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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복음의 신비(질문, 대답, 설명) 0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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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07-29 21:44 조회6,2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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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복음의 신비

(8월 5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37분)

 

연구 범위: 엡 3, 욥 11:5~9, 겔 43:13~16, 암 7:7, 8; 계 11:1, 2 

 

기억절: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 3:20~21).

에베소서 3장은 이전에 이미 다루었던 주제로 시작한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 3:6). 대부분 이방인으로 구성된 오늘날의 교회에는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당시 바울 시대 다수의 수신자들에게 이것은 획기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그런 다음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된 자신의 열정을 담아서 영감적인 권면을 이어간다.

우리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겪는 어려움과 사역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겪는 현재의 고난에 대해서 함께 배운다. 

또 복음 가운데 있는 신비, 즉 교회 안에서 이방인이 유대인 형제자매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는 신비로운 진리에 대한 바울의 열심을 발견한다. 우리는 교회와 그의 우주적 사명에 대한 바울의 감격을 공유하고 교회를 통해 당신의 은혜를 나타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그의 기도에 귀를 기울인다. 

이 모든 것은 우리로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정에 동참하도록 영감을 준다. 

 

*학습 목표

- 깨닫기: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나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 느끼기: 하나님은 그의 신비한 뜻 가운데 영광과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 행하기: 그를 믿음으로 직면한 도전 앞에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진다. 

 

TMI 위로

2. 바울은 표면적인 비참한 현실 이면에 어떤 뜻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까?(엡 3:1) 

*답: 예수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이 있다고 했다.

3. 이방인들에게 공개된 하나님의 비밀은 어떻게 특별합니까?(엡 3:6)

*답: 복음으로서 유대인과 함께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게 하셨다.

4. 교회의 연합은 하나님의 비밀의 어떤 면들을 드러내어 보여줄까요?(엡 3:10, 1:10)

*답: 우주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알게 하고 통일을 이루게 하는 것을 보여준다.

5. 그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엡 3:16~19) 

*답: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같아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표현한다.

6.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바울의 마음에는 무엇이 가득 하였습니까?(엡 3:20~21) 

*답: 하나님이 주시는 넘치는 은혜로 교회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다. 

7. 교회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신비는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엡 3:19~21)

*답: 하나님의 사랑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론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일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특권으로 더 고상한 목적을 가진다. 바울은 감옥에 있을 때도 로마의 포로가 아닌 그리스도의 포로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계획 가운데 있음을 분명히 알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받은 교회는 그 지혜와 은혜를 드러냄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 가운데 충만함을 나타낼 수 있다.  

 

7월 30일(일) 바울: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사도

 

에베소서 3장을 읽어 보라. 읽으면서 한두 가지 주요 주제를 찾아보라. 바울이 말하는 주요 요점은 무엇인가?

  3장 전체를 찾아 읽어보자.

*답: 바울이 옥에 갇혔으나 예수님의 일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에베소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로서 예수님의 종으로 일하는 과정이기에 옥에 갇힌 것이 그들에게 영광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에베소서 3장은 흥미로운 구조를 보여준다. 바울은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엡 3:1)로 시작해 이방인의 사도로서 자신의 사역에 초점을 맞춘 긴 이야기를 끼워 넣기 때문이다(엡 3:2~13). 이후 바울은 "이러므로"(엡 3:14)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원래의 맥락으로 돌아갈 것을 알리고 14~21절에서 중단되었던 기도 보고서를 이어간다.

엡 3:1에서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자"라고 밝힘으로, 그가 비록 로마의 포로가 되어 그 권위 아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의 삶에는 더 깊고 신성한 목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장한다. 그는 로마의 포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포로"이다(엡 4:1 비교).

바울이 "환난"(엡 3:13)이라고 표현하고 이후 “쇠사슬”에 대해 말하는 것(엡 6:20)은 그가 비교적 편안한 가택 연금이(행 28:16 비교) 아닌 감옥에 있음을 암시한다. 

