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 굳게 서도록 부르심(질문, 대답, 설명) 09/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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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09-08 09:41 조회4,856회 댓글0건본문
제12과 굳게 서도록 부르심
(9월 1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39분)
연구 범위: 엡 6:10~20, 신 20:2~4, 롬 13:11~14, 살전 1. 5:6~8, 고전 15:23, 24
기억절: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0, 11).
눈을 비비며 숙소 밖으로 나온 사환은 사방이 “군사와 말과 병거로” 완전무장한 대규모의 적군에 둘러싸인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그는 놀라서 더듬거리며 선지자 엘리사에게 이 소식을 전하며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라는 불안한 질문을 던진다.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대답한다. “저들보다 우리 편이 더 많으니라.” 그 말을 듣고도 종의 얼굴은 여전히 불안하다. 엘리사는 그를 가까이 끌어당기고 그를 위해 기도한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선지자의 기도는 즉시 응답되었다. 시종이 다시 성벽으로 가서 보니 가리운 장막이 걷히듯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적의 군대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도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 6:15~17).
바울은 엡 6:10~20을 기록하면서 신자들의 눈이 밝아져서 대쟁투의 실체를 온전히 보고 그들에게 계시된 장면을 통해 희망을 얻기를 기도한다.
*학습 목표
- 깨닫기: 대적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신 갑주를 입고 굳게 서서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 느끼기: 강한 대적 앞에 연약한 존재이지만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할 때 승리할 수 있음을 안다.
- 행하기: 영적무장을 갖추기 위해 기도와 말씀과 하나님의 도움을 날마다 힘입는다.
TMI 위로
2. 바울이 기록한 전투의 은유는 그대가 처한 현실에 대해 무엇을 말해줍니까?(엡 6:11)
*답: 전쟁터라는 것을 말해준다.
3. 선과 악의 치열한 싸움에서 그대의 힘과 능력은 무엇에 있습니까?(엡 6:10)
*답: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부름은 그대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엡 6:13)
*답: 사탄을 대적하라는 요구이다.
5. 바울이 굳게 서라고 말한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엡 6:14)
*답: 자기 위치를 잘 지키어 결코 빼앗기 말라는 것이다.
6. 그대가 맞서는 적들의 칭호들을 볼 때에 어떤 생각이 듭니까?(엡 6:12)
*답: 악의 세력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7. 치열한 전쟁 가운데, 그대가 평화롭다면 그것은 어떤 상황입니까?(엡 6:14)
*답: 주님 안에 든든히 서 있다는 상황이다.
결론
영적인 전쟁터 가운데 있는 신자들은 전신 갑주를 입고 전투에 임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전쟁의 승리는 숫자나, 무기의 우세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고 그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가지는 데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르신 자리에 굳게 서서 서로 협력하며 주님의 능력 안에 강건하여야 한다.
9월 10일(일) 출정 연설
바울의 호소력 넘치는 결론인 엡 6:10~20을 살펴보라. 선악의 대쟁투에 참여하는 믿음의 군사인 우리에게 바울의 격려와 외침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엡6:10~2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답: 그리스도인은 전투하는 하나님의 군사라는 것을 명심하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악의 군대와 담대하게 맞서서 싸우라고 권한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악에 대항하는 믿음의 전쟁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며 에베소서를 마무리 짓는다(엡 6:10~20). 그는 이 주제를 아우르는 "주 안에서 강건하라"(엡 6:10)로 시작한 권면을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는 요청을 통해 반복한다. 바울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엡 6:11)라는 목적과 우리의 싸움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엡 6:12) 대한 것이라는 근거를 제시하여 이 요청을 지지한다. 그런 다음 그는 상세한 방법으로 영적 무장을 다시 촉구한다. 신자들은 전투에서 굳건히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엡 6:13) 허리띠, 흉배, 신발, 방패, 투구, 칼을 착용해야 한다(엡 6:14~17). 바울은 이제 완전히 무장하고 전투에 임할 준비가 된 신자들에게 고대 전장의 병사들이 했던 행동을 촉구한다 - 기도하라!(엡 6:18~20).
