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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제자도를 경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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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奉ju 작성일08-02-27 21:38 조회4,6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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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弟子道를 經驗함

<프리즘:>
◉ 우리말이 쉬운 것 같지만 참으로 어려운 말이 많다.
보는 것을 일예로 들어 보면, 눈으로 본다, 입으로 맛을 본다, 귀로 들어 본다, 손으로 만져 본다. 등등 실제로는 보는 것은 눈뿐이지만 오감(五感)을 통해서 다 본다고 표현 한다.

◉ 韓方의 用語에 양중지음(陽中之陰) 또는 음중지양(陰中之陽)이라는 말이 있다.
陽中之陰이라는 말은 질병(疾病)의 원인이 밖으로부터 병의 원인이 되어서 속으로 병이 번져 나가는 것을 말하며, 陰中之陽 이라는 말은 병(病)이 속에서 시작(始作)해서 몸 밖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말한다. 쉽게 이야기 한다면 배가 아픈 원인(原因)이 음식(飮食)을 먹고 체해서도 배가 아프고, 얻어맞아도 배가 아픈 것이다. 이러할 때 배 아픈 병의 원인을 음식을 먹고 체한 것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지속 하면 몸속에서부터 몸 밖으로 병의 증상이 번져 나가는 것을 陰中之陽(안에서 밖으로)이라 하며, 밖으로부터 맞아서 배가 아픈 것을 그냥 놔두면 안으로 병(病)이 되어서 번져 나가는 것을 陽中之陰이라 한다.

◉ 제자가 되는 일에 있어서도 자신의 마음속으로부터 뜨거움과 결심(決心)이 내 속에서부터 행동(行動)으로 옮겨지는 음중지양(陰中之陽)의 과정(過程)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反對)로 외부(外部)로부터의 강한 능력에 이끌려 제자(弟子)가(사도 바울의 경우)되는 경우(境遇)도 있다.
그러나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듯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경험(經驗)을 하여야 하고 "예수님"을 개인적(個人的)으로 알아야 하며 그 분에의해서 변화(變化)되는 경험을 가져야 하고 그분께서 제시(提示)하시는 것에 반듯이 동참(同參)하여야 한다.

◉ 몸에 음식(飮食)이 필요하다면 우리의 영혼(靈魂)에는 "예수님"이 반듯이 필요(必要)하다.
몸에 건강을 지탱 하려면 알맞은 음식으로 영양을 공급받아야 건강(健康)을 유지(維持)할 수 있듯이 우리의 영적인 삶에는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을 먹어야

경험(經驗) : ①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을 말한다.
요점(要點) : 우리 몸이 음식물을 필요로 하듯 우리의 영혼은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

日 (2월 17일)
<生命의 떡>

◉ <우리의 生命 = 十字架 功勞의 恩典>
우리가 먹고 살고 있는 모든 것은 십자가(十字架)위에서 주님의 터진 심장(心腸)과 찢어진 몸으로 산 것이다. 모든 떡덩이 마다 갈 바리의 인(印)이 찍혀있다. 모든 샘물에도 십자가가 반사되어있다……. 우리를 위하여 갈바리의 십자가위에서 버리신 생명을 받아들임으로 우리는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다.(소망3권147)

현재 우리의 생명이 존속(存續)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공로(功勞)로 인한 하늘 중보 직분에 대한 증거이다. 우리가 심지어 이 세상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도 그리스도의 죽음 덕분이다. 어떤 성자(聖者)든 죄인(罪人)이든 간에 그가 매일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써 양육되고 있다는 것이다.

◉ <떡 = 生命의 떡 그리스도>
상(床)위의 떡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앞에 항상 계시는 산 떡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또한 인간이 영적양식(靈的糧食)과 육신(肉身)의 양식(糧食)을 모두 주님께 의존한다는 것과 또 그것을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만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부조 상465)
십자가(十字架)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 하셨을 때 "하나님"의 떡이 되신 그 분께서는 모든 인간들의 “생명의 떡”이 되셨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
靈的 生命ㅠ지하는 음식은 살아있는 말씀이신 주 예수님이요 기록된 말씀인 성경인 것이다.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들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자라나게 된다.(벧전 2:2-5).
영생은 형식이나 의식을 통해서 영혼에게 이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 위치에서 모두 다 합당한 것이지만, 영생은 "하나님"의 임재(臨齋)로부터 나오는 떡, 즉 거룩한 말씀인 성경 말씀을 먹음으로써만 얻어지는 것이다.