 

1세기에 감옥에 갇힌다는 것, 특별히 로마의 지하 감옥에 갇힌다는 것은 매우 고생스러운 일이었다. 로마 제국은 위생 시설과 식사를 제공하는 체계적인 감옥이 필요 없었다. 그들에게는 투옥이 형벌의 수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직 재판이나 처형을 기다리는 동안에만 구금될 뿐이었다. 그러니 감옥에서 죄수들은 스스로를 부양해야 했고 친척과 친구들에게 음식과 기타 필요를 공급받아야 했다.

명예와 수치심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죄수가 된다는 것은 극도의 사회적 수치였기 때문에, 바울은 아마도 자신의 투옥이 신자들에게 미칠 정서적 영향에 대해 가장 염려하였을 것이다. ‘바울이 존귀하신 그리스도의 사도와 기별자라고 하면서 어떻게 멸시받는 죄수가 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까 염려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투옥을 재구성하여 신자들이 이를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것으로 보도록 돕는다. 그는 그들을 위해 고난("너희를 위해 고난")을 받고 있으며, 수치를 받을 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그들의 "영광"(엡 3:13)을 위한 것으로 밝혀질 것이었다.

 

<교훈> 바울이 자신을 로마의 포로가 아닌 그리스도의 포로라고 소개한 것은 그의 삶에 더 깊고 신성한 목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적용> 매우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그분의 방법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일을 하는 중에 핍박을 받거나 감옥에 갇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전사(戰士)로서 겪는 환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귀하에 보시는 자리에 있는 것을 바울은 강조한다. 이런 강조는 그의 뒤를 이어 복음의 전사가 될 사람들에게 본이될 것이다. 예수님은 친히 제자들에게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요16:1,2). 역사적으로 로마교회가 진지를 찾아 바른 기별 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했다. 위클립니다. 얀 후스 같은 사람에게 저지른 일은 예수 이름으로 만행을 자행하고 그것이 예수께 충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신앙의 이름으로 행하는 만행은 신앙없이 행하는 만행보다 훨씬 잔인하고 끔직하다.’ 그들은 그것을 신을 위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거룩한 것으로 여긴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 이름을 가한 핍박이 이런 것이다. 그들은 가책이 전혀 없다.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런 경험을 암시하고 에베소 교인들이 이런 일을 바르게 이해하기를 바랐다. 

 

7월 31일(월) 오랫동안 감춰진 복음의 비밀

 

하나님께 받은 바울에게 맡겨진 비밀은 무엇인가?(엡 3:1~6)

[엡3:1~6]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답: 그 비밀은 이방인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 안에서 영생과 내세의 상속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복음이다. 

 

엡 3:1~6을 공부하면서 다음 사항에 유의하라. 

첫째, 바울은 이 부분을 특별히 에베소 가정 교회의 이방인 신자들을 위해 썼다(엡 3:1). 

둘째,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 신자들인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받은 사람이라고 주장한다(엡 3:2).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자신의 사명을 “청지기 직분,” “은혜의 사역”이라고 설명한다(엡 3:7, 8 비교).

셋째, 바울은 자신이 이미 서신에서 기록한 주제(엡 1:9, 10, 엡 2:11~22 참조)인 "그리스도의 비밀"이 자신에게 계시되었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복음의 주창자가 아니며,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명을 주셨음을 강조한다.

넷째, 성령께서 이전 세대에게 계시하셨던 것 이상으로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도 이 비밀을 계시하셨기에 바울만 이 비밀에 대한 더 나은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다(엡 3:5). 여기 선지자라는 용어는 구약의 선지자와 같은 개념이기보다는 초기 기독교 가정 교회에서 예언의 은사를 소유하고 행사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때 숨겨져 있던 이 비밀은 이제 우리가 "공개된 비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선언한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 3:6).

바울은 복음, 특별히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에서 복음이 나타나는 방식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그룹은 하나님의 새로운 인류, 그분의 새로운 공동체, 즉 교회의 구성 요소가 되었다(엡 2:14~16). 이들은 원수에서 '공동 상속자', '공동 지체'(그리스도의 것인 한 몸에 속한), 복음의 유업의 '공동 참여자'로 변화되었다(엡 3:6 참조).

