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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 성실성- 온전함과 거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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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10-05-28 23:45 조회6,3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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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6월 5일(안식일) 일몰: 오후 7시 50분

제 10 과 <성실성: 온전함과 거룩함>

<記憶節>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 2:7~8).

▣ 성실성(誠實性)은 정성스럽고 진실 된 품성을 말하며,
반대말은 불성실(不誠實), 태만(怠慢), 나태(懶怠)함, 게으름을 말한다.

▣ 인생의 덤
많은 사람이 성공을 눈부신 한순간의 비약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일 뿐 인생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시간을 풍요롭게 채워 나갈 때 찾아온다. 2002년 일본에 2개의 노벨상을 안겨준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명예교수와 다나카 고이치 연구원은 노벨상을 수상하기까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고시바 박사는 중학교 1학년 때 소아마비를 앓아 장교나 클래식 연주가가 되고 싶은 꿈을 접었다. 그때 우연히 아인슈타인의 책을 읽고 물리학에 빠져들었고 평생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살았다. 다나카 고이치 박사도 평범한 샐러리맨이며 전기공학도 출신의 중소기업 주임에 불과했다. 시미즈제작소측이 노벨상 수상 후 임원으로 승진시키려 했지만 거절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노벨상은 인생의 덤이었을 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체가 성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에게 특별한 달란트를 주셨다. 다만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가 많을 뿐이다. 그리고 달란트를 받았어도, 맡은 달란트에 성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다.

▣ 변화된 청년
방탕하여 타락한 생활을 하던 청년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그의 변화에 놀라워하며 물었습니다.
"자네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나?"
"내가 예수를 믿는다네."
"아니, 자네가 교회에 나간다고? 그럼, 예수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셨지."
"그럼, 예수가 어느 마을에서 태어났고, 몇 살 때 죽었는지는 아는가?"
"글쎄, 어디 마구간이었는데, 또 몇 살 때였더라.…"
청년이 얼른 대답을 못하자 그 친구는 말했습니다.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예수를 믿는다는 거야.
그리고 자네 옷차림도 이게 뭔가. 옛날의 그 멋진 모습은 어디가고…"
그때 청년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자네의 말대로 난 예수에 대하여 잘 모르지만 그를 믿고 난 후에는 성실한 사람이 되었고, 내 가족과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게 되었지.
난 항상 그분의 은혜를 입고 산다네. 이래도 내 모습이 초라한가?"

<要點>
건강한 습관을 생활화하는 법칙들은 성적(性的), 정신적(精神的) 순결(純潔)을 지키기 위해 고안되었다.
이런 법칙들은 육체의 상태를 호전(好轉)시키고, 사고를 명석하게 만들며,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일요일(5월 30일)
<광야(曠野)의 예수님>

▣ <3대 시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마귀는 영물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약점을 기가 막히게 잘 압니다.
격투기에서 공격할 때 상대방의 가장 약한 급소를 가격하는 것처럼 마귀도 우리의 급소를 찌릅니다. 급소가 어딥입니까? (창 3:6) 에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것을 잘 요약해 주는 구절이 (요일 2:15~16)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독사 중에 ‘링카루스’라는 코브라의 한 종류가 있습니다. 이 코브라는 침을 뱉는 것처럼 상대방의 눈을 정확히 겨냥해서 독을 분사합니다. 그러면 짐승이든 무엇이든 눈이 멀어 꼼짝 못하고 결국 잡아먹히고 맙니다.
마귀도 마찬가지 우리 인간의 급소를 공격함으로 영적인 눈을 멀게 해놓고 멸망시킵니다.

마귀는 어림없는 짓이었지만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제 딴에는 약점을 노렸습니다.
40일간 금식한 예수님은 주리셨는데, 바로 그때 시험을 한 겁니다.
본문을 보면 세 가지 시험을 합니다.
이것은 마귀에 아담과 하와에게 시험했던 것과 같은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가장 약한 부분입니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입니다.

