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어려운 시기에 충실하게 살아가기-(핵심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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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3-13 00:10 조회2,654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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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어려운 시기(時期)에 충실(忠實)하게 살아가기
(3월 18일 (안) / 일몰: 오후 6시 41분)
<기억절(記憶節)>
“감사(感謝)로 하나님께 제사(祭祀)를 드리며 지존(至尊)하신 이에게 네 서원(誓願)을 갚으며 환난(患難)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榮華)롭게 하리로다.”(시 50:14, 15).
<서언(緖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급(急)한 것이 있고 중요(重要)한 것이 동시(同時)에 있을 때, 어느 것부터 우선순위(優先順位)로 결정(決定)할 것인가? 참으로 중요한 질문(質問)이라 하겠다.
성경은 위기(危機)의 때에 하나님을 최우선(最于先)으로 삼는 것이 승리(勝利)의 비결(秘訣)이라 말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모든 우리의 소유물(所有物)은 없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敬畏)하는 자는 성경에서도 기록되어 있는바 가장 큰 기쁨과 행복임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없어질 소유물(財物)로 하나님에게 충성된 청(聽)지기로 살아가 가는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03월12일) (일) <하나님을 최우선(最于先)으로 삼기>
(Q)~하나님을 최우선(最于先)으로 삼는다는 것은 위기(危機)의 때에 나타난다. 성경에서 위기에 앞서 자신의 힘과 능력(能力)을 의지(依支)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승리(勝利)했던 인물의 예(例)를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敎訓)을 주고 있습니까? (대하 20:1~22) (여호수아6:1~21)
(A)~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최우선(最于先)으로 삼은 자들의 승리(勝利)의 기록이 많다. 그 중에 여호사밧은 위기(危機) 앞에서 모든 백성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모든 백성이 성전뜰에 모여 남녀노소(男女老少) 모두가 전적(全的)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적군(敵軍)을 물리쳐 주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榮光)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고(역대하20:1~22),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약속(約束)(여호수아 1:8~9)을 믿고 순종(順從)함으로 물이 흐르는 요단강을 마른땅같이 건넜고(여호수아 3:14~17) 큰 성(城)여리고 성(城)도 어떠한 무기(武器)를 사용하지 않고 여리고 성(城)을 무너뜨려 점령(占領)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도 위기(危機)앞에서 이들과 같은 믿음을 보여야 한다.
(03월13일) (월) <자신(自身)이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信賴)하라>
(Q)~다윗은 신실했던 지난날을 잊고 자신의 것을 신뢰하여 이스라엘을 계수(計數)하라는 사단으로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군대장관 요압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계수하라고 고집하여 강행함으로 잘못을 저질렀다 (역대상 21:1~14). 그 결과 혹독(酷毒)한 댓가를 경험하였다. 이 경험에서 우리는 어떠한 신뢰와 믿음이 필요 되는가?
(A)~다윗은 신실(信實)했던 과거(過去)를 잊고 자신의 것을 신뢰(信賴)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우리의 일상은 늘 재정적(財政的)인 면과, 정부(政府)정책(政策)의 힘이나 환경(環境)으로부터의 영향이나 특히 건강(健康)에 관한 것들로부터 이들을 더욱 신뢰(信賴)하고자 하는 유혹(誘惑)을 경험(經驗)하게 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성경(聖經)은 모든 위기(危機)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全的)으로 신뢰(信賴)하고 충성(忠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귀(貴)하게 여기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03월14일) (화) <단순(單純)하게 해야 할 때>
(Q)~우리는 종말(終末)의 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思慕)하는 재림성도(再臨聖徒)로써 이 땅에서 소유한 것(가진 것)들을 하나님께서 큰 화물트럭으로 하늘로 보내시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소유한 것을 영원히 소유(所有)할 수 없다면 그것으로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나님께서 충성된 종으로 기뻐하실까? (참조 벧후 3:3~12)
(A)~예수님의 재림(再臨)을 간절(懇切)히 사모(思慕)하는 재림성도(再臨聖徒)로써 영원한 하늘나라를 염두(念頭)에 두고 우리가 소유(所有)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것에 매이거나 올무가 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업(事業)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하나님의뜻에 맞게 관리(管理)하는 지혜(智慧)와 용기(勇氣)가 필요하다.
