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나팔, 피, 구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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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09-10-17 20:18 조회6,440회 댓글0건본문
제4과 나팔, 피, 구름, 불
10월 24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43분)
기억절: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연구범위: 출 12:1~29, 민 9~10장, 마 26:36~43, 눅 22:15, 19~20, 고전 15:52.
안식일 오후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잡수실 때에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셨다. 그분께서 유월절 떡을 취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먹으라. 이는 내 몸이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잔을 취하사 "이것은 많은 사람의 죄를 없이하려고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다(마 26:26~29). 바울은 기록하기를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고 하였다.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인의 유월절이다. 그리고 새 언약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출된 것을 상기시켜 준다. 이번 주에 우리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제1주년 기념일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진 가운데 임재하시어 그들을 인도하신 것과, 특정한 때에 불었던 은나팔, 그리고 옛날 하나님의 백성이 처해 있었던 독특한 상황을 나타내 주는 몇 가지 사건들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비록 배경은 다르지만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유혹을 우리도 똑 같이 겪을 수 있으므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처한 시대와 상황에 맞는 교훈들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겠다.
핵심본문: 고전 5:7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여러 방법들을 배운다.
느끼기: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함으로 그분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행하기: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능력에 반응하여 믿음으로 전진한다.
교과 개요
I. 피, 불, 구름, 나팔로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
A. 애굽에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 내릴 때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의 피가 발린 문 뒤에 숨어야 했는데, 이 의식의 의미는 무엇인가?
B. 불기둥과 구름기둥과 나팔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함께 계시고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가시적인 표는 왜 중요했는가?
II. 하나님의 가시적 및 가청적 임재를 인식함
A. 유월절을 표상하는 성만찬 예식에 참여할 때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기념한다. 주님의 희생을 상징하는 이 예식은 왜 중요한가?
B. 매일의 삶 속에서 청각과 촉감과 시각, 그리고 그 외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인가?
III. 성령께서 감화를 따라 전진함
A. 하나님께서 나에게 안전지대에서 나와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하신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B.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셨던 경험은 무엇인가? 지금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요점: 영적인 유아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는 친히 돌보시고 인도하셨다. 그분께서는 나의 삶의 모든 성장 단계마다 말씀과 성령의 감화를 통해 다가오시며,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통해 인도하신다.
일요일(10월 18일) 나를 기념하여(민 9:1~5)
1. 민수기 9:1~5와 출애굽기 12:1~29을 읽으십시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어떤 영적 진리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까? 읽으면서 순종, 은혜, 구속, 믿음, 심판 등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민9:1-5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으로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게 하라 3 그 정기 곧 이 달 십사일 해질 때에 너희는 그것을 지키되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지킬지니라 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5 그들이 정월 십사일 해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다 좇아 행하였더라.
출12:1-29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4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면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로 양을 먹을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15 너희는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16 너희에게 첫날에도 성회요 제 칠 일에도 성회가 되리니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인의 식물만 너희가 갖출 것이니라 17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를 삼아 이 날을 대대로 지킬지니라 18 정월에 그 달 십사일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19 칠 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 20 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 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28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답: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믿음으로 순종한 자들은 풍성한 축복을 경험하였다.
마침내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의 장자들을 죽였으나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뛰어넘었던 놀라운 밤으로부터 1주년이 되었다. 이제 그날이 연중 의식으로 제정됨으로써, 그들은 애굽에서의 특별한 구출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구원을 기념하게 될 것이었다.
2.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어떤 식으로 유월절을 기념합니까?(눅 22:15, 19~20). 이 의식은 우리에게 무엇을 상기시켜 줍니까?
눅22:15,19,20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답: 유월절은 성만찬 예식으로 대체되었다. 표상과 그림자로 예시되었던 유월절 희생양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제도와 그 의식에 따르는 두 큰 축제 사이의 전환점에 서 계셨다. 하나님의 흠 없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막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치려고 하셨으며 이렇게 함으로 그분은 4천년 동안 당신의 죽음을 가리켜 온 예표와 의식의 제도를 끝내실 것이었다.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잡수실 때에 그분의 큰 희생에 대한 기념이 될 예식을 유월절 대신 세우셨다. 유대인들의 민족적 축제일은 영원히 끝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예식은 각 시대를 통하여 온 땅에 거하는 그분의 제자들이 지켜야 할 예식이었다.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로 이루어진 큰 구원을 기념하기 위해 주신 바 되었다. … 이것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분의 위대한 사업은 우리 마음속에 항상 새롭게 간직된다.”(시대의 소망, 652~653)
우리의 유월절 양 그리스도
“유월절은 기념적인 동시에 모형적이요, 애굽에서 구원받은 과거를 가리킬 뿐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을 죄의 속박에서 해방하시고자 하는 더 큰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희생 제물로 바쳐진 새끼양은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희망이신 '하나님의 어린양' 곧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사도는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고 말한다. 한편 유월절 양을 잡는 것으로는 넉넉하지 않았다.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 하였다. 그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영혼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세상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 뿐 아니라 우리 각자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속죄의 희생의 공로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출 12:1~14)
<부가설명> 유월절에 대하여 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림성도들은 이 절기의 뜻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애굽은 죄의 세상의 표상이다.(계11:8)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며, 그 양을 잡아서 피를 문 양 설주와 상하 인방에 바르는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표상한다. 과연 예수께서는 유월절 날 양을 잡는 그 시간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운명하셨다. 옛날 애굽의 이스라엘 피를 문에 바르는 것만으로 개인적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집 안에서 나오지 않아야 하였으며, 그 양의 고기를 먹어야 하였다.