구약의 출정 연설을 상기하듯, 바울은 군사적 충돌과 무장을 예로 들어 교회의 사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울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명령을 이렇게 시작한다.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 안에서 강건하라“(엡 6:10, 흠정역).
구약성경의 전투에 대한 권면(신 20:2~4, 삿 7:15~18, 대하 20:13~20, 대하 32:6~8, 느 4:14, 19, 20)은 이스라엘의 승리가 우월한 무기나 적보다 많은 군대에 달려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히려 승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에 의존한 결과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성공의 열쇠는 자신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대한 확고한 신뢰에 있다.
바울은 이러한 주제를 과감하게 사용하여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1) 교회의 사명을 추구하는 데 적극적일 것, (2) 삶과 증거에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차원에 주의를 기울일 것, (3) 승리를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인식할 것, (4) 신자들 간의 연합과 협력의 중요성에 항상 주의를 기울일 것.
<교훈> 누구를 대항하여 어떤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를 알게 함으로 바울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한다. 우리의 승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에 달려있다.
<부가설명> 바울은 디모데에게도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군사라고 설명했다(딤후2:3~5). 이런 표현은 그리스도인이 일반적인 시민들처럼 안온하고 안일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순간순간이 전투하는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권면이다. 재림교회는 대쟁투에 관하여 자주 말한다. 그것이 예수님과 사탄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그 싸움의 장소(戰場)가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인격과 삶 자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대단히 중요하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호흡마다 걸음마다 사탄의 무리와 투쟁하는 싸움의 삶이다. 세상에서도 삶을 전선(戰線)에 비유하는 일이 많다. 생활전선, 직업전선 이런 말들을 사용한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전선에 전투를 위해 서 있는 것이다. 군사로서 그들은 군복을 갖추어 입어야 한다. 그것이 여기 열거한 일곱 무장이다. 1) 전신갑옷, 2) 진리의 허리띠, 3) 의의 흉배, 4) 평안한 군화, 5) 믿음의 방패, 6) 구원의 철모, 7) 성령의 검이다. 여기에는 공격용 무기가 없다. 칼이 공격용이기는 하다. 그러나 불화살 앞에 칼은 방어용일 뿐이다. 함께 어울려 싸울 때는 카로 방패도 공격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멀리서 활을 쏘는 적군에게는 다 방어용일 뿐이다. 승리는 예수께서 이미 하셨기 때문에 그 승리를 지키는 방어용 무장을 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주신 승리 안에서 그것을 잘 지켜야 한다. 원수 사탄은 집요하게 공격하기 때문이다. 성령 안에서 무시(無時)로 기도하는 것이 보급을 계속 받는 전략이다. 쉬지말고 기도하는 삶이 필요한 것이다.
9월 11일(월) 그리스도 안에서 강건하라
바울은 에베소서 전체의 핵심 주제와 아이디어를 다 망라하는 출정 연설로 편지를 마무리한다. 그는 지휘관의 전투 명령과 같은 어조로 본서의 결론의 중요한 주제를 발표하면서 시작한다: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 안에서 강건하라"(엡 6:10). 이후의 구절(엡 6:11~20)은 이 큰 주제를 설명하고 풀어준다.
엡 6:10~20을 다시 읽어 보라. 바울이 말하는 요점의 핵심이며 말 그대로 초자연적인 권세가 개입된 대쟁투를 얼마나 실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있어서 이 중요한 진리를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엡6:10~20] 일요일에 쓴 것을 읽어보자.
*답: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다. 생활현실이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일관되게 "주 안에서와 그의 힘의 능력으로"(엡 6:10)라는 구절로 그리스도를 신자들의 힘의 원천으로 밝힌다(엡 2:21, 4:1, 17, 5:8, 6:1, 21). "교회의 힘은 전쟁의 대장 되신 부활하신 주님의 전능하심에 있다"(핀들레이, G. Findlay, 에베소서, 1931, 398).
