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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과 한나: 필요한 사람이 되기를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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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목사 작성일10-10-08 12:57 조회6,4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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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일몰오후 5시 54분

기억절: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삼상 2:1~2).


안식일 오후

| 연구 범위 | 삼상 1장, 2:1~11, 21, 욥 2:12~13, 마 6:19~20, 눅 12:16~21.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자존감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 수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의 생명은 어떤 의미일까? 전쟁을 벌이는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는다. 우리는 트럭에 깔린 지렁이처럼 통제할 수 없는 엄청난 힘에 의하여 짓눌려 있는 것같이 느낀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어떻게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겠는가? 과연 날 위한 의미와 목적이 있기라도 한 것인가?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라고 가르치고 있다.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의 사랑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정치나 종교적 위인은 아니었지만 소박한 소원을 하나님께 올린 여인, 한나의 일생을 탐구하면서 우리를 개인적으로 가깝게 대하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펴 볼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처럼 여겨지기 쉽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소중한 존재라고 말씀해 주신다.

학습 도우미
| 핵심 본문 | 삼상 2:1
| 학습 목표 |
⊙ 깨닫기 : 한나의 삶에서 우리를 가치 있게 만드는 하나님의 생각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확인한다.
⊙ 느끼기 : 아무리 작은 의무라도 하나님은 매우 가치 있게 보신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 행하기 :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책임들을 신실하게 이행하며 모든 상황 속에 하나님을 신뢰한다.

교과 개요
01. 깨닫기: 작은 것의 중요성
A. 오랫동안 한나는 어머니가 되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녀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으셨는가?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한나는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B.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을 그녀가 믿음으로 양육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02. 느끼기: 믿음의 양육
A.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나가 하나님을 공경하고 섬기도록 아들을 교육시켰음이 확실하다. 한나의 신실한 자녀 양육은 어떻게 이스라엘 역사에서 좋은 본보기가 되었는가?

03. 행하기: 기도와 찬양
A. 어떤 난관에 부딪힐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는가?
B. 한나가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접근했던 방식을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C.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 가운데 신중함과 기도의 정신을 요하는 일은 무엇인가?

요 점: 하나님은 불행한 한 여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녀의 삶을 복이 넘치는 삶으로 바꿔주셨다. 그러자 그녀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믿음으로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다.

일요일(10월 10일) 나는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가?

1. 삼상 1:1~16을 읽으십시오. 남편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왜 자녀가 없음을 그토록 한탄했습니까?
[삼상1:1~16]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무자하더라 3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7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8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15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

답: 고대에 자녀가 없는 여인은 아무리 남편의 사랑을 받는다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괄시를 당하고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로 낙인찍혔다.

아들 없이는 노년의 삶이 보장되지 않았던 그와 같은 문화 속에서 한나의 감정은 그렇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자(無子)함은 하나님의 저주를 의미했다. 자녀가 없는 여인은 안이나 밖이나 어디에서든지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라는 오명을 쓰고 살아야 했다. 이는 분명 사회의 시선에 비친 그녀의 가치와 자존감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나는 종종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의아해 했을 것이다. 하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2. 구약 시대의 불임 여성들이 겪었던 비애를 이해하고 싶다면, 사라와 라헬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창 16:1~2, 30:1. 그들은 얼마나 우울했습니까?
[창16:1,2]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30: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답: 사라는 아이를 얻기 위해 여종 하갈을 대리모로 삼았으며, 라헬은 아이가 없는 것을 비관하여 죽고 싶을 정도였다.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와 관습에 의하면 사라의 행동은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 우리는 그녀의 행동을 통해서 그녀가 감당하고 있는 절망감과 무거운 짐을 엿볼 수 있다. 자녀를 얻기 위해 다른 여인과 잠자리에 들도록 남편을 설득하고 싶은 여인이 어디 있겠는가? 야곱에게 쏟아내는 라헬의 절규는 한나의 감정과 고뇌를 연상케 한다. 질투와 낮은 자존감으로 뒤범벅 된 그녀의 감정은 여호와께 마음을 토로할 때 마침내 폭발하였다. 꽃다운 나이가 다 지났다. 세월도, 분명 하나님도 그녀의 편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한나의 시대에 여인들의 주된 역할은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 다른 역할을 맡을 가능성은 없었다. 여인들은 자신의 역할을 바꾸거나 다른 직업을 통해 성취감을 얻을 수 없었다. 우리는 구약 시대에 여자 사사와 여선지자가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에 의한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여인들이 삶의 가치를 증명하고 유업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이를 낳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녀가 없는 그녀에게 삶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불평의 유혹을 견딤
“한나에게는 희망이 깨어지고 생애가 무거운 짐처럼 보였으나 그녀는 불평하지 않는 온유한 마음으로 그 시련을 견디었다.”(부조와 선지자, 569).

