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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이제 이 말을 들을지어다(질문, 대답, 설명) 11/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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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11-05 20:16 조회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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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이제 이 말을 들을지어다!

(11월 14일 안식일/일몰 오후 5시 22분)

 

기억절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

 

● 연구 범위 -민 13:26-30; 렘 36:20-26; 대하 36:15, 16; 마 23:30-35; 고전 10:6-12

 

 오늘날 ‘자신만의 진리’를 용감하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 경험, 자기 생각, 원하는 것, 자신의 기준, 자기 신념 그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모든 ‘진리’는 타당하며 침묵 당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진리’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 진리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에 어긋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실수를 돌이키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거짓을 붙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진리에 호응하며 자기 행동을 바꾸는 사람도 있고 저항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이어져 왔다.

 성경의 선지자들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메시지를 전하도록 부름받을 때도 많았다. 그 결과 비난받고 배척당하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을 겪거나 실제로 살해된 이도 있다(히 11:32-38). 그럼에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기별을 충실히 선포했다. 하나님의 예언을 전하는 일은 자신들이 선택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것은 생명을 구하는 가르침이었기에 선지자 개인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메시지는 전달되어야 했다.

 

말씀 속으로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민 13:30)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불사르지 말도록 아뢰어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렘 36:25)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마 23:30, 3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 12)

 

토의 질문

1.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기 힘들 때가 있었습니까?

*답: 각각 대답해보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데 실패하지 말라.

2. 중요한 조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안타까웠던 일은 무엇입니까?

*답: 성경 진리를 분명히 성경으로 증명했는데도 거절할 때가 아니겠는가?

3. 왜 우리는 때때로 거절과 냉대와 비난과 공격을 당하면서도 진실을 전해야 하나요?

*답: 주님이 전하라고 하셨기 때문이고 들은 사람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4. 남들의 잘못을 보며 ‘나는 다르다’라고 생각할 때 어떤 위험에 빠질 수 있나요?

*답: 그 자체가 잘못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똑같이 연약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핵심 교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이키고자 때로는 듣기 불편한 기별도 끊임없이 전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두려움, 교만, 고집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거나 선지자들을 배척했다. 과거의 실패를 경고로 삼아 우리는 자신을 과신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듣고 따라야 한다.

 

11월 8일(일) 하나님의 사자를 향한 분노

 

 하나님께 선택받은 지도자 모세는 섞인 무리를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해 광야를 지나며 기쁨과 괴로움을 모두 겪었다.

 

민수기 14장 4-11절을 읽어 보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백성은 왜 모세와 아론에게 분노했는가?

[민14:4~11]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답: 백성들은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믿었고 갈렙과 여호수아의 하나님 편의 말을 듣않았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자신들을 속인다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위의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화가 난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최고 통치권을 대변하는 모세와 아론은 백성에게 분노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인간은 누구나 신체적·정신적 안전을 추구하려는 강한 욕구가 있다. 신체적 혹은 정신적 안녕이 위협받거나 무언가를 위협으로 인식할 때 우리는 격분하거나 심지어 이성을 잃기도 한다.

 

민수기 13장 26-30절을 읽어 보라. 이스라엘 백성은 왜 이토록 두려워했는가? 갈렙은 그들에게 어떤 격려의 말을 전했나?

[민13:26~30]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답: 정탐꾼들은 두려운 것을 강조했고 여호와께서 싸움에 이기게 하신 사건은 두려움 앞에 없어졌다. 갈렙이 능히 이길 것이라고 역설해도 그들의 귀는 이미 닫혀버렸다.

 

 약속의 땅을 얻기까지 겪게 될 난관들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움을 느낄 법도 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불신으로 기울어지면 사탄의 손아귀에 자신을 내주게 되며 사탄이 그를 어디까지 끌고 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부조와 선지자, 398). 이때 모세의 지도력은 거의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를 마주했다. 백성의 두려움은 곧 아론과 모세에 대한 분노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공개적 반역으로 확대됐다. 백성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선지자요 지도자인 모세를 대신할 새 지도자를 구하려 했을 때(신 34:10, 12; 민 14:4)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백성에게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호소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민 14:8, 9).

