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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맨의 교과 지도 - 제 2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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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피맨 작성일09-10-06 20:35 조회3,6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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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과 한 백성을 준비시킴



기억절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안식일 오후 - 서론



민수기 1-4장을 다룬 제 1 과에서는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진을 위해

조직과 질서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민수기 5,6장을 다룬 제 2 과에서는 공동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꼭 필요한 법과 규례 5가지를 다루고 있다.



민수기 5장은



1. 먼저 진영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전염병의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분리에 대한 규정(1-4절)

2. 상대에게 피해를 준 경우 원금에 1/5을 더하여 되갚는 규정(5-10절)

3. 부부간 의심의 문제를 다루는 규정(11-31절)



민수기 6장은



1. 나실인의 법(1-21절)

2. 제사장의 축복 기도(22-27절) 를 기록하고 있다.



기억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이 잘 되기를 바라신다.

동시에 우리의 범사에 어려움이 없고 사회적으로도 평안하기를 원하신다.

인간의 건강한 삶을 위해 그토록 자세히 레위기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라.



민수기 5,6장에는 하나님께서 매우 구체적으로 인간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하여 해결할 방안들을 제시하시고 계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 원하시는 삶의 지표들을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많은 경우 그 답을 성경으로부터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심하게 우리의 삶의 필요를 살피시고

평강에 이르는 길을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일요일 질병 관리



현재 세계적으로 신종 플루는 6단계의 심한 전염병이다.

그러나 최근 WHO가 이를 사망율이 그리 높지 않은 캘리포니아 A형과

동일한 유전형질을 가진 계절성 독감으로 보고하므로서

그 위험성은 많이 낮아진 것으로 보여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에게 발병할 시 사망율이 높은 점은

여전히 염려되는 부분이며

전염 가능성이 높은 학교들은 여전히 예의 주시하는 상황이다.

성경이 말한 것처럼 손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깨닫게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전염병의 대표적인 예, ‘흑사병’은

1347년부터 1350년에 걸쳐 전 유럽을 휩쓴 살인적인 전염병이었고

당시 흑사병으로 감소된 인구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 내지 2분의 1에 이르렀다



당시의 기록 중에는 흑사병으로 죽은 가족의 유언장을 읽는 변호사와

이를 듣던 가족들이 모두 흑사병으로 죽었다고도 한다.



이는 로마 카톨릭이 득세하던 시대에

일반인들은 성경을 전혀 읽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참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이 만약 민수기 5장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전염병 환자 격리 수용의 규례를 따랐더라면

무려 7500만명이나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도덕적이거나 영적인 것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개인의 생명과 사회, 문화와 국가의 운명에

실제적이고도 꼭 필요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좋은 일이다.



1. "진 밖으로 내어보내"진 세 부류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1) 나병환자

2) 유출병환자

3) 시체를 만진 자 등이다.



먼저 민 5장에 언급된 나병환자에 관한 규례는 레위기 13장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본문에서 말하는 나병환자는 1871년 한센이 나병균을 발견하여 한센병이라 명명한 것으로

이 병균에 감염되면 감염부위가 무감각해지는 특징이 있는 진성 문둥병과

진피에 침투하여 털이 쪼개지고 색깔이 없어진

심한 전염성의 피부 질환들에 걸린 환자를 통칭하는 표현이었다.



민 12:15절에 보면 실제로 미리암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문둥병에 걸려 7일간 진 밖에 머무는 징벌을 받았다.



유출병자와 시체를 만진 자도 유행성 질병의

발생 가능성을 막기 위해 격리 수용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이처럼 뛰어난 질병 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제사장은 진단과 선고자의 역할을 해 주었지만

치료자로서의 역할은 전혀 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단지 환자에 대한 격리 수용만 할 수 있었다.



반면 우리 주 예수님은 치료자이셨다.