우리는 유월절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나오지 않아야 하며,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 안에 있으며 그분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는가.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출 받은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은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고전 5:7)에 의하여 성만찬 예식으로 전환되었다.
월요일(10월 19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민 9:15~23)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라는 가장 두드러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을 봄으로써 놀라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생각해 보라. 2백만 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황량하고 위험한 광야에 있었다. 그들의 진은 아마도 사방으로 멀리까지 퍼져 있었을 것이다. 라디오나 전화, 또는 인터넷 같은 직접적인 통신 수단이 전혀 없던 시대였기에 그들이 언제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려주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했다.
1. 민수기 9:15~23을 읽으십시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는 적어도 그들에게 이동하라는 명령과 같은 그분의 뜻을 나타내는 데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민9:15-23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16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 19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20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을 좇아 유진하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으며 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진행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진행하였으며 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답: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뚜렷한 임재를 늘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비록 황량한 광야에서일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구름기둥은 그들이 언제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를 분명히 지시해 주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눈에 보이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을지라도 그들의 여정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예레미야는 기록하기를, “그가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셨다(렘 2:6)고 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언제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의 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아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민수기 9:16에 따르면,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다(민 9:16)고 하였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어떤 시련에 직면하든지, 어떤 적을 만나든지 상관없이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가시적인 표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마음 든든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실히 믿고 따르도록 하지 않았겠는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심
“눈에 보이지 않는 인도자의 군기가 항상 그들과 함께 있었다. 낮에는 구름이 그들의 여정을 인도하거나 군중 위에 천개(天蓋)처럼 덮여 있었다. 그것은 불타는 폭염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고, 냉기와 습기는 목이 타고 끓는 사막에서 그들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밤에는 그것이 불기둥으로 변하여 그들의 진영을 비춰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게 해주었다.”(부조와 선지자, 282)
<부가설명> 참 이상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있었고, 친히 인도하심을 따라 움직이게 했는데, 그렇게 원망과 불순종의 허물을 많이 저지른 이스라엘 민족의 상태는 왜 그랬을까? 불기둥 구름기둥이라고 해서 구름이 성막 위에 기둥처럼 서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이다. 구름을 펴서 온 이스라엘 진영을 다 덮어주는 덮개가 되게 하셨다. 그것이 밤에는 불기둥이 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덮고 있었다. 그것은 낮에는 냉방 장치며, 밤에는 난방 장치에 조명 장치까지 되었다. 그랬는데도 그들은 불만으로 광야를 지냈다.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의 감정과 기호와 지식과 경험으로 성경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베푸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고 순종으로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그들 위에 떠 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었을 뿐 아니라, 언제든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화요일(10월 20일) 은 나팔(민 10:1~10)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두 종류의 나팔을 가지고 있었는데, 보통의 양각 나팔(쇼파르)과 또 하나 곧 성소에 속하여 오직 제사장들만 불었던(민 10:8) 두 개의 은 나팔이 있었다. 은 나팔은 한 덩어리의 은을 쳐서 만든 것이었는데, 그 끝이 벌어진 긴 관과 같은 것이었다.
1. 민수기 10:1~10을 읽으십시오. 이 나팔들을 부는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이 나팔들을 부는 것에서 우리는 어떤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민10:1-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은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 3 두 나팔을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4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 천부장 된 족장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5 너희가 그것을 울려 불 때에는 동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고 6 제 이차로 울려 불 때에는 남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라 무릇 진행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울려 불 것이며 7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이며 8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9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 10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답: 이스라엘 백성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라는 가시적인 표징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으나, 은나팔을 통해 가청적인 표징까지 더해짐으로써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과 성령님의 감화를 통해 더욱 명백한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이 은 나팔들을 부는 데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팔을 부는 것은 "명령"을 의미했다. 전쟁 시에 이 나팔 소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리라(9절)는 보증을 나타내었다. 따라서 나팔 소리는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10절)는 의미였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와 임재를 느낄 수 있는 많은 다른 증거들과 함께 그분의 임재와 돌보심을 상기시키는 나팔이 사용된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같은 시각적 표징뿐 아니라, 나팔소리와 같은 청각적 표징이 하나님의 인도와 임재에 대한 특별한 증거로 주어졌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와 임재를 상기할 수 있는 구름기둥이나 불기둥 혹은 은 나팔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 새 언약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충분히 깨달을 수 없었던 그분의 사랑과 돌보심에 대한 보증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깨닫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지식 대신 단지 표상과 그림자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다(빌 2:6~8). 이러한 그분의 사랑과 품성에 관한 지식과 나팔 소리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
마지막 나팔 소리
“그리스도께서 신실한 사람들을 당신께로 모아들이시기 위하여 오실 때 마지막 나팔이 울려 퍼질 것이다. 가장 높은 산들의 꼭대기에서부터 가장 깊은 동굴의 가장 낮은 곳에 이르기까지 온 땅이 그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불멸의 몸을 입고 그들의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무덤에서 나올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7권, 909)
<부가설명> 이스라엘에게 나팔을 만들어 필요할 때 불도록 하신 것은 그들의 행동을 통일하고 원활하게 하는 효력을 나타내도록 하는 것이다. 은 나팔이 있고 양각나팔도 있었다.(수6:4)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함락할 때 양각나팔을 불었다. 양각나팔을 만들라는 분부는 오경에서 발견하지 못했으나 양각나팔을 분 기록을 볼 때에 이스라엘은 양각나팔을 만들어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나팔이든지 그것은 사람들에게 어떤 사실을 알리는 기능을 한다.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에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날 것이며 이 나팔 소리에 잠자는 성도들이 다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모이고 떠나고 멈추는 일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는 사랑이 그 소리에 있다. 그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 열심히 말씀을 상고하여 이 소리를 따라 생활하는 이스라엘이 되어야 한다.
