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과-마음에 새기는 에베소서-(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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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9-25 23:58 조회1,57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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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과 마음에 새기는 에베소서
(9월 30일 (안) / 일몰: 오후 18시 18분)
<기억절(記憶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8~10).
<서언(緖言)>
에베소서의 주제(主題)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聯合)이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異邦人), 아시아인(亞細亞 人)과 유럽인, 노예(奴隸)와 자유인(自由人)으로 이뤄진 교회(또는 교회들)에 편지를 썼는데,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으로 회복(回復)돼야 할 분열(分裂)된 세계를 상징(象徵)한다. 그곳에는 개인(個人), 가족(家族), 교회(敎會), 인종(人種)의 연합(聯合)이 필요했다. 각 신자(信者)의 생애(生涯)에서 이뤄지는 개인적(個人的)인 연합의 회복은 하나님의 우주(宇宙) 연합을 보증(保證)한다.
즉 바울은 교회를 ①.그리스도의 몸으로, ②.하나님의 성전(聖殿)으로, ③.그리스도의 신부(新婦)로 묘사(描寫)했다. 또한,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군대(軍隊)로 묘사(描寫)하여 무장(武裝)을 갖추도록 강력히 촉구(促求)하고 있지만, 이 구절(句節)은 오해(誤解)의 소지가 있기도 하다. 이는 세상적인 물리적(物理的)인 전투무기(戰鬪武器) 태세(態勢)가 아니라 연합(聯合)과 덕(德)을 세우는 말과 온유한 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물리적인 전투의 하드웨어(hardware)가 아닌 영적인 전투의 소프트웨어(software) 적(的)인 악(惡)과의 영적전쟁(靈的戰爭)에서 평화(平和)를 얻기 위하여 싸워야 하는 영적(靈的)인 대쟁투(大爭鬪)로써 하나님의 진리(眞理)와 의(義)와 평화(平和)와 믿음과 구원(救援)과 성령(聖靈)의 “하나님의 전신 갑주(全身甲冑)를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예수 님 안에 붙어있기만 하면 승리(勝利)는 우리의 것이라고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전하고 있는 맥(脈)이다.
(09월 24일 (일) <그리스도 안에서 복(福) 받음>
(Q)~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의 핵심(核心)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 받음“이라는 의미(意味)는?
(A)~에베소서는 신자(信者)들에게 영원전(永遠前)의 과거(過去)에서부터 영광(榮光)의 미래(未來)까지의 구원(救援)의 역사(歷史)를 포괄(包括)하여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신령한 복(福)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을 수행(遂行)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심에 따라 우리를 축복하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선택된 자들 중의 머리가 되시며,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라고 강조적(强調的)으로 불린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인간들을 사랑의 눈길로 보시는 선택된 구세주(救世主) 안에서 우리를 선택(選擇)하신 선택에 따라서 우리를 축복하셨다.
"선택"하신 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행복에 이르게 하시려고 선택하신 모든 사람에게는 이 행복을 위한 거룩함을 갖추는 의무(義務)(선택)도 부여(附與)되어 있다.
그들의 구원(救援)뿐만 아니라 그들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사랑의 뜻의 결과이다.
그가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랑의 뜻의 결과이다. 그가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흠(欠)이 없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에베소서 1장(章)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연합(聯合)을 의미(意味)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通)한“ 하나님의 사역(使役)을 나타낸다고 주장(主張)할 수 있다. 그러나 본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배제(排除)할 수가 없다. 따라서 본 에베소서 1장에서는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祝福)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짐을 시사(示唆)한다.
1). 선택(選擇)과 예정(豫定)은 다른 거룩한 은혜(恩惠)를 넘치게 하는 신비(神祕)한 은혜(恩惠)의 근원(根源)이다. (엡 1장 4, 5, 11절).
2). 바울이 언급(言及)한 또 다른 신령한 복(福)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용납(容納)받음이다. (엡 1장 6절).
3). 예수의 피를 통한 구속(救贖)과 죄의 용서(容恕)(엡 1장 7절). 속죄(贖罪)와 구원(救援)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關係)에 있다. 우리가 속박(束縛)을 당한 것은 죄 때문이며 우리는 죄의 용서(容恕)를 받지 아니하고는 속박(束縛)으로부터 자유(自由)할 수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구원(救援)을 받고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죄(贖罪)함을 입었다.
