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함(질문, 대답, 설명) 10/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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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10-19 21:30 조회3,547회 댓글0건본문
제4과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함
(10월 28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39분)
연구 범위: 창 18:, 약 5:16, 롬 8:34, 히 7:25, 창 19:1~29, 창 12:1~9
기억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 35)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선교를 위해 하나님께 협력하기를 원했다. 그것은 창세기 18장에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일어날 일에 대해 경고하셨을 때 그가 보인 말과 행동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소돔과 고모라에서는 "그 종 선지자" 아브라함에게 될 일을 보여주셨다.
아브라함은 한낮의 더위 가운데 쉬던 중에 세 명의 나그네를 보았다. "아브라함은 그의 손님들을 피곤한 세 행인들로만 보았으나 그 가운데 그가 경배해야 할 죄 없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부조와 선지자, 138, 139).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이내 하나님의 선교에 개인적으로 동참하게 되었다. 그가 동참한 방법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중보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비록 엄청난 죄인들일지라도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 선교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이번 주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세 가지 위대한 영적 특성인 친절, 사랑, 기도를 살펴볼 것이다. 이는 선교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특성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아브라함은 친절, 사랑,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였다.
느끼기: 선교를 위해서 우리에게도 아브라함과 같은 영적 특성이 필요하다.
행하기: 그리스도를 닮은 아브라함의 특성을 내 삶 속에서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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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손님들을 환대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창 18:4, 5)
*답: 그가 자긴 친절을 통하여 하나님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3. 아브라함이 소돔의 심판을 부당하다고 호소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창 18:25)
*답: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의인과 죄인을 함께 멸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4. 선교에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의 모본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약 5:16)
*답: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5. 아브라함의 기도의 결과는 우리에게 어떤 점을 시사합니까?(창 19:15~16)
*답: 롯의 가족을 구원했다.
6. 선교에 요긴한 아브라함의 삶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어떤 것입니까?(창 12:1~9)
*답: 친절과 봉사이다.
7. 소돔을 대하는 일들에서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어떻게 드러내었습니까?
*답: 중조하시는 예수님의 자비를 드러내었다.
결론 아브라함은 선교를 위해 하나님께 협력했다. 행인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해 중보하고 기도함으로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정신을 나타내었다. 그의 모본은 인류를 위해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표상이며 우리가 품어야 할 선교의 정신이다.
10월 22일(일) 친절의 은사
창세기 18:1~15을 읽어 보라. 손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에서 친절의 어떤 요소를 볼 수 있는가?
[창18:1~15]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답: 낯선 길손을 대접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달려나가서 초청하였다. 그리고 최고의 대접을 준비하여 대접하였다.
아브라함은 한낮의 불더위 속에서 장막 입구에 앉아 있었다. 이것은 이례적인 행동이다. 태양이 정점에 도달하는 여름의 그 시간대에는 누구나 그늘과 신선한 바람을 찾는다. 어쩌면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사람을 돕기 위해 더위를 견디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는 세 명의 여행자를 보았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낯선 이들을 환대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본문에서 그가 장막 입구에서 낯선 이들을 향해 달려갔다는 점은 우리가 주목할만하다. 그는 길에 지친 여행자들이 자신에게 오기 전에 그들을 맞으러 나갔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창 18:4, 5).
아브라함은 이교와 우상 숭배, 다신교로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는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아브라함이 그 사명을 수행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저 멀리 지평선에 낯선 이들이 등장한 바로 그 순간 그들을 환대하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대가족은 천 명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많은 사람이 가장이었다. 그 중에는 이교로부터 새로 개종한 사람도 많았다. 이런 가족의 지도자로서는 견실한 인물이 필요하였다. 약하고 흔들리는 태도는 적합하지 않았다 … 아브라함의 감화는 그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미쳤다. 그가 장막을 쳤던 곳에는 어디에나 그 옆에 희생을 드리고 예배하기 위한 제단이 쌓아졌다. 장막을 옮기면서도 제단은 남겨 두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종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을 배운 많은 가나안 사람들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그 제단에 발을 멈추고 여호와께 희생을 드렸다”(교육, 187).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교를 위해 부르셨으며,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이 여가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복이 되고 그의 씨를 통해 세상에 복을 주기 위한 것임을 이해했다.