교훈: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구름기둥이나 불기둥 혹은 귀에 들리는 나팔소리는 없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예수님의 희생을 통한 새 언약이 있다.
수요일(10월 21일)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민 10:29~32)
사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은 다시 결혼하였다. 그의 아내 그두라는 여러 아들들을 낳았는데 그 중 하나가 미디안이다(창 25:1~6). 모세가 십보라와 결혼함으로 르우엘(출 2:18)로도 불리는 이드로('하나님의 친구'를 뜻함)가 그의 장인이 되었는데, 그는 미디안 제사장으로(출 18:1), 참 되신 하나님을 경배하였다(12절).
1. 모세는 이드로의 아들 호밥에게 어떤 요청을 하였습니까? 호밥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민 10:29~32)
민10:29-32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30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31 모세가 가로되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칠 것을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32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답: “모세가 가로되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칠 것을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민 10:31). 모세는 호밥에게 동행할 것을 요청했으나 호밥은 거절하였다.
모세는 하나님께 여쭙지도 않고 호밥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광야를 지나는 민족을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낮의 구름기둥과 밤의 불기둥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광야에 길을 여시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을 신뢰하지 못한 채 당면한 도전 앞에 연약성을 드러내는 모세의 모습을 보게 된다.
2. 마태복음 26:36~43을 읽으십시오. 이 기사는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마26:35-43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답: 인성의 연약성과 의지해야 하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 구주께서도 때때로 인간적인 동정과 지지를 필요로 하셨다. 그분은 모든 제자들은 사랑하셨지만, 특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가까이 지내셨다.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께서 이들을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에 그들은 기도하는 대신 잠을 자고 있었다. 이때 하늘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보내졌다. 그들은 그분께서 대속적 죽음으로 나아가시도록 격려하였다(눅 9:28~31). “이제 하늘은 예수님께 사자들을 보냈다. 그들은 천사가 아니라 고통과 슬픔을 당하였기에 지상 생애에서 시련을 당하시는 구주를 동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세와 엘리야는 그리스도의 동역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같이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갈망을 가졌었다. … 세상의 희망, 곧 각 사람의 구원이 그들의 대화의 요지였다.”(시대의 소망, 422, 425)
이스라엘 백성은 드디어 본격적인 행진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지파별로 순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할 때에 이와 같이 그 군대를 따라 나아갔더라.”(민 10:28)
교훈: 모세는 때때로 믿음의 연약함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 백성을 인도하기를 갈망하였다. 이 모세가 십자가를 앞두고 피땀 흘리시던 예수님께 보내졌다.
목요일(10월 22일) 본향을 향하여?(민 10:11~36)
1.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조직을 갖춘 이스라엘 백성이 첫 여정을 떠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민수기 10:11~36을 읽으십시오. 그들이 이동한 방식에 있어서 두드러진 한 가지 사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왜 그렇게 중요하였습니까?
민10:11-36 제 이 년 이월 이십일에 구름이 증거막에서 떠오르매 12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행하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1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것을 좇아 진행하기를 시작하였는데 14 수두로 유다 자손 진기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유다 군대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영솔하였고 15 잇사갈 자손 지파의 군대는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영솔하였고 16 스불론 자손 지파의 군대는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 영솔하였더라 17 이에 성막을 걷으매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성막을 메고 발행하였으며 18 다음으로 르우벤 진기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발행하였으니 르우벤의 군대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 영솔하였고 19 시므온 자손 지파의 군대는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 영솔하였고 20 갓 자손 지파의 군대는 드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 영솔하였더라 21 고핫인은 성물을 메고 진행하였고 그들이 이르기 전에 성막을 세웠으며 22 다음으로 에브라임 자손 진기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에브라임 군대는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가 영솔하였고 23 므낫세 자손 지파의 군대는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 영솔하였고 24 베냐민 자손 지파의 군대는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 영솔하였더라 25 다음으로 단 자손 진기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이 군대는 모든 진의 후진이었더라 단 군대는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 영솔하였고 26 아셀 자손 지파의 군대는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 영솔하였고 27 납달리 자손 지파의 군대는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영솔하였더라 28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할 때에 이와 같이 그 군대를 따라 나아갔더라 29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30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31 모세가 가로되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칠 것을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32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34 그들이 행진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35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답: 이스라엘 백성은 드디어 본격적인 행진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지파별로 순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할 때에 이와 같이 그 군대를 따라 나아갔더라.”(민 10:28)
모세의 기록에 따르면, 시내산(호렙산)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는 열 하룻길밖에 되지 않았다.(신1:2) 가데스바네아는 후에 유다의 남방 경계가 된 지역의 성읍이었다.
