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에베소서 11. 최고의 충성을 그리스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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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3-09-03 22:37 조회2,513회 댓글0건첨부파일
- 23-3. 에베소서 11. 최고의 충성을 그리스도에게.hwp (192.0K) 36회 다운로드 DATE : 2023-09-03 22:37:59
본문
▣연구 범위 ∥ 엡 6:1~9, 막 10:13~16, 골 3:21, 벧전 2:18~25, 고후 5:10, 골 3:24, 25.
▣기억절 ∥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엡 6:9).
▣핵심 ∥ 그리스도인은 지위나 신분에 관계없이 주님께 최고의 충성을 바치며, 주님을 섬기듯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핵심어 : 주 안에서, 충성
▣도입 질문 : “충성”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는가?
⇒주님께 충성한다고 하면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우상에게 절하기를 거부하는 모습, 안식일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 등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번 주 교과는 지위나 신분 고하를 떠나 주님 안에서 서로를 대하는 것이 주님께 대한 충성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인류라는 관점에서 지난 주는 부부 관계의 재정립을, 이번 주는 상하 관계의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요일별 고찰
일. 자녀들은 부모에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엡 6:1~3, 마 18:1~5, 10, 막 10:13~16)
⇒주 안에서 공경함
여기서 자녀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자녀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며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주 안에서”라는 조건이 있다. 부모들은 자녀가 자신들의 요구에 당연히 순종해야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부모의 요구가 주님의 뜻과 어긋날 때는 그렇게 할 권리가 없고 자녀들도 순종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자녀들이나 부모들이나 모두 주님께 속한 독립된 영혼이며 자녀들도 육신의 부모 보다 더 큰 부모 되시는 주님께 더 순종하고 충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 고려장이 유행하던 때 한 사람이 늙으신 아버지를 지게에 져다가 산에 버리고 내려왔다. 그런데 함께 따라갔던 어린 아들이 지게를 다시 가져오는 것을 보고 왜 그걸 가져오느냐 물었다. 어린 아들은 나중에 자기도 아버지를 지게에 져다가 버릴려고 되가져온다고 했다. 이에 그 사람은 아버지를 다시 모셔다가 집에 몰래 숨기고 공양하였다. 자녀의 공경을 받으려고 하기 전에 부모는 자신이 먼저 부모님과 하나님을 바르게 섬겨야 한다.
본문으로 제시된 막 10장에서는, 어린 자녀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꾸짖는 제자들과 그들을 영접하는 예수님을 대조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어린 아이들이라도 무시하지 말고 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에 불과했고 스파르타에서는 그들의 생사여탈권이 부모에게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어린아이들은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하고,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는 주체적인 신앙인이요 제자로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든 다 큰 자녀든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주 안에서 부모님께 대한 순종에는 번영과 장수의 약속이 있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내세에서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 가운데의 자녀들에게 “주 안에서,” 즉 그리스도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호소한다(엡 5:22, 엡 6:4, 5, 7~9 비교). 바울은 우리에게 이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존중하고 예배의 능동적인 동반자로 받아들이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이 구절은 부모의 자녀 양육과 그리스도인 자녀 사역의 기초가 된다.
순종하라는 바울의 명령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부모의 명령이 “그리스도의 명령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순종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재림신도의 가정, 293).」
월.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가?(엡 6:4, 골 3:21)
⇒노엽게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부모가 자신의 권위만 내세워 자녀들에게 폭압적으로 복종을 강요한다면 자녀들은 억지로 굴복할 수는 있으나 그 마음에는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쌓여 결국은 부모에게 반항하거나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자라게 된다. 반면, 어떤 부모는 너무 자녀에게 끌려다니거나 모든 것을 허용해줌으로 방자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로 꼴짓고 있다. 이것은 부모로서 직무유기다. 이런 양육태도들은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아버지, 어머니여, 그대들은 가정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야 한다. 그대들은 순종을 요구하되 사나운 말로 하지 말고 친절하고 온유한 태도로 하라....” “가정에서 명랑하라. 거룩하지 못한 노기를 일으킬 말은 모두 억제하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엡 6:4)는 말씀이 하늘의 분부이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부모의 가혹함이나 억압 혹은 자식의 불순종을 인정하시는 말씀은 하나도 없다. 가정 생활과 나라의 정부에 있어서 하나님의 법도는 무한한 사랑의 가슴에서 흘러나온다”(새자녀 지도법, 259).」
화. 수. 종과 그 주인에게 주는 권면은 무엇인가?(엡 6:5~9, 골 3:22~4:1, 고전 7:20~24, 딤전 6:1, 2, 벧전 2:18~25).
⇒종은 그리스도께 하듯 주인을 섬기고, 주인은 종을 존중해야 한다.
여기서 종은 노예를 의미한다. 노예에게는 인권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예수님은 노예들을 위해서도 돌아가셨다. 따라서 하나님께는 자유자나 노예나 똑같이 가치있는 존재다. 또한 자유인이라도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러므로 종은 주인에게 그리스도를 섬기듯, 주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종이 되신 것처럼 종의 종이 되어 섬겨야 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으신 주님을 의식하여 진심으로 주인을 섬기고, 주인은 자기 보다 높으신 주님을 생각하며 종을 대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주님을 존경하듯 존중해야 한다.
「“그의 비전은 로마 제국의 노예 해방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견해는 법적인 노예 해방보다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됨으로 새롭게 창조된 형제애에 기초한 성도들의 교제에 관한 것이었다. ... 바울에게 사회 혁명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지역 차원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인 가정 교회와 가정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스콧 맥나이트, Scot McKnight,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 2017, 10, 11)」
목.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시는가?(엡 6:9)
⇒외모로 차별하지 않으심
외모란 겉으로 보이는 모습, 즉 신분이나 성, 빈부귀천을 말한다. 예수님은 그런 외적인 차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신다. 그리스도인도 그렇게 해야 한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이 사용한 많은 표현은 그리스도인 종들에게 특별히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아들로 입양됨(엡 1:5), 구속(엡 1:7), 상속(엡 1:11, 14, 엡 3:6),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음(엡 2:6), “동일한 시민,” “하나님의 권속”(엡 2:19, 엡 3:14, 15 비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엡 3:6, 엡 4:1~16)가 되는 것 등이다. 엡 6:5~9은 말하기(엡 4:25~32)와 성 윤리(엡 5:1~14)에 대한 권면을 포함하여 이 서신의 모든 가르침을 종과 주인 사이의 관계에 적용한다.」
▣적용, 결심
☆그리스도께 최고로 충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져야겠는가? 이번 주 교과를 통해서 결심한 것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