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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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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09-04-11 19:18 조회6,3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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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소망
4월 18일 안식일 (일몰: 오후 7시 10분)


기억절: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벧전 3:15)


연구범위: 눅 21:25-26, 요 5:24, 고전 15:20-26, 50-55, 계 21장.


중심 사상: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소망이 없는 이 세상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이 소망이 우리 자신이나 세상의 어떤 사물에 기초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과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식일 오후

20세기가 시작될 때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었다. 20세기가 시작되고 처음 50년 동안은 사람들이 멋진 삶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낙관론이 서구사회에 팽배해 있었다. 사람들은 이성을 활용하여 모든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완전한 도덕성을 갖게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새로운 발명품들, 빨라진 교통수단들, 눈부시게 발전하는 의학 지식, 새롭게 도입되는 기계 등으로 모든 삶이 향상되리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1,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대학살, 냉전과 핵무기의 위협, 상존하는 세계적인 테러의 공포, 그리고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환경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해 낙관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은 있다. 그 희망은 우리가 보고 우리가 실행할 수 있는 것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약속에 근거하고 있다.


핵심본문: 벧전 3:15


학습 목표

깨닫기: 우리는 비록 죄로 망가진 세상에 살지만 예수님 안에 영생의 소망이 있음을 깨닫는다.

느끼기: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확신한다.

행하기: 영생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소망을 나누어주면서 소망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


교과 개요

I. 소망의 근원(고전 15:12-19)

A.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소망의 기초를 둔다.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고 한 바울의 말은 무슨 의미인가?

B. 영생의 약속이 소망의 이유가 된다. 그리스도교의 또 어떤 진리가 소망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가?


II. 소망을 확증함(눅 21:25-28)

A.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예언의 선물을 통해 당신의 지혜와 지식을 어떻게 나타내셨는가?

B. 영생의 소망은 미래에 속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금 이곳에서 소망의 실체를 경험하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III. 소망을 실현함(시 31:24)

A. 영생의 약속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자. 소망이 우리 삶의 방식에 배어나도록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요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망은 믿음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가련한 사람들이 되고 만다. 우리의 소망이 참으로 우리 삶의 모습에 영향을 행사하게 하자.


일요일(4월 12일) 이 세상에서의 소망(눅 21:25-26)


2001년 9월 11일 이후, 사람들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사람들은 여객기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으로 돌진하는 장면을 뇌리에서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러한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이 가득 탄 여객기를 이용해 자폭을 감행했던 테러리스트들이 또 다시 폭탄을 짊어지고 버스 정류장이나 슈퍼마켓으로 뛰어든다면 그것을 완전히 방지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 도처에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왜 이러한 공포를 느껴야 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안다.


1. 예수께서는 마지막 시대의 특징 중 하나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눅 21:25-26)

눅21:25,26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답: 천연계의 격변과 사람들의 혼란과 공포


“죄악은 거의 그 한도를 채웠다. 혼란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큰 공포가 곧 인류에게 임할 것이다. 종말은 매우 가깝다. 하나님의 백성은 가공할 사건이 세상에 일어날 것에 대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새 자녀 지도법, 555). 마치 엘렌 화잇이 9. 11을 목격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의 세상은 전쟁과 부패, 탐욕과 공포의 세상이다. 그리고 많은 불유쾌한 일들이 세상에서, 그리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 여전히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소망을 가지고 있다. 나라들 간에 큰 고통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할 것이다(눅 21:26). 그러나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염려하거나 이 일들로 인해 놀라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시련과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우리 앞에 펼쳐지는 일들은 그 말씀이 진실임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2. 예수께서는 이 혼란과 공포의 세상 중에서도 우리에게 어떤 소망을 제공해 주십니까?(눅 21:28)

눅21: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답: 우리는 세상의 혼란과 공포 가운데서도 위를 바라볼 수 있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소망을 품을 수 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눅 21:28).