 

<교훈> 바울이 공개한 복음의 비밀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에서 이방인도 공동 상속자와 지체가 되어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부가설명> 비밀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모르는 것이고 관심 밖의 일이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입에 오르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비밀은 누구는 알지만, 누구는 모를 때 모르는 사람에게 비밀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렇다. 그것은 믿는 자들에게는 비밀이 아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전적으로 비밀이다. 이 비밀은 숨기는 것이 아니고 전하고 가르쳐서 그들에게도 비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비밀을 공개하셨다. 예수님은 공개된 하나님의 비밀이다.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1:25~27).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이 비밀을 열심히 전해서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더 많도록 하는 직무를 맡은 사람이다. 

 

8월 1일(화)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내는 교회

 

바울은 엡 3:7~13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엡3:7~13]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답: 하나님은 만세 전에 자기 속에 감추어져 있던 복음의 비밀을 예수 그리스도로 우주에 나타내셔서 세상에 두신 교회를 통하여 우주가 알도록 경영하셨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으로 깨닫게 하셨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엡 3:7, 엡 3:1, 2 비교)을 통해 "일꾼"(사역자)이 되었다고 다시 주장한다. 이 선물은 복음과 마찬가지로 받는 사람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 바울은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엡 3:8)라고 표현함으로써 이 점을 강조한다.

바울의 편지가 쓰여진 순서대로 읽어가다 보면 거기서 드러나는 흥미로운 바울의 자기 이해의 진전을 발견할 수 있다. 초반에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이 임명하신 사도라고 주장한다(갈 1:1). 이후에 그는 자신을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고전 15:9)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여기 에베소서에서는 이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엡 3:8)로 자신을 묘사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을 "괴수" 또는 죄인 중 "가장 악한" 사람이라고 부른다(딤전 1:15).

바울의 이런 자기 인식의 진전은 엘렌 화잇의 유명한 인용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대가 예수께로 더 가까이 갈수록 그대의 허물이 그대의 눈에 더 많이 드러나 보일 것이니 대개 이는 그대의 시력(視力)이 더욱 밝아져서 그대의 불완전한 것이 예수의 완전하신 품성에 대조되어 더욱 뚜렷이 나타나 보이게 되는 까닭이다"(정로의 계단, 64). 

바울은 이어서 말한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엡 3:10). 여기 언급된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누구인가? 교회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 또는 다면적인 지혜를 어떻게 알게 하는가? 비록 엡 3:10은 이 권세들의 본질을 설명하지 않지만, 엡 6:11, 12에 더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악한 권세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때 매우 분열되었던 인류의 유대인과 이방인을 연합하게 하는 교회의 구성은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만물을 그[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여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하나되게"(엡 1:10) 하시려는 하나님의 미래 계획에 대한 분명한 선언이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 중이며 그들의 운명이 정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통합된 교회 자체가 그들의 궁극적인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훈> 유대인과 이방인을 연합하게 하는 교회의 구성은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합하여 하나되게 하는 하나님의 계획의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부가설명> 교회의 연합과 통일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다면 성도들도 예수님 안에서 연합과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신자들 사이에 반목과 적대적 정신이 있다면 예수님 안에서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는 상태에 있다. 오늘날 세상에는 예수 이름으로 설립된 교회가 부지기수다. 통합되지 않는다. 복음 이해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성경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전4:6)라고 확실히 명령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람의 지혜로 해석하고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처럼 가르친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가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학자들의 해석을 받아들이고 믿는다. 대표적인 것이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하여 성일(聖日)로 믿는 것이다. 또 영혼불멸설도 그런 것 중에 하나다. 이런 교리는 성경의 교리가 아니고 전통과 해석의 교리이다. 하나님은 성경 해석을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았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창40:8).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 것을 떠나서 사람이 지식과 지혜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바리새인들이 자주 말한 참람된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께서 오셔서 이것들을 깨닫도록 하신다고 가르친다(요16:13:15, 고전2:9~14). 루시퍼가 지혜가 충족하여 반역했다. 세상의 지혜와 지식에 심취하는 것은 루시퍼의 전철을 밟을 위험이 언제나 있다. 바울처럼 자기의 신분을 마침내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말씀에 완전히 굴복하도록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연합과 통일을 이루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8월 2일(수) 나의 마음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바울의 초기 기도 요청인 엡 1:16~19과 신자들을 위한 엡 3:14~19의 간구를 비교해 보라. 두 요청은 어떤 점에서 비슷한가?