<부가설명> 고대 사회의 풍습을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은 가장 늦게 기록된 것이라도 지금부터 거의 1900년 전에 기록된 것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현재의 내게 적용하는 법을 배우는 일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의 풍속을 아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보는 눈으로 그 옛날의 사정을 재어보려고 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나의 사정을 한나의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사라나 라헬 등의 사례를 통하여 당시의 여인들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런 것을 통하여 성경의 사건은 성경을 통하여 바른 이해에 이르게 된다는 교훈을 받는다면 유익이 될 것이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깨닫는 일에 사려 깊은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한나처럼 우리의 심정을 하나님께 열어 아뢰는 믿음을 날마다 연습할 필요가 있다.

교훈: 여인의 역할이 제한되어 있었던 시대에 자녀를 낳지 못한 한나는 어떤 인생의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월요일(10월 11일) 이와 같은 친구들

1. 하나님께 저주 받았다고 생각하며, 아무 가치도 느낄 수 없는 인생을 살기란 한나에게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어떤 문제가 더해졌습니까? 삼상 1:6~ 7.
[삼상1:6,7]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7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답: 엘가나의 첫째 부인이었던 브닌나는 한나의 무자함을 조롱하며 그녀의 감정을 집요하게 자극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상처를 줘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계속되는 브닌나의 조롱은 분명 한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성경 본문은 브닌나가 반복적으로 그녀를 자극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해가 바뀌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브닌나의 행동을 묘사한 단어가 구약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분노를 일으키는 죄의 더미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신 9:18, 31:29 참조). 그것은 단순히 일회적인 놀림이 아니었다. 이것은 아마도 한나가 뭔가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도록 자극하기 위한 브닌나의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전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브닌나에게 있어서 한나는 남편 엘가나의 사랑을 차지하고 있는 유일한 경쟁자였기 때문이다(삼상 1:5).

<부가설명> 부조와 선지자 568쪽 아이 사무엘 장을 열어보면 한나가 첫 부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모든 히브리인이 매우 열렬히 갈망한 축복을 이 경건한 부부는 받지 못하여 그들의 가정에는 아이의 음성을 듣는 즐거움이 없었다. 남편은 그의 가계(家系)를 영속시키려는 소망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듯이 제2의 결혼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신앙심의 부족으로 이루어진 이 처사는 행복을 가져오지 못했다. 집안에 아들 딸들이 탄생하였으나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의 기쁨과 아름다움은 훼손되었고 가정의 평화는 깨어졌다. 새 아내 브닌나는 질투심이 강하고 마음이 좁았고 오만하고 불손하였다. 한나에게는 희망이 깨어지고 생애가 무거운 짐처럼 보였으나 부인은 불평하지 않는 온유한 마음으로 그 시련을 견디었다.”(부조 568) 그러므로 학습 도우미에 나오는 1문 길잡이는 이 말씀에 의하여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2. 욥기 1~6장을 훑어보십시오. 욥의 친구들은 그가 당한 일 때문에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습니다(욥 2:12~13 참조). 그러나 그들은 욥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에 대하여 그런 식으로 반응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욥2:12,13]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13 칠 일, 칠 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 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