(03월15일) (수) <우선순위(優先順位)>
(Q)~우리 인간들을 넘어뜨리는 사단의 유혹(誘惑)에는 그리스도인이든 비(非)그리스도인들 이건 3가지 유형(類型)이 있다고 사도바울이 언급(言及)하고 있다. 그 3기지의 류형(類型)은 어느 것이며 이 영향(影響)에서 벗어 날수 있는 방법(方法)은 무엇일까? (요일 2:15~17) (마태 6:24)
(A)~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돈(재물)”을 함께 섬기는 것을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마태6:24)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의 3가지 유형(類型)은 ⑴.육신(肉身)의 정욕(情慾)과 ⑵.안목(眼目)의 정욕(情慾)과 ⑶.이생의 자랑으로 (요일2:15~17) 이 세 가지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⑴.재물욕(財物慾), ⑵.색욕(色慾), ⑶.명예욕(名譽慾)이다. 주로 5관(觀)(오감(五感)을 통하여 인간에게 들어온다는 말씀이다. 즉 이 세 가지 류형(類型)은 하나님으로부터 좇아 온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 세가지의 특징은 한시적(限時的)이며 예수님 재림(再臨)하시는 그날에 세상을 사랑한 모든 사람은 공동(共同)의 운명(運命)으로 파멸(破滅)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랑하기를 거부(拒否)하고 죄를 미워하며 오직 사랑의 계명(誡命)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천국(天國)에 거(居)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들에게 영생(永生)을 주시기 때문이다. (요일 주석 2:15~17)
(03월16일) (목) <매매(賣買)할 수 없을 때>
(Q)~재정적(財政的)인 문제(問題)들로 충성(忠誠)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지막 때에 있을 박해(迫害)와 환란(患亂)에 대하여 어떻게 대비(對備)해야 하며, 재물(財物)과 세상의 것들에 노예(奴隸)가 되지 않는 방법을 어떻게 준비하여야 되는가? (계시록 13:11~17) (신명기 14:22~23)
(A)~성경은 (계시록 13:11~17)과 그리스도의 재림전(再臨前)의 어려운 시기(時期)를 지적(指摘)하면서 사거나 팔수 없을 때가 올 것이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 삶은 대부분 많은 부분이 사고파는 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의 시간(時間)과 기술(技術)과 상품(商品)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파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없다는 것은 사회에서의 기능(機能)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意味)합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충성(忠誠)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마지막 때의 박해(迫害)에 대비(對備)하여 지금부터 우리는 돈(재물)과 세상의 노예(奴隸)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恩惠)에 힘입어 철저(徹底)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말미부록(末尾附錄)>-----------------
제11과 어려운 시기(時期)에 충실(忠實)하게 살아가기
(3월 18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41분)
<기억절(記憶節)>
“감사(感謝)로 하나님께 제사(祭祀)를 드리며 지존(至尊)하신 이에게 네 서원(誓願)을 갚으며 환난(患難)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榮華)롭게 하리로다.”(시 50:14, 15).
<서언(緖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급(急)한 것이 있고 중요(重要)한 것이 동시(同時)에 있을 때, 어느 것부터 우선순위(優先順位)로 결정(決定)할 것인가? 참으로 중요한 질문(質問)이라 하겠다.
성경은 위기(危機)의 때에 하나님을 최우선(最于先)으로 삼는 것이 승리(勝利)의 비결(秘訣)이라 말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모든 우리의 소유물(所有物)은 없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敬畏)하는 자는 성경에서도 기록되어 있는바 가장 큰 기쁨과 행복임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없어질 소유물(財物)로 하나님에게 충성된 청(聽)지기로 살아가 가는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03월12일) (일) <하나님을 최우선(最于先)으로 삼기>
(Q)~하나님을 최우선(最于先)으로 삼는다는 것은 위기(危機)의 때에 나타난다. 성경에서 위기에 앞서 자신의 힘과 능력(能力)을 의지(依支)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승리(勝利)했던 인물의 예(例)를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敎訓)을 주고 있습니까? (대하 20:1~22) (여호수아6:1~21)
(A)~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최우선(最于先)으로 삼은 자들의 승리(勝利)의 기록이 많다. 그 중에 여호사밧은 위기(危機) 앞에서 모든 백성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모든 백성이 성전뜰에 모여 남녀노소(男女老少) 모두가 전적(全的)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적군(敵軍)을 물리쳐 주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榮光)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고(역대하20:1~22),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약속(約束)(여호수아 1:8~9)을 믿고 순종(順從)함으로 물이 흐르는 요단강을 마른땅같이 건넜고(여호수아 3:14~17) 큰 성(城)여리고 성(城)도 어떠한 무기(武器)를 사용하지 않고 여리고 성(城)을 무너뜨려 점령(占領)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도 위기(危機)앞에서 이들과 같은 믿음을 보여야 한다.