◇ <육신(肉身)의 정욕(情慾)(육욕(肉慾))>
맨 먼저 마귀는 예수님의 육신의 욕구를 자극합니다.
예수님도 인간으로 오셨기에 식욕을 갖고 계십니다. 그것을 겨냥한 겁니다.
마 4:2절(하)~3절.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돌을 갖고 얼마든지 떡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말을 듣고 할 수 없죠. 더구나 금식 기도 중인데 말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훼방 놓으려고 이런 시험을 한 겁니다.
만일 예수님이 육욕을 따른다면 어떻게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육욕(肉慾)만 따르면 좋을 것 같지만 나중에는 그 욕망에 사로잡혀 망하게 됩니다.
육신의 쾌락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순간은 즐거운 것 같지만 차츰 무감각해져서 더 큰 자극을 원하고, 나중에는 중독 증세까지 보이고 결국 인생을 망치고 맙니다. 예수님은 이런 육욕의 시험을 단호히 거부하고 승리하셨습니다.

◇ <안목(眼目)의 정욕(소유욕)>
마귀는 두 번째로 다른 시험을 합니다. 이것은 아마 환상 중에 일어난 일 같습니다.
(마 4:9절).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마귀는 높은 데 가서 예수님에게 천하만국의 화려한 것들을 보여줍니다. 절하면 다 준다고 시험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시험입니다. 마귀의 말은 거짓말이죠. 만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것입니다. 마귀에게 절한다도 얻는 게 아니고, 마귀에게 속아서 종노릇 하는 겁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욕심을 내고 소유하려고 합니다. 소유하기만 하면 행복해질 줄 압니다. 그러나 착각이죠. 소유 자체가 진정한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족할 때 진정한 만족이 있는 겁니다. 더 많은 소유를 위해 죄를 짓고 부정한 짓을 하면 오히려 마귀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그로 인한 만족보다 갈등과 고통이 더 큽니다. 세상 사람들이 돈이면 무엇이든 하지만 그 돈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 <이생의 자랑(명예욕)>
세 번째 시험은 무엇입니까?
(마 4:6절).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마귀는 예수님을 이끌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웁니다.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받아줄 것이고, 백성들이 환호하게 될 거라고 시험합니다. 명예욕을 자극한 겁니다. 사실 메시야니까 빨리 대중들 앞에 유명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것은 유명해지려는 게 아니라 십자가 지러 오신 겁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인간을 구원하는 게 중요합니다. 인기와 명예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는 육신의 일만 해 주면 됩니다. 결국 이 시험은 예수님을 넘어뜨리려는 겁니다.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런 시험을 어떻게 이기고 승리하셨습니까? 시험은 누구나 다 받습니다. 그러나 이기는 사람이 있고, 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이깁니까? 예수님의 모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절(상).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시험을 이깁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다스림, 지배를 받는 상태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하면 번번이 집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과 욕망으로 하나님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구체적으로 성령 충만하면 어떻게 됩니까?

◇ <승리의 확신>
예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예수님의 다스림 속에서 승리를 확신하게 됩니다.
영적 전쟁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해야 됩니다.
(요일 3:8)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승리했습니다. 마귀의 일을 멸(滅)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시험은 뻔합니다. 승리자 예수님만 의지하면 충분히 이깁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맞서 대적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 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부디 이런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 <영적(靈的) 경계태세(警戒態勢)>
마귀는 언제 어디서 시험할지 모릅니다. 방학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항상 경계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혹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도 영적으로 경계를 풀면 곤란합니다. 군대에서도 휴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군 휴양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도 보초가 있습니다. 경계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 휴식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영적으로는 결코 해이해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고합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깨어 있습니까?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弱)하도다 하시고” 우리 영혼은 말씀과 기도(祈禱)로 깨어 있는 겁니다.

다윗이 신앙의 거장인데 왜 실패했습니까? 왕이 된 후 방심해서 그랬습니다.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귀가 시험했고 여지없이 무너진 겁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인 사건이 그래서 벌어진 겁니다.