4). 신적(神的)인 계시(啓示)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뜻의 비밀(祕密)을 우리에게 알리셨다."(엡 1장 9절).
5).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은 대단히 큰 특전(特典)이며, 신령한 복(福)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다른 모든 은혜(恩惠)의 기초(基礎)가 된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統一)되게 하려 하신다."(엡 1장 10절).
6). 영원(永遠)한 상속(相續)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는 가장 크나큰 축복이다. (엡 1장 11절)
7). 성령의 인(印)치심과 보여주시는 증거(證據)로 이러한 복(福)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가 "약속(約束)의 성령으로 인(印)치심을 받았다."(엡 1장 13절) (엡 1:3, 매튜헨리)
(09월 25일 (월) <공동체(共同體)로 만들기 위해 구속(救贖)하심>
(Q)~(에베소 2장)의 핵심(核心)은 하나님의 은혜(恩惠)로 그리스도의 부활(復活)과 승천(昇天)과 높임에 참여하게 하셨으며 특히 죄(罪) 사(赦)함과 구속(救贖)하심에 있어 무엇을 하시라는 뜻이 담겨있습니까?
(A)~(에베소 2장)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의 권능(權能)에 의해 재창조(再創造)하셨고 만민(萬民)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共同體)로 연합(聯合)하여 거룩한 성전(聖殿)을 구성(構成)하시기를 원하셨다. 이는 구원(救援)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恩惠)로, 오직 그리스도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榮光)으로 이르기 때문에 우리를 구속(救贖)하심에 연합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과의 장벽(障壁)을 허물고 연합하여 거룩한 성전(聖殿)을 구성(構成)하는 일부(一部)가 되라는 권면(勸勉)이다.
(09월 26일 (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敎會)>
(Q)~하나님의 교회 일원(一員)이 되는 것이 왜 기쁘고 중요(重要)한 일인가? (엡 3장)
(A)~사도 바울이 권면(勸勉)하는 교회의 사명(使命)은 ①.하나님의 지혜(智慧)를 선포(宣布)
하는 것과 ②.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더욱 자세(仔細)히 아는 것이다. 이는 교회는 하나님의 각종 지혜가 드러나고 이 계획의 동역자(同役者)인 신자(信者)들의 삶을 통해서도 나타나게 된다. 십자가의 사랑을 선포(宣布)하고 이를 깊이 아는 것이 곧 교회의 자랑이요 생명이 된다는 사실을 깨우치려 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교회(敎會)를 영광스럽게 만드는 진정(眞正)한 활동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엡 3장)은 바울 자신에 대한 사역을 설명하고(엡3:1~13절), 성도(聖徒)들을 위한 바울의 중보기도(仲保祈禱)(엡3:14~21절)이다.
(09월 27일 (수) <하나 된 믿음>
(Q)~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근본적(根本的)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엡 4:20~21, 32)
(A)~(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교회와 성도(聖徒)들의 삶이, 교리(敎理)에서 의무(義務)로 이론적(理論的)인 신학(神學)에서 구체적(具體的)인 적용(適用)으로의 전환(轉換)하라는 것이 (엡 4장) 요지(要旨)이다. 그러므로 새 시대(時代)의 새로운 규범(規範)으로 ①.교회의 일체성(一體性)과 ②.순결(純潔)한 삶이다. 즉 우리는 하나이지만 성령(聖靈)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데에는 우리의 노력과 실천(實踐)이 필요하다.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부여(附與)받은 새로운 공동체인 만큼 그 교리(敎理)는 생명 없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생활에서 증거되는 힘 있는 진리(眞理)라는 사실을 강조(强調)하며 특히 ①.하나 되므로 행(行)하라(엡 4:1~6절) ②.순전(純全)함으로 행하라(엡 4:17~32절)고 권면(勸勉)하고 있다.
(09월 28일 (목) <받은 은혜(恩惠)를 따라 은혜(恩惠)를 나누는 자>
(Q)~6. 하나님의 사랑을 본(本)받는 삶의 방식(方式)이라는 말은 어떻게 하라는 의미(意味)입니까? (엡 5:1)
(A)~하나님을 본(本)받는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성품(性稟)을 모방(模倣)하라는 의미(意味)로써(마 5:44, 48; 눅 6:36) 이는 하나님 중심적(中心的)인 신앙생활(信仰生活)의 기초(基礎)를 말하는 것으로 빛의 자녀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 안에서 살며 세상에서 추구(追求)하는 그런 삶이 아니고 받은 은혜(恩惠)를 따라 은혜(恩惠)를 나누는 실천(實踐)하는 삶인 것이다.
