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과 절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목사 작성일10-05-21 02:27 조회5,700회 댓글0건본문
5월 29일(안식일) 일몰: 오후 7시 45분
* 활발한 토의를 위해 ‘토의를 위한 질문’을 적극 활용합시다.
기 억 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창 9:20~27, 잠 20:1, 23:31~35, 고전 6:19, 10:31, 벧후 1:5~9.
|중심사상|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사셨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몸을 돌볼 도덕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절제는 그런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열쇠이다.
한때 존경받는 판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알코올 중독에 빠진 극빈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지독한 술버릇은 명예뿐 아니라, 가정과 생계를 앗아갔다. 한때 엄숙한 판사복을 입었던 사람이 이제는 누더기를 입은 노숙인이 되었다. 부요하고 성공적인 삶의 최후가 이렇게 비참할 수도 있다.
2007년에 한 젊은 여성이 물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불필요하게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물을 마시고 사망했단 말인가? 그렇다. 한 라디오 방송국이 주체한 대회에서 물을 너무 마신 결과 그날 사망했다. 사인은 물 중독이었다. 물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며, 일반적으로 무해하지만, 과도한 사용은 죽음을 부를 수 있다.
이번 주 우리는 절제에 관하여 공부할 것이다. 세상은 과도한 것을 성공으로 여기고 있다. 위의 예가 보여 주듯이 건강에 유익하지 못한 것은 과감하게 피해야 하고, 건강에 유익한 물질이나 습관일지라도 정도껏 사용해야 한다. 적당함은 매우 중요 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간과되고 있다. 무엇이 참된 절제이며, 주께서 우 리에게 절제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핵심본문| 고전10:31
| 학습 목표 |
1. 깨닫기 : 건강에 해로운 물질과 습관들을 파악하고 배제 한다.
2. 느끼기 : 생활의 모든 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3. 행하기 : 스스로 훈련하고 절제하며 생활의 균형을 찾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돕는다.
교과 개요
01. 깨닫기: 은밀한 위험
A. 어떤 물질들과 습관들은 상대적으로 해롭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 과정을 거쳐서 커다란 중독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대는 술과 마약으로부터 자신과 가정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가?
B. 또 어떤 중독성 물질들이 있는가?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격려하고 지원할 수 있는가?
02. 느끼기: 균형과 조화
A. 식사, 노동, 성생활과 같이 일반적인 행위들도 균형을 잃을 수 있다. 우리의 생활이 균형에서 벗어날 때 그런 사실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생활의 다양한 측면에서 무너진 균형과 조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B. 심지어 신앙생활도 중독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 한가?
03. 행하기: 중용의 덕
A. 자제는 하나님의 특성이며, 은혜의 산물이다. 그대의 삶에서 더 많은 자제의 유익을 누릴 수 있는 영역은 어디인가?
B. 하나님께서 선사하신 자제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 그대가 밟아야 하는 단계들은 무엇인가?
요점: 절제는 단지 해로운 것을 삼가는 것뿐 아니라, 긍정적인 습관을 발전시키고 건강 에 유익한 모든 것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의미 한다.
일요일(5월 23일) 성경에 나타난 첫 번째 음주
그대는 무엇을 남기기 원하는가? 사후에 어떤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부자나, 유명인이나, 정치적으로 권력이 있는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그대에게는 무엇이 중요한가?
성경에는 훗날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나온다. 어떤 이는 훌륭한 인물로 기억되고, 어떤 이는 악명 높은 인물로 또 어떤 이는 양면의 특징을 가진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노아의 경우를 보면, 그는 처음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전도자로 기억됐던 것 같다. 120년간이나 기별을 전했지만, 극소수의 개심자만 얻었을 뿐이었고, 그마저 자신의 직계 가족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를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보셨다. 죄 많고 사악한 홍수 이전의 세계 가운데서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 은혜를 얻었다(창 6:8).
1. 노아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습니까? 창 6:9, 22, 7:1.
창6:9,22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
창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답: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을 다 준행하였다.
2. 노아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모든 것들을 행할 만큼 신실하고 순종적이었던 것은 사실 이지만, 성경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창 9:20~27을 읽어 보십시오. 이런 수치스런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창9:20~27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답: 우리의 의는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 자칫 우리가 그분과의 관계를 잃어버릴 때, 우리의 의로움 역시 잃게 된다.
노아는 최초의 술 취한 사람으로 성경에 기록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주님을 위한 선한 일에 열심이었고, 많은 책임을 짊어지고, 크게 존경을 받았던 그가 어떻게 그와 같이 실패했는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신은 모든 의사소통의 통로이다. 따라서 독성 물질이나 논쟁과 비난의 여지가 있는 물질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노아의 경험은 우리에게 경고와 교훈이 된다. 우리 가운데 건강하고, 신실한 자일지라도 유혹과 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음주가 나쁘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아는 술주정 상태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 노아 같은 사람도 그렇게 타락할 수 있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겠는가?
술은 영성을 파괴한다.