○.금식(禁食)하라 공포(公布)하매.
이것은 왕이 공식적으로 공포한 최초의 금식(禁食) 선포(宣布)이다(Barker). 물론 그 이전에도 급박(急迫)한 재난(災難)이 있을 때에나 특별한 회개(悔改)가 요청될 때 백성들을 모으고 금식을 선포한 적이 있었다(삿 20:26, 삼상 7:6). 그러나 왕조 시대에 이르러 왕이 개인적으로 금식한 일은 있어도(삼하 12:16) 온 백성들을 향하여 금식을 선포한 것은 이것이 최초이다. (대하 20:1~22, 만나주석)
○.하늘에서 하나님.
이는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모세는 바란 광야에서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두고 백성들을 향해 이스라엘보다 강대한 열국을 쳐서 이기신 여호와의 능력을 말하면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신 4:39). 기생 라합도 홍해사건(紅海事件)과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하나님의 능력을 말할 때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수 2:11).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願)하시는 모든 것을 행(行)하셨나이다”(시115:3).
○.이 전쟁이 …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야하시엘의 이 말은 다윗이 골리앗을 대항하여 싸울 때 한 말과 동일한 것으로 전적(全的)으로 여호와만을 의지하도록 촉구(促求)한 말이다(삼상 17:47). 일반적으로 전쟁은 훌륭한 작전계획(作戰計劃)과 우수(優秀)한 군사력에 비례하여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야하시엘은 이런 일반 원리에 입각하여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합리성에 근거하여 역사하시기도 하지만 그것을 초월한 믿음의 원리에 근거(根據)하여 역사하시기도 한다. 야하시엘은 이 시점에서 백성들에게 이런 믿음을 요청하고 있다. 다윗의 정신이 이런 믿음의 정신이었다. (대하 20:1~22, 만나주석)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救援)하는 것을 보라.
야하시엘은 우수(優秀)한 작전(作戰)과 군사력(軍事力)에 근거(根據)하는 합리성(合理性)의 원리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能力)을 믿는 믿음의 원리가 실제로 거둘 결과를 목격하라고 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구원(救援)의 현장을 목격하도록 한 사건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할 때에도 있었다(출 14:13). 그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세(氣勢)등등하여 추격(追擊)해 오던 애굽 군대가 홍해 바다에 수장(水葬)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대하 20:1~22, 만나주석)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여호사밧은 드고아 들로 나아가는 백성을 향해 승리의 확신을 갖도록 권했다. 그는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 선지자(히브리어 원문에는 ‘그 선지자들’)를 신뢰하라’고 말했다. 이것은 신뢰하라는 것에 대한 이중적 강조이지만 그 뜻은 하나이다. 곧,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과 선지자를 신뢰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똑같은 의미이다. 왜냐하면 선지자를 신뢰한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주신 예언의 말씀 곧, 승리한다는 계시를 믿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쓰시는 종들의 말을 믿는 것은 여호와를 믿는 것이 된다. 여호사밧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 (대하 20:1~22, 만나주석)
○.하나님의 응답(應答) (역대하 20:14-19)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의 기도를 은혜롭게 응답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즉각적인 응답이었다. "그가 아직 말하고 있는 중에 하나님은 들어주셨다." 그리하여 회중은 각자 돌아가기 전에 자기들이 승리하게 되리라는 확신을 얻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대하 20:1~22, 매튜헨리)
○.찬송(讚頌)이 시작(始作)될 때.
이와 같은 전쟁을 세상에서는 볼 수 없었을 것인데, 군인(軍人)들은 공격(攻擊)이 시작되려고 하자 하나님께 찬양(讚揚)의 노래를 불렀다. 백성은 그들의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꺼이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셨다. 여호와께서는 승리(勝利)를 약속하셨고, 백성들은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승리를 주장했기 때문에 승리는 그들의 것이었다.
복병(伏兵)을 두어. 이 복병의 특성을 밝히지는 않고 있으나, 그 결과 히브리인들과 싸우러 온 군대들이 상호간에 전멸(全滅)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대하 20:1~22, 재림교주석)
(03월13일) (월) <자신(自身)이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信賴)하라>
(Q)~다윗은 신실했던 지난날을 잊고 자신의 것을 신뢰하여 이스라엘을 계수(計數)하라는 사단으로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군대장관 요압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계수하라고 고집하여 강행함으로 잘못을 저질렀다 (역대상 21:1~14). 그 결과 혹독(酷毒)한 댓가를 경험하였다. 이 경험에서 우리는 어떠한 신뢰와 믿음이 필요 되는가?
