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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예수님을 위한 예물들(질문, 대답, 설명) 01/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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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01-21 02:33 조회5,9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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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예수님을 위한 예물들 

(1월 28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51분)

 

연구 범위: 고후 9:6, 7, 신 16:17, 대상 16:29, 시 116:12~18, 막 12:41~44, 막 14:3~9

기억절: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 116:12~14).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린 후, 우리에게 남아있는 90퍼센트의 소유 중에서 드리는 헌금들이 있다. 여기에서 관대함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속죄제, 감사 제물과 같은 각기 다른 종류의 예물을 드렸다. 속죄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여 드리는 예물이었으며, 감사 제물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건강, 재물과 같은 축복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이었다. 또한,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한 예물과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유지하기 위한 예물도 있었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각기 다른 목적으로 드리는 헌금은 특정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재정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됨을 깨닫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 특별히 예수님의 희생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교회는 그렇게 드려진 예물을 하나님의 사업의 확장을 위해 사용한다. 이번 주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일의 일부로서 헌금에 관하여 성경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헌금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경배와 감사의 표현임을 깨닫는다.  

 

- 느끼기: 내가 드리는 헌금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낸다는 것을 느낀다. 

 

- 행하기: 다함이 없는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신실한 헌금을 드리기로 결심한다. 

 

TMI 위로

2.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이유를 간략하게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까요? 

※ 감사와 믿음의 충성을 드러내는 무의식적 삶이다.  

3. 평생 갚아도 못할 것 같은 은혜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요 3:16)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요? 

※ 하나님께 감사와 충성으로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사람에게도 감사로 예를 다해야 할 것이다. 

4.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 헌금을 드리는 것이 빠진다면 그 예배는 어떻게 되겠습니까?(신 16:16)

※ 기도를 실현하지 않는 형식적 예배가 될 것이다. 

5. 고넬료가 하늘 천사의 방문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행 10:1-4)

※ 진정으로 기도와 구제를 했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라고 하신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하신 말씀일까요?  

※ 하나님의 것을 올바르게 드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삶을 살기를 기대하신 말씀이다. 

 

결론 

우리의 헌금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화시킵니다.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도 넉넉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헌금은 예배 행위로서 우리의 감사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것은 금액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주의 사업에 대한 관심으로 하나님께 기억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며 우리가 재정적으로 신실하기를 원하십니다.   

 

1월 22일(일) 헌금의 동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이라는 놀라운 선물에 대한 반응이다.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님은 우리의 예물을 필요로 하시지 않으신다. 우리는 우리의 예물로 주님을 부요하게 할 수 없다.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사오니 주의 것에서 우리가 주께 드리나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베푸신 자비에 대한 우리의 감사를, 남에게 자비를 베풀되 자아 희생적 노력으로 나타내라고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와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는 다른 길을 만들지 않으셨다”(청지기에게 보내는 기별, 18).

우리가 우리의 돈을 예수님께 바칠 때, 그것은 그분과 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강화시킨다. 그러므로 돈은 선을 이루기 위한 실재적인 힘이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어떤 주제들보다 돈과 재물에 관해 많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말씀에서 여섯 절 중 하나는 돈에 관한 것이다. 복음서가 들려주는 좋은 소식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돈을 사랑하고 그것을 잘못 사용하는 위험으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6:31~34과 신명기 28:1~14을 읽어보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욕심인가?

[마6:31~34]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신28:1~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7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10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답: 삶의 모든 일에 필요한 것을 언제나 공급하시겠다고 하셨다. 이것을 구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실한 신뢰를 보이는 것이다. 

 

우리의 헌금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헌금은 우리의 삶을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온전히 바쳤음을 표현하는 매우 영적인 경험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드리는 관대한 헌금을 통해 그 사랑을 나타내 보이고 강화시킬 수 있다.

 헌금은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에서부터 온다. 헌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확신을 발견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헌금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우리의 헌금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은혜와 구원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다.

 

<부가설명>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은 다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심지어 자기의 지식도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성경은 아주 명료하게 지적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4:7).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외부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자기 존재와 생명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외람되고 건방지고 교만한 짓이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제자는 선생을 공경해야 한다. 그중에 가장 근본적인 것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깨달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감사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상한 것이다. 성격파탄이거나 모든 것이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창조주시며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이런 감사가 입으로만 아니고 생활로 행동으로 드러내게 된다. 사람 사이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어떻게 이런 정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 그것이 제7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하는 것고, 일상생활에서 진리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과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이것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 사랑과 친절로 그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이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교훈>

우리가 자원하여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믿음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표현이다. 

 

<묵상>

고린도후서 9:6, 7을 읽어보십시오.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 있을까요? 