<교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부름받은 것을 처음부터 잘 알았다. 그는 부르신 곳에서 친절과 돌봄으로 세상에 복을 나누는 삶을 실천했다.
<부가설명>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무의식 중에 우리가 사는 현재 환경으로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브라함 시대 인구는 아주 적었다. 그래서 동네가 서로 가까이 있지 않고 드문드문 있었을 것이다. 한 동네를 지나고 다음 동네를 만나려면 꽤 멀리 걸어야 했을 것이다. 점심 때가 되었을 때 멀리 오늘 사람을 봤을 때 아브라함의 마을을 지나면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 안에 다음 마을까지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아브라함은 평소에 식사 때가 가까울 때 그의 마을을 지나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런 그의 생활 습관이 그날도 세 나그네를 봤을 때 그의 마을을 지나면 점심 식사 때를 놓칠 것을 염려하여 친절을 베풀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여호와 하나님 일행을 대접한 것이다. 히브리서는 이 사건을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13:1,2)라고 기록했다. 오늘날은 함부로 손님 대접하는 것도 어려운 세상이다. 딤후 3:1~6의 상태가 문자대로 이루어진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접대할만한 손들을 접대하는 것은 할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10월 23일(월) 모든 사람을 사랑한 아브라함
창세기 18:16~33을 읽어 보라. 아브라함은 부족, 인종, 민족을 구별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향한 위대한 사랑의 특성을 어떻게 나타냈습니까?
[창18:16~33]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답: 아브라함은 소돔 사람들의 용서를 위하여 간청하였다.
창세기 18장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두 번째 특성은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이것은 우리 각자에게 큰 교훈이 된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가치관과는 거리가 먼 죄인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인종, 성별, 언어, 종교의 구분 없는 모두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 도성을 멸망시키기로 하셨음을 계시하셨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 18:20, 21).
이에 아브라함은 큰 겸손과 경외심 가운데 하나님께 간구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
사랑이 넘치는 아브라함은 의인만 아니라 이 도성에 있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바랐다. 물론 아브라함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패역하고 사악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소돔 사람들과 그들의 행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겠는가? 롯과 그 집 밖에 있던 폭도들의 추잡한 이야기(창 19:1~11)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매우 사악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호소했다. 그는 사람이 회개하면 언제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회개할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랐다.
그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던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간구했다. 아브라함은 죄인들에 대한 큰 사랑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에게 생명이 있는 한 구원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훈>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해서도 중보했다. 그의 가치관과 동떨어진 사람들일지라도 그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고 생명이 있는 한 구원의 희망이 있음을 알았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도록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요일5:14~16).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는 사람을 위하여는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다.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어떤 것인지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을 따라 요한일서를 자세히 읽으면 사망에 이르는 죄는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요한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을 하나의 진리의 발출자로 여기고 가현설을 주장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은 그분이 구주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확실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사람도 성령님 감동으로 마음이 변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바르게 깨닫고 받아들이도록 기도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이웃과 친지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길인 것을 깨닫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와 사회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10월 24일(화) 아브라함의 기도의 정신
창세기 18:23~32과 야고보서 5:16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중보기도의 힘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창18:23~32]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약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답: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조건에 맞으면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보증하셨다.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의 대화는 중보기도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표상이다. 이 장에서 그는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중보하는 사람으로 서 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대신하여 그들을 위해 간구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아버지 앞에 서신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표상으로서 행동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선교는 이러한 기도의 모본을 따를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주변의 다른 도성의 주민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기도는 간절하고 진실했다. 아브라함은 이미 소돔과 고모라의 왕을 노략했던 몇몇 왕들과 싸웠었다. 그 전쟁에서 아브라함이 승리한 후 소돔의 왕 베라는 멜기세덱과 함께 아브라함을 만나러 왔다. 베라는 자기 백성들만큼은 고향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창 14:21). 이것은 그의 백성에 대한 이 왕의 사랑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의 성품의 가장 큰 특징이 사랑이었기 때문에 그는 소돔과 고모라의 왕들을 사랑했고, 그들과 그 백성을 위해 기도했다. "멸망하는 영혼에 대한 사랑이 아브라함의 기도에 힘을 불어넣었다"(부조와 선지자, 140).