답: 욥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격려, 동정과 이해였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은 그가 당한 불행의 원인을 완전하지 않은 지식과 이해력으로 규명하려고 하였고, 그들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욥은 더욱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재산과 친족을 잃은 슬픔은 매우 크다. 질병과 삶의 갖가지 상황들은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게 한다. 우리는 때로 어떤 희망을 품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의 삶을 소모시키는, 충족되지 않는 갈망에 불과하여서 우리로 더욱 깊이 절망하게 만든다. 깊은 상처와 좋지 않은 여건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데 재주가 있는 사람들까지 대면해야 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성취되지 않은 꿈, 계속되는 긴장 그리고 계속되는 자극이라는 최악의 조합이 한나로 하여금 여호와 앞에 부르짖게 만들었다. 가끔 우리는 우리의 상처와 번민을 주님 앞에 토로할 필요가 있다. 절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면 우리 외부에서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참 특성인 동정
“동정과 친절과 사랑이 결핍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할 수 없다.”(교회증언 6권, 42)
“생애 자체가 고통스런 투쟁이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늘 부족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불신을 나타낸다. 자신들에게는 감사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계속 투쟁하는 고독한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친절한 말과 동정의 표정과 감사의 표시는 마치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과 같을 것이다. 동정의 말 한 마디, 친절한 행동 하나는 피곤한 어깨에 무겁게 지워져 있는 짐을 치워 줄 것이다. 따라서 사심이 없는 모든 친절한 말과 행동은 잃어버린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현이다.”(산상보훈, 23)

<부가설명> 위로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위로받은 대상이 참으로 위로를 느끼도록 위로한다는 것은 그 마음을 그가 느끼는 것처럼 느껴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욥의 친구들처럼 아무리 진심이라도 위로받을 그 사람에게 상처만 깊게 할는지 모른다. 그래서 위로는 주님께 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위로하러 가서 그가 처한 곤경의 원인을 따져보는 것은 때때로 해결을 위하여 유익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욥과 같은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위로를 위하여 방문했을 때는 정말 위로의 말을 하도록 할 것이다. 한나의 경우는 아기를 낳게 하는 것 이상의 위로가 있겠는가. 우리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위로를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이 상대에게는 전혀 위로로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번뇌케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최종적 위로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명심하는 것은 중요하다.

교훈: 모든 길이 막히고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결국 우리는 위를 바라보며 하늘의 도움을 구하게 된다.

화요일(10월 12일) 마음을 토로함

인간의 본성으로는 참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는 결국 어떤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 이것이 경우에 따라 비합리적이고, 심지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1. 한나는 고통을 어떻게 처리하였습니까? 삼상 1:9~16을 읽고 그녀가 고통을 처리하는 단계를 묘사하십시오.
[삼상1:9~16]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15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

답: 한나는 자신의 고통과 울분을 하나님께 쏟아냈다. 그러나 단지 감정을 토로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서원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녀는 아마도 마음의 확신이나 어떤 종류의 응답을 듣기 전까지 일어서지 않기로 작정했던 것 같다.

이 기도는 공식적인 청원이나 일반적으로 “저를 도와주세요!” 식의 기도가 아니다. 성경 기자는 한나가 여호와 앞에 그녀의 심정을 쏟아냈다고 묘사하였다. “붓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는 액체와 관련되어 있는데, 특히 제사의 피와 물과 관련되어 있다(레 4:7, 12, 18, 25 참조). 그것은 종종 하나님의 행동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다. 하나님은 심판이나 복을 부어 주신다(시 69:24, 79:6, 사 42:25). 그것은 풍성함과 충만함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몇 개의 구약의 본문에서 이 단어는 기도와 관련되어 사용되었다(시 42:4~5, 62:9~9, 애 2:19). 이렇듯 토로하는 기도는 아마도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올리는 기도였던 것 같다. 이 기도에는 철저한 정직과 가장 깊은 고통과 두려움의 고백이 요구된다. 한나는 기도에 너무 깊이 몰입한 나머지 주위의 사람들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야곱이 야간의 습격자에게 매달렸던 것처럼 하나님을 붙잡았다(창 32:26~27).