“나답과 아비후는 성전의 제사장이었는데 보통 불로 사용하는 것이 불법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엄하게도 속된 불로 그들의 향을 피웠다. 이 제사장들은 음주에 계속 방종하여 그들의 도덕적 감각이 마비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성질을 인식하거나 그들의 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깨닫지 못했다. 지성소에서 타오른 불길이 그들을 살라 버렸다.”(절제생활, 280)
<부가설명> 현세의 사람들은 재미를 위하여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주 재미있게 느끼던 것이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사노?”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재미있게 살도록 하신 것이 확실하다. 범죄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아담에게 땅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는데, 오늘날 말로 하면 노동하게 하신 것이다. 그 노동에 수고가 없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아주 재미있었을 것이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사망의 종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본래 주셨던 재미가 사라졌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재미없는 것이 된 것이다. 사단이 죄의 감각과 재미가 연합하도록 원래 재미를 변질시킨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재미와 감각이 찰떡궁합을 이루었다. 그것을 쾌락이라고 한다. 쾌락, 곧 육체와 정서의 감각적 쾌락이 재미가 된 것이다. 그것을 자극하는 것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요즘은 그것을 엔터테인멘트라고 하는 것 같다. 사단은 이것을 주도하고 있다. 술, 마약, 성, 감각적 오락, 이 모든 것이 바로 변질된 재미의 형상들이다. 그것들 중에 유익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유익한 부분으로 사람을 유혹하여 노아처럼 실수하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계략이다. 정신 차려야 할 것이다.
교훈: 구원받은 의인도 절제하는데 실패하면 어느 순간 크게 타락할 수도 있다.
월요일(5월 24일) 오늘날의 술
21세기 첫 10년 동안 매해 약 백팔십만 명이 술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 세계 사망자의 3.2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더 우려할 일은 술 소비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십대와 젊은이들 사이에 폭음(남성은 네다섯 잔, 여성은 세네 잔을 연속으로 마실 때 해당됨)이 유행하고 있고, 이런 현상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알코올은 과음, 숙취, 중독으로 이어지며 화학적으로 우리 몸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친다.
1. 음주를 경고하는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삿 13:2~8, 잠 20:1, 23:31~35, 사 5:11, 엡 5:18.
삿13:2~8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4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5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6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임하였는데 그 용모가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온 것을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7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잠20:1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잠23:31~35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33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34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사5:11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답: 아이를 가진 부모는 술을 멀리해야 하며, 술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감각을 흐리며, 인생의 저주가 되고, 방탕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삼손의 어머니에게 임신 중 음주를 경고하셨다. 이는 알코올이 태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과학적 진술이 나오기 훨씬 이전의 언급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솔로몬도 술, 특별히 포도주와 맥주의 영향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는 자신의 관찰과 경험을 통하여 술이 사람의 행동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지, 그것이 어떤 후회를 가져오는지 묘사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도 술에 취한 선지자가 얼마나 부적절하게 행동하는지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다른 성경기자들의 경고를 확인시켜 주었다. 바울 역시 술에 관한 경고의 기별을 남겼다. 성경은 음주를 대체로 부적절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술은 사단이 만든 최고의 덫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위험한 약물 때문에 몸과 마음을 잃고 죽어갔는가! 그러니 우리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타협하지 말고, 이 위험한 덫을 철저하게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술이 주는 엄청난 피해
“술의 영향으로 매일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사고들을 생각해 보라. 어떤 기차의 승무원은 신호에 유의하는 일을 무시하거나 명령을 오해한다. 기차가 가는 도중에 충돌 사고가 생겨 많은 생명을 잃어버린다. 혹은 기선이 좌초하여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수장된다. 그 사건의 원인을 조사하여 보면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음주의 영향을 받고 있었음이 판명된다. 술을 마시는 습관이 어느 정도이면 사람의 생명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전혀 술을 마시지 않을 때에만 맡길 수 있다.”(치료봉사, 331)
<부가설명> 취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사전은 이렇게 정의하였다.
“취ː―하다(醉―)【자동사】【여 불규칙】
1. 먹은 술이나 약 기운이 온몸에 퍼지다.
2. 많은 물건·사람에 시달려 정신이 흐려지다.
3. 무엇에 열중하여 황홀해지다. 도취하다.”
이 정의를 종합하여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에 열중하여 황홀해지고 정신이 흐려지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성으로 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을 뜻하는 말이며, 자율신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맑은 정신으로 사물과 사건을 바르게 판단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목마르다고 하실 때, 사람들이 포도주에 몰약을 섞어서 스펀지에 적셔 입에 대어 주었으나 마시지 않으셨다. 몰약은 마취제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죄를 처리하는 중요한 순간에 정신을 흐리게 하려는 것이 사단의 수단이었다. 우리가 비록 술이나 마취성 식물에 취하지 않는다 해도 일이나 오락이나 엔터테인멘트에 취할 수 있다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교훈: 술은 가장 위험한 사단의 덫이며, 성경은 반복적으로 그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화요일(5월 25일) 하지만 술이 심장 건강에 좋지 않습니까?
1970년대 초부터 포도주와 술이 심장 건강에 주는 유익에 관한 논쟁이 뜨겁게 일어났다. 이 주제에 관하여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많은 연구 내용들이 비전문적인 과학 잡지에 실렸었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 인구에 대한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이 이론 전반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주류회사 내에 이미 형성된 관심은 그 주제를 공공연하게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신도들이 규칙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아서 건강에 불이익을 당할까봐 불안해하기도 했다.