◇ <영적무장(靈的武裝)>
전쟁을 치르기 위해 무장하는 것처럼 우리도 마귀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 영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엡 6:1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군인이 완전무장을 하듯 영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두 수비를 위한 것들이고, 오직 한 가지만 공격용 무기인데 바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도 마귀의 시험이 있을 때 예수님이 무엇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승리합니까?
4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되었으되”
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1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번번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함으로 승리하십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말씀을 묵상하고 담아두면 마귀의 시험을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고 마귀의 시험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 <결단 (타협거절)>
마귀에게 패배하는 가장 큰 이유는 타협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조금만 틈을 줘도 비집고 들어와서 시험합니다.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and do not give the devil a foothold - NIV) 마귀가 시험하도록 발판을 만들어 주면 안 됩니다.
작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그게 점점 자라서 나중에는 죄를 짓고 멸망하게 됩니다. 이번에 딱 한번만 ……. 이게 문제입니다. 한번이 두 번, 두 번이 세 번,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망(亡)하게 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4~15)

그러므로 우리는 타협하고 핑계 대는 것을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권총에 탄환을 장전하면 저절로 발사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죄성이 있고 연약하지만 마귀가 시험한다고 무조건 넘어지는 게 아닙니다. 자기기 응해야 넘어지는 겁니다. 마귀가 아무리 시험해도 내가 응하지 않으면 절대 죄를 짓지 않고 실패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결단해야 합니다. 단호하고 신속하게! 첫 판에 결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가장 쉽습니다. 한두 번 시험에 들고 범죄한 후에 나중에 만회하고 승리하려면 몇 배 더 어렵습니다. 성경 인물 중 두 사람의 경우를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요셉과 삼손의경우입니다.

▷ 요셉이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할 때의 일입니다. 착실해서 인정받아 가정 총무가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계속 유혹합니다. 그때 어떻게 합니까?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혈기왕성한 청년입니다. 잘만 하면 그 여자를 통해 큰 이득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도 인간인데 어떻게 욕망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결단합니다.
(창 39:9,10,12)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得罪)하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요셉은 결단함으로 영적으로 승리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고난을 당합니다.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넘치도록 보상해 주십니다.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겁니다. 그가 첫판에 결단함으로 비교적 쉽게 승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반면 삼손은 어떻습니까?
그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나귀 턱뼈 하나로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용사입니다. 그런데 기생 들릴라에게 유혹을 받아 넘어집니다.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있다가 머리 깎이고 눈 뽑히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끌려가 광대처럼 놀림감이 됩니다. 그제야 회개한 삼손이 마지막 기도를 합니다. 삿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 다행이죠. 나중에라도 회개하고 승리했으니까. 하지만 아쉬움도 많습니다. 첫판에 시험을 이겼었더라면 그런 큰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광야 시험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심으로 우리를 대속하는 십자가를 질 수 있었음을 기억하십시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호시탐탐 엿보고 시험하는 마귀를 대적함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부디 이런 확신을 갖고 우리 대장 예수님과 함께 승리의 기쁨과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승리함>
“사단의 시험이 아무리 기묘하게 꾸며진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성실성을 흔들리게 할 수는 없었다. 하늘 아버지께 대한 그리스도의 영구적인 신뢰심은 요동할 수 없었다.”(가려뽑은 기별 1권, 275)
“예수님께서는 극도의 시련을 당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성실성을 끝까지 보존하시다가 만일 시험을 이길 다른 방도가 없다면 하나님의 천사가 당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파견될 것을 아셨다.”(상동, 285)

◉ 조금씩 타협하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에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월요일(5월 31일)
<성실성을 유지하기>