2. 한나의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진 즉각적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삼상 1:17~18.
[삼상1:17,18]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18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답: 한나는 엘리 제사장의 말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발견했다. 그녀는 큰 확신을 얻고 돌아가서 다시는 그 문제로 걱정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기도에 즉각 응답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분께 마음을 토로할 때,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적절한 때에 그의 방식으로 응답해 주겠다는 확신을 주신다(시 37:4). 그의 약속은 미래에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는 우리에게 희망과 믿음을 준다.
삼상 1:11에서 한나는 하나님께 큰 약속을 드린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아들을 낳게 해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약속이었다. 서원은 원래 기도나 경배와 같이 예배의 일부분이었다. 한나의 서원은 엄청난 것이었다. 아들에 대한 모든 기대의 포기였다. 엘가나의 아내로서 그녀의 지위와 입지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비난 대신 기도함
“한나는 아무런 비난도 하지 않았다. 한나는 이 세상 친구와 나눌 수 없는 고통을 하나님께 토로하였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치욕을 거두시고 당신을 위하여 양육하고 교육시킬 한 아들을 귀중한 선물로 주시기를 열렬히 탄원하였다.”(부조와 선지자, 570)

<부가설명> 기도는 반드시 소원을 아뢰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기도의 가장 핵심 요소는 자기의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이 자기의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진정한 마음이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인데 호흡은 생명이 있는 존재에게 멈출 수 없는 생명 현상이다. 그런데 그 호흡이 생명의 요소를 외부로부터 내부로 가져오는 일을 한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은 자기 내부, 곧 자기 자체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생리현상 자체로 증거하는 행동이다. 기도는 이와 같이 기도하는 사람의 생명력이 자기 안에 없고 오직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행위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인식하고 기도하는 것이 합당하다. 생명 자체를 하나님께 의뢰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필요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겸손히 아뢰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다 아신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이 자기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것도 기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은 마땅하다.

교훈: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지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에 담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쏟아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를 받으신다.

수요일(10월 13일) 주님을 찬양함

그대는 즐거울 때에 노래하는 그런 사람인가? 성경은 삶의 중요한 순간에 찬양을 불렀던 인물들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미리암과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목격한 뒤, 홍해 바닷가에서 노래했다(출 15:20~21). 드보라와 바락은 왕들과 군사들을 물리친 하나님의 능력을 장엄한 서사시로 찬미하였다(삿 5:1~31). 마리아가 친족인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그녀의 입술에서는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의 계획에 대한 노래가 흘러나왔다(눅 1:46~55). 이런 노래들은 저마다 다른 역사적 배경과 정황 속에서 나왔지만, 한 가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셔서 그분의 자녀들이 올린 탄원에 응답하셨을 때 생긴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1. 삼상 2:1~11을 읽으십시오. 한나의 노래는 무엇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까?
[삼상2:1~1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5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9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11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답: 한나는 하나님께서 약자를 외면하지 않으시며, 약자를 억압했던 교만한 자를 낮추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찬양하고 있다.

한나는 이제 의심의 그림자를 넘어 자신의 개인적 경험 뿐 아니라, 역사의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이 절대적으로 여기며 추구하는 모든 것들은 내일이면 뜬구름같이 사라져 버릴 것들이었다. 한나가 자신의 노래를 통해 극명하게 강조하고 싶었던 사실은 삶의 상황들이 항상 보이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넘어진 자가 힘으로 띠를 띠는 반면 용사의 활은 꺾인다(삼상 2:4).

한나는 참된 안전은 상황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아는 데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특별하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가치를 주시는 분이다.

어떤 이들은 한나의 노래 가운데 6절을 가지고 씨름한다.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나님의 자비와 심판은 임의로 결정되는 것인가? 우리는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생명에 대한 구약의 기본 전제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근대적인 관점으로는 이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자로서 창조물을 가지고 그의 뜻대로 행하실 수 있다.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부정적인 사건들도 하나님의 통치에 예속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의 저자들은 종종 인간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듯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허용하셨다면 그가 행하신 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보일 수 있다.