그 입을 가리우고 부정하다 외치며

다가왔던 문둥병자들의 몸에 손을 대고

치료를 선언하셨다.(막 1:40-45)

나아가 12 제자들에게도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마 10:8)

복음을 선포하도록 명하셨다.



적용하자면 우리는 분리, 격리자의 자세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료자의 위치에 서야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분 자신만이 아니라

그 제자들에게 치료자의 권능을 주셨슴을 기억한다면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의 새로운 목표는 격리가 아니라 치료여야 한다.



2. 전염병에 걸린 이들을 한 동안 진 밖에 격리시킨 것의 신학적 이유는

“내가 그 진 가운데 거하느니라”(민 5:3)에서 찾을 수 있다.



진 안과 진 밖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나뉘어진다.

진 안이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시는 곳으로 상징된다면



진 밖은

1) 하나님없는 세상 또는 죄악 세상을 상징했다.



다른 제사들은 모두 성막 안에서 이루어졌지만

속죄제가 제사장의 위임식과 온 이스라엘을 위해 드려질 때는

유독 진 밖에 나가서 그 고기와 가죽과 똥을 완전히 불살랐는데(출 29:14, 레 4:21, 레 8:17, 레 9:11),

이것은 히 13:11-13절에서 주석한 것처럼

예수께서 제사장으로서 온 인류의 영원한 운명을 바꿔놓으시는 속죄를 위해

영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시는 것을 미리 예표한 것이다.

죄악 세상에 오셔서 죽임당하심을 분명하게 가리킨 것이다.



2) 영원한 심판과 멸망의 장소로 여겨졌다.



레 10:4,5절에서 아론의 두 아들이 다른 불을 사용하다가 하나님의 불에 타 죽자

그들을 진 밖으로 내어보냈다.



다음의 두 경우에 목격자들이 안수하고

온 회중이 돌로 쳐 죽인 심판의 장소가 진 밖이었다.

a. 레 24:14절 서로 싸우다가 하나님을 훼방한 자

b. 민 15:36절 안식일에 나무하다가 붙잡힌 자



3) 부정한 곳으로 여겨졌다.



군대로 출정했을 때는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얻기 위해

부정한 것은 모두 피해야 했는데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가야 했을 뿐만 아니라

몽설한 자와 변소도 진 밖에 있어야 했다.



신 23:14절에 의하면 하나님이 진 중에 행하심으로 진을 거룩히 해야 했고

“네게서 불합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고 권고하고 있다.



분명 나병환자, 유출병자, 시체를 만진 자는

영적으로 절망적인 상태인 죄인을 상징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진 밖에 격리될 수 밖에 없었다.

심히 부정하고 심판과 멸망의 운명에 처했으며

죄악가운데 있는 무서운 상황에 처한 자였다.



그러나 기억하라.

예수께서 어디에서 죽으셨던가? 바로 진 밖이다.

진 밖에서 남김없이 불태워죽임을 당한 수송아지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나의 상태가 문둥병자나 끊임없이 피를 흘리는 자이거나

죽음에 이르는 죄를 짓고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우리 주님의 십자가가 바로 내 곁에 있슴을 기억하자.

진 밖에…





월요일 사회적인 문제의 해결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내 가족, 친구도 함께 살자면

서로간의 이기심과 교만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250만의 사람들이 광야에서 함께 살자니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생겼을까?

모세가 하루종일 송사를 처리하다가 과로사할 뻔 했다.

하나님은 사회적인 각종 문제들에 대한 자세한 해결책들을 주셨다.



이웃간에 범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개념은 민 5:6절에 언급되어있다.



1. 이웃에게 범한 죄는 곧 하나님께 범한 죄이다.(민 5:6)



이웃에게 해를 끼친 경우에 대한 것은

레위기 6장 1-7절에서 자세히 다룬다.