바울은 엡 6:10에서 ‘힘’과 ‘능력’이라는 동의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며 자신의 요점을 강조한다. 교회가 발휘해야 할 능력은 신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다. 바울은 이 편지의 중요한 주제인 하나님의 능력이 신자들에게도 주어진다는 것을 말한다(엡 1:19~22, 2:4~6, 3:16, 17). 지금, 또 장차 다가올 모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은 부활하시고 높여지신 그리스도와 신자와의 결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의 첫 명령은 신자들에게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강조하여 선포되고 있지만(엡 6:10), 악에 대항하는 영적 싸움을 위해 신자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데 신격의 삼위 모두가 관여하고 계시다.
하나님(아버지)은 자신의 무기를 "하나님의 전신 갑주"(엡 6:11, 13, 사 59:17 비교)로 사용할 수 있게 하신다. 앞서 바울은 성령이 신자들에게 능력을 주고 계신다고 밝혔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엡 3:16)라고 기도했다. 여기서 검, 즉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 6:17)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또한 신자들은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엡 6:18). 바울은 수신자들이 삼위일체(삼위일명) 하나님이 이러한 악한 세력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전적으로 관여하신다는 것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교훈> 마지막 대쟁투의 힘과 능력은 신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며 주와 결속될 때 이길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
<부가설명>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전투에 관하여 대단히 오해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믿음이다. 승리를 위한 싸움은 예수께서 하셨다. 창세기 3:15에 뱀과 싸우시는 분은 여자의 후손이다. 그분은 사탄과 싸우시고 이미 이기셨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히2:14~16). 마귀는 이미 패배자이다. 마귀는 성도들에게 게릴라 전투를 유도한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 안에 거하라”(요15:4)라고 하셨다. 성도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미 이긴자가 된다. 그 이긴 것을 빼앗으려고 사탄이 불화살을 쏘아대는 것이다. 그래서 방어용 무기를 입히신다. 불화살에 맞아서 죽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가 사탄의 세력과 직접 싸워 승리를 쟁취하는 것처럼 이해하는 것 같다.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이 아니다. 성경은 이긴 자리에 세워 놓았으니 거기서 굳게 승리를 지키라고 한다. 그래서 성경은 “지키라”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을 잘 지켜야 한다. 지키는 자들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그런데 무모하게 자신이 싸우려고 나서다가 상처입고 죽임을 당한다. 복음을 깊이 바르게 생각하도록 성령께서 감동과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한다.
9월 12일(화) 바울 서신에 나타난 대쟁투
롬 13:11~14, 살전 5:6~8, 고후 10:3~6을 읽어 보라. 엡 6:10~20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당신은 바울이 왜 이런 장면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는가?
[롬13:11~14]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살전5:6~8]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고후10:3~6]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답: 죄의 세상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사탄이 끊임없이 추격하여 다시 자기의 종을 삼으려고 하기 때문에 사탄의 공격에 승리한 자리를 내주면 안 된다는 대쟁투적 이해로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편지에서 군대 용어와 장면을 자주 사용하며 신자들에게 군인의 행동을 모본으로 소개한다. 엡 6:10~20은 바울이 군사적 용어를 가장 길게 집중적으로 사용한 구절이면서 바울이 복음을 이해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십자가에서 "정사와 권세"(골 2:15)를 정복하시고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는 모든 권세 위에 높임을 받으신 주님(빌 2:9~11)으로서 그 승리의 결과를 이루신다. 그분의 추종자들을 우주적 전쟁의 전투원으로 모집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빛의 군대를 이끌고 승리의 날을 향해 나아가신다(고전 15:54~58, 살후 2:8, 롬 2:8, 롬 16:20). 바울이 군사적 상징을 사용한 것을 종합해 보면, 그는 선과 악의 갈등을 "오래 지속되는 우주적 전쟁, 즉 어느 한쪽이 최후에 승리할 때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서로 밀고 밀리며 대치하는 두 군대 사이의 전투"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피터 맥키, Peter W. Macky, 바울의 우주적 전쟁 은유: 복음의 군사편, 1998, 1).