만국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이 세상의 우물에서 그 갈증을 풀려고 하는 자는 다시 목마를 것을 마실 뿐이다. 도처에서 사람들은 만족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영혼의 필요를 공급할 수 있는 무엇을 갈망한다. 오직 한 분만이 그 필요를 채우실 수 있다. 세상의 필요 곧 만국의 소망은 그리스도이다. 그분만이 나누어 주실 수 있는 하늘의 은혜는 생수와 같아서 영혼을 순결하게 하며, 소성시키며 활력을 준다.”(시대의 소망, 187)


<부가설명> 이 세상의 성질은 사망이며 그 현상은 부패이다. 그것은 사람이 사망이 되었기 때문에 생긴 성질이며 현상이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그대로 잘 보존하였더라면 이 세상은 말 그대로 낙원으로 있을 것이다. 생명을 잃어버린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신 그 약속 때문에 아직도 구차한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사는 전쟁과 공포와 질병, 그리고 죽어야 하는 역사이다. 거기에는 학대와 핍박과 고난과 환난이 연속된다. 이런 현상은 마지막 때에 더욱 심해지고 예수 이름으로 예수를 바르게 믿으려는 사람들에게 가해질 것이다. 천연계와 사회적 불안은 점점 가중될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가 아닌가.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어차피 한 번 죽는 목숨,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그 아침을 우리에게 소망으로 주신 하나님은 결코 그 약속을 잊지도 않으시고 변개하지도 않으신다. 우리가 이 소망을 굳게 붙잡고 있으면 그날 영광을 볼 것이다.


교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참으로 두려운 세상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소망을 안겨주셨으므로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월요일(4월 13일) 소망은 지금 여기에(요 5:24)


그리스도의 재림, 하나님의 백성의 부활,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과 함께 할 영원한 삶 등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미래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구원은 현재적이고 실제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생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미래가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이들과 구별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님을 주(主)로 영접할 때 일어나는 위대한 변화를 상기시켜 준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면 우리도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엡 2:12)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변화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을 때(13절)만 가능하다.


1.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믿을 때 일어나는 근본적인 변화를 예수께서는 어떻게 묘사하셨습니까?(요 5:24)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답: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영생을 얻었다고 묘사하셨다.


2. 요한복음 10:10은 우리의 삶이 어떠할 것이라고 말합니까? 이 약속은 무슨 의미이며, 어떻게 그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답: 예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생명(삶)은 미래에 속한 것이면서 동시에 지금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우리는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생명’은 요한복음의 핵심 단어 중 하나이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생명은 근본적으로 영생을 가리킨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의 생명은 특별히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그분께서 베푸시는 현재적이고 실제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두 가지 열쇠가 있는데, 첫째는 그 생명의 근원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요 6:33-58, 14:6, 요일 5:11-12). 예수께서 계시는 곳이면 어디나 생명이 있다(요 11:25-26). 생명을 얻는 두 번째 열쇠는 믿는 것이다(요 1:4, 12). 우리가 예수님 안에 항상 있는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비결은 그분과 계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요 3:16, 36).”(존 폴린, 풍요한 삶을 위한 성경 확대경: 요한복음, 퍼시픽 프레스, 1995년, 189)


현세에서도 받는 보상

“최후의 큰 상급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주실 것이나, 하나님을 위해서 진심으로 행하는 봉사에는 현세에서도 그 보상이 따른다. 교역자는 여러 가지 장애와 반대 또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쓰라린 실망을 당하며, 또 그의 수고의 결과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는 그의 수고에서 복된 보상을 발견한다. …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및 거룩한 천사들과의 교제로, 그들은 신체의 건강과 두뇌의 활력과 영혼의 기쁨을 가져 오는 하늘의 분위기 속에 휩싸이게 된다.”(복음교역자, 513)


<부가설명> 성경은 생명과 사망, 존재와 비존재에 대하여 계시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덕적 선악에 대하여서는 결과적인 것을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착한 일을 하기 전에 빛이 되어야 한다. 빛이 되면 그 빛의 열매가 착한 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계시한다. 말을 바꾸면 착한 일을 하면 빛이 된다고 하지 않고 빛이기 때문에 착한 일을 한다고 가르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유는 그리스도가 그들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그에게 없으면 그는 생명이 없다(요일5:11,12).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그분의 삶의 모습을 드러내실 때 우리의 생명력은 더욱 풍성해진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부터 그렇게 된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 앞에서 존재하는 자요 산 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생활을 하는데, 새생명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그 모습이 선인 것이다.


