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최고의 충성을 그리스도에게 -(핵심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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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3-09-04 23:48 조회2,19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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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최고(最高)의 충성(忠誠)을 그리스도에게
(9월 9일 (안) / 일몰: 오후 6시 50분)
<기억절(記憶節)>
“상전(上典)들과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威脅)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上典)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外貌)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엡 6:9).
<서언(緖言)>
인간세계에는 권력(權力)과 힘과 자본(資本)과 소유(所有) 등등(等等)으로 강자(强者)와 약자(弱者)로 구분(區分)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배자(支配者)가 보는 관점(觀點)과 피지배자(被支配者)가 보는 관점의 차이(差異)는 엄청나며 차별(差別)과 배척(排斥)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결과들을 초래(招來)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별(差別)이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양자(兩者) 모두에게 올바른 관계의 원칙을 제시(提示)해 주신다. 그 원칙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 모두에게 참되고 동등(同等)하게 대하신 "예수님"을 본(本)받을 때 최고(最高)로 최선(最善)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제시(提示)하고 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께 최고의 충성(忠誠)을 다할 때 차별(差別)하지 않으시는 참 주인 앞에서 모든 인류는 함께 섬기는 동역자(同役者)요, 형제(兄弟), 자매(姉妹)가 된다.
(09월 03일) (日) <자녀(子女)들을 위(爲)한 권면(勸勉)>
(Q)~바울은 자녀(子女)들에게 부모(父母)에 대하여 어떤 조언(助言)을 하고 있으며, 불완전(不完全)한 부모님이지만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또한, 성경에서 부모님에 대하여 공경(恭敬)하라는 말씀의 의미(意味)는? (엡 6:1~3, 마 18:1~5, 10, 막 10:13~16 참조).
(A)~부모공경(父母恭敬)은 하나님의 인간이 번성(繁盛)하기 위한 계획(計劃)임을 증거한다. 부모를 대할 때 하나님 대하듯 정중(鄭重)한 마음으로 대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공경(恭敬)하다”(히브리어, “카배드”)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한 자세를 묘사(描寫)하는 데 자주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恭敬)하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포(宣布)하신 하나님의 법(法)이요 명령(命令)입니다. 법(法)은 반드시 지켜야만 되고, 지키지 않으면 여지없이 범법자(犯法者)가 됩니다. 그러므로 불효(不孝)는 불법(不法)입니다. “공경하라”는 히브리어로 ‘무겁다, 존귀(尊貴)하다’라는 뜻을 가진 ‘카베드’의 피엘(강조) 형으로, ‘무겁게 대하다’라는 의미에서 하나님께나 사람(특히 부모님)에게 쓰일 때는 ‘존경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해 가지는 자세를 뜻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 (잠 3:9, 사 43:23). 이렇듯 부모님을 대할 때 하나님께 하듯이 극진(極盡)히 섬기라는 뜻입니다. (참고-골 3:23). 하나님을 대신하여 생명을 주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곧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공경(父母恭敬)은 그리스도인의 의무(義務)이다.
(09월 04일) (月) <부모(父母)를 위(爲)한 권면(勸勉)>
(Q)~어떻게 하면 자녀(子女)를 오직 주님(主任)의 교훈(敎訓)과 훈계(訓戒)로 자녀를 양육(養育)하겠습니까? (갈 4:19)
(A)~(엡6:4) 설교(說敎)보다 더 큰 능력 (골 3:20, 21)
부모(父母)들이여, 하나님이 그대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그대들의 가정(家庭)을 하늘에 있는 가정의 표본(標本)이 되게 하는 것이다. 자녀들을 잘 보호(保護)하라. 그들에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하라.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들은 사랑의 황금(黃金) 사슬로 연결되어야 한다. 잘 정돈(整頓)되고 잘 훈련된 한 가정은 세상에 있는 모든 설교(說敎)보다 기독교(基督敎)의 능력을 나타내는 데에 더욱 큰 힘이 있다. 자녀들이 부모들을 어떻게 모방(模倣)하는가를 실제로 깨달으면 부모들은 모든 말과 행동을 삼갈 것이다. (원고 31, 1901). (엡 6:4, 화잇주석)
(09월 05일) (火) <바울 시대(時代)의 노예제도(奴隸制度)>
(Q)~주인과 종에 관한 권면은 그 시대의 어떤 상황을 염두에 둔 것입니까? (엡 6:5~9, 골 3:22–4:1, 고전 7:20–24, 딤전 6:1, 2, 벧전 2:18~25).