2절은 범죄의 원인을 이렇게 말한다. ‘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구약 성경은 하나님께 신실치 못한 자들,

곧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않는 자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속마음까지 보시는 하나님을 망각한 자들이 범죄한다고 보고 있다.



이 사회적 범죄는 전당, 강도질, 늑봉, 사실부인,

남의 물건을 얻고도 거짓 맹세하는 등의 죄로 하나님 눈 앞에서 저지르는 죄들이다.



우리는 왜 사람들에게 범죄하는가?

눈 앞의 이익을 위하여 거짓을 말하거나 약자를 억압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우리가 범죄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없는 분처럼 여기고

자행자지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 사람들에게만 범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고 죽이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 진정 살아계신 하나님이신가?

그분이 시뻘겋게 눈을 뜨고 계시는데

어찌 범죄할 생각을 한단 말인가?

우리는 불신의 죄부터 회개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로 하나님이 소유주이신데

감히 그분의 것인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죄도 존재한다.



교회증언 5권 639

만일 그대가 친구나 이웃에게 잘못을 범했다면…

그대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대가 상처를 입힌 그 형제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에게 손해를 입힘으로 그의 창조주요 구속주에게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마 25:45절을 통하여

예수님은 나아가 사회적 약자들인 어린아이,

고아, 과부, 이방인, 죄수와 가난한 자들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하듯 이웃에게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2. 이 범죄를 속하기 위하여 당사자에게는

본물에 오분 일을 더하여 돌려보내고

하나님께는 속건제를 드려 사함을 얻어야 했다.



속건제는 언제나 개인적인 범죄를 속하기 위하여 드려졌고

오직 흠없는 숫양만을 제물로 사용하고

그 남은 피를 번제단 밑에 쏟지는 않았다.



눅 19장의 삭개오를 기억하는가?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이렇게 간증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배상의 원칙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어린 시절 철모르던 시절의 잘못일지라도

생각나게 하시면 갚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기억나는 일들은 없는가?



(마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옛날일, 지난 일이라 하여 아무 상관없다고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민 4:27절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배상과 속죄가 따라야 한다.



예수님의 귀한 약속인 성령이 오시면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오분의 일을 더하든 4배나 갚든

그것은 주신 은혜대로 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은 범죄를 속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속건제는

물론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한다.



속건제는 예수님이 온 세상의 죄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며

바로 나, 한 사람의 구체적인 죄들을 씻기 위해서도 필요한 피임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화요일 결혼관계에서의 성실성



도로티와 스미스가 결혼을 약속한 후 해변에 놀러갔다.

스미스가 물었다. “도로티, 도로티가 빌리와 에드,

죠지, 해리와도 결혼 약속을 했다는 데 그게 사실이야?”

도로티 왈 “그게 스미스와 무슨 상관이죠? 그건 나와 그들간의 문제지 않나요?’

스미스 왈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사실이라면 약혼 반지는 나 혼자서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남자 다섯이 돈을 모아서 만들어야 하나 하구…”



하나님은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짝지어주셨고

일부일처제를 분명히 원칙으로 세워주셨다.



1. 민 5:11-31절의 규례는 하나님이 축복하신 결혼 제도를 보존하기 위해 주어졌다.

배우자의 부정은 가정을 파괴하는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

바람을 피운 것으로 의심, 아내를 살해한 80대가 징역 4년형의 중형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조한창 부장판사)는

70대 아내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A씨(81)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해

50년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고령의 처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으로,

사람의 생명은 국가나 사회가 보호해야 할 최상의 가치이므로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할아버지는 5년 전 벌침을 맞고 난 후유증으로

피해자가 외도한다는 망상성 장애를 겪어 왔다.



2. 이 규례를 일컬어 의심의 법이라 했는데 이것은 사회적 약자였던 여인들이

남편의 부당한 의심에 의한 희생자가 될 수 도 있었던 위험을 방지하고

정당한 판단을 받도록 해 주었다.