 

나의 삶 속으로: 만사가 순조로울 때는 하나님을 믿기가 쉽습니다. 재난이 닥칠 때는 어떤가요?

하나님을 믿는 일로 불편과 희생이 요구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가설명> 우리는 누구나 평안한 삶을 원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약속의 땅에 관한 상상과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고 이제 곧 그 땅에 들어갈 지점에 이르렀는데, 하나님을 믿고 들어가면 되었는데, 그들은 정탐꾼을 보내어 알아보자고 요청했고 모세는 그것을 허락했다(신1:21~31).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기들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했다(히11:8). 그 후손인 이들은 얼마나 믿음이 없었는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기의 오감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아닌가? 우리는 어떤가? 이런 경향은 우리에게도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 오관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기록된 말씀을 믿고 걸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며 살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옛 이스라엘은 자기 인식을 신뢰하는 사람들이었고 그것 때문에 망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굴복하도록(고흐10:5) 성령님의 강한 능력이 필요하다. 도와주소서. 

 

11월 9일(월) 기별을 말살하다(1)

 

예레미야 36장 20-26절을 읽어 보라. 궁정에 무슨 일이 벌어졌고 지도자들은 선지자의 경고에 어떻게 반응했나?

[렘36:20~26] 그들이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을 왕의 귀에 아뢰니 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고관의 귀에 낭독하니 22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23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24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25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불사르지 말도록 아뢰어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에게 명령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답: 왕이 말씀을 불살랐다. 그리고 선지자를 잡아오라고 했다.

 

 예레미야는 멸망이 눈앞에 닥친 유다를 향해 하나님의 예언을 전하는 기별꾼이었다. 오랫동안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자신이 유다를 기뻐하지 않으며 바벨론이 그들을 정복해 포로로 잡아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렘 6:8-19; 26장).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구원하고자 애쓰셨다. 그들은 순종해야 했다.

 유다의 죄는 심각하고 노골적이고 변함이 없었다. 예레미야 당시에는 우상 숭배, 자녀 희생 제사, 간음, 폭정이 다반사였고 경고와 호소는 무시됐다. 예레미야의 선지자 사역이 끝나 갈 무렵 빗나간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호소는 더욱 강렬해졌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구원을 위해서였다. 일례로 예레미야 32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밭 한 구획을 구입해 증서를 보관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만군의 주…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이 땅에서 사람들이 집과 밭과 포도원들을 다시 소유하게 되리라”(렘 32:15, 킹흠정).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마지막으로 회개와 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사랑 때문이다. 이 메시지를 접한 여호야김은 하나님과 그분의 기별 그리고 그분의 기별꾼에 대해 경멸로 반응했다.

 

예레미야 36장 27-31절을 읽어 보라. 여호야김의 모욕적인 행동에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렘36:27~31] 왕이 두루마리와 바룩이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기록한 말씀을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8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29 또 유다의 여호야김 왕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의 왕이 반드시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냐 하도다 3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31 또 내가 그와 그의 자손과 신하들을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할 것이라 내가 일찍이 그들과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에게 그 모든 재난을 내리리라 선포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기별과 그분의 기별꾼을 묵살하거나 말살하면 그 기별도 사라질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의 예언 말씀에 귀를 틀어막는다고 해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메시지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반항하는 바람에 자신과 가족에게 닥치는 피해만 오히려 더 커진다. 여호야김의 최후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모든 인간에게 보내는 엄중한 경고이다(렘 36:30, 31).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면 위험을 자초할 뿐이다. 죄악의 결실을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 속으로: 백성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계속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그분의 사랑 어린 품성에 관해 무엇을 알 수 있나요?

진심 어린 조언과 권고를 무시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끝까지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할까요?