(A)~다윗은 신실(信實)했던 과거(過去)를 잊고 자신의 것을 신뢰(信賴)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우리의 일상은 늘 재정적(財政的)인 면과, 정부(政府)정책(政策)의 힘이나 환경(環境)으로부터의 영향이나 특히 건강(健康)에 관한 것들로부터 이들을 더욱 신뢰(信賴)하고자 하는 유혹(誘惑)을 경험(經驗)하게 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성경(聖經)은 모든 위기(危機)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全的)으로 신뢰(信賴)하고 충성(忠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귀(貴)하게 여기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하나님의 자비(慈悲)에 자신을 맡긴 다윗(삼하 24:1-14)
이스라엘을 계수하는 일을 모두 다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다윗은 하나님을 거슬러 큰 죄를 범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비(謙卑)하게 엎드려 그가 범한 큰 죄를 고백하여 이르기를 “제가 어리석어서 백성들을 계수(計數)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의 회개(悔改)는 너무 늦었다. 말씀은 이미 주께로부터 나와 그의 충실한 선지자에게 임하였으며 다윗에게 그의 범죄로 인해 받을 벌(罰)을 택(擇)하라고 하셨다.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음을 보여 주었다. 그는 악(惡)한 사람들의 잔인(殘忍)한 손에 던져지느니보다 자비하신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쪽을 택하였다(1예언 385). (대상 21:1~11, 화잇주석)
○.이스라엘을 계수(計數)하게 하니라.
이스라엘에서 했던 인구조사(人口調査)는 군사적(軍事的)인 목적을 위한 것이었는데, 징집(徵集)을 위해 등재하는 형태였다. 조사(調査)한 수효(數爻)는 전(全) 인구가 아니라, 나라의 전투력(戰鬪力)이었다(5절). 다윗은 자기의 군사력을 증강(增强)시킴으로 이스라엘의 권세와 명예를 더욱 증가시키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그는 주변국(周邊國)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힘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강(强)한 군대에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참조 부조와 선지자, 747).
○.사단이 일어나.
(대상 21장)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인구조사(人口調査)를 한 사실과 여호와께서 불쾌(不快)히 여기심 그리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에 내린 온역(瘟疫)에 대하여 다룬다. 평행 구절인 삼하 24장 주석도 참조하라.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목적을 나타내고, 원수의 계략을 폭로한다. 사단은 끊임없이 하늘나라를 대적(對敵)하여 전쟁을 벌이며,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挫折)시키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혼란과 어려움을 초래하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셨고 이스라엘에 큰 번영(繁榮)을 가져다주셨다. 그러나 사단은 다윗의 성공이 자기 자신의 용맹과 그 나라의 군사력 때문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려고 노력했으며, 다윗이 하늘의 축복보다는 인간적인 방편에 더욱 의지하도록 하고자 애쓰고 있었다.(대상 21:1, 재림교주석
○.다윗을 격동(激動)하여.
여기에서 사단은 이스라엘을 계수(計數)하도록 다윗을 격동(激動)한 자로 나타난다. 평행 구절(句節)인 (삼하 24:1)은 이렇게 언급한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종종 하나님이 미리 막지 않으시는 일은 그분이 하시는 것으로 표현된다. 교만함과 자만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다윗은 악한 자의 선동을 받아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간섭하지 않으셨고, 다윗의 부패한 동기가 행동으로 나타나도록 허락하셨다. 여호와께서 악(惡)한 행동이 나타나도록 허용하실 때, 그것은 실상 악한 세력이 역사(役事)하여 산출하는 유해한 결과이긴 하지만, 종종 하나님의 적극적(積極的)인 개입에 의한 일인 것처럼 표현된다. (참조 롬 1:18; 24, 26, 28; 부조와 선지자, 728 739).(대상 21:1~11, 재림교주석
(03월14일) (화) <단순(單純)하게 해야 할 때>
(Q)~우리는 종말(終末)의 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思慕)하는 재림성도(再臨聖徒)로써 이 땅에서 소유한 것(가진 것)들을 하나님께서 큰 화물트럭으로 하늘로 보내시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소유한 것을 영원히 소유(所有)할 수 없다면 그것으로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나님께서 충성된 종으로 기뻐하실까? (참조 벧후 3:3~12)
(A)~예수님의 재림(再臨)을 간절(懇切)히 사모(思慕)하는 재림성도(再臨聖徒)로써 영원한 하늘나라를 염두(念頭)에 두고 우리가 소유(所有)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것에 매이거나 올무가 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업(事業)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하나님의뜻에 맞게 관리(管理)하는 지혜(智慧)와 용기(勇氣)가 필요하다.