(A)~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 시대의 노예제도(奴隸制度)를 염두(念頭)에 두고 교회 안에 공존(共存)하는 주인과 노예(奴隸) 사이의 현실(現實)에 대한 바울의 권면(勸勉)은 성도(聖徒) 개인의 변화(變化)를 넘어 편협(偏狹)되어있는 사회(社會)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육체(肉體)의 상전(上典)’과 ‘그리스도’를 대비(對比)함으로 종들이 ‘그리스도’께 복종(服從)하는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을 섬기도록 권면(勸勉)한다. ‘두려워하고 떨며’는 늘 실수(失手)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며(Scott), ‘성실(誠實)한 마음으로’는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오직 한 마음으로 섬기는 것을 가리킨다(Wood). 바울이 이런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비록 육체의 상전(上典)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아시고 꿰뚫어 보시는 그리스도는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聖徒)는 늘 그리스도의 주권(主權)을 인정하고 복종(服從)하듯이 육체의 상전(上典)을 섬겨야 한다.
(09월 06일) (水) <그리스도의 종>
(Q)~노예제도(奴隸制度)라는 끔찍한 행위를 공개적(公開的)으로 정죄(定罪)하지 않고 있지만, 종들에 대한 권면(勸勉)을 통해 “육체(肉體)의 상전(上典)”이라는 대상(對象)에서 그 대상을 대체(代替)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즉 “육체의 상전”을 어떤 상전(上典)으로 대체하라는 말씀이며 획기적(劃期的) 전환(轉換)을 권면할 수 있는 근거(根據)는 무엇입니까? (엡 6:5~8)
(A)~바울은 “육체(肉體)의 상전(上典)”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노예제도(奴隸制度)”의 종들에게 진정한 충성(忠誠)의 대상(對象)인 그리스도와 그가 주실 상급(賞給)을 바라보며 마음에서 우러난 봉사(奉仕)를 하도록 요구(要求)한다. 이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봉사의 동기(動機)는 감독자(監督者)가 볼 때만 일하고, 또 최소한(最小限)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인간의 표준(標準)만을 만족(滿足)시키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종들은 자신들을 단지 인간적(人間的)인 주인을 만족(滿足)시키는 자들로 볼지 모르나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동기(動機)로는 무가치(無價値)하기 때문이다.
(09월 07일) (木) <종이 된 주인(主人)>
(Q)~ “종과 주인”이 동일(同一)한 심판대(審判臺) 앞에 선다는 말씀과, “종이 된 주인(主人)”이란 말씀의 의미(意味)는 무엇이며 바울은 주인들에게 참 주인(主人)인 그리스도의 어떤 면을 부각(浮刻)하여 호소(呼訴)하였습니까? (엡 6:5~9)
(A)~바울은 심판대(審判臺)에서 “종과 주인”이 그리스도 앞에서 동등(同等)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을 상상(想像)하면서 주인들에 대한 권면으로 전환(轉換)한다. (고후 5:10, 골 3:24, 25 비교). 즉 “종과 주인”이 동일한 심판대(審判臺) 앞에 선다는 사실은 차별(差別)이 없으신 진정한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고 종들에 대한 일반적인 악(惡)한 관행(慣行)을 중단(中斷)하게 한다. 또한, 바울은 종에게 하나님의 눈이 굽어보고 있음을 알고, 양심적(良心的)이고도 충성(忠誠)되게 행동하라고 하면서, 상전(上典)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의 권익(權益)이 상전(上典)의 마음속에 우선순위(優先順位)가 될 것이며, 종을 올바로 대우(待遇)함으로 상전(上典)은 하나님도 섬기게 될 것이다. (참조 골 4:1).