 

<부가설명> 세상의 임금 마귀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어떻게 하든지 말씀을 말살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한다. 여호야김 왕의 이 모습은 중세에 사탄이 소위 교회라는 이름으로 진리의 말씀을 없애려고 발버둥을 쳤다. 성경은 이것을 창세 후로 없었고 후에도 없을 환난인데, 이 기간을 택하신 자를 위하여 감해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육체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셨다(마24:21,22). 일반적으로 이 구절을 중세 교회 핍박으로 해석하고 날을 감한 것을 1798년에 끝날 1,260년의 끝이 미국 독립으로 1776년에 끝이 나서 22년을 감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22년 감했다고 모든 육체가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셨겠는가? 이것은 교회나 교인보다 진리 자체를 핍박해서 말씀을 없애려는 핍박이다. 이것을 예언한 곳이 계시록 11장이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사탄의 이 시도는 실패했다. 누구가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말씀을 해방하신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그래서 1517년 종교개혁으로 말씀 핍박이 끝났다. 281년을 감하셨다. 만일 이 땅에 말씀이 없어졌다면 오늘날 우리가 진리를 깨달아 살겠는가?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나는데, 이 말씀을 없애면 예수님을 알고 믿고 구원받을 육체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탄은 이것을 노렸으나 예수님은 개혁으로 마귀의 이 시도를 끝나게 했다. 

 

11월 10일(화) 기별을 말살하다(2)

 

 예언의 은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다양하다. 모세의 경우 이스라엘 자손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맞닥뜨리게 될 적들이 무서워 모세와 아론을 공개적으로 거역했다. 세월이 흐른 뒤 여호야김왕은 하나님의 예언 말씀을 없애 버리려는 마음으로 그 기별을 불살랐다. 눈에 띄는 사례는 그뿐만이 아니다.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는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선지자들을 거절한 역사였다.

 

역대하 36장 15, 16절을 읽어 보라.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보내신 메시지에 유다 민족은 어떻게 반응했나? 결국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행위에 어떻게 대응하셨나?

[렘36:15,16] 그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앉아서 이를 우리 귀에 낭독하라 바룩이 그들의 귀에 낭독하매 16 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아뢰리라.

*답: 그 말씀을 듣고 왕에게 알리겠다고 했다. 결국 그들은 바벨론에 망했다.

 

 예레미야의 선지자 사역은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의 통치 시절까지 이어진다. 느부갓네살이 이끄는 바벨론 왕국이 유다의 턱밑까지 이르렀고 예레미야의 예언은 시드기야가 21세 나이로 즉위할 무렵 거의 성취되고 있었다(대하 36:11).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시드기아가…여호와 그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며,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 예레미야 앞에서 겸손하지 아니하였고”(대하 36:11, 12, 바른).

 예레미야의 예언 은사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그는 하나님의 입에서 받아 말하는 자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시드기야는 선지자 앞에서 겸손하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우리처럼 한낱 인간에 불과한 죄인이었지만 여호와의 대변인으로 그분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이었다.

 예레미야는 그런 역할을 맡은 여러 선지자 중 하나였다. 수백 년간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선지자를 보내셨다(출 3:15; 시 105:26; 말 3:1; 사 6:8; 렘 25:4; 마 11:13; 눅 11:49).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벧후 3:9).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는 타락한 백성이 구원의 약속에 이르도록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애쓰시는 이야기다.

 그러나 유다의 역사가 저물어 가는 시기에 하나님이 예레미야의 예언적 음성을 통해 인도하고 위로하며 베푸신 은혜의 결과는 겸손과 믿음과 회개가 아니라 멸시와 조롱과 비웃음뿐이었다.

 

나의 삶 속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비웃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까요?

 

<부가설명> 여호야김 왕과 그 정부를 이루고 있는 신하들은 두려워했으나 고치지도 않았고 따르지도 않았다. 여호야김 왕은 말씀을 불살랐다. 이것은 중세 말씀을 핍박하고 불태운 역사적 사건의 예표적 사건이라고 이미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말씀을 듣고 생활에 적용하려는 생각이 없는 것 자체가 그 당시 유다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따르지 않는 교인은 다 여호야김 왕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기억하고 지식으로 활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생명의 능력이 되어 생활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항상 기뻐하지도 않고 범사에 감사하지도 않고 쉬지 않고 기도하지도 않으면 항쉬범을 아무리 외워도 말씀을 불태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 글을 쓰면서 너무 두렵고 황송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되도록 하라는 것이고, 그래서 활동력이 있고 살았다고(히4:12) 한 것이 아니겠는가? “전례 없는 배도의 시기에 예레미야는 유일하게 참되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모본을 삶과 품성으로 보여 주어야 했다. 예루살렘이 포위당한 끔찍한 기간 동안 그는 여호와의 대변자가 되어야 했다”(선지자와 왕, 407, 408).