술이 젊은이들의 건강에 이롭다고 주장하는 어떤 문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중년 세대의 심장 혈관에 술이 효험이 있다는 주장이 최근 과학적 논문에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효능을 주장하는 연구결과를 보면, 전에 습관적으로 술을 마셨던 사람들을 비 음주집단에 포함시켰다. 이 사람들 중에 일부는 술이 건강 문제를 일으켜서 술을 끊은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보다 건강하지 못했다. 자료를 재분석하고, 연구의 설정에 나타난 결함들을 수정하였더니, 비음주자에 비하여 가벼운 음주 자들이 건강상 유리할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할 만한 뚜렷한 근 거가 나타나지 않았다. 더욱이 실험대상자들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더 건강할 것이 라고 예상했던 가벼운 음주 자들은 다른 대상자들과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들은 잘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사회적 경제적 지위도 높았고, 의료 시설 이용 측면에도 유리했다. 이런 조건들이 건강 증진과 장수와 관련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결국 이런 연구들은 가벼운 음주의 이로움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생활 습관을 증명한 것이라고 봐야 옳다.
이런 역학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미 술의 해로움을 자세하게 알려준 건강 기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술의 광범위한 위해성을 못 본 채 하고 대신 존재하지도 않는 건강상의 효능을 추구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술이 안겨 주는 피해는 운전 장애와 위험을 감지하는 판단력 결여에서부터 시작해서 뇌손상, 폭행, 사고, 가정폭력, 간경화, 암, 중독, 심지어 치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단 한 잔의 술도 신경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고, 알코올 의존성을 촉발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술이 건전한 판단력과 성령에 반응하는 능력에 손상을 준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어리석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이다.
마시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적당한 음주란 술주정뱅이가 되도록 가르치는 학교이다.”(절제 생활, 30)
“이 무서운 취하는 약을 어느 정도 마셔야 인간의 생명이 안전할까? 술을 엄금할 때에만 안전할 수 있다. 술로 정신을 혼란케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취하게 하는 것도 입술을 통해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상동, 35) “적당하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거기서 사람이 술 마시는 이력을 위하여 교육을 받는 학교가 된다. 그럴지라도 이 연한 자극물들의 작용이 너무나도 교활하여서 그 희생물이 된 자가 자기의 위험을 알아채기도 전에 주객(酒客)의 대로(大路)에 들어서게 된다.”(치료봉사, 332)
<부가설명> 이런 것들이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는 연구들은 그런 주장하는 쪽으로는 유익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신체 전체에 미치는 다른 영향에 대하여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을 듣거나 읽을 때에 우리는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포도주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커피도 어느 방면에는 좋다는 주장이 여러 번 보도된 것을 보았다. 그 방면에 유익하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을 더 해친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주신 기별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교훈: 약간의 술이 건강에 이롭다는 속설은 진실이 아니며, 오히려 한 잔의 술로 시작한 음주가 이후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다.
수요일(5월 26일) 모든 것에 절제함
절제는 때로 옛날 말처럼 들린다. 우리는 이 말을 들을 때 술과 담배라는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춰 활동하는 단체나 조직을 떠올린다. 재림교회 초기에는 이런 운동을 선전하기 위해 담배를 씹고 뱉는 역겨운 습관을 가지고 있는 젊은 여자들에게 경고하는 노래도 불렀다. 그러나 지금 같은 예민한 세대에서는 절제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그 단어의 언급은 가급적 피하고 있는 형편이다.
절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좀 더 쉬운 접근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가 절제 문제를 소극적으로 다루는 동안 우리 교단의 어떤 교회 들은 한때 세상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했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 벧후 1:5~9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특별히 우리의 건강습관에 어떻게 적용 될까요? 이런 성경의 훈계를 어떻게 우리 삶에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벧후1:5~9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답: 신앙의 여정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완성되는데, 그 가운데는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우애가 포함되어 있다. 절제는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품성을 형성하는 일에서도 필수적이다.
절제란 흡연, 불법 약물 복용, 음주, 차, 커피, 청량음료를 마시지 않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절제는 좋은 것일지라도 과도하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대의 근무 습관은 어떤가? 그대는 적절한 근무시간을 지키는가? 하나님, 가족, 휴양, 체력단련, 봉사를 위한 시간이 있는가? 수면시간은 어떤가?
2. 그대의 식습관은 어떻습니까? 그대는 돼지고기는 물론이고 어쩌면 닭고기도 안 먹을 것 입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지는 않습니까?
답: 나쁜 것을 가리는 것만이 절제가 아니다. 좋은 것도 과도하지 않게 하는 것이 절제의 기본 정신이다.
우리는 햇빛이 좋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과도하면 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운동도 그렇다. 대부분은 부족해서 문제지만, 지나친 운동 역시 몸을 해친다. 성생활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지만, 과도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엘렌 G. 화잇은 참절제의 핵심을 다음과 같은 짧은 문장으로 요약하였다. “참된 절제는 해로운 것은 모두 완전히 버리고 건강에 이로운 것을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친다.”(부조와 선지자, 562)
술과 마찬가지로 해로운 것
“절제의 원칙들은 다만 주정음료의 사용금지 그 이상으로 훨씬 더 전진해야 한다. 자극성 식물과 소화하기 어려운 음식을 사용하는 것은 흔히 주정음료와 똑같이 건강에 해롭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술 취함의 씨앗을 심는다.”(절제생활, 138)
<부가설명>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는 말씀이 절제의 대강령이라고 생각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24) 이 말씀은 생활의 염려를 방탕과 술 취하는 것과 같은 반열에 두었다. 일상생활에 대한 염려가 지나치면 그것도 술 취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님의 날을 도덕같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절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생활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가장 올바른 행복이기 때문이다.