○.재림의 약속(約束)을 부인(否認)하는 자들 (벧후 3:3
直前)에 세상에 일어나게 될 상태를 대강 설명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欺弄)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리라. 그러나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라(살전 5:3). 그러나 원수의 계교에 모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 만물의 종말이 이를 때에 시대의 징조를 분별 할 수 있는 충실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신자(信者)라고 공언(公言)하는 많은 무리가 그들의 행위로 그들의 신앙을 부인(否認)할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남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을 마음속에 생생하게 간직하였고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는(요 14:3) 구세주의 약속이 분명히 성취될 것을 교회에게 보증하였다. 연단을 받은 충성(忠誠)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주의 오심이 오래 지체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사도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였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滅亡)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願)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盜賊)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행적 535).
○.물과 불의 파멸(破滅) (시 144:5, 6; 나 1:5, 6)
하나님은 땅속 깊이 무기(武器)들을 저장해 두셨으며, 죄 많은 인류를 멸망시키실 때 그것을 사용하실 것이다. 대홍수 이후로 하나님은 사악(邪惡)한 도시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땅 속에 감추어 두신 물과 불을 둘 다 사용하셨다. 최후의 대화재가 있을 때 하나님은 진노 중에 하늘의 불을 보내시사 땅에서 솟아오르는 불과 연합하게 하실 것이다. 산들은 용광(鎔鑛)로 같이 불탈 것이며, 용암(鎔巖)의 시내가 분출(噴出)되어 나올 것이다. (나 1:5; 시 144:5, 6 인용)(원고 21, 1902). (벧후 3:3~12, 화잇주석)
○.자기의 정욕(情慾)을 좇아.
문자적으로 “그들 자신들의 욕정(欲情)을 따라서.” 즉 그들의 욕정이 그들을 부추기는 대로. 이런 기롱자들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정욕으로 지배받는다는 점에서 거짓 선생들과 유사한 면이 있다(참조 2:2, 10 주석). 그들의 정욕이 그들의 신학-(육욕적(肉慾的)인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무죄(無罪)한 분의 돌아오심을 열렬(熱烈)하게 사모(思慕)할 수 없다)-을 결정하였다.(벧후 3:3~12, 재림교주석)
(1) 우리는 "은혜(恩惠)에서 자라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편지 서두에서 다른 것 위에다 은혜를 더하라고 권면(勸勉)한 바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은혜와 믿음과 덕(德)과 지식(知識)에 있어서 성장하여야 한다고 다시 충고(忠告)하고 있다. 보다 굳건한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으면 있을수록 그만큼 우리는 진리(眞理) 가운데 굳세게 서 있을 수 있다.
(2)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한다. "주님을 알기 위하여 계속 노력하라. 그를 좀 더 분명히 그리고 충분히 알기 위하여 수고하라. 또한 그리스도께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며, 주님과 같이 되기 위하여, 주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 힘쓰라."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얻고자 노력하였던 그리스도께 관한 지식이다(빌 3:10). 우리를 보다 더 그리스도께 일치시켜 주며, 보다 더 그리스도를 흠모(欽慕)하게 만들어 주는, 그리스도께 대한 그러한 지식은 많은 사람들이 배교하는 때에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어서, 우리로 하여금 타락하는 것을 막아 준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의 효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로부터 은혜를 받고, 그에게 감사를 돌리며, 그를 찬송하며, 사도 베드로처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멘. (벧후 3:3~12, 매튜헨리)
○.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본 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앞 절의 시간 개념보다 진보된 설명이다. ‘어떤 이’는 주의 재림이 없다고 주장하는 기롱자들(3절) 뿐만 아니라 기롱자들의 미혹으로 말미암아 악한 영향을 받고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Blum). 이들은 주의 재림에 대한 약속이 더디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더디 오시는 것이 아니라 ‘참으시는 것’이다. ‘참으심’은 피조물을 향해 세워놓은 계획에 대해서 실행하시는 신실한 속성(屬性)과 더불어 죄인들을 향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이다. 주의 재림의 지연은 믿음 없는 자들이 보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태만(怠慢)이나 능력의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오래 참으시는 긍휼(矜恤)이다. 한편 ‘너희를 대하여’의 헬라어 ‘에이스 휘마스’은 사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본문과 같이 기록된 사본은 B,C,P이며, 어떤 사본에는 ‘에이스 헤마스’(’우리를 대하여’)로 되어 있으며(K,L) 어떤 사본에는 ‘디 휘마스’(A) 이러한 사본 상의 차이는 뒤이어 나오는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과 연관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대상에 대한 언급으로, 사본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참으심의 대상이 전인류를 향한 것임을 시사한다(Calvin,Blum). (벧후 3:3~12, 만나주석)