 

11월 11일(수) 위선

 

 과거에 다른 사람들이 벌인 일을 돌아보며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가? 그러나 솔직히 우리는 남들이 했던 똑같은 일을 하지는 않더라도 종종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실상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문제 삼으신 태도이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마태복음 23장 30-35절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지적하신 중요하고도 뼈아픈 사항은 무엇인가? 이 말씀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경고는 무엇인가?

[마23:30~35]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답: 바리새인들의 우선(외식)을 강하게 책망하셨다. 그들은 듣고도 고치려하지 않았다. 우리도 이 점에 대하여 스스로 대답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 따르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행동을 혐오하신 이유는 그들이 변화를 거부하기로 작심한 만큼 그들의 위선이 더욱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예수는 바리새인의 신앙 태도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셨고, 길게 늘어진 예복을 걸친 영적 엘리트들에게서 등을 돌리셨다. 그들은 죽은 사람의 뼈로 가득한 회칠한 무덤이나 다를 바 없었다(마 23:27, 28). 자신들의 죄를 지적받았을 때도 심지어 예수께서 여러 차례 회개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주셨을 때조차 그들은 죄를 자백하거나 버리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마 23:14, 15, 23, 25, 27)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실제로 말과 행동이 다른 삶이 그들의 특징이었다. 선지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그 신실함은 높이 사면서도 정작 중요한 일 즉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는 일은 거부했다. 선지자들이 지닌 힘과 호소력을 부러워했지만 선지자의 메시지는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 종들의 무덤을 번지르르하게 꾸미면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기별꾼을 결코 해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그들은 선지자보다 뛰어난 분이신 메시아를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나의 삶 속으로: 나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현실 자각이 올 때는 언제입니까?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면서 속은 반역과 탐욕과 미움으로 가득한 삶을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가설명> 맨 먼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사망의 존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결단코 나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없으며(갈6:4), 남을 비판하고 충고할 자격이 없음도 알게 될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익숙해서 ‘율법 조문’이라는 안경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기 때문에 율법의 중한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 그들이 그 조문을 기억하는 것이 곧 율법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오늘 우리도 이런 허물 자체를 생활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솔직하고 깊이 물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때때로 위선의 자리에 빠진다. 우리는 언제나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굴복시켜야 한다. 이렇게 굴복하고 정직한 회개의 삶을 따를 때 바리새인의 정신에서 해방될 것이다. 

 

11월 12일(목) 우리를 일깨우려고

 

 구약성경에 추하고 슬픈 이 모든 이야기가 기록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을 거역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교훈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장 6-12절을 읽어 보라. 사도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은 왜 선지자들에게 기록하라고 하셨는가?

[고전10:6~12]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답: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하였다. 

 

 본문에서 바울은 과거와 현재를 일직선상에 놓고서 고대의 이스라엘과 현재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우리가 속한 교회를 서로 연결 짓는다(갈 6:14-16).

 과거 인간이 하나님과 나눈 경험의 기록은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지나쳐 버리거나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고 바울은 분명히 말한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본보기로 남겨 두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그들(선조들)이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고전 10:6) 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과거는 미래의 서막일 때가 많다. 종종 과거는 현재와 미래에 벌어질 일들의 배경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가 성경의 권면들에 그리고 선지자를 통해 주신 예언의 기별에 주의한다면 지난 세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귀담아듣고 배우고 순종하면 우리의 삶은 견실해지고 우리는 형통할 것이다(대하 20:20). 심지어 영적인 형통을 근사한 집과 자동차와 의복을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겠다고 약속하시는데 다른 방면에서 번영할 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 또한 잘되기를 바라신다. 그리스도인 삶에서 참되고 지속적인 영적 충만함은 하나님의 메시지에 순종할 때 이른다.