▣ 근실한 사람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 22:29)
이탈리아의 지체 높은 공작이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열심히 상자를 만들고 있는 노동자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공작은 노동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만들고 있는 그 상자를 어디에다 쓸 생각입니까?”
“저는 여기에다 꽃씨를 뿌릴 생각입니다”
공작은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흙을 담아야 하겠군요.
기왕에 흙으로 채울 상자라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깎고 다듬는단 말이오?
쓸데없는 일에 애를 쓰고 있군요. 그렇게 훌륭하게 만든다고 해서 누가 알아준답니까?”“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사렛에서 목수 일을 하신 예수님이었다면, 주어진 일을 아무렇게나 하셨겠습니까?”
그 노동자의 이름은 미켈란젤로였습니다.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은 사업을 번창시킵니다. 열심을 갖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하므로 사업이 번창 일로를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최선을 다하며 나아감으로 중단 없는 발전을 이루고 마침내 큰 성공을 거두고 명예를 얻게 됩니다.

▣ 성실히 행하는 사람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잠 19:1)
영국에 메리 존스라는 시골 처녀가 있었습니다. 메리는 남의 집 가정부 일을 하며 푼푼이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돈을 모으는 것은 한 가지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평생소원은 성경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어요. 마침내 메리는 성경을 살만큼의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무려 40㎞를 달려가 성경을 구입했습니다. 메리에게 성경을 판 사람은 그녀의 순수한 신앙,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성경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는 기관설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영국 성서공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향한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물질의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가난해도 마음이 정직과 성실로 부요하면 그것이 우리의 삶에 큰 행복을 가져오며, 우리의 인생을 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의 부요보다는 정직과 성실을 우리의 삶의 자원으로 하여 참으로 행복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겠습니다.

▣ 정직과 성실, 투지
이 사람은 고등학교 때 코카콜라 회사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했다. 그가 하는 일은 바닥에 흘러내린 콜라를 닦아내는 것이었다. 한 번은 50개의 콜라 병이 든 상자가 터졌다. 아무도 이것을 닦아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검은 피부의 한 소년이 바닥에 꿇어 엎드려 콜라를 열심히 닦아내고 있었다. 소년은 자메이카 출신이었다. 가정은 항상 가난했다. 학교성적도 하위권이었다. 그러나 소년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장점이 있었다. 그는 정직하고 성실했으며 시련 앞에 용감했다. 결국 그 소년은 '정직'과 '성실'과 '투지'를 자산 삼아 미국의 합참의장이 됐다. 이 사람의 이름은 '걸프전의 검은 영웅'인 콜린 파월이다. 그는 백인도 아니고 앵글로 색슨족도 아니다. 그러나 미국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콜린 파월은 그 비결을 간략하게 밝혔다.
" 역경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역경에 굴복하면 고난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 (창 39: 6~12)
성실한 사람 요셉은 여주인의 유혹(誘惑)을 물리쳤고,
◈ (삼상 24:1~10)
성실한 사람 다윗은 친히 원수 갚으려는 유혹을 이겼으며
◈ (단 6:1~10)
성실한 사람 다니엘은 조서(詔書)에 왕의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기도를 중단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마음의 청결>
“이들 성실한 히브리 청년들은 본성적으로 위대한 재능을 소유 했었고 최고의 지적 교양을 받았으며 이제는 존귀한 지위를 획득 하였으나 이 모든 사실들로 인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능력은 하나님의 은혜의 거룩하게 하시는 감화에 굴복되었다. 그들은 확고한 성실성으로 암흑 가운데서 그들을 불러내어 당신의 기이한 빛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찬송을 돌렸다. 허다한 무리들 앞에서 그들을 놀랍게 구원하신 그 구원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이 나타났다. 예수님께서는 극렬한 풀무 불 가운데서 그들 곁에 계셔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교만한 바벨론 왕으로 예수님 외에는 그렇게 하실 분이 없으시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셨다.”(성화된 생애, 39)

◉ 성실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그만 타협도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화요일(6월 1일)
<영적(靈的)인 생활의 성실성>