◉ <安息日 = 救援의 祝祭日>
매 안식일(安息日)에 祭司長들은 床위에 떡을 陳設했고, 또한 후에 그것을 먹음으로 그것이 그들 자신의 일부가 되게 했다.
우리들은 安息日마다 거룩한 사물 속에서 새롭게 되는 經驗을 얻어야 한다.
聖所制度의 떡 상과 관련해서 본다면 安息日은 그리스도를 통한 救贖의 祝祭日이다. 한주일의 엿새가 安息日을 위하여 存在 믿음으로 安息日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살아갈 때 죄와 멀리할 수가 있다. 이스라엘 에서는 安息日되는 금요일 저녁을 카발라트 샤바트(Kabalt Shabat)라 부르는데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고 신(神)의 현존(現存)을 환영(歡迎)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면전(面前)에서 임재 떡을 먹는 날이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온가족이 성경(토라)을 읽고 연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날이다.
여새동안 힘써 모든 일을 다 마친 뒤 곧 인간 활동의 작품을 완성한 후(출 20:9), 안식일의 시간 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생명의 떡을 먹고(성경연구) 거룩하게 보낸다는 것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되어있고 축복받고 있음을 나타낸다. (창 2:1-2). 또 안식일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시켜주며, "하나님"의 도래(到來)되고 있는 영광의 왕국을 확인해주고 있다.

◉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분을 알되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어야 하고, 그분의 품성이 우리의 품성이 되어야 한다.
그분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를 통해 나타나야 한다.

◉ 예수께서는 일시적인 육신(肉身)의 양식을 공급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생명의 떡으로 당신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분을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결코 그분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없다.

月 (2월 18일)
<어린아이와 弟子道>

◉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면 어린아이의 시절을 보내게 된다.
어린이와 어른의 변화 되는 모습을 웃음으로 연구한 분들의 이야기에 의 하면
어린 아가였을 때는 하루에 웃음을 400-800회의 웃음을 웃는다고 합니다.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춘, 소년과 청년을 지나면서 하루에 웃음의 횟수가 떨어지기 시작 하면서 100회에서, 노년에 이르면 하루에 거의 한 번도 웃지 않는다고 하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웃는 다는 것은 의심이 없이 단순함을 나타내는 척도라고 생각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에게 배우라고 하신 말씀의 취지는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함과 자기부정(自己否定)과 신뢰(信賴)하는 그 청순함과 사랑이 곧 하나님께서 가치 있게 여기시는 속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 때에는 높은 곳에 아가를 올려놓고 밑에서 부모가 뛰어 내리라고 하면 의심 없이 뛰어내린다. 그러나 점점 자라면서는 아빠나 엄마가 나를 받을 만큼 힘이 있을까 등등을 생각 하면서 부모의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 하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더 의존 하게 되는 것을 경험 하였으리라.

◉ ☞ 말미부록(末尾附錄)에 어린 시절의 마음을 “엄마는” 이라는 글을 통하여 장성한 사람들이 어린 마음에서 엄마를 어떻게 생각 했었는지를 잘 표현한 글이라 생각되어서 말미에 옮겨 놓았습니다.

◉ 주님의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종종 부모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부모님을 신뢰(信賴)하는 법을 배워온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때로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분을 신뢰하고 따를 때에 결코 잘못되거나 불이익을 당치 않는다는 사실을 교훈 하자.

◉ 어린아이들은 자기를 낮추는 상태에 있다.
제자들은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이며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복해야 한다.
어린아이가 되기 위하여서는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참으로 성령으로 거듭나야 제자가 된다.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당부하셨다.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있다.

火 (2월 19일)
<주님의 變形되심과 弟子들의 失敗>

◉ 누구든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실패(失敗)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줄로 생각이 된다. 그 실패의 원인은 충분한 증거가 없을 때에서나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서 시작한 실례들일 것이다.