아브라함은 기도할 때 겸손과 인내를 나타냈다. 의로운 사람 50명이 살고 있다면 그 도시를 구원해 달라는 첫 번째 요청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자 그는 중보기도를 계속했다.
기도, 특별히 중보기도 없이 우리의 선교는 성공할 수 없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설교를 하거나 성경 공부를 한 후, 우리는 만났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을 위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신다. 친구나 지인을 회심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말이나 유창함이 아니라 성령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참여하는 모든 사역에서 각 사람을 위해 개인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교훈> 멸망하는 영혼을 위한 아브라함의 기도는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님의 표상이다. 선교는 유창한 설교나 다른 것이 아닌 이런 마음의 기도에서 시작된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데 주께서 이루신 희생과 부활을 조건으로 기도하신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 우리도 같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간구해야 할 것이다. 주님은 만민을 구워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다. 문제는 사탄의 영혼불멸설이다. 이것을 믿고 있으면 생명의 부활이 크게 소망이 될 필요가 없다. 죽으면 불멸의 영혼이 천국에 가서 행복한 중에 영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은 예수님이 구주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영혼불멸설을 믿거나 가현설을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구원의 자리에서 멀리 떠났고 적그리스도의 자리에 선 것이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요이 7).
10월 25일(수) 아브라함의 선교
창세기 19:1~29을 읽어 보라. 아브라함의 돌봄, 사랑, 기도의 정신의 결과는 무엇인가?
[창19:1~29]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13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15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18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19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20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21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답: 롯이 그것을 배웠고 롯도 아브라함처럼 손님 접대를 잘했고 멸망의 날에 생명을 보존하였다.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창 19:1)었다는 본문은 소돔 성에서 롯의 위치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성문에 앉는 것은 관리, 재판관, 왕이 가진 특권이었기에(삼하 19:8, 렘 38:7, 룻 4:1), 롯은 그 도시에서 중요한 인물, 즉 공직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9장은 18장의 아브라함과 천사들의 이야기와 거의 유사하다. 아브라함과 롯은 각각 성문이나 입구에 앉아 있었고(창 18:1, 창 19:1), 나그네를 초대하여 자신들의 거처에서 쉬게 했으며(창 18:3, 4, 창 19:2), 방문객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다(창 18:4~8, 창 19:3). 롯은 결점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좋은 몇 가지 자질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 19:24, 25).
그 당시 소돔과 고모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수많은 사람 중에서 도시를 빠져나온 것은 네 명이었고 구원 받은 것은 세 명이었다. 홍수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
소돔에 살던 소수의 주민만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사역에서도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구원 계획에 참여하기를 원하지만, 각자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다. 우리의 임무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택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교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를 도우시지만, 그분은 결코 개인의 의지에 거슬러서 일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선교를 위해 어떤 일을 하거나, 아무리 많이 기도하더라도 구원은 결국 각 개인의 선택과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교훈>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마음을 다한다 해도 모두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성령께서 도우시지만 강제하지 않으시기에 구원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을 구원하도록 예정하셨다.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들어오가 어떤 사람은 들어오지 않도록 미리 정한 것이 아니다. 미리 정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이다(엡1:4,5).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2:4). 예정된 사람만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세상 신이 사람들을 미혹해서 구원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도록 혼신의 노력을 한다(고후4:4). 그러므로 전도는 세상 신과 싸움이다. 성령께서 함께하지 않으면 결코 진리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구원의 복음에 들어오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사람든 성령님의 손에 들린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랑할 것이 못 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의 역사를 간구할 뿐이다. 그러면 성령께서 일하신다. 그러므로 전도하다가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10월 26일(목)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창세기 12:1~9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앞길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창12:1~9]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답: 사람의 안목으로 개척해나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바를 알지 못해도 순종했다.
아브라함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함께한 아브라함의 모든 경험은 이러한 순종으로 특징 지어진다.