구약 성경에는 결혼 첫날 밤을 치른 후

신랑이 신부를 부당하게 내쫓으려 할 때도

초야의 증거물을 제시하는 판정을 받도록 하였고

이유없이 이혼당하지 않도록 보호의 규정들이 주어졌다.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가정에 망신을 끼칠

이런 테스트를 실제로 감행했을까?

실제 사례로 기록된 것은 하나도 없다.

남편의 의심이 죄가 되지는 않았지만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경우처럼

조용히 해결하려는 경향이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쓴 물을 마신 후 부정한 여인의 경우

수태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정당한 여인은 임신에 문제가 없슴으로 무죄함이 증명되었다.



부조와 선지자 46페이지

“하나님의 원칙을 인정하고 순종할 때에 결혼은 축복이 된다.

그것은 인류의 순결과 행복을 수호하며

사람의 사회적 필요를 채워 주며

육체적, 지적, 도덕적 본성을 향상시킨다.”





수요일 평민의 성별



민 6장에는 나실인에 관한 규정이 나온다.



나실인(Nazirate)은 성별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경우와

스스로 결심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나님의 지시로 “하나님이 일으키신”(암 2:11,12)

평생 나실인이 된 경우는

삼손, 침례 요한이며

모친 한나의 서원의 결과로 평생 나실인이 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경우는 사무엘이다.



1. 일반인들은 일정 기간 나실인의 서원을 통해

자기 자신을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다.

이방인은 금지되었다.

여성이나 노예는 가능했지만

아비나 남편, 주인에 의하여 무효화될 수 있었다.



이 나실인의 서원은 대게 관례적인 사용을 보류하는

자발적인 금욕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병이나 그외 다른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자들이 서원을 하였고

서원이 마치고 희생 제물을 드리기 전 30일동안 포도주를 삼가고

제사 후 머리를 미는 것이 상례였다고 한다.

생명을 상징하는 잘라진 머리털은 불살랐다.



최소 기간은 30일이었으며

그 기간동안 3가지가 금지되었는데

포도주를 비롯 포도에서 나는 모든 것이 금지되었고

삭도질이 금지되었으며

시체를 만지는 것이 또한 금지되었다.



특히 포도는 렘 35:5,6절의 레갑 족속이

평생 먹지 않기로 한 서원에서 보듯이

가나안 정착 생활의 유혹에 대한 상징이었다.



신약 시대에도 행 18:18절에서 사도 바울이

그의 나실인 기간이 끝나고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날의 금식 기도는 나실인 기간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하나님앞에 자발적으로 금식하며 아뢸 것을 담대함으로 구하는

기도의 시간을 갖는 동안

우리는 세상에서 즐기던 모든 즐거움을 멈추고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을 사모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언제 나실인의 경험을 하였던가?

하나님께만 드리는 성별의 시간을 갖기 위하여 아름다운 계획을 갖자.



목요일 아론의 기도



(민 6:24-26)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1. 아론의 축복 기도에서 하나님은 복 주시고,

은혜 베푸시며, 평강 주시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우리는 오해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2. 이 기도는 제사장이나 모세가 고안해 낸 말이 아니다.

22절을 보면 하나님 자신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직접 주신 기도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친히 고안하신 기도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축복과 지키심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과 평강 주심을 통하여만이

이스라엘이 존재할 수 있슴을 강력히 표현하셨다.



3. 하나님이 주신 이 기도문은

제사장들의 입술을 통해 백성들을 위하여 올려졌다.

그리고 그 표현은 “원하며, 원하며, 원하노라”였다.



누군가를 위하여 바라고 원하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대문을 열어젖히는 방법이다.



입술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왕국을 움직이게 만든다.



누가 이 시대에 제사장인가?

누가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야 하는가?

바로 나다.

누군가를 위하여 “원하고 원하며 원하노라!”라고 기도하여야 한다.

그 기도 소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움직일 것이다.



(벧전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계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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