교훈: 절제란 나쁜 것은 금하고, 좋은 것은 적당하게 하는 것이다.
목요일(5월 27일) 값을 주고 삼
우리 몸은 우리 것이고,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사고방식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살더라도 자신 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1. 다른 사람의 부절제가 어떤 방식으로 그대와 그대가 아는 사람을 해롭게 할 수 있습니까? 또는 그대의 부절제한 행동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해칠 수 있습니까?
답: 각 사람이, 한 사람의 부절제가 여러 사람에게 피해와 고통을 안겨 준 사례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
성경은 우리 몸을 중요한 거처로 취급한다. 몸은 우리의 유익과 생각, 계획, 행동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몸은 사실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래서 몸을 관리하는 것은 큰 특권이며 중요한 책임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몸보다 집을 더 많이 관리하고 있다. 이는 순서가 바뀐 것이다.
2. 우리의 몸을 돌보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다음의 성경절들은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가정할 때만이 본문이 의미 있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 2:19~21, 고전 6:19~20.
요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답: 우리 몸을 건강하게 세우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허무셨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것이 되었다. 따라서 건강은 우리가 소홀히 여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몸을 성전으로 비유하셨다. 바울도 이러한 주제를 종종 강조하며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어떤 대가가 치러졌는가? 십자가를 마음속에 그리며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묵상해 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우리의 가치와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해로부터 우리의 영과 더불어 육체도 관리해야 한다는 거룩한 책임감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의 피를 흘리도록 허락하신 것은 하늘을 허비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으며 우리의 모든 것이 그분의 소유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실한 청지기처럼 우리 몸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임
“인생의 모든 일에 절제를 가르치고 실천하여야 한다. 먹고, 마시고, 자고, 입는 일에 절제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이다. 영혼의 성전으로 들어온 진리가 몸을 다루는 방법을 지도해 줄 것이다. 인간의 건강에 관련이 있는 것이면 어떤 것도 무심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영원한 행복은 이생에서 우리가 우리의 시간, 힘, 감화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새 자녀 지도법, 394)
<부가설명>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의 관리자로 임명되었다. 물질에 대한 관리만이 아니다. 우리가 선한 청지기가 되는 것은 재물에 대한 것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리하도록 맡긴 모든 것의 청지기이다. 그 중에 우리의 몸이 포함된 것은 당연하다. 그리스도인은 건강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이식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계속 아프다면 그 차체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림성도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것이 자율적인 것이 되어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6~18)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7:1)
교훈: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예수께서 피로 구속하시며, 성령께서 거하시는 값진 존재이다.
금요일(5월 2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치료봉사, 161~169 “시험받는 자들을 도와줌”, 171~182 “부절제한 사 람을 위한 봉사”
세계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비만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과식을 장려하고 있다. 음식과 비만, 운동부족 때문에 문제가 되는 제2형 당뇨병은 십대에서도 발생되고 있다. 또 인터넷 중독, 포르노 중독이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폭력과 성적 학대를 양산하고 있다. 매해 오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담배는 막을 수 있는 사망 원인들 가운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담뱃갑에는 경고문구가 인쇄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주의하지 않고 있다. 실천되지 않는다면 정보도 우리를 보호할 수 없다.
하나님은 다양한 통로로 우리가 어떻게 건강하고 거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꾸준히 안내해 오셨다. 우리가 그분의 권고를 따른다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식사의 습관이 그들의 건강과 품성과 이 세상에서의 유용성과 영원한 운명에 얼마나 큰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마땅히 깨달아야 할 만큼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식욕은 언제나 도덕력과 지력에 예속되어야 할 것이다. 신체가 정신의 종이 될 것이지 정신이 신체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새 자녀 지도법, 39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그대가 사는 사회는 절제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합니까? 절제를 격려합니까? 아니면 절제를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지배적입니까?
* 각 자가 자기가 처한 사회 환경과 관련하여 대답을 찾아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는 대체적으로 절제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 같다. 우리가 속한 교회도 이 문제들에 대하여 아주 둔감해져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우리는 음식 절제부터 초기의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에 절제하도록 가르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2. 어떻게 하면 식사, 운동, 수면에 있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 예언의 신의 증언을 잘 수용하고, 이런 여러 가지 사실에 대한 전문가들의 권고를 올바르게 판단하여 각자에게 가장 알맞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익하다는 것이 각 개인의 경우에 항상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3. 조금 쓸 때 유익하면, 많이 쓸 때 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런 사고방식은 잘못되었습니까?
* 우리의 몸에나 가정에나 교회나 필요 한도가 있을 것이다. 이 한도를 넘어가면 해가 된다. 그래서 과부족이 다 잘못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나치는 것이나 부족한 것이 다 잘못이라는 말이다.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성경의 권도대로 모든 일에 절제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생활하도록 해야 되겠다.