**************<말미부록(末尾附錄)>***************
⑴
그리스도 예수 안의
이 표현 혹은 이것과 관련된 형태인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안에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자 안에서”는 이 서신의 주요 구절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이 서신에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자가 그 안에서 생활하고 거동하는 영역 혹은 매체로 지칭한다. 이 표현들은 주님과 그리스도인의 밀접한 연합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주님과 연관 지어 행한다. (SDA 주석)
그리스도 안에서
이 구속은 그리스도와 협력하는 수준이나 그분과 신비롭게 연합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로 인해 이뤄진다. 그리스도는 구속의 “산 본령”이시며, 그 위업이 성취되는 것은 바로 그분의 위격(位格) 안에서이다. 그는 설계가 겸 건축의 대가인 동시에 모퉁잇돌이다. 그는 목자일 뿐 아니라 양우리의 문이기도 하다(요 10:1~14). (성경주석)
⑵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으실 때 그분 안에서 완전하게 될 가능성이 우리의 손이 닿는 곳에 있게 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하신 일과 그의 사명을 정확히 이해함으로써이다. 그분의 기다란 인성의 한쪽 팔이 인간 가족들을 안으시고 그의 신성의 팔이 무한하신 분의 보좌를 붙잡으신 것은 그가 사람을 위해서 치르신 무한하신 희생의 은혜를 우리로 입게 하려 하심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그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에게까지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신다.
자신의 의견을 너무 높이기 때문에 이러한 오묘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이들 위대한 사람들로 깨닫게 하시는 과학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진리요, 생명이요, 빛이신 분을 볼 수가 없다. 인간의 과학은 하나님이 비춰주신 빛이 아니다. 하나님의 과학은 하나님의 영의 나타나심이며, 그분을 믿는 절대적 믿음을 고취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믿음은 그들이 위대하고, 총명한 마음의 주의를 끌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것은 너무 높아서 인간의 지성이 전혀 미치지 못할 수준에 있다는 것이다.
복음 기별은 참 과학이나 인간의 학식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참 지혜는 세상 지혜가 깨달은 바를 훨씬 초월하는 것이다. 영광의 소망이신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 곧 숨은 지혜는 하늘만큼이나 높은 지혜이다. 경건의 심오한 원칙들은 숭고하고 영원하다. 그리스도인 경험만이 우리를 도와서 이 문제를 이해하게 할 수가 있고 지식의 보화를 얻게 할 수가 있다. 이 지식은 하나님의 처소에 감치었던 것으로 그리스도와 산 관계가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제 알려진 것이다. 원하는 자는 누구나 다 그 교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리뷰 1899.7.18). (엡 1:3, 화잇주석)
⑶
쳐다보고 그리고 살라(사 45:21, 22; 마 16:24; 요 1:29)—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에 그는 복음이었다. 이제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 1:29)는 기별을 갖고 있다. 우리 교회의 신자들은 못 박히신 구주를 쳐다보지 않을 것인가? 영생의 소망 중심이 된 부활하신 구주를 바라보지 않을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기별이며, 우리의 논리이며, 교리이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는 우리의 경고이며,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우리의 위로이며, 모든 믿는 자들의 소망이다. 만약 우리가 사람들의 관심을 일깨워서 그들의 시선을 그리스도께 고정시키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옆으로 비켜설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의 시선을 하나님의 어린양께 계속 고정시키라고 요청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서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막 8:34).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시킨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릴 것이다. 이기심에 대하여 죽을 것이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을 것이며, 그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매우 놀랍고도 영광스럽게 높임을 받을 것이다. (화잇 주석 6권 1113) (6BC 1113)
죄인이 사랑 많으신 구주를 있는 그대로 볼 때 희망과 확신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의지 없는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께 남김없이 내던진다. 그 어떤 사람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게 하거나 의심을 일으킬 수가 없다. 불신은 사라져 버린다(원고 49, 1898). (6BC 1113)
⑷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상을 움직임(시 85:10)(약 2:13 주해 참조)—
갈 바리의 십자가는 모든 땅의 권세와 지옥의 권세에 도전하여 종내에는 그것들을 완전히 추방할 것이다. 십자가 안에 모든 감화가 집중되어 있고 거기에서 모든 감화가 흘러나간다. 그것은 매력의 큰 중심이다. 이는 그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하여 그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 희생 제물을 드리신 것은 인간을 본래의 완전한 상태로 회복시키실 목적으로 그리하셨다. 그렇다. 인간에게 품성의 완전한 변화를 주셔서 정복자 이상의 존재가 되게 하시려고 제물을 바치신 것이다. (6BC 1113)