이스라엘 군대가 어떤 순서로 행진하였는지 주목해 보라. 구름기둥과 함께 법궤를 앞세우고 세 지파의 군대가 그 뒤를 따랐다. 그 다음에 레위인들이 성막의 여러 기구들을 옮기는 수레와 함께 나아갔다. 또 다른 세 지파의 군대가 그 뒤를 따랐으며, 그 다음에는 고핫 자손이 성막의 기구들을 메고 따라갔다. 그 다음에 여섯 지파의 군대가 후방을 방어하면서 따랐다. 모든 것은 매우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다. 만약 그들이 무질서하게 행진하였더라면 아마도 끔찍한 재난이 일어났을 것이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장 가까운 길은 블레셋 땅을 통과하는 해변 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아셨다(출 13:17). 그리하여 구름기둥은 이스라엘 민족을 북동쪽에 있는 바란 광야로 인도하여 3일 길을 행하게 하였다(민 10:11~12, 33). “그들이 전진할수록 길은 더욱 험해졌다. 그들이 가는 길은 돌 많은 협곡과 불모의 황야를 가로질러 뻗어있었다. 그들의 주위에는 다 황량한 광야뿐이었다. … 멀고 가까운 바위투성이의 좁은 골짜기에는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 수레들과 짐승들, 양떼와 가축 떼의 긴 행렬로 혼잡을 이루었다. 그들의 행진은 느리고 고통스러웠으며 군중은 오랫동안 장막을 치고 평안이 있던 뒤라 노중의 위험과 불편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부조와 선지자, 377)
오늘날에도 질서가 요구됨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하늘과 관련된 사물마다 완전한 질서 가운데 있다. 복종과 철저한 훈련이 천사의 무리의 행동에 나타난다. 성공은 질서와 조화된 행동에만 따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시대 못지않게 지금도 그분의 사업에 질서와 조직을 요구하신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출 18:19~27)
<부가설명>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조직한 군대의 행렬로 진행하였다. 그 진행에는 하나님의 성막과 그 기구를 해체하여 메고 실은 레위 지파 사람들을 군대의 중간에 두고 앞뒤의 보호 속에 행진하였다. 물론 하나님의 임재의 표인 구름기둥이 앞서 그들을 인도하였다. 군대의 조직으로 질서 있는 행진으로 본향을 향하여 진군하였다.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지극히 정교한 질서로 움직인다. 인간의 신체도 얼마나 질서가 있는가. 이 질서가 흐트러지면 병이 된다. 하나님의 교회는 바로 사람의 몸으로 비유되었다. 조직과 질서는 교회가 하늘본향으로 진군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교훈: 이스라엘 백성은 군대로 조직되었으나 아직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름길 대신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
금요일(10월 2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과제: 우리는 매일 매순간 크고 작은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다음의 약속들을 숙고하라. 시 31:3, 32:8, 48:14, 78:52, 사 58:10~11.
“만일,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기 위해 자신을 그분께 바친 상태라면 내일을 위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대를 종으로 삼으신 그분께서는 처음과 끝을 다 아신다. 미래의 사건들이 비록 그대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능하신 그분의 눈에는 훤히 다 보인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고자 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을 때 우리는 장래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사랑하는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삼켜지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이 사라질 것이다.”(산상보훈, 100~10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성경에서 인간적인 지지를 필요로 했던 사람들로는 또 누가 있습니까? 우리에게 인간적인 지지가 얼마나 중요다고 생각합니까?
* 바울은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요청을 그의 편지서에 여러 번 하였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적인 지지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사람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2. 우리가 성만찬 예식에 참여할 때에 어떠한 믿음을 갖는 것이 그 예식의 참된 의미를 더 잘 이해하게 해 줍니까?
* 십자가의 공효를 굳게 믿어야 한다. 예수께서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시면 십자가를 지신 의미를 깊이 명상할 때 그 의미를 가슴에 새기게 될 것이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 질서정연한 행진으로 인도하신다. 날마다 생활이 진리의 질서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교회도 이렇게 질서대로 운영되기를 바란다.
요약: 시내산 아래서 1년간이나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은 진을 떠나기 전에 유월절 1주년 기념일을 자유로이 경축했다. 그들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했다. 지파별로 질서정연하게 3일간 행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그들의 행진은 은 나팔의 신호에 따라 질서 있게 진행되었으며 제사장들은 법궤를 메고 맨 앞에 섰다. 구름기둥은 북동쪽의 바란 광야로 그들을 인도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힘들 것처럼 보이는 곳으로 인도하실 때에도 지혜가 풍성하신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 축복의 열쇠이다.