* 활발한 토의를 위해 ‘토의를 위한 질문’을 적극 활용합시다.
기 억 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창 9:20~27, 잠 20:1, 23:31~35, 고전 6:19, 10:31, 벧후 1:5~9.
|중심사상|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사셨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몸을 돌볼 도덕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절제는 그런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열쇠이다.
한때 존경받는 판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알코올 중독에 빠진 극빈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지독한 술버릇은 명예뿐 아니라, 가정과 생계를 앗아갔다. 한때 엄숙한 판사복을 입었던 사람이 이제는 누더기를 입은 노숙인이 되었다. 부요하고 성공적인 삶의 최후가 이렇게 비참할 수도 있다.
2007년에 한 젊은 여성이 물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불필요하게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물을 마시고 사망했단 말인가? 그렇다. 한 라디오 방송국이 주체한 대회에서 물을 너무 마신 결과 그날 사망했다. 사인은 물 중독이었다. 물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며, 일반적으로 무해하지만, 과도한 사용은 죽음을 부를 수 있다.
이번 주 우리는 절제에 관하여 공부할 것이다. 세상은 과도한 것을 성공으로 여기고 있다. 위의 예가 보여 주듯이 건강에 유익하지 못한 것은 과감하게 피해야 하고, 건강에 유익한 물질이나 습관일지라도 정도껏 사용해야 한다. 적당함은 매우 중요 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간과되고 있다. 무엇이 참된 절제이며, 주께서 우 리에게 절제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핵심본문| 고전10:31
| 학습 목표 |
1. 깨닫기 : 건강에 해로운 물질과 습관들을 파악하고 배제 한다.
2. 느끼기 : 생활의 모든 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3. 행하기 : 스스로 훈련하고 절제하며 생활의 균형을 찾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돕는다.
교과 개요
01. 깨닫기: 은밀한 위험
A. 어떤 물질들과 습관들은 상대적으로 해롭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 과정을 거쳐서 커다란 중독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대는 술과 마약으로부터 자신과 가정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가?
B. 또 어떤 중독성 물질들이 있는가?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격려하고 지원할 수 있는가?
02. 느끼기: 균형과 조화
A. 식사, 노동, 성생활과 같이 일반적인 행위들도 균형을 잃을 수 있다. 우리의 생활이 균형에서 벗어날 때 그런 사실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생활의 다양한 측면에서 무너진 균형과 조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B. 심지어 신앙생활도 중독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 한가?
03. 행하기: 중용의 덕
A. 자제는 하나님의 특성이며, 은혜의 산물이다. 그대의 삶에서 더 많은 자제의 유익을 누릴 수 있는 영역은 어디인가?
B. 하나님께서 선사하신 자제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 그대가 밟아야 하는 단계들은 무엇인가?
요점: 절제는 단지 해로운 것을 삼가는 것뿐 아니라, 긍정적인 습관을 발전시키고 건강 에 유익한 모든 것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의미 한다.
일요일(5월 23일) 성경에 나타난 첫 번째 음주
그대는 무엇을 남기기 원하는가? 사후에 어떤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부자나, 유명인이나, 정치적으로 권력이 있는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그대에게는 무엇이 중요한가?
성경에는 훗날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이 나온다. 어떤 이는 훌륭한 인물로 기억되고, 어떤 이는 악명 높은 인물로 또 어떤 이는 양면의 특징을 가진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노아의 경우를 보면, 그는 처음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전도자로 기억됐던 것 같다. 120년간이나 기별을 전했지만, 극소수의 개심자만 얻었을 뿐이었고, 그마저 자신의 직계 가족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를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보셨다. 죄 많고 사악한 홍수 이전의 세계 가운데서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 은혜를 얻었다(창 6:8).
1. 노아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습니까? 창 6:9, 22, 7:1.
창6:9,22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
창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답: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을 다 준행하였다.
2. 노아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모든 것들을 행할 만큼 신실하고 순종적이었던 것은 사실 이지만, 성경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창 9:20~27을 읽어 보십시오. 이런 수치스런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창9:20~27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답: 우리의 의는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 자칫 우리가 그분과의 관계를 잃어버릴 때, 우리의 의로움 역시 잃게 된다.
노아는 최초의 술 취한 사람으로 성경에 기록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주님을 위한 선한 일에 열심이었고, 많은 책임을 짊어지고, 크게 존경을 받았던 그가 어떻게 그와 같이 실패했는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신은 모든 의사소통의 통로이다. 따라서 독성 물질이나 논쟁과 비난의 여지가 있는 물질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노아의 경험은 우리에게 경고와 교훈이 된다. 우리 가운데 건강하고, 신실한 자일지라도 유혹과 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음주가 나쁘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아는 술주정 상태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 노아 같은 사람도 그렇게 타락할 수 있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겠는가?
술은 영성을 파괴한다.