[고후9:6,7]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답: 이 말은 즐겁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만큼 드리라는 뜻이다. 

 

1월 23일(월) 얼마나 드려야 할까?

 

신명기 16:17을 읽어보라. 하나님께서는 헌금의 기준으로 구체적인 비율 대신 무엇을 주셨는가?

[신16: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답: 하나님께 받은 복의 분량대로 힘을 따라 드릴 것이다.

 

우리의 헌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 구원, 물질,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위의 성경 구절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가 드리는 헌금의 분량은 우리가 받은 축복에 비례해야 한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시편 116:12~14을 읽어보라. 12절에 제시된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그 답에 돈이 어떻게 적용되는가?

[시116:12~14]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답: 복받은 분량대로 정하여 감사함으로 기쁘게 드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다 갚을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하나님의 사업과 우리 이웃들을 돕는 일에 후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선교 여행을 위해 제자들을 보내셨을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우리의 헌금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계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헌금을 통해 이기적인 존재에서 사랑 가득한 존재로 변화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일과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주셨”(요 3:16)음을 항상 기억하자. 반대로,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위해 쌓아둘 것 같으면, 우리의 마음은 더욱 더 이기적이 될 것이며, 갈수록 더 비참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헌금 액수와 드릴 곳은 각자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은 영적 그리고 도덕적 의미를 갖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이 의무를 등한시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우리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다. 

 

<부가설명> 이미 앞에 쓴 것처럼 우리가 가진 것은 다 하나님께 받은 것들뿐이다.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천연계와 시간과 공간을 사용할 때 감사한 마음이 충만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글을 쓰는 필자도 글을 쓰면서 얼굴이 붉어지고 있다. 감사가 너무 부족한 생활을 이어온 것이 아니겠는가! 감사한 마음이 충만하면 충성하는 믿음도 충만하게 된다. 어느 것 한 가지라도 받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상이다. 그런데 성경을 받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들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몰라서 안 한다고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감사와 충성과 결과로 예물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창조주께서는 수입의 십분의 일만 배정하셨다. 그 외에 자원하는 감사로 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이 창조주의 것이며 생활하는 모든 것이 창조주께 받은 것이며 생명과 존재가 그분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겸손히 시인하며 경배는 방법이다. 그리고 주신 것을 사용하는 것은 주인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사용하는 것이기에 거리낄 것이 없다. 거리낄 것 없는 믿음으로 충성하자. 

  

<묵상>

우리가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는 신앙생활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과, 그 헌금을 드리는 태도는 이것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답: 각각 대답하자.

 

<교훈>

하나님께 받은 축복에 비례하여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감사의 표현이다. 우리는 헌금에 참여함으로 예수님을 닮은 품성을 계발할 수 있다.

  

1월 24일(화) 헌금과 예배

 

성경이 예배 순서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적어도 네 가지 요소를 알려준다. 신약에서 볼 때 말씀 연구/선포, 기도, 음악, 그리고 십일조와 헌금이 바로 그것이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일 년에 세 번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야했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아야 했다(신 16:16).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는 일이 예배의 일부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에 십일조와 헌금을 가지고 왔다. 이 절기들에 빈손으로 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 말해, 고대 이스라엘에서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는 일은 예배에 있어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참된 예배는 그저 말과 노래와 기도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더불어 하나님의 전에 예물을 가져옴으로 우리의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으로 가져갔고 우리는 안식일에 교회로 가져간다(십일조와 헌금을 드리는 한 중요한 방법으로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은 예배의 행위이다. 

 

역대상 16:29, 시편 96:8, 9, 그리고 시편 116:16~18을 읽어보라. 이곳에 나타난 원칙들을 우리의 예배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대상16:2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시96:8,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시116:16~18]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답: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그분의 집에 들어가야 하고 합당한 예물을 가지고 가야 하며, 아름답고 거룩한 차림으로 예배해야 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관리할 책임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예물을 가지고 오는 것은 특권이요 기회이며, 의무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을 위해 자녀를 양육할 특권을 주셨다면, 우리는 그들과 함께 안식일학교와 교회 예배에 십일조와 헌금을 가지고 오는 기쁨을 공유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온라인 또는 다른 방법을 통해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는 일이 많아졌다. 어떤 방식을 취하든지,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일부임을 기억해야 한다. 