◉ 귀로 듣는 경우는 그 듣고 있는 이야기가 당사자의 하는 말이 직접 자기가 본 것을 말하는지 몇 다리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들은 것을 말하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보는 것은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 한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것이다.
그 것을 경험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사실인 것이다. 그 것은 믿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수차(數次) 여러 가지 이적과 기적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셨다. 특히 제자들에게는 더할 나위가 없도록 친히 대동(帶同)하셔서 모든 것들을 보고 듣게 하셨다. 그렇게 했었도 "예수님"을 인간의 관점으로만 보고 판단을 했기에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 받으실 때에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도망갔고 부인(否認)을 했다. 그러한 일들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더 믿음을 주시기 위하여 변화산에 가시어서 제자들의 믿음을 크게 강화 시키시고자 하늘로부터의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증거(證據)하는 음성(音聲)도 듣고 모세와 엘리야도 볼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러고도 제자들은 실패(失敗)했다. 그 원인은 보고 듣고 한 주님을 믿지 못함에서이다.
믿음을 어떻게 활용(活用)하느냐에 따라서 성장(成長)하거나 침체(沈滯)되거나 또는 쇠퇴(衰退)하게 될 것임을 교훈(敎訓)하여야 할 것이다.

◉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는 세 가지 특별한 일은,
1. 예수께서 변형되심.
2.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하심.
3.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음성이 들림이었다.

◉ 제자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들을 목격하였으면서도 예수께서 잡히실 때 다 버리고 도망하였고,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으며,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주님을 체험적(體驗的)으로 알지 못한다면 우리도 안전(安全)치 못하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를 주신 후에 제자로 부르신다. 우리는 믿음을 활용함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점점 자라가야 한다.

水 (2월 20일)
<橄欖山 談話>

◉ 우리나라의 제5공화국(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꽤 많은 담화문(談話文)을 접(接)하였다.
담화문(談話文)이란?
공적(公的)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떤 문제(問題)에 대한 견해(見解)나 태도(態度)를 밝히기 위하여 공식적(公式的)으로 발표(發表)하는 글을 말한다.

◉ 마태복음의 24장과2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담화(談話)로 불리는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의 주요한 배경은 "예수님"의 재림(再臨)의 징조(徵兆)에 관한 말씀이다.
주님의 재림이 얼마나 중요하신지 감람산에서 하신 말씀을 요약하면,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에 관한 말씀으로 말세(末世)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고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겠다.
① 말세에는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사람들을 미혹(迷惑)할 것이라는 말씀과
②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리라는 말씀과
③ 불법(不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는 말씀과
④ 거짓그리스도들과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나 미혹 하리라는 말씀과
⑤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타락(墮落)할 것이나 깨닫지 못하리라는 말씀들이다.

◉ 예수께서는 감람산 담화를 통해 모든 제자들이 경계해야 할 마지막 시대의 기만에 대해 말씀하셨다. 진리를 아는 것이 기만에 대응하는 최선의 길이다.

木 (2월 21일)
<十字架를 짐>

◉ 우리말에 “짐”이라는 말의 뜻은 참으로 많다.
<짐> ①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하여 챙기거나 꾸려 놓은 물건.
② 맡겨진 임무나 책임.
③ 수고로운 일이나 귀찮은 물건.
④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는 말
(한 사람이 한 번 지어 나를만한 분량의 꾸러미를 세는 단위.)
⑤ 짐을 벗다 고통, 슬픔, 걱정, 책임 따위에서 벗어나다.
⑥ 짐 암반의 무게로 인한 압력.
⑦ 짐 논밭 넓이의 단위.
⑧ 세금을 계산할 때 썼다.
1짐은 1뭇의 열 배, 1동의 10분의 1로, 그 넓이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⑨ 짐(朕) 임금이 자기를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
◉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자신(제자)에게 맡겨진 임무와 책임을 감당(堪當)하는 것을 말한다.

◉ 여기 십자가(十字架)를 진 한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요한복음 맨 끝 장(章)인 21장1절-17절)
☞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따라다녔던 성질 급한 베드로!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사건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배신자(背信者)의 대표자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그가. 어떻게 해서 요한복음21장의 경험을 통하여 그에 생에가 진심으로 십자가(十字架)를 진 대표자로 사도행전에 잘 기록 하고 있다.
참고로 유전(遺傳)에 의하면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반듯이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힐 수가 없다고 해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殉敎)하였다고 한다.

◉ 저와 여러분들도 십자가(十字架)를 진다는 각오(覺悟)는 직접 좋으신 주님을 베드로처럼, 막달라 마리아처럼 수가성의 여인처럼 주님을 만난 경험이 있는 자라야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확실히 따를 수가 있을 것이다.

◉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지 말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한다.