교훈: 우리는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 우리는 영생의 축복을 지금 이곳에서도 누릴 수 있다.


화요일(4월 14일) 무덤 너머의 소망(살전 4:14)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온다(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사별의 슬픔을 맛보았다. 우리는 또한 날마다 죽음이라는 무서운 실체와 대면하고 있다. 공동묘지를 지날 때나 영구차를 볼 때, 혹은 텔레비전 뉴스에서 그것을 본다. 그러나 더욱 슬픈 일은 우리 자신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적(大敵)인 죽음도 언젠가는 패배하게 될 원수이다.


1. 죽음의 실체에 관한 어떤 영광스런 진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까?(고전 15:20-26, 50-55, 벧전 1:3)

고전15:20-26, 50-55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벧전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답: 영광스러운 부활의 진리가 계시되어 있으며 예수님의 부활이 그 사실을 실제적으로 증명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2. 부활의 아침에 인류는 어떻게 나눠집니까?(살전 4:14)

살전4: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답: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은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천하는 특권을 누릴 것이나,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유명한 부활장(고전 15장)에서, 부활의 소망을 우리의 전체 신앙 경험의 핵심적인 요소로 강조하고 있다(12-19절).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다.

물론 육신의 부활에 관한 여러 면들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부활'이 현재 우리 신체의 구성 성분을 안전하게 보존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부활은 우리의 고유한 신원을 보존하시고, 다시는 성형수술을 하거나 노화방지제를 섭취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 순간에 새로운 몸으로 재창조하실 창조주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이적을 행하실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맨 처음 세상에 생명을 창조하실 수 있으셨던 그분께서는 거룩한 기억력으로 사람들의 신원을 온전히 보존하시고, 그들로 이 땅에 충만하도록 재창조하실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부활의 소망은 우리의 지성이나 감성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에 기초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정복하셨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신자들은 죽음이라는 일시적인 '잠'에서 일어나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소망의 힘

“사단과 그의 부하들이 겁 많은 영혼들을 위협하여 그들로 하여금 죽음이 무서워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한 일도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 심지어 아주 겁이 많았던 자들 중에서도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두려움과 공포심을 즉시 떨쳐버리는 것을 보았다. 이들은 자기 형제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 중에서 그들의 확고함과 인내를 바라보았으며 그들이 고통을 견디어 내도록 하나님과 그분의 천사들이 도와준 것을 깨닫고 더욱 더 담대함을 얻게 되었다. …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을 당했지만 그들의 꿋꿋함과 밝은 소망이 오히려 연약한 자들을 강하게 하여 그들도 두려움 없이 고문대와 화형주에 나아갈 수 있게 하였다.”(초기문집, 226)


<부가설명> 성경은 부활을 “죽은 자의 소망”(행23:6)이라고 계시한다. 죽지 않은 자에게는 부활이라는 말이 우스울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이미 아담 안에서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다 죽었다. 그러므로 부활은 온 인류의 소망이다. 그러나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에게 부활의 기별은 우스운 기별이며 말도 안 되는 사상일 것이다. 사람은 한 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다(히9:27). 이 현실적인 죽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래도 부활을 시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알며 역사적으로 부활하여 지금 우리에게 그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들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부활의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영혼이 어디에 간다는 것이 훨씬 쉬운 기별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기별이야말로 죽음을 시인하지 않는 사상이다. 우리는 죽은 자이고 그리스도는 그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이 일을 믿는 자들에게 그는 영원한 생명 부활의 생명의 소망이 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사망의 두려움을 넉넉히 이기고 생명의 소망으로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교훈: 우리의 소망은 죽음 그 너머에까지 미치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의뢰하자.