 

<부가설명>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이 최소한 갖출 것을 기록한 말씀들이다. 첫째, 하나님의 집에 가는 것이다. 둘째, 예복을 입고 들어갈 것이다. 셋째 예물을 가지고 가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시29:2). 예배에 임하는 성도는 예배에 합당한 복장이 필수적이다. 가정에서 가족 예배하는 것이나 비공식적인 예배에는 예외가 있겠으나, 주님의 집인 교회당에서 공식적으로 안식일 예배할 때에는 복장에 주의해야 한다. 요즘 예배 복장이 성경적이 아니다.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가 목적이 있는 40일이라는 프로그램을 퍼뜨리면서 예배 복장을 시장판 복장을 만들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닐 때는 불경한 태도이다. 부득이한 경우란 여행 중에 예배 복장을 챙기지 못했을 경우, 예배 복장을 따로 준비할 처지가 못 되는 집안 형편 등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거룩한 옷’을 입으라고 했다. 또한 예물, 십일금, 예배 헌금과 기타 헌금들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 계시한 안식일 공식 예배는 예배당으로 준비한 집에서 함께 예배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교회당에 출석하는 것이 많이 해이해진 것은 빨리 회복해야할 일이다. 올바르게 예배하도록 예배 회복이 첫째 천사 기별에 포함된 것을 기억하자. 

 

<교훈>

하나님 앞에 잘 준비된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드리는 일은 기도와 찬양과 말씀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예배의 한 부분임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묵상> 그대는 예물이 드려질 때에 마음을 다해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대가 헌금에 얼마만큼의 마음을 담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답: 과부의 두 고드란트 헌금을 생각하면 헌금 액수가 아니라 마음을 다해 드리는 것이 핵심임을 알 수 있다.

 

1월 25일(수)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린 예물을 기억하심

 

마가복음 12:41~44을 읽어보라. 우리가 부자건 아니건 간에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이 이야기가 가르쳐 주는 원칙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것을 우리의 예배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막12:41~44]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답: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이다. 그가 생활하는 것은 전부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하시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장면이고 예수님의 해석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헌금함이 놓여 있는 성전 뜰에 앉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두 렙돈을 넣는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계셨다. 그 과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헌금함에 넣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의 동기를 아셨다. 그 여자는 성전 봉사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임을 믿었고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의 최선을 다하기를 열망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했고, 그 행위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는 기념비가 되고 영원히 그의 기쁨이 될 것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그녀의 예물과 함께 드려졌다. 그 가치는 동전의 가치로서가 아니요 그 같은 행실을 하도록 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주의 사업에 대한 관심으로 말미암아 평가되었다”(청지기에게 보내 는 기별, 175).

또 다른 매우 중요한 점은 이것이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유일한 예물이었다는 사실이다. 과부의 예물은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거절할 교회, 부르심과 사명으로부터 멀리 벗어난 교회에 드린 것이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그 헌금을 칭찬하셨다.

 

사도행전 10:1~4을 읽어보라. 로마 백부장이 하늘 천사의 방문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한 행동 중 무엇이 하늘에 알려졌다고 기록되어 있는가?

[행10:1~4]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답: 고넬료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행한 구제와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기억하셨다. 

 

우리의 기도뿐만 아니라 우리가 드린 예물의 동기까지도 하늘에서 기억된다. 위의 성경 구절은 고넬료가 후하게 베푸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고넬료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더 배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도와 구제하는 일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의 두 원칙이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 첫 번째 명령은 기도를 통해 나타나고 두 번째 명령을 구제를 통해 나타난다. 

 

<묵상>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근본 동기를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드리는 십일조와 헌금을 얼마나 귀하게 보실까요?

 

답: 진심으로 하고 성경이 계시한 원칙대로 하는 것이라면 고넬료나 과부의 두 고드란트를 보신 것과 같이 보실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나를 개인적으로 기억하시는 것이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는 아는 것보다 훨씬 복된 것이다. 마태복을 7:21~23에 나오는 말씀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믿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런 자리에 있지 않는지 자주 살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헌금을 드리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단순히 교인의 의무이기 때문에 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것이 생활이 되어야 한다. 나는 어미 새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날라다 먹이는 것이나, 새끼를 해치려는 동물에게 목숨 걸고 대항하는 것이 그렇게 해야 하는 책임감이나 의무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르긴 하지만, 그것들이 책임과 의무를 알까? 그냥 생명의 본능으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행동은 기억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때 네가 참 대단한 용기로 그렇게 해서 원수를 쫓아버렸지.”라고 하면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무의식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로 나타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삶이다. 그래서 오른편 양으로 분류된 사람들의 대답이 나온다. ‘우리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무의식적으로 생활자체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헌금을 드리ᅟᅳᆫ 것이 진정으로 드리는 헌금이고 나는 잊어버려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헌금이 된다. 오른편 사람들은 자기가 한 것을 기억하지 못했어도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합당한 복을 주셨다. 우리도 이렇게 신앙하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하나님께서는 금액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우리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교회와 이웃을 위해 정성껏 드린 예물을 기억하신다.