[엡1:16~19]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3:14~19]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답: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그분들로 인하여 베푸신 사랑과 은혜를 확실히 알도록 성령의 충만하심을 간구하는 것이 비슷하다.

 

엡 3:14, 15의 번역본은 원문의 중요한 언어유희를 보여주지 못한다. 바울이 "하늘과 땅에 있는 온 가족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엡 3:15, 흠정역) 앞에 절한다고 할 때, 그는 아버지를 뜻하는 헬라어 파테르(patēr)와 가족을 뜻하는 헬라어 파트리아(patria) 사이의 음성적 연관성을 모색하고 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모든 만물(엡 1:9, 10)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포괄적인 본질을 모든 시간(엡 1:21)에 걸쳐 찬양한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을 "아버지"에게 속한 것으로 주장한다. 모든 가족(파트리아)의 이름은 아버지(파테르)로부터 온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라. 당신의 가족은 불완전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의 가족은 잔인한 운명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시는 손길 안에 있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가족도 사랑하신다. 그들에게 신성한 이름이 주어졌다. 그들에게는 그분의 소유라는 인이 쳐져 있다.

엡 3:16~19에서 바울은 성령의 임재를 통한 내면의 힘(엡 3:16), 나의 마음 속에 거하시는 것으로 묘사되는 그리스도와의 친밀함(엡 3:17), 안정되고 안전한 영적 정체성(“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은, 엡 3:17)으로 특징지어지는 풍성한 영적 경험을 신자들에게 허락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바울이 신자들에게 제공되는 광범위한 축복에 대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자 할 때 3차원이 아닌 4차원, 즉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엡 3:18)를 표현한다. 바울은 이러한 차원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핵심은 광대한 차원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 연구자들에게 흥미로운 수수께끼이다. 이 차원들은 하나님의 지혜(욥 11:5~9의 4차원 참조), 하나님의 능력(엡 3:16, 17 비교), 또는 엡 2:19~22의 영적 성전(겔 43:13~16, 암 7:7, 8, 계 11:1, 2 참조)을 묘사하는 것인가? 

이 네 가지 차원은 "그리스도의 사랑"(엡 3:19)의 광대함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엡 3:18)라는 구절과 다음 구절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엡 3:19, 롬 8:35-39 비교)을 평행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 말씀이 에베소인들과 우리를 향한 복음이란 사실이다.

 

<교훈> 하나님은 당신의 신성한 이름을 모든 가족들에게 주셨다. 그것은 가족들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대상임을 의미한다. 

 

<부가설명>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올바르게 알기를 간구했다. 그 사랑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를 깨닫기를 기도했는데 이것은 성령님 역사로 가능한 것이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썩지 않을 씨인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실 때(벧전1:23)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게 된다. 예수님은 이것을 포도나무 비유로 가르쳐주셨다. 우리가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활동한다는 뜻이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 뿌리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으며 그 가지도 포도나무이다. 그처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는다. 특별이 생명을 받는다. 이런 사실을 바울은 갈라디아 2:20에서 고백한다. 바울은 자기가 사는 것은 자기가 아니고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고백했다. 이것은 바울의 간증이지만, 또 모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간증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참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자기 안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같고 말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같고 행하는 것이 다 그리스도와 같게 되는 것이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4:11).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4:17).

 

8월 3일(목)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바울은 하나님께 드리는 짧고 시적인 찬양, 송영으로 기도 보고서를 마친다. 그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가?(엡 3:20, 21)

[엡3:20,21]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답: 그분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이루어주시는 분이심을 인하여 찬양한다.

 

바울은 신자들을 위해 기도를 기록했다(엡 3:14~19). 이제 그는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기도한다. 바울의 송영은 두 가지 질문을 하게 한다. 