그리스도의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를 이긴 사람들은 하늘 궁정에서 한 번도 타락해 본 일이 없는 천사들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6BC 1113)
그리스도께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라고 선언하셨다. 만약 십자가가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감응을 일으키지 못하면 그러한 감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여러 세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이 시대를 위한 진리가 현대 진리로 나타났다. 십자가 위에 계신 그리스도는 중개인이시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사랑과 진리가 함께 만나고 의와 평화가 서로 입맞추었다. 이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수단이다(원고 56, 1899). (6BC 1113
⑸
교회증언 6권 (6T) 257
이 계층의 사람들은 접근하기가 가장 어렵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접촉할 길들을 열어 주실 것이다. 가장 지혜롭고, 가장 신뢰해야 하며, 가장 희망에 찬 일꾼들로 이러한 영혼들을 찾게 하라. 하나님의 사랑에서 난 지혜와 기교로, 영혼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임재로 말미암아 생기는 세련미와 예절로, 세상의 부의 번쩍임에 눈이 멀어 하늘에 있는 보화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된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게 하라. 일꾼들이 그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게 하라. 거룩한 진리가 그들의 폐부를 찌르도록 하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라.
⑹
때때로 이들은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가장 지혜롭고, 가장 믿음직하며, 가장 희망찬 일꾼들로 하여금 이런 사람들을 찾아내게 하라.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지혜와 재능으로, 또한 그리스도의 임재로써만 나타나는 세련과 예모를 갖추고서 지상의 부의 광채에 눈이 부셔 하늘 보화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사역자들은 그들과 함께 성경을 연구하여 거룩한 진리가 그들의 마음에 새겨지게 해야 한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라. 구호 봉사 (구호봉사 WM) 282
⑺
그대들이 하나님의 허락들을 읽을 때 그것들이 말로 할 수 없는 사랑과 긍휼을 표시한 것임을 기억하라. 무한하신 사랑 하나님의 마음은 죄인을 무궁한 자애(慈愛)로 생각하신다.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 과연 하나님께서 그대를 돕는 자이심을 믿으라. 그는 당신의 도덕적 형상을 사람들에게서 회복시키기를 원하신다. 그대들이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그에게로 가까이 나아갈 때 그는 자비와 용서로 그대들을 가까이하실 것이다. (정로 SC 55)
⑻
인간은 계속 자아를 높이고, 자랑할 위험 중에 빠져 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자신의 연약성을 드러낸다.…
죄인이 회심한 후에 생활에 나타나는 커다란 변화는 어떤 인간적 선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적인 자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원고 36, 1904).
⑼
사도 바울도 성령의 감동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4~8). (COL 98.2)
⑽
(화잇 주석 6권 1115)
한번 은혜 안에 들어오면 항상 은혜 안에 있는 것이라는 선택의 교리(the doctrine of election)를 지지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하시는 분명한 다음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다. (겔 18:21; 33:13 인용). (6BC 1115)
⑾
그리스도의 품성을 높임(엡 2:7)
지상에서 재능을 가장 많이 타고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지금부터 심판 때까지 그리스도의 품성을 드높이는 데에 풍부한 일거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신비들은 그의 신인양성(神人兩性)을 다 취급해야 하므로 그의 성육신, 그의 속죄 등은 가장 현명한 사람들의 가장 뛰어난 두뇌와 펜을 다 동원하여 지금부터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 속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실 때까지 그들의 온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사업을 설명하려 해도 그들의 설명은 실제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것이다. (6BC 1115)
⑿
<문제(問題)>
우리의 구원(救援)과 멸망(滅亡)은 창세(創世) 전(前)부터 예정(豫定)되어 있는가? (에베소서 1:4, 5)
<예정론(豫定論) 요약(要約)>
하나님께서는 물론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지만, 우리의 멸망(滅亡)과 구원(救援)이 미리 예정(豫定)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예정론(豫定論)은 많은 자체(自體) 모순(矛盾)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속성(屬性)에도 맞지 않는 이론(理論)이다. 예정론을 주장하면 하나님께서 소중히 생각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自由意志)가 무시(無視)되며 전도, 회개의 호소, 심판, 심지어는 십자가의 공로까지 무색하게 되고 만다. 바울 서신에 나오는 예정에 관한 구절들은 바울의 독특한 회심의 경험과 그를 핍박자에서 택하셨다는 바울의 강한 확신이라는 배경 아래에서 이해해야 한다.