 

1월 26일(목) 특별계획: “큰 병”에서 드리기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의 자산 중 약 9%만이 유동적이며 즉시 헌금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현금, 수표, 저축, 단기 자금 시장 펀드 등이 유동 자산으로 간주된다. 우리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약 91%는 집, 가축(농촌인 경우) 또는 기타 비유동 품목처럼 짧은 시간 안에 현금화하기 어려운 곳에 “투자”되어 있다.

유동 자산과 비유동 자산의 비율 차이는 동전 천 개를 각기 다른 두 개의 병에 넣어두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10개의 동전이 1%를 나타낸다고 했을 때 작은 병에 들어 있는 90개의 동전은 9%의 유동 자산을, 큰 병에 들어 있는 910개의 동전은 91%의 비유동 자산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은 병에 들어 있는 것, 즉 유동 자산을 가지고 헌금이나 기부를 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큰 병에서 꺼내어 드린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 14:3~9과 요한복음 12:2~8을 읽어보라. 시몬의 집에서 있었던 잔치의 주인공들은 누구였는가? 마리아가 드린 예물의 가치는 얼마였는가? 그녀가 바로 그때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이유는 무엇인가?

[막14:3~9]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요12:2~8]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답: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고, 300데나리온이며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드렸다.

 

  마리아가 드린 예물은 300데나리온, 즉 일 년 치 급여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큰 병”에서 드린 예물이었다. 이 사건이 있고 난 뒤, 유다는 마리아가 드린 것의 삼 분의 일이 조금 더 되는 정도의 금액인 은 30개에 예수님을 배반했다.(마 26:15) “큰 병”에 있는 것들은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일 가능성이 높고, 그 병에서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참된 사랑과 헌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유다처럼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우리 영혼을 헐값에 팔아 버릴 수도 있다.

 신약에는 바나바의 헌신과 활동이 스물여덟 번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그를 바울의 동역자요 위대한 선교사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가의 기초가 되는 내용이 성경에 그가 처음 등장하는 사도행전 4:36, 37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가 드린 “큰 병”에서 드린 예물을 보게 된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얼마나 강력한 실례인가! 

 

<묵상> 자신을 희생하여 드리는 예물이 받는 사람에게 만큼이나 드리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예물의 가치와 무게가 그의 감사와 사랑의 무게가 되기 때문이다. 

 

<교훈>

큰 병에서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과 헌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와 같은 행동은 우리의 보물이 어디 있는지 보여 줄 것이다. 

 

1월 2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늘의 기념책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재정적 신실함도 기록되어 있다. “나는 기록하는 천사가 하나님께 헌납되는 헌금마다, 금고에 넣어지는 금전들을 충실히 기록하며, 그렇게 드려진 헌금의 최후 결과를 충실히 기록하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눈은 주의 사업에 바치는 모든 동전을 보시고 바치는 자가 즐겨 바치는지 마지못해 바치는지도 아신다. 바치는 동기도 기록된다. 주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주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자기 희생적이요, 헌신적인 사람들은 저들의 행위에 따라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드려진 재물이 오용되어 헌납자가 목적한 바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의 구원을 성취하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만 단순하게 바라보고 신실한 마음으로 희생한 자들은 저들의 보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교회증언 2권, 51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며 그분의 일의 발전을 위해 계획하기를 기대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고넬료처럼 기도와 구제를 함께 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며, 살아 있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기도하는 동시에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드려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실천한다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사랑과 자기 부정의 마음으로 행한 모든 것을 기억하신다. 우리가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낸 곳에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Atlantic Union Gleaner, 1903년 6월 17일).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기도와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기도하는 것이 무엇을 언제 어디로 얼마만큼 보내야 하는지 결정하는 일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 기도는 실천으로 조화를 이룬다. 기도로 말씀이 가르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어느 저명한 잡지에서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하며 많은 돈을 벌지만 여전히 비참하고 공허하며 근심과 걱정 가득한 삶을 사는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 중 어느 자산 관리사가 이야기했다. “내 포트폴리오에서 추가로 1%의 이익을 얻는다 한들 내가 죽은 후에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이 사람의 이야기와 주는 것이(심지어 희생의 예물까지) 우리를 “재물의 유혹”(마 13:22)으로부터 자유케 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영적으로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비교해 보라. 우리는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죽은 후에 부활의 날 하늘 상급을 받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이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유익이다. 

 

3. 위에 기록된 엘렌 G. 화잇의 첫 번째 인용구에서 드려진 재물이 “오용”될 수도 있음을 기록하고 있는 부분에 주목해 보라. 드리는 자로서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그럴지라도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드리기 때문에 그 문제에 관심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합당하다. 그리고 바르게 사용되도록 기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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