상전(上典)들은 세상에서 획득(獲得)한 사회적(社會的) 지위(地位)로 인해 하나님에게도 특별한 대상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바울은 상전(上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전혀 외모(外貌)로 취(取)하지 않으심을 지적(指摘)함으로 상전(上典)들로 하여금 자만(自慢)에 빠지지 않고 경각심(警覺心)을 갖도록 권면(勸勉)하고 있다. (엡 6:9, 만나주석)
*************<말미부록(末尾附錄)>******************
1.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즉 "비록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자녀에 대한 권세를 주셨으나 너희는 그 권위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 특수한 방법을 통하여 자녀들이 자신의 분신임을 기억하고 넓은 사랑과 애정으로 다스려야 한다. 자녀들에게 회를 내지 말 것이며 까닭 없이 혹독히 대하지 말고 가혹한 벌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너희가 그들을 훈계할 때나 그들을 가르치고 꾸중할 때는 그들을 노엽게 하지 않는 한에서 그리하도록 하라. 이 모든 경우에 너희는 그들을 신중하고 이해심을 가지고 대할 것이며 그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2.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하였다.
즉 부모들은 적절하며 성심성의를 다한 지도로써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를 깨닫게 하고 또 이 지도를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어야 한다. "자녀들을 훌륭히 양육하도록 하라"는 뜻의 말씀이다. 자녀들은 기르는 데 성의를 다한다는 것은 부모들의 가장 큰 의무이다. "짐승이 하는 것처럼 이 자녀에게 먹을 것이나 주어 기르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모는 자녀를 교양과 훈계로써 이성적인 본성에 맞는 방법으로 양육하여야 한다. 또한, 자녀를 교양과 훈계로써 하나의 인간으로 키울 뿐 아니라, 주님의 명령대로 하나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키워야 한다. 자녀들에게 신앙적 교육을 베풀어야 한다.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그들을 교훈해야 하며 하나님께로 향한 모든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자녀들을 깨우쳐 주고 격려해야 한다.
Ⅲ. 종들은 의무. 종이 지켜야 할 의무는 "순종"이라는 한마디의 말로 요약되어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 말씀이 대단히 필요하기나 한 듯이 이 문제를 상세히 다루었다. 본문의 종들은 일반적으로 노예를 가르치고 있다. 사회에서는 예속이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에게는 노예가 되었다 할지라도 주님의 자유인이 될 수는 있는 것이다. 본문에 "육체의 성전에게"라고 말씀한 것은 "그들이 네 육신을 명할 수 있으나, 네 영혼과 양심에 명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혼과 양심을 다스리신다."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 데 뜻이 있었다. 바울은 종들에게 다음의 것을 권고하였다.
1. "두려워하고 떨며" 순종하라고 하였다.
종들은 자기를 다스리는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 그들을 노하게 할까 봐 두려워해야 하고 주인의 분과 노를 입을까 조심해야 한다.
2. 종들은 신실함으로 순종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하라고 하였다. 즉 속으로 불순종하면서 겉으로 순종하는 척하지 말고 신실함으로 그들에게 순종하라는 말이다.
3. 그들은 주인에게 행하는 봉사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께 하듯 하며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아야 한다."(5~7절).
즉 인간에게 하듯이 또는 의무적으로 겨우 하지 말라는 뜻이다. 종들이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의무를 수행할 때에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하겠고, 그렇게 하면 그들의 복종이 자랑스럽게 여겨질 것이고 또 기꺼이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 대하는 마음으로 지상의 주인에게 봉사할 때 주인은 그를 흡족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보고 계시며 그가 자기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며, 주님의 권위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자기의 의무를 신실하고 양심적으로 수행하도록 명령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실이다. (엡 6:1~3, 매튜헨리)
4. 종들은 주인을 "눈 가름으로"(6절) 섬기지 말아야 한다.