바울이 자주 언급하는 우주적 전쟁 주제는 에베소서에서도 나타난다. 바울은 그의 군사적 부름(엡 6:10~20)에서 이미 사용했던 우주적 전쟁의 요소들을 한 곳에 모았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엡 1:18~20, 엡 3:16, 20)을 신자들에게 부어주심, 권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와 높여지심(엡 1:20~23), 한때 죽었던 자였으나 이제는 부활한 군대로서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정체성으로 힘을 얻어 이전의 주인이었던 어둠의 권세와 싸울 수 있는 신자들(엡 2:1~10), 권세들에게 다가올 파멸을 드러내는 교회의 역할(엡 3:10), 시 68:18을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정복자, 거룩한 전사로 묘사하는 것(엡 4:7~11), 신자들에게 복음의 옷을 '입으라'는 요청(엡 4:20~24) 등이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부름을 받을 때, 우리는 우주적 전쟁의 중심적 역할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에 참여한다는 확신을 굳건히 가져야 한다.
<교훈> 우리는 영적인 전신 갑주를 입고 부름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의 군대로서 그분의 승리의 날을 향해 나아간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부가설명> 월요일 부가설명에서 이미 말한 것 같이 진정한 그리스도인, 참으로 거듭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긴 자들이다. 계2,3장에 있는 일곱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온 말씀 중에 ‘이기는 자는’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씀을 우리가 그런 환경에서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뜻으로 읽는 경향이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볼 때 우리는 아담 안에서 패배한 자들이다.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께서 뱀과 싸워서 이기셨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김을 나의 것으로 받으라고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그분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이미 이긴 자이다. 사망의 성을 떠나서 생명의 성 안에 있다. 사망의 왕인 사탄은 성도를 이 생명의 성 안에서 끌어내려고 싸움을 건다. 불화살을 쏜다. 그러나 결코 생명의 성 밖으로 나가지 않아야 한고 불화살을 맞아 입은 상처는 곧 사령관이신 길르앗의 의사 예수님께 나가서 치료받아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전쟁이다. 이긴 것을 지키는 전쟁이다. 승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승리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복음을 바르게 깨닫는 기쁨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주시기를 바란다.
9월 13일(수) 그러므로 굳게 서서
엡 6:10~20을 읽으면서 바울이 동사 ‘대적하다, 서다’(stand)를 사용한 것을 주목 하라. 이 단어는 왜 그렇게 중요한가?
*답: 전장-싸움터-에서는 공격하는 자를 대적하지 않으면 죽든지 포로가 되고 굳게 서지 않으면 원수를 대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의 군사적 비유는 고대 전장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서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엡 6:11, 13, 14) “서 있”는 자세는 방어 자세일 뿐인가? 위대한 고전 전투 문학에 수록된 출정 연설은 어느 한 쪽이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세 가지 연속적인 행동을 강조한다. (1) 병사들은 적을 만나기 위해 행진해서 "적에 가까이 가야" 하고, (2) 백병전에서 적을 공격하며 "굳건히 서서" "서 있는 자리를 지키고," (3) 마지막으로 "적을 물리쳐야" 한다(투키디데스, Thucydides, 펠로폰네소스 전쟁, 1910).