▣ 태어나서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이 인생의 품성을 꼴 짓게 된다.
태어나서 불교의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은 목탁소리나 사찰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가 어색하지 않을 것이지만 회교국가에서 태어나서 그러한 정서에서 자라난 사람이 불교의 사찰을 본다든지 그곳에서 행하는 것을 보면 그 모든 행위가 어색하고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우리말의 고사 성어(故事成語)에 보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라는 말이 있다.
즉 맹자가 어렸을 때 묘지 가까이 살았더니 장사 지내는 흉내를 내기에, 맹자 어머니가 집을 시전 근처로 옮겼더니 이번에는 물건 파는 흉내를 내므로, 다시 글방이 있는 곳으로 옮겨 공부를 시켰다는 것으로,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음을 이르는 말이 있듯이 환경과 행습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서 6장)에 특히 3절부터 9절까지에 아이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기를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 하셨고 , 그와 같이 실행한 사람들은 모두가 늙어서도 그 말씀에서 이탈하지 않았고 떠나지 않았다.
성경에서 모본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도 유혹이나 시험이 닥칠 때면 “기록되었으되”라고 기록된 말씀을 상기시키셨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요셉도, 다니엘도, 다윗도, 사도 바울도, 넘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기록된 말씀을 붙잡고 말씀 안에 있을 때였다.

◉ (엡 3:14~21)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의 신앙이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려서 점점 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변함없는 성실성을 갖게 되기를 구하고 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은 아주 많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힘을 주실 수 있다. 그분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분은 성형외과 의사가 아니라, 심장외과 의사 같은 분이다. 그분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하신다. 이런 변화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과 믿음에서 이르러 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 삶의 완전한 변화를 추구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하심으로 충만하기를 바라신다. 바울은 우리 안에 숨어있는 힘을 깨워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우리 안에 필요한 힘은 하나님의 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요구하고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주실 수 있는 분이다. 문제는 그분이 그렇게 일하시도록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여느냐, 아니면 그 대신 우리의 육체적 본성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겠느냐 하는 것이다.

◉ <참된 변화의 근원>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변화하게 된다. 하나님과 우리 구주의 사랑을 깊이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성품의 완전함을 명상함으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주장함으로 우리는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교회에 보내는 권면, 80)

◉ 우리는 내부적으로 결함이 많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으로 완전하게 만든다.

수요일(6월 2일)
<성적(性的) 성실성>

▣ 이 세상의 전쟁과 다툼과 끔찍한 사건 뒤에는 한결 같이 부도덕한 남녀들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연결되어있다.
보디발의 아내도, 다윗과 밧세바와의 관계도, 악명 높은 헤롯가의 가문(家門)도 부적절한 이성관계로 복잡하고 악명 높은 역사의 기록에 남아있는 것이다.
이런 한 인생들의 속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성경의 여러 곳에 성적(性的)성실성을 위한 교훈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 [롬1:26,27]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 [고전6:15~18]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 [유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성적 타락은 심각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 <다름 아닌 자신을 경계함>
“동물적인 욕정에 빠지면 빠질수록 그 욕정은 더욱 강해지며 방종에 대한 욕구는 더욱 격렬하여질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녀들은 그들의 의무에 대하여 각성하도록 하라.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방면에서의 부절제 때문에 신경과 두뇌의 마비로 고생하고 있다.”(재림신도의 가정, 124)

◉ 성(性)은 결혼관계 내에서만 안전하며, 그 외의 사용은 영적, 정신적, 육체적 건강과 건전한 인간관계에 해를 끼친다.

목요일(6월 3일)
<믿음대로 행하기>

▣ 인간의 믿음은 아는 것만큼 만 믿게 된다.
사람들의 얕은 생각들이 눈에 보이는 대로 귀로 들은 대로 판단하고 여기고 정죄를 내리곤 한다.
그러므로 어느 사람들은 하나님의 천연법칙을 그대로 믿고 따르며 살지만,
많은 사람들은 얄팍한 잔머리를 굴리며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산다.
옛날에는 먹고 마시고 보는 것들이 참으로 단순해서 그 단순한 방법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별 문제가 없이 건강하게 살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과학이라는 문명이 발전되면 될수록 인간의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고질병들로 고생고생 하다가 단순한 하나님의 처방대로 실천하면 망가진 육체나 영적인 문제들이 회복되는 경험들을 심심치 않게 우리주변에서 볼 수 있다.