(03월15일) (수) <우선순위(優先順位)>
(Q)~우리 인간들을 넘어뜨리는 사단의 유혹(誘惑)에는 그리스도인이든 비(非)그리스도인들 이건 3가지 유형(類型)이 있다고 사도바울이 언급(言及)하고 있다. 그 3기지의 류형(類型)은 어느 것이며 이 영향(影響)에서 벗어 날수 있는 방법(方法)은 무엇일까? (요일 2:15~17) (마태 6:24)
(A)~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돈(재물)”을 함께 섬기는 것을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마태6:24)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의 3가지 유형(類型)은 ⑴.육신(肉身)의 정욕(情慾)과 ⑵.안목(眼目)의 정욕(情慾)과 ⑶.이생의 자랑으로 (요일2:15~17) 이 세 가지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⑴.재물욕(財物慾), ⑵.색욕(色慾), ⑶.명예욕(名譽慾)이다. 주로 5관(觀)(오감(五感)을 통하여 인간에게 들어온다는 말씀이다. 즉 이 세 가지 류형(類型)은 하나님으로부터 좇아 온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 세가지의 특징은 한시적(限時的)이며 예수님 재림(再臨)하시는 그날에 세상을 사랑한 모든 사람은 공동(共同)의 운명(運命)으로 파멸(破滅)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랑하기를 거부(拒否)하고 죄를 미워하며 오직 사랑의 계명(誡命)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천국(天國)에 거(居)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들에게 영생(永生)을 주시기 때문이다. (요일 주석 2:15~17)
○.누구든지.
사도는 세상에 대한 사랑에 그들의 마음속 자리를 이미 내준 많은 자들을 분명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다시 조건 절을 만든다(참조 1:6 주석). 그들의 애정을 하나님에게 반대되는 관심에 두도록 허락하는 자들은 진정으로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재물 둘 다를 섬기거나 사랑할 수 없다(참조 마 6:24 주석).
○.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에 남겨 놓은 여백(餘白)(요일 2:15)
언제나 세상 쪽으로 조금씩 더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 감정(感情)과 계획(計劃)과 생각들이 더욱 더 세상과 같이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과 구주(救主) 사이에 여백(餘白)을 남겨 놓는다. 사단은 이 빈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천(賤)하고 세속(世俗)에 물든 이기적(利己的)인 계획들이 그들의 경험(經驗)과 섞여 짜여지게 된다. (리뷰 1887. 6. 7).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본문은 요한이 수신자 공동체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을 세상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랑’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아가페 투 파트로스’에서 속격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목적격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arshall). 이 견해에 따르면 세상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공존할 수 없도록 만든다. (2) 혹자는 주격으로 보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주장한다(Houlden). 이 견해에 따르면 세상을 사랑할 경우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람 안에 거할 수 없다. 두 가지 견해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이다. (요일 2:15, 만나주석)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요일 2:16)
본문은 앞 절에서 언급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의 예이다. 이 세 가지 예중에서 첫 번째는 나머지 두 가지에 대한 일반적인 원리를 나타내는 듯하다(Smalley). (1) 육신의 정욕. ‘육신’의 헬라어 ‘사르코스’은 일반적으로 신체적인 의미에서 인간을 의미하나 본문에서는 ‘영적인’것과 대조를 이루는 악한 욕망의 근원을 의미한다. ‘육신의 정욕’은 타락한 사람의 본성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는 자세를 의미한다(Barker, Stott). (2) 안목의 정욕. 이것은 외적인 것을 봄으로 유혹을 일으키는 성적인 욕망은 물론 모든 사물을 탐닉하는 욕망을 의미한다(Marshall, Bultmann). (3) 이생의 자랑(헤 알라조네이아 투 비우). 여기에 나타난 속격에 대한 견해에 따라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주격으로 이해할 경우 본문은 세상적인 물질이나 명성에 대해 과대평가하여 자랑하는 허세를 의미한다. 2. 목적격으로 이해할 경우 본문은 세상적인 것에 대한 자랑을 의미한다. ‘이생의 자랑’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즉 그것은 소유하고 있는 물질 뿐만 아니라 태도나 행위를 자랑하거나 혹은 과대 평가하여 허세를 부리는 것을 의미한다(Marshall, Law). (요일 2:16, 만나주석)
○.안목(眼目)의 정욕(情慾).