부르심: 아브라함은 하늘로부터 도전적인 부르심을 받았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하늘에서 들려오는 부르심을 들었을 때 그것을 환청이라고 생각하여 그 음성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가고 싶지 않습니다.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같은 말을 하며 그 기별을 거절할 수도 있었다.
“내가 네게 보여줄 땅”이라니, 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가 그 부름을 받아들인 것은 매우 감동적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맡기고 아버지의 집과 고향을 떠났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창 12:4).
땅의 선택: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의 혈육과 싸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고, 하나님은 다시 복을 주셨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 15).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두 도시의 심판을 알려 주셨을 때 아브라함은 사랑으로 충만하여 그 두 도시를 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두 도시에는 의인 열 명이 없었기에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이 두 도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또한 받아들였다. 아브라함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주님은 아브라함을 사용하실 수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함께해요: 우리의 지역에서 복음을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전파하는데 장애물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를 도우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시작해요: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연락해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십시오.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보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교훈> 아브라함은 삶에 중요한 일들이 있을 때 항상 순종하는 자세를 가졌다.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떤 상황에서도 순종했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것에는 두말없이 따른다. 그것도 순종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핑계와 변명을 만든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은 사람의 지혜로 봐서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은 것도 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적을 행하실 때 겨우 떡 다섯때와 물고기 두바리 반찬을 보고 장정만 오천명이 되는 사람을 떼를 지어 앉게 하고 그 떡과 물고기를 나누라고 할 때 그것이 합리적인가? 사람들은 상식도 아니고 합리성도 없는데 무언가를 이루면 기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다. 전도는 기적이다. 전도받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최대의 기적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늘에서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99명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적의 산물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거듭났다면 그 자체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이런 기쁨을 더하시려고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전도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자. 주님 도와주소서.
10월 2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멸망하는 영혼에 대한 사랑이 아브라함의 기도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는 저 부패한 도시의 죄는 미워하였으나 죄인들은 구원 얻게 되기를 원하였다 … 우리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 죄인에 대해서는 동정과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우리 주위에는 소돔에 임했던 것과 같은 무섭고도 절망적인 파멸로 달려가는 영혼들이 많이 있다. 날마다 누군가의 은혜의 시기는 끝나고 있다. 시간마다 누군가는 자비가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죄인으로 이 무서운 운명에서 피하도록 하는 경고와 간청의 음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를 죽음에서 건져내려고 뻗친 손은 어디에 있는가? 겸비와 끈기 있는 믿음을 가지고 죄인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아브라함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자신이 죄인을 위한 크신 중재자이시다.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값을 치르신 그분은 인간의 영혼의 가치를 아신다. 티 없이 순결한 상태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악에 대한 적개심과 함께 그리스도께서는 무한한 선만이 품을 수 있는 사랑을 죄인에게 나타내셨다. 온 세상의 죄의 무거운 짐을 몸소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고통 중에서도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능욕하는 자들과 살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다”(부조와 선지자, 140).
“아브라함은 유력한 군주요, 현명하고 유능한 어른으로서 부근 민족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의 감화는 저절로 이웃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다. 그의 생활과 품성은 우상 숭배자들과 현저하게 달라 참된 신앙을 위하여 큰 감화를 끼쳤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심은 확고 부동한 동시에 그의 친절과 자비심은 사람들의 신임과 우의를 두텁게 하였고 그의 꾸밈없는 위대함은 존경과 영예를 차지하였다”(부조와 선지자, 133).
토의를 위한 질문
1. 성경에서 선교에 대한 소명을 완수한 다른 예를 찾아보라. 침례 요한은 어떠한가? 그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답: 침례요한은 자기에게 맡긴 사명을 다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의 죽음을 허락하신 것은 그가 자기 사명을 다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2. 창세기 19:30~36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소돔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창19:30~36]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5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6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답: 그들이 소돔에서 죄악적 영향을 대단히 받아서 도덕적 삶이 무너진 것을 드러낸다.
3. 아브라함의 예에서 선교와 그 방법에 관해 어떤 다른 교훈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답: 생활로 주위에 감화를 끼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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