 가지고 온 것이 아간 한 사람 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은금과 동철 기구들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라고 했다(수 6:19, 24). 그 외의 모든 것은 불살라야 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물건을 감춘 사람은 아간뿐이었다. 

“그 승리와 심판이 시행되던 엄숙한 시간에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 중에 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한 사람이 있었다. 시날산 의복을 볼 때에 아간의 탐욕은 자극을 받았다. 이것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게 된 그 순간까지도 아간은 그것을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라고 불렀다. 한 가지 죄는 다른 죄를 유도하여 그는 여호와의 보고에 바쳐야 할 금과 은도 훔쳤는데 곧 가나안 땅의 처음 열매를 하나님에게서 도적질하였다”(부조와 선지자, 496).

바울이 기록한 마지막 때의 징조에 관한 목록 가운데, 처음 기록된 두 가지가 돈과 재물을 향한 우리의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딤후 3:1, 2). 이기심과 돈에 대한 사랑이 마지막 때, 곧 우리가 살아가는 때의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디모데전서 6:6~10을 읽어보라.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찌른”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해 보라.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바울이 경고한 것처럼 그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야 하겠는가?

※ 재정을 자신의 수입에 맞도록 사용하는 지혜를 사용하며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재정 운용을 해야 할 것이다. 

 

2. 돈 외에 우리가 탐심을 품을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 명예, 지위, 권력 등등.

 

3. 무언가에 대한 정당한 욕구와 탐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정당한 욕구가 탐심으로 바뀌는 것은 언제인가?

※ 욕심이 지배할 때 욕망(欲望)이 욕망(慾望)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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