10월 24일 안식일 (일몰: 오후 5시 43분)
기억절: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연구범위: 출 12:1~29, 민 9~10장, 마 26:36~43, 눅 22:15, 19~20, 고전 15:52.
안식일 오후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잡수실 때에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셨다. 그분께서 유월절 떡을 취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먹으라. 이는 내 몸이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잔을 취하사 "이것은 많은 사람의 죄를 없이하려고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다(마 26:26~29). 바울은 기록하기를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고 하였다.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인의 유월절이다. 그리고 새 언약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출된 것을 상기시켜 준다. 이번 주에 우리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제1주년 기념일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진 가운데 임재하시어 그들을 인도하신 것과, 특정한 때에 불었던 은나팔, 그리고 옛날 하나님의 백성이 처해 있었던 독특한 상황을 나타내 주는 몇 가지 사건들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비록 배경은 다르지만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유혹을 우리도 똑 같이 겪을 수 있으므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처한 시대와 상황에 맞는 교훈들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겠다.
핵심본문: 고전 5:7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여러 방법들을 배운다.
느끼기: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함으로 그분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행하기: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능력에 반응하여 믿음으로 전진한다.
교과 개요
I. 피, 불, 구름, 나팔로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
A. 애굽에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 내릴 때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의 피가 발린 문 뒤에 숨어야 했는데, 이 의식의 의미는 무엇인가?
B. 불기둥과 구름기둥과 나팔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함께 계시고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가시적인 표는 왜 중요했는가?
II. 하나님의 가시적 및 가청적 임재를 인식함
A. 유월절을 표상하는 성만찬 예식에 참여할 때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기념한다. 주님의 희생을 상징하는 이 예식은 왜 중요한가?
B. 매일의 삶 속에서 청각과 촉감과 시각, 그리고 그 외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인가?
III. 성령께서 감화를 따라 전진함
A. 하나님께서 나에게 안전지대에서 나와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하신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B.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셨던 경험은 무엇인가? 지금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요점: 영적인 유아에 불과했던 이스라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는 친히 돌보시고 인도하셨다. 그분께서는 나의 삶의 모든 성장 단계마다 말씀과 성령의 감화를 통해 다가오시며,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통해 인도하신다.
일요일(10월 18일) 나를 기념하여(민 9:1~5)
1. 민수기 9:1~5와 출애굽기 12:1~29을 읽으십시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어떤 영적 진리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까? 읽으면서 순종, 은혜, 구속, 믿음, 심판 등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민9:1-5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으로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게 하라 3 그 정기 곧 이 달 십사일 해질 때에 너희는 그것을 지키되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지킬지니라 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5 그들이 정월 십사일 해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다 좇아 행하였더라.
출12:1-29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4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면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로 양을 먹을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15 너희는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16 너희에게 첫날에도 성회요 제 칠 일에도 성회가 되리니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인의 식물만 너희가 갖출 것이니라 17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를 삼아 이 날을 대대로 지킬지니라 18 정월에 그 달 십사일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19 칠 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 20 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 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28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답: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믿음으로 순종한 자들은 풍성한 축복을 경험하였다.
마침내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의 장자들을 죽였으나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뛰어넘었던 놀라운 밤으로부터 1주년이 되었다. 이제 그날이 연중 의식으로 제정됨으로써, 그들은 애굽에서의 특별한 구출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구원을 기념하게 될 것이었다.
2.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어떤 식으로 유월절을 기념합니까?(눅 22:15, 19~20). 이 의식은 우리에게 무엇을 상기시켜 줍니까?
눅22:15,19,20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답: 유월절은 성만찬 예식으로 대체되었다. 표상과 그림자로 예시되었던 유월절 희생양은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제도와 그 의식에 따르는 두 큰 축제 사이의 전환점에 서 계셨다. 하나님의 흠 없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막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치려고 하셨으며 이렇게 함으로 그분은 4천년 동안 당신의 죽음을 가리켜 온 예표와 의식의 제도를 끝내실 것이었다.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잡수실 때에 그분의 큰 희생에 대한 기념이 될 예식을 유월절 대신 세우셨다. 유대인들의 민족적 축제일은 영원히 끝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예식은 각 시대를 통하여 온 땅에 거하는 그분의 제자들이 지켜야 할 예식이었다.
성만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로 이루어진 큰 구원을 기념하기 위해 주신 바 되었다. … 이것을 통하여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분의 위대한 사업은 우리 마음속에 항상 새롭게 간직된다.”(시대의 소망, 652~653)
우리의 유월절 양 그리스도
“유월절은 기념적인 동시에 모형적이요, 애굽에서 구원받은 과거를 가리킬 뿐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을 죄의 속박에서 해방하시고자 하는 더 큰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희생 제물로 바쳐진 새끼양은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희망이신 '하나님의 어린양' 곧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사도는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고 말한다. 한편 유월절 양을 잡는 것으로는 넉넉하지 않았다.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야 하였다. 그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영혼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세상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 뿐 아니라 우리 각자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속죄의 희생의 공로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출 12:1~14)
<부가설명> 유월절에 대하여 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림성도들은 이 절기의 뜻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애굽은 죄의 세상의 표상이다.(계11:8)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며, 그 양을 잡아서 피를 문 양 설주와 상하 인방에 바르는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표상한다. 과연 예수께서는 유월절 날 양을 잡는 그 시간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운명하셨다. 옛날 애굽의 이스라엘 피를 문에 바르는 것만으로 개인적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집 안에서 나오지 않아야 하였으며, 그 양의 고기를 먹어야 하였다.