<焦點>

1. 제자도(弟子道)를 경험(經驗) 한다는 말은,
우리 몸에 음식물이 절대로 필요 하듯, 우리의 영혼(靈魂)에 "예수님"이 필요로 함을 절대적(絶對的)으로 갈급(渴急)하는 자(者)로서 그 분의 살(말씀)과 피(생명)를 먹고 마시는 것을 경험한다고 하는 것이다.

2. 제자도(弟子道)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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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末尾附錄>

☞ 장성(長成)하기 전에 단순한 어린 아이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어린 아이의 마음에서 생각한 글.


제목 : 엄마는! 어머니는!

엄마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百科辭典)이다
엄마는 만물박사(萬物博士)이다
우리엄마가 일류 대학을 공부하였다든지 박사학위(博士學位)가 있어서가 아니다
엄마는 우리가 묻는 질문에 결코 막히는 것이 없다
길거리를 다니면서 모르는 것 의심나는 것
성경에대해서도 엄마에게 물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엄마는 의사이다
엄마는 최상의 간호사이다
의과대학은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였지만
우리 아이가 열이 펄펄 꿇을 때면 어떻게 해야 되고
아이의 배가 사르르 아풀때는 어떻게 하여야 되는 지도 안다
아가의 표정만 보아도 울음소리만 들어도 오직 손바닥 하나로
청진기도 필요 없고 주사도 필요 없이 치료하는 만능의 의사이다.

엄마는 피곤을 모르는 재봉사이다. 떨어진 단추 구멍 난 양말 헤어진 셔츠가 엄마의 손에만 가면 새것이 되어 돌아온다.

엄마는 은행가이다
아빠의 쥐꼬리만 한 월급봉투가 엄마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30배 60배 100배가되어 돌아 나온다. 엄마의 손에서 부도가 나는 법이란 없다
실로 엄마만큼 현명한 투자가도 드물다

엄마의 지갑은 언제나 치약 쥬브와 같다. 짜고 또 짜서 이제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거기에는 또 충분한 량의 치약이 남아 있는 것이다

엄마는 최선의 교육자이다. 내가 아는 것 중 좋은 것은 엄마의 무릎에서 배운 것들이고 내가 아는 것 중에 나뿐 것들은 엄마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 것들이다

내가 아는 자장가 내가 아는 별자리 이야기 내가 아는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
요셉과 야곱의 이야기 가슴두근 거리게 하던 에스더 왕비의 이야기
아- 동방박사의 이야기 키가 작은 삭게오의 이야기 모두가 엄마라는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들이다

엄마의 교육만큼 오래가는 것은 없다
엄마의의 교육은 아기 침대에서 무덤까지 간다.
엄마는 얼마나 잘 가르치는 일류 선생인지
엄마의 무릎교실에서 낙제하는 아이는 하나도 없다
사랑으로 가르치고 믿음으로 기대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일류 평론가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서 어떤 작가도 생각해 내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미리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는 왜 방송국에서 우리엄마를 방송작가로 뽑아가지 않는지를 모르겠다.

엄마는 탐정! 엄마는 관상쟁이! 어린아이의 눈빛만 보아도 그 생각을 다 안다
어린아이의 칭얼대는 소리 만들어도 어느 영양소가 부족한지 다 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고 있다

엄마는 재판장 어린 철부지들이 장난감을 서로 가지겠다고
싸울 때에 엄마의 판결만 있으면 곧 평화가 온다.
엄마가 말하는 것에는 틀리는 것이란 없다
엄마가 판단하는 일에는 실수란 없다

우리엄마는 꿈꾸는 사람이다
내 노래 소리를 듣고도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의 꿈을 가지고
내가 그린그림을 보고는 피카소 못지않은 화가의 꿈을 꾼다.
교회에서 들은 설교말씀 쪼끔을 이야기해도
장차 훌륭한 전도자요 목사가 될 것이라고 꿈을 꾸신다.
엄마 주위에는 모두가 장군(將軍)감이요 대통령 감이다
엄마는 실로 떡갈나무 잎을 보면서 대들보의 꿈을 꾸는 사람이다
엄마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결코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그의 꿈을 이루어 드리지 못한 것이다

엄마는 사랑꾼 잠은 언제 자는지?
엄마는 행복한 노동자 그 많은 일들을 언제 하는지?
엄마는 언제 자기희생의 대가를 요구하던가?
엄마는 다만 모든 슬픔과 아픔과 부끄러움과 수치와 모욕을 묵묵히 참으며
자식을 위해서는 스스로 십자가에 달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엄마는 내 딸이 나의 남편보다 좋은 남자 만나기를 원하고
내 아들이 나보다 훌륭한 여자 만나기를 바란다.