“육신(肉身)의 정욕(情慾)”이 육체(肉體)에서 일어나는 죄에 특별히 적용(適用)된다면, “안목의 정욕”은 시야(視野)를 통해 자극(刺戟)되는 정신적 쾌락(快樂)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죄 된 쾌락의 대부분은 눈을 통해 경험된다(참조 마 5:27, 28 주석). 드러내놓고 죄에 탐닉하고자 하는 모든 의도를 숨기기에 급급한 많은 사람들 스스로가 죄에 관한 것들을 간절히 읽고 싶어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눈여겨보고 싶어 하거나 영상(映像)으로 묘사(描寫)된 그것을 보고 싶어한다. 여기에 고전 10:12의 말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가 적용된다(참조 창 3:6). 요한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또는 짐승들과 죽기까지 싸웠던 로마의 투기장에서 사람을 잔인(殘忍)하게 만드는 경기의 광경(光景)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광경은 오늘날 가학적(加虐的)인 운동 경기가 그러한 것과 동일한 병적(病的) 호기심(好奇心)을 일으켰다. (요일 2:15~17, 재림교주석)
○.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세상은 한시적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에 세상과 세상을 사랑한 모든 사람은 공동의 운명으로 파멸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랑하기를 거부하고 죄를 미워하며 오직 사랑의 계명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때문이다(3, 14, 5:11, 12, 고후 4:18). ” (요일 2:15~17, 만나주석)
(03월16일) (목) <매매(賣買)할 수 없을 때>
(Q)~재정적(財政的)인 문제(問題)들로 충성(忠誠)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지막 때에 있을 박해(迫害)와 환란(患亂)에 대하여 어떻게 대비(對備)해야 하며, 재물(財物)과 세상의 것들에 노예(奴隸)가 되지 않는 방법을 어떻게 준비하여야 되는가? (계시록 13:11~17) (신명기 14:22~23)
(A)~성경은 (계시록 13:11~17)과 그리스도의 재림전(再臨前)의 어려운 시기(時期)를 지적(指摘)하면서 사거나 팔수 없을 때가 올 것이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 삶은 대부분 많은 부분이 사고파는 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의 시간(時間)과 기술(技術)과 상품(商品)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파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없다는 것은 사회에서의 기능(機能)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意味)합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충성(忠誠)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마지막 때의 박해(迫害)에 대비(對備)하여 지금부터 우리는 돈(재물)과 세상의 노예(奴隸)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恩惠)에 힘입어 철저(徹底)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매매(賣買).
이 단호한 조치는 우상(偶像)의 명령에 복종(服從)하게 하려는 노력으로 취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措置)는 소용이 없을 것이다(참조 14:1, 12 주석). 이 조치는 분명히 사형(死刑) 법령(法令)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참조 13:15 주석).(계 13:11~17, 재림교주석)
○.경외(敬畏)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이 같은 하나님의 요구들에 대한 성실한 순종은 경배자의 마음에 여호와께 대한 경외심을 각인시켜 주고, 또한 확고부동하게 그분과 교통하도록 고무시켜 줄 것이다.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욥 28:28). “주를 경외(敬畏)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敬拜)하리 이다”(시 5: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잠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잠 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智慧)의 훈계(訓戒)라”(잠 15: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잠 19:23).” (신 14:22~23, 재림교주석)
○.짐승의 표(表)가 아직은 적용(適用)되지 않음
일요일(日曜日) 준수(遵守)는 아직 짐승의 표가 아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 우상(偶像)의 안식일(安息日)을 경배(敬拜)하게 하는 법령(法令)이 포고(布告)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은 짐승의 표가 될 것이다. 이 날이 시험(試驗)이 될 때가 오겠지만 그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원고 118, 1899). (계 13:11~17, 화잇주석)
○.각 사람이 지금 내려야 하는 큰 결단(決斷)은 짐승과 그 우상(偶像)의 표(表)를 받느냐, 아니면 살아계신 참 하나님의 인(印)을 받느냐 하는 것이다. (사인즈 1910. 3. 22).
○.죽이게.