 하나님은 빈말하는 분이 아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은 영원하다. 그 말씀의 능력과 효력은 결코 다함이 없다(사 40:8). 그 말씀은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 주어졌다(고전 10:11). 이 말씀이 그 당시에도 적용되었다면 오늘날은 얼마나 더 생생하게 적용되어야 하겠는가!

 

나의 삶 속으로: 성경에서 반역과 불신의 이야기를 접하면 어떤 교훈을 얻게 되나요?

지난 세대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고 겸손히 깨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입으로 나간 말은 반드시 이루신다고 말씀하셨다. “10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55:10,11).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거절하면 말씀하신 내용과 반대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성경 역사에 기록된 반역은 스스로 반역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말씀을 자기 입맛에 맞는대로 해석해서 그것을 실행하는 방식이었다. 바리새인들의 생활태도나,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행함도 그랬다. 그때 왕이 없었으므로 자기 생각대로 행했다.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그들은 고르반 되었다고 주장하고(막7:11), 율법의 중한 의(義)와 인(仁)과 신(信)은 행하지 않았다. 이유는 말씀이 지신은 되었어도 생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재림 교인들은 말씀 지식도 별로 없고, 배우고 깨달으려는 열망도 없고 모이는 것도 시들하고 역사적인 유대인과 다를 것이 얼마나 있는가? 두렵다. 

 

11월 13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받은 메시지를 전하다

 엘렌 G. 화잇의 손자이자 전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소장이었던 아서 화잇은 생전에 자기 할머니가 보았던 환상과 예언적 꿈이 어림잡아 수백 차례에 이른다고 말했다. 환상은 몇 분에서 몇 시간에 이르기도 했고 많은 사람이 그 장면을 목격할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그녀에 대해 회의적이던 이들조차 이런 공개적인 환상을 통해 그녀의 상태를 직접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성경의 선지자들처럼 엘렌 G. 화잇은 환상을 받을 때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했다. 1868년에 제임스 화잇은 엘렌 화잇이 계시받을 때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엘렌 화잇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엘렌 화잇은 호흡하지 않았고 근육이 “뻣뻣해지고” “관절이 굳었다.” 동작과 몸짓은 “자유롭고 우아했다.” 눈은 뜨고 있었다. 환상이 끝나면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시력이 손상되지는 않았다. 그녀가 언제 환상을 받을지, 환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환상은 흔히 엘렌 화잇 자신도 예측하지 못할 때 임했다(제임스 화잇, 『일생의 사건들 Life Incidents』, 271-274). 성경 시대와 마찬가지로 기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하나님의 권면을 받아들인 이도 있고 거절한 이도 있다. 엘렌 G. 화잇은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책망하는 자로 나를 세우셨다. 그리고…그분께서는 나에게 이 무거운 짐을 지우셨듯 이 기별을 전달받는 이들에게도 그 기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나는 이 고된 사명을 내가 선택해서 떠맡지 않았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거나 칭찬받는 일이 아니다. …구주의 이름과 능력으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것이다.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나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경고하고 권면하고 책망하고 격려해야 한다. 내 의무는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일을 맡기신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교회증언 4권, 231, 232). 흥미롭게도 그녀의 예언 기별을 거절한 이들 중에는 신학적 근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엘렌 G. 화잇에 대한 개인적 불신이나 반감 때문에 그런 사람이 많았다. 엘렌 G. 화잇은 자신의 예언 은사에 대해 회의를 표하는 이들에게도 매우 너그러웠다. 사실 그는 그런 사람들이 “자기 입장을 정하고 수용 또는 반대를 확실히 할 때까지…오래 참으면서 형제의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교회증언 1권, 328). 엘렌 G. 화잇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기별이야말로 자신이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참된 증거라고 확신했다. 사람들이 만약 정직한 마음으로 진리를 찾는다면 자신의 은사가 참되고 진실한 것임을 알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또 화잇은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더 깊은 이해에 이르도록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리라 믿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이 진리 편에 설 수 있도록” 충분한 증거를 주셨다고도 말했다(교회증언 4권, 231).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사이트를 참고하라. https://whiteestate.org/abs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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