⒀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신다는 것은 온 우주가 경탄할 일이었다. 별에서 별로, 세계에서 세계로 다니시면서 만물을 감독하시고 그분의 섭리로 창조하신 광대한 우주의 각계각층의 존재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그분께서 하나님(예수님)의 영광을 떠나 몸소 인성을 취하시기로 동의하신 것은 죄 없는 다른 세계들의 지적 존재자들이 이해하기를 원하는 신비였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세상에 오셨을 때 온 우주는 그분께서 말구유에서 갈 바리에 이르기까지 피 묻은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놓으시며 가로지르시는 모습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하늘은 그분이 받으신 능욕과 멸시를 주목하였고, 그것이 사단의 선동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았다. 그들은 서로 적대적인 세력의 역사(役事)가 진행되는 것을 주목하였다. 사단은 인류에게 계속하여 흑암과 슬픔과 고통을 가져다주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막고 계셨다. 그들은 빛과 어두움 사이의 투쟁이 더욱 격렬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며 고통 중에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실 때 승리의 함성이 온 하늘과 모든 세계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 세상에서 진행되어 오던 대쟁투의 승부가 그때 판가름이 났다. 승리자는 그리스도이셨다. 그분의 죽음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이 사람을 위하여 자기 부인과 희생의 정신을 발휘하실 만큼 충분한 사랑을 가지셨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 주었다. 사단은 거짓말쟁이요 살인자로서의 자신의 참 성격을 드러냈다. 하늘의 지적 존재자들을 통치하도록 허용되었었더라면 사단은 자기의 권세하에 있는 사람들을 다스렸던 바로 그 같은 정신을 나타내었을 것이라는 사실이 밝히 드러났다. 충성스러운 우주는 목소리를 합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하였다. (부조, 69)
⒁
“십자가가 없었다면 인류는 아버지와 연합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우리의 모든 소망이 달려 있다. 십자가로부터 구주의 사랑의 빛이 비쳐 나오므로 십자가의 발아래에서 죄인이 그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돌아가신 분을 쳐다볼 때, 그는 충만한 기쁨으로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의 죄가 사함을 받은 까닭이다. 죄인이 십자가 곁에 믿음으로 무릎을 꿇을 때, 그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에 도달한 것이다.”(행적, 209)
⒂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깊이 명상하는 데 매일 한 시간을 바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우리는 그의 생애를 한 조목 한 조목씩 연구하고, 각 장면 특히 그의 생애의 마지막 장면을 확실히 머릿속에 그릴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를 위한 그의 크신 희생을 깊이 생각할 때에 그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더욱 굳어질 것이며 우리의 사랑은 격발되고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의 정신에 깊이 물들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마침내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크게 뉘우침과 겸손의 공과를 배워야 한다. (소망, 83)
(17)
땅에 묻힌 씨앗은 열매를 가져오고 또다시 그 열매는 씨앗으로 뿌려진다. 이렇게 하여 수확은 증대된다. 그와 같이 갈바리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영생에 이르는 열매가 맺힐 것이다. 이 희생을 숙고하는 것이 그 희생의 열매로써 영생할 자들의 영광이 될 것이다. (소망, 623)
(18)
만약 모든 돌이 적당한 장소에 있어서 산 돌이신 그분이 빛을 발하게만 한다면 세상에 많은 은혜를 끼칠 수 있는 교회의 현 상태를 보시고 하늘은 참으로 놀라지 않겠는가! 빛을 내지 않는 돌은 가치 없는 돌이다. 우리 교회의 가치는 생명이 없고 광택이 없는 돌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산 돌, 곧 크신 모퉁이 돌이신 의의 태양으로부터 밝은 빛줄기를 받는 돌들로 되어 있다(편지 15, 1892). (엡 2:19, 화잇주석)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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