오랜 세월 동안의 역사가 이러했다. 종교적(宗敎的)인 문제를 법으로 정하는 것은 핍박을 수반했다. 중세기에도 그랬다. 알비조파, 왈덴스 그리고 그 외의 사람들에 대한 대량학살을 보라. 분명 시민의 권력(權力)에 의해서였지만, 그 당시의 유력한 교회가 촉발한 것이었다. 모든 지구의 거민으로 하여금 처음 짐승에게 충성(忠誠)하게 하려는 시도로 둘째 짐승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지속하려는 모든 자를 죽음으로 위협하는 법령(法令)을 공표(公表)할 것이다. (참조 각 시대의 대쟁투, 615; 선지자와 왕 605, 606,).
○.중대(重大)한 시기(時期)에 살고 있음(살후 2:3, 4)
우리는 지상역사(地上歷史)에서 중대한 시기에 살고 있다. 큰 투쟁(鬪爭)이 바로 우리 앞에 있다. 우리는 세계가 그 거민들 아래에서 더러워진 것을 본다. 죄악의 사람은 놀라운 인내력을 가지고 거짓 안식일(安息日)을 높이기 위해서 일해 왔다. 불충성(不忠誠)스러운 개신교(改新敎)계는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여호와께서 제정(制定)하신 안식일에 순종하는 자를 국법(國法)에 불충성(不忠誠)하는 자라고 한다. 나라들이 거짓 안식일 제도(制度)를 높이기 위해 연합하였다. (리뷰 1900. 2. 6).
○.사단의 대리자(代理者)들이 제정(制定)한 인간의 법률(法律)과 법령(法令)들이 높임을 받고, 반면에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誡命)들이 멸시(蔑視)를 받고 짓밟힘을 당한다. 여호와의 율법을 순종함으로 충성(忠誠)을 입증(立證)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체포(逮捕)되어 의회 앞에 서도록 준비해야 한다(리뷰 1899. 12. 26).
○.불법(不法)에 대처(對處)할 준비(準備)를 하라
그리스도께서 이유 없이 미움을 받았던 것같이 그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계명들을 순종하기 때문에 미움을 받을 것이다. 순결하시고, 거룩하시고, 더러움이 없으신 그분, 이 세상에서 오직 선한 일만 하셨던 그분이 비천한 죄인으로 취급을 받으시고 정죄를 받아 죽으셨다면, 그분의 제자들도 그들의 생애가 아무리 흠이 없고, 그들의 품성이 아무리 허물이 없다 할지라도 예수님과 같은 대접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계 13:11~17, 화잇주석)
○.일요일(日曜日) 준수(遵守)를 찬동(贊同)하게 하려고 법률(法律)을 제정하겠지만 사단이 그 배후에 서 있고 그가 주동(主動)자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 거짓 안식일을 높이는 일에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참 안식일을 지키는 것까지도 양심(良心)이 억압(抑壓)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는 하나님이 자원(自願)해서 하는 봉사(奉仕)만을 받으시기 때문이다(리뷰 1890. 4. 15).
○.권세(權勢) 있는 자(者)들이 듣도록(계 14:9-12)
하나님은 선한 사람들과 권세 자들이 무엇이 참 진리인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시려고 상황을 조정하고 계신다. 그리고 한 백성이 그 우상에게 무릎을 꿇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손에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진리에 굳게 설 것이기 때문에 압제하는 일이 있을 것이며, 양심을 강제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흑암의 세력에 굴복하기를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은 한 백성을 갖고 계신다. 그들은 오른 손에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을 것이다….(계 14:9-12, 화잇주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順從)하고 이 거짓 안식일(安息日) 경배(敬拜)를 거절(拒絶)하는 모든 자들에게 시련(試鍊)과 박해(迫害)가 임(臨)할 것이다. 권력(權力)은 모든 거짓 종교가 최후로 사용하는 수단(手段)이다. 마치 바벨론 왕이 음악(音樂)의 힘과 권력(權力)의 과시(誇示)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려 했던 것같이 이것도 처음에는 그렇게 할 것이다. 사단의 영감(靈感)을 받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보려고 생각해 낸 이 방법이 그 우상(偶像)에게 사람들을 경배(敬拜)케 하지 못하면 무서운 풀무불이 그들을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던 것같이 이제도 그리할 것이다. 교권(敎權)은 사람들을 강제(强制)로 복종(服從)시키기 위하여 그의 권력을 행사(行事)해 왔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이 이교주의(異敎主義)와 투쟁(鬪爭)할 때에 나타내었던 것과 같은 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사인즈 1897. 5. 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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