“나답과 아비후는 성전의 제사장이었는데 보통 불로 사용하는 것이 불법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엄하게도 속된 불로 그들의 향을 피웠다. 이 제사장들은 음주에 계속 방종하여 그들의 도덕적 감각이 마비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성질을 인식하거나 그들의 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깨닫지 못했다. 지성소에서 타오른 불길이 그들을 살라 버렸다.”(절제생활, 280)
<부가설명> 현세의 사람들은 재미를 위하여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주 재미있게 느끼던 것이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사노?”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재미있게 살도록 하신 것이 확실하다. 범죄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아담에게 땅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는데, 오늘날 말로 하면 노동하게 하신 것이다. 그 노동에 수고가 없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아주 재미있었을 것이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사망의 종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본래 주셨던 재미가 사라졌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재미없는 것이 된 것이다. 사단이 죄의 감각과 재미가 연합하도록 원래 재미를 변질시킨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재미와 감각이 찰떡궁합을 이루었다. 그것을 쾌락이라고 한다. 쾌락, 곧 육체와 정서의 감각적 쾌락이 재미가 된 것이다. 그것을 자극하는 것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요즘은 그것을 엔터테인멘트라고 하는 것 같다. 사단은 이것을 주도하고 있다. 술, 마약, 성, 감각적 오락, 이 모든 것이 바로 변질된 재미의 형상들이다. 그것들 중에 유익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유익한 부분으로 사람을 유혹하여 노아처럼 실수하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계략이다. 정신 차려야 할 것이다.
교훈: 구원받은 의인도 절제하는데 실패하면 어느 순간 크게 타락할 수도 있다.
월요일(5월 24일) 오늘날의 술
21세기 첫 10년 동안 매해 약 백팔십만 명이 술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 세계 사망자의 3.2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더 우려할 일은 술 소비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십대와 젊은이들 사이에 폭음(남성은 네다섯 잔, 여성은 세네 잔을 연속으로 마실 때 해당됨)이 유행하고 있고, 이런 현상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알코올은 과음, 숙취, 중독으로 이어지며 화학적으로 우리 몸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친다.
1. 음주를 경고하는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삿 13:2~8, 잠 20:1, 23:31~35, 사 5:11, 엡 5:18.
삿13:2~8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4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5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6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임하였는데 그 용모가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온 것을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7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잠20:1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잠23:31~35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33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34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사5:11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답: 아이를 가진 부모는 술을 멀리해야 하며, 술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감각을 흐리며, 인생의 저주가 되고, 방탕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삼손의 어머니에게 임신 중 음주를 경고하셨다. 이는 알코올이 태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과학적 진술이 나오기 훨씬 이전의 언급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솔로몬도 술, 특별히 포도주와 맥주의 영향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는 자신의 관찰과 경험을 통하여 술이 사람의 행동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지, 그것이 어떤 후회를 가져오는지 묘사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도 술에 취한 선지자가 얼마나 부적절하게 행동하는지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다른 성경기자들의 경고를 확인시켜 주었다. 바울 역시 술에 관한 경고의 기별을 남겼다. 성경은 음주를 대체로 부적절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술은 사단이 만든 최고의 덫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위험한 약물 때문에 몸과 마음을 잃고 죽어갔는가! 그러니 우리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타협하지 말고, 이 위험한 덫을 철저하게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술이 주는 엄청난 피해
“술의 영향으로 매일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사고들을 생각해 보라. 어떤 기차의 승무원은 신호에 유의하는 일을 무시하거나 명령을 오해한다. 기차가 가는 도중에 충돌 사고가 생겨 많은 생명을 잃어버린다. 혹은 기선이 좌초하여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수장된다. 그 사건의 원인을 조사하여 보면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음주의 영향을 받고 있었음이 판명된다. 술을 마시는 습관이 어느 정도이면 사람의 생명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전혀 술을 마시지 않을 때에만 맡길 수 있다.”(치료봉사, 331)
<부가설명> 취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사전은 이렇게 정의하였다.
“취ː―하다(醉―)【자동사】【여 불규칙】
1. 먹은 술이나 약 기운이 온몸에 퍼지다.
2. 많은 물건·사람에 시달려 정신이 흐려지다.
3. 무엇에 열중하여 황홀해지다. 도취하다.”
이 정의를 종합하여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에 열중하여 황홀해지고 정신이 흐려지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성으로 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을 뜻하는 말이며, 자율신경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맑은 정신으로 사물과 사건을 바르게 판단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목마르다고 하실 때, 사람들이 포도주에 몰약을 섞어서 스펀지에 적셔 입에 대어 주었으나 마시지 않으셨다. 몰약은 마취제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죄를 처리하는 중요한 순간에 정신을 흐리게 하려는 것이 사단의 수단이었다. 우리가 비록 술이나 마취성 식물에 취하지 않는다 해도 일이나 오락이나 엔터테인멘트에 취할 수 있다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교훈: 술은 가장 위험한 사단의 덫이며, 성경은 반복적으로 그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화요일(5월 25일) 하지만 술이 심장 건강에 좋지 않습니까?
1970년대 초부터 포도주와 술이 심장 건강에 주는 유익에 관한 논쟁이 뜨겁게 일어났다. 이 주제에 관하여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많은 연구 내용들이 비전문적인 과학 잡지에 실렸었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 인구에 대한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이 이론 전반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주류회사 내에 이미 형성된 관심은 그 주제를 공공연하게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신도들이 규칙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아서 건강에 불이익을 당할까봐 불안해하기도 했다.