즉 주인이 그들을 보고 있을 때만 섬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종들은 마땅히 자기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주인이 부재중일지라도 양심적으로 행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기쁘게 하는 것과 그에게 인정받는 것은 나중에도 없는 듯 다만 "인간을 기쁘게 하려는 자"처럼 행동을 하여서는 안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변함없는 마음을 품을 때 인간들은 어떤 삶의 정황 가운데서도 신실하고 성실하게 될 것을 기억하자.
5. 그들이 일할 때는 기쁘게 한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라고 말씀하였다. 즉 하나님이 그들에게 바라듯이 주인을 섬기며, 마지못하여서 하거나, 불평으로 하지 말며 다만 주인과 주인의 관심사에 대해 사랑의 마음을 갖고 섬기라는 말이다. 또한 "선한 뜻을 갖고 섬기라"라고 하였다(7절). 이러한 태도는 주인을 기쁘게 함으로 자신도 일에 쉽게 임할 수 있게 해 주며, 주 그리스도께 용납받게도 되는 것이다. 종들은 그들의 주인에게 "선한 뜻을" 갖고 대해야 할 것이며 또한 의무를 행함에서는 선한 뜻을 품고 임해야 한다. 섬김은 비록 그 대상이 불의로운 주인이라고 할지라도 또 하나님께 대한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여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주어진 섬김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게 되어야 함을 기억하자. (엡 6:1~3, 매튜헨리)
6. 신실한 종들은 자기의 의무를 두려움으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에 보상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즉 그 선이 그 자체만으로 볼 때는 아무리 빈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 알기 때문이다"(8절). 다시 말해서 비록 세상에서의 주인이 그에게 보상하는 대신 그를 무시하거나 조롱하더라도 그는 반드시 주 그리스도로부터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그가 종이거나 자유 하는 자나, 불쌍한 노예이거나, 자유민이거나, 주인이거나 간에 앞에서 행한 대로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현재 인간의 신분의 차이를 중시하시지 않는다. 또한, 그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결코 그것을 구별하지도 않으실 것이다. 혹자는 "왕이나 위정자나, 목회자는 이 세상에서 그가 행한 임무에 따라서 하늘나라에서도 틀림없이 보상을 받을 것이나 나 같은 보잘것없는 종이 하나님의 은총을 어찌 받을 수 있겠는가"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사명감에서 또 하나님을 바라보고 수행할 가장 적은 일에 대하여도 틀림없이 보상하신다. 종들도 자기의 의무에 대하여 용기를 갖도록 하는 가장 적절한 말이 이에서 더 무엇이 있겠는가? (엡 6:1~3, 매튜헨리)
⑺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도록 권고하십니다. 그분은 십계명 (출애굽기 20:12)과 신약 성경에 또다시 그 명령을 포함할 만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귀중하게 생각하십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에베소서 6:1-3).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장수를 보상으로 약속받은 유일한 명령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은 복을 받습니다. (예레미야 35:18-19). 반대로 "타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마지막 날에 경건치 못한 사람들은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로마서 1:30; 디모데후서 3:2).
⑻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출애굽기 20:12).
