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7. 악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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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5-02-10 07:46 조회1,013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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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안교소그룹의 TMI나눔 :
▣연구 범위 ∥ 욥 30:26; 마 27:46; 욥 38:1-12; 시 73; 창 2:16, 17; 계 21:3, 4
▣기억절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핵심 ∥ 선한 하나님이 존재하는 세상에 악이 함께 있다는 것은 당혹스러운 문제이다. 악에 대해서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사랑의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남용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의 피를 흘리셨고, 궁극적인 심판을 통해 모든 악을 해결하실 것이기에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핵심어 : 사랑, 자유의지, 심판
▣도입 질문 :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
▣요일별 고찰
일.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욥 30:26, 렘 12:1, 13:22, 말 2:17, 시 10:1은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가?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의인이 고통을 당하게 내버려두고, 악인의 길은 형통하게 하는가? 하나님이 세상 일에 무관심하신가? 계시기는 하는 것인가?
이런 절망적인 의문은 세상 사람들은 물론 기독교인들도 자주 드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이러한 탄식을 비판하기 보다는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부르짖으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세상의 모든 악이 십자가의 예수님께 쏟아졌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탄식을 이해하신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도 악에 의해 고통당하셨으며, 이 놀라운 사실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강력하게 부각된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도 희망이 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통해 악의 근원인 사탄을 물리쳤고, 결국에는 악을 완전히 없애실 것이다. 예수께서 이 부분을 시편 22:1에서 인용하셨고, 이후의 시편 22편은 승리로 마쳐진다.」
월.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욥 38:1~12, 42:3이 가르치는 것은?
⇒답을 모를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라
욥은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하루 아침에 잃고 그 자신도 악창에 걸려 견딜 수 없는 시련의 고통 앞에서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하나님과 친구들로 더불어 쟁변했다. 하나님께 질문을 던져도 응답이 없고 친구들의 답은 너무나 공허하게 들렸고 오히려 그를 더욱 괴롭게 할 뿐이었다. 그는 의로운 삶이 아무런 유익이 없다거나 하나님이 무죄한 자를 괴롭히신다며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는 발언을 했다.
그런 욥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욥 38:1, 2). 한 역본은 이렇게 표현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무지하고 허튼 말로 나의 뜻을 흐려놓는 자가 누구냐”(욥 38:2, 쉬운말). 하나님은 또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욥 38:4)하라고 말씀하신다.」
악이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와 같은 문제에 대해 아무리 연구할지라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우리는 의문 가운데서도 그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화. <회의적 유신론자> 시 73편은 불의한 현상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찾았는가?
⇒성소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에 대해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다 이해할 수 없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있다면 그분은 더 이상 신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가 아는 것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인식에 기초하여 악의 문제를 이해하려는 방법을 “회의적 유신론”이라고 한다. 회의적 유신론은 하나님의 행동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믿지만, 우리는 그 뜻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회의적 유신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s://en.wikipedia.org
/wiki/Skeptical_theism를 참고)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는데 필요한 것은 모두 깨달을 수 있도록 성경에 답을 주셨다. 그리고 궁극적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그것을 성소에서 깨달았다.
「시편 기자는... 주위를 둘러보고 악인들이 번영하는 것을 보았다. 모든 것이 불의하고 불공평해 보였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조차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던 중 그는 성소를 바라보게 되었다.
성소는 악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한 축을 제공하는데, 당신의 때에 정의와 심판을 행하실 의로운 심판자가 계신 것을 인식하게 한다.」
수. <자유의지론> 창 2:16~17에서 악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자유의지가 악을 가능케 함
악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또다른 방법론은 자유의지론이다. 자유의지는 스스로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하나님이 선한 뜻으로 피조물에게 주신 고유한 능력이다. 악이란 피조물이 그 자유의지를 오남용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악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C. S. 루이스(Lewis)는 이렇게 기록했다. “악뿐 아니라 값진 사랑이나 선이나 기쁨도 자유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로봇(기계처럼 작동하는 피조물)의 세상은 별로 창조할 가치가 없다. 하나님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주시려는 행복은 사랑과 기쁨의 무아경 속에서 자유롭게 자원하여 그분과 연합하고 또 서로 간의 연합하는 행복이다. ...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자유로워야 한다”(순전한 기독교: 뉴욕, MacMillan, 1960, 52).」
자유의지가 없었다면 하나님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자유롭게) 먹”으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선악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할 필요도 없다. 아예 먹지 못하게 막아놓았을 것이다.
목. <사랑과 악> 자유의지를 부여한 결과 죄를 짓게 되었고 죄로 인해서 예수님이 희생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자유의지를 주실만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반면, 자유의지가 없다면 사랑할 수도 없다. 다만 로봇처럼 명령에 움직일 뿐이다. 그곳에는 기쁨도 행복도 있을 수 없다.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다. 음울한 그늘이 밝아지고 세상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탄의 기만적 세력이 깨어져야 했다. 이것은 힘으로는 할 수 없었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과는 배치된다. 하나님은 사랑의 봉사만을 원하시는데 사랑은 명령으로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힘이나 권위로 얻을 수 없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일깨워진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이 사탄의 성품과 대조되어 드러나야 한다”(시대의 소망, 22).」
☆세상의 모든 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롬 8:18, 계 21:3~4)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씻어주심
세상에서는 죄로 인해서 고통과 슬픔, 억울함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마침내 모든 고통과 눈물의 근원을 제거하심으로 온전한 기쁨과 평화의 세상을 주실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를 흘리심은 이 약속에 대한 확고한 보증이다.
▣적용 :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다음 한 주간 무엇을 해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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