◉ (롬 12:1~2)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주님께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영(靈), 육(肉), 혼(魂) 전체가 온전히 주님께 바쳐져야 한다.
이는 모든 영역의 성실성에 대한 요구이다.
성실함이란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믿음을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건강한 삶에 대한 원칙들은 큰 틀에서 대부분 수용되고 있다.
의료계에서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이제 가르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알고 있는 지식과 신념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은 건강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우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우리가 운동하지 않는다면 신실함의 부족을 보이는 것이다.
‘깨끗한 물과 적당량의 햇빛은 건강에 매우 유익하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원칙을 실천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 비만이 유행병처럼 수많은 나라에 퍼져갔을 때, 폭식의 위험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각자 먹어야 할 음식의 양, 음식의 종류를 정해야 한다. 특히 체중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담배는 세계적인 사망 원인 가운데 가장 흉악한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술과 마리화나로부터 코카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중독성 물질들이 인명을 앗아가고 있다. 이제는 신선한 과일과 야채, 통 곡물과, 견과류를 예언의 신만이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정부에서조차 고지방 육류의 사용을 줄이도록 권장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채식주의 식습관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 특히 우리가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안다면 말이다.
“진실한 신앙과 건강의 법칙은 병행한다. 남녀들에게 건강을 파괴하고, 영혼을 타락시키고 거룩한 진리를 마음에 새기지 못하게 방해하는 죄악적인 만족을 깨트려 버릴 필요를 제시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할 수가 없다. 남녀들은 모든 습관과 모든 행동에 대하여 신중한 견해를 갖고 육체의 불 건강 상태를 초래하여 검은 구름이 마음을 가리우는 것들을 즉시 버리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빛을 지닌 자들이 높은 표준을 그들 앞에 언제나 간직하고 있기를 바라신다. 교훈과 모본을 통해 그들은, 만일 따르기만 하면 불행과 타락과 질병과, 육체와 영혼 둘 다 죽음으로 이끌어 갈 사단의 거짓 표준보다 그들의 완전한 표준을 더 높이 쳐들어야 한다.”(교회증언 7권, 136)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임
“세상 사람들과 불신자들은 언행일치의 일관성에 찬사를 보낸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행위가 그들의 믿음과 일치될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진리의 하나님이셨음을 전에 없이 강하게 확신할 것이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모든 나무마다 그 열매로 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우리가 맺는 열매이다.”(증언보감 1권, 165)

◉ 건강 법칙에 관한 진리와 믿음이 우리 삶에 드러나야 기별이 된다.

◉ “인류의 가장 큰 결핍은 인물의 부족이다. 그 인물이란 매매되지 않는 사람, 심령이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 죄를 그대로 죄라고 부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마치 나침반의 바늘이 틀림없이 남북을 가리키듯이 양심이 그 의무에 충실한 사람, 비록 하늘이 무너질지라도 옳은 일을 위하여 굳게 서는 그런 사람들이다.”(교육, 57)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 곧 피할 수 없는 중대한 일이 있다. 우리의 모든 습관과 입맛과 기호가 생명의 법칙과 건강 법칙에 조화되도록 교육받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가장 양호한 신체적인 건강 상태를 확보할 수 있으며, 선악을 분별하는 명료한 정신을 소유할 수 있다.”(식생활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 28)
“우리의 위험은 결핍에서가 아니라 풍부에서 온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부절제의 유혹을 받는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손상되지 않는 힘을 보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든 해롭고 타락시키는 방종을 완전히 금하는 것은 물론이요,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선물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엄격한 절제를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식생활 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 29)

<초점(焦點)>

온전함과 거룩함은 성실한 삶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며,
성실한 삶이란 조그만 타협도 합리화 하거나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사단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을 하며,
영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쉼 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해온다.
우리의 무기인 기록된 말씀만이 우리를 성실한 사람으로,
온전함과 거룩한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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