우리는 유월절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나오지 않아야 하며,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 안에 있으며 그분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는가.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출 받은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은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고전 5:7)에 의하여 성만찬 예식으로 전환되었다.
월요일(10월 19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민 9:15~23)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라는 가장 두드러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을 봄으로써 놀라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생각해 보라. 2백만 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황량하고 위험한 광야에 있었다. 그들의 진은 아마도 사방으로 멀리까지 퍼져 있었을 것이다. 라디오나 전화, 또는 인터넷 같은 직접적인 통신 수단이 전혀 없던 시대였기에 그들이 언제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려주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했다.
1. 민수기 9:15~23을 읽으십시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는 적어도 그들에게 이동하라는 명령과 같은 그분의 뜻을 나타내는 데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민9:15-23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16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 19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20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을 좇아 유진하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으며 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진행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진행하였으며 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답: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뚜렷한 임재를 늘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비록 황량한 광야에서일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구름기둥은 그들이 언제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를 분명히 지시해 주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눈에 보이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을지라도 그들의 여정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예레미야는 기록하기를, “그가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셨다(렘 2:6)고 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언제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의 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아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민수기 9:16에 따르면,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다(민 9:16)고 하였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어떤 시련에 직면하든지, 어떤 적을 만나든지 상관없이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가시적인 표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마음 든든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실히 믿고 따르도록 하지 않았겠는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심
“눈에 보이지 않는 인도자의 군기가 항상 그들과 함께 있었다. 낮에는 구름이 그들의 여정을 인도하거나 군중 위에 천개(天蓋)처럼 덮여 있었다. 그것은 불타는 폭염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고, 냉기와 습기는 목이 타고 끓는 사막에서 그들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밤에는 그것이 불기둥으로 변하여 그들의 진영을 비춰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게 해주었다.”(부조와 선지자, 282)
<부가설명> 참 이상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있었고, 친히 인도하심을 따라 움직이게 했는데, 그렇게 원망과 불순종의 허물을 많이 저지른 이스라엘 민족의 상태는 왜 그랬을까? 불기둥 구름기둥이라고 해서 구름이 성막 위에 기둥처럼 서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이다. 구름을 펴서 온 이스라엘 진영을 다 덮어주는 덮개가 되게 하셨다. 그것이 밤에는 불기둥이 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덮고 있었다. 그것은 낮에는 냉방 장치며, 밤에는 난방 장치에 조명 장치까지 되었다. 그랬는데도 그들은 불만으로 광야를 지냈다.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의 감정과 기호와 지식과 경험으로 성경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베푸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고 순종으로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그들 위에 떠 있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었을 뿐 아니라, 언제든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화요일(10월 20일) 은 나팔(민 10:1~10)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두 종류의 나팔을 가지고 있었는데, 보통의 양각 나팔(쇼파르)과 또 하나 곧 성소에 속하여 오직 제사장들만 불었던(민 10:8) 두 개의 은 나팔이 있었다. 은 나팔은 한 덩어리의 은을 쳐서 만든 것이었는데, 그 끝이 벌어진 긴 관과 같은 것이었다.
1. 민수기 10:1~10을 읽으십시오. 이 나팔들을 부는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이 나팔들을 부는 것에서 우리는 어떤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민10:1-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은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 3 두 나팔을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4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 천부장 된 족장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5 너희가 그것을 울려 불 때에는 동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고 6 제 이차로 울려 불 때에는 남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라 무릇 진행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울려 불 것이며 7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이며 8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9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 10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답: 이스라엘 백성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라는 가시적인 표징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으나, 은나팔을 통해 가청적인 표징까지 더해짐으로써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과 성령님의 감화를 통해 더욱 명백한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이 은 나팔들을 부는 데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나팔을 부는 것은 "명령"을 의미했다. 전쟁 시에 이 나팔 소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리라(9절)는 보증을 나타내었다. 따라서 나팔 소리는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10절)는 의미였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와 임재를 느낄 수 있는 많은 다른 증거들과 함께 그분의 임재와 돌보심을 상기시키는 나팔이 사용된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같은 시각적 표징뿐 아니라, 나팔소리와 같은 청각적 표징이 하나님의 인도와 임재에 대한 특별한 증거로 주어졌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와 임재를 상기할 수 있는 구름기둥이나 불기둥 혹은 은 나팔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 새 언약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충분히 깨달을 수 없었던 그분의 사랑과 돌보심에 대한 보증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깨닫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지식 대신 단지 표상과 그림자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다(빌 2:6~8). 이러한 그분의 사랑과 품성에 관한 지식과 나팔 소리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
마지막 나팔 소리
“그리스도께서 신실한 사람들을 당신께로 모아들이시기 위하여 오실 때 마지막 나팔이 울려 퍼질 것이다. 가장 높은 산들의 꼭대기에서부터 가장 깊은 동굴의 가장 낮은 곳에 이르기까지 온 땅이 그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불멸의 몸을 입고 그들의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무덤에서 나올 것이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7권, 909)
<부가설명> 이스라엘에게 나팔을 만들어 필요할 때 불도록 하신 것은 그들의 행동을 통일하고 원활하게 하는 효력을 나타내도록 하는 것이다. 은 나팔이 있고 양각나팔도 있었다.(수6:4)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함락할 때 양각나팔을 불었다. 양각나팔을 만들라는 분부는 오경에서 발견하지 못했으나 양각나팔을 분 기록을 볼 때에 이스라엘은 양각나팔을 만들어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나팔이든지 그것은 사람들에게 어떤 사실을 알리는 기능을 한다.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에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날 것이며 이 나팔 소리에 잠자는 성도들이 다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모이고 떠나고 멈추는 일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는 사랑이 그 소리에 있다. 그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 열심히 말씀을 상고하여 이 소리를 따라 생활하는 이스라엘이 되어야 한다.