술이 젊은이들의 건강에 이롭다고 주장하는 어떤 문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중년 세대의 심장 혈관에 술이 효험이 있다는 주장이 최근 과학적 논문에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효능을 주장하는 연구결과를 보면, 전에 습관적으로 술을 마셨던 사람들을 비 음주집단에 포함시켰다. 이 사람들 중에 일부는 술이 건강 문제를 일으켜서 술을 끊은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보다 건강하지 못했다. 자료를 재분석하고, 연구의 설정에 나타난 결함들을 수정하였더니, 비음주자에 비하여 가벼운 음주 자들이 건강상 유리할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할 만한 뚜렷한 근 거가 나타나지 않았다. 더욱이 실험대상자들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더 건강할 것이 라고 예상했던 가벼운 음주 자들은 다른 대상자들과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들은 잘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사회적 경제적 지위도 높았고, 의료 시설 이용 측면에도 유리했다. 이런 조건들이 건강 증진과 장수와 관련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결국 이런 연구들은 가벼운 음주의 이로움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생활 습관을 증명한 것이라고 봐야 옳다.
이런 역학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미 술의 해로움을 자세하게 알려준 건강 기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술의 광범위한 위해성을 못 본 채 하고 대신 존재하지도 않는 건강상의 효능을 추구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술이 안겨 주는 피해는 운전 장애와 위험을 감지하는 판단력 결여에서부터 시작해서 뇌손상, 폭행, 사고, 가정폭력, 간경화, 암, 중독, 심지어 치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단 한 잔의 술도 신경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고, 알코올 의존성을 촉발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술이 건전한 판단력과 성령에 반응하는 능력에 손상을 준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어리석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이다.
마시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적당한 음주란 술주정뱅이가 되도록 가르치는 학교이다.”(절제 생활, 30)
“이 무서운 취하는 약을 어느 정도 마셔야 인간의 생명이 안전할까? 술을 엄금할 때에만 안전할 수 있다. 술로 정신을 혼란케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취하게 하는 것도 입술을 통해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상동, 35) “적당하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거기서 사람이 술 마시는 이력을 위하여 교육을 받는 학교가 된다. 그럴지라도 이 연한 자극물들의 작용이 너무나도 교활하여서 그 희생물이 된 자가 자기의 위험을 알아채기도 전에 주객(酒客)의 대로(大路)에 들어서게 된다.”(치료봉사, 332)
<부가설명> 이런 것들이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는 연구들은 그런 주장하는 쪽으로는 유익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신체 전체에 미치는 다른 영향에 대하여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을 듣거나 읽을 때에 우리는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포도주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커피도 어느 방면에는 좋다는 주장이 여러 번 보도된 것을 보았다. 그 방면에 유익하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을 더 해친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주신 기별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교훈: 약간의 술이 건강에 이롭다는 속설은 진실이 아니며, 오히려 한 잔의 술로 시작한 음주가 이후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다.
수요일(5월 26일) 모든 것에 절제함
절제는 때로 옛날 말처럼 들린다. 우리는 이 말을 들을 때 술과 담배라는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춰 활동하는 단체나 조직을 떠올린다. 재림교회 초기에는 이런 운동을 선전하기 위해 담배를 씹고 뱉는 역겨운 습관을 가지고 있는 젊은 여자들에게 경고하는 노래도 불렀다. 그러나 지금 같은 예민한 세대에서는 절제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그 단어의 언급은 가급적 피하고 있는 형편이다.
절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좀 더 쉬운 접근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가 절제 문제를 소극적으로 다루는 동안 우리 교단의 어떤 교회 들은 한때 세상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했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 벧후 1:5~9을 읽으십시오.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특별히 우리의 건강습관에 어떻게 적용 될까요? 이런 성경의 훈계를 어떻게 우리 삶에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벧후1:5~9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답: 신앙의 여정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완성되는데, 그 가운데는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우애가 포함되어 있다. 절제는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품성을 형성하는 일에서도 필수적이다.
절제란 흡연, 불법 약물 복용, 음주, 차, 커피, 청량음료를 마시지 않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절제는 좋은 것일지라도 과도하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대의 근무 습관은 어떤가? 그대는 적절한 근무시간을 지키는가? 하나님, 가족, 휴양, 체력단련, 봉사를 위한 시간이 있는가? 수면시간은 어떤가?
2. 그대의 식습관은 어떻습니까? 그대는 돼지고기는 물론이고 어쩌면 닭고기도 안 먹을 것 입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지는 않습니까?
답: 나쁜 것을 가리는 것만이 절제가 아니다. 좋은 것도 과도하지 않게 하는 것이 절제의 기본 정신이다.
우리는 햇빛이 좋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과도하면 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운동도 그렇다. 대부분은 부족해서 문제지만, 지나친 운동 역시 몸을 해친다. 성생활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지만, 과도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엘렌 G. 화잇은 참절제의 핵심을 다음과 같은 짧은 문장으로 요약하였다. “참된 절제는 해로운 것은 모두 완전히 버리고 건강에 이로운 것을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친다.”(부조와 선지자, 562)
술과 마찬가지로 해로운 것
“절제의 원칙들은 다만 주정음료의 사용금지 그 이상으로 훨씬 더 전진해야 한다. 자극성 식물과 소화하기 어려운 음식을 사용하는 것은 흔히 주정음료와 똑같이 건강에 해롭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술 취함의 씨앗을 심는다.”(절제생활, 138)
<부가설명>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는 말씀이 절제의 대강령이라고 생각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24) 이 말씀은 생활의 염려를 방탕과 술 취하는 것과 같은 반열에 두었다. 일상생활에 대한 염려가 지나치면 그것도 술 취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님의 날을 도덕같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절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생활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가장 올바른 행복이기 때문이다.