1. 부모를 대할 때 하나님 대하듯 정중한 마음으로 대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공경하다”(히브리어, “카배드”)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의 하나님을 향한 자세를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⑼
출애굽기 20:12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신명기 5:16에서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진정으로 공경하는 사람은 살인죄(제6계명)를 범할 수 없습니다. 또 부모를 진정으로 공경하는 사람은 간음죄(제7계명)를 지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또 부모를 진정으로 공경하는 사람은 도적질(제8계명)이나 거짓 증거(제9계명)나 탐심의 죄(제10계명)를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⑽
“공경(恭敬)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포하신 하나님의 법이요 명령입니다. 법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고, 지키지 않으면 여지없이 범법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불효는 불법입니다. “공경하라”라는 히브리어로 ‘무겁다, 존귀하다’라는 뜻을 가진 ‘카베드’의 피엘(강조) 형으로, ‘무겁게 대하다’라는 의미에서 하나님께나 사람(특히 부모님)에게 쓰일 때는 ‘존경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해 가지는 자세를 뜻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잠 3:9, 사 43:23). 이렇듯 부모님을 대할 때 하나님께 하듯이 극진히 섬기라는 뜻입니다(참고-골 3:23). 하나님을 대신하여 생명을 주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곧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⑾
(엡6:4) 설교(說敎)보다 더 큰 능력 (골 3:20, 21)
부모들이여, 하나님이 그대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그대들의 가정을 하늘에 있는 가정의 표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자녀들을 잘 보호하라. 그들에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하라.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들은 사랑의 황금 사슬로 연결되어야 한다. 잘 정돈되고 잘 훈련된 한 가정은 세상에 있는 모든 설교보다 기독교의 능력을 나타내는 데에 더욱 큰 힘이 있다. 자녀들이 부모들을 어떻게 모방하는가를 실제로 깨달으면 부모들은 모든 말과 행동을 삼갈 것이다. (원고 31, 1901). (엡 6:4, 화잇주석)
⑿
(교회증언 1권 510)
젊은이들은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무엇을 하든지 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나는, 젊은이들 중 불과 소수의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이며,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생애를 모본에 일치시키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배워야 할 것이다. 20명 중 한 사람의 젊은이도 주님께서 당신의 가족, 곧 하늘 왕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시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세상에서의 분리를 생활 속에서 체험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 6:17, 18). (1T 510.1)
⒀
(고전 7:24 하나님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훌륭한 점은 신자가 인생 여정을 홀로 걸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자는 지상에 거하는 동안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져서, 하늘의 천사들은 물론 주님과도 직접 교분을 쌓게 된다(참조 마 28:20; 요 14:16~18, 21; 15:7). 감당해야 할 경험이 어떤 것이더라도 그는 자신이 홀로 남겨진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와 마음의 아픔을 다 알고 이해하는 분과 함께 있다는 지식으로 위로받는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난처한 상황에서라도 아무 도움 없이 남겨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주어진다(참조 사 43:2; 히 13:5). 신자가 이를 깨닫는다면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이생에서 자기가 처한 형편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신자가 예수와 교제한 결과 자신의 일을 근본적으로 주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여기며, 자신의 모든 소유를 그분을 더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을 배우게 되면, 비신자는 알지 못하는 마음의 화평과 만족을 누리게 될 것이다(참조 사 26:3; 요 14:27). (고전 7:20~24, 재림교주석)
⒁
믿는 노예는 지상의 주인을 섬기는 동시에 하나님도 섬길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참조 고전 7:22). 그는 비신자들에게 기독교의 정신은 불순종이라는 인상을 조장함으로 교회에 불명예를 끼치지 말아야만 한다. 누구나 자신이 접촉하는 모든 이에게 예수를 증거함으로 어느 때에든지 예수의 믿음을 따라 생활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 진리에 관한 지식을 전파하게 된다. (참조 정로의 계단, 81, 82). (고전 7:20~24, 재림교주석)
⒂
사도는 종에게 하나님의 눈이 굽어보고 있음을 알고, 양심적이고도 충성되게 행동하라고 하면서, 상전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의 권익이 상전의 마음속에 우선순위가 될 것이며, 종을 올바로 대우함으로 상전은 하나님도 섬기게 될 것이다(참조 골 4:1 주석). 바울이 주로 노예제도를 다루고 있을지라도, 그가 말한 내용 모두를 현대 사회의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엡 6:9, 재림교주석)
<아멘>
<끝까지 정독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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