수요일(4월 15일) 영원한 소망(고전 15:42-43, 52)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어찌 무한한 것을 깨달을 수 있으며, 보통 80년 혹은 90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이 어찌 영원한 불멸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영생이란 단지 지금의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가까울 것이다. 영생은 전혀 질적으로 다른 삶이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태에 있을 동안에는 장래의 영광을 어렴풋이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희미하게' 볼 뿐이며, '부분적으로' 알 뿐이다.(고전 13:12)


1. 영원한 삶이 지금의 삶과 다른 점은 무엇이고, 또 비슷한 점은 무엇이겠습니까?(고전 15:42-43, 52, 계 21장)

고전15:42,43,5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계21:1-27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갈대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답: 죽음에서 부활한 의인들과 살아서 주님을 영접하여 홀연히 변화된 성도의 몸은 더 이상 썩지 아니할 불멸의 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고유한 신원(identity)을 간직함으로, 과거에 알았던 이들은 서로를 알아 볼 것이다.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삶을 생각할 때, 지금 이곳에서는 결코 대답할 수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배울 수 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흘 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과 동일한 분이심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죽을 몸과는 달리, 자연의 법칙에 지배받지 않는 '영화롭게 된' 몸으로 부활하셨다. 그러나 한편 그분께서는 죽음과 부활 이전에 가지셨던 '인간의 모습'을 계속해서 소유하셨다. 사람들은 그분의 외모와 음성과 동작까지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우리를 알던 이들은 우리가 '영화롭게 된 새 몸'을 가졌을 때에도 알아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에도 영원한 생명을 경험할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 돌아온 자에게 성령께서 임재하신다고 설명한다(롬 8:10). 그러므로 신자들은 장차 올 세상에서 온전히 실현될 영원한 생명에 이미 접촉되었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보증이다.(엡 1:13-14)


순간적인 쾌락과 영원한 영광

“만일 그들이 기꺼이 그리고 반가이 구원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도록 강요를 당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들이 하늘의 혜택을 거절하고 죄의 쾌락과 유혹을 택한다면, 그들 나름대로 선택권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멸망의 삯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영원히 분리될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희생을 멸시하였다. 그들은 행복한 삶을 상실할 것이며 순간적인 죄의 쾌락을 위해 영원한 영광을 희생하고 말 것이다.”(교회증언, 2권, 210)


<부가설명> 죽은 바로 그 사람이 부활한다. 다른 인격이 되어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부활이 아니다. 부활한 사람들은 오늘날 이 세상이 운행되는 천연계의 법칙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 아니, 부활했을 때에는 세상도 새롭게 되기 때문에 천연계의 법칙이 새롭게 된다. 왜냐하면 죄가 세상을 주장했을 때 처음 창조 때의 천연계의 법칙이 다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천연계 운행은 변질된 법칙으로 운행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주가 운행되는 것은 하나님의 규례에 따른다(시119:91). 그러나 죄로 변질된 세상에서 관찰하는 천연계의 운행은 하나님의 처음 창조한 그 규례를 바르게 볼 수 없다.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변질된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때 이 모든 것이 바로잡힐 것이다. 부활한 사람들은 그 세계에서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운행되는 천연계의 아름다움을 누릴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설명해도 세상적인 것을 통하여 설명하기 때문에 결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알고 희미하게 안다. 그날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우리도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고전13:12). 그리고 이 세상에서 알던 사람만이 아니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거기서 처음 만나도 다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베드로가 모세와 엘리야를 결코 만나본 일이 없었는데도 변화산에 나타난 그들을 당장 알아보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을 당장 알아볼 것이며 아브라함도, 모세도 베드로도 바울도 다 알아볼 것이다. 가슴 설레는 소망이 아닌가!


교훈: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은 그분의 부활을 통해 확증되었으며, 성령님의 임재를 통해 보증되었다.


목요일(4월 16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딛 2:13)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 벌써 오래 전에 그분의 오심이 예고되었었다. 참으로 그분은 약속대로 오셨다. 그분의 재림의 약속은 더욱 다양하게 주어졌다. 그분께서는 "내가 다시 오리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성경 마지막 페이지에도 이 약속은 반복되어 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 22:20).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다.(딛 2:13)


1.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분의 재림의 약속은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계 22:7, 10-12, 20)

계22:7,10-12,20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답: 그리스도의 재림은 구속의 계획에 있어서 절정이요 결말이다. 주님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고 말씀하신다. 만일 재림이 없으면 구원의 이야기는 아무 쓸모없는 거짓말일 뿐이다.