“고대 전투의 결정적인 순간은 이 세 단계 중 두 번째에서 발생했는데, 고대 작가 크세노폰은 "청동, 나무, 살이 부서지는 전율할 소음을 내며 두 무리의 장창 보병대(phalanxes, 팔랑크스)가 서로 부딪히는 이 단계를 '끔찍한 충돌'이라고 표현했다"(빅터 핸슨, Victor D, Hanson, 서양의 전쟁 방식, 1989, 152). 이 전략적 순간에 자신의 자리에 굳건히 서서 지키는 것은 고대 전투의 가장 큰 도전이었다. 이어지는 접전 속에서 각 진영은 "밀어붙이기"를 위한 계기를 모색했다.
바울의 무장 요청은 병사들이 "서로 뭉쳐서 근거리에서 수백 번의 타격을 주고받는 "전투 장면을 그리고 있다(빅터 핸슨, 152). 이는 바울이 교회가 적과 싸우는 것을 씨름으로 묘사한 것(엡 6:12, 목요일 교과 참조)과 13절에서 "서다"라는 강조형 동사를 사용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악한 날에 능히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함이라(흠정역).
이것은 결코 편안한 자세가 아니다. 바울이 말하는 전투에 “서”는 것은 손에 잡히는 모든 무기를 사용하는 격렬한 근접전에 임하는 것이다. “서다”의 의미를 이해하면 “한 정신으로 굳게 서서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싸우”(빌 1:27, 새번역)라는 권고의 의미를 분명히 알게 된다.
<교훈> 신자들에게 ‘서라’고 한 바울의 권면은 근접전에서 모든 무장을 사용하여 굳게 서서 격렬하게 방어하고 공격하는 그 시대의 군사적 배경에서 유래했다.
<부가설명> 히12:4은 죄와 더불어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으로 신자들은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 물리쳐야 한다고 이해하는 것 같다. 그런 이해가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이해는 피 흘리기까지 싸우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사탄을 이기시고 그를 없이 하셨다(히2:14 개역).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생명의 성으로 옮겨주시고 그 자리를 굳게 서서 사탄의 공격을 막아내고 잘 지키라고 하신다. 워치만 니는 에베소 강해를 출판할 때 제목을 ‘좌(坐)행(行)참(站)’이라고 했다. 앉고 행하고 선다는 뜻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엡2:6). 그렇게 하신 이유는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게 하려는 것이다(엡2:10). 그렇게 살아가면서 마귀의 공격을 잘 방어해서 얻은 생명을 끝까지 지킬 때 승리의 자리에 굳게 설 것이다(엡6:13). 서 있는 것은 예수님이 세워주신 자리를 끝까지 잘 지키는 자세이다. 계속 서 있는 것은 피곤한 자세다. 그러나 서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12:12). 주님이 세워주신 그 자리에 굳게 서서 재림을 맞도록 하자.
9월 14일(목) 악한 권세와의 씨름
바울이 엡 1:21, 3:10, 6:10~20에 묘사된 악한 영적 권세에 대해 다양한 명칭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엡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엡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답: 이 세상에서 볼 때 초자연적인 영들의 세계의 모든 세력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께 마침내 복종할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씨름”(엡 6:12)에서 바울은 레슬링 선수들 사이의 경쟁을 뜻하는 팔레(palé, 헬라어)를 사용한다. 레슬링은 전투를 대비한 훌륭한 준비 운동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는 군대가 충돌할 때 일어나는 백병전 전투에 대한 적절한 묘사이다. 바울은 신자들이 악의 권세에 대항하여 밀접하게 투쟁하는 현실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은 바울이 그들에게 부여한 칭호들이다:
엡 1:21 엡 3:10 엡 6:12
모든 통치(자) 통치자들 통치자들
(모든) 권세 권세들 권세들
(모든) 능력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모든) 주권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일컫는 모든 이름
바울은 광범위한 묘사(모든 이름, 엡 1:21,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엡 6:12)를 통해 모든 악과 초자연적인 권세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한다고 단언한다(엡 1:21). 그러나 어떤 전투에서든 상대방의 세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결코 좋은 전략이 아니다. 바울은 우리가 사람인 적들만 아니라 교활한 장군 마귀(엡 6:11)가 이끄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 6:12)과도 맞서야 한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강력한 적에 대해 경계해야 하지만, 그 적에게 주눅들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전투에 임하시며(엡 6:10), 우리에게 가장 훌륭한 무기인 그분의 갑옷, 즉 "하나님의 갑옷"을 주셨다(엡 6:11, 사 59:15~17).