실로 모든 엄마는 십자가에 달린 순교자이다.
자식(子息)이라는 제단(祭壇)에 자기를 쏟아 부어 드리는 순교자이다
아 엄마는 우리에게 영원한 愛人(애인)! 우리에게 영원한 고향 언덕에 이름이다.

아이는 실패해도 성공해도 아파도 슬퍼도 즐거워도 엄마를 찾는다.
고향이 주는 그리움과 평화의 安心(안심)이 모두 엄마라는 이름에 담겨있는 것이다. 엄마품! 거기에만 안겨 있으면 이 세상 아이들은 누구나
왕자가 되고 공주가 된다.
세상의 어느 군왕이 부럽지 않는 최상의 평화와 풍족함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서 엄마는 하나님이시다 실로 우리 하나님은 어머니 되시는 분이시다. 아이가 이 우주 속에서 어머니만큼 믿는 대상은 없다. 어머니만큼 의지하는 대상은 없다. 엄마만 옆에 있으면 세상에 다른 어떤 것은 없어도 좋다고 여긴다.
엄마는! 어머니는! 나의 모든 것 전부이다.

실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단어가운데 이세상의 모든 정감 있는 말 가운데
가장 포근한 말이 어머니입니다.
아무리 부르고 또 불러도 결코 싫증나지 않는 단어!
싫증나지 않는 이름! 어머니입니다.
왜냐 하면 어머니는 우리가 이 세상에 오면서 가장 처음 만난 여인이요
가장 처음 사랑을 나눈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불행한 사람이 많습니다. 많은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엄마라고 부를만한 여인이 없는 사람 그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미국에 목사요 시인인 에머슨(에머슨 랄프 왈러 에머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가령! 이 세상 모든 것을 달 수 있는 저울이 있다고 하자
저울 한쪽에는 이 지구를 올려놓고 다른 한쪽에는 어머니를 올려놓아 보자
그래도 어머니가 무겁다 어머니가 더 무겁다.
그렇습니다. 무엇으로 어머니에 사랑을 대신 하면서 어머니에 사랑에 그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대신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머니야말로 우주보다 큰 우주 그 자체요 우주보다 넓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각각 모든 집을 방문하는 대신에 어머니를 각각 가정에 보내셨다
그러니까. 어머니에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 하는 것이고 어머니의 손길은 하나님의 손길을 대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대신하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
하나님의 인내를 대신하는 어머니의 오래 참으심이 아니었으면 오늘까지 우리의 생명을 부지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흔히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빛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빛이 됩니다. 나갈 방향이 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熱(열)입니다, 따뜻한 열이 되는 것입니다
잠시 생각하여 봅시다. 빛만으로는 생물이 자라지 않습니다.
빛- 비추는 것 만으로서는 결코 식물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식물뿐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熱(열)이 없으면 유지가 되지 않습니다.
열이 있어야 열매도 맺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핏덩어리로 태어난 우리가 오늘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 갈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따스한 생명력인 어머니의 熱(열)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감사한 일이 하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한 모든 사람들!
가령 그가 귀인이든지 임금에 아들이든지 이 세상에 다시없는 철학자나 또는 과학자 장군, 어느 황제이든지 누구라도! 아니면 저런 인생은 왜 태어 난노 아주 천하고 천한 사람일지라도.
한 가지 공평하게 받은 하나님의 은총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가 다 이 세상에 나온 누구나 다! 어머니의 태속에서 10달 동안 있다가 나왔다는 한 가지 공통점입니다. 어머니에 자궁 그것은 우리 만민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의 세계입니다.
거기에는 임금의 아들과 거지의 아들에 구별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자기의 생명을 자식에게 나누어주고서는 무엇이 모자라서인지 그저 또 주고 주어 또 주어도 결코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더 주지 못해서 늘― 안타까워하는 것이 어머니의 심정입니다.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에 대한 귀한 사랑을 받고 주는 결심과 축복의 이 안식일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자 미상> 감사 합니다 샬 롬!

李奉周(이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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