(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엡 3:21)는 구절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와 동등한 위치에 놓으면서 교회를 부적절하게 높이고 있는가?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신자들의 마음속에 거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엡 3:17) 그리스도가 교회의 구주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바울은 송영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교회에 제공된 구원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2)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엡 3:21)이라는 구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보류된, 교회의 끝이 없는 지상 미래를 묘사하는가? 에베소서는 미래에 대한 확고한 기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엡 4:30은 "구원의 날"을 바라보고 있다. 또한 신자들은 "오는 세상"(엡 1:21)에서 그리스도의 무한하고 주권적인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바울의 송영은 신자들을 위해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능력을 찬양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바울의 두 번째 기도 보고(엡 3:14~21, 엡 1:15~23 비교)를 다시 보면, 바울은 아버지의 돌보심의 우주적 범위(엡 3:14, 15), 준비된 성령의 도움(엡 3:16), 그리스도의 협력(엡 3:17),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엡 3:18, 19)에서 힘을 얻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엡 3:19) 충만해지는 것을 상상하며 찬양으로 이러한 영적 실재를 경축하고,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풍성함에 다시 한번 감격한다(엡 3:20, 21).

어려움, 유혹, 의심이 마음을 짓누를 때 우리는 기도에 대한 바울의 이 힘찬 약속을 붙잡을 수 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의 목적과 은혜의 원대한 지평선으로 끌어올리며, 현재의 상황이 어떠하든 우리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에 참여하고 있고(엡 1:9, 10),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교훈> 바울은 교회를 돌보시고 협력하시는 그리스도 사랑으로 교회 가운데 그분의 영광이 풍성하게 나타날 것을 상상하며 그것에 감사하고 있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그분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요12:28). 아들은 부모가 기대하는 것을 성취할 때 그것이 부모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된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다. 그래서 그분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생명을 얻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찬송이 된다(엡1:12).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그러하게 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교회는 이렇게 된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는 집단이다. 교회가 진정으로 이렇게 되면 교회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하셨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43:7). 우리는 우리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한다(엡1:12). 

 

8월 4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각시대의 대쟁투 27장 “신앙부흥과 참된 회개”를 읽어 보라. 

 

"어떻게 우리의 위축된 영적 상태를 엡 3:14~19의 말씀이 보여주는 특권인 지식의 충만함과 조화시킬 수 있겠는가? 은혜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모든 영적, 현세적 유익을 누리고 있는 우리가 그 기회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어떻게 우리를 도울 수 있겠는가? 사도는 우리를 애타게 하거나, 속이거나, 괜한 기대치를 높여서 실제의 경험에서 실망하게 하려고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려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말씀을 기록했다. 위축된 경험만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주께서 우리가 갖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부름에 대한 깊고 영적인 이해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믿는가? 우리는 이 말씀에서 제시된 하나님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믿는가? 선지자와 사도들 그리고 그리스도, 모든 빛과 축복의 근원이시며 그 안에 모든 풍요와 충만함이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을 믿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을 정말로 믿고 있는가?’"(리뷰 앤드 헤럴드, 1889. 10. 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엡 3:20, 21에 기록된 바울의 송영과 신약성경의 다른 송영들을(롬 11:33~36, 롬 16:25~27, 빌 4:20, 벧후 3:18, 유 1:24, 25) 비교해 보라. 이 구절들을 관통하는 주제와 사상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이 구절들이 보여주는 찬양과 경배의 태도를 배울 수 있겠는가?

*답: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존재가 찬양과 경배가 된다. 문제는 진정으로 거듭났는가에 있다. 그러면 예수님의 어떠하심과 같이 이 세상에서 우리도 그러하게 된다고 약속하셨다(요일4:17).

2.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헬라어 플레로마(plēroma, 충만함)를 네 번 사용한 경우를 비교해 보라(엡 1:10, 23, 3:19, 4:13). 이 개념이 바울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예수님이 모든 피조물의 충만이시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주 만물은 빈 깡통이다. 

 

3. 에베소서 3장에서 바울이 찬양하는 하나님의 행하시는 모든 일 중에서 그대에게 가장 영감을 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답: 이것은 각 자가 대답할 질문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라는 사상이다. 

 

4. 바울은 에베소서의 전반부를 그 시작과 마찬가지로(엡 1:3~21) 기도와 찬양의 언어를 사용하여 끝맺는다. 그는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신자들의 삶 속에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과 선물을 찬양한다(엡 3:16~21). 위 인용문에서 엘렌 화잇이 묻는 것처럼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 능력을 더 잘 경험할 수 있겠는가?

*답: 호흡마다 순간마다 주님께 굴복할 때 주신 은사를 따라 이 능력을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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