2. 베드로후서 3:8-9은 재림과 관련하여 사용된 '속히'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벧후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답: 인간들이 생각하는 “속히”와 재림과 관련하여 말씀한 “속히”는 다른 차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죄의 문제와 죄로 인해 야기된 모든 불행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인간이 고안한 어떤 것에 있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진다. 우리의 소망은 인간의 과학 기술이나 똑똑한 정치가나, 사회적 및 도덕적 진보에 있지 않다. 이것들은 결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물론 주님의 오심을 전후하여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고대하는 그분을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곧 오실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시간문제이다. 그리고 아무도 이 사실을 변경할 수 없다. 어떤 힘 있는 사람도 세상을 그분의 통제에서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손에 단단히 그리고 영원히 붙들리게 되었다. 우리는 십자가의 승리로 충만한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루어질 가능성도 없는 먼 훗날의 막연한 소망을 향해 무작정 전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신 소망으로부터 의기양양하게 나아가는 것이다.(노먼 걸리, 그리스도께서 오신다, 리뷰 앤드 헤럴드, 1998년, 540)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면…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하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공언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천국에 관한 것이 아니고 세속적인 사물들에 관한 것이다. … 그들은 마땅히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벧후 3:12).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그러나 재림신도라는 이름을 지닌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배우고 그분의 인정을 받으려 하기보다는 몸치장을 하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게 되는 방법을 더 많이 연구하고 있다.”(초기문집, 108)


<부가설명>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소망이다(딤전1:1; 골1:27). 그분 안에 모든 것이 있다. 부활도 재림도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분이 다 이루셨고 이루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존재를 상실하기 때문이며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죄의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속히 오셔서 이 문제를 속히 종결하시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인내하며 그날 사모하고 기다리며 예수의 생명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그날이 되면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께서 복된 소망으로 주신 그 재림을 하실 것이며 그날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산 사람들은 당당히 재림을 맞을 것이다(요일2:28). 그 영광에 함께 참여하도록 날마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부활로 주신 그 생명으로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다.


교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은 죄에 빠진 인류의 모든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 주는 최후의 소망이다. 그분은 분명히, 그리고 속히 오실 것이다.


금요일(4월 17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과제: 각 시대의 대쟁투, 제42장 '대쟁투의 종막'(662-678).


다음의 장엄한 구절을 암송해 보라. “대쟁투는 끝났다. 죄와 죄인들은 없어졌다. 온 우주는 깨끗해졌다. 오직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온 우주의 만물을 통하여 고동(鼓動)친다. 생명과 빛과 환희가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서 끝없이 넓은 우주로 퍼져나간다.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67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새 땅에서의 삶이 어떨 것인지에 대해 각자가 묘사해 보고, 그것을 교과 시간에 발표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토의해 보십시오.

* 각각 생각하여 말해보자. 가장 확실한 원리는 새 땅에서의 삶은 공포가 없는 사랑의 삶이라는 것이다.


2. 모든 일이 나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는 듯이 보일 때에도 소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 말씀을 확신하는 삶이다. 하나님은 결코 변역하시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약속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3. 그리스도 안에 소망을 둔 사람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사신 것처럼 그렇게 살게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4.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나 한 주일 동안 실천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고생 많고 불신이 가득한 세상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붙들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겠다고 다시 다짐해본다.


요약: 소망은 그리스도인 삶에 있어 지극히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에 확고히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지금 이 땅에서의 삶과도 연결된다. 왜냐하면 장차 올 왕국은 원칙적으로 신자들 가운데 이미 임하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스러운 소망의 완전한 실현은 미래에 있다. 세상은 여전히 사단의 반역의 결과로 영향을 받고 있지만 그 결과는 보증되어 있음을 우리는 안다. 우리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그분의 영원한 왕국은 영광스럽게 곧 실현될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히 그 왕국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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