찬양의 힘
“하늘의 정사와 권세를 잡은 이들은 외관적으로는 불리한 처지 가운데서 하나님의 종들이 수행하고 있는 싸움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속주의 깃발 주위에 집결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려고 나아가면 새로운 정복 사업은 성취되고, 새로운 명예를 얻게 된다. 모든 하늘 천사들은 겸손하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므로, 이 지상에 있는 주의 일꾼들의 군대가 찬양의 노래를 부를 때에, 하늘 찬양대는 그들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그 아들에게 찬양을 돌린다.”(사도행적, 154)

<부가설명>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악인의 형벌과 진멸에 대한 이해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통하여 이해하려고 할 때에 더욱 그렇다. 한나의 노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찬양이며 그것이 악을 멸하고 의를 세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근본적으로 이 사상은 옳은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의적으로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 것인가?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각자의 행한 대로 결과를 나타내시는 것이다. 아주 공평무사하시다. 아담과 그의 후손들의 현재의 처지는 사망에 처해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보내어 구원하지 않으면 그대로 영원한 사망이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 곧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의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구원은 아주 공평한 것이다. 사망이 된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에게 절대 공평하게 구원의 길이 열려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각을 주셔서 구원에 길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을 공평하게 주셨다. 이제 주께서 주신 이것을 그들이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맡기셨다. 그들의 결정을 따라 하나님께서는 처리하신다.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음부에 내리기도 하고 올리기도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반응한 대로 결과를 받는 것일 뿐이다. 심지어 그 반응까지도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교훈: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개입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이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목요일(10월 14일) 하나님의 투자 계획

한나는 노래하면서 성소를 떠났지만, 어린 사무엘을 뒤에 남겨두었다. 불임이라는 오명을 벗기는 했지만, 아들이 없는 텅빈 집을 향해 가야했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아들을 바쳤으니, 늙으면 누가 그녀를 돌볼까? 그녀는 단순한 믿음과 신뢰심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가장 귀한 소유를 드렸다. 한나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아들을 드렸던 또 다른 영웅 아브라함을 떠올리게 된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은 오랜 불임 기간 후에 성취되었다. 하나님은 이삭이 다 성장했을 때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다. 반면 한나는 아들을 낳기도 전에 아기가 생긴다면 하나님을 섬기도록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아이가 젖을 떼자, 그녀는 아들을 실로로 데리고 갔다. 상상해 보라. 엘리의 가문은 그리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엘리가 사무엘의 좋은 교사와 인도자가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들을 맡기고 작별해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1. 한나의 믿음과 사랑의 표현을 하나님은 어떻게 존중하셨습니까? 삼상 2:21.
[삼상2:21]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답: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게 하시므로 그의 믿음을 응답하셨다.

한나는 주님께 아들을 바치지 않고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아들을 붙잡아 둘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을 바침으로써 그녀는 5명의 자녀를 더 얻었고, 사무엘은 심오한 영감을 얻게 되었다. 마침내 사무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대언자이자, 이스라엘의 위대한 교육자와 지도자가 되었다.

2. 쌓아 둔 재물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까? 마 6:19~20, 눅 12:16~21.
[마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눅12:16~21]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답: 재물은 덧없는 것이다. 그것을 가치 있게 활용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나, 그것을 모으기만 하는 자는 갑작스럽게 어떤 손실을 입을지 모르며, 삶의 목적이 지상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재물과 함께 덧없이 멸망하고 만다.

우리가 무엇을 드리든지 하나님은 받으시고, 배가시켜서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되돌려 주신다. 진정으로 소중한 보배는 하나님께 드려야 가장 안전하다. 우리를 위해 잠시 이곳에서 쌓아두는 것들은 사라져 버린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떤 존재로 보시는지 알게 되었다. 이런 자존감의 회복은 그녀로 하여금 기꺼이 드리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었다.