교훈: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구름기둥이나 불기둥 혹은 귀에 들리는 나팔소리는 없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예수님의 희생을 통한 새 언약이 있다.
수요일(10월 21일)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민 10:29~32)
사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은 다시 결혼하였다. 그의 아내 그두라는 여러 아들들을 낳았는데 그 중 하나가 미디안이다(창 25:1~6). 모세가 십보라와 결혼함으로 르우엘(출 2:18)로도 불리는 이드로('하나님의 친구'를 뜻함)가 그의 장인이 되었는데, 그는 미디안 제사장으로(출 18:1), 참 되신 하나님을 경배하였다(12절).
1. 모세는 이드로의 아들 호밥에게 어떤 요청을 하였습니까? 호밥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민 10:29~32)
민10:29-32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30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31 모세가 가로되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칠 것을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32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답: “모세가 가로되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칠 것을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민 10:31). 모세는 호밥에게 동행할 것을 요청했으나 호밥은 거절하였다.
모세는 하나님께 여쭙지도 않고 호밥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광야를 지나는 민족을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낮의 구름기둥과 밤의 불기둥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광야에 길을 여시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을 신뢰하지 못한 채 당면한 도전 앞에 연약성을 드러내는 모세의 모습을 보게 된다.
2. 마태복음 26:36~43을 읽으십시오. 이 기사는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마26:35-43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답: 인성의 연약성과 의지해야 하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 구주께서도 때때로 인간적인 동정과 지지를 필요로 하셨다. 그분은 모든 제자들은 사랑하셨지만, 특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가까이 지내셨다.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께서 이들을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에 그들은 기도하는 대신 잠을 자고 있었다. 이때 하늘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보내졌다. 그들은 그분께서 대속적 죽음으로 나아가시도록 격려하였다(눅 9:28~31). “이제 하늘은 예수님께 사자들을 보냈다. 그들은 천사가 아니라 고통과 슬픔을 당하였기에 지상 생애에서 시련을 당하시는 구주를 동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세와 엘리야는 그리스도의 동역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같이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갈망을 가졌었다. … 세상의 희망, 곧 각 사람의 구원이 그들의 대화의 요지였다.”(시대의 소망, 422, 425)
이스라엘 백성은 드디어 본격적인 행진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지파별로 순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할 때에 이와 같이 그 군대를 따라 나아갔더라.”(민 10:28)
교훈: 모세는 때때로 믿음의 연약함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 백성을 인도하기를 갈망하였다. 이 모세가 십자가를 앞두고 피땀 흘리시던 예수님께 보내졌다.
목요일(10월 22일) 본향을 향하여?(민 10:11~36)
1.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조직을 갖춘 이스라엘 백성이 첫 여정을 떠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민수기 10:11~36을 읽으십시오. 그들이 이동한 방식에 있어서 두드러진 한 가지 사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왜 그렇게 중요하였습니까?
민10:11-36 제 이 년 이월 이십일에 구름이 증거막에서 떠오르매 12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행하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1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것을 좇아 진행하기를 시작하였는데 14 수두로 유다 자손 진기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유다 군대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영솔하였고 15 잇사갈 자손 지파의 군대는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영솔하였고 16 스불론 자손 지파의 군대는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 영솔하였더라 17 이에 성막을 걷으매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성막을 메고 발행하였으며 18 다음으로 르우벤 진기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발행하였으니 르우벤의 군대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 영솔하였고 19 시므온 자손 지파의 군대는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 영솔하였고 20 갓 자손 지파의 군대는 드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 영솔하였더라 21 고핫인은 성물을 메고 진행하였고 그들이 이르기 전에 성막을 세웠으며 22 다음으로 에브라임 자손 진기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에브라임 군대는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가 영솔하였고 23 므낫세 자손 지파의 군대는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 영솔하였고 24 베냐민 자손 지파의 군대는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 영솔하였더라 25 다음으로 단 자손 진기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이 군대는 모든 진의 후진이었더라 단 군대는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 영솔하였고 26 아셀 자손 지파의 군대는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 영솔하였고 27 납달리 자손 지파의 군대는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영솔하였더라 28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할 때에 이와 같이 그 군대를 따라 나아갔더라 29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30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31 모세가 가로되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칠 것을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32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34 그들이 행진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35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답: 이스라엘 백성은 드디어 본격적인 행진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지파별로 순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할 때에 이와 같이 그 군대를 따라 나아갔더라.”(민 10:28)
모세의 기록에 따르면, 시내산(호렙산)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는 열 하룻길밖에 되지 않았다.(신1:2) 가데스바네아는 후에 유다의 남방 경계가 된 지역의 성읍이었다.