교훈: 절제란 나쁜 것은 금하고, 좋은 것은 적당하게 하는 것이다.
목요일(5월 27일) 값을 주고 삼
우리 몸은 우리 것이고,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사고방식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살더라도 자신 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1. 다른 사람의 부절제가 어떤 방식으로 그대와 그대가 아는 사람을 해롭게 할 수 있습니까? 또는 그대의 부절제한 행동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해칠 수 있습니까?
답: 각 사람이, 한 사람의 부절제가 여러 사람에게 피해와 고통을 안겨 준 사례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
성경은 우리 몸을 중요한 거처로 취급한다. 몸은 우리의 유익과 생각, 계획, 행동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몸은 사실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래서 몸을 관리하는 것은 큰 특권이며 중요한 책임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몸보다 집을 더 많이 관리하고 있다. 이는 순서가 바뀐 것이다.
2. 우리의 몸을 돌보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다음의 성경절들은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가정할 때만이 본문이 의미 있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 2:19~21, 고전 6:19~20.
요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답: 우리 몸을 건강하게 세우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허무셨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것이 되었다. 따라서 건강은 우리가 소홀히 여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몸을 성전으로 비유하셨다. 바울도 이러한 주제를 종종 강조하며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어떤 대가가 치러졌는가? 십자가를 마음속에 그리며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묵상해 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우리의 가치와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해로부터 우리의 영과 더불어 육체도 관리해야 한다는 거룩한 책임감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의 피를 흘리도록 허락하신 것은 하늘을 허비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으며 우리의 모든 것이 그분의 소유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실한 청지기처럼 우리 몸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임
“인생의 모든 일에 절제를 가르치고 실천하여야 한다. 먹고, 마시고, 자고, 입는 일에 절제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이다. 영혼의 성전으로 들어온 진리가 몸을 다루는 방법을 지도해 줄 것이다. 인간의 건강에 관련이 있는 것이면 어떤 것도 무심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영원한 행복은 이생에서 우리가 우리의 시간, 힘, 감화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새 자녀 지도법, 394)
<부가설명>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의 관리자로 임명되었다. 물질에 대한 관리만이 아니다. 우리가 선한 청지기가 되는 것은 재물에 대한 것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리하도록 맡긴 모든 것의 청지기이다. 그 중에 우리의 몸이 포함된 것은 당연하다. 그리스도인은 건강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이식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계속 아프다면 그 차체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림성도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것이 자율적인 것이 되어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6~18)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7:1)
교훈: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예수께서 피로 구속하시며, 성령께서 거하시는 값진 존재이다.
금요일(5월 2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치료봉사, 161~169 “시험받는 자들을 도와줌”, 171~182 “부절제한 사 람을 위한 봉사”
세계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비만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과식을 장려하고 있다. 음식과 비만, 운동부족 때문에 문제가 되는 제2형 당뇨병은 십대에서도 발생되고 있다. 또 인터넷 중독, 포르노 중독이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폭력과 성적 학대를 양산하고 있다. 매해 오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담배는 막을 수 있는 사망 원인들 가운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담뱃갑에는 경고문구가 인쇄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주의하지 않고 있다. 실천되지 않는다면 정보도 우리를 보호할 수 없다.
하나님은 다양한 통로로 우리가 어떻게 건강하고 거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꾸준히 안내해 오셨다. 우리가 그분의 권고를 따른다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식사의 습관이 그들의 건강과 품성과 이 세상에서의 유용성과 영원한 운명에 얼마나 큰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마땅히 깨달아야 할 만큼 깨닫는 사람은 드물다. 식욕은 언제나 도덕력과 지력에 예속되어야 할 것이다. 신체가 정신의 종이 될 것이지 정신이 신체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새 자녀 지도법, 39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그대가 사는 사회는 절제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합니까? 절제를 격려합니까? 아니면 절제를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지배적입니까?
* 각 자가 자기가 처한 사회 환경과 관련하여 대답을 찾아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는 대체적으로 절제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 같다. 우리가 속한 교회도 이 문제들에 대하여 아주 둔감해져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우리는 음식 절제부터 초기의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에 절제하도록 가르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2. 어떻게 하면 식사, 운동, 수면에 있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 예언의 신의 증언을 잘 수용하고, 이런 여러 가지 사실에 대한 전문가들의 권고를 올바르게 판단하여 각자에게 가장 알맞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익하다는 것이 각 개인의 경우에 항상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3. 조금 쓸 때 유익하면, 많이 쓸 때 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런 사고방식은 잘못되었습니까?
* 우리의 몸에나 가정에나 교회나 필요 한도가 있을 것이다. 이 한도를 넘어가면 해가 된다. 그래서 과부족이 다 잘못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나치는 것이나 부족한 것이 다 잘못이라는 말이다.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성경의 권도대로 모든 일에 절제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생활하도록 해야 되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