어머니의 감화
“한나는 아들 주위에 있는 모든 익숙한 사물을 통해 그의 생각을 창조주께 향하도록 노력하였다. 아이와 헤어진 후에도 이 충실한 어머니의 염려는 그치지 않았다. 매일 그는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 한나는 자기의 아들이 세속적으로 위대하게 되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그가 하늘이 귀중히 여기는 위대함,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이웃에게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열렬히 탄원하였다.”(부조와 선지자, 572)

<부가설명> 다윗은 우리가 주께 드리는 것은 주께서 주신 것을 드리는 것뿐이라고 고백하였다(대상29:14) 사람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호흡은 하나님께서 마련해두신 공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인간이 존속하는 능력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밖에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순간마다 지적하는 것이 호흡의 기능이다. 먹고 입는 것이 다 그렇다. 사용하는 모든 것도 자기 속에서 나온 것이 없다. 모든 것을 자기 밖의 무엇인가를 통하여 얻는 것이다. 그 근원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자녀들도 그렇고 자기 자신도 그렇다. 그래서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 자기를 드리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 받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고 또 주님께로부터 받아서 다시 주님을 위하여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재물이나, 자녀나 자신이나 모두 하나님께 드림으로 영원한 것이 된다. 이 이치를 깨닫는 기쁨을 누리자.

교훈: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심을 깨닫고 가장 소중한 아들을 기꺼이 드렸다. 그러자 하나님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녀와 자녀에게 복을 주셨다.

금요일(10월 15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모들이여, 주님께 그대들의 자녀들을 바치고 그들이 주님께 속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의 양떼에 속한 어린 양이며 참된 목자의 보호를 받는 자들임을 항상 명심하게 하라. 한나가 주님께 사무엘을 바쳤으며 그에 대하여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 3:19)라고 기록되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이며 사사인 사무엘의 생애에서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하나님과 협력하여 저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할 때에 자녀들에게 모든 가능성들이 주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143)

“한나가 받은 보상은 얼마나 큰 보상이었는가! 그의 모본은 충실함에 대한 얼마나 큰 격려인가! 모든 어머니들에게 말할 수 없이 값있는 기회와 무한히 귀중한 사업이 위임되어 있다. 여인들이 싫증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주위에 있는 대수롭지 않은 매일의 의무는 중대하고 고상한 사업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감화를 통하여 세상을 복되게 하는 일이 어머니들의 특권이며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마음에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어머니들은 기쁜 일과 궂은일을 통하여 저희 자녀들이 영광스러운 하늘에 가도록 길을 곧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생애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따르려고 노력할 때에만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품성을 거룩한 모본을 따라 형성시킬 수 있다. 세상은 부패한 감화로 가득 차 있다. 유행과 습관은 젊은이들에게 강한 힘을 발휘한다. 만일 어머니들이 교훈하고 지도하고 제어해야 할 의무를 감당하지 못할 때에는 자녀들은 자연히 악을 용납하고 선에서 돌아설 것이다. 모든 어머니들은 자주 구주 앞에 나아가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가르쳐 주소서.’라고 기도를 드려야 한다. 모든 어머니들이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 가운데 주신 교훈에 유의하라. 그러면 필요할 때에 그대들에게 지혜를 주실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57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교인들 가운데 가정에서 또는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교과반에서 또는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을 어떻게 도와야 합니까? 도움을 주기 위해 그대는 얼마나 헌신하겠습니까?
* 욥의 친구들과 같이 되지 않도록 아주 주의 깊게 주님의 마음으로 접근하고 말하고 도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도와 말씀과 봉사로 도울 수 있을 것이다.

2. 그대가 속한 사회에서는 소위 ‘낙인’을 찍는 그런 문화가 있습니까? 그런 문화로 인하여 어떤 끔찍한 일들이 벌어집니까? 그대는 하나님께서도 이런 것들을 나쁘게 보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관습에 따라 다른 사람을 낙인찍을 위험이 있습니까? 어떤 환경에서 우리가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문화적인 것과 성서적인 것의 차이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 우리는 쉽게 어떤 사람을 평가하여 고정관념으로 그를 보는 허물을 범한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라는 시각으로 사람을 대하면 낙인을 찍어놓고 대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하도록 간구해야 할 것이다. 문화와 풍습의 굴레를 벗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에게 형성된 평가의 잣대가 문화적인 것인지 성경적인 것인지 성경말씀으로 잘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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