이스라엘 군대가 어떤 순서로 행진하였는지 주목해 보라. 구름기둥과 함께 법궤를 앞세우고 세 지파의 군대가 그 뒤를 따랐다. 그 다음에 레위인들이 성막의 여러 기구들을 옮기는 수레와 함께 나아갔다. 또 다른 세 지파의 군대가 그 뒤를 따랐으며, 그 다음에는 고핫 자손이 성막의 기구들을 메고 따라갔다. 그 다음에 여섯 지파의 군대가 후방을 방어하면서 따랐다. 모든 것은 매우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다. 만약 그들이 무질서하게 행진하였더라면 아마도 끔찍한 재난이 일어났을 것이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장 가까운 길은 블레셋 땅을 통과하는 해변 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전쟁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아셨다(출 13:17). 그리하여 구름기둥은 이스라엘 민족을 북동쪽에 있는 바란 광야로 인도하여 3일 길을 행하게 하였다(민 10:11~12, 33). “그들이 전진할수록 길은 더욱 험해졌다. 그들이 가는 길은 돌 많은 협곡과 불모의 황야를 가로질러 뻗어있었다. 그들의 주위에는 다 황량한 광야뿐이었다. … 멀고 가까운 바위투성이의 좁은 골짜기에는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 수레들과 짐승들, 양떼와 가축 떼의 긴 행렬로 혼잡을 이루었다. 그들의 행진은 느리고 고통스러웠으며 군중은 오랫동안 장막을 치고 평안이 있던 뒤라 노중의 위험과 불편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부조와 선지자, 377)
오늘날에도 질서가 요구됨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하늘과 관련된 사물마다 완전한 질서 가운데 있다. 복종과 철저한 훈련이 천사의 무리의 행동에 나타난다. 성공은 질서와 조화된 행동에만 따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시대 못지않게 지금도 그분의 사업에 질서와 조직을 요구하신다.”(엘렌 G. 화잇 언급, 재림교 성경주석, 출 18:19~27)
<부가설명>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조직한 군대의 행렬로 진행하였다. 그 진행에는 하나님의 성막과 그 기구를 해체하여 메고 실은 레위 지파 사람들을 군대의 중간에 두고 앞뒤의 보호 속에 행진하였다. 물론 하나님의 임재의 표인 구름기둥이 앞서 그들을 인도하였다. 군대의 조직으로 질서 있는 행진으로 본향을 향하여 진군하였다.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지극히 정교한 질서로 움직인다. 인간의 신체도 얼마나 질서가 있는가. 이 질서가 흐트러지면 병이 된다. 하나님의 교회는 바로 사람의 몸으로 비유되었다. 조직과 질서는 교회가 하늘본향으로 진군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교훈: 이스라엘 백성은 군대로 조직되었으나 아직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름길 대신 광야 길로 인도하셨다.
금요일(10월 23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과제: 우리는 매일 매순간 크고 작은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다음의 약속들을 숙고하라. 시 31:3, 32:8, 48:14, 78:52, 사 58:10~11.
“만일,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기 위해 자신을 그분께 바친 상태라면 내일을 위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대를 종으로 삼으신 그분께서는 처음과 끝을 다 아신다. 미래의 사건들이 비록 그대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능하신 그분의 눈에는 훤히 다 보인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고자 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을 때 우리는 장래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사랑하는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삼켜지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이 사라질 것이다.”(산상보훈, 100~101)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성경에서 인간적인 지지를 필요로 했던 사람들로는 또 누가 있습니까? 우리에게 인간적인 지지가 얼마나 중요다고 생각합니까?
* 바울은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요청을 그의 편지서에 여러 번 하였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적인 지지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사람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2. 우리가 성만찬 예식에 참여할 때에 어떠한 믿음을 갖는 것이 그 예식의 참된 의미를 더 잘 이해하게 해 줍니까?
* 십자가의 공효를 굳게 믿어야 한다. 예수께서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시면 십자가를 지신 의미를 깊이 명상할 때 그 의미를 가슴에 새기게 될 것이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 질서정연한 행진으로 인도하신다. 날마다 생활이 진리의 질서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교회도 이렇게 질서대로 운영되기를 바란다.
요약: 시내산 아래서 1년간이나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은 진을 떠나기 전에 유월절 1주년 기념일을 자유로이 경축했다. 그들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했다. 지파별로 질서정연하게 3일간 행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그들의 행진은 은 나팔의 신호에 따라 질서 있게 진행되었으며 제사장들은 법궤를 메고 맨 앞에 섰다. 구름기둥은 북동쪽의 바란 광야로 그들을 인도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힘들 것처럼 보이는 곳으로 인도하실 때에도 지혜가 풍성하신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 축복의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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