그분은 그분의 진리, 의, 평화, 믿음, 구원, 성령을 우리에게 맡기셨다(엡 6:13~17).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가시고 그분이 입히신 갑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되어 있기에 우리는 실패할 수 없다(롬 16:20, 고전 15:23, 24, 살후 2:8).
<교훈> 성경은 악의 세력들과 밀접하게 대치하는 전투를 묘사한다. 적의 세력은 강하지만 하나님이 앞서가시며 우리의 필요를 돌보시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부가설명> 사탄은 이 세상 임금이지만 변질된 세상의 물질적 존재가 아니다. 그는 이 세상을 다스리지만, 이 세상 물질에 속한 자가 아니다. 그는 영물이다. 그래서 육이 된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이다. 보이지 않으면서 사람을 지배하니 두려운 존재이다. 보인다고 해도 사람의 능력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존재다. 그러나 그것들도 마침내 예수님께 굴복하고 그들의 존재를 반납할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 십자가로 그것들을 다 제압하셨다. 성경은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고 기록하였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2:15).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이기려고 싸울 필요가 없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기신 것에 자기 공로를 포개려고 하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숟가락을 걸치려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예수님의 구원을 자기 공로로 돌리려는 이단적 사고방식이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승리를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그분 안에 머무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로 여김을 받는다. 이런 복음을 삶에 나타낼 때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그들에게 드러내게 된다(엡3:10). 감사하지 않은가?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승리의 전리품들일 뿐이다.
9월 1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우리의 일은 공격적인 것이며 예수의 충성된 군인으로서 우리는 피 묻은 깃발을 들고 적의 요새 중심부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무기와 피묻은 깃발을 내려놓고, 사탄의 포로와 종이 되는 것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갈등과 고통에서 풀려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평화는 그리스도와 하늘을 포기함으로 얻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평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 배도와 죄로 인한 평화를 얻기보다는 지구 역사의 끝까지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리뷰 앤드 헤럴드, 1888.5.8.).
엡 6:10~20은 요한계시록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 구절은 요한계시록의 전투 주제와 동일한 최후의 사건 또는 종말론에 대한 일관된 관점을 보여준다(계 12:, 16:12–16, 19:17–21, 20:7–10). 두 본문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에” 있고 “현재 활동 중이며 권세 있는” 적의 공격을 받고 있다. 두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미래 시대의 소망"으로 격려를 받는다. 나아가 “두 각본은 모두 적군이 완전히 정복되며 이후 영원한 새 시대가 세워질 최후의 전투를 명시적으로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마지막 영광스러운 상태"와 "적의 영원한 파멸"이 명백해지는 새로운 시대이다(요단 칼렙 지코브, Yordan Kalev Zhekov, 에베소서의 종말론, 2005, 217, 233–23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어둠의 세력과 가장 분명하게 대적한 것은 언제였는가? 그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전략은 무엇이었는가?
*답: 말씀과 기도로 승리를 지킨다.
2. 엡 6:10~20에 근거하여, 특별히 "악한 영들"(엡 6:12)에 의해 압제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답: 기도와 말씀과 방문과 권고를 통하여 도울 수 있지 않을까?
3. "마귀의 간계"(엡 6:11)을 어떻게 가장 잘 분별하여 거부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얼마나 자주 자신이 구원받기에는 너무 죄가 많고 부패했다고 생각하여 신앙을 포기하려고 하는가? 누가 당신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주는가? 그리스도인가 어둠의 세력인가? 특히 그럴 때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약속들을 주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예수님의 승리와 그분의 용서를 굳게 믿고 붙잡을 때 이런 악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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